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백수-9화 (9/232)

제9장 십뢰

“ 점점 재미 있어지네.”

연우강의 얼굴에 차가운 미소가 어렸다.

황색 무복을 걸치고 나타난 사내 또한 담대무궁에 버금가는 고수였다.

“ 댁도 내가 내건 내기에 군말 없이 따를 거요?”

연우강은 윤허를 보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 이 친구가 수락하면 나도 아무런 조건을 달지 않겠소.”

“ 그건 안 되오. 윤 형. 내가 내기를 하겠다고 결심을 하면 당신들을 무조건 따라야 하오. 즉 내가 내기를 하겠다고 수락하는 순간부터 내기가 시작된다는 뜻이오. 그 조건을 수락해야만 내기를 할 수 있소.”

연우강은 담대무궁과 윤허를 번갈아 보았다.

“ 난 그렇게 하겠다. 연우강.”

먼저 담대무궁이 고개를 끄덕였다.

“ 저 친구가 하면 나는 무조건 수락이오, 연 형.”

“ 그럼 난 공증을 서야겠군요.”

“ 끄응!”

아래층에서 뾰족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연우강의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귀에 익은 목소리였던 것이다.

곧 계단을 타고 면사를 걸친 여인이 올라왔다.

예상대로 그녀는 전에 연씨 세가에서 만났던 이지약이었다.

“ 난 이지약이에요.”

이지약은 연우강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담대무궁과 윤허를 향해 목례를 했다.

“ 이거 반갑습니다. 공주님.”

“ 처음 뵙소이다.” 먼저 윤허가 포권을 취하고 이어 담대무궁도 포권을 취했다. 포권을 취하는 담대무궁의 얼굴에 당혹스러워하는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갑자기 일이 커지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간단하게 연우강이 지닌 잠룡쟁패만 얻어 떠나려고 했는데 무굴과 구중련의 지원을 받는 윤허에 이어 황궐과 금황련의 지원을 받고 있는 소명공주까지 나타난 것이다.

“ 반가워요. 두 분, 그리고 연공자도.”

“ 귀신은 뭐하고 있는지 몰라.”

“ 제가 죽기를 바라시나요?”

“ 날 데려갔으면 좋겠다는 뜻입니다. 공주님. 도대체 무공도 모르고, 저놈 말처럼 업둥이인 내게 관심을 갖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 겁니까?”

연우강은 볼멘 소리를 했다.

“ 일천 년 대야벌 역사상 백대 고수의 호위를 받으면서 대야벌로 가는 잠룡은 연 공자가 처음이거든요.”

면사 안 이지약의 입가에 화사한 미소가 번졌다.

아마도 누군가 그 미소를 보았다면 석상처럼 굳어버렸을 것이다. 그만큼 그녀의 미소는 아름다웠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녀의 미소 띤 얼굴은 아무도 볼 수가 없었다.

“ 그거야 제가 무공이 없어서 그런 거 아닙니까? 그리고 우리 연 씨 세가는 일 년에  백만 냥씩 꼬박꼬박 뇌물을 바치고 있단 말입니다.”

“ 호호호! 아무튼 연 공자는 알게 모르게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인 것 같아요. 그런데 내기는 어떻게 하죠?”

이지약은 흥미로운 눈으로 연우강을 보았다.

아래쪽에서 담대무궁과 연우강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었다. 더불어 연금석의 피를 잇지 않았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됐다. 그 말을 듣자 비로소 그가 군역을 나간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성을 준 연 씨 세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것이었다.

“ 막장, 내려가서 주정 좀 가져다 줘.”

“ 주정?”

“ 세 병 정도면 될 것 같아. 술잔도 세 개.”

“ 알았다.”

막장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래층으로 훌쩍 몸을 날려갔다.

“ 우린 자릴 옮길까?”

“ 어디로 말이냐?”

담대무궁은 연우강을 멀뚱히 쳐다보았다.

“ 내기는 한가운데 해야 분위기가 살거든.”

연우강은 싱긋 웃으며 궤짝을 들고 한가운데 있는 탁자로 갔다. 연우강이 고른 탁자는 네 변의 길이가 같은 정방형의 탁자였다.

“ 궁금한데, 어떤 내기인지 먼저 들으면 안 되겠소?”

윤허는 자리를 잡고 앉으며 물었다.

“ 잠시만 기다리면 저절로 알게 되오. 윤 형.”

연우강은 조금 전 자리로 가서 잠룡쟁패를 가져와 오른쪽에 치우치게 놓았다. 그리고 궤짝을 열어 그동안 얻었던 잠룡쟁패 여덟 개를 꺼내 자루 옆에 놓았다.

“ 그런데 저 따위 잠룡쟁패에 목숨을 걸 만한 가치가 있는 거냐?”

연우강은 담대무궁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 포기할 거면 자리를 뜨면 된다.”

담대무궁이 차갑게 말했다.

“ 주정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야.”

“ 여기 있다.”

연우강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래층에서 몸을 날려온 막장이 주정 세 병을 탁자 가장자리에 놓았따.

“ 술잔은?‘

“ 이 정도면 되겠냐?”

막장은 주정과 함께 가져온 술잔을 연우강 앞으로 내밀었다.

“ 하나씩 받아.”

연우강은 술잔을 담대무궁과 윤허 앞으로 하나씩 밀었다.

“ 설마 술내기는 아니겠지?”

윤허는 술잔을 빙글빙글 들리며 소리없이 웃었다.

“ 그런 유치한 짓을 할 나이는 아니지.”

연우강은 다시 궤짝을 열어 손을 집어넣었다.

“ 이놈이 어디 있나.... 아! 여기 있네.”

이내 활짝 미소를 지은 연우강은 궤짝 안에서 특이한 물체를 하나 꺼내놓았다. 모두 의앟나 얼굴로 연우강이 올려놓은 것을 보았다.

육각형 단면을 가진 그것은, 길이는 한 자 남짓으로 여자 팔뚝 두께만 한 두꺼운 피리와 비슷했다. 더불어 쇠로 만들어진 듯 검은색을 띠고 있었다.

“ 뭐냐 저게.”

막장의 얼굴은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연우강은 올려놓은 물건을 보고 있자니 웬지 모를 섬뜩함이 밀려와 몸이 부르르 떨렸다.

“ 내가 류사은 이야기 했던가?”

“ 이번까지 이야기하면 세 번째다.”

“ 그 녀석이 준거야.”

“ 그러니까 뭐냐고!”

“ 자살을 하게 되면 반드시 이걸 이용하라고 하더라. 고통없이 한 방에 갈 수 있다면서.”

“ 자살?”

막장은 깜짝 놀라 탁자 위의 물건을 보았다.

검은색이라는 걸 빼면 별다른 특징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자살용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어떤 물건인지 알 수가 없었다.

비단 막장뿐만이 아니었다.

담대무궁과 윤허 또한 흠칫 놀란 얼굴로 검은색 물체를 주시했다.

“ 십뢰라는 것이다.”

“ 시, 십뢰라고?”

“ 십뢰!”

“ 헉!”

“ 억!”

연우강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주변에서 놀란 외침이 흘러나왔다.

그들은 경악한 얼굴로 탁자 위에 놓인 물건을 보았다.

실제로 보진 못했지만 십뢰라는 그 이름은 귀가 닳도록 들었기 때문이다.

설사 금강불괴지신에 올랐다고 해도 절대 만나지 마라. 그 마물은 단 하나가 제작됐을 뿐이고 사정거리는 삼 장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것은 금강불괴지신을 파괴시킨다. 그 마물의 이름이 바로 십뢰다.

언제부터 그 말이 돌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암기제조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사천당문에서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십뢰를 만든 사천당문은 시험을 하고 난 다음에 바로 설계도를 폐기했다고 하였다.

모순되게도 금강불괴지신을 파괴할 수 있는 가공할 무기를 만들어냈지만, 사천당문의 안전은 장담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예는 과거에도 있었다.

벽력탄과 광천뢰를 만들어낸 벽력세가는, 가문을 지켜줄 걸로 믿었던 그 벽력탄과 광천뢰 때문에 멸문을 당하고 말았다. 벽력탄과 광천뢰의 위력에 깜짝 놀란 강호 무림은 벽력세가를 무림 공적으로 지목해 버렸기 때문이다. 벽력세가에게 있어 벽력탄이나 광천뢰는 분에 넘치는 보물이었던 것이다.

사천당문에서 만든 십뢰 또한 벽력세가의 벽력탄이나 광천뢰와 같은 종류라고 할 수 있었다.

강호 무림에서 오래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키지 못할 보물을 가지고 있지 않아야 한다는 게 강호 무림의 오랜 불문율이고 사천당문 또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 그, 그걸로 우릴 쏘겠단 말이냐?”

담대무궁은 굳은 얼굴로 연우강을 쏘아보았다.

이야기만 들었을 뿐 실제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십뢰는 금강불괴지신을 전문적으로 파괴한다고 알려져 있고 조금 전 연우강은 자리를 지정해 줬다.

지금 거리에서 십뢰를 쏜다면 하늘같은 무공이 있따고 해도 피할 방법이 없을 터였다.

“ 십뢰를 막아낼 자신은 없나보지?”

연우강은 빙그레 웃으며 담대무궁을 보았다.

“ 내기는 모두 같은 조건이라야 성립된다. 본인에겐 유리하게 상대방에게 불리하다면 그건 내기가 아니다. 연우강. 그런 내기라면 난 그만 두겠다.”

담대무궁은 벌떡 일어났다.

“ 걱정 마라. 담대무궁. 이건 자살용일 뿐 남에게 쏘는 게 아니다. 지금껏 여섯 발이 발사됐지만 남에게 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연우강은 피식 웃으며 십뢰 중간을 만졌다.

딸칵!

나직한 소성과 함께 주먹보다 약간 작은 뭉치가 분리돼 나왔다. 그 뭉치는 가장자리를 빙 둘러 열 개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 면사 좀 빌려달라면 안 되겠죠?”

뭉치를 내려놓은 연우강은 이지약을 보았다.

“ 얼굴에 있는 건 안 되고, 다른 건 드릴 수 있어요.”

이지약은 품속을 더듬어 흰색 면사를 꺼내 연우강 앞으로 내밀었다.

“ 굳이 대야벌로 가려는 이유가 있습니까?”

연우강은 그녀가 준 면사로 십뢰의 몸통을 꼼꼼하게 닦았다. 외부를 닦고 그 다음엔 면사를 돌돌 말아 구멍 안쪽으로 집어 넣어 천천히 돌렸다.

“ 갑자기 무림에 관심이 생겼어요. 만나고 싶은 사람도 있고요.”

“ 그 관심에 저는 끼어 있지 않길 바라겠습니다.”

연우강은 몸통을 내려놓고 뭉치를 들어올렸다.

“ 글쎄요. 그건 두고 봐야죠. 그런데 그건 어떻게 사용하는 거죠?”

“ 전쟁을 오랫동안 치르게 되면 피에 대한 면역이 생기게 됩니다. 그 면역은 무인들이 흔히 말하는 마인이라는 놈들이 피를 갈구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죠.”

뭉치를 세우자 안쪽 구멍에서 새끼 손가락 한 마디 길에 정도 되는 물체 네 개가 빠져나왔다.

꿀꺽!

일행은 긴장한 얼굴로 연우강이 내려놓은 물체를 살폈다. 유선형으로 날렵하게 빠진 물체에서 섬뜩한 기운이 풍겼다. 일행은 직감적으로 그것이 십뢰의 암기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 실제로 십뢰라고 부르는 건 이놈입니다. 공주님, 표면에 십뢰라고 새겨져 있을 겁니다.”

연우강은 뭉치에서 빠져나왔던 검은색 암기 한 개를 이지약에게 내밀었다.

글을 확인한 이지약은 들고 있던 암기를 윤허에게 건네주고는 연우강을 보았다.

“ 정말 십뢰라는 글이 새겨져 있군요. 그런데 어떻게 차원이 다르다는 거죠?”

“ 피와 물을 구분하지 않을뿐더러 산사람과 시체도 구부하지 않게 되죠. 갈증이 나면 피로 목을 축이기도 하고 썩어가는 시체 옆에서 밥을 먹고, 때로는 시체의 콧구멍에서 꾸물거리는 구더기를 젓가락으로 떼어내기도 하죠. 그리고 그 젓가락으로 다시 밥을 먹습니다.”

“ 정신적으로 황폐해진다는 뜻인가요?”

“ 머릿속이 사막으로 변한다는 뜻입니다. 공주님.”

“ 삶에 염증을 느끼게 된다는 말이군요.”

“ 그때부터 병사들은 자살 놀이를 시작하죠.”

“ 자살 놀이?”

“ 혹시 신비궁이라고 아십니까?”

“ 활을 쏘는 장치인 방아쇠가 달린 궁을 말하는 거잖아요. 춘추전국시대를 마감하고 처나를 처음 일통한 진나라 때에 만들어졌고요.”

“ 맞습니다. 공주님. 그 신비궁에 줄을 연결해, 누군가 그 줄을 건드리면 발사되게 만든 장치를 일컬어 야복경과라고 하는데 주로 적의 움직임을 방해하기 위해 설치합니다. 군에서는 흔히 쓰이곤 하죠. 그 야복경과 열 개를 타원형으로 설치합니다. 열 개 중 어느 것을 쏘더라도 화살은 한 지점으로 날아가게 되는 겁니다. 그런 다음 화살이 모이는 곳에 기둥을 세우고, 기둥 옆에는 탁자를 놓고 그 탁자에 야복경과 연결된 줄 열 개를 고정시켜 놓습니다.”

“ 그런 다음에 어떻게 하죠?”

“ 자살 놀이는 보통 세 놈이 하는데, 순서를 정한 다음 차례가 된 놈은 조금 전 말했던 기둥으로 가서 움직일 수 없도록 몸을 묶습니다. 몸을 묶을 때는 다리와 허리와 가슴 세곳을 묶고 팔은 자유롭게 둡니다.”

“ 그런 다음에 열 개의 줄 중에 하나를 골라 자르는 건가요?”

“ 그렇습니다. 먼저 술을 마신 다음 열 개의 줄 중에 하나를 잘라내는 게 바로 자살놀이 입니다.”

“ 그 놀이에서 죽기도 하나요?”

“ 죽지 않으면 끝나지 않습니다.”

“ 잔인하군요.”

“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살 놀이를 한 번 하고 나면 몇 달간은 열심히 살게 됩니다. 한 놈의 죽음으로 나머지 두 놈은 새 삶을 찾는 거죠.”

“ 그럼 그건 어떻게 하는 거죠?”

이지약은 연우강이 닦고 있는 십뢰를 보며 물었다.

“ 야복경보다는 좀 더 간단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뭉치에 십뢰를 하나 넣고 나서 다시 본래대로 장착을 합니다.”

연우강은 십뢰 하나를 밀어넣고 조립했다.

“ 그런다음 이렇게 돌려주는 겁니다.”

장착이 제대로 됐는지 확인을 하고는 이상이 없자 뭉치의 염편에 손바닥을 대고 힘차게 내렸다.

촤르르!

그러자 뭉치가 빠르게 돌아갔다.

한동안 돌아가던 뭉치가 움직임을 멈추자 연우강은 탁자 한가운데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 여기 있는 단추를 누를 때마다 뭉치는 한 구멍씩 순차적으로 움직인다.”

연우강은 담대무궁과 윤허를 쳐다보며 나직이 말했다.

“ 그걸로 어떻게 한다는 거냐?”

담대무궁의 얼굴이 잔뜩 굳었다.

“ 먼저 내가 시범을 보이겠다. 막장 술.”

연우강은 왼손으로 술잔을 쥐고 막장 앞으로 내밀었다.

“ 아, 알았어.”

막장은 얼른 주정을 따라주었다.

독한 주향이 실내를 가득 채웠다.

“ 주정은 바로 삼키지 말고 입 안을 헹구고 난 후에 삼켜라.”

주정을 털어 넣은 연우강은 잠시 입 안에서 굴리다가 꿀꺽 삼켰다.

“ 다음에 십뢰를 이렇게 하면 된다.”

연우강은 두 사람을 빤히 쳐다보며 십뢰 입구를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음식을 잔뜩 집어넣은 것처럼 양 볼이 부풀어 올랐다.

“ 으으! 으으으으!”

십뢰 때문에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행동으로 어림잡아 손잡이 부분에 있는 단추를 눌러야 십뢰가 발사된다는 뜻인 듯했다.

연우강은 담대무궁과 윤허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단추에 올려두었던 손가락을 사정없이 눌렀다.

“ 헉!”

“ 엄마!”

“ 헉!”

모두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철컥!

“ 후우!”

“ 하!”

막장과 이지약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쇳소리만 들려올 뿐 암기는 발사되지 않았던 것이다.

“ 야! 이 자식아!”

막장은 버럭 소리쳤다. 정말로 간이 떨어질 뻔했다.

“ 술이나 줘, 자식아.”

연우강은 막장 앞으로 술잔을 내밀었다.

“ 죽으려고 용을 써라, 자식아!”

주정을 따라주는 막장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연우강은 한입에 술잔을 비웠다. 독한 주정이 목을 타고 내려가자 비로소 긴장이 풀렸다.

“ 이걸 입 안으로 넣는 이유는 십뢰가 목을 관통하면 고통없이 바로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첫 판엔 십뢰 하나를 넣고, 둘째 판은 두 개를 넣는다. 그리고 셋째 판은 세 개를 넣고, 넷째 판은 네 개를 넣는다. 지금은 하나가 들어간 상태다.”

연우강은 십뢰를 들어 가운데 뭉치를 사정없이 돌렸다.

촤르르!

섬뜩한 소리와 함께 뭉치가 빠르게 돌아갔다. 뭉치가 멈추자 연우강은 십뢰를 가운데 놓았따.

“ 열 개 중의 하나니까 살아날 확률은 구 할이다.”

“ 순서는 어떻게 정하나?”

담대무궁이 창백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이런 식으로 내기를 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지금과 같은 내기라면 이 갑자의 내공도, 자타가 인정하는 뛰어난 머리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생사를 결정하는 건 오로지 운이었다.

“ 이렇게 정한다.”

연우강이 십뢰 중앙을 잡고 힘을 주어 돌렸다. 그러자 십뢰가 탁자 위에서 빠르게 돌아갔다.

“ 아래쪽은 수평이 아니었군요?”

이지약은 십뢰를 뚫어져라 들여다보았다.

“ 그렇습니다. 공주님. 이런 놀이를 하라고 그랬는지, 아래 쪽은 곡선으로 처리를 했더군요.”

휙! 휘휙! 휙휙!

나머지 사람들도 긴장한 얼굴로 십뢰를 주시했다.

“ 확률적으로는 먼저 한 사람이 유리하지만, 그가 죽으면 나중 사람은 할 필요가 없으니까, 어느 쪽이 유리하다고 말을 할 수도 없겠군.”

담대무궁과 마찬가지로 빙글빙글 돌아가는 십뢰의 몸통을 내려다보며 윤허의 얼굴도 잔뜩 굳은 채였다.

“ 십뢰의 주둥이가 향하는 사람이 먼저 시작한다. 내기를 포기할 생각이면 십뢰가 멈추기 전에 일어나 떠나면 된다.”

빠르게 돌아가던 속도가 조금씩 느려지고 있었다.

담대무궁과 윤허는 서로 눈치를 살폈다.

자기 능력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런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조건 내기에 임하겠다고 공언을 한 상태인데 체면 때문에 일어날 수도 없는, 그야말로 진퇴양난이었다.

척!

주저하는 사이 돌아가던 십뢰가 멈추었다.

‘ 휴우!’

‘ 휴우!’

두 사람은 저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십뢰가 연우강을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 연 공자는 조금 전에 하지 않았아요?”

보고 있던 이지약이 이의를 제기했다.

연우강은 한 번 했으니 담대무궁이나 윤허 둘 중의 한 사람이 해야 하지 않느냐는 말이었다.

“ 아닙니다. 공주님. 뭉치를 다시 돌렸으니까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합니다. 막장 술.”

연우강은 막장 앞으로 술잔을 내려놓았다.

탁!

술잔을 놓는 소리임에도 불구하고 안쪽에 있던 자들은 움찔 몸을 떨었다. 십뢰가 멈춰 설 때까지 담대무궁이나 윤허가 자리를 뜨지 않았기 때문에 내기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쪼르르!

술을 제대로 따르지 못할 정도로 떨고 있는 막장의 손이 중인들의 심정을 대변했다.

술잔이 가득 차자 연우강은 단숨에 입 안으로 털어 넣었다. 한동안 주정을 입 안에서 굴리다가 꿀꺽 삼키고는 십뢰를 들었다.

“ 이 짓을 하는 놈들을 자세히 관찰하면 아주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 말이야. 딱 삼 개월 간다는 거야. 삼개월 전에 자살 놀이를 했던 놈들이 전쟁터에 몇 번 다녀오면 또다시 나무 기둥에 몸을 묶고는 주정을 마셔. 왠지 알아?”

연우강은 십뢰를 입 앞으로 가져갔다.

꿀꺽!

일행은 동시에 마른침을 삼켰다. 그러고는 긴장한 얼굴로 연우강을 지켜보았다.

“ 이 빌어먹을 자살 놀이가 주는 자극을 잊지 못해서야. 이 놈은 앵속보다 더 중독성이 강하거든. 손가락으로 단추를 누르는 순간엔 온몸에서 무엇인가가 분출되며 허공으로 떠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어. 그 느낌은 죽기 전에는 결코 잊지 못해. 매일 매일 술에 절어 계집을 안고 뒹굴어도 그런 느낌은 얻지 못한다고. 아마 너희들도 금세 알게 될 거야.”

연우강은 씨익 웃으며 십뢰를 입 안으로 쑤셔 넣었다. 그는 십뢰를 입 안으로 넣은 채 담대무궁을 쳐다보았다.

자신에게 닥치지 않은 이이라 그런지 담대무궁의 얼굴은 비교적 태연해 보였다.

그런 그를 보면 연우강은 십뢰의 손잡이에 불쑥 튀어나와 있는 단추를 힘껏 눌렀다.

담대무궁은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철컥!

‘ 빌어먹을!’

“ 휴우!”

“ 아!”

“ 우!”

막장과 이지약의 입에서는 안도의 한숨이, 나머지 사람들의 입에서는 안타까운 탄성이 흘러나왔다.

‘ 빌어먹을!’

눈을 질끈 감았던 담대무궁의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이젠 자신과 윤허가 남았다.

“ 이제 죽을 확률은 일 할 일 푼이다.”

입 안에서 십뢰를 빼낸 연우가은 입으로 들어갔던 부분을 옷에 문질러 닦아내고는 탁자 한가운데 놓았다.

담대무궁과 윤허는 탁자 위에 놓인 십뢰를 응시했다.

“ 당신들 둘이 시작하기 전에 먼저 정리를 해야 할 게 있어.”

“ 뭘 말이냐?”

담대무궁은 긴장한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 당신네들 부하들에 대한 거야.”

“ 설사 우리 둘 중 누군가가 죽는다고 해도 복수할 생각은 절대 하지 말라는 뜻이냐?”

“ 자살한 사람의 복수를 한다는 건 말도 안 되지. 다만 흥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지.”

“ 일노, 들었소?”

“ 아, 알았습니다. 삼공자.”

노중산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나도 걱정할 필요 없소. 연 형.”

“ 좋소. 방법은 전과 같소. 내기를 그만하고 싶은 사람은 이놈이 멈추기 전에 자리를 뜨면 되오.”

연우강은 싱긋 웃으며 십뢰를 돌렸다.

꿀꺽!

꿀꺽!

다들 긴장한 얼굴로 십뢰를 보았다.

연우강은 통과했으니 이번엔 담대무궁과 윤허 둘 중의 한 사람이 자살 놀이라고 하는 그것을 해야만 한다.

돌아가는 속도가 느려지자 일행은 십뢰를 쏘아보았다.

“ 아!”

“ 으음!”

십뢰의 입구가 담대무궁 앞에서 멈추자 희비가 엇갈렸다. 노중산 일행은 안타까운 얼굴을 했고, 윤허 뒤에 있는 자들의 얼굴엔 희미한 미소가 어렸다.

담대무궁은 십뢰를 노려보았다. 실은 후회막급이었다. 공연히 내기를 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만약 윤허가 나가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만 나가면 두고두고 웃음거리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 일 할 일푼이면 죽을 확률은 지극히 낫다.’

이내 결심을 굳힌 담대무궁은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십뢰의 출구를 닦았다.

“ 술은?”

연우강은 주정이 담긴 병을 들어 올렸다.

“ 필요없다. 연우강.”

“ 주정엔 여러 가지 의미가 포함돼 있다. 첫째는 중압감을 떨치기 위함이고, 두 번때는 다음 사람을 위해 청결하게 사용하려는 거다. 잔말 말고 퍼 마셔라.”

연우강은 담대무궁의 술잔에 주정을 가득 따랐다.

“ 다음 사람 생각해서 청결하게 해야 한다는 건 곧 살아남기를 바란다는 뜻이군.”

“ 죽고 싶은 놈은 없으니까.”

연우강은 피식 웃었다.

“ 그럼 자살 놀이 자체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나?”

“ 그게 바로 사고의 모순이라는 거야. 죽기는 싫은데 자살 놀이가 주는 자극은 잊지 못하거든.”

“ 인생 막장이군.”

“ 맞아. 인생 막장들이니까 그런 짓도 하는 거야. 그러니까 너도 뜸들이지 말고 얼른 해, 새꺄!”

“ 언젠가는 반드시 널 죽이겠다. 연우강.”

“ 내가 살면 네가 죽고, 네가 살면 내가 죽게 되니까, 중간에 네가 도망치지 않는 이상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아. 담대무궁.”

“ 개자식!”

담대무궁은 십뢰를 입 안으로 밀어넣었다.

“ 단추를 누르는 그 짧은 순간에 수십 년 생을 정리할 수 있다는 사실에 넌 깜짝 놀랄 거다.”

연우강은 자신의 술잔에 주정을 따라 단숨에 들이켰다.

‘ 오냐, 개자식.’

연우강을 노려보는 담대무궁의 눈에서 새파란 광채가 흘러나왔다. 한동안 연우강을 노려보던 그는 조심스럽게 단추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았다.

둥둥! 둥둥! 둥둥둥둥!

갑자기 심장이 무서운 속도로 뛰었다.

얼마나 크게 뛰는지 머릿속이 온통 심장 뛰는 소리로 들어찼다. 더불어 시간마저도 정지해버린 듯, 위층에서 들려오던 풍악 소리마저 들려오지 않았다.

‘ 네놈이 하는 거라면......’

자존심 때문에 십뢰를 입에 물기는 했지만 마지막 순간만은 어쩔 수가 없다는 듯, 담대무궁은 눈을 질끈 감고 손가락을 눌렀다.

철컥!

“ 아!”

“ 후아!”

“ 우우우!”

노중산 일행의 입이 쩍 벌어졌다. 쇳소리만 났을 뿐 십뢰가 발사되지 않은 것이었다. 노중산은 담대무궁의 어깨에 손을 얹었따.

‘ 세상에.’

노중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는데, 부들부들 떨고 있는 담대무궁의 몸은 땀으로 범벅이었다.

담대무궁을 어렸을 때부터 지켜보았지만 어떤 일을 앞두고 이렇듯 극심하게 떠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죽을 확률 일할.

생각하기에 따라선 별것 아닐 수도 있다. 아니 비무를 하다가 죽을 확률보다 더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대무궁이 견디질 못하고 있었다.

‘ 말리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그는 걱정스런 얼굴로 담대무궁을 보았다.

“ 이젠 윤허 당신이오.”

담대무궁은 깊게 한숨을 내쉬며 십뢰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 천하의 범천담대세가의 삼공자가 온몸이 땀으로 뒤범벅인 걸 보면, 이놈이 엄청난 물건인 건 맞네.”

윤허는 으쓱하며 십뢰를 들어올렸다.

하지만 말과는 달리 그의 모습도 조금 전 담대무궁과 다르지 않았다. 떨지 않으려고 몇 번에 걸쳐 심호흡을 하고 있지만, 이마에서 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 술 한 잔 주시오. 연 형.”

결국 윤허는 술을 찾았다.

이미 술을 따라두고 있던 연우강은 그 앞으로 술잔을 밀었다.

윤허는 덮치듯 술잔을 들어 입 안으로 털어넣었다.

“ 크으! 젠장!”

잔뜩 인상을 쓴 채 재빨리 십뢰를 입 안으로 밀어넣었다. 그러고는 눈을 질끈 감고 곧바로 단추를 눌러버렸다. 중압감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였다.

철컥!

“ 씨파!”

십뢰가 발사되지 않자, 안도의 한숨보다 욕설이 먼저 튀어나왔다. 윤허는 거칠게 십뢰를 내려놓았다.

“ 한잔 더 주시오.”

연우강 앞으로 술잔을 내미는 윤허의 손은 사시나무 떨 듯 떨고 있었다. 연우강이 한가득 주정을 부어주었지만, 술잔이 입 앞에 다다랐을 때는 절반밖에 남지 않았다. 팔을 오므리는 도중에 절반 이상을 쏟아버린 것이었다.

“ 이제 십뢰 두 개를 넣을 거야. 죽을 확률은 이 할로 늘어나고, 살아남을 확률은 팔 할로 줄어들지. 첫판보다 더 짜릿하고 더 흥분될 거야. 어쩌면 오줌을 싸게 될지도 몰라.”

연우강은 뭉치를 분리하여 십뢰 하나를 밀어넣고 다시 조립했다.

촤르르!

뭉치가 돌아가면서 나는 그 소리는 살아 있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죽은 자의 혼을 인도하기 위해 연주하는 진혼곡이었다.

휙! 휙! 휙! 휙!

곧이어 십뢰 몸체가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게 흘러나왔다 그것은 천둥치는 소리보다 더욱 요란했다.

휙! 휙! 휙! 휙! 휙!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