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5
눈치가 빠르고 총명하단 것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것과 별개로 신유강 본인을 믿지 못한다는 것에 상당한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믿지 못한다고는 말하지 않았어요. 다만 지금 유강은 확실히 저를 속이고 있어요.”
날카롭기 그지없는 한마디에 신유강은 신음을 흘렸다.
속이는 것이 분명히 있기는 하나, 그것은 천마비급과 전혀 다른 이야기다.
딱히 말을 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긴 하나, 매섭기 그지없는 눈빛에 그녀를 보고 있자니 신유강은 저도 모르게 울컥했다.
“나는 소소를 속이지 않았어. 그리고 말과는 달리 정말로 나를 못 믿는 거 같은데?”
“……쉽게 믿을 수 없다는 건 인정해요.”
“결국 믿을 수 없는 놈이라는 말이로군.”
실수했다는 것을 진소소는 인지한다.
그러나 변명하지 않는 것은, 그가 딱히 틀린 소리를 하지 않았다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신유강은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건 유강 혼자뿐일 거예요. 처음 흑영과 흑호의 일이 시작된 후부터 유강은 점점 변하기 시작했어요. 그것도 나쁜 쪽으로 말이죠.”
정면으로 신유강의 눈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눈동자는 차갑기 그지없다.
단순히 화가 났을 때 보이던 그 표정이 아닌, 마치 적을 보는 듯한 눈빛이었기에 신유강은 저도 모르게 반박했다.
“무슨 소리를 하려 하는지 전혀 이해가 안 된다. 나는 결코 변하지 않았어.”
약간 언성을 높이는 신유강의 모습에 진소소는 꽤 놀란 눈빛이었다.
지금까지 오랫동안 그를 보아 왔으나 이렇게 자신을 대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진소소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트집을 잡았을 뿐이다.
하루라도 빨리 진가의 일을 해결하고 싶었던 그녀에게 있어 지금 이 상황은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것을 야기했다 여겨지는 신유강에게 톡 쏘는 한 마디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금세 서로 언성이 높아지며 골이 생겼다.
두 사람이 있는 방 안의 공기가 떨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진심을 보여 준 적이 없었던 진소소의 전신 내력이 매섭게 퍼지며 주변을 장악하기 시작한 것이다.
“뭐하는 거지?”
“아무것도.”
“그런 투기를 발하면서 아무것도 아니라 말하는 건가? 마치 나와 한번 붙어 보자는 식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데 말이지.”
신유강의 싸늘한 말투에 진소소가 아미를 좁혔다.
기세를 뿜은 것은 지금 신유강의 행동과 말투가 좋지 않았기에, 그녀 나름대로 화가 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받아들이는 신유강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듯했다.
때문에 더더욱 화가 났다.
비록 신유강에게 묶여 있는 처지라고는 하지만 그녀 또한 무인 중 한 명이며, 석무자에게 선선운현무를 전수받은 전인이다.
“……딱히 그런 생각은 한 적 없지만, 유강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좋아요.”
신유강의 낯빛이 굳었다.
생전 처음으로 그녀와 말싸움을 하고 있는 이 상황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진소소의 말투를 듣고 있자니 괜스레 거슬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그리고 지금 이 상황, 유강은 분명 비급에 대해 알고 있었을 거라 저는 믿어요. 어떠한 방식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단순히 비급을 되찾아 오기만 하면 될 것을 일부러 공개했죠. 그리고 지금 그 결과, 악산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있어요.”
“그게 나 때문이라고?”
“진실을 말해 보세요.”
대답을 강요하는 그녀의 말투가 차갑다.
신유강은 오기가 생겼는지 더욱 험악하게 표정을 구기며 이를 갈았다.
“싫다면?”
“힘으로라도 들어야겠어요. 저 많은 사람이 왜 유강, 당신의 손에서 놀아나야 하는지 말이죠.”
“소소……. 무리라는 것은 잘 알 텐데?”
“나를 얕보지 말아요, 신유강. 당신만큼은 아니더라도 나 역시 선선운현무를 익히고 있어요.”
신유강은 미간을 좁혔다.
선선운현무는 이미 신유강 또한 잘 알고 있는 무공이다.
어떤 방식으로 부딪치던 간에 진소소가 상대가 될 리 만무하다.
작게 한숨을 내쉰 신유강이 회귀신공의 기운을 끌어 올렸다.
진소소는 무슨 소리를 해도 듣지 않을 것이다.
그녀를 결국 힘으로 제압해야 한다는 사실이 꺼림칙하기는 하나, 지금 이 상황에선 그것이 최선인 듯하다.
그러나 무언가 기이하다.
선선운현무의 기수식을 사용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진소소의 기수식은 신유강이 처음 보는 것이다.
더욱이 이 느낌.
전신을 찌릿찌릿하고 찌르는 이 감각은 무언가 색다르다.
일보를 내디뎌야 할 보법은 아직까지 움직이지 않았고, 주먹을 뻗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검을 치켜들고 있다.
그녀가 들고 있는 검날은 마치 연검인 양 작은 기세에도 흔들리고 있었다.
“유강, 이게 마지막이에요. 당신과 제가 손을 섞는다면…… 그 뒤의 일은 알고 계시겠죠?”
“…….”
최후의 경고나 다름없는 말이 들려왔다.
아마도 손을 섞는다면 어떠한 일이 있어도 그녀는 검을 놓지 않을 것이다.
그 말인즉, 둘 중 하나가 죽거나 심각한 중상을 입어야 끝이 날 테고, 자연스레 둘 사이의 관계는 파국을 맞을 것이다.
“제가 하는 말이 거짓 같다면 언제든지 오세요.”
진소소는 손을 작게 떨면서도 당당하게 입을 열었다.
신유강은 모르겠으나 지금의 진소소는 이미 죽음을 각오했다.
결코 떨어질 수 없는 운명.
그러나 그 상대가 잘못된 길을 가려 한다면, 목숨을 걸어서라도 막는 것이 그녀의 일이다.
진소소의 인생은 곧 신유강의 인생이기 때문이다.
하여 그녀는 멈추지 않는다.
만약 이 자리에서 손을 섞는다면 그녀는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회귀신공이라는 특수한 힘을 이용해 치유를 한다 해도 또다시 검을 들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만큼 그녀의 의지는 확고하다.
“어이, 장주. 손님이 왔다.”
그때, 밖에서 돌연 목소리가 들리며 둘 사이에 흐르는 기세를 여지없이 깨트려 버렸다.
진소소는 아미를 찌푸렸고, 신유강은 조금이나마 안도한 기색을 보이며 입을 열었다.
“손님?”
“그래, 손님 말이다. 그것도 엄청난 거물이 나타났지.”
“어느 정도 거물을 말하는 거지? 칠제라도 찾아왔나?”
어색한 분위기, 그리고 묘한 정적이 흐르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서든 벗어나기 위함인지 신유강은 실소를 머금으며 물었다.
애초에 현 상황에서 칠제 같은 전력이 쉽게 움직일 리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들려오는 목소리는 전혀 뜻하지 않은 소식을 전했다.
“그래, 검후가 직접 장주를 찾아왔다.”
검후라는 말에 신유강은 와락 인상을 구겼다.
하필이면 전혀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나타났으니 기분이 좋을 리 없는 것이다.
슬그머니 진소소의 눈치를 살피자, 그녀 또한 상당히 놀란 눈치가 역력하다.
워낙 오래전 인연이라 그녀를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으나, 소소에게 있어서 검후는 상당히 특별한 존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 아닌, 한 명의 무인으로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검후를 동경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먼저 두 손을 든 것은 다름 아닌 진소소다.
그녀는 검을 회수하면서도 여전히 차가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어서 가 봐요. 검후님께서 오셨다잖아요.”
둘 사이에 갑작스레 벌어진 간격은 쉬이 좁혀지지 않을 듯싶다.
한기가 스며든 것 같은 말투에 신유강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도무림이란 곳에서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이를 뽑으라 한다면 틀림없이 백리지연을 꼽을 것이다.
물론 우자혁과 무현 또한 있었지만, 그들을 본 것은 그야말로 짧은 순간이었으니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았다.
때문에 조금만 조심하면 된다.
그러나 검후는 아니다.
가장 오랫동안 신유강을 봐 왔던 인물 중 하나인 데다, 무엇 하나 가르친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황의 제자라 밝히고 다니는 것을 보면, 틀림없이 신유강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무언가 사정이 있어 보이는 신유강의 표정을 읽으면서도 진소소는 굳이 그것을 파고들려 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와 어떠한 말도 섞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 보세요.”
한기가 풀풀 넘치는 말을 툭 내뱉은 진소소가 여지없이 등을 돌려 방을 나가 버렸다.
가만히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던 신유강은 인상을 찌푸리며 객방을 향해 걸었다.
걷는 걸음 하나하나가 천근만근 무겁기 짝이 없다.
딱히 검후의 일 때문이 아닌, 진소소와 생전 처음으로 의견을 부딪혔다는 것에 심적 부담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신유강은 다른 때보다 더욱 좋지 않은 표정으로 거칠게 객방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
“…….”
안에는 백리지연이 과거와는 다른 성숙한 모습으로 다소곳하게 앉아 있었다. 신유강을 기다리고 있는 그 시간마저 재미가 있는 것인지, 입가에는 미소마저 걸고 있다.
방문이 열리고 신유강이 모습을 드러내자, 백리지연은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눈을 굴려 힐끗 그를 바라봤다.
‘같아.’
같다.
과거와 비교해도 조금도 다르지 않은 그 모습은, 무황 본인이라는 것을 확연하게 증명하고 있었다.
아무리 발?한다 해도 백리지연은 신유강이 무황, 본인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인지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백리지연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이로군요.”
“천하의 검후께서 저 같은 미천한 후배를 기억하고 계시다니 참으로 영광입니다.”
신유강은 그녀를 모르는 척 완벽하게 시치미를 떼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딱히 거기에 신경 쓰지 않는다. 이유인즉, 백리지연은 처음부터 신유강이 이럴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유강은 태연한 표정으로 검후의 정면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래, 천하의 칠제 중 일인, 검후께서 이 미천한 후배를 어찌 찾아오신 겁니까?”
자신을 한없이 낮추며 말하는 투에 백리지연은 고소를 머금으며 웃었다. 예나 지금이나 저 삐딱하기 짝이 없는 말투는 변함이 없다.
“제자를 오랜만에 보면서 한다는 말이 고작 그것인가요?”
“……제자라 함은 누구를 가리키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시치미를 떼시려는 건가요? 그럴 생각이시면 거짓말을 할 때 그 눈동자가 떨리는 버릇부터 어떻게 해야 하지 않겠어요?”
신유강은 와락 인상을 썼다.
짧은 만남인 데다 워낙 오래전 일이었으니 신유강의 버릇을 기억하고 있을 리가 만무하다 생각했었는데, 아무래도 아닌 모양이었다..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백리지연은 아직까지도 신유강의 버릇은 물론, 그의 행동거지 일체를 모조리 기억하고 있다.
그만큼 특별했다는 것이다.
“버릇이라 하는 것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보기에 사람을 착각하신 것 같습니다.”
“이십 년 전 나타난 무황. 그와 함께 돌연 사라진 하북진가의 여식. 그런데 이곳에 그 여식과 당신이 있습니다. 이름도 같고 생김도 똑같고……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요?”
“…….”
백리지연은 마치 궁지에 몰린 쥐를 바라보고 있는 고양이와 같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잡아먹을 수 있다는 듯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