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신공-141화 (141/200)

# 141

“마음에 들고 안 들고가 아닌, 무황이란 별호 때문에 관심을 가진 것일 테지요.”

“깔깔, 정말 저희 태상가주님을 모르시는군요. 그런 것을 신경 쓰는 분이 결코 아니랍니다. 구파의 후기지수들은 물론이며, 천하십대고수, 혹은 백대고수라 하여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결코 얼굴을 보려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럼 정말로 영광스런 일이라 할 수 있겠구려.”

“물론이지요.”

여인은 피식 웃으며 걸음을 재촉했다.

정말이지 그녀가 생각해도 참으로 재미있는 일이다. 태상가주전에 은거한 뒤부터 다른 사람들을 쳐다보지 않았던 진백이, 생면부지의 인간을 객으로 들이다니.

아마 지금쯤 하북진가 안은 크나큰 소동이 벌어졌으리라.

아니나 다를까, 별채로 향하고 있는 신유강과 그녀를 향해 무수히 많은 눈빛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경계를 하는 자, 감시를 하는 자, 혹은 순수하게 이 일에 대해 궁금해하는 자. 갑작스레 모습을 드러낸 진백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게 이 하북진가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 하나같이 궁금하기 짝이 없는 듯했다.

여인은 그들의 시선을 담담하게 받으며 빠르게 걸음을 놀렸다.

“이곳입니다. 방은 원하시는 곳을 사용하시면 됩니다.”

“호오, 그것참 재미있는 말이오. 만약 내가 소소라는 여아와 같은 방을 쓰겠다 하면 어쩔 것이오?”

“호호호, 공자께서는 정말 재미있는 분이시군요. 원하신다면 얼마든지. 하지만 그런 파렴치한으로는 보이지 않는군요.”

“하하, 좋소. 그럼 이쯤에서 실례하도록 하지.”

“다시 만나 뵙길 기대하겠습니다, 공자.”

여인은 꾸벅 인사를 하며 등을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작은 미풍이 몰아치더니 어느새 그 자리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마치 흑영이나 흑호를 보는 듯한 움직임이다.

그림자에 숨어 사는 이들은 대부분 이러한가? 신유강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별채 안으로 들어섰다.

별채는 꽤나 늦은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불이 켜져 있었다. 물론 여러 방 중에서 불이 켜져 있는 곳은 한 곳뿐이었으니, 그곳에 진소소와 백리지연이 묵고 있으리라.

신유강은 성큼성큼 걸어 그곳에서 가장 가까운 방으로 들어섰다. 아마도 백리지연은 신유강이 돌아왔음을 깨달았을 테지만, 여자들끼리 수다를 떨고 있는 것인지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만 들려올 뿐이다.

신유강은 괜히 그녀들의 방해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침상에 누운 신유강은 온갖 잡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갑작스런 과거 회귀에 대한 것이었지만, 수차례 기억을 되짚어 보아도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에게 기억이 지워진 것 같은 더러운 느낌이다. 그러나 회귀신공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온 중원 천지를 다 뒤진다 하여도 신유강 본인밖에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신유강은 깊게 한숨을 내뱉으며 주섬주섬 품을 뒤져 한 장의 천을 꺼내 들었다.

특별한 문양이 새겨져 있는 그 천은 어린 시절 신유강이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지난번 하남성에서 되찾아 온 물건이다.

그것을 높게 들고 달빛에 비쳐 보니 참으로 낡았다.

“이상한 문양인데…….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고…….”

천에 새겨진 문양은 낯이 익었다.

그러나 낡아 빠진 탓인지 정확히 무엇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마치 그림을 그려 놓은 것 같기도 하고, 어떠한 문양을 새긴 것 같기도 하다.

신유강은 고개를 갸웃하며 다른 방향으로 천을 뒤집었다.

그 순간, 달빛이 창에서부터 스며들며 천을 삼켰다.

“어?”

달빛을 받은 천은 참으로 묘한 느낌을 발하기 시작했다.

문양 같은 것들이 환하게 빛을 발하기 시작하더니, 곧 무언가를 가리키는 한 장의 지도 같은 것이 천 위에 떠올랐다.

“뭐지?”

의아함을 금치 못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달빛을 받지 못한 천은 다시금 평범하기 짝이 없는 것으로 되돌아갔다.

신유강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창 앞으로 다가서 다시 한 번 달빛에 천을 들어 올렸다. 아니나 다를까, 천은 다시금 빛을 발했고, 지도와도 같은 무언가가 떠올랐다.

“……천마도해?”

천 가장 하단에 새겨져 있는 글자가 드러나는 순간, 신유강은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며 말을 잃었다.

“천마도해?!”

결코 입 밖으로 낼 말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터져 나온 것은 그만큼 놀라웠기 때문이다. 천마도해는 분명 사마강과 약속을 한 그 물건이다. 그러나 반쯤 포기하고 있었다는 것이 정답이다.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는 물건을 무슨 수를 찾는단 말인가? 세상에 나타났다고 소문이 퍼졌다면 또 몰라도, 쥐죽은 듯 숨어 있는 그것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심지어 그 천마의 기억을 온전히 가지고 있는 사마강조차 도해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애초에 도해는 비급이 있는 위치를 가리키는 물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 그 비급을 직접 가져다 놓은 천마라면, 그리고 그 기억을 온전히 이어받은 사마강이라면, 비급의 위치를 꿰뚫고 있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유강에게 찾아 달라 말을 했다.

때문에 신유강은 특별히 천마도해를 신경 쓰지 않았다. 사마강이 일종의 장난을 쳤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신유강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인상을 구겼다.

“왜 이걸 내가 가지고 있는 거지?”

천 조각은 단순히 신유강을 내 버린 부모가 준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설마하니 그것이 천마도해였다니.

너무나도 어처구니없는 사실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신유강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 지도를 빤히 바라보았다.

“사천…….”

그렇다.

지도는 정확히 사천을 가리키고 있다. 사천에서도 상당히 유명한 산으로, 악산이라는 곳이다. 신유강 또한 과거 몇 차례 가 보기도 했던 곳인지라 상당히 의외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스르륵-

그때, 모든 할 일을 끝마쳤다는 듯 천이 허망하게 부서져 사라지기 시작했다. 놀란 신유강이 그것을 잡아 보려 하였지만, 모래성과도 같이 부서져 나가는 것을 막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도대체 뭐가 뭔지…….”

신유강은 사라진 천마도해를 떠올리며 어이없다는 웃음을 흘렸다. 사천 악산에 있는 천마의 비급. 만약 과거로 돌아오지 않았다면 영영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건 필연인가? 아니면 우연인가?

우연이라 하기에는 시기가 너무 적절하다. 그렇다고 필연이라 말하기에는 이 모든 상황이 우습기 짝이 없다.

마치 누군가의 안배와도 같지 않은가.

부처님 손바닥 위에서 놀고 있는 것 같은 더러운 기분.

신유강은 아미를 찌푸리며 인상을 썼다.

이미 천마도해의 위치는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 악산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기도 해서, 잠깐 본 지도로도 충분히 어디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사천, 사천이라…….”

신유강은 같은 말을 몇 번이나 중얼거리며 침상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더러운 기분을 씻기 위해 몇 번이고 심호흡을 해 보았지만,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하남성에서 눈을 뜬 직후부터 겪은 모든 일이 하나부터 열까지 이상하게 느껴지기 시작하는 것은 결코 착각이 아니리라.

* * *

아침 일찍 일어선 신유강은 호들갑을 떠는 백리지연 때문에 인상을 쓸 수밖에 없었다. 쿵쿵쿵! 거침없이 문을 두들기며 소리를 빽빽 지르고 있는 그녀 때문에 귀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

“공자! 아니, 사부! 큰일 났다구요!”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리 소란을 피우는 거야?”

신유강이 지겹다는 표정으로 소리를 내자, 그제야 백리지연이 허겁지겁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의 얼굴에는 다급함이 묻어나 있었다.

정말로 큰일이라도 벌어진 것인지, 안절부절못하는 몰골이 조금 우스웠다. 신유강은 단잠을 깬 탓에 좋지 않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침 대낮부터 소란스럽군. 무슨 일인데 그 난리냐?”

“크, 큰일 났어요. 소, 소소…….”

“소소가 어쨌다고?”

“소, 소소가 사라졌어요.”

돌연 무슨 소리인지 전혀 알 길이 없었던 신유강은 지그시 미간을 찌푸렸다. 하북진가 안에서 소소가 사라졌다는 것인가?

“말 좀 똑바로 해 봐라.”

“그, 그게…… 어제 잘 때 말이죠, 방에서 나가는 기척을 느끼긴 했는데, 그 뒤로 돌아오지 않았어요.”

“몇 시쯤 일이지?”

“자시(子時) 정도…….”

자시(子時)라면 신유강 또한 잠을 자고 있던 때다. 약간의 술기운과 워낙 머릿속이 복잡했던 탓에, 아무 생각 없이 뻗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또 마을로 나간 건 아닌가?”

“그게…… 아닌가 봐요. 밖에 나가서 찾아보기도 했는데, 전혀 보이지가 않아요. 하북진가가 그 때문에 발칵 뒤집어졌어요. 어, 어떻게 하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무, 무슨 일이라니,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정말로…… 그냥 이야기만 하다가 잤던 건데…….”

백리지연은 죄스럽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함께 자고 있던 어린아이가 간밤에 사라졌으니 응당 책임을 느낄 법도 하다. 더욱이 그게 하북진가의 직계 여식이라면 백리세가에도 상당히 큰 부담을 질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무슨 이야기를 했냐고 묻는 거지.”

“가, 강호에 대해서…… 그냥 지금까지 제가 겪었던 일들을 이야기해 준 것뿐인데.”

“하아……. 없어진 것은?”

“아, 아무것도 없던데요.”

신유강이 골이 아프다는 듯 머리를 저었다.

진소소는 틀림없이 가출을 한다.

이 가출이 신유강이 알고 있는 그 가출이라 여길 수도 있겠지만, 어리다고는 하나 천하의 진소소다. 돈 한 푼, 갈아입을 옷 한 벌 없이 나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결국 무슨 일이 터진 것이 분명하다.

그때 누군가의 기척이 문 앞에서 느껴졌다.

“공자, 기침하셨습니까? 태상가주님께서 뵙기를 청하십니다.”

“곧 가도록 하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어제 들었던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신유강은 고개를 끄덕이며 침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갑작스럽게 터진 일에 골머리가 아픈 듯 험악하게 인상을 쓰고 있었던 탓에 백리지연은 선뜻 말을 걸지 못하는 눈치다.

“일단 나갈 채비를 해라. 어르신을 만나 뵌 후, 바로 이곳을 나가 소소를 찾을 거다.”

“아, 알겠어요.”

진백의 거처를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는 신유강은 저도 모르게 이를 갈았다. 하북진가가 발칵 뒤집혔다는 백리지연의 말과는 다르게, 생각보다 조용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곳곳에서 몇 사람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이기는 했지만, 대다수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자들이 전부다.

아마 진소소 따위 어찌 되어도 상관없다는 것이겠지.

‘개자식들…….’

신유강은 힐끗 시선을 돌려 주위를 살폈다.

생판 모르는 이들이 가득하기는 하나, 그들 중에서 꽤나 낯익은 자들도 보였다. 어린 시절의 진자명으로 보이는 아이와 두 소년, 그리고 입가에 비릿한 웃음을 짓고 있는 여인마저 보였다.

‘저들인가…….’

단박에 이번 일이 저 여인의 손에서 꾸며진 일이라는 것을 눈치챈 신유강은, 눈에 불을 켰으나 함부로 손을 쓰지는 않았다.

다만 진소소의 몸에 무슨 일이 벌어진다면, 결코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듯 매서운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볼 뿐이다.

그 눈빛 때문인지 여인은 고운 아미를 찌푸리며 등을 돌렸다.

불쾌한 표정이 역력하였으나 딱히 입을 열지는 않는다. 아마도 이번 일에 관해서 자신은 무관계인 것처럼 꾸미려는 심산이겠지.

그러나 하북진가의 사람들은 말을 하지 않을 뿐 그녀가 이번 일을 꾸민 흉수라는 짐작을 누구나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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