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신공-200화 (완결) (200/200)

# 200

당소혜가 진소소를 바라보며 말하자, 음식을 나르고 있던 그녀가 슬그머니 진명을 한 차례 바라보더니, 곧 콧방귀를 뀌며 시선을 돌려 버렸다.

마치 말조차 섞기 싫다고 하는 듯하다.

진명은 난색(難色)을 표하며 헛기침을 하였으나, 굳이 왜 자신에게만 이런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슬쩍 고개를 돌렸다.

“저쪽에 있는 검후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왜 나만 가지고 그러는가?”

그 말에 장삼은 작게 한숨을 토했다.

그것을 듣지 못할 정도로 하수가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는지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으나, 진명은 조금도 신경을 쓰는 기색이 아니다.

“진 가주, 저와 가주를 비교하시다니요. 어불성설(語不成說)이로군요.”

“자네와 내가 무엇이 달라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지?”

“가주께선 그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집무를 보니 객잔에 들어오는 수입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지만, 저는 보다시피…… 일을 합니다.”

“나 또한 일을 하네.”

“호호호, 가주. 천하의 검후가 객잔에서 일을 한다는 말에 얼마나 많은 무인들이 찾아오는지 아십니까? 그와 반대로 가주께선 그릇 하나 나르지 않으면서 일을 한다 하시니 참으로 우습습니다.”

그녀의 말대로 백리지연은 점소이들과 다를 바 없는 일을 하고 있다. 온갖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 데다, 가끔 낭인들이나 후기지수들에게 훈수까지 두는지라, 그녀에게 가르침을 받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이 수두룩 하다.

때문에 자연스레 수입이 늘 수밖에 없는데, 진명은 최소 오십여 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에 그 만큼에 수익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럼 나보고 일을 하라는 것인가? 객잔에서?”

“호호, 아니면 자릿세라도 내셔야지요.”

지당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에 장삼과 당소혜, 그리고 별 흥미가 없다는 듯 등을 돌리고 있는 진소소마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진명은 방해, 그 외에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하, 내 딸내미 객잔에서 나더러 자릿세를 내라고? 어디서 나온 궤변인가?”

“정확히 말을 하자면 신 대협의 객잔이지요.”

“그 신 대협인지 뭔지는 우리 소소와 혼인을 약속했네만……. 그러니 곧 내 이곳이 내 것이나 마찬가지이지 않나?”

진소소는 얼굴을 붉히면서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진명의 입에서 내 딸이라는 말이 나올지 전혀 몰랐으며, 지금 이 모습은 마치, 딸 사랑이 지극하기 짝이 없는 당초운을 보는 것 같지 않은가.

당소혜 또한 같은 생각을 했는지 풉 하고 웃는다.

“호호, 진 가주님. 어째 우리 아버지를 닮아 가는 것 같네요.”

“그게 무슨 소리인가?”

영문을 알 수 없었던 진명이 되물었지만, 당소혜는 대답을 해 주지 않았다. 그것 스스로 알아내라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다.

“그만들 하세요. 바쁜 시간대에 이게 무슨 짓인가요?”

결국 참다못한 진소소가 앙칼지게 언성을 높이자, 진명을 비롯한 모든 이들이 찔끔하며 입을 다물었다.

오 년 전보다 더욱 성숙해져 있는 그녀는, 그 아름다움이 더한 것은 물론이며, 신유강이 사라진 직후부터 얼굴에 나타나는 아련함에 말그대로 절세가인(絶世佳人)이 따로 없다.

그런 진소소의 입에서 나온 말에, 왁자지껄 시끄럽게 밥을 먹고 있던 사람들마저 꿀꺽 침을 삼키며 입을 다물 정도다.

“하아…….”

진소소는 한숨을 쉬었다.

흑영과 흑호가 떠나고 돌연 혼자가 된 그녀에게 당소혜가 찾아왔다. 자연스레 함께 지내게 된 두 여인들이지만, 언제부터인가 백리지연이 머물기 시작하더니, 돌연 껄끄럽기 짝이 없는 진명마저 나타났다.

특히 백리지연과 진명은 같은 칠제 자리에 올라와 있는 사람들인지라, 틈만 나면 누가 우위인지 확인하려 애를 쓰고 있다.

만약 조금 전에도 그녀가 끼어들지 않았다면 충분히 그러한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진소소는 다시 한 번 한숨을 토해 내며 고개를 저었다.

신유강이 사라지고 오 년.

자신의 족쇄는 여전히 그에게 묶여 있으나, 혹시 잃어 버린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희망을 품었다.

그러나 너무나도 깊다.

신유강이라는 존재가 너무나도 깊이 박혀 있다.

그립고 그리워, 가슴에 멍이 들 지경이다.

진소소는 꾹 주먹을 쥐며 마음을 다잡았다. 결코 죽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기에, 실날같은 희망조차 포기를 하지 않는다.

언젠가 눈앞에 나타날 것이라 생각을 하며 말이다.

“비켜 봐, 비켜 봐.”

그때, 돌연 아래층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안으로 들어오려는 것인지, 약간이긴 하지만 짜증 섞인 소리마저 들려왔다.

“비켜 보라고!”

길게 늘어선 줄을 헤치고 억지로 들어오려 하니, 미리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이 인상을 쓰며 그를 가로막았다.

특히 실력에 조금 자신이 있는 낭인들이 험악하게 인상을 구길 정도다.

“줄 서 있는 거 안 보이느냐!”

퍼걱!

그 소리는 참으로 우람차게 들려왔다.

소리를 내지른 낭인의 몸이 허공을 붕 떠 날아와 객잔 안으로 떨어졌고, 정확히 진명이 집무를 보고 있던 탁자를 깨부수며 주저앉았다.

“…….”

진명은 다 된 밥에 코를 빠트리는 놈을 가만히 바라보다 기가 차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세상 조용히 살다 보니 이러한 일도 겪는구나 싶어 어처구니가 없다는 모습이다.

“왜 때리시냐고요!”

“아, 그러니까 눈앞에 있는 놈들은 원래 주먹을 쓰고 보는 거다, 이놈아.”

“하아……. 제발 그 성격 좀 고쳐, 유선.”

입구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조금 전 낭인을 걷어찬 일당이 아닌가 싶다. 진명과 백리지연은 물론, 진소소와 당소혜마저 싸늘한 표정으로 그곳을 바라봤다.

누가 이러한 짓을 하였는지 몹시도 궁금한 모양이다.

그리고 그 순간 입구에서 부터 세 명의 남녀가 들어섰다.

한 여인은 붉은 궁장을 늘어트리며 객잔 안을 둘러보더니 탄성을 내뱉었는데, 그와 반대로 그 여인의 얼굴을 확인한 이들의 입에서도 같은 소리가 나왔다.

뒤이어 상당히 잘생긴 남자다.

조금 전 낭인을 날려 보낸 자라는 것을 증명하듯, 오른쪽 주먹에는 시뻘건 피가 묻어 있었다.

남자를 확인한 진명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주, 주, 주가장주…….”

주가장 장주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은 무림에 몇 되지 않는다. 무림맹 내에서도 고작해야 두세 명이며, 그들과 거래하고 있는 이들 또한 얼굴을 보는 일이 드물다.

세간에서는 몇 년, 몇 십 년이 지나고 백 년이 지났어도, 주가장의 주인은 같은 얼굴에 같은 목소리라는 어이없는 말이 들려올 정도다.

“응? 나를 아시오?”

“하북진가의 진명이라 하오.”

“아…… 그렇군. 예전에 한번 본 적 있는 것 같소. 하하,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니 이해해 주시구려. 그럼 다시 한 번 소개하도록 하지. 주가장의 주유선이오. 이쪽은 내자(內子)인 은하련. 그리고 이쪽은 막내아들 놈인…… 주유강이오.”

“신유강입니다.”

“내 성이 주이니 네놈은 주인 게지.”

“평생을 신으로 살았으니 신으로 살겠습니다.”

“두들겨 맞아야 정신을 차리겠느냐?”

순간 주유선의 눈빛이 서슬 퍼렇게 빛나자, 신유강은 꿀꺽 침을 삼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리 강해졌다고는 하지만,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숙이고 들어가는 것이 제일인 것이다.

“신유강!”

그때 진소소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이 층에서 입구를 내려다보며 바들바들 몸을 떨고 있던 그녀는, 단숨에 난간을 뛰어넘어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내공을 발휘한 경공도 아닌, 단순히 기쁨에 넘쳐 뛰어내린 것이다.

신유강은 그것을 바라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으나, 이내 곧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며 손을 뻗었다.

뛰어오는 그녀는 당장에 안아 주기 위해서다.

덥석!

“응? 이놈아 여인이 뛰어내렸으면 응당 받아 주어야 할 것 아니냐.”

그러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일이 돌아갔다.

이 층에서 뛰어내린 진소소를 받아 든 것은 다름 아닌 주유선이다. 정확히 신유강을 향해 날았으니 자연스레 신유강이 안았어야 정상이긴 하나, 눈꼴 시린 것은 보지 못하는 인간인지라 대신 진소소를 안아 든 것이다.

“귀여운 아이로군.”

주유선이 진소소를 품에 꼭 껴안은 채 토닥토닥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던 은하련이 주유선의 뒷덜미를 잡아끌자, 새빨개진 진소소가 다리의 힘이라도 풀렸는지 털썩 주저앉았다.

“뭐하는 겁니까! 남의 여자를!”

“쯧쯧, 생각을 해 봐라, 이놈아.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서 혹 다치기라도 할까 봐 받아 준 것이지, 보고도 모르느냐?”

주유선의 어이없는 행동에 신유강은 할 말을 잃었다.

오 년 전,

심각하게 몸을 다친 그를 오 년 동안이나 간병해 준 것에는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나, 어린 시절 내다 버린 것이나, 강제로 회귀신공이라는 마공을 익히게 한 것이나, 생각만 해도 이가 바득바득 갈리는 상황이 있었기에, 언젠가 자신의 주먹으로 반드시 때려죽이리라 재차 다짐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아…… 아들이라니? 설마 신 대협이 주 가주의 아들이라도 된다는 말인가요?”

상황을 보고 있었던 백리지연은 더듬거리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확실히 주가장에서 대접받을 당시 객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대우를 받기는 했지만, 설마 그러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유선은 슬그머니 백리지연을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백리세가의 아이로구나. 기세도 그렇고 몸매도 그렇고 괜찮군. 한때 백리…….”

퍽!

쓸데없는 말을 하려는 것을 말리기 위함인지, 은하련은 주유선의 뒤통수를 냅다 후려쳤다. 상당한 내공이 섞여 있던 탓에 그 소리가 엄청나게 크게 들려왔으나, 주유선은 단순히 모기에 물렸다는 표정만 지을 뿐이다.

“쓸데없는 소리하지 마요.”

“그…… 그러지…….”

“…….”

뭔가 엉망이다.

신유강은 그렇게 생각했다.

엉망이어도 엄청난 엉망이다. 해후의 기쁨을 만끽해야 할 상황임이 분명한데, 기이하게 웃음이 터져 나와 미칠 지경이다.

참으로 우습다.

여기저기에서 입을 쩍 벌린 사람들이 보였다.

아마도 주가장의 아들이라는 것에 놀라워하는 것이 분명할 테지. 내심 우쭐한 마음 또한 들기는 했지만, 그러한 것보다 신유강은 주저앉아 있는 진소소를 바라보며 손을 내밀었다.

그녀 또한 조심스레 그것을 부여잡았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 죽을 뻔했거든…….”

“정말이지 너무 오래 기다렸어요.”

진소소는 눈물을 흘리며 그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이어 신유강이 강하게 손을 끌어당기자, 힘없이 딸려 와 품에 안겼다.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그의 냄새가 나자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신유강은 그녀를 달래 주며 숨을 골랐다.

오 년이라, 참으로 오래 걸렸다.

“지금부터는 너를 위해 살도록 할게.”

그 말에 진소소는 조심스레 신유강의 품에 빠져나와 그의 얼굴을 직시한다.

과거보다 더욱 남자다워진 모습.

사라진 것은 오 년이라 하지만, 그녀에겐 일 년 이상의 세월이 더해진다.

그러나 잡은 손, 목소리, 얼굴.

그 모든 것이 그녀가 알고 있는 신유강과 같다. 결코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그가 드디어 눈앞에 서 있는 것이다.

진소소는 밝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기대할게요.”

푸근한 목소리와 방긋 웃는 얼굴에 신유강의 입가에도 저절로 미소가 맺혔다.

(회귀신공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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