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
“그 연놈들은 마존께서 데리고 가셨다.”
“늙으신 분께서 무슨 연유로?”
“도우겸은 모르겠다면 청랑의 능력을 높이 산 것이겠지. 마교로 돌아가 제대로 키워 보려는 심산인 듯하다. 아마 천산마교가 발칵 뒤집히겠지.”
흑호는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키득키득 웃음을 지었다. 지난번 신유강이 마교의 후계자라 생각했을 당시 부교주가 취한 방법을 생각해 본다면, 결코 못지않은 암투가 벌어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사실이다.
“이곳에 있어 봐야 네놈 뒤치다꺼리나 할 것이 분명하니, 그년 입장에선 오히려 마존의 제자가 되는 것이 훨씬 나은 인생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군요.”
“뭐, 돌아온다고 말을 하기는 했지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고, 난 어차피 그년이랑은 안 맞아서 관심도 없고.”
흑호는 어깨를 으쓱하며 히죽 웃었다.
성격 좋고 호방한 그에게 있어 청랑은 껄끄럽기 그지없는 소녀다. 질문을 해 봐도 돌아오는 것은 단답인데다, 조금이라도 옷깃이 부딪히면 사람을 변태 보듯 쳐다본다.
때문에 지금까지 최대한 청랑과 마주치지 않으려 노력을 한 그다.
“그래, 이제 어쩔 생각이냐?”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흑영은 쓸데없는 소리가 오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사천에 온 것까지는 좋으나 상대가 상대다.
이미 천마존에게 대부분 이야기를 들었던 탓에 어느 정도 상황을 인지하고 있다. 함부로 몸을 움직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마저 깨닫고 있었다.
“정면에서 받아야지요. 정정당당하게 놈의 목을 꺾어 볼 생각입니다.”
“무서운 이야기를 참으로 쉽게 하는구나.”
“나를 죽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그렇지요.”
신유강은 실소를 머금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안다. 만약 생각했던 대로 그의 진정한 목적이 죽음이라는 것에 있다면, 망설임 없이 과거의 신유강, 자신을 죽이는 것이 가장 빠르기 때문이다.
“네놈이 잡히더라도 우린 구해 줄 수 있는 입장이 아니지. 진소소를 데리고 안전한 곳으로 빠져나가는 것 정도밖에 할 수 없다.”
흑영은 진중한 표정으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을 이야기했다. 그들의 능력은 뛰어나나 애초에 신유강을 상대로 정면으로 부딪힌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가 없다.
더욱이 천마존을 이긴 괴물이라 하지 않던가.
“아니, 괜히 나서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애초에 소소를 데리고 나간다 하더라도 순간에 잡힐 것은 뻔하니까요.”
회귀신공의 능력이라면 도망을 간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이야기다. 쫓는 상대가 밟았던 그 자리에 다시금 불러오기만 하면 되는 일이니만큼, 결코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라는 것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놈이 익힌 것은 완벽한 회귀신공과 회천공이다.’
물론 신유강이 익히고 있는 것 또한 못지않은 능력을 자랑하기는 하지만 물건을 회귀시키거나, 과거로 돌아가는 능력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한 마디로 시간의 흐름을 강제로 거스르는 것이 불가능하며, 때문에 죽을 위기가 있다 해도 회공이나 귀공을 사용할 수는 없다는 소리다.
지금 신유강이 가지고 있는 것은 고작해야 상대의 내공을 되돌리는 능력과 약간에 치유력 정도, 순식간에 당할 수 있는 확률 또한 있다.
그러나 신유강이 가지고 있는 무공은 대단하다.
확인해 보지는 않았으나, 회귀신공을 깰 수 있는 무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허면 정말로 당당하게 정면에서 싸울 생각이냐?”
흑호가 미친놈 보는 눈빛을 보냈다.
신유강이 강하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상대가 상대이니 최대한 목숨을 보전하면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짜는 것 또한 전략 중 하나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흑호가 보기에 지금 신유강은 마치 죽으러 가는 사람같다.
그러나 신유강은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죽을 생각은 전혀 없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다만 걱정이 되는 것은 소소의 상태이니만큼, 제가 놈을 유인해 낸다면, 황룡객잔으로 들어가 소소를 만나셨으면 합니다.”
“그 정도야…….”
“또 사천이 한바탕 뒤집어질지도 모르니, 되도록 사람들이 제가 있는 쪽으로 몰리지 않게 해 주었으면 합니다.”
“얼마 있지 않아 검후와 당소혜가 도착하니 일단 당가와 청성, 그리고 아미의 전서를 뿌리도록 하지. 그밖에는?”
“그 정도면 됩니다.”
신유강은 호흡을 조절하며 크게 뛰기 시작하는 심장을 안정시켜 간다. 아무리 강한 무공을 익혔다고는 하지만 회귀신공을 익히고 있을 때와는 달리, 죽음에 대한 공포와 그가 익히고 있는 무공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진정하려 애를 써 봐도, 쉬이 되지 않는다.
이런 것이 흔히 말하는 생사투를 앞둔 사람의 심정인 것인가?
강한 무공을 익히고, 천하의 적수가 없을 것이라 여기고는 있으나, 어쩌면 흑호의 생각대로 죽으러 가는 사람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하하.”
신유강은 어색한 웃음을 터트리며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보(一步)를 내딛는 걸음에는 선선운현무의 흐름을 보는 것 같은 움직임이다.
그러나 한 걸음을 나아가 앞으로 뻗어 나가기 시작하는 그의 모습은, 선선운현무라기보다, 마치 용 한 마리가 승천하는 듯한 거센 느낌이 들고 있었다.
흑영과 흑호는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져 버리는 신유강을 바라보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뭐라 이로 말할 수 없는 전율이 일기도 하였으나, 그보다 더욱 확연하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신유강이라는 남자에 대한 두려움이다.
“저놈과 저놈이 부딪히며 어찌 되는 거요?”
“글쎄……. 마을 하나가 날아가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군.”
* * *
그의 주위에는 수많은 이들이 날카로운 병장기를 뽑으며 기수식을 펼치고 있었다. 낭인들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기세를 풍기고 있었으며, 살기가 자욱하게 피어올라 살을 애는 듯하다.
“정말이지 지치지도 않는군.”
그러나 여유를 가지고 있는 그는 조소(嘲笑)를 머금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단순히 산책을 하기 위해 객잔을 나왔을 뿐인데, 흔히 말하는 정의를 내세우며 우르르 그를 향해 몰린 것이다.
“낭인들도 있고, 팔대세가 쓰레기들도 몰려 있군. 신분을 감추고 나를 제거할 심산인 것이오?”
정도의 쫓기고 쫓기며 수많은 팔대세가의 인물들은 본 그다. 자연스럽게 그것이 머릿속에 남아 있으니, 그들은 설령 신유강을 처음본다 하여도, 그는 확연하게 얼굴을 알고 있는 것이다.
하북진가가 더 이상 힘을 늘리는 것을 원치 않았던 팔대세가의 인물들이 흠칫 몸을 떨었으나, 이내 굳게 입을 다물며 검을 치켜들었다.
“문답무용(問答無用)이라는 거로군. 하긴 찔리는 것이 있으니 쉽게 말을 못하겠지. 헌데 이걸 어쩌나……. 나는 네놈들을 붙잡아 단전을 폐하고, 무림맹으로 끌고 가 진상을 밝힐 생각인데…….”
그는 슬쩍 뜸을 들이며 말을 하고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자, 시선을 마주친 이들이 황급히 고개를 돌리는 것이 보였다.
“내 질문에 곧이곧대로 답하기 싫다면 죽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오. 이렇게 하나하나 오는 놈들 죽이다 보면 팔대세가는 무너질 거고, 하북진가는 가만히 있어도 천하제일세가가 되는 건 분명하겠지.”
으득으득!
그는 슬그머니 목을 좌우로 젖히며 몸을 풀었다.
이윽고 한 발을 앞으로 내밀자 휭하니 바람이 불어왔고, 그것에 거세게 장포가 펄럭이자 왠지 모를 위압감이 들었다.
“하늘을 대신하여 마두놈에게 천벌을 가하겠노라!”
모여 있는 이들의 수준은 대부분 절정에 오른 이들이다. 또한 백대고수에 오른 자마저 있었으며, 객잔에서 그가 먹은 음식에 산공독마저 뿌려 놓았다.
아무리 대단한 고수, 설령 칠제 자리에 오른 이라하더라도, 결코 피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산공독이라는 것이다.
비록 소량뿐이 만들어지지 않는데다 대단히 진귀한 독이긴 하나, 권무존이라 불리는 희대의 살인마를 잡아 죽여 얻는 명성과 비교한다면, 새 발의 피라 할 수 있는만큼에 출혈이라 할 수 있다.
무형무취(無形無臭)
그러나 그 독은 확실히 놈의 힘을 빼앗을 것이다.
“놈! 무엇을 믿고 그리 방자하더냐! 네놈의 목을 베어 죽은 이들의 넋을 기리리!”
어느 세가의 인물인 것인지는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상당히 강한 측에 속한다는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시큰둥한 표정으로 몰려 있는 자들을 차례차례 바라봤다.
“이 정도 시체가 쌓이면 더 이상 나를 귀찮게 하려는 놈들은 없을 테지…….만약 또 있다 한다면 죽이고 죽이고 또 죽여, 더 이상 내 삶을 방해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혼잣말과도 같은 말이기는 하나, 모여 있는 이들은 틀림없이 그것을 귀에 새겼다.
팔대세가(八代世家)
비록 하북진가와 사천당가 등은 이곳에 없으나, 정도를 대표하는 세가에서 보낸 이들이니만큼 실력은 확실하다.
그리고 그들은 신유강을 적으로 인식한다.
이유인즉 어린 나이에 가지고 있는 힘이 너무나도 크다는 점이었고, 그가 정사마를 구분짓지 않는다는 말 또한 직접 들었기 때문이다.
언제 어떻게 또 다른 천마존이 생겨날지 모르는 상황이니, 한시라도 빨리 제거하는 것이 가장 나은 것이다.
그것을 알려 주는 것처럼 사천에서 벌인, 그의 살육행위는 도를 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팔대세가뿐 아니라 상당수 낭인들이, 그를 바라보며 이를 가는 것만 보아도 안다.
이 자리에 확실히 죽인다.
설령 그것이 정도에 어긋난 행동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부웅!
그리고 그 순간, 맹렬한 도가 휘둘러지며 바람을 갈랐다. 그 소리는 섬뜩하게 울려 퍼지며, 쏟아지는 도기가 바람을 찢고 날아와 전신을 가를 듯했다.
허나 그 자리에서 아무런 행동조차 하지 않는 신유강의 주위로 기이한 힘이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날아온 도기는 산산히 흩어져 찾아볼 수가 없다.
사람들이 눈을 부릅떴다.
“나의 앞에 모든 것은 무력하리.”
그 한 마디는 청천벽력(靑天霹靂)과도 같은 소리다.
이윽고 그가 한 발을 움직임과 동시에 사방에서 퍽퍽! 거리는 괴성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무엇이 어떻게 된 것인지,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도 못하고 있었던 이들이었으나, 한 가지만큼은 뚜렷하게 머릿속에 새겼다.
사람이 죽고 있다.
괴성조차 내지르지 못한 채, 머리통이 터져 나갔다.
도기를 내뿜었던 하북팽가의 무인은 너무 놀라 뒤로 한 발 주춤하였는데, 그 순간 눈앞에 흐릿한 그림자가 생기더니 어느새 신유강의 주먹이 뻗어지는 것이 보였다.
퍼걱!
삽시간에 시체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도…… 도망쳐!”
한 사람의 외침과 함께 곳곳에서 극성의 경공을 펼치며 흩어지기 시작했다. 틀림없이 산공독이 들어 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두 눈에 새겼음이 분명한데, 어찌하여 태연하게 내공을 쓸 수 있단 말인가?
진주언가의 무인은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저것이 정녕 사람이란 말인가?
아무리 생각을 하고 또 해 봐도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 돌연 목에서 극심한 통증이 느껴지며 돌연 하늘이 보이더니 곧 땅이 보였다. 이윽고 흙이 얼굴에 뒤범벅되는 것을 느끼며 의식이 멀어졌다.
촤아아악!
목을 잃은 진주언가 무인의 몸이 자욱한 피를 토해 내며 쓰러졌다. 온몸을 그 피로 적신 그는, 히죽 웃으며 다른 이들이 있는 곳을 향해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