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8
진소소는 탄성을 내지르며 객잔을 두리번거렸다.
커다란 객잔 이 층에서, 똘망똘망한 눈동자를 빛내며 생전처음 들어와 보는 객잔의 모습을 두 눈에 새겨 담고 있었다.
“객잔은 처음인가?”
정면에 앉아 있는 신유강이 조심스레 묻자, 진소소의 자그마한 고개가 작게 움직였다. 세가 밖으로 나오는 일이 많다고는 하지만, 객잔에서 음식을 사 먹은 적은 지금껏 없었다.
“괜찮은 곳이지? 이 언니도 가끔 하북에 오면 들르는 곳이야. 그런데 평소에도 사람이 많기는 했지만, 오늘은 유난히 많은 것 같네.”
백리지연은 곳곳에서 몰리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북에서 무슨 축제라도 있는 것인지, 객잔은 북적거린다는 말도 부족할 정도였다.
“평소에는 이보다 적은가요?”
“물론이지. 아무리 장사가 잘되는 객잔이라 해도 이 정도까지 사람이 몰리지는 않거든, 보통.”
신유강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기연객잔이 유명하다고는 하나 받을 수 있는 사람의 수는 언제나 한정되어 있다. 결국 기다리다 지친 사람들 끼리 다른 곳으로 가게 되니, 한 곳에 이리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도 기사(奇事)라면 기사다.
“아마도 소문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요?”
“소문?”
진소소는 되묻는 백리지연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중원을 도는 온갖 소문이야 언제나 귀를 열고 있으니 대부분 안다 할 수 있지만, 과연 이 하북에 무슨 소문이 퍼졌단 말인가.
“그…… 무황이라는 분께서 하북에 오신다고 해서…….”
“쿨럭!”
“어머…….”
무황이라는 말에 신유강이 기침을 터트리고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평범한 사람들보다 무인들의 숫자가 꽤 된다.
“그럼 이 사람들이 그 무황을 보고 싶어서 몰린 거란 말이야?”
“그러지 않을까요?”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지.”
신유강은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권룡이라는 별호를 얻었을 당시에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아왔다. 한 수 대결을 원하는 자, 혹은 권룡의 힘을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싶은 자들이었다. 무인이라는 자들은 대부분 자신보다 강한 자에 대한 호승심 같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운이 좋아 눈에 띄기라도 한다면 제자로 들어갈 수도 있으며, 기연이나 다름없는 것을 얻을 수도 있다.
이름 없는 가문, 문파, 낭인들이 무황을 찾아 몰리는 이유는 다름 아닌 그러한 점 때문이다.
“정말이지 할 말을 잃게 만드는군.”
“호호, 무인이란 원래 꿈 많은 직업이에요, 사부.”
“하.”
신유강은 어이가 없다는 듯 혀를 차며 인상을 찌푸렸다. 어린 진소소와 느긋하게 대화를 할 만한 분위기가 결코 아니다.
곳곳에서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 탓에 귀가 다 아플 지경인 데다, 백리지연의 외모 탓인지 상당한 주목마저 받고 있다.
“우리 완전히 부부 같지 않아요, 사부? 여기 딸도 있고.”
“놀고 있다.”
“말투가 좀……. 그냥 좀 받아 주면 안 돼요? 농담인데 정색하시긴.”
백리지연은 툴툴거리며 시선을 돌려 버렸다.
단순히 분위기를 띄워 보려 한 농담이었는데, 의외로 신유강이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기 때문이다. 힐끔힐끔 진소소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도 더욱 마음에 걸린다.
‘정말로 어린애를 좋아하는 거 아니야?’
신유강은 분명 하북에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누군가를 찾는 기색은 보이지 않고 있으니, 혹시 소소를 노리고 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드는 것이다.
백리지연은 게슴츠레 눈을 뜨고 신유강과 소소를 번갈아 바라봤다.
여전히 소소는 객잔 풍경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것을 두 눈으로 바라보며 신기하다는 듯 탄성을 짓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깨물어 주고 싶은 충동이 몰아쳐 올 정도였다.
반대로 신유강은 조금 전부터 시큰둥한 표정을 짓고 있긴 했지만, 계속해서 소소에게 눈길을 주고 있었다. 백리지연은 그것이 영 못마땅하여 아미를 찌푸리며 신유강의 발을 지그시 밟았다.
“이봐요, 사부. 아까부터 이 꼬마 아가씨를 계속 곁눈질로 훔쳐보는데, 많이 이상해요.”
“아무것도 아니니 신경 쓰지 마라. 그보다 다 먹었으면 슬슬 일어나도록 하지. 사람도 많은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려니 눈치가 보여서 원…….”
“흐음…….”
“진짜니까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주었으면 하는데.”
살짝 헛기침을 하는 게 더욱 수상해 보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신유강은 무죄라는 듯 뻔뻔하기 짝이 없는 낯짝을 해 보였다.
백리지연은 흐음- 하며 신음을 흘리고는 차를 들이켰다.
“그런데, 누굴 만나러 왔다면서 만날 생각이 없어 보이네요?”
“너도 천검제를 만나러 온 게 아니었던가?”
천검제라는 말이 들려오자 가장 크게 반응을 한 것은 다름 아닌 진소소였다. 혹시나 자신의 정체가 들킨 것은 아닌지 상당히 조마조마한 얼굴이 되었다.
“제가 보기엔 말이죠, 사부.”
“응?”
“그 천검제인지 뭔지보단 사부가 더 강한 거 같은데……. 그렇죠?”
“정말인가요?”
백리지연의 말에 진소소가 화들짝 눈을 뜨며 되물었다.
하북진가의 일원이니 만큼 그의 조부가 얼마만큼 강한지 익히 알고 있다. 세상 사람들이 손꼽는 인물이 아니던가.
그런데 단순한 추측이긴 하지만 그보다 강한 사람이라고 하니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웃기는 소리. 칠제와 나를 비교한다는 게 말이 되나?”
“그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고작 그 따위 사람과 비교하지 마라? 아니면 그런 위대한 분과 비교하지 마라?”
쿡쿡, 백리지연은 자신이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반로환동한 노고수이니, 고작해야 칠제에 비교한다는 게 말이 될 법한가?
차라리 천마존(天魔尊)가 비교한다면 또 모를까?
“전자의 의미다. 네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만, 나와 칠제를 비교하는 건 개미와 코끼리를 비교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물론 개미는 칠제겠죠?”
“그럴 리가 없잖아.”
신유강은 집요하게 늘어지는 백리지연 때문에 아미를 찌푸렸다. 확실히 무현과 우자혁을 상대할 때에는 상당한 힘을 보여 주긴 했지만, 칠제와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칠제는 곧 천마존과 대등한 이를 말한다.
더욱이 신유강은 이미 그의 장원에서 천하십대고수의 실력을 톡톡히 보았다. 회귀신공의 힘을 가진 자신에게 전혀 밀리지 않았던 진명의 모습은 아직까지 뇌리에 선명히 남아 있다.
그런데 칠제라면?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후후, 농담도. 사부라면 그 천마존과 맞붙어도 이길 수 있잖아요. 그렇죠?”
백리지연은 더욱 눈빛을 초롱초롱 빛냈다.
천마존이라면 칠제들조차 꺼리는 절대자임이 분명하지만, 백리지연이 본 신유강이라면 능히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딱히 어떠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나, 지난번 보았던 그 무공이 아직까지도 뇌리에 남아 떠나지 않았기에 더욱 그랬다.
사람이 구름으로 화하여 무현을 꺾었으며, 패도적인 일격으로 우자혁을 단숨에 보내 버렸다. 그 정도 힘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숨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는 것이 더욱 큰 확증이다.
그러나 뜻밖에 신유강은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손을 설레설레 젓기도 한다.
“하하, 마존하고 내가? 웃기는 소리. 한 대 때려나 봤으면 좋겠군.”
“……사부, 그 말은 혹시 천마존과 붙은 적이 있다는 말씀인가요?”
백리지연은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였고, 그것은 진소소 또한 마찬가지였다.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던 탓에 다른 이들에게 들리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신유강은 찔끔한 표정을 지었으나 다시금 태연함을 꾸몄다.
“직접 손을 섞은 적은 없지만, 만난 적은 있지. 그리고 난 생각했다. 아, 저 사람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기지 못하겠구나, 하고 말이다.”
이십 년 뒤에 겪은 일이긴 하지만, 처음 마존을 대면하였을 때 느낀 감정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거짓 하나 보태지 않고, 신유강은 사마강이라는 존재 그 자체가 두렵고 몸서리가 쳐진다.
신유강은 미간을 꿈틀거리며 주먹을 쥐었다.
언젠가는 반드시 뛰어넘는다.
사마강이 무슨 생각으로 마교를 나와 장원에 왔는지, 신유강과 진소소는 어느 정도 짐작을 하고 있다. 천 년 전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으니, 현선자의 무예를 다시 한 번 겪어 보고 싶은 것이겠지.
그러나 지금의 신유강은 약하기 짝이 없다.
하여 지켜보는 것이다.
조금 더 날개를 펴서 높은 곳으로 올라오길 말이다.
“그, 그렇게 대단한가요?”
백리지연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야기로 듣기는 했지만, 백리지연도 정파 쪽 인물이다 보니 천마존의 대한 것이 제대로 전해질 리 만무하다. 그녀는 지금까지 단순하게 칠제라 불리는 이들보다 조금 더 뛰어나다고만 여기고 있었다.
“칠제 일곱이 달려들면…….”
“덤벼도 이기지 못한다. 그것이 천마존이란 인간이다, 아이야…….”
그때 돌연 들려오는 말소리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곳으로 돌아갔다. 언제부터 이 객잔에 있었던 것일까? 언제 신유강과 백리지연의 앞까지 다가섰던 것일까?
사람들은 갑작스런 그의 등장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치, 칠제의 필두(筆頭), 처, 천검제(天劒帝) 진백 대협이시다!”
“저, 저분이 왜 이런 곳에……!”
객잔에 한바탕 바람이 불었다.
이름 있는 무인이라 하여도 칠제의 얼굴을 보는 것은 지극히 힘든 일이다. 칠제는 그 이름 하나로 중원을 굳건하게 받들고 있는 기둥이니 만큼, 사람들에게 신비한 존재로 남아 있어야 했다.
때문에 큰일이 아니라면 결코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천검제라 한다면 그야말로 칠제의 필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존재. 가장 천마존에 근접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무인이며, 천하제일세가의 기반을 쌓은 인물이다.
그런 이를 눈앞에 둔 사람들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한 채 한껏 흥분한 기색으로 진백을 바라보았다.
반면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진소소는 딱딱하게 표정을 굳혔다.
설마하니 조부가 이런 곳에 올 줄이야!
그러나 진백은 손녀의 그런 기색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신유강과 백리지연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무언가를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소문 자자한 무황이 자네였나?”
진백의 한마디는 또 다시 파문을 일으켰다.
우자혁과 무현을 상대로 펼친 한 수 때문에 무황이라는 커다란 별호를 얻은 인물, 그러나 그가 누구인지 연령, 이름, 용모파기조차 알려지지 않았기에, 하북으로 몰린 이들은 결코 신유강을 알아볼 수 없었다.
때문에 진백이 나타나기 전까지 다들 허탕을 친 것이 아니냐며 실망한 기색들이 역력하였는데, 돌연 나타난 진백이 이제 갓 약관이 넘어선 청년을 무황이라 지목한 것이다.
사람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침묵이 객잔에 내려앉았다.
신유강은 내심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이었으나,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을 취했다.
“무림 말학이 선배님께 인사 올립니다. 이름은 소강이라 하며, 뜻하지 않게 무황이란 별호를 얻었습니다만 그저 사람들의 가벼운 농담이라 여겨 주십시오.”
“허허, 재미있는 말을 하는군. 응당 그만한 별호를 얻은 이유가 있을 터인데, 가벼운 농담이라니?”
진백은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신유강의 전신을 아래위로 훑어보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기실 무황이라는 별호가 들렸을 때에는 순간 자신의 귀가 어떻게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