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신공-179화 (179/200)

# 179

“예, 그…… 여러 일이 갑자기 터져서 유야무야(有耶無耶)되어 버렸지만, 같이 여행을 가기로 했잖아요. 하북의 일이 끝나면 말이에요.”

“하하, 그렇지. 혹시 지금 가고 싶은 것이오?”

“아니, 딱히 그런 것은 아닌데……. 혹시 괜찮으면 하북으로 가 봤으면 해서요. 오랫동안 가 보지 못했고, 지난번 사건이 아니었다면, 우린 하북에 있었을 테니까요.”

“흐음, 그리 생각한다면 하북으로 정하는 것도 좋소. 꽤 먼 거리이긴 하지만 괜찮은 곳이니……. 원한다면 진가에 들르는 것도 괜찮소.”

“하북진가는 괜찮아요. 그냥 여행을 하고 싶었던 것뿐이니까요.”

“하하, 여행이라 기대되는군. 그럼 언제 갈 생각이오?”

“지금 당장은 아니고……. 으음, 며칠 뒤에 떠나도록 하죠. 준비를 할 것도 있으니까요.”

이 사천을 벗어나 여행한다는 것에 부푼 마음이 들었던 것인지, 진소소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화사하게 변해 있다.

신유강은 오랜만에 보는 그녀의 화사한 미소가 마음에 들었던 것인지, 만족한 웃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과거의 감정이 되살아나는 것처럼, 가슴 한편이 아련한 것은 결코 착각이 아니다.

허나 곧 그 감정마저 떨쳐 내려는 듯 고개를 젓는다.

그가 원하는 것은 진소소가 아니다.

그저 이 평온함을 지속시키는 것뿐이다.

“그럼 전 씻으러 가 보겠어요. 오랫동안 움직였더니 찝찝하네요.”

진소소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등을 돌렸다. 사박사박 연무장을 걸어 나가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여행에 들뜬 어린아이처럼 보기만 해도 흐뭇해지는 모습이다.

때문인지 사라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신유강 또한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듯 웃음을 머금었고, 곧 그녀가 보이지 않게 되자 그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움직였다.

“…….”

연무장을 완벽하게 벗어난 진소소는 콩닥콩닥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한 채, 어느새 빠른 걸음을 걷고 있었다.

조금 전 보여 주었던 기분 좋았던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자신의 거처로 들어서는 진소소의 모습은, 무언가 다급했으며, 일견 불안해 보이기까지 하다.

땀으로 범벅이 된 옷을 풀어 헤칠 생각조차 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선 그녀는 말없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무런 말조차 내뱉지 못한 채, 동공마저 풀린 눈동자로 전신을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다…… 달라…….’

무엇이 다른가?

그녀는 깊게 생각할 필요조차 없이 그 해답을 냈다.

지금 이 장원에 있는 신유강은 그녀가 알고 있는 신유강이 아니다.

애초에 여행을 가자는 이야기가 없었으니만큼, 신유강의 저러한 반응은 결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단순한 말 속의 함정.

그러나 단순하니만큼 쉽게 걸리는 이들이 있다.

‘도대체가…….’

입 밖으로 어떠한 소리조차 내지 못한다.

말을 내뱉는 즉시 그가 알아차릴 것만 같았기에, 진소소는 쉬이 말을 뱉을 수가 없었다.

뚝뚝-

눈물이 떨어져 내리며 속 깊은 곳에서부터 무언가가 울컥하고 쏟아져 나올 듯 아슬아슬하다. 지금까지 이 장원에 있었던 신유강이 자신이 알고 있던 그와 다르다는 사실을 어째서 지금에서 깨달았을까.

확인하려 했다면 진작에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속에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난다는 사실 자체가 우스웠다. 때문에 부정하고 또 부정해 왔으나, 결국 그것이 사실로 드러난 셈이다.

눈물이 앞을 가리자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억지로 숨을 집어삼켰다. 밖으로 어떤 소리조차 내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네 앞에 있는 신유강은 오로지 나뿐이다.’

지난번 무관 일이 터지기 전 신유강이 했던 말이다.

과거로 회귀, 그렇다면 그녀가 알지 못하는 신유강 또한 이 순간에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한 상상을 하였을 때의 그 감정.

틀림없다.

지금 이 장원에 있는 이는 신유강이긴 하나 그녀가 알고 있는 신유강이 아니다.

진소소는 결코 알고 싶지 않은 사실을 알아 버린 것에 크나큰 충격을 받았는지, 그 자리에 꿈쩍도 하지 못한 채 엎드려 있었다.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

당장 이 장원을 나가, 그녀가 알고 있는 신유강이 어찌 되었는지 찾고 싶은 충동이 물씬 몰려들고 있다.

그러나 움직일 수가 없다.

지금 이곳까지 느껴지는 이 기운은 틀림없이 그에게서 뻗어 나온 기세.

그 역시 진소소가 눈치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것은 이 장원에서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뜻과도 같았다.

* * *

“재미있군.”

장원의 지붕 위에 올라 느긋하게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 그가 미약하게 들려오는 소리에 피식 웃음을 지어 보였다.

진소소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그는 바보가 아니다.

그녀가 뛰어나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긴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과거의 일, 지금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단순히 객잔과 장원을 오가며 일을 하던 진소소.

반면 신유강은 회귀신공을 얻은 뒤부터 온갖 일들을 해 왔다. 그녀가 선천적으로 좋은 머리를 타고나 총명하기 짝이 없다고 한다면, 신유강은 후천적으로 이 세상과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을 배우며 그녀마저 뛰어넘은 것이다.

웃는 표정, 말투, 손가락이나 눈동자의 움직임으로, 그 사람이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는 훤히 들여다본다는 말이다.

“뛰쳐나갈 거라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로군.”

처음 그녀가 질문했을 때부터 모든 것을 눈치채고 있었던 신유강은, 그녀가 만약 이 장원을 벗어나려 했다면 망설임 없이 손을 쓸 생각이었다.

그녀의 머릿속에 있는 신유강이라는 기억을 모조리 도려내서라도, 진소소를 이 장원에 붙들고 있을 거란 소리다.

더 이상 진소소에게 어떠한 감정도 느끼지 못한다.

다만 그가 원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는 평온.

곁에는 진소소와 당소혜가 있고, 객잔과 장원을 오가며 도란도란 행복했던 그 시절 말이다.

“머리가 좋다 해야 할지, 자기방어가 강하다 해야 할지…….”

그는 피식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불어오는 바람이 점점 강해지는 것을 느낀다. 태풍(颱風)이라도 오려는 것인지 날씨는 우중충하기 짝이 없으며, 뚝뚝 조금씩 떨어져 내리는 빗물은 마치 방 안에 틀어박혀 울고 있는 그녀의 눈물과도 같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이 상황을 즐기며 웃음 지을 뿐이다.

“그런 곳에서 뭘 하는 거야?”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자 그는 가만히 시선을 돌려 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봤다. 비가 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것에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표정의 당소혜가 입에 당과를 문 채 고개를 갸웃했다.

예나 지금이나 때 묻지 않은 표정이다.

그가 생각하는 당소혜는 어쩌면 진소소보다 더욱 끌리는 여인이다.

과거 그는 천마존과 싸움에서 그를 죽인 것으로 마교의 공적이 되었다.

이후 회천공이 드러나면서 정파의 공적이 되어 버렸을 때 무수히 많은 이들을 죽였으며, 살기 위해 아등바등 몸부림을 쳤다.

그런 상황에서 당소혜와 진소소는 짐짝과도 같았다.

힘이 있다고는 하나 계속되는 싸움에 점차 정신은 피폐해져 갔으며, 더 이상 그녀들을 신경 쓸 여력조차 남지 않았을 때다.

진소소가 죽기 약 한 달 전.

당소혜는 뒤를 쫓는 무림맹 무사들을 따돌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였고 그 결과, 고작해야 보름 정도의 기간이기는 하나, 쫓기던 그에게 있어선 몸을 쉴 수 있는 시간을 벌게 해 주었다.

“너는 뭘 하는 거지?”

그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울려 퍼졌다. 아련한 기억을 끄집어낸 듯, 마치 사랑했던 당시의 일을 회상하며 그 마음을 되새긴 것처럼, 상냥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다.

“그냥…… 구경하고 있는데? 비 오는 거.”

“여전히 멍청한 소리를 하는군.”

“뭐야?! 권무존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나를 무시하다간 큰 코 다칠 걸? 네 밥에 독을 풀어 버릴지도 몰라!”

“……그런 것으로 죽을 수 있다면 오히려 편하지.”

작은 목소리였기에 내공이 낮은 당소혜는 그가 무슨 소리를 했는지 정확히 듣지 못한 모습이다. 그러나 신유강의 씁쓸한 눈빛 때문인지 저도 모르게 흠칫 몸을 떨었다.

“저기 말이야, 요즘 들어 진 언니랑 너…… 조금 이상하…… 지?”

쉽게 꺼낼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당소혜는 조심스레 두 사람의 관계를 물었다. 진소소가 일방적으로 신유강에게 거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남 걱정하지 말고 네 걱정이라 해라.”

“흥! 걱정해 줘도 난리야. 언니를 울리기만 해 봐라. 아주 죽을 줄 알아!”

그는 듣는 둥 마는 둥 시선을 돌렸다.

과거의 인연은 쉽게 끊어 낼 수 없다. 그것을 되새겨 주는 것처럼, 마음 한구석이 욱신거리고 있다. 진소소를 볼 때마다, 당소혜를 볼 때마다, 장삼이나 다른 친구들을 볼 때마다 아련한 추억에 잠긴다.

그러나 거기까지.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삶을, 그리고 새로운 평온을 기대하고 있는 그에게 있어 진소소와 당소혜, 그리고 과거의 인연들은 고작해야 과거에 지나지 않는다.

때문에 잔인해질 수 있으며, 더욱 독하게 변할 수도 있다.

과거의 자신에게 그러한 짓을 한 것도 새로운 삶을 빼앗고 싶었던 욕망이며, 이제는 그 누구에게도 빼앗기고 싶지 않은 욕심이다. 설령 상대가 누가 되었든 이 평온을 깨려는 이는, 그 뿌리마저 도려내어 산산이 부숴 버릴 것이다.

그는 그렇게 다짐하며 조용히 눈을 감는다.

쏴아아-

빗방울이 거세지며 한바탕 폭우가 쏟아진다.

* * *

쏴아아-

핏물이 가득하다.

주위에 어찌나 많은 사람들의 시체가 쌓여 있는지, 그녀는 숨을 고르면서도 쉬이 진정을 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검은 복면을 한 이들이다.

하지만 그들이 누구인지 모르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땅을 박차고 몸을 날리며 그녀는, 더욱 빠르게 경공을 전개해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검후라는 명성이 과연 허언은 아닌 것인지 쏘아져 나가는 속도는 가히 섬광과도 같다. 그러나 그녀의 뒤를 쫓는 이들 또한 엄청난 속도로 바짝 뒤를 붙어 오고 있었다.

“쉽게 도망갈 생각은 버리시오, 검후.”

쫓아오는 이들은 천무황성의 고수들이다.

칠제 중 일인, 무현이 죽은 것으로 칠제의 권위를 넘보며 중원 땅을 노리는 그들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더욱이 정도 무림맹에서 흘린 천마비급에 대한 이야기 때문에 천무황성은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이는 그에 대한 보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벌써 이 상황도 칠 일이 넘어간다. 죽여도 죽여도 다시 되살아나는 강시들처럼 뒤를 쫓는 이들의 수가 줄어들지 않는 이유는, 천무황성의 성주 우자혁이 칠제의 일인 검후를 확실히 죽이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는 것과 같다.

주위는 온통 산이며 도움을 청할 곳도 없다.

‘화산으로 가려다 이게 무슨 낭패인지…….’

백리지연은 까득 이를 갈며 난색을 표했다.

다른 이들보다 뒤늦게 사천을 출발했기 때문에 표적이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유강을 어떻게 해서든 무림맹 측으로 끌어들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실수였다.

홀로 남은 검후는 표적이다.

제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이만큼 많은 고수들이 뒤를 쫓고 있다. 제대로 운기조차 하지 못한 채 격렬한 전투를 치루고 있으니만큼, 그녀는 얼마 가지 못해 틀림없이 시체가 되어 누울 것이다.

백리지연은 확실히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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