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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신공-160화 (160/200)

# 160

권룡이 홀로 산을 올라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불안감이 가득했던 이들이 있다.

바로 검후를 바라보며 쫓아왔던 후기지수들이었는데, 그녀가 함께한다고 하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그럼 무슨 일이 벌어지거나, 흡혈광마를 찾았다면 그 폭죽을 터트리도록.”

“호호, 이쪽은 괜찮으니 그쪽이나 조심하세요.”

웃음을 지으며 진소소의 등을 떠미는 백리지연을 바라보며 신유강은 아미를 찌푸렸다. 이윽고 수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산 아래쪽으로 향하는 것을 보며 신유강은 한숨을 토했다.

“빨리 오해를 풀지 않으면 말라 죽겠군 이거.”

산을 올라가며 한숨을 토해 내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아직까지도 이번 일이 신유강이 꾸민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진소소의 냉담한 태도는 전혀 바뀌지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더 심해졌다고나 할까?

신유강은 벅벅 머리를 긁적이며 몸을 움직였다.

가볍게 한 발을 내딛는 것으로 그의 몸이 수십 장 이상 뛰어올랐다. 한 마리의 비조마냥 나무와 나무 사이를 가르고 나아갔으며, 그 어떠한 소리조차 들리지 않아 사람이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눈으로 보지 않으면 느끼지 못할 정도이다.

어마어마한 신법이 아닐 수 없다.

“……역시 이쪽이었나? 아니면 나를 끌어들이려는 심산인가?”

신유강은 피식 웃음을 지으며 걸음을 멈추었다.

주변 곳곳에는 핏자국이 가득하다. 물론 그뿐만이 아니라 한가득 시체들 또한 쌓여 있다. 어떻게 당한 것인지 처참하게 사지육신이 잘려 나간 그들의 모습은 역겹기 그지없었으며, 단순히 전쟁이 일어나 부딪힌 것이 아닌, 한 사람의 손속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는 수법들이 가득하다.

신유강은 웃음을 머금으며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천무황성이로군.”

죽은 이들은 틀림없이 천무황성의 소속.

그리고 이들을 죽인 것은 흡혈광마가 분명하다.

신유강은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발자국들을 찾기 시작했다.

워낙 많은 이들이 도망을 치며 남긴 발자국 때문에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으나, 무공을 펼친 호야의 발자국을 찾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이건가?”

슬쩍 손을 뻗어 그것을 확인해 보려는 그 찰나, 곳곳에서 사람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주위에는 수십여 명이나 되는 이들이 신유강을 둘러쌌다.

신유강은 아미를 찌푸렸다.

복면을 쓰고 있는 이들이다.

그러나 척 보아도 기세가 대단하여, 평범한 무인이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증명시켜 주고 있었으며, 그들 중 거대한 도(刀)를 들고 있는 몇 몇은 날카로운 살기마저 뿜고 있다.

“이것이 네놈이 벌인 일이더냐!”

쩌렁쩌렁-!

들려오는 목소리에 강한 힘이 실려 있었다. 천무황성의 무인이라는 것을 증명시켜 주듯, 그곳에 문양이 새겨진 자수를 입고 있는 이들은 강한 살기를 내뿜으며 신유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라 한다면 믿어 주시겠소?”

“헛소리!”

신유강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애초에 믿지 않을 것이라 여기긴 하였으나, 그것이 현실로 다가오니 괜스레 억울한 것이다. 짐짓 짧은 한숨과 더불어 머리를 긁적이자, 딱! 하며 손가락 퉁기는 소리가 들렸다.

수십여 명의 인물들이 신유강의 주위를 빙빙 돌기 시작한다. 몸놀림이 잽싼 이들인지라, 정신을 없을 정도다.

“이야기도 들어 보지 않고 손을 쓰려 하다니 너무하지 않소이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지? 네놈이 우리의 적이란 사실은 이미 넘칠 정도로 잘 알고 있는데.”

애초에 이 꼴을 만들어 놓은 것이 눈앞에 있는 이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은 충분히 알고 있다. 하나, 천무황성의 무인이 아니니 결론은 한 가지밖에 없다.

무림맹의 고수.

그것도 적진 깊숙이 들어올 수 있는 절대고수란 소리다.

“살아서 돌아갈 생각은 버리거라 놈!”

남자의 말에 신유강은 푹 한숨을 쉬었다.

“이쪽이 함정이었군.”

* * *

한편 산 아래로 내려가던 이들은 우뚝 걸음을 멈추고 저마다 검을 뽑아 들었다. 수풀이 들썩이는 작은 소리가 들렸던 탓인지, 저마다 긴장한 표정이 역력하였다.

백리지연은 기감을 넓혀 주위를 둘러보았다.

칠제의 일인이라 불리는 검후, 그녀의 기감을 속이고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무인은 고작해야 열 명이 되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에, 누군가 있다면 반드시 걸릴 것이다.

그러나 묘하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묘하군.”

작은 동물이 움직인 것이라면 응당 그 동물이 움직임이 느껴져야 할 텐데, 그것마저 없으니만큼 백리지연은 기이함을 느껴야 했다.

그때 참으로 역한 냄새가 풍겨져 왔다.

“이건…… 무슨 냄새지?”

고약하기 짝이 없는 냄새에 인상을 찌푸리며 시선을 돌리자, 수풀이 가득한 곳에서부터 어마어마한 양의 물 같이 것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바닥을 적시고 후기지수들이 있는 곳까지 흘러 내려왔다.

“기름이에요!”

진소소의 외침이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다.

화르륵!

또한 거대한 불길이 치솟아 오른 것도 바로 그때다.

치솟기 시작한 화마는 어마어마하단 말로는 전부 설명할 수 없다.

순식간에 주변을 집어삼키며 활활 타오른 그것들은 결코 인간의 힘으로는 끌 수 없을 것이다.

“으아아악!”

“아아악!”

기름을 뒤집어쓴 후기지수들이 소리를 내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그러나 흥건하게 기름에 적셔져 있는 바닥은 오히려 독이 되면 독이 되었지, 그들을 구해 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산을 내려가!”

백리지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섣불리 움직일 수 있는 이들은 없다. 이 정도 치솟은 화마를 뚫고 간다는 것은, 상당 수준의 무인이 아니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차앙-!

그때 백리지연이 발검했다.

삽시간에 몰려든 검풍이, 치솟은 불길 사이로 길을 만들었다.

“죽고 싶지 않으면 당장 뛰거라!”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뜨거운 열기에 후기지수들은 당황하면서도 백리지연이 만들어 준 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 그곳밖에 없으니만큼 살기 위해 몸을 날리는 것이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지는 것이 인생의 연속이다.

불길을 빠져나간 이들의 신음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퍼걱퍼걱-!

“커억!”

“크아악!”

백리지연이 돌연 들려오는 소리에 깜짝 놀라 시선을 돌리자, 마치 불길을 뚫고 나온 이들을 기다렸다는 듯 한 소년이 서 있었다.

그 소년은 용서 없이 손을 움직여 그들의 단전을 꿰뚫었다.

“이,이놈!”

검후라는 이름이 괜히 얻어진 것이 아니다.

그녀의 검에는 시퍼런 검강이 맺혔고, 그것을 휘두르자 푸른 기운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며 흡혈광마를 노렸다.

그러나 그녀가 검을 휘둘렀을 때에는 이미 잠식한 불길 탓에 흡혈광마의 모습을 확인할 수 없었고, 그 어떤 신음조차 들리지 않았다.

“검후님! 흡혈광마가 틀림없습니다! 빌어먹을! 권룡 그 자식이 우릴 속인 겁니다!”

가장 위험한 길을 택한 것은 신유강이 분명하나, 지금 이 상황을 본다면 가장 안전한 길을 택한 것이 신유강이다.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 닥치니 본래 그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후기지수들의 입에서 험담이 터졌다.

“지금은 다른 것보다 살아서 나갈 생각을 하는 게 좋겠구나.”

백리지연은 인간의 천성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같은 또래에 높은 경지에 오른 무인을 바라보며 시기하는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지금 당장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내공으로 몸을 보호하며 그녀는 오랫동안 견딜 수 있다고는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후기지수들이 타 죽는 것은 시간문제다.

‘어떻게 된 거지? 왜 기척이…….’

백리지연은 정신이 없었다.

칠제라는 위치에 올라와 있는 그녀가, 고작해야 흡혈광마의 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진법…….”

그때 진소소의 입을 열렸다.

주위는 평범해 보이기 짝이 없으나 약간이나마 기이한 기류가 흐른다. 이것은 틀림없이 자연 그대로 모습이라 보일 수도 있지만, 일종에 진에 갇혀 있는 셈이다.

“진법?! 이게 진법이란 말이냐!”

“예, 단순한 눈속임이 아닌 수준 높은 이들조차 속일 수 있는 그런 고절한 진법인 것 같아요.”

“그런 걸 저 아이가 만들었단 말인가?”

전혀 믿어지지 않는 말에 백리지연은 얼떨떨한 모습이다. 고작해야 십대 초중반의 모습을 하고 있는 소년이 그런 절진을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천마의 절진!”

천마비급이 숨겨져 있는 악산이니만큼 그곳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진법이 깔려져 있다는 건 당연한 것이다.

흡혈광마는 그것을 이용하여 진소소와 백리지연을 함정에 빠트렸다.

“그렇다면 이 근처에 천마비동이 있다는 말이 되는데.”

“지금 그런 걸 생각하고 있을 틈이 없는 것 같네요.”

진소소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주위를 둘러봤다. 수많은 후기지수들이 기침을 해 대며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가까스로 내공으로 몸으로 보호하고 있다고는 하나, 올라오는 기름 타는 냄새와 검은 연기, 살을 녹일 것 같은 화마에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뭐지?!”

그때, 허공에서 기이한 물건들이 백리지연과 그들을 향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본 순간, 진소소는 경악을 했다.

저것을 어찌 있을 수 있겠는가!

“벽력탄!”

쾅쾅쾅쾅!

“으아아악!”

주위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이 따로 없다.

엄청난 양의 벽력탄이 사방팔방에서 터지기 시작하자 불길에 휩싸여 있던 이들의 사지는 여지없이 날아갔다.

피가 터지고 육편이 날아다닌다.

이십여 명이 넘게 있었던 후기지수들은 고통에 찬 괴성을 내지르다 이내 잠잠해졌다. 장내는 불길에 휩싸이며 사람타는 역겨운 냄새가 자욱하게 퍼져 나가고 있었다.

“하아, 하아…….”

진소소는 거칠게 숨을 내쉬며 몸을 움직였다.

마치 소소를 지키려 듯, 백리지연이 소소의 위에 엎어져 있었는데, 벽력탄에 직격이라도 당한 것인지 처참한 몰골이다.

그렇다고 진소소가 완벽히 그것을 피해 낸 것은 아니다.

그녀 또한 제대로 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 심각한 피해를 입어, 몸을 움직이는 것 또한 힘이 들 지경이다.

“검후님! 검후님!”

흔들어 불러 보아도 대답이 없다.

다행히 미약하게나마 숨을 쉬고 있기는 하지만, 언제라도 끊어질 것처럼 아슬아슬하기 짝이 없다.

진소소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조심스레 몸을 움직였다.

아직 근처에 흡혈광마가 있을 것이다.

그 어떤 기척도 느껴지지 않지만, 그는 그녀들의 시야에 닿지 않는 곳에 있을 테지만, 흡혈광마는 틀림없이 그 두 눈으로 그녀들을 담고 있을 것이다.

진소소는 앙칼지게 입술을 깨물었다.

움직이지 않는 몸을 억지로 움직여 백리지연을 붙잡았다. 만약 한 번 더 벽력탄이 날아온다면 무엇을 할 새도 없이 갈가리 찢겨져 나갈 것이 분명했기에,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그러나 문득 그녀는 손을 떨었다.

‘권룡과 함께 사라졌더이다.’

들려오는 목소리는 지난번 들었던 제갈가후의 말이다. 그녀와 신유강이 아무런 사이가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지만, 진소소는 저도 모르게 질투심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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