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백수-18화 (18/232)

제7장 지옥의 괴인들

반짝!

어둠 속에서 검은 광채가 모습을 드러냈다.

흑진주처럼 빛을 발하고 있는 그것은 사람의 눈동자였다. 허공에서 나타난 새카만 눈동자는 천천히 주변을 살폈다.

쫑긋!

눈동자에 이어 귀가 나타나더니 마치 토끼의 귀처럼 살짝살짝 움직였다.

“ 어디 갔지?”

이어 입이 나타나고, 부푼 가슴이 불쑥 튀어나오더니 몸 전체가 수면에서 빠져 나오는 것처럼 나왔다.

고개를 갸웃하고 있는 그녀는 잠룡 중 한 명인 몽요였다. 천리지청술을 펼쳐 다시 한 번 주변을 살핀 뒤 부엌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 물은 채워놓았네?”

부엌 안쪽 거대한 가마솥 앞에 멈춰 선 몽요의 얼굴이 대번에 환해졌다. 그녀는 한쪽 구석에 수북이 쌓인 석탄을 허공섭물로 끌어당겨 아궁이 안에 집어넣고 삼매진화로 불을 피웠다.

곧 석탄은 불길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먼저 부엌 공기가 훈훈하게 데워지고 곧이어 물에서 작은 방울이 몽글몽글 튀어 올랐다.

“ 어디 보자....”

가마솥 안의 물의 상태를 지켜보던 몽요는 오른편 선반 위를 눈으로 훑었다. 선반 위에는 숯, 녹차 잎, 식초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 식초가 제일 좋기는 한데.... 오늘은 녹차다.”

이내 결정을 한 듯, 몽요는 녹차 잎이 채워진 자루를 들어 가마솥 안에 쏟아 부었다. 적당량을 부은 뒤 자루를 선반 위로 올려놓고는 다시 천리지청술로 주변을 살폈다.

“ 이 녀석은 어디 간 거야?”

여전히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자 몽요의 얼굴에 실망스런 기색이 떠올랐다.

“ 여하튼 사내란 작자들은 제 욕심 차릴 때는 급하고 정작 필요할 땐 없어요. 오늘은 등을 밀어달라고 할 참이었는데.”

그녀는 연신 쫑알대며 옷을 벗었다. 옷을 벗는 모양도 특이했다. 보통은 상의를 먼저 벗고 하의를 벗는데 그녀는 반대로 했다.

하의를 전부 벗고 상의를 벗자, 뿌연 수증기 속에 나신이 드러났다.

순간 그녀 몸 주변에 흐르던 수증기가 숨을 죽였다.

건드리기만 하면 툭 터져 버릴 것 같은 풍만한 가슴과, 휘영청 밝은 보름달을 연상시키는 커다란 엉덩이는 숨이 멎을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움직일 때마다 가슴은 위아래로 출렁였고, 엉덩이는 좌우로 묘하게 흔들렸다.

농염하다는 말이 그녀 때문에 생겨나지 않았을까 할 정도로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하는 거야, 녀석아.”

가슴을 내려다보던 몽요는 눈을 흘기며 쫑알댔다.

“ 바보 같은 자식.”

그녀는 벗었던 옷을 곱게 개어 선반 위로 올려놓고는 가마솥 안으로 들어갔다.

“ 아! 좋다.”

투덜거렸던 것도 잠시 그녀의 입가에 나른한 미소가 번졌다.

“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는지 몰라.”

가마솥을 바라보는 몽요의 얼굴엔 대견하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래쪽에서 불을 때면서도 가마솥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솥의 구조 때문이다.

솥 안쪽에 석회를 두껍게 바르고, 그 석회가 굳기 전에 나무를 덧대 붙인 이것은 가마솥이 아니라 온천이라고 불러야 마땅했다.

“ 훗!”

문득 처음 이곳으로 왔을 때가 떠올라 웃음이 터져 나왔다.

우연히 연우강이 필수품을 판다는 소문을 듣게 됐다. 그래서 전에 속옷을 사주겠다고 하였던 약속을 기억하고는 은밀하게 이곳으로 왔다.

만화은신사형을 펼치면 숙소를 빠져나와 이곳으로 오는 건 일도 아니다.

그때 그를 본 곳이 바로 이 욕조 안이었다. 그는 목욕을 마치고 막 욕조 안에서 나오는 중이었다.

“ 우람한 사내였지.”

그 광경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벌떡벌떡 뛰고 아래쪽에서 뜨거운 기운이 치밀어 오르곤 한다. 자칫 잘못했으면 이성을 잃고 그에게 달려들 뻔했다.

간신히 위기를 넘기고는 이 시간에 목욕을 하는 이유를 물었는데 몸에 벤 구린내를 빼기 위해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말을 듣자마자 거기서 목욕을 하면 안 되겠냐고 묻고 말았다. 동영에 있을 땐 설사 그곳이 전쟁터라고 해도 시간이 허락하면 매일 목욕을 했다.

만화은신사형은 몸에서 나는 냄새를 완벽하다고 할 정도로 제거해야만 최고의 효과를 발하는 무공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이곳에 와서는 시간에 쫓기고, 일에 쫓겨 제대로 목욕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더구나 연우강이 들어가 있던, 가마솥이 얹어진 아궁이에서는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동영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온천을 발견한 듯하여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었다.

오십 냥! 그의 대답이었다.

이어 목욕비 오십 냥을 내면 속옷부터 시작하여 청심환 금창약 세답 등 필요한 것들을 공짜로 주겠다고 했다.

그것도 최고급으로.

목욕비가 좀 비싸기는 했지만 덤으로 받는 게 있으니 크게 손해는 아니어서 수락을 했다.

그때부터 사오 일에 한 번씩 이곳으로 와서 목욕을 하곤 했다.

“ 칙쇼, 코로시테야루!”

문득 몽요는 동영어로 소리쳤다.

전면을 노려보는 그녀의 눈에서는 새파란 광채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잃어버린 속옷 때문이었다.

첫 목욕을 하고 연우강으로부터 붉은 빛 속옷을 받았다. 지금껏 많은 속옷을 보았지만 그가 준 것만큼 맘에 드는 건 아직 보지 못했다. 아니 그가 준 속옷이 최고급이든 싸구려든 그건 상관없었다.

최초로 받은 선물다운 선물이란 사실이 중요했다.

물론 거쳐갔던 일부 사내들로부터 선물을 받은 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준 건 대부분 사람을 죽일 때나 사용하는 무기류였다. 그들은 그것들을 주면서 당연하다는 듯 살인을 요구해 왔었다.

삼십오 년 만에 처음 받은 선물.

한 번 입어보고 차마 다시 입기가 아까워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던 선물.

그런데 그 속옷이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만사은신사형을 극성으로 펼치며 속옷을 찾아 다른 숙소를 헤집고 다녔다. 그러나 끝내 속옷은 나오지 않았다.

오늘 이곳을 찾은 것은 목욕도 목욕이지만 속옷을 하나 더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 자식, 목욕 한번 같이 하자니까. 우리 동영에서는 모르는 사람과도 함께 목욕을 하곤 하는데.”

서늘한 광채를 뿜어내던 몽요의 눈동자가 다시 몽롱하게 풀렸다. 그녀는 가슴을 슬그머니 틀어쥐었다.

짜릿한 느낌이 스멀스멀 피어오르자 그녀는 혀로 입술을 축였다.

몽요는 눈을 지그시 감고 상상의 날개를 폈다.

함께 목욕을 하는 상상속의 주인공은 당연 연우강이다. 어느새 그녀의 입에서 달뜬 신음이 흘러나왔다.

“ 험! 우강이 왔느냐?”

‘ 헉!’

늙수그레한 목소리가 뜨겁게 달아올랐던 육체를 싸늘히 식혔다. 몽요는 재빨리 내공을 끌어올려 만화은신사형을 펼쳤다.

그녀의 신형이 물과 하나가 돼 모습을 감추는 순간 부엌문이 열렸다.

‘ 쳇! 들어오라는 자식은 안 들어오고....’

몽요의 입매가 슬쩍 비틀렸다.

연우강이 돌아오면 목욕하는 장면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려고 일부러 문을 잠그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연우강 대신 야장 장주인 무원이 들어온 것이었다.

“ 율령궁으로 잡혀간 녀석이 벌써 돌아왔을 리가 없지.”

무원은 석탄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아궁이로 시선을 주며 중얼거렸다.

“ 금세 나올 테니까 걱정 마십시오. 형님.”

“ 물론 그 녀석이 하라는 대로 하면 머잖아 나오긴 하겠지만 몸이 상할까 봐 걱정 아닌가.”

“ 하루도 빠지지 않고 보약을 먹는 놈입니다. 그놈은 몸이 상해서 나올 놈은 절대 아닙니다. 제 전 재산을 걸어도 좋습니다.”

“ 전 재산을 걸어도 좋다는 말은 그 녀석이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인 걸로 아는데, 아닌가?”

“ 허허허! 벌써 닮아가고 있는 모양입니다.”

“ 자넨 그 녀석이 싫다고 하지 않았는가?”

“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도 듣지 못했습니까? 하물며 그 아이는 손녀딸입니다.”

“ 하긴 그 아이가 녀석을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기는 하던데, 하지만 너무 이른 것 아닌가?”

“ 저는 그것보다 동영의 그 아이가 더 마음에 걸립니다. 우강이 옆에서 자꾸 꼬리를 치는 게....”

“ 자넨 별 걱정을 다하는구먼. 그놈 먹는 그건 보약이 아니라 정력제였네. 정력제. 이제 스물두 살밖에 안 되는 놈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정력제를 처먹고 있다면, 그놈은 사람이 아니라 괴물일 가능성이 높네. 둘 아니라 그 이상도 까딱없을 거라는데 난 전 재산을 걸겠네. 그리고 난 몽요 그 아이가 마음에 드네.”

“ 아예 수양딸을 삼으시지 그러쇼.”

“ 예끼! 이 사람아! 그 아이는 동영 은밀막부의 가주야. 가주. 나 같은 똥지게에게 어울리는 아이가 아니야.”

“ 형님은 대야벌 야장의 장주입니다. 내세울 게 왜 없습니까?”

“ 없다면 없는 게야. 그만 가세.”

“ 그런데 이번엔 어디로 가실 참입니까?”

“ 남경이나 한번 다녀오는 건 어떤가?”

“ 그것도 나쁘지 않겠군요.”

걸음을 옮기던 두 사람은 동시에 향해 고개를 돌렸다. 부엌을 쳐다보던 두 사람은 의미심장한 시선을 주고받았다.

[ 성공했을까요?]

창노가 전음으로 물었다.

[ 여자 마음을 어찌 알겠는가. 다만 이번 인연으로 녀석과 은밀막부가 좋은 관계로 발전했으면 하는 거지. 그 이상으로 발전했으면 좋겠지만 그건 우리 욕심이네.]

두 사람은 전음으로 대화를 나누며 연우강의 집을 나섰다.

“ 휴우!”

천리지청술을 펼쳐 두 사람을 살피고 있던 몽요는 한숨을 내쉬었다.

“ 누굴 말하는 거지?”

조금 전 두 사람이 했던 말을 떠올린 몽요는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창노는 연우강을 손녀 사윗감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 창노보다는 그의 손녀딸이 연우강을 더 마음에 두고 있다는 식의 말을 했다.

“ 한둘이 아닌데?”

몽요는 부엌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동안 연우강은 여성 필수품을 팔기 위해 많은 여자들을 만났다. 처음 보는 사이인데다 부끄러운 물건을 사고 팔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어나가며 여자들을 편하게 대해주었다.

그 여자들 중 한 명이 창노의 손녀딸이라는 말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마땅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 헹! 내가 꼬리를 친다고? 웃기는 노인네야. 꼬리만 치는 게 아니라 확 잡아먹어 버릴 거다. 이 노인네야.”

그녀는 누군가를 껴안 듯 양팔을 감쌌다. 그녀의 두 손이 우뚝 솟은 가슴을 틀어쥐고, 식었던 몸이 다시 달아오르며 눈동자가 몽롱하게 풀렸다.

철벅!

가마솥 안의 물이 요동치며 뿌연 수증기를 울컥울컥 토해냈다. 그리고 잠시 후, 목욕을 마치고 나온 그녀는 몸을 닦고 옷을 입었다.

“ 율령궁으로 잡혀갔다는 말인데....”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몽요의 신형이 허공으로 녹아들어갔다.

팔 성에 달했던 만화은신사영.

불완전했던 만화은신사영이 연우강 때문에 극성에 이르게 될 줄은 그때만 해도 그녀는 알지 못했다.

**********

욱일승은 어떤 일에도 더는 놀라지 않을 정도로 인생 경험이 많은 자였다. 신주제일검이란 별호와 함께 대야벌 차기 벌주로까지 거론되는 영광을 얻은 적도 있었고, 주화입마로 모든 것을 잃어보기도 했다.

더불어 얼마나 오랫동안 이곳에서 살았는지 기억조차 없다. 이곳 지옥이, 대야벌 최고 신비라고 불리는 무성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야효가 죄수를 풍천마인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도 놀라지 않았다.

그랬던 욱일승이 지금 경악한 눈을 하고 있었다.

조금 전 야효가 마라천력인이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기는 했다. 마라천력인이 일반인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올지 몰라도, 허공섭물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무인들의 눈에는 그리 대단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욱일승이 관심을 보였던 것은 무공과 염력의 결합이라는 야효의 말 때문이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염력과 내공의 결합일 테다.

“ 엄청나군.”

욱일승은 결국 신음을 내뱉었다.

오십여 구의 시체가 마치 강시처럼 허공에 뜬 채로 검은 옷을 걸친 자를 따르고 있었다.

자신 또한 신주제일검이란 별호로 불리던 시절에는 허공섭물을 구사했다. 하지만 저렇게 하는 건 불가능하다.

정녕 대단한 자가 아닐 수 없었다. 아니 저 광경을 두고 대단하다는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칠십여 명의 풍천마인들.

비록 미완성이긴 하지만 그들은 강호 무림으로 나가면 당장 일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들이다.

그런 자들을 간단하게 없애버리는 무공은 칠십여 구의 시체를 허공에 띄우는 것보다 더 엄청난 것이었다.

“ 여긴 어디요?”

연우강은 노인을 보며 물었다.

지금 허물어진 폐성 앞에 와 있다. 말을 걸어왔던 자는 폐성의 정원 건너편 대전처럼 보이는 장소에 가부좌를 하고 있었다. 그의 뒤편엔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앞사라의 명문혈에 양손을 밀착시키고 있었다.

그건 진기를 앞사람에게 전이해 줄 때 취하는 동작이었다.

“ 지옥이자 무성이네.”

욱일승은 헐떡이며 대답했다.

“ 힘든 일이라도 하셨소?”

연우강은 시체들을 내려놓고 폐성 안으로 들어갔다. 연우강은 욱일승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피를 흘린 듯 그의 입가엔 엷은 혈흔이 비쳤다.

“ 밖 상황을 알기 위해 금제 된 내공을 무리하게 끌어올려서 이렇게 됐다네.”

“ 세 사람이 힘을 합친 거요?”

연우강은 노인 뒤편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을 보았다. 그들의 얼굴 역시 맨 앞에 있는 노인과 비슷한 상태였다.

“ 그렇다네.”

욱일승은 고개를 끄덕였다.

“ 세 사람이 전부요?” “ 아래쪽에 스무 명이 더 있네.”

욱일승을 비롯한 세 사람은 힘겨운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대전을 가로질러 안쪽으로 들어갔다

성이 상당히 큰 듯 한참을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지하로 이어지는 길은 나오지 않았다.

연우강은 주변을 살피며 따랐다.

성은 외부의 벽만 파괴된 것이 아니었다. 마치 약탈을 당한 것처럼 안쪽 또한 엉망으로 부서져 있었다.

그곳을 지나 안쪽 깊숙이 들어가자 다시 외부로 향하는 문이 보였다. 그 문을 나가자 비로소 아래로 향하는 계단이 나왔다.

나머지 죄수들이 모여 있는 곳은 그 아래쪽이었다.

“ 우린 이곳에서 살고 있네.”

욱일승이 아래로 내려가며 말했다. 잠시 후 네 사람은 지하로 들어갔다.

“ 넓군요.”

연우강은 궤짝을 내려놓고 걸터앉았다. 그리고 건물 천장에 박힌 야명주를 올려다보았다. 지하 세계를 밝혀주는 유일한 빛이었다.

“ 한때는 백 명 이상이 수감돼 있었네.”

“ 왜 나가지 않은 거요?”

문득 이곳까지 아무런 제재도 없이 들어왔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 바람이 부는 곳이면 어디나 풍천마인이 있었네.”

“ 그자들이 무성을 지키는 개였단 말이오?”

“ 더불어 우리들의 동료이기도 하네.”

“ 지옥의 죄수를 이용해서 풍천마인인가를 만들었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맞소?”

“ 우리 셋은 사십 년 전에 들어왔고, 저들은 삼십 년 전에 들어왔네.”

굳이 세월을 들먹인 이유는 무공을 회복할 기회를 얻게 되면, 그 기회가 설마 몸을 망친다고 하더라도 포기하기 힘든 유혹이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였다.

“ 무공이 그리웠단 말이오?”

“ 그들이 단전을 파훼하지 않고 금제만 시키는 이유를 아는가?”

“ 자살 방지용이겠지요.”

“ 잘 아는구먼. 언젠가는 내공을 회복할 거라는 기대 때문에 우린 자살하지 못했네. 그런 상황에서 세월이 흐르고, 어느 날 갑자기 무공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면 자넨 어떻게 하겠는가?”

“ 처음엔 자존심 때문에 거절을 하겠지요.”

“ 그들도 그랬네.”

“ 그러다가 외부 소식을 반복해서 듣게 되면서 화가 났을 거요.”

“ 그렇다네. 풍천마인을 자원했던 그들은 한때 대야벌을 위해 몸을 바쳤던 자들이네, 그런데 지금 대야벌에 살고 있는 자들은 아무도 그들을 기억해 주지 않네. 자네가 어떤 신분인지 모르겠지만, 이곳에 저들이 갇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 거네.”

“ 바보처럼 왜 그런 짓을 했을까 하며 후회를 많이 했겠군요.”

“ 맞네. 분노가 치밀고, 화를 내다가 결국 야효 그자에게 충성 서약을 하게 되네.”

“ 아주 괜찮은 자였는데 괜히 죽였군요.”

“ 누구 말인가?”

“ 야효 말입니다.”

“ ......?”

욱일승은 황당한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 어쨌든 내공이 금제당한 자들의 소원을 죽기 전에 들어주지 않았습니까?”

“ 특이한 사고를 가졌군. 하지만 풍천마인이 완성되는 순간 그들은 인성을 잃고 마네. 자네들이 상대한 그들은 풍천마인을 구 성 정도 연성한 자들일세.”

“ 풍천마인은 뭐요?”

“ 정말 모르는가?”

“ 모르니까 묻지. 알면 입 아프게 왜 묻겠소?”

“ 풍천마인은 천마가 남긴 마공 중의 하나고 그 무공을 익힌 자 또한 풍천마인이라고 부르네.”

“ 자신을 바람으로 만드는 무공이란 말이오?”

“ 그렇다고 볼 수 있네.”

“ 노인장은 왜 풍천마인이 되지 않은 거요?”

“ 자존심 때문이라고 해두세.”

“ 금제를 푸는 방법을 찾았다는 말이군.”

연우강은 피식 웃었다.

조금 전 세 사람이 나란히 앉아 있던 광경이 떠올랐다. 그건 약간의 내공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는 뜻이었다.

“ 묵사의 후예인가?”

욱일승은 화제를 돌렸다.

“ 야효란 놈도 그렇게 묻던데 묵사가 누구요?”

“ 정말 모르는가?”

“ 노인장은 말을 재미있게 하는구려.”

“ 무서 서열 일위였다네. 자네처럼 마라천력인이었고.”

“ 죽은 거요?”

“ 그렇다네. 그와 무영들과의 싸움으로 인해 무성이 저 모양으로 변한 거네.”

“ 무영들이라면?”“ 무성 백 인 무인을 일컫는 말이네.”

“ 배신?”

“ 자세한 내막은 나도 모르네. 그 싸움이 끝나고 무영들은 뿔뿔이 흩어졌네. 그리고 오 년 후에 야효란 자가 이곳에 나타났네.”

“ 그랬군요. 그런데....”

연우강은 계단으로 시선을 주었다.

“ 무성 뒤편으로 가면 낭떠러지가 있네.”

“ 낭떠러지가 또 있단 말이오?”

연우강은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지금 이곳도 낭떠러지 바닥이 아니던가. 그런데 또 낭떠러지가 있다니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 자네가 내려온 곳보다 더 깊은 곳이라고 했네.”

“ 알았소.”

연우강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상을 알려고 하는 것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자연은 그저 있는 상태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밖으로 나온 그는 흑풍마라천력을 일으켜 시체를 허공으로 띄운 다음 노인이 가르쳐준 곳으로 향했다.

“ 어떤 자일 것 같나?”

욱일승 곁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너덜너덜해진 옷으로 간시히 중요 부위만 가리고 있는 그는 과거 북해어옹이라는 별호로 불렸던 수천월이었다.

욱일승은 수천월을 돌아다보았다.

“ 궁금한가?”

“ 클!”

수천월은 픽 웃었다.

아직도 궁금한 것이 남았냐는 물음에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 나는 궁금하다. 일승.”

흑인처럼 검은 피부를 가진 노인이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검은 피부와는 대조적으로 새하얀 머리카락을 지닌 그는 묘강독존으로 불렸던 갈인효였다.

“ 궁금할 것도 없소. 난 이름이 연우강이고, 하는 일은 육백육십 개의 화장실에 쌓인 똥을 푸는 똥지게니까.”

어느새 시체를 버리고 왔는지 연우강의 목소리가 계단 위에서 들려왔다.

“ 야장이 대야벌의 주인이라도 된 건가?”

욱일승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똥지게란 말은 곧 똥을 푸는 사람을 말하고, 야장에 속한 자들의 일이기 때문이었다. 더불어 그가 알고 있는 야장은 연우강 정도의 고수를 길러낼 수 없는 곳이었다.

“ 똥지게라니가, 주인은 무슨.”

아래로 내려온 연우강은 궤짝 뚜껑을 열고, 안쪽에 있는 물건을 꺼냈다. 그러고는 궤짝 안쪽에 있는 사망궤 뚜껑을 연 다음 걸쳤던 무기를 풀어 착용했을 때와 역순으로 집어넣었다.

“ 그게 아니면 자네 같은 고수가 야장에 있는 까닭이 뭔가?”

“ 금제를 해제할 희망이 보이니까 세상일이 궁금증이라도 생긴 거요?”

“ 클! 죽을 날이 가까워져 그렇다고 해두세.”

“ 무공을 익히기 싫어서 들어간 거요.”

연우강은 무기를 집어 넣으며 대답했다.

“ 그럴만한 이유라도 있는가?”

“ 영감은 내가 익혀서 덕을 볼 무공이 대아벌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오?”

“ 하지만 자네 무공 정도면 대야벌 어딜 가도 받아줄 것 같은데, 아닌가?”

“ 난 잠룡이오, 영감.”

“ 잠룡? 그러니까 대아벌 제자 신분이란 말인가?”

“ 그리고 내 아버지는 매년 대야벌에 백만 냥씩 상납을 할 정도로 돈이 많은 분이오.”

“ 그런 정도 부자라면 금릉 연시 세가밖에 없는데.. 가만, 자네도 연 씨네?”

세 사람 뒤편에서 놀람에 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연우강은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보았다. 꾀죄죄한 몰골과는 어울리지 않게 귀티 나는 얼굴을 한 노인이 이편을 보며 해죽 웃고 있었다.

“ 난 두작군이다. 전에 개방에 있을 땐 신풍괴노라는 별호로 불렸다.”

“ 두작군?”

문득 천옥에서 보았던 두보관이란 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풍곡으로 떨어질 때 내공을 끌어올리고 있어 본의 아니게 두보관의 중얼거림을 듣게 됐다. 그 또한 뭔가 목적을 지니고 천옥으로 들어온 자였다.

생김새가 상당히 닮은 걸 보면 문득 그이 목적이 눈앞에 있는 두작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연씨 세가의 아들이 맞느냐?”

두작군은 연우강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며 물었다.

“ 그렇다고 해둡시다.”

무기를 전부 집어넣은 연우강은 꺼내놓았던 것들을 다시 안으로 넣었다. 마지막으로 육표가 든 자루를 집어넣던 그는 자루 안에서 육포 한 주먹을 꺼내고는 뚜껑을 닫았다.

“ 그럼 그런 거지 그렇다고 해두는 건 또....”

“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가?”

연우강이 가문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욱일승이 두작군의 말을 자르고 나섰다.

“ 뭘 말이오?”

“ 무기가 장착된 채로 개어서 넣어도 무방할 것 같아서 하는 말이네.”

“ 그러니까 영감 말은 이대로 개어서 던져 넣어도 되는데 굳이 이런 수고를 왜 하는지 궁금하다는 거요?”

“ 그렇다네.”

한번 시작된 궁금증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었다.

그렇게 많은 무기를 장착하고 있음에도 전혀 표시가 나지 않은 저런 고대 전포를 어떻게 얻었는지, 마라천력인의 능력은 어느 정도인지, 왜 야장으로 들어갔는지, 연우강에 대한 궁금증이 샘솟듯 솟았다.

“ 이걸 만든 영감이 그런 말을 남겼습니다. 사내는 자고로 멋에 죽고 멋에 살아야 한다고 말이오.”

“ 클클클! 그러니까 순전히 멋 때문에 그렇게 복잡한 짓을 한단 말이냐?”

이번엔 수천월이 껄껄껄 웃으며 끼어들었다.

“ 그렇소, 영감. 그런데 이름도 말할 수 없는 거요?”

“ 난 수천월이고, 이놈은 욱일승이다. 그리고 이 자는 갈인효고, 여기 앉아 있는 놈은 적리세우다. 그리고 저 친군 일삼...”

수천월이 동굴 안쪽에 있는 일행을 일일이 소개했다.

연우강은 허일삼이라고 하였던 자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한동안 그를 쳐다보던 연우강은 문득 허일구와 아직 인연이 다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다.

허일삼, 허일구,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두 사람은 형제가 분명한 듯했다.

“ 이 친구는....”

그러한 와중에도 수천월의 설명이 이어졌다.

“ 영감 말해 줘봐야 기억도 못하니까 됐소.”

“ 우리가 왜 이곳에 있는지 궁금하지 않느냐?”

“ 별로.”

“ 세상에 별로 관심이 없는 녀석이구나.”

“ 그렇다고 볼 수 있소.”

연우강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늘 그렇듯 육포를 잘게 찢어 입 안으로 집어넣은 다음 천천히 오물거렸다.

“ 연씨 세가가 망하기라도 했느냐?”

연우강을 지켜보던 두작군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 무슨 소린가?”

두작군 옆에 앉아 있던 적리세우가 물었다.

“ 음식을 먹는 습관 때문에 그런다네.”

“ 습관으로도 생활 정도를 알 수 있는가?”

“ 세심하게 관찰하면 대충은 알 수 있다네.”

“ 흥미롭군.”

적리세우는 대답을 기다리며 연우강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 음식을 오래 씹게 되면, 버리는 게 하나도 없이 완벽하게 소화를 시키게 되고, 포만감 또한 급하게 먹는 것보다 훨씬 오래 간다네. 개방으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바로 음식을 오래 씹는 거라네. 최소 서른 번 이상은 씹으라고 교육을 받곤 하지. 그런데 저 친구는 잘게 찢은 음식을 오십번 이상 씹고 있네. 저 정도면 거의 살수 수준이라네.”

“ 일리가 있군?”

고개를 끄덕이는 적리세우의 얼굴은 궁금증으로 가득했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이들 또한 궁금한 얼굴로 연우강의 반응을 기다렸다.

“ 연씨 세가는 아직 건재하오.”

“ 그럼 그렇게 먹는 건 어디서 배웠느냐?”

두작군은 여전히 연우강의 입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 타클라마칸에서 오 년을 보내고 나면 나처럼 되오. 영감.”

“ 타클라마칸에서 살았는가?”

적리세우는 반색한 얼굴로 물었다.

“ 그곳 출신이오?”

“ 그렇다네. 어린 시절을 타클라마칸에게 보냈다네. 요즘 사막은 어떤가?”

“ 아마 영감이 살았을 때와 달라진 게 없을 거요.”

“ 그렇겠지. 타클라마칸에 들어서면 비로소 자연의 위대함을 깨닫게 되니까.”

추억에 젖은 듯 적리세우의 눈동자는 아련하게 변했다.

“ 나완 반대의 생각을 가진 영감이네.”

“ 무슨 소린가?”

“ 난 타클라마칸 사막을 보면 인간의 위대함을 깨닫게 되오.”

“ 타클라마칸을 정복하는 인간의 모습 때문인가?”

“ 그건 아니오. 내가 인간의 위대함을 느끼는 것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어감에도 불구하고 타클라마칸에는 여전히 전쟁을 하는 종자들이 넘쳐난다는 거요. 그곳에 있으면 세상에서 가장 번식력이 좋은 종족은 인간이란 사실을 깨닫게 되오.”

“ 재미있는 이론이군?”

수천월은 빙그레 웃었다.

“ 너 군인이었구나.”

연우강의 직업을 알아냈다는 사실이 기쁜 듯 두작군은 껄껄 웃었다. 녀석이 소가 되새김질하듯 음식을 먹는 이유가 바로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군 생활을 했기 때문이었다.

“ 난 잠 좀 자겠소.”

두작군을 쳐다보던 연우강은 그 자리에 드러누웠다.

“ 거참!”

일행은 황당한 얼굴로 서로를 보았다.

어찌됐든 새로운 사람이 들어왔으면 많은 이야기가 오가는 것이 보통이다. 더구나 연우강은 주화입마에 든 것도 아니고 초특급 무공을 지닌 고수가 아닌가.

연씨 세가의 아들.

극한 상황을 겪은 군인.

궁금증만 잔뜩 안겨주고 잠을 잔다고 드러누워 버리니 기가 막힐 수밖에 없었다.

“ 녀석아!”

결국 참다못한 두작군이 연우강을 불렀다.

“ 영감.”

번쩍 눈을 뜬 연우강은 두작군을 노려보았다.

움찔!

연우강의 눈에서 차가운 기운이 흘러나오자 두작군은 움찔 물러났다.

“ 난 군에 있을 때 정오품 정천호였어.”

“ 그, 그래서?”

“ 지금부터 자야 하니까 조용히 좀 하란 거지 뭐겠어. 며칠이 될지는 모르지만 함께 있을 때만큼은 서로 예의를 지키자고.”

“ ......!”

두작군은 멍한 눈으로 연우강을 보았다.

연우강은 다시 눈을 감았다.

“ 야....!”

삼십 년을 이곳에서 보냈다고 하지만 젊은 시절 한가락하던 성질은 아직 남아 있었다. 두작군은 벌떡 일어나 연우강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 영감, 걸어다니기 싫어?”

연우강은 두작군의 다리를 잡아채며 소리쳤다.

“ 그래, 죽여라, 자식아. 그 풍천마인인가 하는 놈들을 전부 죽였던 것처럼 나도 한번 죽여봐라. 자식아. 죽여보라고!”

“ 그럼 계급장 떼고 한판 뜰가?”

연우강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받아쳤다.

“ 계급장?”

“ 내공을 끌어올리지 않고 한 판 붙자는 거야. 영감.”

“ 나랑?”

“ 겁나면 그 자리에 찌그러지던지.”

“ 오냐, 자식아, 한판하자!”

두작군은 버럭 소리쳤다.

그가 내공이 온전한 연우강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인 이유는 자신의 몸 상태 때문이었다. 그동안 꾸준히 치료를 한 결과 금제를 일 할 정도를 뚫을 수 있었다.

아직은 내공을 끌어올린 수준은 아니지만 움직임에 있어서는 젊은이들 못지않다고 자부했다.

더불어 젊은 시절 별명이 돌주먹이었다.

한 방 맞으면 체격에 상관없이 전부 개구리 뻗듯 널브러졌던 것이다. 적리세우를 비롯한 이곳에 많은 녀석들도 그 돌주먹에 개구리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가 한판하자는 연우강의 말에 흔쾌히 수락한 이면엔 그런 이유가 있었다.

“ 후회하게 될 거요, 영감.”

연우강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주먹 거리를 두고 두작군 앞에 섰다.

“ 대신 패한 사람은 승자의 부탁을 무조건 들어주기다.”

두작군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말했다.

“ 규칙은 영감이 정해.”

“ 셋까지 센 다음에 동시에 주먹을 뻗는 거다.”

“ 동시에 치자는 거야?”

연우강은 활짝 웃으며 물었다.

“ 동시에 서로의 안면에 주먹을 박아 넣은 다음에 본격적으로 싸움을 시작하자.”

“ 그건 좋은 방법이네. 그럼 오른편 다리는 뒤로 빼고 해야겠네?”

연우강은 주먹에 힘이 실릴 수 있도록 오른 다리를 약간 뒤로 뺐다.

“ 숫자는 내가 세도록 하지.”

적리세우가 흥미로운 얼굴을 한 채로 일어났다.

구경꾼은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관심 어린 얼굴로 연우강을 지켜보던 자들은 일제히 물러나 두 사람이 싸울 공간을 확보해 주었다.

“ 오늘 송장 치우는 것 아닌가 몰라.”

“ 저 친군 아직 젊으니까 기절을 했으면 했지 죽진 않을 거야.”

이야기를 주고받는 두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자들의 얼굴에도 모처럼 치른 행사에 웃음이 만발했다.

“ 저 녀석.”

한편 구석으로 물러났던 욱일승은 수천월을 보았다.

“ 일부러 그랬다고 보는 거냐?”

욱일승이 품고 있던 말을 수천월이 대신 꺼냈다.

“ 정천호면 부하가 천이백 명 정도 되는 걸로 아는데, 아냐?”

“ 맞다. 저 녀석은 어떻게 하면 분위기가 반전되는지를 잘 아는 놈이다.”

“ 그럼 우릴 위해 일부러 저런 행사를 준비했다는 말이구나.”

“ 문제는 상대를 잘못 골랐다는 거다. 두작군 저 녀석 주먹은 주먹이 아니라 돌이다. 맞는 순간 기절을 하거나 정신이 반쯤 나가버린다.”

“ 그건 두고 보면 알겠지.”

욱일승은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 지금부터 세겠네.”

적리세우의 말이 떨어지자 웃고 있던 일행의 얼굴에 어린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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