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3
그래, 이것은 정말로 좋지 않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오로지 적의뿐이었다.
“왜 그런 짓을…….”
“단순한 여흥이다. 네놈의 그 평온한 삶을 깨트려 보고 싶었거든…… 뭐, 생각했던 것만큼 제대로 된 것은 아니었지만…… 자질 부족이라 하나?”
그는 당시의 일을 회상하며 웃었다.
원래 백호영준과 호야는 흡혈마공을 익히지 않는다.
단순히 객잔에서 일을 하다 장원에 있는 도우겸에게 몇 수 배움을 청하게 되고, 흑영과 흑호의 도움을 받아 본래 있던 마을에서 자그마한 삼류 문파를 차렸다.
물론 헤어지는 과정에서, 과거 고서점에서 얻었던 무공을 내어 주려했던 신유강은, 우연찮게 백지 비급을 떠올렸고, 혹시나 하는 생각에 건네주었던 적이 있다.
물론 흡혈마공이라는 글자가 보여지는 것과 동시에, 회수를 하긴 하였지만 말이다.
해서 이번엔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주려 했던 것이다
신유강은 그의 말을 듣고 까득 이를 갈았다. 당장 일어나 주먹을 휘두르고 싶었지만, 몸이 말이 듣지 않았기에 미칠 지경이다.
“왜 네놈이 이곳에 있는 거지? 이곳은 네놈이 있어야 할 곳이 아니다.”
“미래의 내가 과거의 삶으로 돌아온 것에 잘못된 것이라도 있느냐? 네놈의 삶은 내가 살아온 삶. 결국 같은 것이니만큼,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 또한 이상하지 않지.”
“무슨 소리를.”
“오 년 뒤, 너는 네 손으로 직접 진소소를 죽일 것이다.”
“웃기지도 않은 소리!”
신유강의 말에 그는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자조적인 미소.
그러나 결코 거짓을 입에 담은 표정이 아니었기에, 신유강은 더욱 발악하듯 그를 쏘아봤다.
“헛소리로 들리는가? 너는 진소소에 대해 알게 되겠지. 덤으로 딸려 온 계집아이…… ‘우리’ 없이는 살아가지 못하는 짐짝. 그것을 풀어 주기 위해서는 오로지 하나밖에 없었다.”
죽음.
신유강은 결코 들어서는 안 되는 말을 들은 것처럼 몸을 떨었다.
진소소가 덤으로 딸려 온 것이라니?
지금까지 단 한번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단순한 부탁이었기에. 그것을 들어 주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고, 또한 진소소라는 여인을 깊이 사모하게 되었다.
“혼인을 한 직후, 네놈은 그것을 알게 되겠지…… 그리고 그 후, 어떤 일이 벌어졌을 것 같으냐?”
“헛소리!”
“아니, 절대 헛소리가 아니다. 너는 진소소를 창기보다 못한 계집 취급을 한다. 손에서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여자가, 나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 드는 안도감…….”
“개소리하지 말라고 했다!”
강하게 부정해 보지만 그는 결코 말을 끊지 않는다. 마치 들으라는 듯, 자신이 살아온 세월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입에 담았다.
“그녀는 과거 그 어린 나이에 당했던 고통, 그보다 더한 삶을 살며 오 년이라는 시간 동안 버텨 낸다. 그리고 결국 네놈 손에 죽게 되겠지. 회천공이 드러나며 무림공적으로 몰린 네놈에게 진소소는 짐짝에 지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더욱이 그녀의 아비가 ‘우리’를 공적으로 몰아넣었으니 좋은 감정이 있겠느냐? 하하.”
우리라고 말을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의 이야기다. 때문에 말을 하면서 그 속에서 씁쓸함이 묻어나는 것은 결코 착각이 아니다.
“해서 나는 그 삶을 뒤집어 보기로 결심했다. 그녀를 잃지 않고 영원히, 과거와 같이 쫓기는 삶을 살지 않고…… 말이지.”
“……원하는 게 뭐지?”
“회귀신공의 회수. 더 이상 네놈이 나의 위협이 되지 않도록 말이지.”
씩 웃음을 지은 그가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회귀신공을 끌어 올려 어떻게 해서든 반항해 보려 하지만, 기이하게도 기운은 단전에서 쉬이 뻗어 나오려 하지 않는다.
마치 더욱 강한 힘에게 억눌려 있는 것처럼.
“소용없는 짓 하지 말거라. 네놈이 과거로 돌아가 십 년 동안 단련했다지만,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 그 이후에도 쫓기고 쫓기며 단련해 온 나와는 하늘과 땅 차이다.”
“하…… 설마, 네놈이 사마강에게 나의 기술을 모조리 알려 주었나?”
“알려 주긴……. 그저 한 수 배움을 청했을 뿐이지. 물론 그 결과는……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그가 신유강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몸은 꿈쩍도 할 수가 없었으며, 그 어떤 반항조차 통하지 않는다.
질끈 눈을 감자, 단전에서부터 모든 기운들이 빨려 나오는 기이한 감각에 휩싸였다. 그것들은 모조리 머리로 몰려들어 깔끔하고 완벽하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퍼걱!
“커억!”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거칠게 발을 들어 올려 신유강의 복부를 걷어찼다. 숨이 턱턱 막히는 고통과 더불어, 날카로운 무언가가 살을 꿰뚫고 들어오는 감각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서거걱!
“끄아아악!”
“죽지는 않을 거다. 네놈이 죽으면 나 역시 곤란하니…… 양 팔목과 다리의 힘줄을 끊었으니, 평생토록 걸어 다니지는 못할 테지만 말이다. 물론 그 얼굴도…….”
“으아악! 으아아악!”
촤촤좍!
난도질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거칠게 신유강의 얼굴에 칼질을 시작했다. 반항하며 괴성을 질러 보았지만, 그는 결코 행동을 멈추지 않는다.
신유강의 얼굴은 어느새 흉측하게 변했다.
시뻘건 피가 흘러내리며 살갗이 떨어져 나간 흔적이 역력하다. 오랫동안 신유강을 보아 왔던 진소소가 본다 하여도 결코 그임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그는 히죽 웃음을 지으며 신유강의 몸을 질질 끌기 시작했다. 이어 가파르기 짝이 없는 절벽과도 같은 곳까지 끌고 가더니, 신유강의 몸을 그대로 던져 버렸다.
“네놈의 시작도 이곳이었고, 네놈의 끝도 이곳이로군. 참으로 우습지 않으냐?”
이제 완벽한 신유강이 되어 버린 그가 웃음을 지으며, 싸늘하기 그지없는 눈동자로 가파른 절벽을 한 차례 내려다보았다.
첨벙!
第九章 장원풍파(莊園風波)
진소소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천마존과 신유강의 대결 소식이 들려 온 뒤부터 지금까지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사마강이 어찌하여 그런 짓을 했는지 모르지는 않는다. 다만 함께 살아온 정이 있으니만큼 최소한 죽이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언니…….”
당소혜 또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무림맹주 무현을 일격에 죽인 천마존을 상대로, 신유강은 백 합이 넘는 싸움을 벌였다 한다.
그 말인즉, 현 중원 무림 내에서 천마존을 제외하면 신유강을 이길 수 있는 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자신보다 어린 나이에 이미 칠제를 능가하는 능력을 소유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으나, 그보다 더욱 슬픈 것은 더 이상 신유강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울고 있는 진소소를 바라보며 당소혜 역시 주저앉았다. 그러나 입술을 앙칼지게 깨물며 참고 있는 것은, 당소혜 본인보다 진소소의 마음이 더욱 아프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어느새 다가온 도우겸이 어색한 표정으로 진소소와 당소혜를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이봐…… 우는 도중 미안하지만, 그…… 장주가 돌아왔는데?”
이미 소문을 들었던 도우겸 또한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을 빛내고 있었다.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야기로 듣는 것만으로도 신유강이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진소소의 고개가 번뜩 들어 올려졌다.
이윽고 도우겸을 향해 시선을 돌리자, 그 뒤편에 만연한 웃음을 머금고 있는 신유강이 태연한 모습으로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유…… 유강.”
“왜 울고 있소? 나는 이리 살아 있거늘.”
오싹-!
너무 놀라 그를 향해 달려가 안기려 했던 진소소는 우뚝 걸음을 멈추고 신유강을 바라봤다.
예나 지금이나 전혀 달라지지 않은 모습. 그러나 확실히 옷은 여기저기 찢어져 있었기에, 사마강과 싸웠던 그 본인임을 인지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 느낌은 무엇인가.
신유강을 바라보고 있는데 마치 다른 이를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신유강! 너…… 어떻게 살아 있는 거야?”
머뭇거리며 진소소가 다가가지 못하자 신유강의 미간이 좁혀지는 찰나, 당소혜의 앙칼진 외침이 들려왔다.
그렁그렁 눈가에 눈물을 매단 그녀는 다급하게 다가가 신유강의 이곳저곳, 혹 몸 상한 곳은 없는가 확인하기 시작했다.
“머, 멀쩡하잖아.”
“하하, 멀쩡한 것이 이상한가?”
“다, 당연히 이상하지! 그 천마존과 싸운 거잖아? 어디 하나 부러지고 없어졌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상황이었다고!”
당소혜는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
정도무림 전체가 공포에 떨었던 이 사건의 중심에는 천마존이 있다.
몇 십 년 동안 잠잠했던 그가 다시 눈을 뜨고 활동을 시작하는 축포를 이번에 사천에서 쏘아 올린 것이다.
아무리 신유강이 대단하다고는 하지만 어디 한 군데 잘려 나가거나 부러지지 않은 것이, 아니 애초에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신기하기 짝이 없다.
“어떻게…… 된 거죠.”
진소소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왠지 모를 불안감이 들고 있어, 저도 모르게 입을 여는 것이 껄끄러운 모습이다. 약간이긴 하지만, 확실히 신유강과 거리를 두고 있었다.
“피격당하는 순간 도망쳤소. 죽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신유강은 당연하다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 그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기에 하나도 빠짐없이 당시의 일을 이야기하니, 당소혜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대, 대단하네. 그 천마존을 상대로 도망칠 수 있었다는 점이 말이야.”
“하하, 이게 다 능력이지.”
너털너털 웃은 신유강이 슬그머니 진소소를 향해 움직였다.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가 천천히 그녀의 얼굴을 향해 손을 뻗으려는 그 순간, 기이하게도 진소소가 주춤 뒤로 물러섰다.
신유강은 눈썹을 좁혔고, 진소소는 당황했다.
그녀 또한 왜 물러섰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몸이 멋대로, 지금 눈앞에 있는 신유강을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는 듯하다.
“…….”
“미, 미안해요 너무 놀라서 그만.”
“아니, 괜찮소.”
그에게 있어서는 아주 당연한 일이다. 진소소에게 손을 뻗어 그녀를 만지는 것은, 그녀가 어떤 거부조차 할 수 없는 입장이니만큼 거부를 당한 것이 사뭇 신기한 느낌이다.
신유강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아마도 은근히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얽매여 있는 신유강과 지금 눈앞에 있는 신유강이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그것이 몹시 불쾌한 일이기는 했으나, 지금 진소소에게 있어 신유강이란 존재는 오로지 그뿐이다.
“그보다 무관 일은 어떻게 되었지?”
“처, 천마존은 돌아갔어요…… 비급을 찾을 수 없었기에 흥미를 잃은 것 같아요.”
“흐음…… 그렇군.”
모든 무림인들이 같은 생각을 한다.
애초에 천마존에게 있어 정도무림이라는 곳은 그저 잔챙이들이 모여 있는 곳.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라도 쓸어버릴 수 있는 그러한 종류일 것이다.
때문에 본래 목적이었던 비급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하곤, 더 이상 손을 쓰지 않고 물러난 것으로 파악했다.
단순히 물러났다고는 하나 입은 피해는 상당하다.
무림맹 전력 삼 할이 죽어 나갔으며, 맹주는 물론이며 살아남은 이들 또한 전의를 상실한 나머지 실성한 이들마저 있다.
사실상 정도무림맹이 붕괴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