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9
그러니 그 짧은 시간에 벽을 뚫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설령 영약을 먹었다 해도 말이다.
“역시 아니지?”
배시시 진소소가 어색하게 웃었다.
청랑이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 저도 모르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하긴 그녀 또한 신유강의 재능을 높이 사긴 하지만, 단시간에 벽을 뚫는다는 것은 불가능함을 알고 있었다.
더욱이 신유강이 익히고 있는 것은 현선자의 무공.
천마신공과 막상막하라 불리는 절대의 신공이니 만큼, 벽을 뚫는 자체에 한평생이 걸릴지도 모른다.
“허허, 사람이란 본디 원치 않은 연을 얻을 때가 있지.”
그때, 어느 순간 모습을 드러낸 것인지 사마강이 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아무런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던 탓에, 백리지연과 청랑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럼 정말로 기연을 얻었다는 건가요? 그 짧은 시간에?”
“그럴지도 모르고 아닐 수도 있지. 허나, 나는 전자라 생각한다.”
사마강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신유강이 장원으로 들어오는 그 순간부터, 그의 기세를 눈치채지 못할 사마강이 아니다.
강해졌다.
그것도 놀랄 만큼 말이다.
신유강이 가지고 있는 회귀신공의 힘은 더욱 부드러워졌으며, 회천공마저 완성한 것인지 과거의 현선자를 떠올리게 하는 기세가 무릇 피어올랐다.
신유강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사마강은 상상치도 못한 어마어마한 기연을 얻었다는 사실은 명확해 보였다.
그렇지 않다면 저 변화를 설명할 수가 없다.
“뭐 생각나는 거라도 있느냐?”
“그게…… 마치 무황님을 떠올리게 만드는 느낌이었어요.”
“호오, 그렇군. 너는 그 무황을 만난 적이 있었다 했지.”
진소소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사마강은 무황의 대한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다. 그러나 달리 해 줄 수 있는 말은 없기에 그저 배시시 웃었다.
애초에 무황의 곁에서 도망치지 않았던가.
“그럼 저놈이 무황을 만나 기연을 얻었나 보구나.”
“사천에 그분이 있다는 건가요?”
“글쎄, 잘 모르겠구나……. 우습지도 않은 놈들 세 명이 있기는 하다만, 그 외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으니…….”
사마강이 나이답지 않게 끙 신음을 삼키는 것을 보며 진소소는 더욱 어색하게 웃음 지었다.
아마도 우습지도 않은 녀석 세 명이란 것은, 무관일 때문에 사천에 와 있는 칠제를 말하는 것일 터다.
이곳에서 무관까지는 족히 이각은 달려야 할 정도의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마강은 쉬이 그 기운들을 감지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이지 괴물이라는 말조차 충분하지 못한 인간이다.
“안타깝군. 만나 보았으면 했는데……. 그럼 칠제라는 놈들 구경이나 하러 가 볼까?”
“그러지 마세요. 할아버지께서 나섰다간 눈에 핏대를 세우고 덤벼들 거예요.”
진소소는 장난스레 말했다.
정파의 칠제가 모여 있는 만큼, 만약 사마강과 만나 그 정체를 파악한다면 단순히 웃는 이야기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무림맹주라는 직위를 가지고 있는 무현은 체면 때문이라도 죽자 살자 덤벼들 테고, 다른 칠제들 또한 사마강의 목숨을 노리며 손을 쓸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사마강을 숨겨 주었던 이 장원을 비롯해 신유강이 가지고 있는 모든 사업체들이 마교의 분타였다는 소문이 날 테고, 정도 무림의 공적이 되어 이 사천을 떠나야 할 것이다.
진소소는 그러한 상황 따위 바라지 않는다.
“물론 잘 알고 있지.”
사마강은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아는 것인지,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일가친척 하나 없는 그에게 있어 진소소는 마치 친손녀와도 같은 존재였다.
어떨 때는 사마강만큼이나 속이 시커멓고, 어떨 때는 새하얀 백지보다 더 하얗다.
그것이 사마강의 마음을 더욱 움직였다.
“그건 그렇고, 하북 쪽은 어떠할 것 같으냐? 잘 해결할 것 같으냐?”
사마강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신유강을 더욱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마련한 무대이니 만큼, 화려하기 짝이 없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아마도 온 중원의 눈이 그곳으로 쏠리리라.
그러나 그 기대를 굳이 입에 담지는 않는다. 괜한 소리를 할 필요도 없으며, 그 정도 일조차 해결하지 못한다면 현선자의 전인으로서 더 이상 가치가 없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그때는…….’
사마강은 눈을 빛냈다.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고 봐요. 저도 예전 같지 않고…….”
“허허, 네 아비와 싸워도 이길 자신이 있느냐?”
“그, 그건 좀…….”
진명은 천하십대고수의 한 축이다.
신유강과 막상막하의 대결을 펼쳤다고는 하지만, 가진 바 모든 것을 보여 준 것은 아니다. 또한 진소소가 선선운현무를 익혔다고는 하지만, 신유강처럼 진명과 손을 섞을 만큼 완벽하지는 못하다.
진소소가 어색하게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숙이자, 사마강은 다시 한 번 소소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입을 열었다.
“좋다, 이 노부가 사흘 동안 특별히 네 무공을 봐 주도록 하지.”
“네에?”
지금까지 사마강은 신유강을 제외하면 그 누구의 무공도 봐 주지 않았다. 그것이 천마와 현선자라는 특수한 관계가 있기 때문임을 진소소가 알지 못할 리가 없다.
그래서 무공을 봐준다는 말에 진소소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것이다.
“싫다 하면 어쩔 수 없다만…….”
“정말로 가르쳐 주신다면 최선을 다해 배우겠어요.”
두 주먹을 불끈 쥔 진소소의 눈빛이 결심으로 굳건했다. 선선운현무는 물론이고, 기연고서점에서 읽었지만 익히지 못했던 그 무공마저 사마강이라면 해답을 내어 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허허, 좋은 기세로구나. 좋다, 따라오거라.”
진소소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평생토록 자신이 돌봐 주어야 할 것이라 생각했던 신유강은 권룡이라는 별호를 얻고 승승장구(乘勝長驅)하고 있다.
그만큼 격차가 벌어진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진소소는 더욱 눈빛을 빛냈다.
멈춰 서 있는 것은 이곳으로 끝이다. 신유강은 어느새 그 이름을 걸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으니, 그녀 또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신유강의 옆에 나란히 설 수 있어야 하리라.
한편 청랑은 진소소가 사마강과 함께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머금었다. 진소소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 표정에서 빤히 드러나고 있으니, 저도 모르게 마음이 따스해진 것이다.
‘하지만 기분이 좋지는 않아.’
그렇다.
사마강은 틀림없이 좋은 사람이다.
신유강의 조부라 말하기는 했으나, 사실은 그게 아니라는 것을 청랑 또한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모종의 사연이 있는 것 같은데, 도통 말을 해 주려 하지 않으니 괜스레 뿔이 날 지경이다.
허나 지금 그러한 것은 문제가 아니다.
신유강과 진소소가 하북행을 결정지은 이후부터, 돌연 사마강의 곁에 있던 그림자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장원 주변을 감시하듯 있던 시선들마저 사라졌다.
‘아마도 저분의 수하들일 것이 분명한데…….’
시기가 굉장히 묘하다.
어찌하여 하북행을 결정짓는 그 순간부터, 모든 이들이 갑작스레 사라질 수 있단 말인가. 마치 무언가를 준비하기 위해 먼저 하북으로 올라간 것 같은 느낌이지 않은가.
청랑은 신음을 삼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무래도 먼저 하북의 상황을 살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누군가의 명령을 받고 움직이는 것이 아닌, 자기 자신의 의지대로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어디로 가는 거지?”
“…….”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빤히 보인다. 뭔가 느낌이 이상하나?”
어느새 나타난 도우겸이 히죽 웃으며 물었다.
그는 율초언이나 다른 그림자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것 같지만, 심상치 않은 청랑의 분위기는 읽었다.
한쪽에서는 흑영과 흑호가 그 둘을 재미있다는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재미있는 일이라면 나도 좀 껴 주었으면 한다. 청소만 하고 있었더니 삭신이 쑤시거든. 그래, 어디를 가는 거지?”
“……하북.”
“하하하! 좋아, 좋아. 뭔가 있어 보이는군. 기다려라. 곧 준비를 할 테니.”
도우겸은 오랜만에 기분 좋은 표정을 지으며 발을 놀렸다. 아무래도 기나긴 여정이 될 것 같으니, 여비와 짐을 챙기려는 것이다.
* * *
객잔에 들어선 신유강은 저도 모르게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에 그치지 않고, 마치 시선을 받지 않으려는 듯 슬그머니 고개를 돌린 채 객잔 구석으로 슬금슬금 이동했다.
“저기 봐, 검후님이셔.”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건 처음인데, 정말 대단한 미인이로군.”
“한때 중원의 꽃이라 불렸으니 당연하지.”
곳곳에서 사람들의 소란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오니 더욱더 기가 죽은 듯 고개를 숙였다. 그 상태로 힐끔 눈알을 굴려 객잔 이 층을 살피니, 다소곳하게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는 백리지연이 보였다.
‘만약 무관에 입관이라도 했으면 큰일 날 뻔했잖아?’
절로 식은땀이 줄줄이 맺힌다.
이십 년이 지났다고는 하지만, 그녀가 신유강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보증은 없다. 더욱이 지금의 얼굴은 그때와 비교하여 변한 것이 없으니, 척 보기만 해도 한 방에 걸린다.
신유강은 결코 그러한 사태를 원치 않았다.
“유강아, 저 사람이 칠제 중 일인이라는 검후인가 봐. 우와, 난 처음 봤어.”
장삼이 놀라워하며 입을 열었다.
두 눈이 초롱초롱한 것이, 검후라는 별호를 가진 백리지연이 자신이 만든 요리를 먹고 있다는 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듯한 눈치다.
그러나 반대로 신유강은 죽을 지경이었다.
그녀는 신유강의 본명을 알고 있는 여인이다. 때문에 권룡 신유강이라는 소문을 듣지 못할 리가 없을 것이다. 더욱이 무관에 참석하지 않고 되레 사고를 쳤으니 그 이름이 귀에 들어갔을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그럼 왜 이제까지 확인을 하러 오지 않았을까.
신유강은 그것이 가장 궁금했다.
“진짜 예쁘다. 소소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것 같은데?”
“아줌마잖냐, 이놈아. 나이가 사십 줄이 다 되어 간단다.”
“하, 진짜? 내공이 높으면 젊음을 유지한다는데, 얼마나 높아야 저렇게 될까?”
의미 없는 말에 신유강은 한숨을 토했다.
제발 부탁이니까 빨리 사라져 주었으면 한다.
반면 백리지연은 조금 전부터 객잔 안이 웅성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고운 아미를 찌푸렸다. 어디를 가도 주목을 받는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건 생각보다 더하다.
더욱이 무관과 상당히 가까운 곳에 있는 객잔이라 그런지, 참으로 많은 무인들이 몰려 와 있었다. 후기지수들도 간간히 보여 말을 걸기 위해 다가오려는 기색이었다.
그때마다 심기가 불편하다는 표정을 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도대체가, 칠제라는 이름 따위 그저 허울에 지나지 않거늘…….’
백리지연은 한숨을 토해 냈다.
화산도 백리세가도 아닌 무황의 제자라는 이유로 지금까지 활동을 해 온 것은 다름 아닌 그를 찾기 위한 일종의 방편에 지나지 않았다.
혹여 그 말을 듣고 찾아와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는 참혹했다.
백리지연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고 보니 사천에 그와 같은 이름인 사람이 있잖아?’
조사를 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 객잔의 주인이며, 무림맹주의 무관패를 엿과 바꿔먹은 인간. 권룡이라 불리며 이름은 신유강이라 했으니 응당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하다.
때문에 조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