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5
멀쩡하게 서 있던 그는 어느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으며, 전신에 맹렬한 소용돌이에 휩싸인 것 마냥 고통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대기(大氣)가 돈다.
천지가 뒤바뀐 것 마냥 참으로 기이한 느낌이었다.
“쿨럭!”
얻어맞았다는 느낌조차 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극심한 내상을 입었는지 입에서 울컥하며 한 움큼 피가 터져 나왔다.
이윽고 그의 몸이 땅으로 닿기 직전의 그 아슬아슬한 순간, 신유강의 손이 움직이며 수차례 우자혁의 몸을 가격했다.
퍼퍼펑!
“크아악!”
직접 두 눈으로 보지 않는 이상, 조금 전 그 상황이 현실의 일이라 여기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신유강의 손속은 인간의 기술을 초월한 그런 종류의 것이다.
우자혁의 몸은 어김없이 허공을 날아 떨어졌다. 조금 전 신유강이 틀어박혔던 객잔, 그것도 상당히 깊숙한 곳까지 날아간 모양인지 백리지연의 눈으로도 우자혁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으아…….”
백리지연은 헛바람 소리를 내며 신유강을 바라봤다.
조금 전 객잔에서 밥을 먹을 때, 우자혁을 꺽은 것을 분명 우연이라 말하지 않았던가? 도대체 이게 어디가 우연이란 말인가.
우자혁의 맹공에 두 번이나 크게 당했음에도 멀쩡하게 일어서는 금강불괴지신(金剛不壞之身), 마치 자연의 섭리를 역행시키는 듯한 그의 무공.
백리지연은 마른침을 삼켰다.
지금 눈앞에 있는 신유강이야말로 그녀가 찾고 있었던 고수가 아니던가? 어려 보이기는 하지만, 틀림없이 반로환동인가 뭔가를 한 절세고수임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다면 이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이었다.
정신을 가다듬은 무현의 손이 뻗어진 것은 말이다.
팡팡팡!
이름 높은 소림에 절기라 할 수 있는 백보신권(百步神拳), 제대로 익힐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전해지는 그 절기가 무현의 손에서 재현되었다.
신유강은 화들짝 몸을 틀어 쏟아져 오는 격공(擊功)을 쳐 냈다.
워낙 갑작스런 기습이었던지라 백리지연마저 어리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가운데, 신유강은 조금 전 우자혁을 상대했을 때보다 더욱 험악하게 인상을 구기며 무현을 바라봤다.
“뭐 하는 짓이오?”
“네 이놈! 감히 청룡대원을 납치하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
“아…….”
지금 신유강과 백리지연의 상황은 누가 보더라도 납치를 당하고, 한 사람들이라 볼 수 없다.
그러나 무현의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지난번 겪었던 치욕을 되갚아 줄 수만 있다면, 신유강을 중원 무림의 공적으로 만드는 것 또한 서슴지 않을 것이다.
지금 그는 우자혁이 고작 한 방에 나가떨어졌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그 많은 청룡대원들 앞에서 자신에게 창피를 준 신유강을 향한 맹렬한 살기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잘 모르겠소만. 나와 한판 어울릴 생각이라면 그만한 각오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소. 사실 지금 힘 제어가 잘 안 되고 있으니 말이오.”
신유강은 회천공의 힘을 몸소 느꼈다.
회귀신공의 힘을 이용하고 나서야 겨우 그 힘을 억제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다행히 우자혁의 목숨까지는 빼앗지 않은 것 같았지만, 만약 조금만 더 힘을 주었다면 형체도 남지 않고 사라졌을 것이다.
‘회귀신공도 그렇고 회천공도 그렇고, 왜 마공이라고 불렸는지 알 만하군.’
신유강은 아미를 찌푸리며 생각을 멈추었다.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무현의 눈빛에서, 당장이라도 출수를 할 기미가 보인다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손속의 사정은 필요 없다. 구파의 수좌, 소림의 무공이 왜 천하제일이라 불리는지 가르쳐 주도록 하지.”
“방자하네…….”
신유강은 실소를 머금고 무현을 바라봤다.
흔들림 없는 눈빛은 물론이며, 오랫동안 이 강호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눈빛마저 맹렬히 타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누가 보더라도 이 승패는 확연하다.
애당초 우자혁을 이기지 못하는 시점에서, 무현이 신유강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현은 오로지 신유강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천하의 이름 높은 우자혁을 상대로 백여 초에 가까운 공방을 주고받았고, 그 승패를 가르지 못하였으니 자신의 수준이 그와 같다 여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애초에 우자혁이 신유강에게 기세를 빼앗기지 않고, 무현과 공방을 주고받으면서도 신유강을 신경 쓰지 않았다면, 대결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음을 무현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방자? 소림의 이름이 그렇게 가벼워 보이더냐?”
“모든 소림의 스님들이 당신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오? 그럼 스님이 아니라 땡중이라 해야 옳을 것 같소만.”
“놈! 우자혁을 이겼다고 이 무현마저 우스워 보이더냐!”
신유강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말을 해 봐야 통하지 않는다. 귀찮다는 이유로 이 자리를 피할 수 없는 일이니 만큼, 결국 결심을 하고 슬그머니 기수식을 취했다.
조금 전 보여 주었던 회천공이 아니다.
선선운현무의 기수식이다.
“당신과 계속 이야기해 봤자 시간낭비라는 생각만 드오. 그렇다고 도망치려니 죄도 없는데 쫓기는 것 역시 마음에 들지 않고, 허면 부득불 출수를 하는 수밖에.”
“네놈이야말로 방자하기 짝이 없군. 그 알량한 자존심은 소림의 이름 앞에 무릎 꿇게 될 것이다. 마교 놈!”
무현은 어디까지나 신유강을 마교의 인물로 단정 지으려 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까지의 그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를 알고 있었기에 백리지연이 바득 이를 갈며 정정을 하려 했으나, 그보다 빠르게 신유강의 말이 먼저 흘러나왔다.
“지난번 어디 출신이냐 물은 적이 있는 것 같아 지금 대답을 해 드리오. 나는 삼백 년 전 천하제일고수로 추앙받았던, 선무제(仙武帝) 석무자의 후인이오. 그리고 지금 당신이 몸소 겪을 무공은 선선운현무라 하오.”
“……!!”
“서, 선무제?!”
백리지연과 다르게 무현은 놀라움에 입을 열 겨를이 없었다. 선무제, 그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이는 아마 중원 무림에 없을 것이다.
천무황성이 중원을 침공할 당시 단 홀로 나서서 그들을 격파시켰음은 물론이고, 날뛰던 흡혈광마를 고작 몇 수에 잡아 죽인 전설적인 정파의 영웅이다.
그의 무공의 시작은 언제나 일보(一步)라 했다.
그것을 증명하듯 신유강은 구름을 탄 것처럼 천천히 움직이며 일보를 내디뎠다. 그리고 그 순간, 무현은 거대한 구름이 전신을 뒤덮는 희한한 감각에 휩싸였다.
무현은 지금 이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단지 서 있었을 뿐이다.
거대한 구름이 몰아쳐 들어오는 것을 바라보며 멍하니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구름의 정체가 신유강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커커컥!”
무엇을 어떻게 당했는지조차 깨닫지 못했다.
전신요혈에 극심한 통증을 느끼며 어느새 몸이 휘청거렸고, 다음에 보이는 것은 새파란 하늘이었다.
분명 서 있었는데?
힘은커녕 목조차 돌아가지 않는다. 힘겹게 눈알을 굴려 주위를 살핀 뒤에야, 어느 순간인지 무현은 자신이 바닥에 누워 있음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을 경악스러워할 여유는 없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엄청난 통증이 몰아쳤기 때문이다.
“끄아아악!”
이윽고 그의 입에서 태어나 단 한 번도 내뱉은 적 없었던, 고통의 찬 괴성이 울려 퍼졌다. 몰려드는 고통을 견딜 수가 없는지, 땅을 뒹굴며 울부짖는 그 모습은 누가 보아도 비참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심지어 무현을 싫어하는 백리지연마저 연민의 눈빛을 보일 정도였으니 말해 무엇하랴.
신유강은 숨을 고르며 뒹구는 무현을 바라봤다.
회천공을 사용했다면 저러한 고통을 느낄 여유도 없이 죽었을지도 모른다. 자비심이라 하여도 저러한 몰골을 보는 것은 참으로 안쓰럽기 짝이 없다.
본래의 시간대로 돌아가게 된다면, 최대한 무림맹주와는 마주치지 않도록 조심하자.
* * *
하북은 예로부터 분쟁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위로는 북해가, 서쪽으로는 사도련이 있으니, 자연스럽게 다른 곳보다 많이 크고 작은 다툼이 생길 수밖에 없는 형국인 것이다.
더욱이 하북에는 세 곳의 파벌이 존재한다.
같은 팔대세가라고는 하지만 언제나 이인자, 혹은 삼인자로 불리는 하북팽가가 존재하고 있고, 그 위로는 하북의 패자, 천하제일세가라 불리는 하북진가가 있다.
또, 그 사이를 파고드는 것이 바로 진주언가다. 권으로 유명한 가문이니 만큼, 소림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권각을 보유하고 있는 데다, 오랫동안 팔대세가의 중석을 차지하고 있어서 그 힘을 무시하는 이들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이 세 가문은 보이지 않게 서로를 견제했다.
그러나 십여 년 전 벌어진 싸움에서 압도적인 기세로 팽가를 찍어 누른 진가는, 그 후 공식적으로 하북의 제왕이 되어 버렸다.
명실상부(名實相符) 천하제일명문세가(天下第一名門世家)라는 이름을 얻은 순간이었다.
그곳은 일개 문지기부터, 심지어 세가에서 키우는 개들까지, 하나같이 평범하지 않은 느낌을 주었다. 그래서 평범한 이들은 결코 그들의 대문조차 다가서려 하지 않았다.
그림자를 밟는 것조차 불경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어쨌든 그런 하북진가는 현재 시끄럽기 짝이 없었다.
다른 이유가 아니다. 하북과는 전혀 상관없는 곳에서 부터 흘러 들어온 한 가지 소문 때문이었다.
뇌성권마 우자혁, 그리고 정파의 기대주로 성장하고 있던 소림의 무현이, 정체불명에 무인에게 한 수에 당했다는 소문이었다.
흉수가 누구인지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비참하기 짝이 없는 패배를 겪은 무현의 경우, 그가 누구인지 입을 열지 않았고, 뇌성권마 우자혁은 홀연히 몸을 감추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드물다곤 해도 행인이 있던 곳에서의 싸움이었기에, 목격자들의 입을 통해서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전대 고수의 후인이라던데?”
“에이, 그럼 무현 대주나 우자혁이 입을 다물고 있었겠는가? 그게 아니니까 입을 다문 것이지.”
하북진가의 무사들은 저마다 추측했다.
무림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퍼트리는 소문이니 만큼 석무자의 대해 알 리가 없으며, 그 두려운 상황에서 제대로 된 말을 들었을 리도 없다.
자연스레 석무자의 후인이라는 사실은 희미해져 가고 있었으나, 우자혁과 무현을 이긴 자의 별호만큼은 소문과 함께 중원 전역으로 퍼졌다.
무황(武皇).
처음으로 이름이 알려진 것에 비해 거창한 별호였다.
그러나 목격자들의 입에서 나온 말을 종합해 본다면 그것만으로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우자혁이 누구인가? 무현이 누구인가? 또한 땅이 울고 대기가 진동하며, 뭉게구름을 보았다는 사람들마저 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무황이란 이름이 아깝지 않다.
물론 대부분 고수들의 생각은 결코 아니다.
무림에서 이름이 알려진 이들은 무황이라는 별호를 가지게 된 신유강에 대해 반감을 느꼈다. 단순히 추켜세우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허상과 같은 이름이 여겼다.
그저 우스갯소리로 치부하는 것이다.
설령 우자혁과 무현을 패배시킨 것은 진실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이야기를 나누던 무사들이 문득 장원을 지나고 있던 작은 소녀를 발견했다.
“이봐, 저기 아가씨가 계시는군. 가서 말상대라도 해 드리지 그러나?”
“그런 걸 왜 나한테 시키는 거지? 그렇게 안쓰러워 보인다면 네놈이 하면 될 것을 말이다.”
무사들은 저마다 꺼림칙한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