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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신공-140화 (140/200)

# 140

신유강과 진백 사이에는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그들의 옆에는 커다란 술독이 있었는데, 대부분 비어 있는 것을 보니 이미 상당히 마신 듯했다.

탁자 위에는 온갖 산해진미들이 가득하나, 처음 들여왔을 때와는 전혀 다르지 않은 모양새다. 그 말인 즉, 술은 마셨으나 안주는 손을 대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단하구나. 설마하니 아직도 버티고 있을 줄이야. 꽤나 독한 술인데 말이다. 설마하니 몰래 내공을 쓴 것은 아니겠지?”

“그럴 리가요.”

신유강은 어깨를 으쓱하곤 고개를 저었다.

내공을 사용하여 술기운을 날리는 것이 아니다. 회귀신공을 운용하고 있지 않기에 충분히 취할 수 있는 상황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신유강은 술에 강하다.

그것도 상당한 수준으로 말이다.

“껄껄, 내 보기에도 그래 보인다, 인석아. 네놈 식은땀을 흘리고 있지 않느냐.”

껄껄거리며 웃는 진백의 말대로 신유강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물론 평범한 땀이 아니라 몸 안에서 자연스럽게 땀으로써 술기운을 배출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건 진백 또한 다르지 않다.

인간이 상당한 경지에 오른다면, 몸도 자연적으로 그와 맞게 변한다. 때문에 굳이 내공을 쓰지 않아도 술기운 정도는 쉽게 배출되는 것이다.

진백은 오랜만에 기분 좋게 술을 마시고 있다.

더욱이 상대는 어리지만 자신과 같은 경지를 엿보고 있는 일인이니, 이대로 십 년만 더 성장한다면 마교가 아닌 정파에서 제이의 천마존 수준의 무인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것이 못내 기쁜 것이다.

비록 그것이 하북진가의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 몹시 안타깝기는 하지만, 어쨌든 대단하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 늙은이의 상대를 해 주어 정말 고맙네. 오랜만에 맛있는 술을 마신 기분이야.”

“그리 생각해 주시니 영광입니다.”

신유강은 껄껄 웃음을 짓는 진백을 바라봤다.

천검제, 하북진가의 태상가주. 진소소에게 그에 대한 것을 제대로 들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딱히 뭐라 정의를 내릴 수 없는 자다.

처음 진명을 보았을 때부터 느꼈던 그 싫다는 감정이 들지 않은 것도 아마도 그런 이유였으리라.

“헌데, 하북에는 무슨 일로 왔는가? 혹여 이 천검제와 손을 나누기 위해 온 것은 아닐 테고.”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단순히 유람 차 온 것입니다.”

“유람이라……. 하긴 젊었을 때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은 좋은 일이지. 헌데, 자네의 사부가 누구인가? 내 용모파기를 받지 않았다면, 정말로 자네가 무공을 익혔는지도 몰랐을 것이네.”

“…….”

“대답하지 못하겠다는 것인가?”

신유강은 뭐라 대답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분명 무현에게는 석무자의 진전을 이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정확히 따지자면 석무자의 전인은 신유강이 아니라 진소소다.

그럼 신유강 본인은?

현선자의 회귀신공과 회천공을 잇기는 하였지만, 머 속으로 주입되어 있는 지식을 바탕으로 홀로 익힌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럼 자연스럽게 선선운현무를 가르쳐 준 진소소가 신유강에게 있어 사부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니 저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맺혔다.

“굉장히 좋은 분이십니다. 이름을 말씀 드릴 수는 없지만, 최고의 인재라는 것은 틀림이 없지요.”

“최고의 인재라는……? 자네와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나 보군.”

“저보다 두 살 많습니다.”

“허……. 그런 인재가 있단 말인가? 어찌 그런 사람이 아직까지 중원에 나타나지 않고 초야의 묻혀 있는 것인가.”

초야의 묻혀 있다기보단 이십 년 후에나 이름이 알려지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지금의 진소소는 그저 코흘리개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으니 말이다.

진백이 껄껄거리며 말을 이었다.

“자네 정말 재미있는 농담을 하는군. 그래, 사문을 밝히기 싫다면 어쩔 수 없네만……. 그런데 우리가 팽가와 혼약을 맺었다는 사실은 또 어찌 알았는가.”

“언뜻 들은 소문이…….”

“정말 농담도 잘하는 친구군. 팽가와 진가가 손을 잡는 것은 다른 팔대세가들에게 위협이라네. 해서 어떠한 소문도 나지 않게 맺은 혼약이네. 알고 있는 자들은 대부분 입이 무거우니 새어 나갈 염려도 없지.”

세상에 완벽한 비밀은 없다.

단호하게 말하고는 있지만, 이미 제갈세가는 물론이며 다른 팔대세가에까지 흘러 들어갔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나 진백은 누구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듯 말을 꺼냈고, 분명히 신유강의 눈동자가 조금이나마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겉으로 내색하지 않으려 해도, 이 청년, 거짓말을 하는 것이 상당히 서툴다. 조금 전 사부의 이야기를 할 때와는 전혀 다른 눈빛이었기에, 진백은 신유강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뭐 좋네. 비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자네도 나도, 그 조그마한 아가씨도. 안 그런가?”

“조그마한 아가씨라면 백리 소저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허허, 그렇지. 척 보아도 범상치 않은 내력이었어. 백리세가에서 봉을 키웠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거든. 중원의 꽃이란 말에 가려지고 있긴 하지만, 이미 무현 그와 비슷한 경지이지 않은가?”

“소림의 무현…….”

“그래, 자네가 비참하게 쓰러트린 그 소림의 망아지 말일세.”

망아지라는 말에 신유강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진백에게 있어서도 무현은 그리 좋은 인상이 아닌 모양이었다. 하긴 지금은 중원 일에 직접 나서지는 않는 늙은이라지만, 과거에는 중원을 활개치고 다녔던 전설적인 인물 중 한 명.

당연히 소림과의 마찰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지요. 저를 이곳으로 부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으응? 단순한 술 상대를 부탁했을 뿐인데, 말을 잘못했던가?”

“보아하니 하북진가의 꼴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더욱이 진소소의 꼴은 더더욱 말이 아니죠. 다른 세가의 인물에게 보일 만한 몰골이 아님이 분명한데, 저를 안으로 들임으로써 어르신께선 백리지연에게 하북진가의 치부를 보였습니다.”

“호오…… 계속해 보게.”

“계속하고 자시고가 어디 있습니까? 어르신께서 무언가 이유가 있으니 그런 치부를 드러내면서도 저를 이곳으로 들인 것이라 생각할 뿐입니다.”

진백은 참으로 흥미로운 사실을 한 가지 알게 되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신유강은 결코 진소소의 일이 치부라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백리지연이 천리전음을 시전할 만한 전설적인 고수가 아닌 이상, 신유강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어야 함이 마땅하다.

명문세가의 자제쯤 되면, 어린 시절 바깥을 구경하고 싶어 누더기 옷을 걸치고 몰래 세가를 빠져나가는 일 따위 일상다반사다.

저잣거리에서 보인 진소소의 표정과 행동, 그리고 그 모습은, 단순히 아무도 모르게 바깥 구경을 나온 철없는 세가의 직계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유강은 하북진가의 치부라 명확히 하였고, 확신을 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이것은 하북진가의 사정을 어느 정도 꿰뚫고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반응이다.

‘유람이 아니라 진가에 용무가 있었나 보군……. 그것도 소소에게 말이지.’

진백은 속으로 꽤나 재미있다며 웃음을 쳤다. 어떤 수작에도 넘어가지 않으려 발버둥치려는 것이 눈에 보인다만, 기이하게도 서슴없이 말을 하고 있었다.

물론 정작 본인은 전혀 눈치를 채고 있지 않는 데다, 더욱이 술에 취해 헛소리를 하는 것으론 보이지 않는다.

“그저 자네와 이야기를 좀 하고 싶었다네. 천하에 다시없을 인재, 그리고 천검제의 만남. 어떤가? 역사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쓰일 것 같지 않은가?”

신유강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현재 신유강에게 있어 이곳 시간대에 생활은 단순한 유희에 지나지 않는다.

진소소에게 듣기론 무황의 삶은 지극히 짧다. 갑작스레 나타났다 사라졌다는 말은, 결국 이십 년 뒤로 돌아간다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하여 이곳에서 무황에게 어떠한 역사가 쓰이든지 그것은 신유강에게 일체 관심이 없는 사항이었다.

진짜 신유강의 역사는 이곳이 아닌, 진소소가 있고 흑영과 흑호가 있는 이십 년 뒤이기 때문이다.

“그리 흥미가 있는 표정은 아니로군.”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더 없는 영광이지요.”

신유강은 피식 웃음을 지으며 남은 술잔을 들이켰다.

영광이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

권룡의 삶 속에서도 높은 경지에 있는 무인들을 몇 번 만나 보기는 했지만, 기실 칠제를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물론 천마존 사마강은 논외로 치고 말이다.

“허허, 그리 생각해 주면 나야 기쁘지. 자, 오늘은 이미 시간도 늦었으니 돌아가 쉬도록 할까? 자네의 방은 별채 쪽에 준비해 놓으라 일러 놨으니 그곳으로 가게.”

“별채? 그곳은 소소라는 아이가 있는 곳이 아닙니까?”

“응? 그렇지. 뭔가 이상한가? 원래 그곳은 객방으로 쓰이던 곳이네. 자네는 나의 객이니 응당 그곳에 머물러도 이상치 않지.”

본래 객방으로 쓰던 곳에 사람을 들이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직계손이 머물고 있는 곳에 객을 두려고 하는 것은 참으로 기이한 이야기다.

더욱이 남자도 아닌 여아가 있는 곳에 말이다.

“좋지 않은 소문이라도 돌면 어쩌려 그러십니까?”

“아, 걱정하지 말게. 자네도 알다시피 소소에 대해 신경 쓰는 이는 이 하북진가 내에는 극히 몇 명뿐이라네. 나를 포함해서.”

진백은 피식 웃으며 신유강의 눈치를 살폈다.

소소에 대한 말이 나옴과 동시에 또 다시 눈동자가 크게 흔들린다. 그것도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르게, 분노로 활활 타오르는 눈빛이다.

‘정말이지 뭔가 있나 보군.’

진백은 그리 결론을 내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신유강에 대해서 알고 싶은 것은 아직도 많다. 그러나 아직까지 시간이 충분하니 만큼, 천천히 그의 속내를 파악할 심산이었다.

무황이라는 이름을 얻을 만한 무공, 그 사문, 그 사부는 물론이며, 진소소와의 관계 또한 말이다.

‘어쩌면 소소의 어미와 관련된 일일 수도 있겠군.’

진백은 그리 납득을 하며 손가락을 퉁겼다.

딱!

그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동시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스윽- 하는 인기척이 들렸다. 조심스레 문이 열리고 시비로 보이는 한 명의 여인이 진백과 신유강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이자를 별채로 안내하거라. 나의 객이니 실례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야.”

“알겠습니다.”

다소곳한 시비가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더니, 신유강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올 때까지 결코 머리를 들지 않았다.

신유강은 어정쩡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문밖을 향했다. 뒤에서 진백의 기묘한 시선이 느껴지긴 하였으나 애써 무시했다.

“이곳은 시비들까지 무공을 익히오?”

분명 진백의 거처로 들어갈 당시, 주위에는 시비는커녕 하인들조차 보이지 않았다. 더욱이 기척에 둔감하기는 하다지만, 밖에서 누군가 대기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했으니 아마 어딘가에 숨어 있었다는 것이 정답이다.

“호호, 공자. 잘못 아셨습니다. 시비들은 무공을 익히지 않습니다.”

“그럼 시비가 아니오?”

“저희는 태상가주님의 호위들입니다. 천검대라 하지요.”

“늙은이가 못하는 짓이 없군. 다 늙어서 당신 같은 아름다운 여인을 곁에 둔단 말이오? 괘씸하구려.”

“호호호, 정말 재미있는 소리를 하시는 분이군요, 공자.”

신유강은 내심 울컥한 표정으로 진심을 이야기하였으나, 천검대 여인은 단순한 농으로 여긴 모양이다. 그녀는 깔깔 웃음보를 터트리며, 앞장서 별채로 향했다.

“그런데 정말 대단하신가 봅니다. 저희 태상가주님께서 생면부지의 분을 객으로 받아들이다니요. 생전처음 있는 일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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