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신공-143화 (143/200)

# 143

신유강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당신이 이곳 지부장인가?”

“루주라 부르십시오.”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고, 어젯밤 하북진가의 여식이 납치되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겠지.”

“후후, 글쎄요. 이 하북에서 저희는 빈껍데기에 불과하니 말입니다.”

남자는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계단을 내려와, 부서지지 않은 탁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가 슬쩍 손을 들어 올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시비들이 차를 가지고 내려왔다. 그것을 보니 이미 신유강이 찾아올 것이란 것 또한 예견한 모양이다.

“앉으시지요. 천하의 이름 높은 무황께서 찾아오셨는데, 차 한 잔 대접하지 않고 돌려보낸다면 지탄을 받을 겁니다.”

“네놈과 잡담을 할 생각은 없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오로지 하나. 대답할 수 있겠느냐, 아니면 대답하지 못하겠느냐?”

백리지연은 사뭇 놀란 표정으로 신유강과 남자를 번갈아가며 바라봤다. 신유강은 진소소를 납치해 간 이가 누구인지 저 남자가 확실히 알고 있다는 듯한 말투였다.

남자는 말로는 부정을 하나 표정은 아니었다.

결국 알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정보를 하북진가가 손에 있는 이 땅에서, 그들이 진가가 모르는 정보를 알고 있다는 것은, 하오문의 정보력이 알려진 것보다 더 대단하다는 것을 말함이다.

백리지연은 이 강호라는 곳이, 자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욱 대단한 곳이란 걸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꼈다.

‘고작해야 하오문 따위라 생각했는데…….’

그때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보를 원하시는 분이 무황이라면 응당 들어드리는 것이 마땅하겠지요. 하지만 대가가 조금 비쌉니다.”

“돈을 원하는 건가?”

“정보는 돈이지요.”

남자는 차를 마시며 웃음을 지었다.

하오문이 오랜 세월 동안 이 험난한 강호에서 살아남을 수 있던 것은 바로 돈의 힘 덕택이다. 부서져도 돈으로 다시 세우고 일어서니 쉬이 무너트릴 수가 없다.

중원의 집단 중 최약체라 평가를 받긴 하나, 오랜 시간 버티고 버티게 해 준 금력이란 무시할 수 없는 힘이다.

“돈이라면 백리세가가 대 줄 거예요.”

“호오, 백리세가가 무황과 연관이 있다, 는 말로 해석해도 되겠습니까?”

“……제 사부시니까요.”

남자는 사뭇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팔대세가 말석에 위치하고 있는 백리세가가 무황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라움이 가득한데, 사부라니? 사제지간이라는 말인가?

무황과 백리지연이 동행 중이라는 정보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관계까지는 알지 못하던 남자였다.

“조금 놀랍군요……. 아무리 봐도 연인 사이라 생각했는데 말입니다.”

퍽!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뜨며 입을 여는 그 순간, 그가 들고 있던 찻잔이 그대로 부서져 나갔다. 흠칫 몸을 떨며 인상을 찌푸리자, 싸늘하기 짝이 없는 신유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잡담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고 말했을 텐데.”

“……좋습니다. 황금 백 냥에 의뢰를 맡지요. 지불은 백리세가에 청구하겠습니다.”

황금 백 냥이라는 말에 백리지연의 안색이 시퍼렇게 변했다. 고작해야 정보 하나에 그만한 값을 치러야 한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눈치다.

‘나 죽었다……. 어떻게…….’

백리지연은 울상을 지었다.

“먼저 무황께서 원하시는 이들은 하북 서남쪽에 있는 야산에 모여 있습니다. 이쯤이지요.”

남자는 찻물을 이용하여 대강 하북의 지도를 그린 뒤, 한 곳을 점찍어 보여 주었다. 그곳은 산서로 가는 길목에 있는 곳이며, 작은 곳이라고는 하지만 산적이 많이 출몰하기로 유명하다.

“흉수는?”

“황금 오십 냥.”

“됐다. 직접 가서 확인해 보면 알겠지. 만약 이것이 거짓이라면 어떻게 할 셈인가?”

“응당 그 대가를 받아야 하겠지요. 하지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를 신용하니 이곳으로 찾아온 것이 아닙니까?”

빙그레 웃음을 짓는 남자를 보며 신유강은 인상을 썼다. 하오문의 정보를 신용할 수 있다는 것은, 흑영이나 흑호, 그리고 사마강에게 들어 알고 있다.

세상에 드러나 있는 하오문의 정보력은 표면적인 것뿐이며, 사실상 중원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기 때문이다.

신유강은 잠시 머뭇거렸으나 이내 등을 돌렸다. 한시라도 빨리 진소소를 되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조심하십시오, 무황.”

뒤에서 들려오는 남자의 말은 의미심장하기 짝이 없었다. 신유강은 저도 모르게 가던 길을 멈추곤 그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덤덤하기 짝이 없는 남자의 표정에 그저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곤 몸을 날릴 뿐이다.

“같이 가요!”

백리지연이 뒤를 따라 몸을 날렸다.

순식간에 두 사람이 사라지자 남자는 푸욱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주위에는 널브러져 있는 수하들이 가득하고, 정문은 화려하게 부서져 버렸다.

“이거이거, 엄청난 인재를 적으로 돌려 버리셨군. 그건 그렇고 일이 재미있게 돌아가는데…….”

남자는 빙그레 웃음을 지으며 촤륵 부채를 폈다.

* * *

마교의 직속 호위들을 이끌고 하북 땅을 샅샅이 뒤지고 있던 마중천은, 드디어 꼬리가 잡힌 자들의 뒤를 쫓으며 희미하게 웃음을 지었다.

마교의 절세비급이라 할 수 있는 천마신공의 위치가 기록되어 있는 천마도해, 그것을 손에 넣어 비급을 차지하려 한 대역죄인들이 머지않은 곳에 있다는 사실을 확연하게 감지하고 있었다.

“찾았느냐?”

“이쪽입니다. 헌데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갑자기 한 사람의 발자국이 무거워졌습니다.”

“무거워졌다?”

“마치 무언가를 둘러메고 있는 듯합니다.”

“호오, 그것참 재미있군. 하북 성도에 들어갔다 오더니 무언가를 가지고 나왔단 말이지?”

“그렇게 생각됩니다.”

마중천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그들이 뒤를 쫓고 있는 이들은, 자신들이 추적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저 막연하게 천마도해가 기록되어 있는 비급을 찾기 위해, 그리고 그것을 위한 자금을 벌러 다니기 바빴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바람에 쫓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려 버렸다.

“남해검문은 참으로 재미있는 놈들이로군. 구파에는 들지 못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이름 있는 녀석들인데 쫓기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니.”

“정파에서도 내놓은 놈들 따위가 저희를 알아차린다는 것이 웃기는 이야기입니다, 부교주.”

“하하, 그렇지. 자, 그럼 이놈들이 하북에서 무엇을 얻었는지 구경이나 하러 가 볼까?”

“존명!”

쩌렁쩌렁 울리는 마교인들의 음성이 산속에 울려 퍼지자, 그 기세에 놀란 새들이 푸드득 날갰짓을 하며 날아올랐다.

“하아, 하아……. 이, 이 정도까지 오면 안심이겠지.”

남해검문의 문도 열 명은 어두운 흑의를 입고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하북진가 이부인 추란의 명령에 따라 진소소를 납치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하북진가의 직계라는 생각 때문에 내공이 고갈될 때까지 달리고 또 달렸던 탓이다.

어린아이 한 사람이 들어갈 법한 커다란 보자기를 메고 있는 남자가, 힘겹게 그것을 바닥으로 내려놓으며 주저앉았다.

“이거 정말 대단한데. 그렇게 얻어맞고도 신음 한 번 흘리지 않다니……. 정말 어린애가 맞아?”

“보고 있던 내가 소름이 다 돋을 지경이더라. 어떻게 이 작은 아이를 그렇게 모질게 때릴 수 있나. 참…… 사람이 변해도 너무 변했어.”

“소문주였던 추란은 둘째치고, 그 아들들이 더 무섭더라. 동생을 때리는 표정이 아니야, 그건. 마치 철천지원수를 대하듯 하던데.”

여기저기에서 낄낄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안쓰럽다는 말을 하던 것과는 다르게, 그들의 표정은 한없이 먼 곳에서 불구경을 하는 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보자기를 내려놓았던 남자는 슬쩍 손을 뻗어 그것을 풀어헤쳤다. 처참하다는 말로는 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망가져 있는 진소소가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은 이미 퉁퉁 부어 그 형태를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였으며, 입고 있던 옷은 전부 찢겨져 알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머리카락은 뭉텅이로 잘려져 나갔다.

“쯧쯧, 먼 데로 가져가 팔라고는 해도……. 이 상태로는 얼마 못 가 죽을 것 같은데?”

“죽으라고 때린 거지. 그렇지 않으면 때리지도 않았을 거다.”

여기저기에서 쿡쿡거리는 비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감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뜨고 있는 것인지, 정신을 잃은 것인지, 정신을 차리고 있는 것인지조차 알 수 없는 진소소는, 여전히 미동도 없었다.

다만 누가 봐도 상당히 위험한 상태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쳇, 처음 내가 잡았을 때는 말이야. 어디다 숨겨 놓고 내가 키우려고 했다고? 이렇게 되지만 않았다면 말이지.”

“푸하하! 남해검문을 이끌어 갈 대사형이 그런 소리를 하십니까?”

웃고 있는 사제의 말에 남자는 미간을 찌푸리고는, 왼손에 쥐고 있던 검을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퉤, 문주가 준 이것 때문에 대사형이니 소문주라는 말을 듣기는 하지만, 사실 남해검문은 추란의 것이잖아? 내가 문주가 되어도 떵떵거릴 수 있는 게 아니라고. 그년이 꿇으라 하면 꿇어야 하고, 이런 개 같은 일을 시켜도 쥐 죽은 듯 해야 한다. 그러면 최소한 이 정도 보상은 있어야 하지 않냐?”

“그렇다고 이런 아이는 좀……. 그러다 걸리면 죽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말했잖냐. 숨겨서 키운다고, 숨겨서.”

“하하하, 안 걸릴 자신이 있으면 괜찮습니다. 대신 걸릴 땐 저는 몰랐다고 해 주십시오.”

“재수 없는 자식들.”

“하하하”

또 다시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조용히 하북진가에서 도망쳐 나와 추란이 내린 임무를 완수하였으니, 이제 한시름 놓았다는 생각에 긴장이 풀린 듯하다.

이제 하북진가의 눈에 띄지 않게 움직여 진소소를 처리하고 남해검문으로 돌아가기만 한다면, 추란이 보내 준 어마어마한 돈으로 한동안 실컷 놀 수 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즐거운 것인지 다들 입가에 걸린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어디, 뭘 잡아왔는지 우리에게도 좀 보여 주게.”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말이다.

슥슥-!

순식간에 흑의인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섬광과도 같은 빛과 날카로운 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도무지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던 남해검문도들은 돌연 전신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느끼며 숨을 삼켰다.

“어, 뭐…… 커컥!”

“피, 피가…… 크악!”

일방적인 학살이라 말해야 함이 옳을 정도로 처참한 살육이었다. 모습을 드러내는 그 순간 번뜩인 검들이, 아홉 명의 몸을 순식간에 베어 냈다.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벌어진 그 상황에, 살아남은 한 명만이 두려움에 몸을 떨며 흑의인들을 힘겹게 올려다보았다.

“우, 우, 우리가 누구인지…… 아, 알고 이런 일을 벌인 것이오!”

남자는 떨리는 목소리를 간신히 추스르며, 흑의인들을 협박하듯 말을 뱉었다. 그러나 누가 보아도 불리한 건 흑의인들이 아니라 그였다.

그러나 남자 또한 믿을 것이 있다.

자신의 뒤에 누가 있던가.

구파일방에는 들지 않지만 그에 버금가는 세력에 남해검문이 있으며, 하북진가의 권력을 틀어쥐고 있는 추란이 있다.

“남해검문 놈들이 아니냐? 네놈들 덕분에 남해에서부터 이곳까지 쫓아오느라 허리가 다 빠질 지경이다.”

마중천은 생각만 해도 이가 갈린다는 듯 인상을 쓰며 한 걸음에 남자의 앞으로 다가섰다.

“아, 알고도 이런 짓을…….”

“이미 세상에서 사라진 남해검문 따위가 무에 무섭다고? 하하하.”

“사, 사라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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