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신공-193화 (193/200)

# 193

자연을 벗 삼아, 라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심하다는 생각을 떨쳐 낼 수 없었다. 혼자 사는 것이라면 나름 이해할 수도 있지만, 아이들은 물론이며 부인까지 있으니 당연하다.

신유강은 그 연유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신 공자라고 부를게요. 자연을 벗 삼아 산다는 건 틀린 말이 아니에요. 저 역시 마음에 들기도 하니까요, 호호.”

커다란 오두막 안으로 들어서며 들려오는 말에 신유강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웃으며 말하고는 있지만, 그녀 또한 괜한 소리를 하고 싶지는 않은 것인지 무언가 숨기는 느낌이 확연하게 들었다.

신유강은 더 이상 캐물을 수 없었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익숙한 무언가가 느껴지고 있다.

기실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남자를 따라온 이유는 바로 그것에 있다.

물론 노루 고기가 먹고 싶었다는 것 또한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보다 더한 것은 바로 저 남자의 몸에서 나는 진득한 기운이다.

마치 회귀신공을 익혔을 때와 같았던 느낌. 그러나 확연하지 않고 옅은 느낌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 정체를 확신할 수 없었다.

“그건 그렇고 어디 사람이죠?”

“사천입니다.”

“호호, 사천이라…… 가 보지는 않았지만 정말 좋은 곳이겠죠?”

여인은 웃으며 초롱초롱 눈빛을 냈다. 어느새 가지고 온 차를 조심스레 따라주면서도 계속해서 이야기해 보라는 듯, 신유강을 재촉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아마도 이런 산속에 갇혀 있었으니, 사람이 많은 대도시에 대한 그리움 또한 없지 않아 있을 것이다.

“좋은 곳이라……. 그리 말한다면 분명 좋은 곳이기는 합니다.”

“호호, 그렇죠? 저는 태어나 한 번도 사람이 많은 곳에는 가 본 적이 없어서, 죽기 전에는 꼭 가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사람이 많은 곳이라면 이곳 섬서 또한 다르지 않을 겁니다. 성도만 가더라도 바글바글하지 않습니까?”

“성도요?”

성도라는 말에 그녀는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그 모습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성도에는 가 본 적이 없는 듯하다.

신유강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볼을 긁적였다. 무어라 설명해야 할지 막막한데, 여인은 계속해서 그 답을 원하는 듯한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마치 이 산에서 벗어난 적이 없으신 것 같은 말투이십니다.”

“맞아요. 저는 태어날 때부터 이곳에 있었어요. 물론 남편도 같지요.”

싱글싱글 웃으며 신유강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바깥세상에 대한 환상 때문인지 상당히 들떠 보이는 표정이었으나, 이 산을 벗어난 적이 없다는 말을 하는 그 순간 왠지 모를 씁쓸함이 감돌고 있었다.

“우리 남편은 이곳 출신이에요. 그리고 저는 천애고아로 어린 시절 거두어져 들어왔죠.”

그 이상 말을 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

어떠한 혈족인지는 잘 알지 못하지만 대를 이어야 하니 직계가 여인이면 남자를, 남자면 여인이 필요했을 것이다.

때문에 누군가 산을 내려가 아이를 사 오거나 납치해 온 것이 분명하다.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일인지라 그것에 대해 크게 분노하지는 않았다.

종종 거지굴에 있던 아이들이 사라지는 일이 있는데, 들은 이야기로는 아이가 필요한 집안에서 강제로 납치하여 데려가든가, 혹은 인육이 필요한 이들이 끌고 가 잡아먹는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이 눈앞에 있는 여인은 전자인 셈이고, 꽤나 운이 좋은 상황인 것이다.

신유강은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돌렸다.

작은 창가 사이로 아이들이 보였는데, 눈이 마주치자 화들짝 놀라 도망가는 것이 보였다. 경계를 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기는 하나, 괜스레 나쁜 놈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참으로 곤혹스럽다.

그리고 그때, 오두막 문이 벌컥 열리며 남자가 안으로 들어섰다. 시뻘겋게 피가 묻은 양손을 헝겊에 닦아 내며 슬쩍 신유강을 바라본 그는 여전히 호방한 웃음과 함께 입을 열었다.

“하하, 조금만 기다리게 손질을 끝냈으니 이제 굽기만 하면 된다네. 안사람은 저녁 준비를 해야 하니 이제 바쁠 테고……. 으음……. 딱히 도와줄 일도 없으니 책이라도 보고 있는 게 어떤가?”

책이라는 말에 신유강은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산을 내려가지 않는다 들은 것 같은데 어디서 책을 구했단 말인가?

“책이 있습니까?”

“바깥에서는 구할 수 없는 진귀한 것이지. 뭐니 뭐니 해도 우리 조상님들이 대대로 쓰신 것들이니 말이네.”

남자가 슬쩍 방 한구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신유강의 시선 또한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돌아갔다.

아니나 다를까, 커다란 책장에는 꽤나 수북이 책이 꽂혀 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척 보아도 상당히 낡은 것임을 알게 해 주었다.

신유강이 고개를 끄덕이며 책장으로 다가서자 탁! 소리가 나며 오두막 문이 닫혔다. 그제야 조용해진 것을 느끼며 가장 눈에 띄는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제목조차 쓰여 있지 않았기에 어떠한 내용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책을 집어 든 신유강은 다시금 본래 앉아 있던 자리로 돌아가 천천히 첫 장을 넘겨보았다.

흐릿한 글씨는 무어라 써져 있는지 잘 알지 못할 정도다. 글씨 또한 명필이라 부를 수 없을 정도로 난잡하여 눈이 다 아플 정도였다.

“현…… 선?”

구절의 시작은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것이다. 어딘가 익숙하기 짝이 없는 이름인지라, 저도 모르게 그것에 빠져드는 기분이다.

워낙 난잡하고 희미한 글씨라 제대로 읽는 것이 불가능했으나, 신유강은 그 책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자…….”

꿀꺽하며 마른침 넘기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그만큼 긴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다른 때보다 크게 들리는 것 또한 결코 착각이 아닐 터다.

책을 읽고 있는 신유강의 모습을 창문 밖에서 확인하고 있는 일남일녀가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한 채, 신유강은 여전히 그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회천공은 천지를 담았다.

내 양손은 사람의 피를 물들어 갔고, 내 마음마저 피로 얼룩져 버렸다. 무림의 정점에 올라 모든 이들을 굴복시키며 한세월.

허나, 나는 보다 강한 것을 원한다.

천지를 담는 것이 아닌, 그것을 뒤집고 뒤집으며 과거마저 역행(逆行)하고, 흐름마저 바꿀 수 있는 그러한 것을 원한다.

무인으로서 가장 높은 곳, 누구도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곳에 올라, 대대손손 이 현선자라는 이름이 후대에 전해질 만큼.

나는 높고 높은 곳에 오르려 한다.

그것이 설령 피로 얼룩진 역사라 하여도.

그 다음 구절부터 한동안은 글씨가 보이지 않을 만큼 흐릿하여 읽을 수조차 없었다. 그러나 신유강은 재빠르게 장을 넘기며 읽을 수 있는 부분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몇 장을 넘겼음에도 불구하고 다음 구절은 쉬이 보이지 않는다.

인상을 찌푸린 신유강이 더욱 빠르게 장을 넘겨 가장 뒷부분을 펼쳐 보자, 다행히 읽을 수 있는 문장이 남아 있었다.

세월을 역행(逆行)하니, 이제 나는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 자가 되어 버렸다. 천하를 되살리고 뒤집고를 되풀이하며, 나의 힘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어느 무인조차 도달하지 못한 경지에 올라 몇 번이고 같은 세월을 굽어보며, 천하의 다시없을 나쁜 놈이 되어보기도 하였고, 누구라도 공경하는 대협이 되어 보기도 한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회귀신공이라는 힘이 있어 잘못된 인생조차 되풀이할 수 있기에, 어떠한 삶을 살더라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허나, 문제는 그 다음 문장이다.

그러나 마음은 점점 피폐해져 간다.

원하는 만큼 과거로 돌아가면 돌아갈수록, 그곳에 있던 나를 상처 입히고, 죽지 않을 정도로 가둬 고문을 가하는 것에 익숙해져 간다.

글씨가 떨리고 있다.

가뜩이나 난잡한 글씨인데 떨리기까지 하니 제대로 읽을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신유강은 미간을 찌푸리며 계속해서 읽을 수 있는 문장을 찾아갔다.

내 힘은 점점 감당할 수가 없을 정도로 커져 간다.

어느 순간부터 원치 않은 회귀가 계속되고, 몸이 점점 나른해져 간다. 이 힘을 완벽히 다루고 있는 이 내가 말이다.

점점 불행해지고 있다.

인생이 꼬이며,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것 같다.

불안하다.

신유강은 부들부들 몸을 떨며 다음 장을 넘겼다.

사락, 종이가 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얼마 남지 않은 문장이 여지없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나는 죽어 간다.

회귀신공의 힘이 몸에 생기를 빨아들이기 시작하여, 몸은 마치 목내이와도 같은 몰골이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생기마저 흡수해 하나하나 그들을 죽였다.

누구와도 같이 있을 수가 없다.

외롭다.

…….

결국 그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며, 회귀신공을 폐하고 봉한다.

“하, 하하…….”

마지막 장을 넘긴 신유강은 저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렸다.

처음 회귀신공을 익혔을 당시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저도 모르게 몸이 떨린다.

저런 무시무시한 마공을 익히고 있었단 말인가?

종국엔 주변 사람들의 생기마저 빨아들여 힘으로 축적시키는 회귀신공은, 그야말로 마공 중 마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털썩 주저앉은 신유강은 파르르 손을 떨며 이마를 짚었다. 머릿속이 심하게 헝클어져 아무런 생각조차 나지 않을 정도다.

그런데 이 책이 왜 이런 곳에 있는가?

번뜩 무언가를 떠올린 신유강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갔다.

그러나 주위는 휑한 산만이 가득하다.

“이게 무슨…….”

사람이 있었다는 흔적이라고는, 노릇하게 구워지고 있는 노루 한 마리가 전부다.

그밖에 밭은 물론, 이곳으로 그를 데리고 왔던 남자와 여인, 그리고 두 어린아이들조차 보이지 않았다.

신유강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허 참…….”

다시금 등을 돌려 오두막을 바라보았지만 그것 또한 보이지 않는다.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라곤 막연한 수풀뿐.

그러나 현실이라는 것처럼, 그의 손에는 현선자의 책이 고스란히 들려 있었다.

“미치겠군…….”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지니만큼, 신유강은 머리를 벅벅 긁적이며 나지막한 한숨을 토해 냈다.

* * *

콰직!

“크아아악!”

엄청난 괴성과 함께 한 남자가 자리에 주저앉아 괴성을 내질렀다. 근육이 파열되고 뼈마저 부러져 나간 양손은 너덜너덜 움직인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상대는 사천칠도(四川七刀)라 불리는 이들. 그리 대단한 문파 소속나 세가 소속은 아니나, 중소 문파 쪽에서는 상당히 이름을 날린 이들이다.

주위에는 괴성을 내지르는 이를 제외하고 네 명의 인물들이 숨을 꼴깍꼴깍 넘기며 쓰러져 있었고, 선 자 중 남은 두 명은 눈앞에 있는 상대를 바라보며 파르르 몸을 떨었다.

도를 쥐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압도적인 전력을 앞에 두고 겁을 집어먹은 것이다.

“왜 그러는가?”

신유강과 같은 얼굴, 같은 목소리를 내뱉고 있는 그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마치 언제라도 손을 써 보라는 듯 자못 여유로운 표정 또한 역력하다.

“으으…….”

“이 권무존의 이름을 가지고 싶은 것이 아니었던가?”

싸늘한 한 마디에 곳곳에서 마른침 넘어가는 소리가 가득하다. 그곳에 모여 있는 이들 중에는 사천칠도를 제외하고도, 청성과 아미, 상당히 이름 있는 세가의 자식들 또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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