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0
순식간에 이곳에 있던 이들이 사방으로 흩어지자, 장내에는 하북진가의 인물들과 신유강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을 뿐이다.
“아,아버님.”
진자명은 뭐라 변명해야 할지 난감하기 짝이 없다. 마교 습격이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이 마음에 걸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니나 다를까, 진명의 눈빛은 싸늘하다.
“운염. 이들을 방에 가두고 단 한 발자국도 나오지 못하게 하라. 일이 끝난 뒤에 내 직접 추궁을 할 것이다.”
“명!”
“아버님! 아버님! 정말로 아닙니다! 설마 저자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것은 아니시겠지요?!”
악에 받친 외침이 들려왔으나 진명은 들은 척도 하지 않은 채 등을 돌렸다.
마음 같아선 지금 이 자리에서 추궁하고 싶은 생각이 가득하나, 지금은 다른 무엇보다 습격자들을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진명은 힐끗 신유강을 바라본 후 몸을 날렸다.
“후우…….”
홀로 덩그러니 남은 신유강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진자명과 그 형제들을 모조리 죽일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때아닌 방해꾼이 들이닥친 탓이다.
‘그건 그렇고 마교라…….’
그들이 습격한다는 것은 굳이 이상한 이야기가 아니다. 천마비급을 노리고 있었으니만큼, 그것을 가지고 있다 여겨지는 무관을 습격하여 회수하는 건 어쩌면 마교인들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가 너무 절묘하다.
‘단순한 우연일수도 있겠지만…….’
그런 생각을 하며 슬그머니 시선을 위로 올리자, 마침 검은 인영 하나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넘실넘실 양손에 맺힌 검붉은 마기는 섬뜩함을 안겨 준다.
콰앙-!
회귀신공의 힘을 이용해서도 그 힘을 제대로 돌리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대단한 힘이다. 신유강은 신음을 삼키며 주춤 물러서 커다란 구덩이가 파인 곳을 바라보며 가늘게 눈을 떴다.
“이럴 생각으로 장원을 나선 것입니까?”
삐딱한 시선으로 고개를 들어 바라본 것은, 신유강을 향해 공력을 쏟아부은 검은 인영이다.
멋진 자수가 새겨진 흑룡의를 입고, 그 어느 때보다 투기를 넘실거리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천마존 사마강.
현 중원 무림의 절대자인 그가 눈앞에 서 있는 것이다.
“잘 피했다. 하지만 아직 멀었다.”
돌연 들려오는 말에 신유강은 의아함을 머금었다.
그러나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커다랗기 짝이 없는 비무장.
그 어떤 관중들조차 없는 이곳에서, 천하제일인과의 승부가 시작된 것이다.
第八章 무신강림(武神降臨)
콰아앙-!
구파일방과 팔대세가, 그리고 무림맹에서 지원 나온 모든 무인들은 눈앞에 보이는 마교인들을 상대하며 이를 바득 갈았다.
어찌나 손속이 빠르고 매서운지, 막아 내는 것만으로도 심력을 모조리 쏟아붓는 기분이다. 이것이 단일문파로 최고의 자리에 올라섰다 불리는 마교의 힘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매, 맹주께서 오셨다!”
“검후, 검후님이시다!”
사기가 떨어지고 곳곳에서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있는 찰나, 모습을 드러낸 것은 정도무림의 기둥이라 불리는 칠제와 천하제일세가의 가주 진명이다.
사람들은 마치 희망을 본 것처럼 눈을 빛내며 소리를 쳤다.
“놈들을 몰아내라. 칠제께서 우리와 함께 있다!”
“하북진가의 가솔들은 모두 들어라! 마교의 잔당들을 단 한 놈도 살려 보내서는 안 될 것이다!”
“우와아아아!”
우람찬 함성과 더불어 그들의 검이 매서움을 더한다.
기세를 잡았던 마교인들은 눈썹을 찌푸리며 힘을 더했다.
칠제 중 셋이 있다는 소리를 듣기는 했지만 갑작스레 사기가 오른 무인들을 더 이상 설렁설렁한 마음으로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걱걱!
백리지연의 검은 매섭게 휘둘러지며, 사발팔방 몰려드는 마교의 무인들을 베어 나가고 있었다. 마교인들은 악산에 모였던 수가 그리 많지 않았기에 오히려 천무황성을 조심하고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 보니 그것 또한 아니다.
몰려드는 마교인들은 그 수에 수를 더한다.
마치 십만마도 전체가 이 무관을 향해 모여든 것 같은 기분을 떨쳐 낼 수가 없었다.
“호호호, 자네가 검후인가?”
기이하기 짝이 없는 복장. 산적 저리 가라 할 정도로 험상궂은 얼굴이 분명한데, 목소리는 가늘기 짝이 없어 묘한 느낌을 주는 남자다.
그러나 백리지연이 그를 못 알아볼 리가 없다.
“황염!”
“호호, 본 대협을 알아주니 영광이네. 그럼 한 수 어울려 볼 텐가?”
천하백대고수의 일인이자 마교에서도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이.
칠제와 비교한다면 그 능력이 떨어질 것은 분명하나, 백리지연은 마른침을 삼키며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저 험악한 표정으로 여인과도 같은 웃음을 지으니, 저도 모르게 소름이 돋아 검을 휘두를 마음이 깔끔히 사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 사양하겠어요.”
“왜 이년아!?”
백리지연은 피식 웃음을 지으며 검을 들었다. 험상궂기 짝이 없는 그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쉬이 보내 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황염이라…… 거물이 왔네.’
천마비급이 마교에게 있어 얼마나 중요한 물건인지 모르지 않는다. 더욱이 무관에 있는 고수들을 생각한다면, 황염 정도 되는 고수들을 보내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캉캉캉-!
백리지연의 검이 섬전과도 같이 움직이며, 황염의 움직임을 막아 내기 시작했다. 쾌검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눈앞에서 번뜩이는 검광에 맞은편의 황염은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지경이다.
확실한 선기를 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백리지연은 아미를 찌푸리고 있었다.
황염의 수준은 확실히 그녀보다 낮음이 분명하다. 자칫 목숨마저 빼앗길 위기에 있음도 분명한데, 황염의 입가에 맺힌 미소가 사라지지 않는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죠?”
“호호호, 이 싸움은 확실히 우리가 이긴다.”
“지금 이 상황을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나요?”
상당한 고수들이 포진해 있기는 하나, 부교주 정도가 오지 않고서야 칠제를 막아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 도대체 저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백리지연은 더욱 매섭게 검을 휘둘렀다.
반격해 오는 황염의 주먹을 쉬이 피하며,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콰아앙!
그러는 사이, 돌연 신유강이 있었던 연무장 쪽에서 엄청난 폭음이 터져 올랐다. 무림맹 무사들이 놀라 그곳을 바라보는 것과 동시에, 그 어떤 흔들림조차 없이 마교인들은 빠르게 그들을 베어 넘기기 시작했다.
“끄아아악!”
“커어억!”
곳곳에서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백리지연의 안색이 시퍼렇게 변했다. 부교주조차 없는 이 자리에서 어찌하여 황염이 저리 자신만만한지 인지한 것이다.
“천마존!”
“호호, 이제야 눈치를 채다니 참으로 어리석군.”
가늘기 짝이 없는 미성이 들려오자 모든 이들이 그 자리에 돌처럼 굳어 버렸다.
천하제일인이자, 모든 무림인들에게 공포로 군림하는 역대 최악의 무인이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쾅쾅쾅!
이윽고 그들이 있는 쪽이 아닌, 다른 곳에서 엄청난 폭음이 들리며, 전각이 우르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것을 바라보며 넋을 잃었다.
* * *
콰쾅-!
두 사람의 손속에 사정은 없다.
검붉은 마기를 끌어내며 신유강을 압박하는 사마강과, 적절한 회천공과 선선운현무를 이용하는 신유강의 공방은 그야말로 한 치 양보도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들 주위는 마치 폐가를 연상케 한다.
추란과 진자명 등이 갇혀 있던 전각은 이미 무너져 내렸다. 회천공과 천마신공이 부딪치면서 주위를 초토화시켰으니, 아마 그 시신조차 제대로 찾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아직 멀었느니라!”
사마강의 손이 움직이는 것과 동시에 사방에서 마기가 요동치며 땅이 운다.
단순히 손을 휘두르는 것뿐인 동작이 분명한데, 기이하게도 그것은 세찬 돌풍과 강한 힘을 머금고 신유강을 향해 뻗어 왔다.
신유강은 이를 악물며 회귀신공을 끌어 올렸다. 여타 다른 무인들이 내공을 사용했을 때와는 달리 많은 양의 힘을 되돌릴 수는 없으나, 명백히 그 힘이 약해져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말아 쥔 주먹으로 약해진 사마강의 힘을 쳐 내고 나아간 신유강은, 다시 한 번 손을 움직이려 하는 사마강을 향해 매섭게 주먹을 휘둘렀다.
펑펑-!
엄청난 폭음!
과연 이것이 사람의 손으로 펼쳐지는 무공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마어마한 힘이 오가고 있었다. 사마강은 물론 신유강마저 여기저기 상처가 보이기 시작하는 것은, 그 둘의 실력이 이미 비등한 위치에 올라와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신유강은 어느새 훌쩍 물러선 그의 옆에 모습을 드러내며 회천공을 펼쳐 냈다. 천마신공과 회천공이 서로 부딪힐 때마다, 땅이 무너지며 하늘이 뒤집히는 것 같은 폭음이 일었다.
만약 누군가 이들의 싸움을 보는 이가 있다면 무신과 무신의 싸움을 보는 것처럼 두려워했으리라.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닌, 그야말로 천재지변과 다르지 않았다.
슥슥-!
회귀신공을 이용해 순식간에 방향을 틀기 시작하는 신유강을 사마강은 웃음을 지으며 바라봤다. 애초에 그가 밟았던 장소로 이동하는 기술이니만큼,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선술(仙術)과도 같은 움직임이다.
그러나 사마강은 이미 겪어 봤다는 듯 손을 움직이며 사방으로 기파를 쏘아 냈다. 어디서 나타난다 하더라도 결코 무사하지 못하리.
“뭐?!”
사마강의 뒤를 잡으려 했던 신유강이 화들짝 놀라 손을 움직였다.
펑!
거친 소리가 들려오며, 손이 다 저릿할 정도의 거력이 전해져 왔다.
회귀신공을 펼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 타격이 전해져 온다는 것은, 사마강이 전력을 다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신유강은 눈썹을 찌푸렸다.
콰콰쾅!
어느새 다가온 사마강의 발이 움직이자 땅이 쩌적 갈라졌다.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그 어떤 상대라 하더라도 밟히기만 하면 내장을 찢고 뼈를 가루로 만들어 버리는 무시무시한 수법이다.
스윽-!
신유강은 또다시 몸을 이용해 사마강이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그 순간,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매섭게 주먹질을 한다.
퍼걱.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돌연 사마강이 모습을 드러냈고, 신유강의 주먹은 여지없이 그의 안면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러나 이 수법, 이미 사마강은 꿰뚫고 있다.
양손을 들어 쉽사리 그것을 막아 내며 히죽 웃는다.
“이미 알고 있느니라.”
“단 한 번도 보여 주지 않았던 비장의 수인데, 마치 겪어 본 듯합니다.”
신유강은 지금 이 상황이 어이가 없었다.
천 년 전, 무림에 모습을 드러냈던 천마는 틀림없이 회천공을 겪어 본 적 있는 인물이다. 하여 그 지식을 온전히 이어받은 사마강이 회천공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회귀신공의 힘마저 알고 있다
더욱이 마치 겪어 봤다는 듯한 움직임을 보여 주고 있으니 더욱더 기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천마신공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신유강과 회귀신공을 알고 있는 사마강의 싸움이라면, 명백하게 신유강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
신유강은 신음을 삼키며 억지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