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신공-148화 (148/200)

# 148

또한 회귀신공마저 불안정하였으니, 무한회귀가 다시 한 번 반복되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신유강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쳐다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거리낄 게 없다는 듯 주저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개자식, 다시 만나기만 해 봐라.”

이십 년 전의 세상에서, 신유강은 그 남자에게 회귀신공과 회천공을 수련받았다.

회귀신공과 회천공을 완벽하게 연성하기 위해 걸린 시간은 약 십 년. 그 기간 동안 정체도 알 수 없는 남자에게 끌려 다니며 중원 곳곳을 누볐다.

덕분에 회귀신공과 회천공을 완벽하게 연성할 수 있었지만, 복날 개 맞듯 얻어터진 기억은 아직도 가슴에 사무쳐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정말이지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

회귀신공이라는 것 자체가 통하지 않는 인간 따위 말이다.

십 년이라는 세월 동안 끌려 다니며 배운 것이 만만치 않으니, 구배를 올리지 않기로 하였대도 사제지연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신유강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인상을 썼다.

사부라 부르며 따라다니기는 했지만,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응? 여기서 뭐 해?”

작게 한숨을 토해내며 자리에서 일어서려 할 때, 돌연 들려오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십여 년 동안 그 얼굴조차 구경하지 못했던 당소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신유강은 두 눈을 반짝 빛내며 저도 모르게 왈칵 당소혜를 껴안았다.

“악! 뭐, 뭐 하는 짓이야!”

깜짝 놀란 당소혜가 짐짓 반항을 해 보았지만, 더욱 강하게 끌어안는 신유강 때문에 곧 포기했다.

그러나 신유강은 당소혜가 어떠한 기분인지 신경 쓰지 않고 그저 해맑게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반갑다! 정말로 반갑다. 하하하!”

당소혜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적응을 못하고, 어리벙벙한 시선을 보내며 잔뜩 얼굴을 붉혔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어서, 더욱 창피해져 고개마저 떨궜다.

“떠, 떨어져…….”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서야 신유강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못내 아쉬웠으나, 주위 사람들의 시선도 있고 해서 조심스레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표정만큼은 바뀌지 않는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우를 본 것처럼, 기쁘기 그지없는 얼굴로 당소혜를 보고 있었다.

“하하, 내가 너를 반가워할 날이 있다니 참 이상한 일이다. 어쨌든 정말 반갑다.”

자그마한 당소혜의 손을 부여잡고 붕붕- 흔들더니, 곧 제멋대로 손을 풀고는 어린아이처럼 총총걸음으로 장원을 향해 달려갔다.

“뭐, 뭐야, 대체?”

갑작스런 상황에 대처할 수 없었던 당소혜는 그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신유강의 등을 가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돌아왔다는 것을 실감했다.

사흘간의 무한회귀를 끊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두근거리는 마음이 쉬이 가라앉지 않는다.

거칠게 장원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익숙하지만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한쪽에는 도우겸이 하품을 하며 마당을 쓸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흑영과 흑호가 쌍심지를 켜고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나 신유강의 눈은 오로지 한 곳에 머물렀다.

툇마루에 앉아 청랑과 도란도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한, 진소소에게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는 그 아름다운 모습으로 웃음 짓고 있는 것을 보니, 저도 모르게 안심이 되었다.

‘하하하하…….’

신유강은 속으로 웃었다.

혹여나 미래가 뒤틀리지는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으나, 아무래도 그러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왜 그래요, 유강? 무슨 일 있나요?”

그를 발견한 진소소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상큼하기 짝이 없는 표정인지라 신유강은 저도 모르게 두근거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서 시선을 돌렸다.

단지 시선이 마주쳤을 뿐인데, 오랫동안 그녀를 보지 못한 탓에 가슴이 마구 뛰었다.

신유강은 부드럽게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윽고 태연하게 말을 건넸다.

이십 년 전으로 돌아갔다는 사실도, 그곳에서 십 년 넘게 괴롭힘에 가까운 수련을 당한 사실도 잊은 듯, 조금 전 헤어졌다 다시 만난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아니, 그보다 준비는 다 된 건가?”

“하북으로 갈 준비 말이죠? 물론이에요. 아직 이것저것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이삼 일 안에 출발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생긋 웃는 진소소의 얼굴에 신유강은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안아 주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기 위해 온갖 힘을 들이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진소소는 아마도 깨닫지 못한 듯했다.

“이삼 일이라……. 마음의 준비는 다 된 건고?”

신유강의 의미심장한 질문에 진소소는 힐끗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 보았을 때부터 느꼈던 것인데, 뭔가 느낌이 좀 이상하다.

오늘 아침에 보았을 때보다 분위기는 물론이며 눈빛마저 차분해져 있다. 마치 산전수전 다 겪은 노장을 보는 듯하기도 하고, 평소의 신유강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묘한 분위기다.

더욱이 마음의 준비라는 말을 하고 있는 신유강의 표정은 어딘가 슬퍼 보이기도 했다. 진소소는 의아함이 들었으나 곧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에요. 하북진가로 돌아간다고는 생각지 못했지만, 기왕 이렇게 된 거 끝을 봐야 하지 않겠어요?”

“하하, 그래야 소소지.”

신유강은 여전히 당찬 그녀의 대답을 들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날처럼 수줍고 힘없는 진소소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당당하게 과거와 마주치려는 모습이다.

이것이야말로 ‘신유강’이 만났던 ‘진소소’다.

“오늘 이상해요, 유강. 무슨 일 있었나요? 어째 조금 키도 커진 것 같고…… 약간 늙어 보이기도 하고……. 착각인가?”

“응, 분명히 착각이니까 신경 쓰지 마.”

신유강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진소소의 착각에 지나지 않지만, 괜스레 찔리는 것이 있기 때문인지 저도 모르게 강한 부정을 한 것이다.

진소소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다. 단순히 농담으로 한 말이었는데, 생각보다 날카로운 대답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진소소는 서둘러 말을 돌렸다.

“그, 그러고 보니 객잔에 들렀어요?”

“객잔?”

“그래요, 오늘 객잔 일은 유강에게 맡기기로 했잖아요. 저는 이것저것 할 일이 있어서 나가지 못한다고도 분명히 말했는데…….”

신유강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에게 있어 이 시점은 삼십 년 만의 귀환이었다. 더욱이 이십 년 전으로 돌아갔을 당시 부분적으로 기억이 날아가 버린 바람에, 무엇 때문에 장원을 나섰는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신유강은 이제야 장원을 나선 이유를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객잔이라면 장삼이 맡아서 하고 있을 텐데…….”

“하북으로 가기 전까지는 그래도 도와는 줘야죠.”

진소소가 고운 아미를 찌푸리며 말하자, 신유강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표정을 보고 있으면, 따라 주지 않을 수가 없다.

신유강은 오늘 하루만큼은 장원에서 느긋하게 쉬고 싶었으나, 진소소의 표정을 보아하니 객잔으로 가지 않는다면 사달이 나도 크게 날 것 같았다.

“소혜가 먼저 가 있으니 마음껏 부려먹어요.”

“하하, 좋은 생각이로군.”

신유강은 고개를 끄덕이며 등을 돌렸다.

장원을 떠나는 발걸음이 무겁기 그지없으나, 지금 이곳의 삶이 바로 신유강의 진짜 삶이다. 이십 년 전 소강이라는 인물은 그저 거짓에 지나지 않으니, 지금의 삶에 충실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던 신유강은 피식 웃었다.

어느새 장원을 벗어나 길을 타고 걷는다.

회천공과 회귀신공을 연마하기 위해 남자의 뒤를 쫓아다니며 온갖 괴롭힘을 당했을 때보다 백배 천배는 낫다.

생각하니 또 다시 이가 갈리는지 신유강은 인상을 썼다.

그러나 이십 년 전 삶이 딱히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쨌든 그는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진소소의 뒤를 받쳐 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내었기 때문이다.

물론 실컷 고생을 했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으나, 만약 되돌아가지 않았다면 어린 신유강의 삶이나 진소소의 삶이 뒤틀려 어긋났었을지도 모른다.

남자는 말했다.

이 세상에 일어나는 일 중 우연은 없다.

그렇다면 신유강이 과거로 돌아간 것 역시 우연이 아닌 필연일지도 모른다. 어린 진소소를 구해 주기 위해, 혹은 그 남자를 만나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하남에서 사천을 향했던 일도, 천운객잔의 점소이가 된 것도, 혹은 기연고서점이나 진소소를 만났던 것도, 그리고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일도 전부 필연이라 생각하니 절로 어이없다는 미소가 지어진다.

신유강은 되도 않는 소리를 다시 한 번 머릿속에 떠올리며 툴툴거렸다.

신유강이 나간 곳을 빤히 바라보고 있던 진소소는 떨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물론 평소에도 신유강을 바라볼 때 가슴이 뛰거나 혹은 홍조가 드리워진 적은 있었지만, 오늘은 그것이 유난히 심하다.

칠 년이라는 세월 동안 신유강은 무수히 많이 변했다.

점소이에서 객잔의 주인으로, 사천에서 유명한 갑부로, 그리고 어느샌가 권룡이라 불리며 중원의 이름 높은 무인이 되었다.

그때마다 마치 새로운 사람을 보는 것처럼 변해 가긴 했으나, 오늘은 기이하게도 다른 누군가와 겹쳐 보였다. 그래서 더더욱 가슴이 뛰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십 년 전, 그녀는 인생에서 가장 참혹한 일을 겪었다. 소강이라 불리던 무황과 검후 백리지연이 아니었다면, 틀림없이 죽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그 두 사람을 잊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오늘 신유강의 모습에서 진소소는 당시의 무황을 떠올렸다.

“왜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아함을 품어 보았지만, 어째서 그런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고작해야 다섯 살 어린아이의 기억이니 만큼, 무황이나 검후의 생김새는 자세히는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그 무황의 기세, 그 느낌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기에, 지금 보았던 신유강이 그 당시의 무황과 비슷하다 여긴 것이다.

진소소는 끙 하며 신음을 삼켰다.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무슨 일 있나요?”

“후후,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옛날 기억이 좀 나서 그래.”

“그러고 보니 장주님의 기세가 달라졌죠?”

청랑은 자신이 느꼈던 것을 그대로 입에 담았다.

장원을 나갔을 때와 들어왔을 때의 신유강이 판이하게 다른 기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느꼈기 때문이다.

감이 뛰어난 그녀처럼 진소소 또한 눈치를 챘을 것이다.

“그, 그렇지?”

“마치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았어요. 혹시 기연이라도 얻은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죠.”

진소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대로다.

무황과 닮았다고 느낀 것은 바로 신유강이 가지고 있는 그 기세 때문이다. 아침에 산책을 하기 위해 나간다고 했을 때와 다르게, 몇 시진 만에 어마어마한 기연이라도 만난 듯 기세가 달라졌다.

“……유강의 재능이라면 단시간에 벽을 뚫는 것도 가능할지도.”

진소소는 그리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을 들은 청랑은 알게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진소소가 모를 리가 없다. 분명 신유강의 재능은 뛰어나지만 그것은 범인들과 비교하여 뛰어나다는 것이지, 천재들과 비교한다면 뒤떨어져도 한참 뒤떨어진다.

그 예가 바로 눈앞에 있다.

비록 진소소의 진정한 실력을 보지는 못하였으나, 청랑은 신유강보다 진소소를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 장원에 머물고 있는 사마강 또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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