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2
짜증이 치솟은 사람처럼 험악하게 인상을 구기자 사마강은 더욱 껄껄 웃으며 손을 뻗었다.
그의 손에 맺힌 검붉은 마기가 넘실넘실 피어오르더니 곧 악귀와도 같은 형상을 만들어 내며 신유강을 향해 쏟아졌다.
아수라멸천장(阿修羅滅天掌).
천마신공 최강의 장법이며, 피격당한 이의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다는 무시무시한 수법이다. 설령 회귀신공을 가지고 있는 신유강이라 하더라도 저것을 맞는다면 결코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콰아앙-!
어마어마한 흙먼지가 자욱하게 올라오고, 신유강이 서 있던 곳은 어떠한 흔적조차 남기지 못했다. 땅은 깊게 파였으며, 무너진 전각의 잔재조차 보이지 않았으니 말해 무엇하랴.
그러나 사마강은 무엇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지 인상을 썼다.
“이대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씁쓸하기 짝이 없는 말을 내뱉으며 기나긴 한숨을 토했다.
아마도 조금 전과 다르지 않게 도주했을 것이다. 그러나 고작해야 얼마 움직이지 못했던 조금 전과는 다르게, 지금은 그 흔적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어떤 흐름도 신유강의 힘을 방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돌아가도록 하자.”
사마강은 그리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지으며 등을 돌렸다. 그와 신유강이 서 있던 자리는 이루 말할 수없는 처참한 상태로 변해 있었고, 사마강을 바라보고 있는 모든 무인들은 그의 힘에, 그의 기세에 눌려 입도 벙긋하지 못했다.
“당신! 감히 신 공자를 죽이고도 무사히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을 하나요!”
백리지연의 앙칼진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누가 봐도 권룡 신유강이 죽었다는 사실은 틀림없다. 흔적조차 남지 않는 아수라멸천장을 얻어맞았으니,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우습기 그지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마강은 백리지연에게 시선을 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미 이들에게 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
사람이 지나가다 무의식적으로 개미를 밟아 죽이고도 신경을 쓰지 않는 것처럼, 사마강에게 있어 이곳에 있는 모든 무인들은 고작해야 개미 정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비급은 이곳에 없으니 돌아들 가자꾸나.”
사마강은 이미 비급이 파훼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때문에 그것을 굳이 찾아보려 하지 않았다. 애초에 목적은 비급 따위가 아닌 신유강이었기에, 그가 없는 이 무관에는 더 이상 흥미를 가지지 못했다.
“존명!”
사마강은 느긋하게 걸었다.
평범한 노인처럼, 느릿느릿한 걸음걸이다.
그러나 누구도 그의 앞길을 막지 못했고, 말을 걸지 못했다. 앙칼지게 그를 향해 고함을 내질렀던 백리지연조차, 다리의 힘이 풀렸는지 스르륵 주저앉아 버렸다.
“비, 빌어먹을…… 저게 인간이오?”
멀리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던 도우겸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천천히 숨을 골랐다. 설마하니 장원에 있었던 그 늙은이가 천마존이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 강함이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
전신이 떨리고 숨이 거칠어졌다.
저런 인간과 함께 살았다고 생각하니 치가 떨렸다.
“말 한 마디 잘못했다간 뼈도 추리지 못했을 것 같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금까지 천마존과 대화를 한 적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그에게 실수를 했다는 생각만 하면, 정말이지 차라리 불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 백번 나을 것 같다.
“……장주를 쫓아가도록 해요.”
“이미 죽은 놈을 어디서 찾으란 소리요?”
도우겸은 눈앞에서 신유강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세상 어느 누구라 하더라도 살아 있다 여기지 못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힘이다.
그런데 장주를 찾으러 간다고?
콧방귀가 나올 만한 일이다.
“그분은 죽지 않았어요. 저 정도로 죽을 분이 아니세요.”
“무슨 소리! 방금 보지 못했소? 흔적도 없이 날아간 것을 말이오.”
“……반드시 살아 있어요.”
“도대체 뭘 믿고 그런 소리를 하오?”
도우겸은 답답함을 금치 못했다.
상대는 천하제일인이라 불리는 사마강이다. 설령 그보다 못한 칠제라 하더라도 충분히 죽을 법한 일격을 얻어맞았는데 살아 있다니?
도우겸은 청랑이 단순히 정신착란을 겪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원은 아닐 거예요. 괜히 소소 언니를 말려들게 하고 싶지 않았을 테니까. 그럼 객잔? 아니, 아니…….”
“이보시오!”
슬쩍 언성을 높여 보긴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이들이 다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소리를 내지는 못했다. 언제 천마존이 돌아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괜한 주목을 끌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없는 곳…….”
“정녕 미치셨소?”
“저는 정상이에요. 그리고…… 기운이 느껴져요.”
그녀는 다른 이들보다 감각이 뛰어나다.
물론 그것이 현재의 신유강이나 천마존보다는 못할 테지만, 극도로 예민한 그녀는 자신의 감각 내에 존재하는 모든 무인들을 찾아내는 것에 익숙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익숙하기 짝이 없는 신유강의 기척을 찾으려 애를 쓰고 있었고, 그가 아직 살아 있다는 확신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정말로 장주가 살아 있다 믿으시오?”
“물론이에요.”
“이쪽도 마찬가지다. 그놈이 이런 일로 결코 죽을 리가 없지.”
그때 돌연 뒤에서 기이한 목소리가 들렸다.
청랑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슬쩍 시선을 돌렸으나, 반대로 도우겸은 깜짝 놀라 하마터면 큰 소리를 낼 뻔했다.
“까, 깜짝이야…….”
“허허, 이놈 보소? 아직도 기척 하나 제대로 못 읽는 것이냐?”
흑호가 인상을 쓰며 말하자 도우겸은 꿀꺽 침을 삼켰다.
실력을 키워 준다는 명분하에 얼마나 얻어맞았던가?
아마 평생 당했어야 할 구타를 근 며칠 동안 몰아 맞은 듯한 기분이다.
“분담해서 찾도록 하지.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라. 야산은 물론 그놈이 갈 만한 곳은 다 뒤져.”
또다시 모습을 드러낸 흑영이 명령을 내리자 청랑과 흑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유강의 능력을 제대로 알고 있지는 않지만, 아마도 다른 이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곳으로 몸을 숨겼을 가능성이 많다.
특히 진소소에게 멀어졌을 것은 분명하다.
“미리 말해 두겠지만 어떤 흔적도 남기지 말거라.”
“대주, 내가 그렇게 멍청해 보입니까?”
“네놈 말고, 이놈 말이다.”
흑영은 도우겸을 영 못믿겠다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청랑을 비롯한 흑영 흑호는 흔적을 지우는 것은 물론 추적술까지 익히고 있는 이들이다.
때문에 마음만 먹는다면 마교의 추격조차 따돌릴 수 있으나, 도우겸은 평생을 그러한 것과는 담을 쌓고 산 무인.
자연스레 걱정이 될 수밖에 없다.
“이놈은 제가 데려갑니다.”
“그게 좋겠군. 만약 유강을 찾게 된다면…….”
흑영의 전음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 * *
“끄으으윽!”
신유강은 이를 악물었다.
과거 기연고서점으로 가는 야산, 그리고 어렸을 적 왕윤과 대판 싸움을 했던 그 자리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전신이 피투성이가 되어 괴로운 듯 땅을 구르고 있었다.
회귀신공의 힘을 빠르게 돌리고 있으나 쉬이 고통이 사라지지 않는다.
아수라멸천장.
그 힘은 회귀신공에 공능마저 때려 부수는 일격이었다. 만약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틀림없이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이승을 하직했을 것이다.
“끄아악!”
더욱더 빠르게 회귀신공을 돌리기 시작한다.
조금씩이긴 하지만, 점차 치료가 되어 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고통이 쉬이 사그라지지 않아 미칠 지경이다.
정신이 아늑하고 숨이 거칠다.
‘크윽…… 빌어먹을…….’
십 년이란 세월 동안 상당히 강해졌다 믿었다. 회귀신공과 회천공을 완벽하게 다룰 줄 알게 되면서, 설령 사마강과 부딪친다 하더라도 지지 않을 자신마저 있었던 신유강이다.
그런데 상황이 기이하게 돌아갔다.
사마강은 마치 신유강이 어떤 공격을 해 올지 이미 겪어 본 사람처럼 움직였고, 그것은 신유강에게 있어 패착(敗着)으로 다가왔다.
“빌어먹을…… 어떻게 된거지.”
이번에는 자신이 있었다.
천하제일이라 불리는 사마강을 꺾을 수 있다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회귀신공을 극성으로 연마하고 회천공을 완벽하게 다루니만큼,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진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때문에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다.
“크윽…… 더럽게 아프군…….”
신유강은 신음을 삼키며 이를 악물었다.
어떤 잡생각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극심한 고통이 머릿속을 자극했다. 전신이 얼얼했고 슬쩍 보이는 피부는 마치 썩은 것처럼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정말이지…… 미친 노인네 같으니라고…….”
죽일 생각이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회귀신공의 공능마저 깨부수는 살기 어린 일격.
설령 그 장력을 정면에서 얻어 맞고 살아 있다 하더라도, 신유강은 지금보다 더한 고통 속에 몸부림을 쳐야 했을 것이다.
거칠게 숨을 내쉬며 호흡을 가다듬는다.
그런데 그때 전혀 뜻하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상하지. 원래대로라면 사마강과의 승부는 네가 이겼어야 했는데 말이야.”
순간 신유강은 몸을 굳히며 조심스레 시선을 돌렸다.
목소리가 너무나도 친숙해서, 그리고 느껴지는 기운들이 익숙하기 짝이 없어서.
시선을 돌리는 신유강의 눈동자는 천천히, 그리고 목소리의 주인이 시야에 들어옴과 동시에 부릅떠졌다.
“너는…….”
“한 차례 겪어 봤겠지? 과거의 자신과 만났을 때의 기분 말이다. 하긴, 지금 네 입장에서 본다면 나는 너보다 십 년 뒤 시간에 있으니, 미래의 자신이라 해야 하나?”
신유강이다.
눈앞에 있는 그는, 틀림없는 신유강 본인이다.
같은 옷, 같은 얼굴, 같은 목소리를 내뱉으며 그 삐딱한 표정과 차가운 눈동자를 빛내며 유유히 다가오고 있다.
“어떻게…….”
“네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건, 너의 미래인 나 또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 되겠지. ‘우리’에게 있어 그런 것쯤 누워서 떡을 먹는 것보다 쉬운 일이 아니던가?”
신유강은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물론 과거로 돌아가 어린 자신을 보았다. 그러나 그때와 지금은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더욱이 눈앞에 있는 또 다른 자신은 분명 명백한 적의를 보이고 있었기에 더더욱 그러하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너를 지켜보았다. 과거와 하나도 다르지 않았던 나를 말이다.”
“무슨 소리를 하려 하는 거지?”
“이해를 못하는 모양이군. 이거 기억나나?”
그가 스윽 손을 들어 올리자 한 권의 책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무것도 쓰여져 있지 않은 책자, 그러나 그것을 모르지는 않는다.
과거 한 차례 보았던 흡혈마공의 비급.
손에 닿는 것과 동시에 허망하게 사라졌던 그것이다.
신유강은 눈을 부릅떴다.
“과거에 손에 쥔 물건을 되돌리는 것쯤은 일도 아니지.”
“설마 흡혈마공을 그놈들에게 준 게 네놈이란 소리냐?”
“말은 정확히 하자고. 나는 단지 사라졌던 이 책자를 그곳에 놓았던 것뿐이지. 물론, 녀석이 이 책자의 전인이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결국 그것을 익힌 것은 놈들의 의지이지 않나?”
그가 웃음을 짓는다.
지금의 신유강과는 전혀 다른 웃음.
미소를 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웃는 것 같지 않았다. 마치 재미있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 이제 막 흥미를 잃어버린 듯한 그런 느낌이다.
신유강은 오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좋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