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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신공-145화 (145/200)

# 145

이윽고 시선을 돌려 죽어 있는 남해검문의 문도들을 훑어봤다. 싸늘한 시신들 사이로 덩그러니 부러져 있는 한 자루의 검이 보인다.

아마도 저곳에서 천마도해가 나온 것으로 판단이 됐다.

그렇다면 눈앞에 있는 이자들은 틀림없이 마교에서 나온 이들이리라. 목적은 천마도해의 회수였을 테니, 진소소와는 무관계다.

신유강은 아미를 찌푸렸다.

하오문을 나올 당시, 루주가 했던 말이 생각이 났다.

조심하라 하더니 이런 것이었나?

“오랜만에 하는 비무인지라 손속에 사정을 둘 수 없으니, 죽고 싶지 않다면 가진 바 모든 것을 드러내야 할 것이다.”

마중천이 가진 기세가 주위를 장악하자, 마치 코끼리에 짓눌리는 듯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지난번 손을 섞었던 우자혁이나 무현과는 판이하게 다른 힘이다.

십대고수라 불리는 진명조차 쉬이 꺾어 버릴 기세가 분명하다. 신유강은 작게 한숨을 쉬고, 주먹을 불끈 말아 쥐었다.

일이 어찌 되었든 간에 조금이라도 빨리 진소소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속전속결(速戰速決)로 이 싸움을 끝내야 한다.

쿠르르릉-!

회귀신공의 기운에 힘입어 펼쳐지는 회천공의 힘이, 마중천의 기세를 깨부수고 주위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아…….”

그리고 그것을 보고 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입을 열지 못했다.

그것은 그야말로 천재지변(天災地變)이었다.

第八章 정체불명(正體不明)

“…….”

마중천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은 심하게 부어올라 본래의 모습은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었고, 내력을 모두 소진한 탓에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했다.

“저기…… 부교주……. 괜찮으십니까?”

걱정스러워하는 수하의 목소리가 들리지만, 그것에 대답을 할 기력조차 없는지 입조차 벙긋하지 않는다. 아니, 대답할 수야 있지만 하고 싶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엔 신유강에 대한 생각만이 그득했다.

어떻게 당했던 걸까?

오십 초가 넘어가는 승부. 짧다 하면 짧은 그 사이의 기억이 마중천에겐 없다. 워낙 빨랐으며 무엇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하하…… 하하하!”

마중천은 웃기 시작했다.

마교 부교주의 위치에 올라, 그보다 강한 자는 교주 정도라고 생각했다. 중원에 이름이 드높은 칠제고 십대고수고, 상대만 하면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자신이 이렇게 난장판이 된 채 패배했다.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정말이지, 세상에는 강한 놈들이 아직도 득실득실했다.

* * *

신유강과 진소소는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퉁퉁 부은 얼굴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깔끔해진 진소소였으나, 잘려 나간 머리카락은 그대로였다.

다만 백리지연이 깔끔하게 손질을 한 탓에, 지난번 산에서 보았던 그 처량한 몰골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묻도록 하지. 누가 그랬는지 알고 있지?”

“…….”

백리지연은 한숨을 내쉬며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

벌써 사흘째.

흉수에 대해 묻는 신유강과 입을 다물고 있는 진소소. 이 두 사람의 기 싸움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물론 신유강이 짐작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북진가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으니, 진소소를 그렇게 만든 자가 누구인지 알아내는 건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일이다.

그러나 이렇게 굳이 진소소의 입을 열려는 것은, 그녀 스스로 ‘복수’라는 단어를 내뱉게 하기 위함이다.

만약 진소소가 바라기만 한다면 신유강은 능히 하북진가를 이 세상에서 지워 버릴 결심이 충분했다.

그러나 진소소는 굳게 다문 입을 열지 않는다.

“그만해요, 사부. 소소가 곤란해하잖아요.”

“왜 입을 다물고 있는 거지? 분하지도 않나?”

신유강은 백리지연의 말을 무시하며 진소소를 다그쳤다. 단 한마디만 하면, 하북진가로 쳐들어가 한바탕 뒤집어 엎어 버리는 것은 문제도 아니다.

그렇게 처참하게 당한 진소소의 얼굴을 보고 치솟은 울화가 아직까지도 쉬이 가라앉지 않았던 탓에, 단순히 흉수만 잡아 족치는 것으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신유강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정말이지 그가 알고 있던 진소소와는 판이하게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아이다.

물론 이십 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정신적으로 성숙해진 진소소와 비교한다는 것이 우스운 일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답함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기억나는 게 있다면 언제든지 말해도 좋다.”

“왜…… 그렇게 저에게 관심을 가지시는 거죠?”

진소소가 굳게 닫고 있던 입을 열었다.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눈앞에 있는 이 남자는 그녀에게 언제나 자상한 눈빛을 보냈다.

그것이 몹시 거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알지도 못하는 생면부지(生面不知)의 인간이 잘해 줄 리 없으니, 신유강 또한 무언가 그녀에게 원하는 것이 있으리라 판단했다.

질문을 하는 그녀의 눈빛에는 경계심이 서려 있었다.

신유강의 진실된 마음을 판단해 내기라도 하려는 듯 똑바로 눈동자를 직시하고 있다.

백리지연은 그것을 보며 할 말을 잃었다.

고작해야 다섯 살짜리 어린아이가 벌써부터 사람을 경계한다. 또래 아이들과 함께 세상의 어두운 면 따위 알지도 못하고 해맑게 뛰어놀아야 할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진소소는 마치 산전수전 다 겪은 노장과도 같은 표정을 지었다.

백리지연은 그게 몹시 가슴이 아팠다.

“딱히 이유는 없다. 네 처지가 마치 과거의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닮았기 때문이야.”

이윽고 들려오는 신유강의 말에 백리지연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신유강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

석무자라는 전대 거물의 제자이면서도 쉬이 그것을 입 밖으로 내려 하지 않는 데다, 이름마저 숨기며 중원을 활보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마치 유람이라도 하려는 듯이 중원을 활보하던 그의 유일한 집착은 바로 진소소였다. 지금의 신유강을 보자면 백리지연이라도 쉬이 하북행의 목적이 진소소임을 알 수 있었다.

‘둘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거지?’

의아함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아마도 진백 또한 같을 심정이리라.

아무리 이름을 얻었다고는 하나, 다른 고수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신유강을 세가에 직접 초대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백리지연은 점점 더 의아함이 들었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신유강의 눈빛은, 결코 ‘타인’을 떠올리며 하는 말이 아닌, 마치 그 ‘본인’을 앞에 두고 하는 말 같았기 때문이다.

뭔가 많이 이상하다.

분명 신유강과 진소소는 하북에서 처음 본 것이 아니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유강의 표정과 그 알 수 없는 분노는, 틀림없이 진소소 때문에 생기고 있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렇다 할 무언가를 찾을 수 없었기에, 백리지연은 더욱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을 느끼며 아미를 찌푸렸다.

“후, 저 잠시 바람 좀 쐬고 올게요.”

백리지연이 골이 아픈 듯 미간을 집으며 밖으로 나갔다. 신유강은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여전히 경계심 가득한 진소소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그러나 어쩌면 이게 당연한 일이리라.

지금 진소소에게 있어 신유강이라는 존재는, 그저 자신을 한 번 구해 준 사람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 이유도 알 수 없고, 또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니, 오히려 경계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신유강은 인상을 썼다.

“쫓아가지 않아도 되나요?”

“누구를?”

“……백리 언니를.”

“너보다 강한 녀석이니 괜찮다. 지금은 네 걱정이나 해라.”

“저는 괜찮아요. 이렇게 살아 있는걸요.”

진소소는 작은 어깨를 으쓱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기실 그녀는 이렇게 멀쩡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진소소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신의라 불리는 의원을 데리고 온다 해도, 목숨을 보장하기 힘들 정도의 부상이었던지라, 진소소 또한 자신이 죽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리 멀쩡하게 움직일 수 있는 몸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무황이 아닌 의신이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더욱 경계심이 든다.

이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 왜 하필 자신에게 이리 자상하게 대해 줄까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저희 할아버지가 저를 데리고 오라고 시켰나요?”

“글쎄, 어떨까? 돌아가고 싶은가?”

신유강의 말에 진소소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작게 고개를 저었다.

“가고 싶지 않아요.”

“그래, 그럼 가지 않아도 된다.”

단호한 한마디에 가장 놀란 것은 진소소였다.

신유강이 진백과 만남을 가졌으니 만큼, 반드시 하북진가로 데리고 돌아갈 것이라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순순히 그녀의 말에 동조를 해 주는 것을 보며 저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다.

“네가 원한다면 가지 않아도 된다. 언젠가 다시 돌아가야 할 때, 그깟 놈들 콧대를 꺾어 줄 만큼 대단한 인물이 되어 있으면 되는 거다. 너에게 무슨 수작을 부려도 간단히 부숴 버릴 수 있을 만큼 말이다.”

신유강은 이십 년 뒤의 진소소를 떠올리며 말했다.

힘없던 신유강의 정신적 지주와도 같은 그녀는, 내색은 하지 않았으나 틀림없이 신유강이 했던 말과 같은 생각으로 무공을 익혔을 것이다.

천하제일인이라 불리던 석무자의 무공을 온전히 이어받았다고는 하지만, 고작해야 열일곱 살 나이로 절정에 달하는 무위를 손에 넣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백리지연 또한 대단하다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다. 애초에 진짜 천재는 강력한 무공을 손에 넣어 강해진 신유강이 아니라, 진소소나 백리지연 같은 사람들을 말하는 것일 터다.

아마도 진소소와 백리지연은, 신유강의 머리로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수련을 강요당했을 것이 분명하다.

“소강도 그랬나요?”

진소소는 신유강의 과거를 묻는 듯했다.

그러나 신유강은 고개를 저었다.

그의 과거에는 그런 처절한 복수심 따위 떠안고 살 수 있을 만한 시간이 없었다. 거지 굴에 있을 때는 어떻게 해서든 살기 위해 발버둥을 쳤고, 그곳을 벗어나 사천으로 갔을 때에는 돈을 벌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누군가의 콧대를 짓누른다거나 혹은 복수를 한다거나 그러한 생각은 일체 가진 적이 없다. 설령 그것이 그 못돼먹은 손금운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내가 아니지.”

“그럼 사랑했다던 그분?”

“했다던이 아니라 아직도 사랑하고 있다.”

“좋은 분이셨나 보네요.”

“죽지 않았으니 그딴 말투 집어치워라. 아직도 멀쩡하게 살아 있으니까.”

“…….”

신유강은 힐끗 진소소를 보며 퉁명스레 말했다. 진소소는 자신을 보는 그 눈빛에 의아함을 느끼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 여자 분이 저와 비슷한가요?”

“많이 비슷하지. 처지도 행동도. 성격은 많이 다르긴 하지만, 그녀는 지금 충분히 자기 자신을 지킬 만큼 성장했지. 너도 필시 그렇게 될 거다.”

“……소강은 마치 저를 잘 알고 있는 듯 말을 하네요.”

“너 같은 꼬맹이 모른다.”

“…….”

진소소는 자그마한 입술에 곡선을 그리며 시선을 떨어뜨렸다. 만약 진심으로 아무런 사심 없이 대해 주고 있는 것이라면, 그것만큼 좋은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때문에 웃는다.

사람 한 명 제대로 믿지 못하는 자신의 처량함에.

“본가에서 저를 찾는 사람들은…… 없나요?”

“글쎄, 그런 이들은 보지 못했으니 안심해도 좋다.”

그 말에 진소소의 웃음이 씁쓸함을 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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