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신공-192화 (192/200)

# 192

마치 생사(生死)의 기로에 놓여 있는 사람처럼, 거칠게 뛰는 마음을 쉬이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백리지연과 당소혜를 떼어 놓고 홀로 움직이고 있는 이유 또한 조금더 자신을 갈고닦기 위함이다.

말없이 빠져나온 탓에 후일 그녀들에게 욕을 얻어먹을 것이 분명하나, 신유강은 한시도 몸을 움직이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입장이다.

그가 서 있는 주변은 그야말로 폐허를 연상케 했다. 인간의 힘으로 자연을 무너트리기라도 할 심산인 것인지, 계속해서 주먹과 발을 움직일 때마다 폭음과 함께 산의 형태가 바뀌어 가는 느낌이 들 정도다.

벌써 삼 일이란 시간이 흘렀다.

쉬지도 않고 주먹질을 하였으니 지치는 것은 필연, 신유강은 전신에 식은땀을 흘리며 털썩 주저앉았다.

“지친다는 건 정말 힘들군.”

피식 웃으며 어이없는 말을 한다.

따지고 보면 이것이 당연히 느껴야 하는 것임이 분명하나, 회귀신공을 익혔던 신유강은, 다른 이들과는 좀 많이 다르다.

그는 지치지 않으며 상처조차 생기지 않는다.

그렇다고 지금은 다르냐고 묻는다면 비슷하나 조금은 다르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신유강은 주저앉은 자리에서 내공을 돌리기 시작했다.

운기행공으로, 평소라면 거들떠도 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단전에 머물렀던 기운들이 빠르게 돌기 시작하며 몸의 피로는 물론 간간히 보이는 자잘한 상처들을 빠르게 치유해 나갔다.

과거 회귀신공을 가지고 있었을 때보다 명백히 불편한 상황임이 분명하지만, 신유강은 지금 그가 익히고 있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무예에 가깝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과거의 회귀신공과 회천공은 한 쌍이며, 무예로 취급하기보다 신기(神技)에 가깝다 해야 할 것이다. 인간을 신의 반열로 올려놓기 위한 것이 바로 그것들이었기에, 오히려 지금이 더욱 마음이 편하다.

지칠 줄 알며 한계를 알고,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화감이 있어야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눈을 뜬 신유강은 기운을 갈무리하며 털썩 자리에 드러누웠다.

화창한 하늘이 보였다. 힘겨우리만큼 몸을 몰아붙인 탓에, 흐르는 땀조차 굉장히 기껍다.

아마도 회귀신공을 만들고 그것을 익히고 있었던 현선자 또한, 과거 자신이 누렸던 인간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회귀신공을 잃으면서 그 내용마저 흐릿하여 떠오르지 않지만 아직까지 확실히 생각나는 것은, ‘결코 이것을 익히지 마라.’라는 한 구절이었기 때문이다.

“천하제일의 무인, 인간으로서 오를 수 없는 영역에 올려놓는 힘이라……. 과하기는 하지.”

주유선이 만들어 낸 무공의 기본은 바로 회귀신공과 회천공이다. 그러나 현선자가 만들어 놓은 그것처럼 신의 영역에 발을 들이미는 것이 아닌, 완벽한 무예로 탈바꿈시켜 놓았다.

들은 기억이 있다.

기연고서점이라는 곳은 책을 빌려 줌과 동시에 그보다 더욱 상승의 무예를 받아 챙기고, 고서점의 주인들은 더욱 그것을 갈고닦아 새로운 무공을 창안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우스운 소리 같아 보이기는 하겠지만 실제로 주유선이 만들어 낸 무공은, 무예로서 회귀신공을 웃돌고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으으음.”

신유강은 몸을 일으켰다.

마음 같아선 당장 사천으로 달려가 진소소를 끌어안아 주고 싶지만, 아직까지 더욱더 정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확연하게 깨닫고 있다.

조금 더 높이, 높이 오르지 않는다면 또다시 당하는 것은 자신이 될 것이다. 이번만큼은 결코 그놈이 원하는대로 흘러가게 두지 않을 것이다.

“이보게. 자네, 괜찮은가?”

그때 누군가 다가온 것인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미 기척을 느끼고 있었던 신유강은 힐끗 시선을 돌려 그 사람을 바라봤다.

허름한 차림의 중년인이다.

사냥꾼인 것인지, 허리에는 상당히 커다란 노루 한 마리를 메고 있었고, 건장한 체격과 태양혈을 보아 상당수준의 무인이기도 한 듯하다.

“내가 자네를 놀래켰는가? 왜 그리 뚫어지게 바라보는가?”

중년남자는 호탕한 표정으로 다시 한 번 물었다. 아마도 대답이 없는 신유강의 행동을 보며, 긴장하고 있는 것이라 판단한 것 같았다.

그러나 신유강이 대답을 하지 않았던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그의 등에 메고 있는 노루 한 마리가 너무나도 맛깔스레 보였기 때문이다.

회귀신공을 익힌 상태라면 언제나 최적의 상태를 유지시켜 주니 배고픔 또한 제대로 느끼지 못하나, 지금 그는 몸을 격하게 움직인 탓에 상당히 허기가 진 상태다.

아니나 다를까.

꾸르르-

“하하하! 자네 배가 고픈가 보구만. 이 근방에 우리 집이 있으니 그곳으로 가세. 내 이 노루를 맛나게 구워 줌세.”

“괜찮겠습니까?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래 보여도 나 또한 한 수 재간이 있는 사람이네. 주변을 보니 자네 또한 상당한 무인인 듯 보이기는 하네만…….”

슬쩍슬쩍 주위를 둘러본 남자는 허심탄회(虛心坦懷)하게 껄껄 웃으며, 신유강의 어깨를 탁탁 두드렸다.

“내 상대는 되지 않을 것이네 하하하.”

“그것 참, 대단한 고수입니다.”

“그렇지? 이래봬도 곰이랑 싸워도 지지 않으니까.”

곰이랑 싸워지지 않는다고 말해 봐야 그의 태양혈 수준은 그리 높지 않다. 당소혜 정도와 비교한다면 좋은 승부가 될 것이겠지만, 신유강과는 애초에 비교조차 할 수 없다.

그러나 신유강은 기분 좋게 웃으며 뒤를 따랐다.

왠지 모르게 이 남자가 마음에 든 모양이다.

“헌데 상당히 깊은 곳에 사십니다. 근방에는 민가도 보이지 않기에, 사람이 없을 거라 여겼습니다만…….”

“하하, 그렇지. 워낙 깊은 곳이라 사람도 안 오니 적적하기는 하네. 하지만 자연을 벗 삼아 살고 있는 나에게 있어 아주 좋은 환경이지.”

“자연을 벗 삼아…….”

“그렇지. 인간과 자연은 하나이지 않은가. 성도나 다른 마을에 가 봐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돈 벌 궁리나 하다가 가는 저 세상, 기왕이면 마음에 드는 곳에 살면서 걱정 근심까지 없으면 더욱 좋지 않은가.”

마치 신선이라도 된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신유강은 그가 결코 은거기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다. 그저 정말로 이런 산골에 처박혀 사는 것이 마음에 드는 것뿐일 터다.

신유강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혹시 죄라도 진 적 있습니까?”

“죄?”

“보통 이런 산 깊숙한 곳에 사는 사람들은, 도적이나 산적을 본업 삼아 살던 이들이 아닙니까.”

“하하, 절대 그런 사람은 아니니 안심하게. 그저 이 땅에서 조상 대대로 살아온 것뿐이니 말일세.”

“조상 대대?”

“그렇지.”

남자는 더 이상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 껄껄 웃으며 계속 앞으로 걸어나갔다.

평범한 걸음걸이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기실 한 걸음을 걸을 때마다 나름 빠른 속도로 나아간다. 경공이라 말을 해도 좋을 정도로 움직임이 좋았는데, 그것은 단순히 내공을 이용한 보법(步法)에 지나지 않는다.

무공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평민들이 본다면 필시 선인의 걸음걸이라 할 테지만, 신유강은 태연하게 그의 옆을 걷고 있었다.

“정말 대단한 젊은이로군. 이 걸음걸이라면 달리는 토끼도 따라잡을 수 있는데 말이네.”

“하, 토끼를 따라잡을 수 있는 보법이라……. 참 대단하군요.”

슬그머니 삐딱한 표정으로 대답했으나 남자는 전혀 기분 나쁜 표정이 아니다. 오히려 바짝 쫓아 걷는 신유강에게 따라잡히고 싶지 않은 것인지, 더욱더 속도를 내며 걷고 있었다.

남자는 어느새 송골송골 식은땀이 맺히기 시작하였고, 숨 또한 거칠어지고 있었다. 그나마 신유강은 아직까지 고른 숨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어느새 그의 얼굴에도 땀이 맺히고 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의 걷기 싸움은 상당히 오랜 시간 벌어졌다. 애초에 있던 곳에서 남자가 사는 곳까지는 상당히 먼 거리였고, 보통 사람이라면 족히 세 시진은 걸어야 했을 터다.

그 시간을 절반으로 줄여 버린 것은, 두 사람이 얼마나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는지 잘 알려 주는 일이라 할 수 있다.

“헉헉…….”

“하아, 하아…….”

신유강과 남자는 커다란 오두막 앞에 서서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기본적으로 신유강보다 내공 수준이 낮은 남자는, 다리에 힘마저 풀렸는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인상을 찌푸렸다.

“자네 정말 빠르군. 내 아무리 노루를 짊어지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설마 그렇게까지 나란히 걸을 줄이야.”

신유강은 실소를 머금었다.

숨이 좀 차기는 하지만 이 정도는 아직 거뜬하다. 또한 남자의 오두막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고, 따라가는 입장이었던 탓에 나름대로 사정을 두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실 신유강이 마음을 먹었다면 상대가 될 리가 없다.

“후우……. 생각했던 것보다 빨라 저 또한 힘들었습니다.”

신유강은 살짝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보며 웃었다. 노루를 짊어졌다는 말을 하며 결코 이 승패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기에, 그것이 꽤나 우스웠던 모양이다.

“그런데 혼자 사시는 게 아니였습니까?”

“응? 아아, 그렇지. 여우 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자식들이 있네.”

“산속에 살면서 혼인까지 했다는 게 사뭇 놀랍습니다.”

“하하, 자네 은근히 말투가 비꼬는 것 같지 않은가? 이래 뵈도 잘생겼으니 여자 한둘 꼬이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또다시 되도 않은 자신감을 내비치는 남자의 말에 신유강은 어안이 벙벙한 모습이다. 최근 들어 어이없는 일들이 연속으로 벌어지더니, 만나는 사람들마저 기이하기 짝이 없다.

작게 한숨을 내쉰 신유강은 조용히 고개를 돌려 오두막을 바라봤다.

상당히 멋드러지게 지어 놓은 곳이며, 주위에는 밭이니 뭐니 자급자족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세 명의 아이들이 주위를 총총 뛰어다니고 있었으며, 그리 아름답다고는 할 수 없으나 괜찮은 외모를 지닌 중년 여인이 신유강과 남자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어머, 오늘은 노루로군요. 그리고 사람까지 잡아 오시고…….”

여인이 재미있다는 듯 남자와 신유강을 번갈아 바라보며 키득키득 웃었다. 이런 깊은 산중에서 사람과 만났다는 사실이 영 믿어지지 않는 듯하다.

그러나 이내 반갑다는 듯 다가왔다.

“손님은 정말로 오랜만이네요. 우리 남편의 친구분은 아닌 듯한데…….”

“신유강이라 합니다. 산속에서 퍼져 있었는데 우연찮게 남편분을 만나 따라오게 되었습니다.”

“호호, 그렇군요. 잘 오셨어요. 그렇지 않아도 사람을 만나고 싶어 적적하던 찰나였거든요. 자자, 그런 곳에 있지 말고 안으로 들어오세요.”

여인은 꽤나 살갑게 신유강을 대하고 있었다. 처음보는 사람이니만큼 자연스레 경계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함이 옳을 테지만, 그러한 낌새를 전혀 풍기지 않는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당신은 그 노루를 손질하도록 해요. 저는 차라도 한 잔 대접해 드려야겠네요.”

“그래, 금방 끝내도록 하지. 하하.”

오랜만에 손님이 찾아온 탓에 여인이 상당히 들떠 있음을 깨달은 남자는 호방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반대로 아이들은 처음 보는 신유강을 경계하는 것인지, 한쪽 구석에서 힐끔힐끔 그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것이 보였다.

때문에 신유강은 상당히 곤혹스러운 모습이었으나 이내 여인의 목소리가 조용히 들려왔다.

“아이들은 신경 쓰지 말아요. 우리를 제외한 다른 사람을 보는 건 처음이라 겁을 먹은 거랍니다.”

“그렇군요. 헌데, 왜 이런 곳에서 사는지 이유를 물어도 됩니까?”

“어머, 남편에게 듣지 못하였나요?”

“대강은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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