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신공-132화 (132/200)

# 132

어마어마한 진가의 정보력과 힘, 팽가와 진주언가까지.

덤으로 개방의 총타마저 있다.

“미치겠군.”

우자혁은 머리를 벅벅 긁적였다.

절대 근처에도 가고 싶지 않은 곳이기는 하나, 자신의 체면을 되살리기 위해서라면 응당 가지 않을 수가 없다.

때문에 짜증이 치솟는다.

한참 동안이나 나무 위에서 생각을 정리한 우자혁은, 결국 결심을 굳혔는지 와락 표정을 구기며 나아갔다.

아마 이곳에 있는 그 누구보다 빠르게, 하북으로 달려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기다려라, 개자식!’

그는 소강, 신유강에게 복수할 일념뿐이었다.

* * *

신유강과 백리지연은 현재 하북과 하남의 경계에 있었다. 대략 칠 일 정도 정신없이 이동을 한 탓인지 몰골은 말이 아니나, 이대로라면 하북으로 들어서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들이 있는 곳은 작은 촌락이긴 하나, 주변에 있는 다른 곳보다는 훨씬 발전되어 있는 듯한 곳이었다.

현재 신유강과 백리지연은 허름하기는 해도 이 마을의 객잔 중에서는 그나마 나아 보이는 객잔 앞에 서 있었다.

시큰둥하기 짝이 없는 신유강의 표정과는 다르게, 백리지연은 앙칼진 눈빛을 빛내며 그를 쏘아보고 있었다.

“정말로 돈이 없어요?”

“물론, 오는 도중 배수를 당했거든.”

백리지연은 어이가 없었다.

무공을 익힌 이들 중에서도 약간 둔하거나 혹은 수준이 낮은 이들이 간혹 운 나쁘게 배수를 당하기도 한다.

그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신유강의 경지는 우자혁을 한 수에 제압할 정도로 대단하다. 아무리 배수꾼이 경험이 많고 잘 훔치는 놈이라 하더라도, 그 손동작과 움직임을 꿰뚫어보지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때문에 백리지연은 기가 찼다.

“거짓말이죠?”

“하하, 돈이 없다는 건 사실이지.”

“……그럼 신 공자께선 차디찬 저기 골목에서 주무시면 되겠네요.”

그녀의 말에 신유강은 짐짓 너스레를 떨었다.

“자는 거야 문제는 없다만, 괜찮다면 밥 정도는 사 주었으면 하는군.”

구걸을 하는 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당당하다. 신유강의 얼굴에는 미안한 감정 따윈 일체 보이지 않는 데다, 오히려 백리지연이 밥을 사는 것을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있는 듯했다.

그 때문에 백리지연의 눈빛이 더욱 좋지 않았다.

그러나 신유강에게도 할 말은 있다.

지금 이곳에 있는 신유강은 어디까지나 백리지연이라는 소녀의 호위 역할이다. 그녀의 입으로 직접 말했으니 만큼, 원치는 않으나 어쨌든 호위라는 점에서는 부정할 수 없으리라.

그렇다면 밥 한 끼 정도는 고용주가 지불해야 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때문에 신유강은 당당하기 짝이 없다.

물론 백리지연은 갈수록 기가 찼지만 말이다.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돈 한 푼 없이 내기를 하고, 그렇게 당당하게 한참이나 어린 소녀에게 밥을 사 달라고 하는 거죠?”

“그야 명목상 나는 네 호위니까.”

“하, 지금 이곳까지 오는 칠 일 동안 늑대니 호랑이니 나타나면 모두 제가 처리했거든요? 오히려 제가 공자에게 돈을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명목상 나는 네 호위니까.”

싱글싱글 웃음을 짓는 신유강은 계속해서 같은 말만 반복했다. 그녀의 노고가 수고스럽기는 하지만, 어쨌든 명목상 호위는 신유강이다.

“하아, 뭐 좋아요. 까짓것 밥 한 끼 못 사 줄 만큼 ‘빈곤’하지는 않으니까요.”

“좋은 판단이야. 나 같은 호위를 밥 한 끼에 쓴다는 건 흔히 있는 일이 아니니까 영광으로 생각하라고.”

“호호호, 그것참 대단히 영광이네요.”

백리지연은 정말이지 오랜만에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칠 일 동안 함께 지내긴 했지만, 아직도 백리지연은 이 신유강이라는 남자에 대해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무공이 고강해 보이기는 하지만, 어디 소속인지는 불명이다. 그러나 마교나 천무황성, 혹은 사파의 인물이 아니라는 것은 틀림없었다.

마교도나 사파인에게서 느껴지는 그 특유의 분위기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무림맹에서 은밀히 키운 고수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백리지연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딱히 무림맹에 충성심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데다, 구파나 팔대세가를 욕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신유강은 정사마에 대한 개념이 옅었다.

지금 현 시점에선 전대 고수의 후인이라는 점이 가장 타당해 보인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느 고인의 제자일까?

그런 방향으로 결론이 날 듯하자, 백리지연은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녀에겐 나쁘다면 나쁜 버릇이 있다. 스스로의 재능에 자신이 있는 만큼 강자를 보면 어쩔 수 없이 호승심이 솟아오르는데, 그를 상대로는 그러한 호승심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은 신유강이 무공을 익힌 이들의 특유의 기세를 가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신유강에게선 그 어떤 위협도 느낄 수 없으며, 일상적인 행동만 볼 수 있었다. 정말이지 무공이라고는 쥐뿔도 모르는 평범한 인간 같아 보였다.

만약 백리지연이 검을 뽑아 벤다면 막아 내지도 못할 것 같다.

무공을 익혔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기세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은, 답은 하나다. 이미 초절정에 들어 기세를 감출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는 것이다.

‘저 나이에 말이지?’

객잔에 자리를 잡고 앉아 간단한 음식을 주문한 백리지연은, 힐끗거리는 시선으로 신유강을 살폈다.

나이는 아무리 봐도 갓 약관이 넘은 스물 초반 정도로 보인다.

그런데 기세를 감출 수 있는 초절정 고수.

세상에 드러나지는 않고 있으나, 그녀 또한 천재 중 천재. 이미 무현과 같은 절정 경지에 올라와 있으니 만큼 무인을 보는 눈은 확실하다.

‘어쩌면 그보다 더…….’

거기까지 생각하던 백리지연은 고개를 저었다.

초절정에 올랐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라운 일인데, 이미 그 경지를 뛰어넘어 신화경에 도달했다면, 결코 같은 또래가 아닌 반로환동을 이룬 전설의 무인이라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화경이 아닌 현경, 혹은 그 이상의 경지를 밟은 무인이라는 말이 되는데, 그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는 소리다.

백리지연은 피식 웃었다.

“혹시 신 공자.”

“뭐지?”

어느새 점소이가 요리를 가져다놓고 물러나자, 신유강은 열심히 젓가락을 놀리며 백리지연을 바라봤다. 꽤나 허기가 졌던 것인지, 허겁지겁 먹은 탓에 입 주변이 상당히 더러워져 있었다.

백리지연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상상이다.

“혹시 반로환동의 고수인가 뭔가 그런 건가요?”

“하, 그럴 리가 없잖아. 네가 보기엔 내 나이가 그렇게 많아 보이던?”

“이상하잖아요. 그 나이에 그 정도 무공을 지녔는데 겉으로는 아무런 기세도 느껴지지 않는다니. 기세를 숨길 정도의 경지라고 치면, 당신 나이에 그 정도 경지를 이룬다는 것도 말이 안 되고요.”

“그런 류의 무공이니까.”

기척을 죽이는 무공이 있으니 기세를 숨기는 무공 또한 존재할 수도 있다. 물론 백리지연으로선 들어 본 적이 없었기에 의아함이 더 드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모래알 같이 무수히 많은 무인들이 존재한다는 곳이 바로 중원 땅이다. 자연스럽게 모래알만큼 무수히 많은 무공이 존재한다는 뜻도 된다.

그녀가 모르는 무공이 있는 것이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왠지 모르게 속아 넘어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백리지연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젓가락질을 시작했다.

반면 신유강은 백리지연의 얼굴을 훔쳐보며 피식 웃었다. 어쨌든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다. 회귀신공의 특성상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평범해 보인다면 틀림없이 평범해 보인다.

다만 기세를 끌어올릴 때는 그 어떤 무인들보다 강하다. 그것이 바로 회귀신공이 가지고 있는 강한 장점 중 하나인 셈이다.

“그럼 초절정에 오른 건 아니라는 소리인가요?”

“경지를 구분하자는 건가?”

“그 우자혁을 한 수에 꺾었잖아요. 그 정도 수준이라면 능히 십대고수에 들 만한 실력이에요. 만약 무현 대주와 부딪혔어도 그와 같은 상황이었을 거라 나는 확신해요.”

이미 무현을 한 수에 물린 것도 보았고 말이다.

조금도 틀리지 않은 말이기는 하나, 신유강은 고개를 저으며 그녀의 말을 부정했다. 더 이상 그녀에게 쓸데없는 것을 주입시켜 줄 필요는 없다고 여긴 것이다.

그것에 의아함을 느낀 것인지, 백리지연은 미간을 좁혔다.

“틀리다는 건가요?”

“우자혁인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방심을 했기에 벌어진 일이다. 내 무공은 그렇게 고강하지 않아.”

“방심이라……. 그가 누구인지 알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건가요?”

“글쎄…….”

“우자혁은 천무황성의 소성주로 중원에서도 이름을 상당히 알린 자예요. 비슷한 나이대로는…… 으음…… 무현 대주가 있네요. 그래도 두 사람의 격차를 생각한다면, 정말이지 괴물 같은 사람이죠. 신 공자는 그런 괴물을 한 수에 꺾은 거예요.”

끈질긴 백리지연 때문에 신유강은 눈살을 찌푸리며 차를 들이켰다. 물론 그가 방심을 하든 하지 않든 결과는 같았을 테지만, 지금 현 시점에서 그리 눈에 띄고 싶지는 않다.

“우연이다.”

“흐음… 정말요?”

“단순히 무공도 모르는 놈이라고 방심하고 있다가 얻은 맞은 것이지. 우리 문파의 무공이 그런 쪽으로는 조금 쓸모가 있거든.”

대충 이치에는 맞아 보여서 백리지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인이라면 응당 있어야 할 태양혈조차 보이지 않으니, 상대가 설령 칠제 중 일인이라 하여도 방심할 것은 당연하다.

물론 신유강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것은 아니다.

우자혁이 방심을 한 탓에 벌어진 일이라고는 하지만, 신유강이 보인 그 한 수는 그녀조차 흉내 내지 못할 정도로 깊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방심을 했다 하더라도, 고작해야 일류 수준에 이른 무인이 휘두른 주먹에 어이없이 나가떨어질 만큼 우자혁은 약하지 않다.

백리지연은 조용히 차를 들이켜며 목구멍까지 넘어오려는 말을 집어삼켰다. 더 이상 캐묻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신유강의 표정 때문이기도 했고, 또한 무인이라면 누구든지 숨기는 것 하나둘 정도는 있기 마련인 것이다.

그녀 또한 마찬가지였다.

청룡대원 중에서 가장 실력이 떨어지는 백리지연이, 사실 무현과도 대등하게 싸울 만한 수준에 올랐다는 것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으니 말이다.

백리지연은 더 이상 묻지 않고 묵묵히 차를 마셨다. 밥을 먹기는 했는데, 먹은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드는 것은 틀림없이 언짢기 그지없는 신유강의 표정 때문일 것이다.

“그럼 일어나도록 할까요? 조금만 더 가면 하북이에요, 공자.”

자리에서 일어서는 백리지연을, 신유강은 힐끗 바라봤다. 하남성에서 이곳까지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온 만큼, 틀림없이 무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러나 신유강의 생각과는 다르게, 백리지연은 조금도 지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태연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성큼성큼 객잔을 나섰다.

“나보다 튼튼한 것 같군.”

“여자라고 얕보지 않으셨으면 해요. 칠 일 밤낮을 달려도 지칠 정도로 약하게 크지는 않았으니까요.”

청룡대의 뒤를 따르며 헥헥거리던 그 모습은 정말 연기였던 모양이다.

걱정스러워하던 신유강의 표정이 놀라움으로 뒤바뀌는 것을 본 백리지연은, 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중원 천지에 있는 그 누구라도, 그녀가 어렸을 적 겪었던 일을 알게 된다면 하나같이 입을 다물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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