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7
“유강이 어렸을 때 말인가요? 지금까지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었잖아요.”
진소소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신유강의 과거에 대해 상당히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그녀이지만, 진소소를 알기 전, 기연고서점에 들어서기 전, 단 한 번도 무림인들과 엮었다는 사실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이십 년 전…….”
결국 한숨을 내쉰 신유강은 어렵사리 모든 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참으로 기이하기 짝이 없고, 우습기 그지없는 일이며, 믿을 수 없는 말이기는 했으나, 그녀가 결코 의심하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한 더 이상 무언가를 숨기고 싶지 않았다.
신유강의 이야기는 약 한 시진이 넘도록 계속되었다.
처음 회귀신공이 뒤틀려 과거로 돌아갔을 당시.
백리지연과 첫 만남.
하북행과 무황이라는 별호.
그 모든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진소소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만큼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자, 잠깐만요. 그럼 유강이 그 무황이란 소리예요?”
“그래.”
“어떻게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가 있는 건가요?”
기가 차고 어이가 없어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을 정도다.
이미 회귀신공에 대한 능력을 들어 얼마나 대단한 무공인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설마 과거로 회귀를 하다니?
기연고서점이 아무리 대단하다고는 하나, 이건 그야말로 신이라 칭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그, 글쎄?”
“나를 구해 준 것도 유강이고, 그 무황이라는 사람도 유강이고…….”
진소소는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 애를 썼다.
이건 결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힘이 아니다.
때문에 더더욱 머릿속이 복잡하다.
진소소는 힘겹게 시선을 들어 올려 신유강을 바라봤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내가 알고 있는 유강, 당신이 맞나요?”
시간을 회귀한다.
그 말인즉, 그녀가 알고 있는 ‘신유강’은 다른 곳으로 사라졌다 해도 지금보다 ‘미래의 신유강’이 다시금 과거로 돌아와, 그녀가 알고 있던 ‘신유강’의 행세를 할 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
진소소는 꺼림칙한 표정이 역력하다.
신유강을 바라보고 있는 눈빛이 여지없이 흔들렸다. 가늘게 몸을 떨고 있는 것은 그것에 대한 두려움이 분명하다.
“안심해.”
확신하지 못하지만 확신하듯 말한다.
신유강 또한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때문에 걱정하지 말라는 듯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고, 진소소는 그것을 받아들이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유강, 돌려 말하지 않겠어요. 만약 정말로 저를 위한다면 그 무공을 폐하세요.”
“무공을 폐하라고?”
“사람은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것을 가져야 해요. 유강이 가지고 있는 그 무공은 너무나도 위험천만해요.”
“그렇지만 딱히 나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지는 않아. 이것이 없었더라면 죽어도 몇 번을 더 죽었을 테니까.”
“그거야 그렇지만…….”
“걱정하지 마. 그리고 혹시라도 이상한 일이 일어날 것 같다면 소소의 말을 따를 테니까.”
신유강은 그녀를 안심시키며 말했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았다.
무공을 폐한다는 것은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버린다는 것과 같다.
더욱이 이 회귀신공이라는 것.
‘부술 수나 있을까?’
답을 낸다면 부정적이다.
만약 이 무공을 부수려 한다면 회천공은 물론, 회귀신공보다 더욱 뛰어난 무공을 익혀야 할 판국이다.
그러나 현 무림에 그러한 것이 존재하리라 생각지 않았다.
중원의 무학은 상당히 오래전부터 내려온다. 천 년, 천오백 년, 어쩌면 그 이상까지.
당연히 사람들 또한 수많은 무공을 익혔음이 분명하고, 모래알처럼 많은 무인들이 있는 만큼, 모래알과 같이 수많은 비급들도 존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강이라 이름 붙은 무공은 단 두개뿐이다.
천마신공, 그리고 회귀신공.
신유강은 회천공보다 회귀신공을 더욱 우위에 두었고, 이 무공을 부술 수 있는 것은 결코 세상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 * *
사마강은 언제나 정점에 오르기를 원했던 자다.
기연고서점에서 천마신공을 얻고 난 뒤부터 지금까지 그는 정점에 서 왔으며, 가히 마신(魔神)이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인간이다.
그는 장원 툇마루에 앉아 느긋한 한때를 보내고 있다.
수하인 율초언을 하북으로 보내고 난 뒤에도, 신유강의 뒤에서 일을 꾸미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대해 전혀 신경 쓰는 눈치가 아니다.
심지어 천마비급이 나타났음에도 말이다.
“오늘따라 조용하군.”
장원은 조용하기 짝이 없었다.
칠제의 일인이라 불리는 검후가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으니 아마도 그 일 때문일 것이다.
덕분에 진소소와 신유강은 물론 도우겸과 청랑마저 없어, 장원은 평소의 그 활기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래, 나를 찾아온 용무가 무엇인가?”
아무도 없는 허공에 대고 그리 말하는 것은 지금 그의 주위에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짐작케 했다.
아니나 다를까, 사마강의 입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검은 인영 하나가 조심스레 몸을 드러냈다.
기세가 남다른 복면인이다.
천하의 사마강조차 놀라워할 정도이니, 눈앞에 있는 이 복면인이 얼마나 대단한지 말해 무엇하랴?
그를 쳐다보며 사마강은 저도 모르게 와락 주먹을 쥐었다.
흥건한 땀에 젖어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지, 그저 형형한 눈빛으로 눈앞에 있는 자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누구인지 묻지 않았느냐?”
“천마존 사마강…… 맞지?”
“허허, 버릇없는 녀석이로군.”
사마강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천하의 천마존을 눈앞에 두고 그 누가 있어 저런 식으로 말할 수 있을까?
칠제?
우자혁?
그것도 아니라면 마교의 부교주?
결코 아니다.
그들조차 사마강을 눈앞에 둔다면 절로 고개를 숙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남자는 퉁명스레, 그리고 자신감 가득한 눈빛을 빛내고 있었다.
사마강이 흥미를 가진 것은 바로 그것 때문이다.
“그래. 자네였던가? 계속해서 유강, 그 아이 주위를 맴돌고 있었던 것이.”
“……느끼고 있었나?”
“허허, 감히 이 천마존의 이목을 속일 수 있는 존재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인가?”
흑의 복면인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 딴에는 조심한다고 했으나, 사마강의 기감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좋은 듯하다.
“그래, 노부를 찾아온 연유라도 있는가?”
“신유강.”
짧은 단답이나 모든 것이 해명된다.
아마도 신유강에 대한 일을 말하려는 것일 터다.
사마강은 더욱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머금었다.
“……재미있군그래. 한데 그 아이에게는 무슨 용무인가. 이래봬도 이곳에선 내 친손자와 같은 놈이라네.”
제대로 된 대답이 아닐 시에는 언제라도 갈가리 찢어 죽일 듯, 사마강의 험악한 기세가 넘실넘실 흐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복면인은 조금 전부터 전혀 다르지 않다.
눈살조차 찌푸리지 않는다.
“과거의 회천공을 다시 한 번 보고 싶은가?”
“으음…… 그런 것을 자네에게 말할 필요가 있는가?”
“……내가 당신에게 그것을 겪게 해 주지.”
“하하하하!”
사마강의 표정이 묘하게 바뀌었다.
꽤 재미있다는 듯 호쾌한 웃음마저 보였다.
이윽고 그의 웃음이 멈췄다. 흑의 복면인을 바라보고 있는 눈빛은 살기가 짙게 배여 공기가 얼어붙을 정도로 차갑다.
“그 일이라면 내가 알아서 할 것이네. 그 녀석은 앞으로 한 발 정도 더 나아가기만 하면 되니 말이네.”
“하북의 일 말인가? 안타깝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무슨 소리인가.”
사마강의 물음에 남자는 그 어떠한 표정조차 보이지 않은 채 품속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 그의 앞에 던졌다.
그것은 호패(號牌)와도 같은 물건이다.
“율초언과 그 수하들은 이미 죽었다.”
“허…… 이거 참.”
사마강은 정녕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에 꽤 충격을 받은 모양새다. 더욱이 율초언이라면 아끼고 아낀 수하 중 한 명이었으니 그의 죽음에 동요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가다듬는다.
“……자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마강의 질문에 남자는 슬쩍 손을 뻗어 복면을 벗어 던졌다.
그 순간, 사마강은 눈을 부릅뜨며 그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천천히 익숙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회귀신공의 회수.”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가?”
“내가 언제 허튼소리를 내뱉은 적이 있었소?”
“당최 이해가 되지 않는군……. 자네는…….”
“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우시오 천마존. 나를 도울 것인지 아닌지 그것만 결정하시오.”
사마강은 히죽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잘 알 수는 없었으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다.
그것은 바로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려 한다는 거다.
“좋네.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이 있네.”
“잘 알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 당신은 그 무공을 뼛속 깊이 새기게 될 것이니.”
도발적이란 말로는 그 남자의 표정을 전부 설명할 수가 없다.
사마강은 오랜만에 투지에 타오르는 눈빛을 빛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윽고 두 사람이 일보(一步)를 내딛는 순간, 자욱하게 흙먼지가 튀어 오르며 있어야 할 이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 * *
“궈…….”
“권룡이다.”
악산의 웅성거림이 끊이지 않는다.
마교와 천무황성에 밀리고 있는 정파 쪽 진영에서 갑작스레 나타난 신유강, 진소소의 모습을 바라보며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칠제가 있다고 하나 나서지 않는 이들은 전투에 쓸모가 없다.
그러나 한창 중원에서 그 이름을 떨치고 있는 권룡이 자신들과 함께 최전선에서 싸워 준다면, 사기가 오르는 것도 당연하지 않은가.
죽은 동료들과 다친 이들 탓에 큰 소리를 내지는 못하나 사람들은 하나같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침을 꿀꺽 삼켰다.
그만큼 권룡 신유강이란 이름이 가지는 위세는 대단하다.
무적이라고까지 칭송받았던 율초언을 상대하여 이겼으니 그야말로 영웅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더욱이 은연중에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십대고수 중 일인인 진명과도 손을 섞었다는 말까지 들리고 있었다. 자연스레 존경의 눈빛이 섞이는 건 당연한 일이다.
신유강은 그런 사람들의 시선을 무덤덤하게 받아넘기며 무림맹 수뇌부들이 있는 막사를 향하고 있었다.
그의 옆으로는 진소소가 다소곳한 모습으로 따라오고 있었는데, 사람들의 시선 때문인지 상당히 부담스런 표정이었다.
“저 여인이 하북진가의 여식이라며?”
“그래, 집을 나갔다는 소문이 돌기는 했지만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용을 잡았군. 천덕꾸러기였다던데.”
“저 정도 얼굴이면 그럴 만도 하지. 그런데 팽가의 장남과 약혼했다는 소문도 들리던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리 없다.
진소소에 대한 소문은 지난번 진자명 사태로 파다하게 퍼진 탓인지 모르는 이가 없었다.
덕분에 기분이 상한 신유강이 슬쩍 시선을 돌려 매서운 눈빛으로 그들을 쏘아보자, 하나같이 찔끔 입을 다물었다.
“신경 쓰지 않아요.”
“…….”
진소소는 여전히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그러나 움켜쥔 주먹을 보고 있자니, 분한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