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백수-5화 (5/232)

제5장 넌 실전 경험을 쌓아.

“ 무슨 소리냐?”

막장은 버럭 소리쳤다.

비열하게 시작도 하기 전에 주먹을 날린 것과 돌멩이를 휘두른 짓에 대해 먼저 따질 작정이었다. 그런데 말도 꺼내기도 전에 잠룡쟁패를 탈취당했다는 말을 들은 것이었다.

지금 녀석을 호위하고 있는 이유가 뭔가.

잠룡쟁패와 함께 녀석을 무사히 대야벌로 데려가기 위해서다. 그런데 잠룡쟁패를 도둑맞았다는 것이었다.

“ 그러게 자식아, 내공을 왜 끌어올려! 네가 비열한 짓을 하니까 잠룡쟁패가 없어진 거잖아! 전적으로 네 책임이야!”

“ 그, 그러니까 잠룡쟁패가 없어진 이유가 나 때문이라고?”

막장은 황당하다는 듯 손끝으로 제 얼굴을 가리켰다.

방귀 뀐 놈이 성질 낸다더니 지금이 딱 그 상황이다.

“ 당연히 너 때문이지, 난 잘못 없다.”

“ 그걸 꺼내서 궤짝 위에 올려놓은 이유가 뭐냐고, 자식아!”

막장은 씩씩대며 소리쳤다.

싸우기 전에 궤짝 위에 잠룡쟁패를 올려놓은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랬던 녀석이 이제 와서는 책임을 전가 하고 있는 것이다.

“ 살고 싶어서 그랬지. 왜 그랬겠냐?”

“ 살고 싶어서 그랬다고?”

“ 네가 쓰러지면 나 혼자 남잖아! 만일 누군가가 네 녀석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내게서 잠룡쟁패를 빼앗아 가려면 어떻게 할 것 같아?”

“ 너를 죽일 거라고?”

“ 막장 네가 깨어나기 전에 조용히 잠룡쟁패를 가져가기 위해서는 나를 죽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잖아. 하지만 잠룡쟁패가 궤짝 위에 있으면 굳이 날 죽일 필요없이 가져가면 그만이잖아.”

“ 제기랄!”

막장은 그 자리에 풀석 주저앉았다.

연우강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대야벌로부터 최초 잠룡쟁패를 받은 자들은 지역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가문이 대부분이다. 그런 자들로부터 잠룡쟁패를 탈취할 때는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면 살인을 피한다. 혹여 죽은 자들의 가족들로부터 복수를 당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더구나 연우강은 금릉 연씨 세가의 장남이 아닌가. 무공조차 없는 녀석을 죽이게 되면 평생 동안 금릉 연씨 세가의 추적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잠룡쟁패를 탈취하려고 하였던 자의 입장에서 보면 죽이지 않는 게 훨씬 낫다고 할 수 있었다.

“ 난 대야벌의 저의가 더 의심스러워.”

“ 무슨 저의?”

“ 제자를 구하고 싶으면 굳이 잠룡쟁패라는 쇳덩이를 강호에 풀 필요가 없잖아.”

“ 더 좋은 방법이 있다는 거냐?”

“ 무공에 재질이 있는 녀석을 선택해 대야벌로 오라고 하면 간단하잖아. 그럼 잠룡쟁패를 얻기 위해 피 흘리며 싸울 이유도 없고.”

“ 그건 네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고 하는 소리다.”

“ 내가 뭘 모른다는 거지?”

“ 잠룡대전은 대야벌의 제자가 되기 위한 일차 관문일 뿐이다.”

“ 일차 관문?”

“ 대아벌은 지상 최강의 세력이다. 연우강.”

“ 그래서?”

“ 상대가 없는 자의 외로움이 뭔지 아느냐?”

“ 강자의 고독이니 하는, 자기 주둥아리에 금칠 하는 소리 하려거든 집어쳐라. 정말로 싸우고 싶다면 방금 우리 둘이 했던 방법으로도 가능하니까.”

“ 그딴 소린 나도 취미 없어. 인마.”

“ 그럼?”

“ 대야벌 무인들에게 가장 부족한 건 실전경험이다. 물론 비무는 많이 한다. 하지만 비무는 마지막 순간에 무기를 거두게 돼. 목숨이 오가는 실전 비무는 없다는 거지. 그걸 얻는 곳이 잠룡대전이다.”

“ 대야벌로 혼자 가는 놈은 아무도 없어. 대부분 강한 무인을 대동하기 때문에 잠룡대전을 통해 실전 경험을 얻을 수 있는 자는 그다지 많지 않아.”

“ 강한 가문이 대야벌에 예속되는 건 오히려 바라는 바다.”

“ 제자도 구하고, 강한 가문도 예속시키고, 장차 대야벌의 적으로 자랄 가능성이 있는 놈들도 제거하고, 님도 보고 뽕도 따고, 도랑 치고 가제도 잡는 아주 훌륭한 계책이네.”

연우강은 피식 웃으며 궤짝을 둘러멨다.

“ 그게 전부가 아니다. 연우강.”

“ 또 있어?”

“ 암살 대전이 남아 있다.”

“ 암살 대전은 또 뭐냐?”

“ 암살 대전은 대야벌 안에서 일어나는 세력 간의 쟁투를 말한다.”

“ 세력 간의 쟁투라고?”

연우강은 뜨악한 얼굴로 막장을 바라보았다.

“ 공연히 대야벌을 무림이라고 부르는 게 아니다. 연우강. 그건 그렇고 얼굴을 봤냐?”

저절로 알게 될 텐데 미리부터 말해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막장은 화제를 돌렸다.

“ 나도 기절해 있었는데, 어떻게 알아?”

“ 일단 주변을 둘러봐야겠다.”

“ 어차피 난 대야벌로 갈 테니까 잠룡쟁패는 잊어버려.”

“ 잠룡쟁패가 없다면 대야벌로 간다고 해도 제자가 될 수가 없어.”

“ 그건 내가 바라는 바야. 내가 대야벌로 가는 이유는 똥자루 대머리 그 새끼 협박 때문이라고.”

“ 난 잠룡쟁패를 지닌 너를 대야벌로 호위해 오라는 명령을 받았다.”

“ 대야벌에 도착하면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게.”

“ 밖에서 기다린다고?”

막장은 무슨 소린지 몰라 고개를 갸웃했다.

“ 대야벌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잠룡쟁패를 만들 수 있잖아. 네가 먼저 들어가서 잠룡쟁패를 만들어 나오면 간단하게 해결되는데, 힘들게 고생할 필요가 뭐 있어.”

“ 잠룡쟁패는 벌주 결재 사항이야. 아무나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라고!”

“ 대야벌 서열 백위라면서 그 정도도 안 돼?”

“ 무공 서열이 백위라는 뜻이야, 자식아. 다른 건.....”

“ 쯧쯧, 곰탱이 같은 자식. 그러니까 사는 게 그 모양이지. 서열 백위면 뭐 하냐. 꼴은 거지 행색인데.”

연우강은 찢겨진 막장의 옷을 가리켰다.

막장의 옷은 가죽을 덧댄 면의였는데, 주로 사냥꾼이나 산적들이 즐겨 입는 옷이었다.

“ 네가 뭘 모르는 모양인데, 무공에 정진하는 무인은 입는 거나, 먹는, 그런 것들에 신경쓰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것들은 무공의 방해 요소가 되지. 너도 무공을 익히게 되면 알게 된다.”

막장은 웃으며 말했다.

“ 벌준가 하는 그 사람도 그런 옷을 입어?”

“ 벌주?”

“ 그래.”

“ 그분은 벌주잖아.”

“ 그럼 네 상관은 어때?”

“ 우담보 궁주?”

“ 응.”

“ 그분은 궁주잖아.”

“ 똥자루 대머리는?”

“ 그 양반도 궁주고.”

“ 그자들은 무인이 아닌 모양이지?”

“ 무인이 아니면 대야벌의 궁주가 될 수 ....”

막장은 말끝을 흐렸다.

“ 병신 새끼.”

연우강은 손을 휘저으며 몸을 돌렸다.

“ 너 자식아, 자꾸 반말 할래. 난 올해 서른다섯 살이란 말이야, 새꺄.”

공연히 짜증이 나 막장은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 난, 육십이 넘은 노인네도 놈이라고 불렀어. 내 앞에서 나이 가지고 개폼 잡을 생각 말아, 자식아.”

“ 하! 저걸 죽이지도 못하고 정말 돌아버리겠네.”

막장은 가슴을 탕탕 쳤다.

왜 이런 임무를 맡아서 개고생을 하는지, 궁주가 원망스러웠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포기할 수도 없으니 환장할 지경이었다.

“ 어딜 가는 거야?”

막장은 연우강을 따르며 쏘듯 말을 뱉었다.

“ 잠룡쟁패가 없으면 대야벌로 갈 수 없다며?”

“ 누가 훔쳐갔는지 모란다며?”

막장은 퉁명스럽게 받아쳤다.

“ 막장. 네가 내게 준 잠룡쟁패에 특별한 표시가 돼 있는 건 아니겠지?”

“ 표시가 돼 있으면 내가 이렇게 고민할 필요도 없겠지. 천안원의 정보를 이용하면 금세 찾을 수 있을 테니까.”

“ 강호에 풀린 잠룡쟁패가 전부 몇 개지?”

“ 네 녀석이 잃어버린 것까지 합치며 오백 한 개가 풀렸다.”

“ 그 중 아무거나 가지고 가면 되는 거 아냐?”

“ 설마 나보고 잠룡대전에 참석하라는 거냐?”

막장은 황당한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대야벌 서열 백위면, 웬만한 문파 문주보다 무공이 더 강하다.

그런데 잠룡대전에 참석하라니.

아니 대야벌 무인이 잠룡대전에 참석한 유래가 없다.

“ 세간의 이목도 있는데 대야벌 서열 백위를 보고 잠룡대전에 참석하라고 할 수는 없잖아.”

“ 그럼 방금 한 소리는 뭐냐?”

“ 잠룡대전에 내가 참석할 거야. 넌 실전 경험을 쌓아.”

“ 시, 실전 경험이라고?”

“ 들어봐, 막장.”

연우강은 동생 연우진에게 그랬던 것처럼 막장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 뭘 자식아!”

“ 내가 군 생활을 오 년 간 했다고 말했나?”

“ 대야벌에서 들었다.”

“ 맞아. 대야벌의 정보력은 천하제일이지. 여하튼 군에 있다 보면 별별 놈이 다 있는데 말이야. 개중에는 무인이면서 살인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군에 들어오는 놈이 있어.”

“ 살인을 하고 싶어서 군으로 들어가는 놈도 있다고?”

“ 응! 류사은이란 녀석이 그랬어. 그놈은 너 정도는 아니었지만 무공이 상당히 강해. 제 말로는 내공이 일 갑자 반이라고 했거든.”

“ 일 갑자 반이면 나보다 훨씬 강하다, 앙!”

막장은 연우강을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 말 끊지 말고 들어, 새꺄! 난 누가 말 끊는 걸 가장 싫어해, 무슨 말인지 알아!”

“ 계, 계속해라!”

서슬 퍼런 목소리가 연우강의 입에서 튀어나오자 막장은 찔끔 물러났다.

“ 여하튼 그 자식이 무공 자랑을 하다가 적군의 창에 찔려 뒈졌어. 반면에 무공이 없었던 난 살아남아서 지금까지 잘 살고 있고.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 그게 실전 때문이라는 거냐?”

“ 바로 그거야, 막장. 네가 대야벌에서 꼴찌를 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죽은 무공을 펼쳤기 때문이야.”

“ 꼴찌가 아니고 오만 명 중 서열 백위다!”

꼴찌라는 말에 기분이 상한 듯, 막장은 버럭 소리쳤다.

“ 넌 삼류 무인을 네 경쟁자라고 생각하는 거냐?”

“ 사, 삼류 무인이라고?”

“ 네 입장에서 봤을 땐 그들은 삼류잖아. 그들도 일류로 치는 거야?”

“ 개자식!”

“ 개자식이 아니라 세상은 그런 거야. 인마. 수준이 바닥인 놈들을 경쟁 상대로 여기는 순간 넌 패자가 되는 거야. 네 경쟁 상대는 삼류 쓰레기들이 아니라 대야벌 백대 고수란 말이야. 그들을 이기기 위해 네가 할 일은 방구석에 틀어박혀서 머릿속으로 싸우는 방법을 연구하는 게 아니라 피와 주검이 난무하는 현장에서 직접 싸워야 하는 거야. 그래야 실력이 늘어.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도 돌이 날아오니까 무의식중에 주먹을 뻗어내는, 그런 임기응변이 필요하다고.”

“ 으음!”

막장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연우강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대야벌에서는 알게 모르게 핑계를 만들어 비무대회를 개최한다. 축제 비슷하게 벌어지곤 하지만 실상은 실전 감각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하지만 비무의 끝은 항상 소금이 빠진 음식처럼 맹맹하다. 피는 있지만 죽음이 없기 때문이다.

대야벌에서 치러지는 비무는 현재의 실력을 유지하헤 해줄 뿐 발전을 가져다주지는 못하는 단점이 있다.

“ 싫으면 여기서 찢어지자. 굳이 잠룡쟁패도 없는데 함께 다닐 필요가 없잖아.”

“ 어딜 가려고?”

헤어지자는 말에 막장은 깜짝 놀라 물었다.

“ 난 집으로 돌아가고, 넌 대야벌로 돌아가야지. 우리 둘이 사귀는 것도 아닌데 함께 다닐 필요가 없지.”

“ 씨팔! 좋다. 한번 하자.”

결국 막장은 연우강의 제안을 수락했다.

실전도 실전이지만 이 상태로 돌아갈 수 없었다.

“ 어디 보자, 여기서 가장 가까운 데가...”

“ 그건 뭐냐?”

막장은 궁금한 얼굴로 연우강의 손에 들린 것을 보았다. 양피지로 만들어진 듯한 뭔가를 연우강은 시간 날 때마다 들여다보곤 했다.

“ 군용 지도.”

“ 지도라고?”

“ 지도가 있으면 굳이 돌아갈 필요가 없거든.”

“ 돌아갈 필요가 없다고?”

“ 남경에서 대야벌까지 직선으로 줄을 쫙 긋고 그 줄만 따라가는 거야.”

“ 그럼 지금껏 왔던 길이?”

“ 돌아가면 귀찮잖아. 여기서 가장 가까운 곳이 회남이네, 가자.”

“ 또 직선이냐?”

“ 직선이 아니고 직진이라고 해.”

“ 그런데 너 군에 있을 때 계급이 뭐였냐?”

땅을 파서 추위를 막는 방법이나, 정확하게 두 시진마다 한 번씩 쉬는 그의 행동으로 볼 때 일반 군호라고 생각하긴 힘들었다. 아니 그러한 것들은 숙달되면 할 수 있는 행동이라고 하지만, 지도 한 장 달랑 들고 중원을 횡단할 수 있는 자는 그다지 많지 않다.

문득 군에 있을 때 상당한 고위급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정천호!”

“ 정천호라고?”

막장은 경악한 얼굴로 소리쳤다.

명나라 행정조직은 성, 부, 주, 현의 네 개로 나뉜다. 정오품 직위면 행정 조직에서 부의 이인자에 해당하는 고위급이다. 일반 양민으로 취급되는 무인은 감히 쳐다보기도 힘든 높은 자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녀석이 그런 정천호였다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 군에서는 사람을 많이 죽이면 주는 자리니까 놀랄 필요 없어.”

“ 그 좋은 자리를 왜 때려치운 거냐?”

문득 궁금했다.

녀석의 나이로 보건대 크게 실수만 하지 않으면 최고의 자리까지 무난하게 올라갈 듯 싶었다.

“ 사람 죽이는 게 지긋지긋해서.”

“ 마, 많이 죽였나 보네?”

“ 한번 출동하면 천 명은 기본이었다.”

“ 전쟁터에선 누구나 죽는다.”

“ 부하들도 전부 죽었으니까.”

“ 정천호면 부하들이 천 명 가까이 되지 않나?”

“ 전부 천이백 명이지”

“ 그들이 전부 죽었다고?”

“ 나를 포함해서 여섯 명만 살아남았다.”

“ 그래서 간덩이가 부어터진 거구나.”

막장은 입을 쭉 내민 채 고개를 끄덕였다.

잠룡대전이 벌어지고 있는 강호를 겁도 없이 혼자 종횡했던 이유를 비로소 알 듯했다. 생존을 위해 전쟁을 치러왔던 그에게는 보물을 얻기 위해 칼부림을 벌이고 있는 무인들의 행태가 가소롭게 보일 수밖에 없을 터였다.

“ 그건 그렇고 회남에 가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거야?”

“ 회남 지부가 있으니까 며칠만 기다리면 된다.”

“ 가자.”

연우강과 막장은 산 아래로 걸음을 옮겼다.

*********

화동 지구의 최대 탄전이 있는 회남은 광업 도시다. 바람이 불면 뿌연 흙먼지 대신 검은 탄가루가 휘날려 겉모습은 칙칙하고 삭막해 보이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상당히 생동감이 넘친다.

이곳에서 나는 석탄을 쇄매라고 하는데 밥을 짓거나 쇠를 제련할 때 주로 사용되기 때문에 중원 전역에서 주문이 들어와 항상 분주했고, 일감이 넘치는 곳에선 돈이 흐르기 때문이다.

생동감의 원천이 그 바로 돈이었다.

돈이 있는 곳에는 늘 그렇듯 세력이 생겨나고 회남 또한 여러 세력이 알게 모르게 지부를 두고 있다.

대야벌의 각 세력도 지부를 두고 있는데 율령궁 산하인 천안원 회남 지부도 그러한 조직의 하나였다.

회남에서 가장 큰 객잔인 금맥루 이 층에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석탄 가루 때문에 어두운 계통의 옷을 걸치는 회남 사람들과 달리, 번쩍이는 비단 옷을 걸치고 있는 그들 앞에는 금맥루에서 만들 수 있는 최고 요리가 한 상 가득 차려져 있었다.

“ 이게 다 먹는 거냐?”

덩치 큰 사내가 탁자 위를 훑어보며 물었다. 눈앞에 놓인 음식들에 주눅이 든 모습이 역력했다.

“ 사람은 말이야, 밥이나 소면만 처먹고 살 순 없는 거야. 간혹 이런 호사도 한번 누려 봐야 하는 거라고.”

덩치 큰 사내를 향해 훈계하듯 말하는 이는 바로 연우강이었다. 두 사람은 산을 내려오자마자 천안원 회남 지부에 들러 원하는 정보를 얻었다.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는 지부장에게는 잠료대전을 피해 갈 요량으로 정보가 필요하다고 둘러댔다. 안휘성을 가로질러 대야벌로 향하는 잠룡쟁패는 전부 열다섯 개였다.

회남 지부를 나온 다음 곧바로 옷을 파는 곳으로 가서는 변장을 했다. 막장은 수염을 달고, 연우강은 유생건을 이마에 동여매 대충 얼굴을 바꾸고 이곳 금맥루로 들어왔다.

“ 부잣집 자식 아니랄까 봐. 그런데 어떻게 먹는 거냐?”

막장은 피식 웃으며 물었다.

“ 먹는 방법? 간단해, 먼저 죽을 먹고 그 다음엔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옆에 있는 작은 접시에 덜어서 먹으면 돼.”

“ 어렵지 않네, 뭐.”

막장은 씨익 웃으며 접시에 음식을 덜어 입으로 가져갔다.

“ 씨팔!”

고기를 한 입 집어넣었던 막장은 욕설을 내뱉었다.

“ 나도 제대하고 나서 처음 먹었을 때 그랬다. 입 안에서 살살 녹는 음식을 먹으면 감탄사가 나와야 하는데 욕이 먼저 튀어나오더라.”

“ 이런 음식을 먹고, 이런 옷을 입고 살면 정신이 느슨해져서 무인에게는 치명적이라고 하던데.”

“ 어떤 미친 놈이 그래?”

“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배웠다.”

“ 잘 들어, 막장. 고기 맛을 모르는 놈은 고기를 먹기 위해 돈을 벌 필요가 없고, 비단 옷의 감촉을 모르는 놈은 비단옷을 입기 위해 돈을 벌 생각을 하지 않아. 무공이나 권력도 마찬가지야. 강한 무공의 맛을 본 놈은 지금보다 더 강해기지 위해 노력하는 거고, 권력의 맛을 한 번이라도 본 놈은 절대 그 맛을 잊지 못하는 법이다.”

“ 상관없다고?”

“ 여기 하기 나름이라는 거야.”

연우강은 제 머리를 툭툭 쳤다.

“ 마음먹기 달렸다는 말이네.”

“ 날 보면 알잖아. 난 제대하고 나서 아침 운동을 거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 반시진 해대는 몸풀기?”

“ 그래.”

“ 그건 나도 인정한다. 누가 나보고 그 지겨운 짓을 하루도 아니고 매일 매일 하라고 했다면 죽여버렸을 거다.”

“ 먹자, 일단 먹고 차분하게 움직이자.”

“ 술 한잔 할래?”

막장은 술병을 들어올렸다.

“ 우리가 만난 것도 인연인데 한잔해야지.”

연우강은 웃으며 술잔을 막장 앞으로 내밀었다.

두 사람은 술잔을 주고받으며 오랜만의 정찬을 즐겼다.

“ 십 년 전까지만 해도 백 개만 뿌렸다면서.”

식사를 끝낸 연우강이 차를 따르며 말했다.

“ 정확한 이유는 나도 모른다. 다만.....”

“ 난 추측을 싫어해. 정확한 사실이 아니면 아예 꺼내지마.”

“ 그것도 군에서 생긴 버릇이냐?”

“ 어쩌면 그럴 수도. 그럼 잠룡쟁패를 받은 자들은 어떤 자들인지 그건 알아?”

“ 대야벌에 속해 있는 각 조직에 스무 개씩 나갔고, 나머진 과거처럼 중원과 새외로 풀렸다.”

“ 대야벌의 세력이 얼마나 되는데?”

“ 삼궐칠련삼림이다.”

“ 조직이 스무 개나 되는 거야?”

“ 특수조직을 뺀 상태지.”

“ 벌의 살림을 맡은 조양궁, 제자를 기르는 잠룡궁, 대야벌의 내부 감찰과 대외 정보를 담당하는 율령궁, 그리고 야장이 있다.”

“ 야장?”

“ 대야벌의 총 인원은 십만이야.”

“ 먹고 마시고 싸는 걸, 외부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는 말이네?”

“ 그렇지. 객잔, 주루, 기루, 대장간, 상가. 심지어는 도박장까지 있어. 그런 곳들을 관리하는 조직이 야장이지. 쉽게 말하는 무림의 하오문이라고 보면 된다.”

“ 그들도 무공을 익히고 있어?”

“ 그들을 일컬어 운중야장이라고 부른다.”

“ 모른다는 거네?”

“ 대야벌 소속이니까 무공을 익히고 있을 테지만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모른다는 거다.”

“ 별 볼일 없으니까 관심을 두지 않는 거겠지. 무인이란 족속들은 천성적으로 자신보다 강한 놈들을 경계하잖아.”

“ 어쩌면.”

“ 자, 그럼 정리를 해 볼까?”

연우강은 차를 홀짝 들이켰다.

“ 무슨 정리?”

“ 대야벌에서 잠룡쟁패를 오백 개나 푼 이유를 예측해 내는 걸 말하는 거야.”

“ 조금 전에 추측을 싫어한다고 하지 않았나?”

“ 추측성 보고를 싫어한다는 거지 추측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냐. 정확한 보고를 바탕으로 적의 움직임을 예측해내는 자가 유능한 지휘관이라는 말도 몰라?”

“ 쿡! 자랑하고 싶은 거냐?”

“ 말이 그렇다는 거야. 지휘관 한마디에 수천, 수만 명의 목숨이 오락가락 하잖아. 그런 상황에서 추측성 보고를 가지고 일을 한다는 건 부하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아주 치명적인 행위야. 정확한 보고가 필요한 이유가 그 때문이야.”

“ 부하를 잃었따고 했던 게......”

문득 천에 달하는 부하를 전부 잃었다는 말이 떠올랐다.

“ 그 결정 후회하지 않아. 난 또다시 그런 상황이 온다고 해도 그들을 데리고 적진으로 들어갈 거야. 그 일 또한 지휘관으로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니까.”

“ 반드시 해야 할 일이 뭐지?”

“ 그건 나중에 네가 지휘관이 되면 알려줄게.”

“ 말하기 싫단 말이군. 좋다, 정리부터 해봐라.”

막장은 싱긋 웃으며 연우강의 술잔에 술을 따랐다.

하지만 흔연한 모습과는 달리 막장은 내심 놀랐다.

지휘관.

무공이 강해, 배경이 좋아 그런 자리로 올라가는 걸로만 생각했다. 녀석이 정천호라고 했을 때 한편으로는 놀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연씨 세가의 재력으로 그 정도도 못하면 바보라고, 그렇게 생각도 했다.

그런데 지휘관의 한마디에 수천 수만 명의 목숨이 오락가락한다는 말로 인해 녀석의 본 모습을 알게 됐다.

녀석은 정오품의 정천호 자격을 갖춘 녀석이었다.

“ 대야벌에 속한 각 세력에 스무 개씩 풀었다면 그건 내실을 다지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어.”

“ 내실?”

“ 대야벌 외부에서 주목할 만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나?”

“ 주목할 만한 사건이라면 없는.....아!”

“ 말해 봐.”

“ 삼 년 전에 사막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 심각한 논의가 있었다.”

“ 어떤 일인데?”

“ 혈도부대라고 들어본 적 있냐?”

“ 들어는 봤어.”

“ 혈도부대는 팔황새의 한 곳인 새외귀막의 최정예다.”

“ 그런데?”

“ 혈도부대 일천 명이 몰살을 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 대야벌 입장에서 보면 좋은 일 아닌가?”

“ 물론 새외귀막이 현저하게 약해졌으니까 나쁜 일이라고 할 수는 없어. 하지만 그 사건이 팔황새의 권력 암푸로 인한 결과라면 허투루 넘길 일이 아니지.”

“ 팔황샌가 하는 단체가 통일되는 과정이라고 결론을 내린 거냐?”

연우강은 황당한 얼굴로 물었다.

혈도부대를 몰살시킨 사람은 자신이다. 그런데 그 일로 인해 대야벌이 움직이게 될 줄은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 그게 아니라면 혈도부대가 몰살당한 사건을 설명할 길이 없다고 하더라.”

“ 그래서 새외에도 잠룡쟁패를 풀어준 거였구만.”

연우강은 피식 웃으며 술잔을 들어올렸다.

“ 무슨 소리냐?”

막장은 다시 술을 따라주며 물었다.

사실 새외까지 잠룡쟁패를 푼 것에 대해서는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상부에서 결정되는 일이고 관심을 가져봐야 머리만 복잡해진다는 생각에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연우강이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자 문득 궁금해졌다. 아니 그것보다는 연우강이 어떻게 추측을 하고 있는지 흥미가 동했다고 해야 옳다.

“ 대야벌이 새외를 평정한 적이 언제지?”

“ 삼십 년 전이다.”

“ 아직 팔황새의 잔당이 남아 있는 걸 보면 완전하게 궤멸시키지 못한 모양이지?”

“ 정벌 중에 벌주께서 실종됐다고 하더라. 하지만 그 정벌로 인해 팔황새의 구 할 이상은 무너졌다.”

“ 그러니까 승리를 앞둔 상황에서 벌주가 실종됐다는 거냐?”

“ 그분이 운이 없었던 거지. 벌주에 오른 지 삼 년 만에 실종됐으니까 가장 짧은 제위 기간을 가진 벌주로 기록됐다.”

“ 벌주의 이름이 뭐지?”

“ 낙일마검 장만보.”

“......?”

연우강은 의아한 얼굴로 막장을 보았다.

유수의 가문이라면 일반적으로 별호에 마를 집어넣지 않기 때문이다. 더불어 장만보란 이름 또한 시장통에서 외쳐부르면 수십 명이 동시에 고개를 돌릴 정도로 흔한 이름이었다.

대야벌 벌주 낙일마검 장만보.

참으로 어색한 별호와 이름이 아닐 수 없었다.

“ 그분은 낭인 출신이라고 들었다. 별호와 이름을 바꾸라는 수하들의 권유를 뿌리치고 벌주가 되기 전에 얻은 별호를 계속 사용했다고 하더라.”

“ 그러니까 무공을 정석으로 배우지 않고, 변변한 배경도 없는 낭인이 대야벌의 벌주가 됐다가, 임기를 채우지도 못하고 삼 년 만에 실종됐다는 말이네.”

“ 음모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한다면 꿈 깨라. 그 사건을 두고 오 년 동안 조사가 이루어졌으니까.”

“ 결과는?”

“ 말 그대로 실종이다.”

“ 쿡!”

“ 그 웃음의 의미는 뭐냐?”

“ 문득 류사은 그놈이 했던 말이 생각나서 그래.”

“ 강한 무공을 뻐기다가 적진에서 죽었다는 그 녀석?”

“ 응.”

“ 뭐라고 했는데?”

“ 나보고 정천호 직위를 포기하라고 하더라.”

“ 왜?”

“ 내 밑에 있던 백호소 녀석들이 상당히 쟁쟁한 가문들 출신이라고 하더군. 아무튼 불알 두 쪽밖에 엇ㅂ는 놈이 쟁쟁한 가문의 자식들을 부하로 거느리게 되면 전투 중에 죽거나 실종되기 십상이래.”

“ 넌 연씨 세가 장남이잖아.”

“ 내가 근무하던 곳은 과거 이름을 사용하지 않아. 그냥 적랑, 사랑, 전랑, 귀랑 등으로 불렀어.”

“ 그럼 부하들이 대단한 가문 출신이라는 건 어떻게 아는데?”

“ 그건 오랫동안 함께 생활하다 보면 절로 알 수 있는 거잖아.”

“ 그러니까 네 말은 잘난 무하들이 하극상을 일으켜 별 볼일 없는 상관을 없앨 수도 있다는 거냐?”

“ 내가 죽거나, 실종당하지 않았지만, 대야벌의 벌주는 실종됐다며.”

“ 오 년 동안 조사해서 완결 난 사항이다. 자식아.”

“ 말이 그렇다는 거야. 인마. 여하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팔황새를 작살냈으니까 대야벌은, 중원은 물론이고 새외에서도 상대를 찾을 수가 없는 상황이네? 그 상태로 삼십 년이 흘렀고.”

“ 그런 셈이지.”

“ 그럼 대야벌 벌주나 똥자루 대머리 그 새끼 같은 수뇌들 입장에서는 지금 상황이 아주 만족스럽겠구나.”

“ 난 그것까지는 모른다.”

막장은 고개를 저었다.

“ 내 말이 맞아, 막장. 원래 권력을 쥔 자들이나 가진 게 많은 자들은 변화를 원하지 않아. 현 상황이 그대로 유지되길 바라지. 그들을 보수라고 부르는 이유가 그 때문이야.”

“ 너무 어려워. 자식아. 쉽고 편하과 간단하게 말해.”

“ 간단하게 말하면 대야벌의 벌주를 비롯한 수뇌들은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는 말이야. 전쟁은 하기 싫은데 적이 나타났어. 어떻게 처리하는 게 가장 좋을까?”

“ 그래서 적이 될 자들을 대야벌로 끌어들여 안방에서 싸우게 한다고?”

“ 정해진 틀 안에서 싸우게 되면 변수가 거의 생기지 않잖아. 그 말은 곧 전대 벌주처럼 실종될 일이 없다는 뜻이기도 해. 더불어 삼궐칠련십림의 수뇌들에게도 신선한 자극도 될 테고.”

“ 하지만 적을 끌어들인다는 건, 지극히 위험한 방법이 아닐까?”

“ 강함의 발로지. 너희들이 아무리 용을 써도 우린 끄덕없다는 자신감.”

“ 그럴 수도 있겠네.”

막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 ........!”

“ 왜 인마.”

연우강이 말없이 쳐다보자 막장은 머쓱한 얼굴로 소리쳤다.

“ 뭐 느끼는 거 없어?”

“ 뭘 느껴야 하는 거냐?”

“ 대야벌이 기회의 장으로 변했는데 당연히 흥분해야지. 자식아.”

“ 흥분?”

막장은 멀뚱한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 그러니까 넌 이런 음식을 보고 허둥대는 거야. 어떤 걸 먼저 먹어야 할지 모르고, 어떤 음식부터 손을 대야 할지도 모르는 거라고.”

“ 그럼 너도 기회를 잡으러 가는 거냐?”

“ 나?”

“ 응!”

“ 난 도망치는 중이야.”

“ 도망친다고?”

“ 어떤 여자가 집요하게 쫓아오고 있거든.”

“ 여, 여자가 널 쫓아온다고?”

막장은 뜨악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 그 여자에게 걸리면 난 최하 사망이야.”

“ 하하하! 걱정 마라, 인마. 네 녀석 목은 내가 지켜주마.”

기회를 잡으란 연우강의 말을 잊은 듯 막장은 호탕하게 웃으며 술잔을 비웠다.

“ 단순한 놈!”

연우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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