소설리스트

회귀신공-126화 (126/200)

# 126

第一章 기억상실(記憶喪失)

몸이 아프다.

그래, 더럽게 아프다.

살아생전 이런 고통을 느낀 적이 언제였느냐고 묻는다면, 신유강은 틀림없이 거지 굴에 있을 당시, 고열에 시달려 죽을 뻔한 그 당시라 대답을 할 것이다.

삭신이 쑤시는 것은 물론이고, 입안이 텁텁해 물이라도 마시지 않으면 목이 타들어 갈 것만 같았다.

또 왜 이렇게 어지럽고 머리가 아플까?

“시발…….”

튀어나온 말은 험하기 그지없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런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만큼 엿 같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무겁기 짝이 없는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렸다.

“여긴?”

보이는 것은 하늘이며 느껴지는 것은 차가운 흙바닥의 감촉이다. 입에는 나뭇잎이 달라붙었는지, 쓰디쓴 맛이 그대로 느껴졌다.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으로 입에 걸린 무언가를 떼어냈다.

역시나, 썩어빠진 나뭇잎이었다.

니미…….

“아고고…… 더럽게 아프네.”

정말이지 농담이 아니라, 율초언에게 얻어맞았을 때보다 더 아픈 것 같다. 회귀신공을 일으켜 몸을 치유하고 있는데도, 이상하게 머리가 아픈 것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 여긴 어디야?

분명히 사마강 늙은이 때문에, 장원을 나와서 산책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대로 계속 걸었다면 틀림없이 객잔으로 갔을 테고, 장삼과 술이라도 마시며 사천에서 마지막 밤을 지새웠을 거다.

그런데?

약간 의문이 들어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

그래, 문제는 이거다.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왜 머리가 아픈지, 혹은 왜 이런 곳에 있는지, 뭔가 엄청 중요한 일이 일어났던 것 같았는데, 그런 느낌만 확연하게 들고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았다.

이런 걸 흔히 기억상실? 혹은 치매라 하던가?

신유강은 어이없이 웃었다.

“하하, 웃기지 마. 난 아직 스물셋이라고?”

늙은이 흉내를 내며 슬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분명 좀 전까지 사천에 있었으니, 지금도 사천에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런 낯익은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야 그렇지.

산속에 있는데.

주위는 나무와 풀 뿐이 보이지 않는다.

“퉤.”

신유강은 일단 돌아다녀 보기로 결정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겁기 그지없는 몸으로 산속을 걷는다는 건 꽤나 고생스러운 이야기다.

물론 회귀신공을 익히고 난 뒤부터 이러한 일을 겪은 적이 없었기에, 참으로 기기묘묘한 기분이다.

식은땀이 뻘뻘 흘러내리는 데다, 몸이 축축 늘어진다.

아마도 이런 걸 병 걸렸다고 하나?

병?

웃기지 마라, 회귀신공을 익힌 뒤로 병이란 단어와는 담을 쌓고 지냈단 말이다. 그런 이유로 이건 병이 아니라 단순히 찬 바닥에서 잠을 잤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 그렇게 납득하는 거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아마도 술을 퍼 마시고 저도 모르게 산속에서 퍼질러 잠을 잔 것이겠지. 이 사실을 소소가 알면 때려죽이려 할 것이 분명하다.

더욱이 오늘은 하북으로 출발을 해야 하는 날이 아니던가?

그런 생각을 하니 더욱더 발을 놀리게 된다.

소소가 무서워서 그런 건 아니다.

결코 말이다.

진짜라니까?

“그런데 여긴 어디냐고!”

산속을 헤메던 잠시 후, 신유강은 기어코 고래고래 소리를 내지르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벌써 이각이 넘는 시간 동안 이 산속을 헤매고 있다. 기연고서점으로 가는 산길은 확실히 아니었다.

그렇다고 청성이나 아미산조차 아니다.

사천에 있는 산이란 산은 다 타 봤으니, 그 길을 모른다는 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터벅터벅, 서서히 몸이 나아지는 기분을 느끼며 포기하지 않고 산을 탔다. 지금 신유강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열심히 열심히 발을 놀려 이 산을 벗어나는 일뿐이었다.

금방이라도 마을이 나올 것 같았으나, 그건 착각이었는지 한 시진을 더 걸었음에도 도통 이 숲은 끝날 것 같지가 않았다.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인상을 썼다.

어느새 날이 어두워지고 있다.

도대체 이 산속에서 얼마나 잔 거야?

분명 장원을 나올 때가 사시(巳時) 초였으니, 못해도 몇 시진을 바닥에 누워 잠을 잔 모양이었다.

“하.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군.”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시선을 돌리는 그 순간, 수풀 한쪽이 들썩들썩 움직였다.

신유강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꾹 말아 쥐었다.

호랑이냐, 늑대냐? 아니면 곰이냐?

뭐든 상관없기는 하지만 제발 부탁이니 그냥 가라. 신유강은 그런 어이없는 생각을 하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그냥 사라져 달라는 속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기실 싸울 만한 기력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어……?”

이윽고 수풀의 들썩임이 더욱 거세졌다.

긴장하고, 더욱 강하게 주먹을 말아 쥐었다.

회공(回功)에 힘을 가득 실었으니, 맞으면 단순히 즉사(卽死) 정도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그 형태조차 찾아볼 수가 없으리라.

“어?”

“응?”

그러나 신유강의 예상과는 다르게 불쑥 수풀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제 갓 꽃 피우기 시작한 나이의 어린 소녀였다.

얼마나 산속에서 뒹굴었는지 얼굴은 더럽기 짝이 없었고, 입고 있던 옷 또한 여기저기 뜯겨져 있는 것이 보였다.

힐끗힐끗 눈알을 굴려 전신을 살펴보자, 참으로 잘 빠진 몸매였다.

신유강은 어색하게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이러한 꼴을 진소소에게 보였다간, 작살이라는 말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 역시 남자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는지, 힐끗힐끗 눈이 돌아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사, 사람이다!”

‘그럼 호랑이로 보이디?’

작은 소녀는 마치 몇 년 만에 사람을 만났다는 것처럼, 폴짝폴짝 뛰며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만약 얼굴이 더럽지만 않았다면, 틀림없이 얼굴을 붉힐 만큼 아름다운 외모였다.

신유강은 힐끗힐끗 여인의 전신을 또 다시 살폈다.

갑작스레 나타난 소녀, 천진난만하기 짝이 없는 해맑은 웃음은 어찌 보면 당소혜를 떠올리게 했다.

아니, 외모 자체는 당소혜보다 아름다웠다.

얼굴만 좀 깨끗했으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흠…….

“저기, 저기요!”

“무슨 일이지?”

“제, 제가 이 산속에서 며칠을 헤맸는데, 혹시 먹을 것이 있으면 좀 나눠주시지 않겠어요?”

신유강은 얼굴을 잔뜩 붉히며 말을 하는 소녀를 바라봤다. 생긴 것부터 입고 있는 옷 하나하나 거지나 다름없어 보이는 소녀가, 얼굴을 조금 붉히고 있기는 했지만 거침없이 구걸을 해 오다니.

그렇군, 거지로군.

머릿속에서 어린 소녀의 신분이 정리되자, 신유강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줄 것이 있다면 응당 선심을 베풀고 싶기는 하지만,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잠깐 산책을 하기 위해 장원을 나왔을 뿐이니 말이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데?”

“네에!? 그, 그럼, 여길 내려가는 길이라도 알려 주실 수 없을까요?”

“내려가는 길이라……. 오히려 알고 있으면 좀 가르쳐 주었으면 하는데.”

툭하고 내뱉은 말에 소녀가 동그랗게 눈을 떴다.

그것이 어찌나 귀여워 보이는지, 순간 두근 하고 심장이 떨릴 정도였다. 정말이지 얼굴만 깨끗했으면 반해 버릴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그만큼 소녀에게서는 진소소와는 다른 매력이 풍겨져 나왔다.

“그럼 어쩌다 여기 있는 거예요?”

돌연 소녀의 말투가 쌀쌀맞게 변했다.

눈빛이 가늘어졌고, 표정마저 아니꼽기 그지없다.

냉기가 풀풀 넘친다고나 할까?

천하의 진소소에게도 본 적이 없는 그 표정이 나름 신선하기 짝이 없었기에, 흥미가 돋은 듯 신유강은 두 눈빛을 빛냈다.

“눈을 뜨니 이곳에 있었어. 술을 먹고 뻗은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으니 나도 미칠 지경이다.”

“…….”

“그래, 말 나온 김에 나도 좀 묻자. 여기가 사천 어디쯤에 있는 곳이지?”

사천이라는 말에 소녀가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에는 ‘이 인간이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하는 감정이 집약적으로 녹아 있었다. 굳이 파헤치지 않아도 비웃고 있다는 사실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사천? 정말로 몰라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여긴 사천이 아니에요.”

“무슨 개소리를 입에 담는 거지, 꼬마 아가씨?”

신유강은 정말로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사천이 아니라니? 그럼 저승이라도 된다는 소리인가? 하긴 사람이라고는 이 맹랑한 꼬마 계집밖에 만나지 못했으니, 어떤 의미에서 저승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거다.

신유강은 실소를 머금었다.

“개소리? 이보세요, 공자. 개소리를 입에 담고 있는 건 소녀가 아니라 공자예요. 알았어요? 여긴 하남이에요, 하남! 제가 하남에 들어서서, 산을 타다가 길을 잃었으니 하남이 틀림없다고요!”

“꿈이라도 꾸는 모양이로군, 꼬마 아가씨. 나는 좀 전까지 사천에 있었어. 그런데 잠깐 정신을 잃은 사이 하남에 들어왔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호호호, 정신을 잃은 사이에 정말 개꿈이라도 꾸셨나 보네요, 공자.”

이 빌어먹을 꼬맹이가…….

신유강은 울컥하는 마음에 입술을 씰룩씰룩하며 인상을 썼다. 이런 느낌을 받은 것은 꽤나 오랜만이다. 아마 당소혜를 처음 알았을 때처럼, 아니, 그때보다 더욱 울화가 치밀었다.

“좋아, 그럼 일단 이 산을 내려가서 확인을 해 보자고, 이곳이 하남인지, 아니면 사천인지 말이야.”

“호호호, 틀림없이 하남이라니까요. 지금 소녀와 내기를 하자는 건가요?”

내기? 내기라……. 그것 참 좋은 말이다.

은근히 승부욕을 불태우는 맛이 있지 않은가. 더욱이 결코 지지 않는 내기라면 언제든지 환영이다. 마을을 내려가 봐야 사천 성도가 보일 테니 말이다.

“그럼 무엇을 거시겠어요?”

“꼬맹이는 뭘 걸 생각이지?”

“제가 먼저 물었거든요?”

꼬맹이는 샐쭉한 표정을 지었다.

다시 봐도 몰골만 깨끗했다면 반했을 만한 얼굴이다.

그러나 진소소를 마음에 품고 있는 신유강이, 그녀에게 반할 리가 없다. 더욱이 나이로 보아 아직 십 대 중반 정도로밖에 안 보이지 않은가.

“열 냥을 걸지.”

“헤에, 입은 옷을 보니 그 정도 돈은 있으실 것 같네요. 좋아요, 그럼 저도 같은 열 냥을 걸죠.”

소녀는 그리 말을 하며 전낭을 들어 올렸다.

상당히 묵직해 보인다.

부유한 집안의 여식인 것인지 전낭 또한 비단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박음질 또한 섬세하기 짝이 없었다.

신유강은 씩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금이다.”

“네?!”

“금 열 냥이란 소리다.”

“그, 금이라고요?”

소녀는 금이라는 말에 마른침을 꼴깍 넘겼다.

소녀의 전낭에는 사실 상당한 양의 은자가 들어 있었다. 하지만 정확한 개수는 몰라도, 하나씩 꺼내 확인하지 않아도 결코 금 열 냥이 될 리는 없음을 소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소녀에게도 자존심은 있다.

비록 남자는 아니라 하지만, 내뱉은 말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이야 모자라지만, 돈을 줄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세가로 돌아가기만 했담 봐. 콱!’

거기다 소녀가 무조건 이기는 내기이니, 어차피 돈 걱정은 필요가 없었다.

“좋아요. 받아들이죠. 여아일언중천금이에요.”

신유강은 씩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로 공돈이 생긴 것이다.

“그럼 내려가도록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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