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신공-129화 (129/200)

# 129

오래 말을 잃었기도 했고, 말을 배운 지도 얼마 되지 않은 어린 나이이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다.

신유강은 그런 아이에게 부드러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내 이름은 소동이다.”

그리 말을 하고 등을 돌렸다.

다른 거지패들은 어린 신유강이 돈을 받은 것을 보지 못한 듯했다. 물론 그만큼 조심스레 건네주었으니 걸릴 일은 없을 것이다.

더욱이 신유강은 아무리 옛날 기억을 뒤져 보아도, 은자 이십 냥이라는 거금을 거지 대장에게 가져다 준 기억이 없었다.

또한 왜 머릿속에서 소동이라는 이름이 지워지지 않았는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신유강은 어린 자신이 멍하니 서 있는 것을 힐끗 살피곤, 웃음을 지으며 조용히 길을 떠났다.

* * *

신유강은 가끔 생각한다.

회귀신공을 만들어 낸 현선자라는 인물의 대해서 말이다.

인간을 초월한 힘, 그야말로 신이나 가질 법한 신공을 만들어 낸 이가, 과연 인간이라 할 수 있을까?

신유강은 생각할 때마다 고개를 저었다.

천 년 전 무림을 제패했다는 천마는 틀림없는 인간이다. 마존의 천마신공만 보더라도 그것을 확연하게 알 수 있다.

그러나 현선자의 무공은?

아직까지 제대로 회천공을 펼쳐 보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틀림없이 천마신공에 버금가는 무예다. 그리고 회귀신공은 그 윗선에 있는 무공이다.

시간을 돌린다.

있던 장소에 돌아간다.

상대의 시간은 물론이며, 자유자재로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오가는 무공은, 동서고금(東西古今) 모든 역사를 뒤져 보아도 비슷한 예조차 찾아내기 힘든 것이다.

“그건 그렇고 대체 어떻게 된 거야?”

투덜거리며 빠르게 하남 거리를 나아간다.

하북 쪽을 향해 방향을 잡았으니, 길어도 보름 안에는 도착할 것이 분명하다. 물론 길을 헤매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하남성을 빠져나와 대로를 타고 올라가고 있는 신유강은 점점 인적이 드물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직 환한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힐끗힐끗 주위를 둘러보며 걷자, 몇 되지 않은 행인들의 얼굴이 불안감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마치 호랑이가 나오기라도 하듯 얼굴을 굳인 채 빠르게 걸음만 놀리고 있었다.

워낙 기이한 일이었기에 신유강은 의아한 생각을 하며, 지나가는 이들에게 말을 걸어 보려 하였다. 하지만 부리나케 걸음을 놀리는 사람들은 신유강 따위 안중에도 없는 듯하였다.

고개를 저으며 신유강 또한 걸음을 빨리했다.

보통 이런 대세는 따라 주어야 함이 마땅하다.

귀찮은 일이 벌어질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쫓아!”

쫓으란다.

뭔가 귀찮은 일이 벌어졌을 때와 같은 소리가 들리기에, 신유강은 아미를 찌푸리며 더욱더 빠르게 걸음을 놀렸다.

힐끗 시선을 돌려 주위를 둘러보니, 무수히 많은 무인들이 경공을 시전하여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선두에는 봉두난발의 남자가 있었다.

살벌하기 짝이 없는 눈빛과 양손을 적신 시뻘건 피.

척 보아도 평범한 무인이 아니라는 것을 확연하게 보여 주는 양반이다. 기세는 약하기는 하지만, 얼굴로 승부한다면 능히 사마강조차 이길 것이라고 자부해도 될 것 같았다.

“이리로 오지 마!”

신유강은 소리를 치며 더욱 달렸다.

봉두난발의 남자가 뒤를 쫓아오는 무인들을 떼어 놓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경공을 시전하고 있었는데, 그 정면에는 바로 신유강이 있었다.

신유강은 아미를 찌푸렸다.

이대로 가다간 저 남자와 부딪힐 것 같다.

물론 부딪히기 전에 저 남자는 신유강을 향해 손을 쓸 것이 분명하고, 결국 한 차례 싸움이 벌어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이놈! 거기서 비키지 못할까!”

봉두난발, 매서운 눈매, 오른 쪽 뺨부터 입술까지 길게 나 있는 검상, 사납기 그지없는 기세를 풍기며 소리를 지르는 이 남자는 현 무림에서 상당히 유명한 자다.

천무황성의 소성주, 그 이름하야 우자혁. 무림에선 뇌성권마(雷聲拳魔)라 불리는데, 주먹질 한 번에 뇌성에 들린다 하여 붙여진 별호다.

그리고 그 뒤를 쫓고 있는 이들이 무림맹에서 파견된 청룡대라는 이들이다.

제일 앞에 있는 이가 바로 청룡대주로서, 소림 계율원주를 맡았던 무현, 그 뒤를 따라 당초운을 비롯한 추후 무림을 이끌어 갈 후기지수들이 가득했다.

신유강은 익숙한 얼굴들을 발견하고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제일 먼저 본 것은 당초운이었는데, 과연 평소 미남이라 자랑하고 다닌 것이 허언은 아니었는지, 이십 년 전인 지금도 잘생긴 호청년이었다.

그 뒤로 또 한 명이 보였다.

아미의 옥진과 청성의 윤환이다.

물론 언뜻 보면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젊어진 모습들이라 약간 고개를 갸웃하기는 했으나, 어쨌든 그들이라는 사실은 틀림이 없다.

그리고 가장 뒤에는 한 소녀가 있었다.

다른 이들보다 뒤쳐져 있는 소녀는 숨을 헐떡이며 어떻게 해서든 앞서가는 이들을 쫓아가려 하고 있었는데, 실력이 상당히 떨어지는지 조금도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는 눈치였다.

“비키라는 말이 안 들리느냐!”

신유강은 눈알을 굴렸다.

살짝 비켜 가면 될 것을 굳이 비키라 한다. 무림인들이라는 것들은, 자신의 앞길을 막는 이들을 꽤나 싫어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슬그머니 자리를 비키기 위해 몸을 움직이려 하자, 뒤에서 우람찬 함성이 들려왔다.

“갈(喝)!”

극성의 내공이 실려 있는 그것은 평범한 사람이라면 듣는 것만으로 내장이 뒤집힐 만큼 대단했다. 만약 신유강이 아니었다면 고막이 터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신유강은 아미를 찌푸렸다.

소리를 친 이를 바라보니 소림승 같아 보인다. 아마도 이 자리에서 신유강이 몸을 움직여 길을 터 주는 것보다, 우자혁의 길을 틀어막아 설령 신유강이 죽더라도 따라잡을 수 있는 시간을 좁히려는 심산일 터였다.

정말이지 정파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사고방식이다.

대충 그런 심산을 읽어 낸 신유강은 슬쩍 손을 움직였다.

은은한 기운이 맺히며 부드럽게 일보(一步)를 내디뎠다. 움직인 손은 구름을 머금은 듯 서서히 우자혁을 향해 뻗어졌고, 갑작스런 상황에 경악을 금치 못한 우자혁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것을 바라봐야 했다.

손을 쓰기엔 너무 늦은 것이다.

쾅!

육중한 소리와 함께 우자혁의 몸이 날아갔다.

“커어억!”

거칠게 입에서 피를 토해낸 그는, 바닥에 주저앉아 연신 기침을 해 댔다. 그만큼 신유강의 한 수가 대단했기 때문이다.

보고 있는 이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특히 무현은 더더욱 그러했다.

소림 내에서 계율원주를 맡았던 그의 실력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고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자혁과의 차이는 상당했다.

아무리 뇌성권마라는 별호를 얻고 있다고는 하지만, 자신이라면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하여 이번 일에 청룡대가 나선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그의 예상을 판이하게 벗어나는 것이었다.

고작해야 이십 합 만에 승부가 났다. 우자혁은 느긋하게 도주를 했다. 그만큼 실력 차이가 극심하다 할 수 있었는데, 지금 눈앞에 있는 청년은 그런 우자혁을 한 수에 제압한 것이다.

청룡대원들이 쓰러진 우자혁과 신유강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붙잡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주의 명령이 들리지 않으니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었던 탓이다.

또한 신유강의 한 수를 두 눈으로 본 탓도 있었다.

도대체 어디서 저런 고수가 나타났단 말인가?

“……소림의 무현이라 하오.”

무현이 먼저 이름을 밝힌 것은 틀림없이 신유강의 이름을 듣기 위함이리라. 그러나 신유강은 자신의 이름을 함부로 내뱉을 수 없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자신은 원래 이 역사에 존재하지 앉았어야 할 인물, 그 이름조차 알려져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소, 소강이라 하오.”

“…….”

진소소의 소(小) 신유강의 강(强)을 합친 것에 불과하다. 웃기지도 않은 이름이긴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신유강이라는 이름을 댈 수 없으니 만큼, 즉흥적으로 생각을 해 낸 것치고는 나름 괜찮았다.

더욱이 유강과 소강은 한 글자 차이이지 않은가?

언젠가 아들이 태어난다면 꼭 소강이라는 이름을 써야 겠다고 신유강은 속으로 태평하게 다짐했다.

“처음 듣는 이름이오만…… 어디 출신이시오?”

“그런 걸 알아서 무엇하려 하시오?”

신유강은 오히려 되물었다.

눈앞에 있는 자는 틀림없이 훗날 무림맹주에 오르는 칠제 중 일인, 권제 무현일 것이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훗날의 일이고 지금은 고작해야 무림맹 무사에 지나지 않는다.

꿀릴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저 오만하기 짝이 없는 시선을 보고 있자니, 더욱 불쾌하다.

천하의 구파, 그것도 기둥이라 불리는 소림의 인물이라는 자가, 정도보다는 오히려 마도에 어울리는 자라는 사실을 신유강은 어렵지 않게 느꼈다.

그리고 무현도, 출신 성분도 불명확한 고수가 돌연 나타나 공을 가져갔다는 생각에, 신유강이 영 미심쩍게 느껴졌다.

이것이 무림맹주 무현과 신유강의 첫 만남이었다.

물론 서로 상당히 고까운 표정들이지만…….

“본 맹에서 쫓고 있는 이를 잡아 주어 고맙소. 허나, 출신을 밝히지 않는 이상 함께 무림맹으로 가 주어야겠소.”

무현의 억지에 신유강은 기가 찼다.

목적이라 할 수 있는 남자는 게거품을 물고 정신을 잃고 있는데, 그다지 상관조차 없는 신유강을 걸고넘어지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는 것이다.

“이유를 물어도 되겠소?”

“무림맹으로 간다면 자연스레 알게 될 일이오.”

현 하남에는 비상이 걸려 있다.

천무황성의 소성주인 우자혁이 하남에 들어왔다는 첩보에 하남 전역에 경보가 걸렸다. 그리하여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인 끝에, 신유강의 도움으로 간신히 잡을 수 있었지만, 저 정도 실력자가 출신을 쉽게 밝히지 않으니 더더욱 수상쩍게 생각되었다.

혹여 마교 쪽 간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그것은 오로지 무현만의 꼬인 오해였지만 말이다.

“대주님, 저분께선 뇌성권마를 잡아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이러한 행동을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봅니다.”

당초운이 한 발 앞으로 나와 당당하게 입을 열었다.

신유강은 두 눈을 빛내며 그것을 바라봤다.

정파의 협객이라고 불릴 만큼 당초운의 성격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사리분별이 가장 뛰어난 인재라고는 할 수 있다. 아마도 우자혁을 한 수에 잡은 신유강이 마음먹고 손을 쓴다면 이길 수 있는 이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리라.

“허, 이 멍청한 녀석아. 상대가 마교의 간자일지도 모르는데 그것을 그냥 보내 주란 말이냐?”

무현에게 있어 세상은 오로지 흑과 백, 둘뿐이다.

물론 이 흑백논리가 다른 이들과는 조금 다르다. 자신이 하는 말은 모조리 옳은 말이고, 상대가 하는 말은 모조리 틀린 말이라는 식이다.

무현 본인의 행동은 티끌 한 점 의심할 것 없는 백이며 정당하고, 그의 말을 부정하고 대드는 이는 사마외도로 치부하며 흑으로 만들어 버린다.

어린 시절부터 소림사에서 떠받들어지며 자란 만큼, 시쳇말로 성격이 아주 엿 같게 자란 것이다.

“이건 아니에요, 대주. 저분께선 저희가 쫓는 우자혁을 잡아주셨어요. 포상을 내린다면 또 모를까 죄인 취급이라뇨?”

아미의 옥진 또한 타당한 말을 한다.

물론 그녀는 단순히 무현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하려 하는 것을 모조리 부정하는 것일 뿐이었다.

여기저기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