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신공-158화 (158/200)

# 158

한쪽에는 낭인들과 중소문파 사람들이 작게 소곤거리고, 다른 한쪽에선 팔대세가와 구파의 후기지수들이 날카로운 눈빛을 보냈다.

특히 신유강의 신강행 당시, 객잔에서 그녀를 한참이나 깔봤던 여인들의 눈매는 사납다는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

진소소보다 든든한 배경이 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있었는데 안을 들여다 보니, 애초에 함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였던 것이다.

당시 그 자리에서 하북진가의 이름을 꺼냈다면 그녀는 틀림없이 진소소에게 어떠한 말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하북진가가 대단한 곳이기 때문이다.

진소소는 그러한 여인들의 시선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겼다. 질시(嫉視)와 멸시(蔑視)가 가득 찬 눈빛에 몸이 움츠러들 만도 하건만, 걸음을 내걷는 발걸음은 당당하다.

“이곳입니다.”

두 사람을 안내하던 이가 입을 열자 그제야 정신이 든 진소소와 신유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막사 안으로 들어섰다.

과연 수뇌부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 낯익은 이들이 꽤 보인다.

신유강이 들어서자마자 인상을 구기는 제갈가후는 물론, 여전히 표정은 없으나 무덤덤한 눈동자를 빛내는 진명.

그리고 가장 상석에 앉아 있는 이들이 칠제 중 셋.

좌측에 백리지연, 중앙에는 무현과 그 오른쪽으로 부맹주인 청허가 있었다.

신유강은 천천히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서 포권을 취했다.

다른 한쪽으론 구파일방의 명망 높은 고수들이 앉아 있다. 그들 중 청성의 윤환과 아미의 옥진이 보였기에, 신유강은 제일 먼저 눈인사를 하곤 어느새 무현과 청허의 앞에 서서 재차 포권을 취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신유강이라 합니다.”

“진소소라 합니다.”

간단한 소개이긴 하나, 누구 하나 귀담아듣지 않는 자가 없다. 특히 하북팽가의 팽자웅은 이리 많은 고수들 앞에서 기죽지 않는 신유강이 꽤 재미있다는 듯 실소마저 흘렸다.

이어 시선을 돌려 진소소를 바라보곤 한 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진가와 혼약을 한 것이 결코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는 걸 다시 한 번 증명시켜 준다. 비록 기이한 소문이 돌기는 했지만, 그 정도 치부로는 팽가와 진가의 혼약을 파기할 수 없다.

누가 소곤거리든 간에 이것은 팽가의 힘이 더욱 강해지기 위한 초석이기 때문이다.

물론 찝찝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어차피 꼭두각시가 아니던가?

정실이라 하나 정실이 아니다.

이미 모든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아들과 상의를 마친 그다.

“잘 왔네, 중원 무림에 그 위명을 울리고 있는 권룡을 만나게 되어 나 또한 매우 기쁘다네.”

아무것도 모르는 청허가 껄껄거리며 웃음을 지었다.

진가와 팽가, 그리고 신유강 사이의 일을 모를 리가 없으나 어차피 무당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다.

그저 클 가능성이 있는 무인과 연을 만들어 놓는 것이 그가 해야 할 일이다. 후학을 위해서 말이다.

“그리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허허, 정말 대단하네. 그 나이의 백대고수 반열에 올랐다니…… 듣자니 저기 있는 진명과 손을 섞었다던데……?”

은근슬쩍 떠볼 생각은 애초에 없었던 것인지 청허는 직설적으로 궁금한 것을 물었다.

기실 권룡이라는 이름이 과거 무황처럼 과장되었다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 이 상황에서, 그것이 사실이라면 어마어마한 파장을 일으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여 많은 이들이 눈을 빛내며 신유강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목소리가 들리면서 그들은 원하는 대답을 들을 수가 없었다.

“권룡, 권룡이라……. 기세가 남다르긴 하군. 그런데 자네, 혹시 본 맹주를 만난 적이 있는가?”

무현은 처음 신유강이 막사로 들어올 때부터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언젠가 한 번 보았던 것 같은 인상 때문이었고, 기이하게도 가슴속에서 울컥하며 치솟아 오르는 무언가를 느끼기도 했다.

‘무엇 때문인가?’

어린 나이로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만큼 성장할 것 같은 인재라서?

아니, 그러한 것이 아니다.

신유강의 얼굴을 보며 치솟는 것은 다름 아닌 살기(殺氣)였기 때문이다.

‘그럼 적이었던가?’

무현은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다.

칠제에 오르기 전까지 많은 적들을 만나 보았지만 그들은 신유강과는 전혀 다른 이들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나름 무림에서 명성을 얻은 자이지 않은가.

“지나가다 얼굴을 본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저는 오늘 맹주님을 처음 뵙습니다.”

신유강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표정은 물론 말투 하나하나 공손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다 하여 무현에게 겁을 먹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듯, 그를 바라보고 있는 시선은 당당하기 짝이 없다.

때문인지 무현은 무언가를 떠올리는 듯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웃음을 터트렸다. 지금 막 번뜩 든 생각이 우습지도 않은 농과 같기 때문이다.

“그래, 그렇군. 그저 어디선가 한 번 본 듯하기에 이야기를 해 본 것이니 신경 쓰지 말게나.”

신유강은 대답 없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무현의 곁에 있던 백리지연은 무엇이 그리 우스운지 실소를 터트렸으나, 지금 이 상황에서 그녀를 신경 쓰는 이들은 극히 드물었다.

“어쨌든 이곳에 왔다는 것은, 무림맹을 위해 일을 하겠다는 말과 같다 생각해도 되겠는가?”

진소소와 백리지연의 시선이 신유강을 향해 돌아갔다.

말인즉 권룡을 수족처럼 부리겠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때문에 그녀들은 신유강의 입에서 어떠한 말이 나올지 상당히 불안한 모습이다.

어디까지나 목적은 흡혈광마였으니 무림맹의 일까지 신경 쓰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흡혈광마가 이곳으로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렇다네.”

“저는 그를 잡고 싶은 것뿐이지, 천마비급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허면 우리 무림맹을 도와 사도 무리를 물리치지 않겠다…… 그런 말인가?”

“정도이니 사도이니 그런 개념은 저에게 없습니다. 무인이면 다 같은 무인인 것이 분명한데, 어찌 개념을 나눈단 말입니까?”

“허…….”

어찌 보면 타당한 소리이나, 지금 신유강은 명백하게 돌려서 거절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그리 좋지만은 않다.

이미 학관 일 탓에 권룡이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무림맹주의 눈에 찍혔다는 사실은 부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파인으로서 그 생각은 아주 위험한 것이라네.”

청허마저 무현을 거들며 나섰다.

마교, 천무황성, 사도련, 무림맹.

이들은 오로지 하나의 개념에 사로잡혀 있으며, 그것을 부정하는 자들은 배척하여 물어뜯고 밟아 놓는다. 그것이 바로 지금까지 정파를 비롯한 그들의 세력이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인 셈이다.

그러나 신유강은 그것을 부정한다.

보는 눈이 고울 리가 없다.

“자네와 혼인을 할 여인은 하북진가의 여식이라 들었네.”

무현은 눈썹을 찌푸리면서 진소소를 끌어들었다.

권룡을 내세워 사기를 올리고, 그 힘을 이용해 상대 세력을 찍어 누르려 했던 계획이 무산되려 했기에, 가만히 있는 진소소를 끌어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전혀 예기치 않은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것이오? 저기 있는 저 아이는 우리 팽가와 혼약을 한 사이요. 괜한 소문을 만들지 마시오.”

팽자웅은 참지 못하겠다는 듯 말했으나,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것은 콧방귀 뀌는 소리다. 어렸을 적 이야기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가 없으며, 지금은 이미 권룡에게 몸을 더럽혔다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런 아이를 정실로?

팔대세가의 이름에 먹칠을 할 이야기다.

더욱이 이 일의 당사자인 진소소와 진명은 굳게 입을 다물고 있었기 때문에, 팽자웅의 말보다는 신유강과 진소소의 사이를 인정하는 분위기다.

“소소는 이번 일과 관계가 없습니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끝내도록 하지요. 다만 지금 이해하셔야 할 것은, 저는 무림맹을 돕기 위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면 흡혈광마 한 명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흡혈광마가 과거에 비해 대단하다고는 하지만, 결국 무림맹 척살대에 의해 죽임을 당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사실이다.

그러한 것을 모를 만큼 멍청하지 않을 터인데, 신유강은 반드시 자신의 손으로 매듭을 짓겠다는 투가 역력했다.

무현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네가 가진 생각이 무엇인지 알겠네. 싫다는 이를 억지로 붙잡아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니…… 어쩔 수 없지.”

혀를 쯧쯧 차며 명백하게 불쾌한 표정을 짓는다.

학관 사건은 묻어 둘 수 있다고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은 쉬이 잊힐 것 같지가 않다. 이리 많은 무림맹 수뇌부들 앞에서 무현의 권위에 도전한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그럼 이렇게 하죠. 신 소협은 저와 함께 움직이는 것으로 말이죠. 흡혈광마를 잡아야 하는 건 무림맹 또한 마찬가지. 저와 함께 움직인다면 권룡의 이름도 더 오를 것이고, 맹주님 체면도 살 것 같네요.”

무림맹주의 체면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이나 딱히 나쁜 제안은 아니다.

어찌 되었든 칠제 중 일인인 검후와 움직인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파급력이 있는 데다, 권룡이 정도무림을 위해 움직인다는 인상을 심어 줄 수도 있다.

물론 무현은 그리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으나 청허는 껄껄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검후가 함께라면 결국 무림맹을 돕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좋은 생각이네. 그리하도록 하지. 그런데 자네는 괜찮은 겐가? 그리 좋은 말이 오가지 않을 것이네.”

신유강과 백리지연은 엄연히 위치가 다르다.

백대고수에 들었다고는 하지만, 이제 갓 고수 반열에 오른 신유강과 검후의 차이는 상상 이상으로 큰 것이다. 신유강의 이름이 오를 것은 분명하나 검후에게 좋지 않은 소문, 혹은 권룡을 두둔한다는 말이 오갈지도 모른다.

“제가 그런 거 신경 쓰는 여자로 보이시나요?”

“허허, 그것도 그렇지.”

청허는 곤란하기 짝이 없는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칠제 중 일인이기도 하지만 그녀는 백리세가와 화산을 등에 업은 인물.

그러나 나이가 사십이 다 되어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혼인을 하지 않은 처녀다.

때문에 온갖 소문과 추측이 돌고 있는 상황인데, 권룡에게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으니 은연중 걱정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백리지연 또한 그러한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닌지라 청허를 향해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럼 저와 신 소협, 그리고 진 소저는 중앙을 향하도록 하죠. 이쪽에서 밀지 않는다면, 영원히 앞으로 나가지 못할 테니까요.”

백리지연의 생각을 모르지 않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흡혈광마를 쫓는다는 것은 결국 비동이 있는 쪽을 향해 움직여야 한다는 말과 같아 결국 권룡을 이용하겠다는 것이다.

때문에 무현 또한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 * *

악산 무림맹 전진 막사.

이곳은 현재 아비규환이나 다름없다.

부상자들이 속출하고 있으며, 시도 때도 없이 죽은 이들의 시체가 오가고 있었다.

천마비급 하나에 얼마나 많은 무인들이 목숨을 걸고 있는지 잘 알려 주는 모습이다.

신유강은 그것을 바라보며 눈썹을 찌푸렸다.

고작 하나의 비급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연을 쫓는 것이 무림인들의 천성이라고는 하나 이건 심해도 너무 심했다.

“찾아봐야 소용없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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