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백수-19화 (19/232)

제8장 흑풍

“ 하나!”

적리세우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두작군은 주먹을 불끈 틀어쥐었다.

‘ 쓰러진 놈이 병신이지.’

항상 쓰러진 상대를 향해 했던 말이다. 오늘도 그 말을 하게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 둘!”

둘이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두작군은 주먹을 뻗었다. 휙! 하는 강한 파공성을 남기고 그의 돌주먹이 연우강의 턱을 향해 날았다.

퍼억!

두작군의 돌주먹이 연우강의 턱에 꽂히려는 순간, 그의 하체에서 둔탁한 소리가 먼저 흘러나왔다.

“ 헛!”

“ 억!”

“ 헉!”

여기저기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약간 뒤로 빠져 있던 연우강의 발이 두작군의 급소에 파고들어가 있었다.

“ 커억!”

억눌린 비명과 함께 두작군의 상체가 앞으로 푹 꺾였다.

턱!

“ 저저!"

“ 저 자식 노인네를.”

연우강이 두작군의 뒷머리를 양손으로 틀어쥐자 일행은 얼굴을 찌푸렸다. 다음 동작은 굳이 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계급장에는 나이도 해당하는 거야, 영감! 지금 이 순간 우리 둘은 나이 차이도 없어!”

연우강은 고함을 내지르며 무릎을 사정없이 차올렸다.

퍼억!

“ 크아악!”

두작군은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며 벌러덩 넘어갔다.

“ 프! 하하하! 하하하! ”

그를 지켜보던 적리세우가 통쾌하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 언젠가 너도 한 번 당할 줄 알았다, 자식아.”

적리세우는 꿈틀거리고 있는 두작군을 향해 활짝 웃었다.

“ 비, 비겁한 자식!”

두작군은 연우강을 노려보았다.

“ 쓰러진 놈이 병신이지, 억울하면 일어나 덤벼!”

연우강은 손가락을 까딱까딱했다.

하지만 두작군은 일어날 형편이 아니었다. 죽일 듯한 눈빛으로 연우강을 노려보다가 고개를 꺾었다.

결국 기절을 해버린 것이었다.

“ 쯧! 그래 가지고 싸움은 무슨.”

연우강은 혀를 차고는 궤짝 옆으로 돌아갔다.

“ 이젠 정말 잘 거니까 건들지 마쇼.”

사람들을 향해 눈을 부라린 연우강은 사망궤 옆에 드러누웠다. 잠시 후 코고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욱일승의 시선이 묘강독존 갈인효에게로 향했다.

“ 클클클! 괴물 같은 녀석이 들어온 것 같은데 네 생각은 어떠냐?”

“ 무공을 익힌 흔적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 설마 저 아린 나이에 반박귀진이란 말이냐?”

“ 설사 반박귀진이라고 해도 은연중에 풍기는 기도는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저 녀석은 그런 기운조차도 풍기지 않는다. 즉 완벽하게 기운을 숨길 수 있는 그런 무공을 익히고 있다는 말이다.”

“ 그런 무공이 있느냐?”

이번에는 수천월이 물었다.

“ 딱 한 가지가 있다. 칠백 년 전 살수의 제왕이라고 불렸던 일살 천류흔의 잠능폐혈대법이면 가능하다.”

“ 그럼 저 녀석이 그 무공을 익히고 있다는 말이구나.”

욱일승은 놀라운 눈으로 연우강을 보았다.

“ 십중팔구는 그런 것 같다.”

갈인효는 고개를 끄덕였다.

“ 알 수 없는 녀석이구나.”

알 수 없는 녀석.

수십 년 만에 들어온 죄수라는 사실만으로 관심의 대상이 될 터인데, 돌주먹 두작군을 깨트린 연우강의 행동은 일거수일투족이 관찰 대상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귓전을 후펴파는 기상나팔 소리에 잠을 깬 연우강은 약탕기와 물 그리고 약 한 첩을 챙겨들과 지상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성 마당으로 나왔다.

죄수들이 만든 것인 듯 마당엔 화덕이 놓여 있었고, 마른 장작도 한 편에 수북하니 쌓여 있었다.

폐허로 변한 성 내부에서 구한 것들인 듯했다.

연우강은 약을 넣은 약탕기를 올리고 불을 지폈다. 그리고는 늘 그랬던 것처럼 옆에서 천천히 몸을 풀었다.

“ 킁킁!”

그런 연우강을 지켜보던 두작군이 어슬렁거리며 다가들었다. 전날 맞은 것 때문에 여전히 아랫도리가 욱신거렸지만, 연우강에 대한 흥미가 우선이었다.

“ 풍천마인 칠십 며을 몰살시킬 정도로 강한 놈이 몸이 아플 리는 없고..... 이거 보약이지?”

두작군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말을 걸었다.

“ 내 생명수야.”

“ 생명수 좋아하네. 냄새를 보니까 대부분 보약에 들어가는 거구먼. 특이한 향으로 보아 영약 기운도 상당히 많이 들어간 것 같고.”

두작군은 약탕기 앞으로 바짝 다가앉았다.

“ 풍천마인을 이곳에서 연성하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거야?”

연우강은 몸을 풀며 물었다.

“ 풍천마인을 익히기 위한 풍동이 바로 이곳에 있다.”

“ 지금 풍동이라고 했어?”

연우강은 우뚝 동작을 멈추고 두작군을 보았다.

- 풍동을 찾아 그곳의 바람을 얻어야만 넌 흑풍을 다스릴 수 있다.

영감이 비급에 써두었던 글귀가 떠올랐다.

워낙 오래 전에 씌어진 비급이라 풍동의 위치가 나와 있기는 했지만 어디인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풍동을 찾는 걸 포기하고 동중정 정중동의 묘리를 터득하는 데 집중했다. 귀노는 이미 조화지경에 올랐다고 하였지만 그래도 풍동이 있다면 확인을 해보고 싶었다.

“ 이거 영약이 들어간 거 맞지?”

계속 약탕기 앞에 코를 대고 있던 두작군이 풍동에 대해 질문을 받았다는 사실도 잊고 버럭 소리쳤다.

“ 영감, 내 약이라고 했잖아.난 그 약이 없으면 죽는다니까.”

“ 보약 한 첩 안 먹는다고 죽는 놈이 어딨냐?”

두작군은 약탕기로 손을 뻗었다.

“ 약에 손대면 죽어, 영감.”

우뚝!

두작군의 손이 약탕기 바로 앞에 멈췄다. 그는 고개를 돌려 연우강을 보았다.

“ 약, 한 첩도 안 되는 거냐?”

두작군은 연우강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 영감 전직이 거지라서 남의 물거니 자기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우린 그렇게 살지 않아. 최소한 물건을 나누려면 서로에 대해 알아야 하는 거야. 우린 아직 그런 절차도 없었어.”

“ 우리 이십삼 명은 봉원쇄정대법에 당했다.”

“ 영감, 보고는 항상 논리적이고 상대방이 알아먹기 쉽게 해야지. 지금 한 말은 선후가 틀려, 상대방을 이해시키려면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가 있어야 해.”

와락!

두작군은 주먹을 불끈 말아 쥐었다.

“ 아직 배가 불렀군.”

연우강은 피식 웃으며 두작군 앞으로 다가가 약탕기로 손을 뻗었다.

“ 세 분을 뺀 우린 삼십 년 전에 팔황정벌에 나섰다. 그 정벌에서 벌주를 비롯한 몇몇 수뇌들이 실종되셨다. 그 사건을 조사하다가 봉원쇄정대법에 당해 혈도는 물론 단전이 굳었다. 지난 세월 동안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굳은 혈도 중 일할 만 풀 수 있었다. 그러한 와중에 세 분 형님들은 굳은 혈도를 푸는 방법을 연구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대법이 잠능진기충혈술이다. 잠능진기충혈술은 진기로 혈도ㅔ 충격을 가해 잠력을 깨우는 대법이고 성공 확률은 육 할 이상이다. 하지만 진기를 주입해줄 방법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모든 혈도가 굳은 상태이기 때문에 내공을 지닌 무인이 주입해주는 진기는 받아들일 수가 없다. 다만 복용을 통한 진기 주입만 가능하다. 영약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 이걸 마시면 금제를 풀 수 있다고 확신해?”

“ 그렇다. 확신한다.”

“ 세 가지 조건이 있어.”

“ 말해라. 부하가 되라고 해도 되겠다.”

“ 그 반대야, 영감. 첫 번째 조건은 영감들은 날 본 적이 없어야 한다는 거야.”

“ 우린 널 본 적도 만난 적도 없다.”

“ 두 번째 조건은 낭떠러지 아래로 던져버린 놈들의 몸에 영감들의 무공 흔적을 남겨야 한다는 거야.”

“ 그러니까 우리가 없앤 걸로 해달라는 거냐?”

“ 그래, 영감, 가능하겠어?”

“ 물론이다. 금제가 풀리면 낭떠러지 아래로 내려가서 네가 없앴다는 흔적을 완전하게 지우겠다.”

“ 그리고 세 번짼...... 날 풍동으로 안내해줘.”

“ 좋다. 지금 당장 풍동으로 안내해 주겠다.”

두작군은 벌떡 일어났따.

“ 젠장! 그래도 아까운데....”

여전히 미련이 남는 듯 연우강은 탕약을 흘끔거리며 두작군을 따라나섰다.

풍동은 멀지 않았다.

폐성을 나와, 낭떠러지를 따라 우측으로 이백 장 가량 걸어가자 다시 지하로 향하는 동굴 형태의 길이 나타났다. 출입이 빈번한 곳인 듯, 동굴 길 천장에는 야명주가 박혀 있었다.

“ 지금은 바람이 불지 않네?”

동굴 길 입구로 들어가려던 연우강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치 폭풍전야의 고요처럼 풍곡은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 하루에 두 지신은 잠잠하다. 그때는 저렇게 안개가 솟구쳐 오른다.”

두작군은 왼편 낭떠러지 아래를 가리켰다.

그의 말처럼 낭떠러지 아래쪽에서는 새하얀 운무가 뭉클거리며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 여긴 완전한 지하가 아닌 모양이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따.

햇빛이 전혀 들지 않는 지하라면 칠흑같이 어두워야만 한다. 그런데 이곳은 희미하게나마 사물을 구분할 정도는 됐다. 그 말은 곧 지하 어딘가에서 햇빛이 들어오고 있다는 뜻이었다.

“ 천장에 구멍이 뚫려 있다.”

“ 구멍?”

그 말에 고개를 들어올렸다. 하지만 희미한 어둠만 보일 뿐 두작군이 말한 구멍은 보이지 않았다.

“ 아마 구름이 끼었든지 비가 오고 있어서 그럴 거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무성 위쪽으로 수백 개의 빛 기둥이 생겨난다.”

“ 무성은 언제 생겨났지?”

“ 대야벌을 세운 자들이 무성 무인들인 무영이라고 알고 있다.”

“ 그럼?”

“ 천오백 년 전에 지어졌다는 말이다.”

“ 기연은 좀 얻었어?”

“ 무슨 소리냐?”

두작군은 황당한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 왜 그런 것 있잖아. 영웅전기 같은 걸 보면 절벽에서 떨어져서 살아나면 기연을 얻잖아. 더구나 여긴 조건도 완벽하고 말이지. 천오백 년 전에 지어진 건물도 있고, 하루 종일 미친 듯이 바람이 몰아치고, 하루에 한 번씩 저렇게 안개도 차 오르고 있어. 그야말로 기연을 얻을 조건을 완벽하게 구비한 곳이라 할 수 있어. 이런 곳에서 기연을 얻지 못한다면 이 세상에 기연을 얻을 장소는 없다고 봐야지.”

“ 여긴 감옥이야. 미친놈.”

두작군은 빽 소리쳤다.

“ 찾아는 봤어?”

연우강은 여전히 기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듯한 얼굴이었다.

“ 뭘 찾아?”

“ 감옥이니까 더더욱 기연을 얻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야. 지옥에 수감될 정도면 그 사람 신분이 어디 보통이겠냐고. 최소한 일파의 지존이거나 그에 버금가는 실력자들이었을 거라는 거야. 원래 자신이 대단하다고 여기는 놈들의 특성은 죽기 전에 반드시 뭔가를 남긴다는 거지. 무인이라면 무공일 가능성이 높고.”

“ 그래서?”

“ 문제는 바람이라는 거야. 영감. 사시사철 강풍이 불어오기 때문에 설사 동굴 벽에 글을 남긴다고 해도 풍화작용으로 인해 지워지고 말지.”

“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게냐?”

“ 그러니까 영감이 거지꼴을 면하지 못하는 거야.”

“ 다시 한 번 계급장 뗄까?”

두작군은 불끈 틀어쥔 주먹을 들어올렸다.

“ 마저 들어 영감탱이야. 만일 영감이 뭔가를 남기고 싶은데, 바람에 지워질 걸 잘 알고 있단 말이야. 그땐 어떻게 하겠어?”

“ 난 안 남긴다.”

“ 안 남기는 게 아니고 후대에 남기기엔 쪽팔리니까 못 남기는 거잖아.”

“ 계급장 떼자, 연우강.”

두작군은 으르러어리며 연우강을 노려보았다.

“ 이곳에서 바람이 미치지 않는 곳을 찾아보라는 거야.”

“ 바람이 미치지 않는곳?”

“ 머리는 싸울 때 연장으로 쓰라고 있는 게 아냐, 영감.”

연우강은 픽 웃으며 동굴 길로 들어갔다.

“ 미친놈. 기연 좋아하네.”

연우강이 동굴 길 안으로 모습을 감추자 두작군은 몸을 돌렸다.

“ 가만.....!”

무성을 향해 걸어가던 두작군이 우뚝 멈췄다.

“ 일리가 있잖아.”

그는 저도 모르게 버럭 소리쳤다.

일리.

그런대로 타당하다고 생각되는 이치를 이르는 말로, 흔하게 쓰이는 말이다. 그러나 그 일리가 연우강과 지옥 죄수들을 주종관계로 만드는 계기가 될 거라고는, 바람이 미치지 않는 곳을 찾아보라고 하였던 연우강이나 일리가 있다고 외쳤던 두작군도 알지 못했다.

쉬이익! 휘이익!

“ 으! 하하하! 프! 하하하!”

낭떠러지 아래쪽에서 가풍이 불어 올라오기 시작하는 순간, 무성으로부터 앙천광소가 터져 나왔다.

“ 맙소사!”

두작군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앙천광소의 주인공은 욱일승이었다. 그런데 그의 광소에는 사십 년 전에 잃었던 내공이 가득 실려 있었다.

“ 계속 웃어주시오. 형님. 계속 웃어달란 말이오.”

“ 으! 하하하! 하하하! 드디어 찾았다. 드디어....”

두작군의 중얼거림을 들었을까.

또다시 욱일승의 웃음이 들려왔다. 울음기가 섞여 있었지만 그것은 웃음이 분명했다.

두작군의 눈에서 주르르 눈물이 흘러내렸다.

두작군은 고개를 돌려 연우강이 들어간 동굴 길을 보았다.

“ 기연은 바로 너였다. 녀석아. 바로 너! 네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널 은인으로 생각하겠다. 내 목숨을 달라고 한다고 해도 결코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녀석아.”

아무런 조건 없이 도움을 받는 당사자는 도움을 준 사람을 더욱 존경할 수밖에 없다. 지금 두작군이 그랬다.

이곳에 들어온 사실조차도 모른 척 해달라고 하였던 연우강의 행태가 그를 더욱 감동시키고 말았던 것이다.

두작군은 정중하게 절을 올렸다.

자신에게 새로운 인연이 이어졌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연우강은 풍동이라고 하였던 곳에 들어와 있었다.

특이한 곳이었다.

동굴 길이 끝나면서 나타난 곳은 폭이 오십여 장이나 되는 엄청나게 넓은 공터였다. 그리고 그 공터 바닥엔 벌집처럼 수백 개의 동굴이 뚫려 있었다.

쐐애액! 슈욱! 휘이릭!

바람이 불기 시작한 듯 각 동굴에서는 매서운 바람이 불어나오고 있었다.

“ 대단하네!”

이제야 영감이 풍동으로 가보라고 하였던 이유를 알 듯했다.

수백 개의 동굴에서 흘러나오는 바람은 제각각 달랐다. 강한 놈이 있는 가 하면 약한 놈이 있고, 직선으로 불어 나오는 놈이 있는 가 하면 빙글빙글 돌면서 불어 나오는 놈이 있었다.

그리고 그 바람은 전부 한 곳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연우강의 몸이 둥실 떠올랐다. 허공으로 날아오른 그는 바람이 모이는 지점으로 정좌를 했다.

“ 자살 놀이네.”

연우강은 쓰게 웃었다.

수백 개의 바람이 모이는 곳에 정좌를 하자, 문득 사막에서 했던 자살 놀이가 떠올랐다.

자살 놀이를 하게 된 것은 사막 생활 삼 년 째부터였다. 매일 매일 이어지는 전투와 살인으로 인해 몸과 마음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있었다.

악몽으로 인해 잠을 이루지 못한 날이 잠을 자는 날보다 더 많아지면서 머릿속이 황량한 사막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자살 놀이에 끼어들었다.

아마도 자살 놀이를 하지 않았다면 미쳐버렸든지 자살을 하고 말았을 것이다.

“ 그때 했던 자살 놀이 덕분에 훗날 흑랑기를 완벽하게 장악하게 될 줄은 나도 몰랐지.”

연우강은 빙그레 웃었다.

흑랑기의 대원들은 인생 막장이란 말조차 과분할 정도로 험한 놈들이다. 싸움은 다반사고 살인도 수시로 일어나 전투 중에 죽는 자보다 대원끼리 싸우다가 죽는 자가 더 많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

그랬던 그들이 똘똘 뭉치게 됐다.

자신들과 함께 자살 놀이를 즐겼던 인생 막장이 지휘관이 됐다는 동질감 때문이었다.

그랬던 그들이 전부 죽었다.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가장 강하다고 알려진 자들을 유인하여 사막으로 들어갔다. 그들을 전부 없애고, 염자생을 구해 돌아왔을 때는 녀석들은 주무상과 계집 한 명을 데리고 있었다.

적랑은 보자마자 계집의 목을 잘랐다. 그러고는 주무상을 던져주고 바로 떠났다.

그 후로 북로정군에서 녀석들을 보지 못했다.

주무상 같은 놈을 구하기 위해 천이백 명의 흑랑기를 희생시켰냐는 항변이었을 터였다.

“ 언젠가는 만날 수 있겠지. 아니면 녀석들의 손에 죽게 될지도.”

연우강은 이내 마음을 가다듬었다.

- 주화입마를 아느냐?

주화입마를 겪게 되면 내기는 폭주하기 시작하고, 폭주하는 내기는 무인이 가진 본래의 힘보다 몇 배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준다.

물론 그 말로는 폐인이 되거나 죽음에 이르는 등 처참하기 그지없다.

그런 주화입마를 난 열 번이나 겪었다.

폭부하는 내기를이용하는 내공심법을 만들어낼 수만 있다면, 주화입마 때처럼 내공이 지닌 최고의 힘을 뽑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겠지만, 마라천력인인 나는 폭주하는 내기를 억제할 수 있었기에 주화입마를 겪어도 무사할 수 있었다.

나는 폭주하는 내기를 흑풍이라고 하였다.

흑풍을 다루기 위해서는 먼저 흑풍을 깨어나게 해야 한다. 그 방법은 사막의 용권풍에 있다.

하지만 용권풍은 흑풍을 일깨워 움직이게 할 수 있을 뿐, 종처럼 부릴 수는 없다. 흑풍을 종처럼 부리기 위해서는 풍동으로 가서 모든 바람을 겪어봐야 한다.

생각으로 바람을 보게 되면 비로소 모든 바람을 잡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때야 비로소 흑풍마라천력이 완성될 것이다.

“ 생각으로 바람을 본다는 건.......”

연우강은 손바닥을 아래쪽으로 향하게 하고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생각이 아니라 우선은 느낌으로 바람을 잡아볼 참이었다.

처음엔 전부가 같았다. 아니 같을 수밖에 없었다.

어떤 느낌을 잡아내기엔 손바닥은 너무 무뎠다. 하지만 손을 거둬들이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느닷없이 손바닥으로부터 특이한 느낌이 오기 시작했다. 하나처럼 보였던 바람이 분리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바로 그 순간, 흑풍마라천력을 끌어올렸다.

쿠쿠쿵!

단전히 활짝 열리며 흑풍이 무서운 기세로 뛰쳐나왔다. 녀석은 단전을 벗어나자마자 뻥 뚫린 혈도를 타고 폭풍처럼 온 몸을 훑고 다녔다.

마라천력 또한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각 혈도로부터 검은 기운이 뭉클뭉클 쏟아져 나와 갑옷처럼 온몸을 감쌌다. 온몸의 감각이 극한까지 끌어올려지며 전신 구석구석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연우강은 그 상태에서 손바닥에 생각을 집중했다.

보였다!

매섭게 손바닥을 후려치는 바람이 보이고, 부드럽게 감싸는 바람이 보였다. 돌아가는 녀석이 보이고, 직선으로 뻗어가는 녀석이 보였다. 실오라기처럼 가느다란 놈이 있었고, 통나무처럼 두꺼운 놈도 있었다.

그것들은 끊임없이 부딪쳐 소멸하고 다시 생성하고 있었다.

‘그렇군. 저것들은 단순한 바람의 움직임이 아니라 진기의 움직임이라고 볼 수 있어.’

문득 뇌리를 스쳐가는 생각.

몸 속의 흑룡 또한 바람에 불과한 놈이었다.

회오리바람처럼 나아가면서 점점 강한 힘을 얻어 가는 바람일 뿐이었다.

“ 프! 하하하! 으! 하하하!”

멀리서 희열에 가득 찬 웃음이 들려왔다.

“ 나도 오늘은 웃겠다. 흑풍!”

그로부터 오 일 후, 연우강은 활짝 웃는 얼굴로 풍도을 나섰다. 무성의 죄수들 또한 잔뜩 흥분한 얼굴로 연우강을 맞았다. 이미 무공을 회복한 그들의 눈에서는 형형한 안광이 쏘아져 나오고 있었다.

“ 정말 고맙다, 연우강.”

두작군은 연우강의 손을 덥석 잡았다.

“ 날 아쇼?”

연우강은 두작군을 빤히 쳐다보았다.

“ 당연히 알지, 이 녀석아. 넌 우리의 은인이야. 생명을 구해준 사람보다 더 큰 은인.”

아직 무공을 회복한 기쁨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 두작군은 들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밖에서 혹시라도 만나면 절대 알은체 하지 마쇼. 만일 손톱만큼이라도 알은체를 하며 그 자리에서 바로 목을 꺾어버릴 거요. 저렇게.”

연우강은 무성 입구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퍼억!

“ 억!”

“ 헉!”

두작군 일행은 깜짝 놀랐다.

무공을 되찾아 과거의 힘을 대부분 회복했다.

물론 완벽하게 적응하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그렇다고 어떤 기운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방금 연우강이 쏘아낸 기운은 전혀 감지하지 못할 것이다.

“ 마, 마라천력?”

욱일승이 경악한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소리도, 움직임도, 기운도 감지할 수 없는 무공. 그것은 바로 염력이라 부르는 마라천력이었다.

“ 알았으면 됐소. 영감, 반드시 명심하쇼.”

연우강은 궤짝을 걸머졌다.

“ 어디로 갈 텐가?”

퍼뜩 정신을 차린 욱일승이 물었다.

“ 왔던 곳으로 가야지요.”

연우강은 입구 쪽으로 몸을 돌렸다.

“ 그놈 다음에 보자는 말 정도는.....”

퍼억!

두작군이 중얼거림도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발치에서 흙이 튀었다.

“ 알았다, 자식아. 모른 척하면 될 거 아냐. 아니 모른 척하면 우린 훨.....씬 좋다고!”

두작군은 멀어지는 연우강을 향해 고함을 내질렀다.

“ 나쁜 자식, 누가 아는 척이나 할 주 아냐? 네가 죽어도 아는 척은 안 할거다. 절대로!”

두작군은 허공을 향해 주먹질을 해대며 재차 고함을 내질렀다.

“ 그만 두게. 녀석도 사정이 있는 것 같으니까, 그것보다는 녀석이 해달라는 거나 해주세.”

두작군을 말린 욱일승은 무인들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 낭떠러지 아래는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각진 얼굴을 한 사내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연우강이 허일구의 형님일 거라고 확신했던 허일삼이었다.

“ 그렇게 해주게. 허 동생. 일부는 낭떠러지 아래로 내려가고, 나머진 바람이 들지 않는 곳을 찾아보도록 하게. 녀석의 말처럼 우리보다 먼저 들어온 죄수들이 뭔가를 남겼을지도 모르니까.”

“ 알겠습니다. 어르신.”

일행은 일제히 소리치며 무성을 나섰다.

“ 나쁜 자식.”

하지만 두작군은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는 듯, 연우강이 사라진 곳을 보며 투덜댔다.

“ 뭘 그리 아쉬워하는가. 똥지게를 진다고 했으니까 사는 곳은 뻔할 텐데.”

욱일승은 두작군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 녀석을 찾아가실 겁니까?”

“ 대ㅑ벌에서 눈독을 들일 정도면 금릉 연씨 세가는 상당한 부자일 것 같은데, 맞는가?”

옆에 있던 수천월이 툭 쏘아붙였다.

“ 천월 자네도 알겠지만 난 빚지고는 절대 못사는 성격이네.”

욱일승은 빙그레 웃으며 수천월을 보았다.

“ 나도 빚지고는 절대 못살아!”

묘강독존 갈인효가 맞장구를 쳤다.

“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이걸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십니까?”

두작군은 구멍이 뻥 뚫린 바닥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 우린 사십 년 동안 이곳에 갇혀 있어서 알아볼 사람이 아무도 없네. 난 녀석을 따라다니면서 똥지게를 진다고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이네.”

“ 그럼 우리들은 어떻게 하라고요?”

두작군은 황당한 얼굴로 욱일승을 보았다. 욱일승을 비롯한 세 사람은 사십 년을 이곳에서 보냈고, 자신을 비롯한 이십 명은 삼십 년을 살았다. 밖에 연고자가 아무도 없는 것은 피차 마찬가지 상황이다.

그러니 혼자만 살길을 찾겠따고 하는 욱일승이 야속하기 짝이 없었다.

“ 그걸 내게 물으면 어떡하나?”

“ 형님, 정말 이러실 겁니까?”

두작군이 버럭 소리쳤다.

“ 그럼 나보고 어떡하란 말인가?”

두작군은 얼굴을 찌푸렸다.

“ 찾았습니다!”

그때 광양검객 우성영의 목소리가 어둠을 뚫고 날아왔다. 그는 일행을 데리고 바람이 들지 않는 장소를 찾아갔던 자였다.

“ 가보세.”

욱일승과 일행은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몸을 날렸다.

“ 좋군.”

지면을 차는 순간 몸이 화살처럼 쏘아져가자 욱일승은 활짝 웃었다. 그것은 사십 년 만에 주화입마를 극복한 무인의 미소였다.

한편 무성을 떠난 연우강은 절벽 근처에 다다라 위를 쳐다보았다.

“ 높기는 높네.”

연우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귓전을 어지럽히는 바람소리로 인해 절벽은 더욱 높고 음산해 보였다.

“ 우선은.....”

이내 고개를 숙인 연우강은 고문실 잔해를 더듬어 보았다. 한동안 나무를 쳐다보다가 두꺼운 통나무 하나와 걸레처럼 벼하 시체 한 구를 집어들었다.

“ 적당한 장소가 있어야 할 텐데.”

그의 신형이 둥실 떠올라 마치 계단을 올라가듯 절벽 위를 향해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최소 삼갑자 이상의 공력을 지녀야만 펼칠 수 있다는 허공답보의 경공술이었다.

절벽을 꼼꼼하게 살피고 올라가던 연우강은 불쑥 튀어나온 부분을 발견하고는 그 위로 내려섰다.

“ 저 위쪽은 .... 죽으라는 법은 없네.”

위쪽을 더듬던 연우강의 얼굴이 대뜸 환해졌다. 십여 장 위쪽으로 갈라진 틈이 보였던 것이다.

시체를 아무렇게나 내려놓은 그는 통나무를 든 채 갈라진 틈으로 몸을 날렸다.

“ 아주 자연스럽게 해야 하는데.”

잠시 갈라진 틈새를 내려다보다가 조금 더 위로 올라가서는 통나무를 슬쩍 놓았다. 갈라진 틈새에 통나무가 걸리돌고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통나무는 쉽게 걸리지 않았다.

떨어지려는 통나무를 염력으로 끌어올려 몇 번에 걸쳐 시도를 하자 드디어 통나무가 걸쳐졌다.

“ 일차로 여기에서 걸리고, 저 아래로 떨어져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한다. 그림 되네.”

연우강은 싱긋 웃으며 조금 전 사체를 놓아두었던 곳으로 몸을 날려갔다. 튀어나온 부분에 내려선 그는 궤짝 안에서 손괭이와 낫을 꺼내들었다.

“ 이놈들을 이용해서 올라가면 절벽에 흔적이 남게 되니까 더더욱 의심할 수가 없지.”

연우강은 손괭이의 뾰족한 부분을 이용하여 금이 간 부분을 향해 사정없이 찍었다.

카앙!

날카로운 쇳소리를 내며 손괭이 뒷날이 갈라진 틈 사이로 박혀들어 갔다.

“ 그런데 이 자식들이 날 의심이나 하는 걸까?”

절벽을 타고 올라가던 연우강은 우뚝 멈췄다.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우담보나 범일승은 전혀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데, 공연히 혼자만 몸을 사리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불현 듯 들었다.

“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그렇게 말하고 청개구리처럼 천천히 절벽을 타고 올라갔다.

두보관은 곤혹스러운 얼굴로 풍곡을 내려다보았다.

연우강을 비롯한 죄수 오십여 명이 떨어진 그날의 사건은 떠올리기도 싫었다. 천옥에 들어온 이래 가장 큰 사건 중의 하나였다.

위로부터 강도 높은 조사가 있을지도 모른다며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조사는 간단하게 끝이 났다.

그때 상황에 대한 질문과 희생자만 파악하는 게 전부였다. 내심 의아해하면서도 여전히 불안했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고문실이 있었던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오늘 어쩔 수 없이 오고야 말았다.

[ 저 아래로 떨어졌다는 말이냐?]

바로 이 목소리의 주인 때문이었다.

차갑고 섬뜩한 느낌에 몸이 절로 부르르 떨리게 하는 특이한 목소리. 감수들의 눈을 피해 천옥으로 들어올 정도면 그녀의 은신술은 최고조에 달했다고 봐야 한다. 더불어 그런 여자 앞에서 잔재주는 명을 재촉한다는 사실을 두보관은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심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오래 전이긴 하지만 패천림의 림주였던 탓에 상당히 많은 무공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공에 숨은 여자가 펼치는 무공은 어떤 종류인지 알 수가 없었다.

더불어 그런 무공을 펼치는 여자가 연우강을 찾는 이유는 더욱 궁금했다.

두보관이 궁금해하는 여자는 다름 아닌 몽요였다.

그동안 몽요는 금옥을 먼저 뒤졌다.

낮에는 시간을 내지 못해 밤에만 움직이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며칠 동안 금옥을 뒤졌지만 연우강이 보이지 않자, 그제야 이곳으로 왔다.

하루동안 염탐을 하다가 비로소 연우강이 이곳에 수감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 대답은 항상 고개로만 해라. 낭떠러지를 쳐다보는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차가운 금속의 끝이 뒷목에 닿았다. 두보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저곳이 최악의 죄수를 가두는 지옥이라고 들었다. 맞느냐?]

이번에도 역시 두보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 지옥으로 들어가면 어떻게 되지?]

“ .......!”

[ 이젠 말을 해도 무방하다.]

“ 저곳은 지옥일 뿐 아니라 대야벌의 신비라는 무성이오.”

두보관은 아래쪽을 가리켰다.

[ 저곳이 무성이라고?]

몽요는 깜짝 놀랐다.

그녀 또한 대야벌의 전설이라고 불리는 무성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더불어 대야벌로 들어온 목적 중의 하나가 바로 무성이었다. 그런데 그 무성이 바로 저곳에 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까앙! 까앙!

바로 그때 낭떠러지 아래쪽에서 날카로운 소성이 들려왔다.

“ 응?”

두보관은 의아한 얼굴로 낭떠러지 가장자리로 바짝 다가섰다.

“ 허!”

그의 입이 쩍 벌어졌다.

저 아래쪽에서 궤짝을 걸머진 사내가 천천히 올라오고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연우강이었다.

두보관을 따라 가장자리로 이동했던 몽요의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 두꺼비 같아.’

그녀는 천천히 올라오고 있는 연우강을 보며 내심 중얼거렸다.

[ 두보관! 그에게 내가 찾아왔다는 사실을 절대 비밀로 해라. 만일 나에 대해 발설하면, 반드시 널 죽일 것이다.]

“ .... 알았소.”

의아한 얼굴을 했던 것도 잠시 두보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극고한 은신술을 펼치는 여자와 연우강 사이에 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와중에 연우강은 끊임없이 손발을 놀려 낭떠러지를 타고 올라왔다.

“ 마중 나왔어?”

거의 낭떠러지 위까지 올라온 연우강은 힘겨운 얼굴로 두보관을 올려다보았다.

“ 마중?”

두보관은 황당한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연우강의 몸은 전신이 땀으로 범벅이었고, 입고 있던 옷은 바위에 쓸려 속살이 훤히 드러나 있었다. 그런 고생을 하고 올라온 녀석의 첫마디가 마중이라니.

“ 보통은 기다리고 있는 걸 마중 나왔다고 하는 거잖아.”

연우강은 낭떠러지 위로 올라서며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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