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8
회귀신공에 느낌이 강하게 들면서도 또 다르다.
마치 주유선이 가지고 있는 기운처럼 말이다.
그러나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는 신유강은 더욱 정신을 집중하며 기운을 몸 곳곳으로 퍼트리기 시작했다.
‘회귀한다.’
회귀신공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진 탓인가?
신유강은 그것을 이용해 회공을 이끌어 내기 시작했다.
반드시 가능하다.
굳은 마음을 느낀 것인지, 기운들은 더욱 맹렬히 움직이며 전신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찬란한 황금빛이 신유강을 뒤덮는다.
어느새 신유강의 몸에서 손을 뗀 주유선은 생각했던 것보다 빠르게 반응하는 그를 보며 히죽 웃음을 지었다.
“머리는 좋지 않아도 몸의 반응은 빠르군.”
* * *
당소혜는 빠르게 말을 몰아 하남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진소소와 신유강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지만, 그 해결책을 쉬이 내놓을 수 없다.
이대로 간다면 틀림없이 진소소와 신유강은 혼인을 할 것이 분명하다. 아직 봄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남아 있기야 했지만, 당소혜의 입장에서 지금의 신유강에게는 진소소를 줄 수가 없다.
무언가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여 그녀는 하남을 향했다.
이 혼인을 막기 위해서는 진명의 힘이 필요하니, 그에게 찾아가 말해 볼 심산인 것이다.
그렇다고 용을 붙잡은 하북진가가 쉬이 혼인을 파기할 것이란 생각이 들지는 않지만, 어쨌든 밑져야 본전이다.
말을 갈아타며 이동한 지 한 달 보름.
장원과 객잔이 불타 없어졌고, 이상해진 신유강과 함께 있는 진소소가 무척이나 걱정이 되어, 그녀는 쉰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끼니라고 해 봐야 고작해야 육포와 물.
옷조차 제대로 갈아입지 않은 탓에, 당소혜를 아는 이가 지금의 그녀를 본다 하여도 쉬이 알아보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당소혜는 흐르는 땀을 닦아 내며 숨을 골랐다.
머지않은 곳에 드디어 하남 땅이 보였다.
주위는 어둑하기 짝이 없으며,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하긴 자시(子時)가 넘었으니 돌아다는 이들이 있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그녀가 타고 있는 말은 상당히 지쳤는지 게거품을 물고 있다. 만약 조금 더 무리하게 질주를 시켰다간 틀림없이 쓰러질 터다.
당소혜는 내심 안타까웠으나 말에서 내려와 빠르게 몸을 날렸다.
일류 고수가 펼치는 경공이긴 하지만 딱히 빠르다는 느낌은 없다.
사천당가의 무공 특성상 경공술 또한 상당히 빠른 것이 분명한데, 채 절반의 속도조차 나지 않은 것은 당소혜 또한 상당히 지쳐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하아, 하아……. 거, 거의 다 왔어.”
거칠게 숨을 헐떡이며 더욱 발을 움직였다. 부들부들 다리가 떨리는 것은 물론 제대로 먹지 못해 입술마저 시퍼렇다.
조금 전 버려두고 왔던 말과 상태를 비교한다면, 틀림없이 말보다 당소혜의 상태가 더욱 좋지 않을 것이다.
“아아…… 이러다 정말 내가 먼저 죽겠네.”
물통을 꺼내 천천히 수분을 취하면서 씁쓸하게 웃는다. 하남으로 오기는 왔지만, 막상 진명에게 이 상황을 설명해야 하니 참으로 난감하기 짝이 없다.
사람이 갑자기 변해서 언니가 위험해요!
신유강이 뭔가 잘못 먹어서 머리가 이상해졌어요!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빙글빙글 돌고 있지만 마땅한 답을 찾아낼 수는 없었다.
당소혜는 아미를 찌푸리며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성안으로 들어가 객잔을 찾아 움직이고 있는 그녀는 조금이긴 하나 확실히 들떠 있는 듯했다.
하긴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씻지도 못했다. 오랜만에 편히 쉴 수 있는 장소가 있으니 좋을 수밖에.
그녀가 향한 곳은 평범하기 짝이 없는 객잔이다. 다른 화려하고 이름 있는 곳 또한 있을 것이 분명하지만, 치밀어 오르는 허기를 참을 수 있을 만큼 상태가 좋지 않다.
안으로 들어가자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대부분 무인인지 저마다 병장기를 가지고 있었으며, 기세가 남다른 탓에 절로 긴장감이 들 정도다.
아마도 무림맹 소속인 듯하다.
그러나 그들은 쥐 죽은 듯 소리조차 내지 않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힐끔힐끔 시선을 돌려 객잔 한편에 있는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의아한 마음에 당소혜 또한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익숙한 얼굴의 여인이 보였다.
“거…… 검후……?”
너무 놀라 입 밖으로 나온 말에 백리지연의 시선이 돌아갔다. 얼마나 많은 술을 마셨는지 주위로 술독이 가득하였고, 취기가 바짝 올라 얼굴마저 시뻘겋기 짝이 없다.
천하의 검후가 취하다니?!
굳이 내공을 운기하지 않아도, 검후 정도의 수준이라면 술이 몸으로 들어오는 순간 자연스레 해독될 것이 분명하다.
백대고수라 불리는 당초운이 그러한데 검후는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취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괘…… 괜찮으세요?”
“응? 아……. 아아……. 그 늙은이네 장원에 있던 아이구나…….”
백리지연은 흐리멍텅한 시선으로 당소혜를 바라보더니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취기가 바짝 오른 탓에 잘 구분되지는 않지만 틀림없는 당소혜다.
목소리가 같으니까.
“느…… 늙은이네?”
“호호호, 그렇지 늙은이지! 끅! 그 나이 먹고 어린애 행세를 하더니 우리 사부가 조금 이상해졌지?”
도무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지 못한 당소혜가 멍한 표정으로 서 있자, 백리지연은 비틀거리는 몸을 억지로 움직이며 일어섰다.
한 차례 크게 휘청인 탓에 넘어질 뻔하였으나, 그녀는 간신히 자세를 잡으며 당소혜의 어깨에 몸을 기댄다.
“끅, 자! 가자!”
“어……. 어디를요? 저, 저는 배가 고파서 밥을 먹으러…….”
“호호호, 이 언니가 맛있는 집을 알지.”
“네에?”
“자, 가자! 일단 주가장으로 돌아가 그 늙은이한테 한 소리 하지 않으면 분이 안 풀릴 것 같으니까 말이야, 호호호.”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당소혜는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오랜만에 맛있는 음식을 먹고,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싶었던 것뿐이다.
연신 휘청대는 백리지연을 간신히 지탱하며 당소혜는 울상을 지었다.
그렇게 객잔을 빠져나가는 두 여인을 향해 누군가 매서운 눈빛을 뿌렸다.
* * *
신유강은 눈을 떴다.
형형한 황금빛 안광이 번뜩이자 주위에 기이한 기파가 몰아치며 집기들이 들썩였다. 창이 열려 있는 것 또한 아님이 분명한데, 시원스레 그의 머리가 사락사락 움직인다.
“후우…….”
숨을 내뱉는 것과 동시에 황금빛 무언가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였는지, 아무도 없는 방 안을 둘러보며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신유강의 몸은 완벽한 알몸이다.
그가 앉아 있던 자리에는 부식되어 버린 옷가지들과 말라비틀어진 살 조각들이 역겹기 짝이 없는 냄새를 풍겨 대고 있었다.
방 전체에 약취가 심하여 두통이 날 지경이다.
자리에서 일어선 신유강은 침상 옆에 고이 놓여 있는 옷가지를 발견하고 주섬주섬 그것으로 갈아입었다. 아마도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 판단한 은하련이 미리 놓아 둔 모양이다.
옷은 그의 몸에 딱 맞았다.
마치 재어 본 것처럼 어디 하나 이상한 곳이 없을 정도다.
“하하…….”
신유강은 웃음을 지었다.
왠지 모르게 기억조차 나지 않는 어머니의 애정을 받은 기분이다.
그러나 곧 입가에 미소를 지우며, 역한 냄새를 없애기 위해 조심스레 창문을 열어젖혔다.
시원한 바람이 몰아쳐 들어오자 신유강은 한껏 숨을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뱉었다. 마치 상쾌한 공기를 마시는 것이 상당히 오랜만이라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신유강은 이 악취가 나는 공간에서 약 한 달이 넘게 앉아 있었으니 말이다.
“얼굴은…… 제대로 돌아왔군.”
굳이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안다.
슬쩍 들어 올린 손으로 만져 보아도 살이 느껴지는 감촉에 절로 기분이 들뜬다.
예전보다 확실히 피부가 좋아진 느낌마저 드는 것은 결코 착각이 아닐 것이다.
영약이 없으면 안 된다는 소리를 하던 때를 떠올린다면 참으로 기연이나 다름없는 일을 겪은 것과 같았기에, 신유강은 쉬이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깨어났군요.”
그때 문이 열리며 한 여인이 안으로 들어섰다.
나이는 정확히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린 모습이기는 하나, 기이하게도 분위기는 이미 스물이 넘은 듯하다.
신유강은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스승님과 사모께선 어디 계십니까? 감사 인사를 하려 합니다만…….”
“……주 대협으로부터 전갈입니다. 이만 볼일을 다 보았으면 이곳에서 꺼지라 하십니다.”
“…….”
신유강은 순간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은 아닌가 하는 표정으로 여인을 바라봤다. 그러나 여인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은 표정으로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모든 일이 정리가 되면 한번 그 여인과 주가장에 들르라 하십니다. 꼭 해 줄 이야기가 있다고 하셨으니, 일이 정리되는 대로 다시 주가장을 찾아오셔야 할 겁니다.”
마치 명령을 받는 기분이다.
말은 고분고분하기는 하나, 왠지 모르게 꺼림칙한 느낌이 들었다.
신유강이 고개를 끄덕이며 어색한 표정을 짓자, 그 모습 때문인지 여인은 눈을 반짝 빛냈다.
“그럼 차후에 또 뵙도록 하겠습니다. 소가주…….”
“아……. 그, 그러시오. ……소가주?”
무언가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을 들은 것 같으나 여인은 어느샌가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 청랑이 사라질 때보다 더욱 은밀하며 눈치를 챌 겨를조차 없다.
신유강은 머리를 긁적였다.
“이상한 여인이로군…….”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여인을 떠올리며 조심스레 밖으로 나섰다.
그가 있는 곳은 객방 쪽이 아닌, 본가 사람들이 사용하는 곳인지라 모습을 드러내는 것과 동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신유강을 바라봤다.
꾸벅꾸벅 고개를 숙이며 예를 취하는 것이 단순히 객을 대하는 꼴로는 보이지 않았기에 신유강은 더욱 어색한 표정이다.
슬그머니 그들을 피해 객방 쪽으로 줄기차게 달렸다. 여전히 사람들이 신기하다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기에, 그것이 상당히 거북스러운 모습이다.
사천에 있는 그의 장원보다 넓디넓은 주가장은, 고작해야 객방이 있는 곳을 향하고 있는 것임이 분명함에도 한참이나 더 달려야 했다.
도대체 얼마만큼 큰 곳인지’
어느새 본가 쪽을 벗어나 객방이 있는 전각이 보이자 서서히 사람들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애초에 주가장을 찾아오는 손님이 없으니 이곳을 오가는 이 또한 없는 것이다.
신유강은 걸음을 멈추고 숨을 들이켰다.
“더럽게 머네.”
가도 가도 끝이 없다 함은 바로 이러한 것을 놓고 하는 말일 것이다. 상당히 빠른 걸음걸이를 걷고 있음이 분명한데 당최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다.
신유강은 인상을 찌푸렸다.
단전에 있는 내공을 끌어 올리며 여유롭게 힘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선선운현무의 경공을 시전하는 것과 동시에 그의 신형이 맹렬히 앞으로 쏘아져 나아간다.
“하하!”
회귀신공의 기운을 가지고 있을 때보다 가벼운 느낌.
더욱이 그 속도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빠르다. 아마 천하제일의 경공을 가지고 있다고 일컬어지는 우자혁과 승부한다 해도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순식간에 주변 사물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멀게만 느껴졌던 전각이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왔다.
“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