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2

그렇지 않다면 하북진가 안에서 어느 누가 진소소에게 손을 대겠는가? 아무리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한다 하더라도 직계는 엄연한 직계다.

“왔군.”

태상가주전.

진백은 어제 보였던 그 가벼운 미소 따위 보이지 않고, 한껏 굳은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신유강을 맞이했다.

그 기세가 어찌나 찌릿찌릿한지, 온몸에 소름이 다 돋을 지경이었다. 신유강을 안내하고 있던 여인은 저도 모르게 몸을 떨며 고개를 숙였다.

“이야기는 들었는가?”

“소소가 없어졌다고 하더군요. 헌데, 세가 전체가 쥐 죽은 듯 조용합니다. 듣기론 발칵 뒤집혔다고 하던데……?”

조롱이나 다름없는 말에 진백은 더욱 인상을 썼다.

진소소의 재능을 모르는 이는 아마 이 하북진가 내에 없을 것이다. 때문에 언젠가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불안함을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설마하니 별채에 객이 머물고 있는 도중에 일이 일어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자칫 이러한 말이 밖으로 새어 나간다면, 하북진가는 크나큰 오명을 뒤집어쓸지도 모르는 일이다.

때문에 찾는 것 또한 조심스럽다.

그 점을 파고들어, 뒤에서 실권을 잡고 있는 이부인이 진소소를 찾으려 하는 자들을 압박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말이지 면목이 없네. 설마 이런 치부를 보여 주게 될 줄이야…….”

“괜찮습니다. 대강 이럴 것이라 생각을 했으니.”

“……자네는 생각했던 것보다 이 하북진가에 대한 것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으이.”

“지금은 저보다 소소가 우선입니다. 어찌할 작정이십니까?”

“나는 본래 곧 소소를 데리고 이 세가를 나가려 했네. 허나 일이 이리될 줄이야…….”

“가주께서는 찾으려 하시지 않는 겁니까? 하북진가의 힘은 현 가주님에게서 나오는 것으로 압니다만.”

“진명 또한 지시를 내렸겠지. 그래 보여도 소소에게는 각별하니 말이네. 허나, 나는 자네가 소소를 찾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네.”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신유강의 표정은 무덤덤하기 짝이 없다.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억누르고 있는 탓에, 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누군가 그의 성질을 조금이라도 건든다면 틀림없이 폭발할 것이 분명하다.

진백 또한 그것을 느끼고 있다.

이 남자.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진소소와 깊은 연관이 있다. 그렇지 않은 척하지만, 아마도 진소소의 죽은 어미와 관련이 있는 자이리라. 그래서 이곳 하북까지 진소소를 만나러 온 것이리라. 진백은 꽤 그 추측을 확신하고 있었다.

진백은 정녕 그러한 것이냐 묻고 싶었으나 입을 닫았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지금은 소소를 찾는 것이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소소를 찾기 위해 내 호위들을 풀었네. 진명 또한 마찬가지이겠지. 그러나 그 아이가 세가로 돌아온다 한들, 제대로 된 대접을 받을 수 없을 것이네. 아마 같은 일이 또 벌어지겠지. 그것도 지금보다 더욱 심하게 말이네.”

타당한 말이다.

진소소는 진자명을 비롯한 다른 형제들에게 상당한 위협이 되는 존재다. 설령 여자라 한들, 강한 무력과 뛰어난 두뇌를 갖추고 있기만 한다면 가주 자리를 꿰차는 것이 바로 하북진가이기 때문이다.

“해서, 자네가 그 아이를 데려가 줄 수 있겠는가?”

“어르신께서 데리고 나가려 하신 것이 아닙니까?”

“아직도 그 생각은 바뀌지 않았네. 다만 소소 그 아이가 정신적으로 조금 더 성장을 할 수 있게, 자네가 몇 년 동안만 데리고 있어 달란 말이네. 지금 그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나 같은 늙은이가 아니라, 자네나 백리지연 같은 젊은이일 테니.”

진백은 씁쓸하기 짝이 없는 표정이었다.

단순히 언제든 하북진가에서 데리고 나가기만 하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 때문에 이번 일이 벌어졌다. 진소소는 누구보다 총명한 아이이니 만큼,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고, 또 왜 그런 일이 생긴 것인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자연스레 그 원망이 하북진가를 향할 테니, 진백이 내민 손을 잡기는 하겠지만, 마음속으로는 거부를 할 것이다.

그것이 지금의 진소소다.

말없이 신유강을 응시하는 진백의 표정 때문인지, 신유강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어이없다는 웃음을 지었다. 무슨 연유가 있든, 혹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든 간에, 지금 진백은 결국 타인의 손에 진소소를 맡기고 있는 것이다.

‘치가 떨리는군.’

까득-

이 가는 소리가 거침없이 들렸다.

진백이 사뭇 놀란 표정으로 신유강을 바라보았으나, 이내 무언가를 느꼈는지 말없이 시선을 떨구었다. 본인이 생각해도 지금 이 상황은 참으로 우습기 그지없었기 때문이다.

“그럼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다만, 그 아이를 누가 데리고 갔든 간에, 이번 일을 꾸민 흉수를 아는 날엔 그것이 설령 누가 되었든 결코 가만히 두지 않을 겁니다.”

“자네…….”

“만약 소소에게 어떠한 일이라도 생겼다면, 결코 하북진가 또한 무사하지 못할 겁니다.”

신유강의 선언에 진백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칠제의 필두, 천검제가 지키고 있는 이 진가를 무너트리겠다? 광오하기 그지없는 말이다.

그러나 진백은 가슴이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진가를 무너트린다는 그의 말에 화가 났기 때문이 아니다. 지금 활화산과 같이 타오르는 신유강의 눈빛을 보고 있자, 마음속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무인의 호승심이 끓어올랐기 때문이다.

이게 몇 년 만인가?

칠제의 위치에 오른 뒤로, 천마존을 만났을 때를 제외하면 그의 가슴을 뛰게 한 무인이 없었다. 무황이라는 별호를 얻었다고는 하지만 결코 자신의 상대가 안 될 것이라 여기고 있었는데, 설마하니 호승심을 끌어낼 정도라니.

진백은 숨을 고르며 마음을 다스렸다.

“……재미있는 말이긴 하나 접어 두게. 그리고 사태가 이렇게 되었으니 진명과 나 또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흉수가 밝혀진다면 우리 또한 그냥 있진 않을 것이야.”

진백 또한 상당히 화가 난 것인지 눈빛이 변했다.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던 자신에 대한 죄책감, 하나밖에 없는 손녀딸을 지키지 못한 자괴감, 그 모든 것이 진백을 덮쳤다.

그것은 아마도 가주전에서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는 진명 또한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것 또한 하북진가의 전통이라 할 있는 약육강식의 생리에 맞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진백은 끊임없는 자괴감이 몰려들자 치를 떨었다.

이게 바로 천하제일세가라 불리는 하북진가의 실체다.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손가락질하는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을 그러한 일들이다.

신유강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등을 돌려 방을 빠져나가는 그의 모습은, 흡사 과거의 천마존 그 자체와 전혀 다를 바가 없을 만큼 무시무시한 기세를 흘렸다.

第七章 마교충돌(魔敎衝突)

세상 어느 누구도 진가를 적으로 돌리려 하지 않을 것이다. 구파의 수장이라 불리는 소림조차 꺼려하는 곳이니 만큼, 진가로 직접 들어와 그 직계를 납치하려는 단체는 미친놈들이라 불려야 함이 마땅하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진소소를 납치하였는가.

제일세가의 담장을 넘을 만큼 간이 큰 이들.

사람들의 눈총을 받으며 하북진가를 나선 신유강과 백리지연은, 날카로운 눈매로 주위를 살피며 혹여 있을지 모르는 수상한 자들을 찾기 바빴다.

그러나 딱히 이렇다 할 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하긴 하북진가의 직계에게 손을 댄 이상 아직까지 이 주변에 남아 있을 리는 없다.

“저기, 공자. 어떻게 할 생각이신가요?”

평소 사부라 부르던 백리지연은 공자라 호칭을 하며 살짝 거리를 두었다. 그만큼 지금의 신유강이 거북스럽기 그지없었고, 자신이 지은 죄가 무엇인지 깨닫고 있다는 것이다.

“정보가 가장 많이 모이는 곳.”

“개방인가요?”

“뒷골목 정보만큼 신용할 수 있는 건 없지.”

“하오문?”

신유강이 고개를 끄덕이자 백리지연은 포옥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오문을 찾는 것은 일이 아니라지만, 이 하북 땅은 기실 진가의 정보망을 최고로 치기 때문이다.

진가가 그만큼 정보력을 틀어쥐고 있으니, 그곳에서 정보가 나오지 않는다면 아무리 하오문을 뒤진다 하여도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차라리 진가에 물어보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그놈들을 신용하느니 똥개 말을 듣는 게 나을 거다.”

“네에?”

놀라는 백리지연을 시큰둥한 표정으로 쳐다보던 신유강은, 저벅저벅 걸어 어느새 홍등가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아직 환한 대낮인지라 대부분 문을 닫아 놓았기에, 보이는 것은 간간히 주위를 살피고 있는 왈패들이 전부다.

신유강은 주변을 둘러보며 가장 큰 기루를 찾았다.

뒷골목에서 가장 힘을 쓰는 곳이 바로 하오문이니 만큼, 홍등가에서도 가장 큰 기루를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봐, 멈춰. 지금은 열지 않았으니 저녁에 와라.”

커다란 기루 안으로 들어서려 하자, 건장한 체격의 장년인이 신유강의 앞을 가로막았다. 대낮부터 기루를 찾는 이들이 없지는 않지만, 아무리 봐도 손님으로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자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퍽!

“컥!”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지며 장년인의 몸이 그대로 땅에 처박혔다. 엎어진 그의 복부에 가볍게 발길질을 하니, 마치 뼈가 부서지는 듯한 기괴한 소리를 내며 남자의 몸이 기루의 정문을 부쉈다.

“뭐야!?”

“어떤 새끼야!”

갑작스러운 상황에 하오문 계열 왈패들이 우르르 몰려 내려왔다. 정문이 부서지고 밖에서 그것을 지키고 있어야 할 동료가 피투성이가 된 채 나뒹굴고 있었고, 열리지 말아야 할 정문이 허망하게 부서진 것을 보며 기겁을 금치 못했다.

어느새 그들 손에는 한 자루씩 검이 들려 있었다.

“여기가 하오문 지부겠지? 지부장 나오라고 해라.”

“미친놈! 어디서 행패를 부리는 것이냐!”

신유강은 아미를 좁혔다.

진소소의 일로 머릿속이 가득한 그는 지금 눈앞이 보이는 것이 없다. 설령 상대가 무공을 익히지 못한 평범한 이들이라 하여도, 손속에 사정을 둘 만큼 여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신유강의 손이 매섭게 움직였다.

퍼퍽퍽!

회귀신공의 힘이 가미되어 있는 그 움직임은, 결코 사람의 눈으로는 쫓을 수 없는 것이다. 심지어 곁에 있는 백리지연조차 신유강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알 수가 없을 정도다.

그러나 위력은 모를 수가 없었다. 그 한 수에 대다수의 왈패가 바닥을 기는 신세가 되었다.

‘과연 반로환동에 고수라는 거지?’

백리지연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왈패들의 모습은 처참하기 그지없다. 분명 검을 빼 들었던 것으로 보였는데, 그들의 검은 고이 검집에 돌아가 있다.

한 수 한 수에, 검을 빼앗아 돌려놓고 상대를 제압한 것이다.

“고, 고수…….”

“너희 지부장을 데려오라 했다. 시간이 촉박하니 나오지 않는다면 이곳을 전부 부숴서라도 얼굴을 볼 수밖에.”

주먹을 쥔 신유강은 그야말로 악귀나찰과도 같았다.

사람의 심신을 억누르는 어마어마한 압박감이 뿜어져 나왔다. 그 기세가 신유강의 전신에서, 그리고 알 수 없는 무형의 기운이 주먹으로 모이고 있으니, 쓰러진 왈패들은 기겁할 수밖에 없다.

진심으로 신유강은 이 기루를 부수려 하고 있는 거다.

“소란스럽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로 남의 기루에서 난동을 피우시는 겁니까, 무황께선.”

촤륵!

그때 섭선을 들고 있는 한 명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미공자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화사한 외모를 가진 데다, 무공 또한 상당한지 태양혈이 뚜렷하다.

더욱이 단박에 신유강을 무황이라 꿰뚫어본 한마디에 그가 틀림없는 이곳의 지부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