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백수-16화 (16/232)

제5장 난투박투

일잔풍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특이하게 생긴 손괭이, 낫, 약탕기, 족히 한 달은 버틸 수 있는 육포, 술, 물 그리고 탕약.

일잔풍을 웃게 만든 건 다름 아닌 탕약이었다.

탕약은 육포보다 훨씬 많아 거의 두 달 분이나 되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감옥에 들어오면서 약을 챙겨 들어오는 놈은 처음이었다.

“ 깨워라!”

츄악!

일잔풍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기다리고 있던 자가 연우강의 얼굴에 물을 끼얹었다.

‘ 이것들이 정말!’

연우강은 얼굴을 찌푸렸다.

지금 두 팔이 묶여 매달려 있는 상황이었다.

녀석들에게 이끌려 공터를 떠나는 순간부터 천리지청술로 주변을 감시하고 있었다.

지금 상황을 주시하는 자들은 두 부류였다. 한쪽은 공터에서부터 따라온 자들이고, 다른 한 부류는 감옥 지하로 들어왔을 때 은밀하게 모습을 드러낸 자들이다.

지하에서 나타난 자들은 문제가 아닌데, 공터에서부터 따라온 자들은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다.

‘ 그런데 여긴.....’

연우강은 실눈을 뜨고 주변을 살폈다.

벽을 비롯한 천장까지 전부 목조로 이루어져 있었다. 좌우폭은 삼 장 정도로 정방형을 이루고 있는데, 출입문이 정면으로 있는 걸 보면 안쪽에 매달려 있는 모양이었다.

안쪽에 들어와 있던 자들의 머릿수는 왼편 중간 부분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 일잔풍을 포함하여 스물한 명이었다.

‘ 그런데 이 바람 소리는 도대체 뭐야?’

연우강은 내공을 약간 더 끌어올려 보았다.

공터로부터 상당히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천리지청술을 끌어올리고 있는 귓전으로 바람소리가 잡혀들기 시작했다. 휘이익! 하는 소리는 마치 낭떠러지 같은 곳에서 듣는 바람소리와 비슷했다.

‘ 설마 낭떠러지가.....?’

연우강은 내심 웃었다.

천옥은 지하에 만들어져 있고, 지금 있는 이곳은 지하에서도 또다시 이층을 더 내려왔다. 결국 이곳은 지하 삼층이란 소리다. 낭떠러지가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바람소리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았다.

“ 여긴 풍곡 위쪽에 만들어진 천옥 고문실이다.”

연우강의 의문을 풀어주기라도 하듯 일잔풍은 나직이 말했다.

“ 풍곡?”

“ 직접 눈으로 보는 게 나을 거다.”

덜컹!

일잔풍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가 딛고 있던 바닥이 푹 꺼졌다.

“ 헛!”

연우강은 깜짝 놀랐다.

몸이 머리까지 푹 빠지며 차가운 바람이 온 몸으로 들이닥쳤다.

“ 여긴?”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놀랍게도 아래쪽은 끝을 알 수 없는 낭떠러지였다. 마치 또 다른 지하 세계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래쪽을 내려다보던 연우강은 고개를 들어 좌우를 살폈다. 그러다가 빙그레 미소지었다.

“ 지형지물을 적절히 이용했네.”

정확하게 어떤 지형인지 아직은 감이 잡히지 않지만, 어쨌든 천옥이 세워진 곳은 낭떠러지 안쪽이었다.

낭떠러지 가장자리를 따라 성벽처럼 외벽을 세우고 그 안쪽으로는 동굴을 파서 수감 시설을 만든 듯했다.

“ 그럼 여긴 천옥 밖이라고 할 수 있겠네.”

“ 그렇다. 연우강. 낭떠러지에 구멍을 뚫고 기둥을 박은 다음 그 위에 건물을 얹고, 마지막엔 줄로 고정했다.”

위에서 일잔풍의 목소리가 들렸다.

연우강은 고문실 바닥으로 시선을 내렸다.

허벅지 두께의 다섯 개의 기둥이 나란히 박혀 있었다. 녀석의 말처럼 고문실은 통나무 위에 얹혀 있는 상태였다.

“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넌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질 것이다. 아직 낭떠러지로 떨어져 살아 올라온 놈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다시 일잔풍의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몸이 천천히 끌어올려졌다.

“ 잔교처럼 만들었다는 거네?”

“ 군 출신이라고 하더니 잔고에 대해서 잘 아는 구나. 맞다. 잔교를 건설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 그럼 사람이 많이 들어오면 무너지겠군.”

“ 지금부터 질문을 하겠다. 성실하게 대답하면 아주 예뻐해 줄 것이다.”

일잔풍은 혀를 쑥 내밀어 입술을 축였다.

연우강을 보는 그의 얼굴은 변태적인 욕정으로 인해 잔뜩 달아올라 있었다.

“ 어떡하지? 이곳에 오기 전에 화장실을 보고 나서 닦질 않았는데. 내 거시기에서 지독한 냄새가 날지도 몰라. 아니 분명 지독하게 냄새가 날 거야. 더구나 난 똥지게잖아. 그리고 날 만족시키려면 상당히 커야 하는데 자신 있어?”

연우강은 대놓고 빈정거렸다.

“ 잠시 후엔 제발 몸을 바치겠으니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게 될 것이다. 연우강.”

일잔풍은 비릿하게 웃었다.

천옥에서 죄수로 취급을 받으려면 최소한 살임을 하고 들어와야 한다. 살인을 했다는 것은 이미 막장이란 소리고, 놈들은 거칠기 짝이 없다.

처음엔 연우강처럼 해볼 테면 해보라고 배짱을 부리다가도 일 각만 지나면 눈물 콧물을 흘리며 애원을 한다.

무슨 짓이든지 시키는 대로 할 테니 목숨만 살려달라고, 살인을 저지르고 들어온 놈들이 제 목숨에는 더 집착하는 우스운 광경을 보게 되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놈 또한 다른 죄수들과 다르지 않을 거라고, 일잔풍은 확신했다. 그는 오덕성을 보며 눈짓으로 지시를 내렸다.

“ 시작해라.”

일잔풍의 시선을 받은 오덕성은 좌우를 향해 나직이 소리쳤다. 그러자 기다리고 있던 두 명이 연우강을 향해 다가갔다. 그들의 손에는 번들번들한 몽둥이가 들려 있었다.

‘ 흡수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겠네.’

휙!

몽둥이가 바람을 가르며 날아오자 연우강은 타격 부위를 가늠하여 내공을 집중했다.

퍼억!

“ 크아악!”

짐짓 고통스러운 듯 지하가 떠나가라 고함을 내질렀다. 그러나 몽둥이질은 멈추지 않았다.

하나의 몽둥이가 회수되자마자 다른 자가 연우강의 배를 향해 몽둥이를 휘둘렀다.

퍼억!

“ 아악!”

연이은 타격에 연우강은 또다시 비명을 내질렀다.

“ 응?”

몽둥이질을 했던 자가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몽둥이찜질은 신고식이고, 거의 매번 자신이 도맡아 했다. 사람을 때릴 때 오는 촉감은 체구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나지만 대부분 대동소이하다. 돌이나 나무를 칠 때와는 달리 착착 감기는 맛과 더불어 약하게 튀는 듯한 반발력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녀석의 몸에서는 그런 느낌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솜이불을 둘둘 말아놓고 두들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 요 며칠 밤잠을 설쳤더니 기가 약해진 건가? 그렇다고 해도 이건 말이 안 되지.’

퉤!

사내는 연우강을 노려보며 손바닥에 침을 뱉었다. 그리고는 몽둥이를 불끈 틀어쥐고 사정없이 휘둘렀다.

퍼억!

“ 커억!”

퍼억!

“ 크아악!”

번갈아 휘두르는 두 사람의 몽둥이질은 쉬지 않고 이어지고, 장단을 맞추듯 연우강의 입에서는 돼지 멱따는 소리가 흘러 나왔다.

“ 거참!”

일잔풍은 얼굴을 찌푸렸다.

거의 반 시진 이상 매질을 했다.

보통은 일각 정도 지나면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고, 한 식경이 지나면 기절을 한다. 놈 또한 일 각 이상을 버티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놈은 예상했던 시간의 네 배 이상을 견디고 있는 것이다. 아니 견디고 있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녀석의 비명은 처음보다 더 우렁찼다.

비명만으로 보면 전혀 충격을 받지 않은 듯한 생각마저 들었다.

“ 비명이 아직 크다. 오덕성.”

일잔풍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 죄송합니다. 방장님!”

오덕성의 눈초리가 사정없이 치켜 올라갔다. 그 또한 일잔풍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것이었다.

“ 너 이새끼들 내일부터 굶고 싶어? 엉?”

오덕성은 몽둥이질을 하고 있는 사내들을 향해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 알겠습니다. 으랏차!”

“ 이얍!”

두 사내의 손이 더욱 빨라지고 몽둥이는 강한 파공성을 남기며 허공을 갈랐다. 그러나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연우강은 여전히 비명만 내지를 뿐, 시키는 대로 할 테니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지도, 정신을 잃지도 않았다. 결국 먼저 나가떨어진 쪽은 몽둥이질을 하던 자들이었다.

“ 외공을 익힌 것 같습니다. 방장님.”

몽둥이질을 하던 사내가 변명하듯 말했다.

“ 외공?”

일잔풍은 부하를 훑어보았다.

벽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하는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봐주고 때린 것이 절대 아니라는 의미였다.

“ 충격을 흡수하는 그런 종류의 외공을 익힌 것 같습니다. 마치 솜이불을 치는 듯한 기분입니다.”

“ 덕성, 확인해봐라.”

“ 알겠습니다.”

오덕성은 고개를 숙이고는 조금 전 사내들이 사용했던 나무 몽둥이가 아닌 쇠몽둥이를 들고 나섰다.

“ 무기도 있네?”

연우강은 오덕성의 손에 들린 쇠몽둥이를 희한한 듯 바라보았다.

“ 이곳엔 없는 게 없다. 놈. 네놈의 목을 잘라낼 수 있는 검도 있다.”

오덕성은 스산하게 말하고는 손바닥에 침을 뱉었다.

“ 그거 좋지 않은 습관이야. 혹여, 친한 사람을 만나더라도 악수는 하지 말아라.”

연우강은 오덕성을 빤히 쳐다보며 이죽댔다.

“ 이 자식! 누가 이기나 해보자.”

오덕성은 몽둥이를 번쩍 들어올렸다.

“ 이제 그만 하지!”

막 쇠몽둥이를 휘두르려는 순간 밖에서 흘러든 나직한 목소리가 오덕성의 동작을 막았다. 출입구로 시선을 주었던 자들이 일제히 일잔풍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건장한 체격의 중년인이 부하들로 보이는 십여 명과 함께 이편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천옥의 방장이자 과거 패천림의 림주를 역임한 적이 있는 혈악 두보관이었다.

“ 쿡!”

일잔풍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물렸다.

혈악 두보관.

천옥의 방장이자 자신을 이인자로 밀어낸 놈. 드디어 기다렸던 놈이 나타난 것이다.

‘ 넌 오늘 죽는다. 두보관.’

입가에 어린 차가운 미소가 더욱 서늘해졌다.

뒤편에 숨겨 둔 스무 자루의 검.

그건 하루 전 범일승 궁주의 부하가 가져다 준 것들이다. 천옥은 무기 사용이 엄격하게 금지돼 있고, 혹여 몽둥이 이상의 무기를 사용하다가 걸리면 바로 참수를 당한다. 범일승 궁주가 준 검 또한 두보관을 비롯한 놈의 부하들을 없애고 나면 시체와 함께 풍곡으로 던져버릴 참이었다.

“ 뭐 하고 있느냐, 오덕성!”

일잔풍은 오덕성을 돌아다보며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 알겠습니다. 차앗!”

오덕성은 기합을 지르며 쇠몽둥이를 힘껏 후려쳤다.

퍼억!

“ 크아아악!”

연우강은 전보다 더 크게 비명을 내질렀다.

“ 오덕성! 방장의 말을 거역할 참이냐?”

두보관은 차갑게 소리치며 일행과 함께 안으로 들어왔다. 안으로 들어온 두보관과 그의 부하들은  일잔풍 일행의 건너편으로 자리를 잡았다.

끼이익.

바닥에서 거북살스러운 소리가 흘러나왔다. 갑자기 십여 명이 더 들어오면서 무게가 늘어나 탓에 고문실을 받치고 있는 통나무가 휘어지면서 나는 소리였다.

일잔풍 주변으로 모여들었던 자들의 얼굴이 슬쩍 굳었다.

스르르!

고문실이 낭떠러지 쪽으로 기울어진 듯 오덕성 앞에 놓여 있는 손괭이와 낫이 연우강 있는 곳으로 미끄러져 내려왔다.

“ 겁나는 놈은 밖으로 나가라!”

두보관은 건너편에 서 있는 일행을 보며 소리쳤다.

“ 겁나면 네가 나가라 두보관.”

일잔풍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받아쳤다.

“ 배신이냐?”

“ 천옥엔 배신이란 말이 없다는 걸 아직 모르는 모양이구나. 여긴 강자만 존재하는 곳이다. 두보관, 승리하는 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그런 곳 말이다.”

“ 정말?”

“ ...?”

일잔풍은 의아한 얼굴을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두보관 또한 안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정말이냐고 질문을 한 사람은 두 팔이 묶인 채 허공에 매달려 있는 연우강이었다.

“ 괜찮은가?”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두보관이었다.

“ 당신과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고, 난 지금 저기 쥐새끼 같은 놈하고 할 말이 있으니까.”

연우강은 씨익 웃으며 일잔풍을 보았다. 그러고는 말을 이었다.

“ 정말이냐고 물었잖아, 인마.”

하지만 일잔풍은 여전히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아무리 외공을 익혔다고 하지만 과거 무공을 익혔던 무인 두 명이 지칠 때까지 후려쳤고, 조금 전에는 쇠몽둥이로 복부를 강타 당했다. 그렇게 맞은 놈이 멀쩡한 목소리로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 원래 말을 하지 않을 땐 긍정의 의미라고 했으니까.”

연우강은 싱긋 웃으며 손목을 묶은 줄을 풀었다.

“ 미치겠군.”

일진풍은 어이없는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 미치는 건 나중에 하고 지금 당장은 무릎 꿇고 비는 게 좋아. 지금껏 내가 맞은 게 정확하게 이천하고도 오백두 대야. 난 원래 하나를 받으면 열을 돌려주는 성격이거든.”

연우강은 허리를 숙여 발치까지 미렬 내려온 손괭이와 낫을 주워들었다.

“ 새롭군.”

연우강은 싱긋 웃었다.

“ 군에 있을 때 말이야, 이걸 들고 싸우는 걸 우린 난투박투라고 불렀어.”

연우강은 왼손에 손괭이, 오른손엔 낫을 쥐었다.

“ 날이 무뎌져서 잘 들으려나 모르겠네.”

“ 뭐 하나, 오덕성!”

“ 알았습니다.”

오덕성은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며 쇠몽둥이를 횡으로 쓸었다. 내공이 금제됐다고 하지만 수십 년 동안 무공을 익혔던 자답게 그의 동작은 깔끔했다.

만일 내공만 실린다면 상당히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그런 검법이었다.

“ 너희 무인들은 말이야. 내공이 없으면...”

차앙!

연우강의 손괭이가 오덕성의 쇠몽둥이를 막아냈다. 몽둥이를 막아내는 순간 연우강의 손목이 교묘하게 꺾였다.

슈캉!

“ 헉!”

오덕성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순간적으로 손괭이가 회전을 하는 듯 하더니 뒤편에 있는 뾰쪽한 부분이 쇠몽둥이를 감아 꺾자, 얼결에 쇠몽둥이를 놓치고 말았다.

“ 좇도 아냐, 새끼들아.”

연우강의 오른손에 있던 낫이 허공을 갈랐다.

스악!

“ 크아악!”

연우강의 낫이 오덕성의 목을 가르자 잘려나간 머리가 둥실 떠올랐다.

“ 저 친구?”

오덕성과 연우강의 싸움을 지켜보던 두보관은 깜짝 놀랐다. 일반적으로 무공이 없는 자가 사람의 목을 단번에 잘라낸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손목을 비틀어 오덕성의 손에서 쇠몽둥이를 빼내는 것은 수많은 실전경험이 없다면 불가능한 기술이었다. 전쟁터에서 수많은 살인을 경험한 자가 아니면 나올 수 없는 행동들이었다.

‘ 일잔풍, 넌 전귀를 건드렸다.’

두보관은 시선을 돌려 일잔풍을 바라보았다. 일잔풍의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 크아악!”

“ 아악!”

손괭이가 머리를 부수고, 낫이 목을 잘라냈다.

“ 저 친군 전투의 신이다. 혈악!”

연우강을 보며 두보관은 중얼거렸다.

두보관의 예상대로였다.

일잔풍의 눈은 찢어질 듯 커져 있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이곳에 있는 죄수는 전부 무공을 익혔던 자들이고 일류 소리를 들었던 자들이다. 설사 내공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도 군병이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그런 자들이 아니다. 그런 자들이 녀석의 괭이와 낫 앞에서 허수아비처럼 되고 말았다.

차앙!

“ 크아악!”

챙!

“ 아악!”

“ 검을 잡아라!”

또다시 두 명이 죽임을 당하자 일잔풍은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 검을 잡아라!”

부하 한 명이 일진풍 뒤편으로 달려가서는 검은 천을 획 걷었다. 안쪽에는 수십 자루의 검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사내는 검을 들어 동료들에게 던져 주었다.

스르릉!

검을 뽑아드는 사내들의 얼굴에 진득한 살기가 어렸다.

“ 몽둥이를 쥔 녀석들은 물러나라!”

그들은 고함을 지르며 연우강을 향해 몸을 날렸다.

“ 검을 쥐었따고 해서 달라질 거라고 생각한다면 너희들은 더 바보다!”

연우강은 차갑게 소리치며 마주 달렸다.

끼이익! 끼익!

고문실이 흔들리며 아래쪽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지만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 것들까지 신경 쓰기엔 너무 흥분해 있었던 탓이다.

차앙!

스르릉!

손괭이가 검을 밖으로 밀어내며 검면을 타고 흘렀다. 사내는 밀리지 않기 위해 양팔에 잔뜩 힘을 주었다.

하지만 속절없이 검은 밖으로 밀려나고, 가슴을 훤하게 내주고 말았다. 활짝 열린 가슴 사이로 연우강의 낫이 무자비하게 파고들어 갔다.

“ 커억!”

사내는 검을 떨어뜨리며 푹 쓰러졌다.

연우강은 바닥에 떨어진 검을 차내며 머리를 향해 다가오는 검을 막았다. 손괭이를 들어올려 검을 막아냄과 동시에 낫을 상대방의 옆구리로 박아 넣었다.

낫 자루를 불끈 틀어쥔 그는 앞으로 끌어당기며 마치 나무를 타고 돌 듯 방금 숨통을 끊어놓은 자의 몸을 타고 돌았다. 이미 다른 사내 한 명이 검과 한 몸이 돼 달려오는 것을 목격하고는 자세를 낮추며 손괭이를 사정없이 휘둘렀다.

돌아가는 여력과 팔 힘이 합쳐진 손괭이는 가공할 속도로 허공을 갈랐다.

스악!

사내의 검은 목을 가르기는 했다.

하지만 그의 검이 가른 목의 주인은 연우강이 아니라 연우강의 등에 기대 있는 자였다. 이미 시체가 돼 쓰러져 가는 동료 죄수의 목이었다.

푹!

얼굴이 일그러진 사내의 가슴으로 연우강의 손괭이가 박혀들어갔다.

“ 빌어먹을!”

사내는 연우강을 쳐다보았다.

씨익!

연우강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어리고, 오른손에 들린 낫이 죽어 가는 사내의 목을 향해 날아갔다.

스악!

둥실!

사내의 머리가 둥실 떠오르고, 목에서 솟구친 피가 연우강에게로 쏟아졌다.

“ 간~다! 가-라! 새카만 이리가 사막을 달린다!”

사내의 피가 얼굴로 쏟아지자 느닷없이 연우강의 입에서 우렁찬 외침이 흘러나왔다.

“ 부순다! 부숴라! 우리를 막는 적군을 부순다!”

그의 동작이 더욱 빨라지고 잔인해졌다.

손괭이로 막고, 낫으로 자르고, 다시 손괭이로 찍었다. 피가 사방으로 튀고 잘린 머리가 둥실 떠올랐다.

“ 남긴다! 남겨라! 흑랑이 지나가면 시체만 남는다!”

퍼억! 스악!

“ 에이! 씨부랄! 에이! 씨부랄!”

“ 크악!”

“ 아아악!”

“ 저저저!”

일잔풍은 경악한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믿을 수가 없었다.

놈이 대야벌로 들어와서 한 거라곤 똥지게를 지고 달려 다닌 것밖에 없다고 들었다. 똥지게를 열심히 진 바람에 힘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해졌지만, 똥지게를 지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다고 하였다.

그랬던 놈에게 부하들이 몰살을 당하고 있었다.

“ 달린다! 달려라! 미친 이리가 적진을 달린다!”

“ 크아악!”

“ 아악!”

“ 개자식!”

일잔풍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놈이 손괭이와 낫을 들고 있는 이유를 비로소 알듯했다. 바로 확인사살을 위해서였다.

손괭이가 상대의 몸에 꽂히면서 낫으로 확인사살을 하고, 낫이 상대의 몸에 꽂히면 손괭이로 확인사살을 한다. 놈이 지나가고 난 자리엔 오직 시체만 남았다.

“ 죽인다! 죽여라! 한 놈도 남김없이! 씨를 말려라! 마셔라! 마셔라! 적군의 피로 갈증을 식혀라!”

퍼억! 스악!

“ 아악!”

“ 으악!”

“ 죽일놈!”

일잔풍은 출입문으로 시선을 주었다.

그곳에는 오십여 명의 부하가 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방주인 혈악을 제거하기 위해 대기시킨 자들이었다.

“ 뭐, 뭣들 하고 있느냐? 놈을 죽여라!”

일잔풍은 고함을 내질렀다.

“ 놈을 죽여라!”

“ 들어가자!”

죄수들은 우르르 고문실 안으로 밀려들어 왔다.

끼이익! 끼익! 끼이익!

고문실을 받치고 있던 기둥은 더욱 요란하게 소리를 지르고, 흔들림은 더욱 커졌다.

“ 빌어먹을!”

흠칫 놀란 일잔풍은 천천히 출입문 쪽으로 움직였다.

“ 마셔라! 마셔라! 적군의 피로 갈증을 식혀라!”

쿠웅! 쿠웅!

연우강은 바닥을 구르며 죄수들을 죽여나갔다.

이미 그의 온 몸은 피로 목욕을 한 듯 움직일 때마다 붉은 족적이 남았다.

바쁜 사람은 비단 연우강뿐만이 아니었다.

오른편에 있던 두보관 일행 또한 막 들어온 자들과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피와 주검이 난무하는 안쪽과는 달리 두보관이 있는 곳은 맨손 박투가 대부분이었다. 두보관을 비롯한 그의 부하들은 절제된 동작으로 적의 공격을 피하며 일권 일권을 찔러 넣었다. 그들의 주먹은 대부분 적의 목이나 심장에 작렬했고, 가격당한 자들은 즉사하거나 기절을 했다.

두보관은 공격을 하면서 주변을 살폈다.

연우강 쪽으로 시체가 겹겹이 쌓여가고 있었다.

“ 저 친구 때문에 내가 살았군.... 응?”

두보관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문 쪽을 향해 슬금슬금 다가가는 일잔풍의 신형이 시야에 잡힌 탓이었다.

“ 설마 저놈이?”

두보관은 다시 안쪽을 더듬어보았다. 죽어간 자들까지 합치면 안쪽에 들어와 있는 자들은 거의 팔십여 명.

고문실 바닥에 꽂아 넣은 통나무는 견딜 테지만, 잔뜩 기울어져 있는 상태가 문제다.

만일 일잔풍이 고문실을 지탱하고 있는 줄을 끊어낸다면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 에이 씨부랄! 에이, 씨부랄! 죽여! 죽여! 에이! 씨부랄! ”

“ 크악!”

“ 으악!”

“ 아악!”

“ 이것 보게. 그곳에 있으면 죽네.”

두보관은 연우강을 향해 소리치며 밖으로 이동했다.

“ 죽여라!”

“ 이얍!”

하지만 두보관 앞을 가로막는 자들도 만만치 않았다. 그들은 끝장을 보려는 듯 저돌적으로 달려들었다.

우지끈!

끼이익!

“ 헉!”

두보관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 빌어먹을! 고문실이 떨어진다. 나가지 않으면 전부 풍곡으로 떨어져 죽는다!”

두보관은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우뚝!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죄수들의 동작이 일제히 멈췄다.

끼이익!

조금 전보다 더 기울어지며 시체들이 안쪽으로 밀려 내려갔다.

“ 떨어진다. 고문실이 떨어진다!”

죽음 앞에서는 누구도 만용을 부리지 못했다.

죄수들은 겁먹은 얼굴로 고함을 지르며 출입구를 향해 내달렸다.

“ 비켜라!”

일잔풍은 걸음을 빨리 했다.

하지만 두보관 일행과 싸우고 있던 자들이 입구 쪽으로 몰리는 바람에 쉽게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그는 흘끔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연우강은 입구를 향해 움직이고 있는 자들을 무자비하게 살해하며 이편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 크악!”

“ 아악!”

“ 비키지 않는 놈은 죽는다! 비켜라!”

연우강의 손괭이와 낫은 여전히 붉은 피를 사방에 뿌렸다. 뒤쪽에서 동료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하면 앞선 자들의 행태는 두 가지로 나타난다.

장소가 넓다면 좌우로 피하고, 장소가 좁다면 무작정 앞으로 밀고 나간다. 지금 죄수들의 행태는 후자였다.

그들은 앞에 있는 자를 밀어붙이며 출구로 향했다.

“ 크악!”

“ 아악!”

“ 으아악!”

뒤에서 처절한 비명이 들려오자 그들의 행동은 더욱 빨라졌다. 특히 뒤쪽에 있던 자들의 얼굴엔 다급한 기색이 역력했다. 후미에서는 연우강이 손괭이와 낫을 휘두르며 다가오는 중이고, 고문실은 곧 떨어질 것처럼 위태위태한 상태가 아닌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밀고 나가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 빨리 나가!”

검을 든 사내들은 신경질적으로 고함을 내질렀다.

“ 시끄러 새꺄! 지금 나가고 있는 거 안보여?”

앞에 있던 자가 험상궂은 얼굴로 노려보며 소리쳤다.

끼이익!

“ 개자식!”

급기야 초조함을 견디지 못한 사내가 앞에 있던 자의 목을 향해 검을 후려쳤다.

“ 커억!”

끼이익!

“ 빨리 나가지 않으면 죽인다!”

다시 고문실이 기우뚱하자 뒤에 있던 자들은 거의 공황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검을 든 자들은 검으로, 몽둥이를 든 자들은 몽둥이로 앞에 있는 자의 등을 찍었다.

“ 크악!”

“ 아악!”

“ 으아악!”

처절한 비명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며 고문실 안은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 줄을 잘라라!”

간신히 밖으로 나온 일잔풍은 고함을 내질렀다. 하지만 아직도 나오지 못한 죄수들은 수십 명.

고문실을 지탱하고 있는 줄을 잘라낼 자들은 없었다.

“ 자르란 말이야. 새끼들아!”

“ 아, 아직 나오지 않았소.”

“ 개자식!”

일잔풍은 죄수를 노려보다가 줄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의 손에는 시퍼렇게 날이 선 검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고문실 왼편 끝을 디디고 선 그는 검을 사정없이 휘둘렀다.

텅!

끼이익!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줄이 잘려 나가며 고문실 왼편 끝이 절벽 쪽으로 약간 쏠렸다.

“ 죽여버리겠다. 개자식!”

일잔풍은 두 번째 동아줄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절대 죽여서는 안 된다고 하였던 범일승의 말은 머릿속에서 잊혀진지 오래였다.

그는 검을 번쩍 쳐들고 두 번째 줄을 잘라냈다.

터엉!

끼이익!

고문실은 왼편이 약간 더 멀어지면서 기울어졌다.

“ 널 죽이지 않으면 난 일잔풍이 아니다.”

일잔풍은 검을 쳐들고 내달렸다. 세 번째 줄을 자르고, 네 번째 줄을 자르고, 그의 검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고문실은 낭떠러지에서 조금씩 멀어졌다.

“ 멈춰라! 일잔풍!”

앞에서 두보관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일잔풍은 반사적으로 검을 찔러넣었다. 암살을 전문으로 하는 사월림 출신답게 그의 검은 빨랐다.

차앙!

두보관은 가까스로 일잔풍의 검을 막아냈다.

끼이익!

“ 빨리 나오게, 그곳에 있으면.....!”

“ 네 앞가림이나 잘해라, 두보관.”

상체를 노린 것처럼 나아가던 일잔풍의 검이 기묘하게 변화를 보이더니 하체로 향했다.

스걱!

“ 크으!”

두보관은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고문실에 있는 연우강 때문에 정신이 흐트러져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결과였다.

터엉!

그러는 사이에 일잔풍은 또다시 줄 하나를 잘라냈다. 그러자 고문실은 폭풍 앞의 조각배처럼 좌우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 이젠 너도 죽여주겠다. 두보관.”

일잔풍은 물러나고 있는 두보관을 향해 다가가며 검을 변쩍 들어올렸다.

“ 나도 나왔어, 자식아!”

바로 그때, 나직한 목소리가 일잔풍의 등에 꽂혔다.

“ 억!”

일잔풍은 비명을 지르며 급하게 뒤편으로 검을 쓸었다.

차앙!

그러나 일잔풍의 검은 연우강의 손괭이에 막히고 말았다.

“ 난 부하를 버리는 놈을 가장 싫어한다. 일잔풍!”

연우강은 속삭이듯 말하며 오른손을 사정없이 내리찍었다. 손에 들린 낫은 정확하게 일잔풍의 정수리로 파고들었다.

“ 커억!”

“ 개새끼!”

연우강은 찍어 넣었던 낫을 홱 꺾으며 뽑아냈다.

풀썩!

연우강을 노려보던 일잔풍의 신형이 그 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 무기를 버리고 무릎을 꿇어라!”

턱! 턱!

연우강의 입에서 흘러나온 나직한 목소리에 죄수들은 저도 모르게 무기를 내려놓고 무릎을 꿇었다. 만일 말을 듣지 않으면 당장 죽임을 당하고 말 거라는 그런 두려움이 그들의 손에서 힘을 앗아가 버린 것이었다.

“ 강자 존의 원칙에 따라 지금 이 시간부터 천옥의 방장은 나 연우강이......”

턱! 턱턱턱!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뒤편에서 줄이 떨어져 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가 홱 돌아갔다.

끼이익!

고문실이 급격하게 낭떠러지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 이런, 씨팔! 내 야아악!”

연우강은 버럭 고함을 지르며 고문실을 향해 몸을 날렸다.

“ 이, 이것 보게!”

두보관은 다급히 연우강을 불렀다.

“ 다녀올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연우강은 고문실 안으로 들어갔다.

끼이익!

그가 들어가자마자 고문실은 낭떠러지 아래로 추락했다.

“ 이건....”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세운 두보관은 낭떠러지 가장자리로 다가갔다. 하지만 연우강이 올라탄 고문실은 수십 명의 시체들과 함께 풍곡으로 모습을 감춘 후였다.

“ 설사 살아난다고 해도 그곳엔......”

두보관은 한숨을 내쉬었다.

“ 난 자네가 신인이었으면 좋겠네. 뭔가를 간절히 바라고 또 빠랐을 때 느닷없이 나타나 소원을 이루어주는 그런 신 말이네. 그럼 내 소원은....”

한동안 낭떠러지를 내려다보던 두보관은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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