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신공-187화 (187/200)

# 187

“됐다. 시덥지 않은 소리 그만하도록 하고, 나를 보자고 한 이유가 뭐지?”

주유선은 자신의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은 듯 쉽사리 본론을 꺼낸다. 애초에 신유강이 무슨 이유로 찾아왔는지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모양새다.

은하련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사부라면 제 얼굴을 고칠 수 있습니까?!”

신유강 또한 상당히 직설적으로 말을 내뱉었다. 애초에 조금이라도 빨리 주유선의 곁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가득했으니, 길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더욱이 길면 길수록 맞는 횟수가 늘어날 것은 뻔하다.

“단순한 환골탈태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그런데, 고작해야 그런 이유로 나를 찾아온 건가? 네놈 환골탈태 시키는 건 사마강만으로도 충분할 텐데.”

“사마강의 내공은 너무 강해요. 이 아이의 기맥은 언제 찢어질지 모르는 상황, 천마신공을 흘려보냈다간 전신이 터져 죽을 거에요.”

은하련은 알고 있는 사실을 설명하나 주유선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다. 슬쩍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눈빛은 무슨 어이없는 말을 하는 사람을 쳐다보는 것만 같았다.

“네가 고치면 되잖아.”

“나보다 당신이 낫잖아요.”

“하!”

주유선은 정말이지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식이다. 그만큼이나 은하련 또한 상당한 능력을 자랑한다.

아니, 신유강을 고치려 마음만 먹는다면 굳이 환골탈태 따위 시키지 않아도 몇 달 안에 본래의 상태로 돌릴 만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런데 왜 주유선에게 데리고 왔을까.

싱글벙글 웃고 있는 은하련의 속내를 읽은 것인지, 주유선은 머리를 벅벅 긁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저번에 이야기했던 것을 기억하느냐?”

“…….”

워낙 많은 이야기를 들었던 탓에 그것을 전부 기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공이 어쩌니 저쩌니 한 것 같기도 하지만, 애초에 회귀신공을 익히고 있는 시점에서 다른 무공 따위 소용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신유강이 멍한 표정을 짓자, 주유선은 검미를 좁히며 미간을 짚었다.

“멍청한 놈.”

“애초에 저한테 다른 무공을 알려 준다 한들, 그걸 익힐 수 있는 몸이 아니지 않았습니까.”

멍청하다는 소리에 발끈한 신유강이 뻘게진 얼굴로 약간 언성을 높였다. 만약 눈앞에 있는 상대가 주유선이 아니었다면 당장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다.

뻐걱!

“꺼억!”

그 순간, 또다시 뒤통수에 강렬한 통증이 느껴지며 그대로 머리가 바닥에 처박혔다. 어찌나 둔탁한 소리가 들리는지, 숨넘어가는 소리가 여지없이 들려올 정도다.

“익히고 익히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다, 인석아. 내가 고생해서 얻은 것을 네놈이 그 머리에 집어넣지 못했다는 게 문제인 거지.”

“크으윽…….”

“지난 십 년간, 내가 네놈에게 가르쳐 준 것은 돈을 줘도 살 수 없는 오묘한 것들로 가득한데, 네놈은 그것을 단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지 않으냐.”

주유선은 혀를 쯧쯧 차며 인상을 썼다.

지난 십여 년간, 중원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때아닌 유람을 했다. 신유강을 끌고 다니며 가진 바 모든 정수를 가르쳤음이 분명한데, 이놈은 도통 그것을 깨닫지 못한 듯하다.

아마 이대로 간다면, 사천에 있는 녀석과 별반 다르지 않게 변할 듯하다.

“네놈이 그중 하나라도 깨닫고 익혔다면 사천에서 그러한 일 따위 겪지 않았겠지.”

“……어째서 알고 계십니까?”

“네놈에 대해 모르는 것이 있을 것 같으냐?”

신유강은 자신의 사부가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알고 있다. 막상 부딪혀 보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사마강조차 무릎을 꿇릴 만한 힘을 가진 소유자라는 사실을 말이다.

다만 그 속내가 음흉하고 재수 없으며, 심심치 않게 휘두르는 주먹이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다.

퍼걱!

“욕을 하려면 들키지 않게 해라.”

“크으윽……. 마음마저 읽습니까?”

주유선은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을 읽은 것이 아니라 표정을 읽은 것이다. 어찌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는 놈이 자신의 속내 하나 감추지 못한단 말인가.

머리가 둔해도 정도가 있다.

“네놈에게 묻도록 하지, 얼굴을 되찾아서 무얼 할 심산이냐?”

“그야…… 사천으로 돌아갈 생각입니다만…….”

“회귀신공을 잃은 네놈이 가 봐야 같은 일만 되풀이될 수 있음을 모르는 것이 아닐 텐데?”

“……그래도 가야 합니다. 놓고 온 사람이 있으니까요.”

“고작 질질 짜는 계집 하나에 목숨을 거는 꼴 하고는…….”

주유선은 마치 무언가 알고 있는 듯, 그러나 말해 줄 생각은 없는 것인지, 그저 작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만 저었다.

곁에서 그것을 가만 바라보고 있던 은하련은 포근한 미소를 짓는다.

여자 하나 때문에 강해지려 했던 주유선.

그리고 여자 하나 때문에 사지로 가려 하는 신유강.

정말이지 이 두 사람은 닮아도 너무 많이 닮은 것 같다.

“미리 말해 두지만 환골탈태를 한다 해서 네놈이 그놈을 이길 수 있는 건 아니다.”

“압니다.”

“그래도 딴에는 제자이니 해 주기야 하겠다만, 기왕이면 여자 따위 잊어 버리고 이곳에서 사는 것이 어떠냐?”

은근슬쩍 품에 끼고 있으려 한다.

아마도 주유선의 말은 장난으로 하는 소리가 아닌 진심일 것이다.

강하게 크라며 태어나자마자 다리 밑에 가져다 던져 놓았다.

혹시 있을지 모르는 인연의 끈을 잡으라며 천마비급이 적혀 있는 도해마저 쥐어 주었다. 비참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두 눈으로 보면서도 도와주지 않았던 것은, 스스로 일어나지 않는다면 어떤 것도 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은하련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핏줄이 괴로워하면 할수록 주유선이나 은하련 또한 힘든 것은 사실이다. 하여 기연고서점에 인연을 끌어 주었고, 결코 밖으로 내보낼 일 없었던 회귀신공도 건네주었다.

그리고 현재, 주유선은 아비의 정을 떨쳐 내지 못한 채 결국 신유강을 품에 안으려 한다. 더 이상 어떠한 고통도 겪지 않게, 또다시 아픔을 느끼지 못하게 말이다.

허나 신유강은 단호히 거절한다.

“괜찮습니다. 제 삶의 일부에 지나지 않은 녀석에게 질 생각 따위 없습니다.”

회귀신공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말을 내뱉었다. 아마도 저것이 처참한 몰골이 되었음에도 무너지지 않고 일어서려 하는 원인 중 하나겠지.

주유선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라. 네놈이 원하는 걸 그대로 들어주도록 하마.”

신유강은 드디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환희에 찬 표정으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았다.

애초에 회귀신공은 운기라는 개념이 없으니만큼,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꼴이 참으로 어색하기 짝이 없다.

때문인지 뒤에서 쯧쯧거리는 주유선의 목소리가 들려왔으나, 지금은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을 시간이 아니다.

쿵!

기이한 울림과 함께 몸에 부드러운 기운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마치 자연 그 자체를 기에 담은 듯한 느낌,

평안하고 기분이 좋으며, 절로 긴장이 풀리기 시작한다.

쿵!

또 한 번 몸이 크게 울렸다.

입에서는 신음이 새어 나오려 했으나 이내 꾹 다문다. 이런 상황에서 소리를 내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 정도는 알기 때문이다.

“미친놈, 도대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돼. 어떻게 자기 자신이 이렇게 만든단 말이야?”

뒤에서 주유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타인의 몸을 자신의 기로 다스리기 시작할 때에는 극도의 정신력이 필요하다. 설령 사마강이라 해도 쉽게 입을 열 수 없는 것은 당연한데, 주유선의 목소리는 참으로 태연하기 짝이 없다.

“하긴, 제 자식 버린 나도 할 말은 없다만…….”

“후후, 그렇지.”

기이한 소리가 들려오나 신유강은 들을 수 있는 정신 상태가 아니다. 부드럽게 흘러오던 기세들이, 돌연 맹렬하게 움직이기 시작하며 망가진 기맥을 고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건?’

그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익숙하기 짝이 없는 이 느낌은 틀림없이 회귀신공의 기운.

어떻게 사부가 이러한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그러나 묘하게도 그가 알고 있는 회귀신공과는 무언가가 다르다.

많은 것이 섞여 있는 듯 이질적이다.

그것이 하나하나 무엇인지 파악할 수는 없지만, 확실히 회귀신공의 기운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신유강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점점 더 고통이 심하게 몰아쳐 오고 있었던 탓에 얼굴은 시뻘겋게 붉어졌으며, 전신의 혈관이 불끈불끈 튀어나와 터질 듯하다.

“참아라 이놈아, 아직 시작도 안 했으니.”

“끄으으윽!”

신유강의 몸을 돌기 시작하는 내공은 평범한 것이 아니다. 선천지기(先天之氣)라 불리는 것으로, 기실 무공을 익혔다 하더라도 이 기운을 꺼내 쓸 수 있는 이들은 지극히 드물다.

또한 주유선이 가지고 있는 기운은 정순하다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청량함을 머금고 있었고, 기연고서점의 주인인만큼 상당히 특별한 기운을 지니고 있다.

망가진 기맥은 순식간에 본래의 형태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그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것인지 신유강의 표정은 있는 대로 구겨져 있었으나, 주유선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

반 시진이 지나고 일각여 정도 시간이 더 흐르자, 지금까지 땀을 흘리지 않았던 주유선의 얼굴에도 송골송골 식은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만큼 신유강을 치유하는 것에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망가졌던 기맥이 어느 정도 살아나기 시작하자 지금보다 더욱 강한 기운을 퍼붓기 시작한다.

단순히 환골탈태를 시키려는 것이 아닌, 몸 안에 잠재되어 있는 기운을 깨우려는 듯한 느낌이다.

신유강은 이를 악물며 조금이라도 빨리 이 고통이 사그라졌으면 하는 소망만이 가득했다. 기맥을 치료할 때보다 오히려 더한 고통이 느껴지니,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다.

몸 안 곳곳을 돌고 도는 주유선의 기운은 거세기 짝이 없다. 마치 견디지 못한다면 언제 죽어도 상관없다는 듯한 기세를 머금고 있었기에 신유강은 더욱더 이를 악물었다.

‘빌어먹을!’

속으로 욕을 내뱉은 것이 몇 번째인가.

생각나는 단어는 오직 욕뿐이 없고, 마음 같아선 벌떡 일어나 주유선의 멱살이라도 잡고 싶을 지경이다.

전신의 근육과 내장, 그리고 뼈가 다져지는 이 역겨운 느낌은 아무리 시간이 지난다 하더라도 쉬이 적응하지 못할 것이다.

쿠쿵!

그때 몸이 크게 울렸다.

본디 아무것도 없어야 할 몸 안에 기이한 기운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그것은 곧 주유선의 기운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서로 반발하는 것처럼 말이다.

신유강은 놀라 눈을 부릅뜨며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서려 하였지만, 어느새 그의 어깨를 잡은 은하련이 조심스레 고개를 저었다.

쿠쿵!

또 한 번 몸이 크게 움직이자 조금 전보다 더욱 거센 기운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완벽하게 주유선의 기운을 밖으로 몰아내더니, 맹렬하게 기맥을 돌고 돌며 무너져 버린 신유강의 몸을 새로이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쩌저적!

신유강은 질끈 눈을 감고 그 기운을 다스리기 시작했다.

몸에서 무언가 변화가 느껴지기 시작한 것은 결코 착각이 아닌 듯, 조금 전부터 참으로 기이한 감각이 전신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기운들은 더없이 빠르게 움직인다.

처음 회귀신공을 얻었을 때 다스리지 못했던 것과는 달리, 지금 이 기운들은 마치 신유강 본인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의 의지를 따라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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