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4
“조금 과하게 손을 쓴 것이 아닙니까?”
한 낭인이 겁 없이 앞으로 나서며 신유강을 바라봤다.
분명 잘못한 것은 쓰러져 있는 이들이다. 비무 따위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신유강에게 다짜고짜 검을 뽑고 달려들었으니 죽어 마땅한 죄를 저지른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나 권무존 정도의 힘이라면 굳이 저렇게 할 필요까지 없었을 것이 분명하니, 절로 울화가 치민 것이다.
“당신은 누가 자신을 죽이려 해도 가만히 있을 것이오?”
“물론 검을 듭니다. 하지만 권무존 정도의 실력이라면, 굳이 죽이지 않고 제압할 수 있었을 것이라 봅니다.”
그는 피식 웃음을 머금었다.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긴 하나, 힘의 차이가 확연한 상대에게 덤비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저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깨닫게 해 준 것이다.
그 덕분에 다른 이들 또한 쉬이 덤벼들지 못하는 것 아니겠는가.
“나는 하지 않겠다 하였고, 저들은 덤벼들었소이다. 또한 다수가 하나를 핍박하는 데 있어, 하나가 그들을 모두 죽인다 하여 누가 나에게 손가락질을 하겠소?”
“그, 그건…….”
저들이 겁 없이 덤벼들 때부터 신유강은 이미 정당성이라는 것을 손에 넣었다. 물론 그뿐만이 아닌 주위에 있는 자들에게 ‘신유강은 위험하다.’라는 생각을 심어 주게 되었고, 이로써 그는 자그마한 평온을 하나 되찾게 될 것이다.
“당신들은 뭔가 크게 착각을 하고 있소. 내 이름은 신유강이고, 원하지는 않지만 권무존이란 별호도 얻었소. 그런데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그 칼을 들이밀며 나를 핍박하려 하고 있소.”
신유강은 객잔 안에 있는 자들을 둘러봤다. 하나하나, 중소 문파는 물론 낭인과, 간간히 구파의 제자들 또한 섞여 있다.
그들은 신유강과 눈이 마주치는 것과 동시에 다급하게 눈을 돌렸다.
“내가 무림맹에 어느 정도 직위가 있거나, 혹은 나이가 있었다면 당신들이 나에게 칼을 들이밀었겠소? 실제로 이 자리에 있는 당신들 중 칠제의 이름을 뺏기 위해 그들에게 검을 들이민 사람이 있다면 앞으로 나와 보시오.”
신유강의 말에 반박하는 이들은 없다.
기실 권룡이나 혹은 권무존이라 별호를 얻었다고는 하지만, 당시 자리에 있던 이들을 제외하면 신유강의 힘을 본 이들은 지극히 드믈다.
하여 단순히 무림맹에서 새로운 신진고수를 떠받아들어 주기 위해, 혹 수작을 부려 띄워 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의외로 많았다.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는 지난번 사천 무관의 일이 벌어진 뒤부터 지금까지, 권룡이라는 별호를 얻었을 때보다 더 많은 이들을 상대해야 했다.
그것은 그의 평온을 깨는 일과 같았다. 때문에 더욱 과하게 손속을 펼치며 다른 이들에게 강한 경고를 하고 있는 중인 셈이다.
주위에 몰린 이들에게서 아무런 말이 없자 신유강은 다시 한 번 그들을 바라보곤 시선을 돌렸다. 작게 한숨이 새어 나오는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쉬이 평온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자리를 얻기만 하면 그만일 것이라 생각했거늘…….’
과거의 자신과 삶을 뒤바꾼다.
하여 잃어 버린 평온과 안락함을 다시금 되찾으려 했던 그의 생각은, 이루어짐과 동시에 서서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객잔 한편에서 이 모든 상황을 바라보고 있었던 진소소의 눈빛이 매섭게 빛을 발했다. 이를 악물고 있는 그녀의 표정은, 더 이상 신유강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 경고하는 듯하다.
때문에 그는 더욱 신경질적인 표정이다.
“이 일은 결코 잊지 않겠소!”
입을 다물고 있던 낭인들 중 한 명이 앙칼진 목소리로 소리를 쳤다. 자신의 동료, 지인이 죽어 나가는 꼴을 보니 지금까지 느낄 수 없었던 복수심이 활활 타올랐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 말이 어울리는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쉽게 마음을 굽힐 수 없는 것은, 권무존이든 권룡이든 간에 그들이 보기에는 고작해야 갓 약관을 넘은 새파란 애송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더욱 납득할 수 없다.
명망 있는 후기지수도 아닌데 저 나이의 천마존과 부딪힐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힘을 지녔다는 것, 그리고 신유강을 이길 수만 있다면, 그 비급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말이다.
그러나 그들의 목소리와 복수심 따위, 신유강에게 있어 그저 어린아이가 떼를 쓰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힘내시오.”
아득!
그의 한 마디에 낭인은 까득 이를 갈며 등을 돌렸다. 그들이 보기에는 어린놈이 힘을 얻어 오만하게 사람을 내려다보는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다.
신유강과 눈싸움을 하고 있던 남자는, 결국 더 이상 이 자리에 있을 수 없었는지 등을 돌려 객잔을 빠져나갔다.
이후 낭인들이 쓰러진 이들과 죽은 자들을 들쳐 업고 밖으로 나서자, 객잔 안은 조용한 정적이 흐르기 시작했다.
음식 먹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다.
마치 신유강을 방해하지 않겠다는 듯, 젓가락을 움직이고 있는 손들이 조심스럽기 짝이 없다. 그러나 아무리 젓가락을 놀린다 하더라도 이런 상황에서 음식이 입으로 들어갈 리가 없다.
더욱이 시체까지 보았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사람들이 저마다 헛기침을 하며 부랴부랴 탁자 위에 은자 한 냥씩을 놓고 객잔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주위가 텅 비어 버렸다.
본래 시끌벅적하고 사람 사는 냄새가 가득했던 객잔은 이제 찾아볼 수 없다.
진소소는 이를 악물며 장원으로 돌아가 버렸고, 장삼은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는 듯 주방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다만 신유강만이 그저 태평하게 자리에 앉아 있을 뿐이다.
“놈을 이대로 놔두면 안 되겠소.”
삼삼오오 모인 낭인들은 무언가 작당이라도 하고 있는 것인지, 커다란 객방에 모여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리고 있었다.
또한 조금 전 나온 말에 대한 대답인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눈빛을 빛냈는데, 마치 못된 흉계를 꾸미는 이들처럼 표정이 악랄하기 짝이 없다.
“어찌할 생각이신가? 우리의 무공으로는 턱도 없네. 구파나 팔대세가에서 나서 준다면 또 모르겠지만 지금 상황에선…….”
구파일방이나 팔대세가는 이미 신유강의 힘을 두 눈으로 목격한 이들이다. 또한 무림이 어수선한 이 시점에서, 인맥이나 돈을 이용해 그들을 부려 신유강을 매도하는 것 또한 불가능에 가깝다.
더욱이 현 무림맹주는 하북진가의 진명이며, 곧 신유강이 혼인할 상대는 그 진명의 여식, 다른 힘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두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네. 내 동료들이 당하는 것을 보지 않았는가.”
“그 녀석 주변에는 다들 대단한 배경을 지닌 이들뿐이라 건드릴 수조차 없다네.”
여기저기에서 의견이 튀어나온다.
애초에 신유강이라는 존재만 대단하였다면 응당 다른 이들을 압박하며 되는 일이지만, 그의 주위에 있는 여인들도 하나같이 배경이 든든하고 쉬이 건들 수 없는 이들이다.
“지난번 대운상단이 그 녀석을 건들다 호되게 당했다고 들었네. 그들을 이용해 보는 건 어떠한가?”
그 말에 다른 낭인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대운상단은 현재 십대상단 축에 끼지도 못하는 소규모로 전락했다. 더욱이 신유강에 대한 공포심이 머릿속 깊은 곳까지 박혀 있어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떤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힘으로 누를 수 없다는 걸 모르지 않을 테니 머리를 좀 굴려 보세. 놈이 가장 아끼는 것이 무엇인가?”
한 낭인이 조심스레 입을 연다. 무언가 계책이라도 세운 것인지 입가에 희미하게 조소(嘲笑)가 머물러 있었다.
“글쎄…… 당연히 여인이지 않겠는가.”
“그도 그렇지만, 녀석은 객잔을 아끼는 것으로 유명하네. 그 객잔에 불을 놓는 건 어떤가?”
과거 대운상단이 사용하려 했던 방법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하였고, 확실하게 신유강을 괴롭힐 수 있는 방법은 그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객잔이라……. 괜찮은 방법이기는 한데…….”
“물론 그것뿐만이 아니지.”
남자는 히죽 웃으며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 * *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하는 거죠?”
늦은 시간 장원으로 돌아온 신유강은, 앙칼지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서슬 퍼런 눈동자를 돌려 진소소를 바라봤다.
그 눈빛이 어찌나 섬뜩한지 소름이 다 돋을 지경이다.
그녀는 흠칫 몸을 떨었으나 이내 담담하게 신유강을 바라봤다.
“무슨 짓을 말하는 거지?”
“자신보다 약한 이를 향한 그 행태를 말함이에요.”
“약한 이는 도태되는 것이 당연하고, 강한 이는 그들을 도태시키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 그게 너희 집안의 규율이기도 하고, 무림의 생태이기도 하지.”
진소소는 이를 악물었다.
설마하니 저런 말을 서슴없이 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치 지금의 말투를 들어 보자면, 더 이상 그녀가 알고 있는 신유강을 모방(模倣)하는 것조차 그만두려 하는 것 같지 않은가.
“이제야 그 성격을 드러내시는군요.”
“네가 몰랐다면 끝까지 모른 척하며 그놈의 행세를 했겠지. 하지만 알고 있지 않으냐? 그놈과 내가 다르다는 것을…….”
“……유강은 어찌했죠?”
“죽였다.”
“…….”
쉽게 나오는 한 마디에 진소소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너무나도 쉽게 또 하나의 자신을 죽였다는 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표정에는 변화조차 없었으며, 목소리에선 떨림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당신…….”
“검을 뽑고 나를 죽일 텐가? 나에게 얽매여 있는 인형 따위가. 너는 나를 모시며 평생을 보내면 되는 것이고, 나는 또 다른 내 삶을 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따위 생각으로 유강을…….”
“착각이 심하다 진소소. 네가 보기에는 내가 신유강이 아니라 느껴질지 모르겠으나, 네 앞에 서 있는 이 ‘나’ 또한 ‘신유강’이며 이 삶을 사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존재다.”
진소소는 파르르 입꼬리를 떨었다.
이제야 어느 정도 모든 상황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회귀신공이라는 거대한 힘을 가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때부터 느꼈던 그 불안감이 현실로 다가왔다.
또 하나의 신유강.
지금보다 먼 훗날의 신유강.
때문에 같은 느낌이 들면서도 이질적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언제나 씁쓸한 눈빛으로 주위에 있는 이들을 배척하며 홀로 살아가려 하는 자.
아마도 그녀가 생각지 못했던 엄청난 일을 겪었음이 분명하지만, 진소소는 조금도 그에게 동정심을 가질 수가 없었다.
그가 과거의 자신을 죽이는 그 순간, 이미 그는 신유강이라 말할 자격이 없었기 때문이다. 과거의 자신을 부정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인정할 수 없다.
진소소는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떠날 텐가? 내 옆을?”
“그럴 수 있었다면 좋겠네요.”
“하하하, 그렇지. 너는 내 옆을 떠날 수 없어. 죽는 그 순간까지. 반대로 나는 네 옆을 떠날 수 있지. 언제라도 말이다. 다만 재미있는 것은, 내가 너를 떠나도 너는 이 자리에서 나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지. 그것이 싫어 어떤 식으로 몸부림을 쳐 봐도 자살조차 할 수 없는 네년은, 한평생 고독하게 나를 그리워하며 살 처지지. 웃기지 않은가?”
“…….”
충격적인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진소소는 조금도 미동이 없다. 아니, 애초에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 충격이 와 닿지 않는 것이다.
신유강이 신강으로 떠났을 때에도 그녀는 사천에 머물러 있었다. 그가 돌아올 것이라 믿으며, 설령 돌아오지 않더라도 신유강의 이름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