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백수-24화 (24/232)

제2장 장사란

여양 산맥으로부터 겨울 바람이 매섭게 불어왔다.

간밤에 눈이 내린 듯 나뭇가지엔 눈꽃이 피어 있었다. 한 바탕 바람이 휩쓸고 간 검지곡 석상 군 입구로 지게를 진 연우강이 나타났다.

석상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은 잔뜩 상기돼 있었다.

석상 발을 통해 얻었던 신법.

그 신법이 새로운 장소로 안내해 줄는지 알 수는 없지만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동안 익힌 신법이 가짜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 뭔가 있지 않으면 그런 신법을 숨겨놓을 리가 없겠지. 그렇지?”

연우강은 좌우에 서 있는 석상을 보며 확인하듯 물었다.   게 옳다.

“ 대답이 없다는 건 곧 긍정을 의미한다는 건 나도 안다. 자식들아.”

이내 연우강은 활짝 미소를 물며 오른발을 번쩍 들어올렸다. 파악, 소리와 함께 그의 신형이 전방으로 나아갔다.

그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신법에 자극을 받은 단전이 열리며 진기가 쏟아져 나왔다.

약간은 어설펐지만 그동안 익혔던 보법은 크게 무리 없이 펼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일천 보를 밟았어도 그가 나아간 거리는 절반에 불과했다. 연우강은 다시 두 번째로 신법을 펼쳤다. 이번엔 좀 더 속도를 내보았다.

전보다 더 빨리 움직이자 단전은 더욱 활짝 열리고, 그곳에서 쏟아져 나오는 진기도 많아졌다.

더불어 내부에서 발생한 힘이 외부로 미치며 옷이 바람을 맞은 듯 펄럭이기 시작했다.

석상 군이 끝나고 절벽이 보이기 시작하자 얼굴에 어린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이제 저곳만 지나면 진식이 나타나고 지금 펼치고 있는 신법은 미지의 장소로 안내해 줄 거라는 기대로 가슴이 둥둥 뛰었다.

“ 어디가 됐든 날 안내해 다오, 신법아.”

연우강은 호쾌하게 소리치며 석상 군을 지나쳤다.

휘이익!

바람이 참으로 썰렁하다고 생각했다.

기세좋게 석상 군을 지나쳤지만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몸을 돌려 조금 전 지나쳐왔던 석상 사이를 보았다. 천오백 년 전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던 석상들 또한 전혀 변화가 없었다.

실망으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첫술에 배부를 리가 없었을 거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미세한 변화라도 감지돼야 하는 데 그런 느낌은 전혀 없었다.

“ 아직 완벽하게 익히지 못해서 그런 건가?”

이내 마음을 다잡고 다시 처음 자리로 걸음을 옮겼다.

“ 천오백 년 동안 밝혀내지 못한 비밀이었는데 신법 한 번 펼친다고 밝혀진다면 그게 더 이상하겠지.”

지하실 그림을 떠올리며 다시 신법을 펼쳐 나갔다. 연속해서 두 번을 펼쳐 석상 군 끝에 도착했지만 여전히 변화는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처음보다 실망은 덜했다. 두 번째 펼치면서 신법의 많은 부분이 미진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탓이었다. 완숙한 경지로 올라설 때까지는 어떤 기대를 하지 않기로 내심 마음을 굳혔다.

그 뒤로 십여 회를 더 연습하다가 검지곡을 떠났다.

앞으로도 계속 이곳을 지나쳐 가야 하고, 이 년을 더 버텨야 하는데 굳이 급할 이유가 없다.

“ 뭔가 나왔냐?”

일을 마치고 처소로 들어가는데 막장이 담 너머로 고개를 내밀며 물었다.

“ 이제 시작인데 뭐. 그런데 오늘은 야간에도 ㅇ리하는 거 아니었냐?”

연우강은 어깨를 으쓱하며 되물었다.

막장은 금황련에서 작업 중이어서 외부로 나가는 길이 서로 달라 하루 종일 마주칠 기회가 없었다.

“ 사고가 생겼다.”

“ 사고?” 가락으로 푹 찔렀다.

“ 금황련의 황공망 조일백과 구중련의 황룡대협 고우불이 죽었다고 하더라.”

“ 대야벌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전부 사고가 되는 거냐?”

“ 죽은 자들의 신분 때문이다.”

“ 높은 분들인가 보지?”

“ 황공망 조일백은 금황련 이인자고 황룡대협 고우불은 구중련 제구령주다.”

“ 살해됐다는 말이냐?”

“ 암기에 당했단다.”

“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는 말이구나.”

“ 이럴 땐 몸을 최대한 사려야 한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엮여 들어갈 수도 있다.”

“ 미친놈! 제발 좀 엮어줬으면 좋겠다. 우리 같은 똥지게는 그런 일에 연루가 되고 싶어도 방법이 없어 자식아. 도무지 거들떠보지도 않는 족속이 우리들이라고.”

연우강은 피식 웃었다.

“ 아무튼 기웃거리지 말고 조심하란 말이다.”

“ 그쪽은 네 구역인데 내가 기웃거릴 일이 어딨냐, 밥은?”

“ 난 먼저 먹고 네 밥은 차려 뒀다.”

“ 고맙다. 너도 나처럼 가마솥을 구해서 욕조를 하나 만들어. 매일매일 목욕을 하지 않으면 냄새가 몸에 배 코가 마비된다.”

“ 이미 만들었다. 자식아. 난 좀 들어가 쉬련다.”

“ 피곤해?”

“ 근육들이 죽겠다고 아우성이다.”

“ 내공은 나뒀다가 국 끓여 먹을 거냐?”

“ 너 같은 꼬맹이도 그냥 하는데, 대야벌 백대 고수인 내가 내공에 의존해서 할 수는 없잖아. 이건 피곤함의 유무를 떠나 자존심 문제야 인마.”

“ 그러다 죽으면 너만 손핸데?”

“ 내공을 지닌 무인은 일반 양민들보다 훨씬 오래 사니까 걱정할 필요 없다.”

막장은 픽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 고집은.....”

연우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집으로 향했다.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연우강은 한쪽 구석에 분관과 지게를 내려놓고 부엌으로 향했다.

일이 끝난 다음 일정은 항상 목욕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부엌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려던 연우강은 우뚝 걸음을 멈췄다. 안쪽에서, 아니 정확하게는 가마솥 안에서 인기척이 감지된 것이었다.

‘ 끄응! 몽요가 날을 잡았네.’

연우강은 슬쩍 미소를 지으며 부엌을 살폈다.

아궁이에 불도 피우지 않고 찬물 안에 들어가 만화은신사영을 펼치고 있는 모양이었다.

‘ 쯧, 추을 텐데.’

연우강은 내심 중얼거렸다.

아무리 무인이라고 해도 오랜 시간 동안 들어가 있으면 추울 수밖에 없다.

“ 우선 물부터 데워야지.”

굳이 목욕을 하지 않더라도 몽요를 위해 물을 데워야 할 듯했다. 그는 너스레를 떨며 가마솥 앞으로 가서는 아궁이 안으로 석탄 몇 개를 집어넣고 불씨를 살렸다.

그런 다음 바싹 마른 솔잎을 한 웅큼 집어넣자 잠시 후 불길이 살아났다.

“ 우선 물에 데워지는 동안에 밥부터 먹고..”

연우강은 솥 안으로 흘끔 시선을 주고는 몸을 돌렸다.

‘ 그냥 들어와. 난 지금 얼어 죽게 생겼다고!’

물 속에 있던 몽요는 연우강을 보며 내심 소리쳤다.

“ 누구십니까?”

바로 그때 연우강이 밖을 쳐다보며 소리치는 모습이 보였다. 몽요는 긴장한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전음으로 뭔가 들은 듯한 행동이었다.

“ 손님이네?”

연우강은 반가운 듯 말하며 밖을 향해 종종걸음 쳤다.

‘ 야!’

만하은신사영으로 몸을 숨기고 있던 몽요는 야속한 눈으로 연우강의 등을 보았다.

차가운 물 속으로 들어온 건 반 시진 전이었다. 그동안 연우강과 함께 목욕을 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동원했다. 제대로 풀리지 않으려고 그랬는지 그때마다 연우강은 일이 생기거나 먼저 목욕을 하고 있어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가 동영사람이었다면 목욕을 하고 있는 동안에라도 스스럼없이 들어갔을 것이다. 설사 그렇게 한다고 해도 동영에서는 크게 결례가 되지 않고, 헤픈 여자라고 여기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중원이고, 연우강 또한 동영 사람이 아니다. 그에게 헤픈 여자로 오해받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우연을 가장하여 자연스럽게 목욕을 하려고 했었다.

오늘도 그랬다.

만화은신사영을 펼친 채 물 속에 숨어 그를 기다렸다. 솥 안으로 들어온 그가 깜짝 놀랐을 때에 대비하여 대답도 미리 준비했다. 만화은신사영의 물 속에서도 완전하게 펼칠 수 있어야 완성된다고 할 생각이었고, 실제로도 그랬다. 그리고 이왕 들어온 거, 함께 목욕을 하자고 할 작정이었다.

더불어 함께 목욕하는 걸 즐기는 동영의 풍습에 대해서도 설명해 줄 참이었다. 남녀가 알몸으로 함께 목욕을 하게 되면 그 다음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일부러 불을 피우지 않은 것 또한 조금이라도 불쌍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한 연출이다. 퍼렇게 언 얼굴을 보여주어 그의 동정심을 한껏 자극할 생각이었다.

기다리고 기다렸던 순간이었다.

아궁이에 불을 지폈으니까 들어오기만 하면 된다.

이가 딱딱 마주치는 추위를 참아가며 기다렸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손님이 찾아오고 만 것이다.

‘ 도대체 어떤 작자가?’

몽요는 내공을 끌어올려 천리지청술을 펼쳤다.

“ 어! 오랜만이네요.”

“ 거의 일 년 만이네요. 중노동을 한다고 하더니 얼굴은 더 좋아진 것 같네요.”

지하실에서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저 여우 같은 게...’

몽요의 눈동자가 암팡지게 변했다.

연우강과 이야기를 나누는 여자는 다름 아닌 은룡숙의 이지약이었다.

‘ 유부녀가 돼 가지고 야심한 시간에 사내를 찾아온다 이거지.’

지금껏 알몸으로 연우강을 기다렸던 제 행동은 생각지도 않고 몽요는 이지약을 비난했다.

‘ 나쁜 계집.’

욕ㅇ르 해대던 몽요의 얼굴에 문득 미소가 번졌다.

물이 따뜻해지면서 추위로 굳었던 몸이 빠르게 풀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 내가 추위에 떨고 있는 줄 알고 불까지 지펴주는 걸 보면 역시 멋진 남자야. 앞으로도 이 년이나 남았으니까. 언젠가는......’

몽요는 내심 중얼거리며 점점 따뜻해지는 물에 몸을 맡겼다.

연우강은 활짝 웃었다.

그동안 여러 사람에게 물건을 판 적은 있지만 이지약이 직접 이곳까지 찾아온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 엄청나네요.”

이지약은 물건이 가득한 벽면을 보고는 탄성을 흘렸다.

그가 장사를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고, 다른 동료를 통해 몇 가지 물건을 구입하여 사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저렇게 많은 물건을 팔고 있을 줄은 생각지 못했다.

“ 그 영감이 익혔던 무공인가 보네요?”

연우강은 모습을 드러내는 이지약을 보며 물었다.

그녀가 몸을 숨긴 무공은 전에 객잔에서 보았던 환노라는 영감의 무공과 흡사했다.

“ 아직 팔 성에 불과해요. 그런데 저런 것들을 팔아도 괜찮아요? 규율이 엄격하다고 들었는데.”

이지약은 내부를 둘러보았다.

한쪽 벽면에 물건이 가득 쌓여 있고 그 앞에는 탁자와 의자, 간이 침상이 있다. 그리고 침상 옆에는 무쇠로 만들어진 커다란 화덕이 불길을 토해내고 있었다.

화덕 옆에도 탁자와 함께 서너 개의 의자가 놓여 있었는데 손님이 오면 차를 마시는 곳인 듯했다.

상당히 넓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아담하다는 느낌이 드는 그런 장소였다.

“ 허가받고 하는 일이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앉으십시오.”

연우강은 자리를 권했다.

“ 율령궁에서 허가를 내줬단 말인가요?”

화덕으로 손을 내밀던 이지약은 깜짝 놀랐다.

“ 허가받은 사연을 전부 이야기하려면 하룻밤으로도 부족합니다.”

“ 호호! 머리를 써서 쟁취했다는 말이네요?”

“ 우담보는 제 상대가 아니지요. 그보다는 연무는 어떻습니까?”

“ 그동안 이론적으로 부족했던 걸 많이 배우고 있어요.”

“ 얻는 게 있다니까 다행이네요. 차 드릴까?”

“그럼 고맙죠.”

“ 군산은침?”

“ 그것도 있어요?”

문득 이지약은 입맛을 다셨다.

차로 하루를 시작하고 차로 하루를 마감할 정도로 차를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으뜸으로 치는 차는 당연 군산은침이었다.

등황색을 내는 군산은침은 맑은 향기와 더불어 달고 부드러운 맛이 상쾌함을 더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워낙 귀한 차라 지난 일 년 동안 구경은커녕 냄새도 맡아보지 못했다. 그런데 군산은침차를 맛볼 수 있다니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 물론 있습니다. 더불어 고객이 찾는 물건은 황제가 입는 속옷이라도 구해 드립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연우강은 찻주전자를 화덕 위로 올려놓고는 물건을 쌓아 놓은 곳으로 가서 작은 목곽을 가져왔다. 목곽을 바라보는 이지약의 눈에 탐욕이 어렸다.

“ 물은 내가 데울게요.”

결국 이지약은 참지 못하고, 화덕 위에 올려두었던 찻주전자를 들어 삼매진화로 물을 데웠다. 곧 주전자 주둥이로부터 뿌연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 넣어 주세요.”

그녀는 물이 데워지자마자 채근하듯 말했다.

“ 물이 너무 뜨거운 것 아닙니까?”

연우강은 찻잔에 찻잎을 넣으며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 마음이 급해서 그래요. 일 년 만에 맛보는 군산은침이거든요.”

“ 알았습니다.”

연우강은 찻잔에 물을 부었다. 뜨거운 물이 들어가자 찻잎은 곧게 떠 올랐다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그 모양은 곧 군산은침이 진품이라는 의미였다.

그녀는 황급히 찻잔을 잡아 입으로 가져갔다. 차를 한 모금 들이킨 그녀는 음미하듯 지그시 눈을 감았다.

“ 고마워요.”

이지약은 배시시 웃으며 찻잔을 들고 물건이 쌓여 있는 벽면으로 걸어갔다. 벽면을 따라 천천히 걷던 그녀가 한 곳에서 멈췄다. 그곳에는 여성의 필수품인 세답이 진열돼 있었다.

“ 이것들은 어떻게 구한 거죠?”

그녀는 세답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물었다.

묶음 단위로 진열돼 있는 그것들은 최고급품이었다.

“ 똥지게는 대야벌은 물론이고 밖으로 나갈 수도 있습니다.”

“ 그럼 밖에 나갔을 때 조금씩 사들여 온 거예요?”

“ 그렇습니다. 필요한 거라도 있습니까?”

“ 그게......”

이지약은 말끝을 흐렸다.

세답 앞에 멈춰 선 것은 마침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달거리 때 사용하는 것이라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 외부에서 사서 쓰는 것보다 많이 비쌉니다.”

그녀가 원하는 걸 눈치 챈 연우강이 넌지시 말했다.

“ 얼마나 더 비싸죠?”

“  하나에 열냥입니다.”

“ 그 정도면 폭리가 아니라 사기예요. 연 공자.”

“ 물건을 파는 건 허락을 받았지만 사서 들여오는 건 허락을 받지 못했습니다.”

“ 걸리면 압수당한단 말인가요?”

“ 우담보는 그러고도 남을 놈입니다. 걸리면 또 천옥으로 처넣을 겁니다.”

“ 천옥에 들어갔다 왔어요?”

이지약은 깜짝 놀랐다.

설마 그동안 그런 일이 있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탓이었다.

“ 네.”

“ 이것들 때문에?”

이지약은 벽면의 물건들을 가리켰다.

“ 그렇습니다. 이 소저. 천옥에서 죽을 뻔했습니다.”

“ 그렇다고 해도 너무 비싸요. 연 공자.”

“ 북경에서나 구할 수 있는 최고급입니다.”

“ 아무리 그래도...”

“ 하나를 더 얹어드릴 수는 있습니다.”

“ 하나를 더 얹어준다는 건 무슨 뜻이죠?”

“ 스무 개씩 묶음 단위로 팔고 있습니다”

“ 그럼 이백냥이란 말이네요.”

“ 그렇습니다. 이 소저.”

“ 순 날강도네요.”

“ 저건 이 년 동안 놔둬도 됩니다. 이 소저.”

“ 지금 전에 잠룡쟁패를 싸게 판 거에 대해 복수하는 거죠?:

“ 전 그렇게 속 좁은 놈이 아닙니다. 지금 이 소저께 말씀드린 가격은 다른 분들게 파는 가격과 동일합니다. 오히려 이 소저니까 특별히 하나를 더 얹어 드리는 겁니다.”

“ 지금 큰 돈이 없는데 어떡하죠?”

“ 돈도 없이 물건을 사러 오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연우강은 버럭 소리쳤다.

“ 이, 이 정도면 안 될까요?”

찔끔한 이지약은 목걸이를 풀어 연우강 앞에 내밀었다.

“ 뭡니까?”

“ 금강석인데 밖에서 칠.....”

“ 여긴 밖이 아닙니다. 이 소저.”

“ 얼마나 쳐줄 수 있죠?”

“ 이천 냥은 쳐줄 수 있습니다.”

“ 밖에선 칠천 냥은 나가는데.”

“ 그럼 팔아서 다시 오십시오.”

“ 이, 이렇게 하면 안 될까요?”

“ 어떻게 말입니까?”

“ 이왕 사백 만 냥의 빚이 있으니까 거기에 추가하면...”

“ 떽!”

연우강이 다시 고함을 내질렀다.

“ 아, 안 될까요?”

“ 안 팔어, 나가!”

연우강은 이지약의 몸을 홱 돌리더니 계단으로 밀고 갔다.

“ 아, 알았어요. 일단 가지고 계세요. 다음에 돈을 가져와서 찾아가도록 할게요.”

“ 기간은 두 달입니다. 이 소저. 이자는 월 일 할이고요. 그 안에 찾아가지 않으면 바로 팔아 넘길 겁니다.”

“ 그건 내가 가진 유일한 목걸이란 말이에요. 이자를 물더라도 반드시 찾아갈 테니 절대 팔지 마세요.”

“ 유일한 물건이라고요?”

연우강은 들고 있던 목걸이를 내려다보았다. 줄과 바탕이 백금으로 된 목걸이.

마름모꼴 바탕 가운데 박힌 보석은 새끼손톱 크기의 금강석이고, 그 주변으로도 수십 개의 작은 금강석이 촘촘하게 박혀 있었다. 그리고 가운데 박힌 보석 뒤편에는 묘아라는 이지약의 애칭이 새겨져 있었다.

“ 그래요. 만일 그걸 팔아먹으면 연 공자를 영원히 저주할 거예요.”

“ 하루라도 빨리 돈을 갚게 되면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이 소저, 고르십시오.”

연우강은 활짝 웃으며 벽면의 물건을 가리켰다.

“ 조금 전에 말했던 거 두 묶음 주세요.”

“ 두 묶음이면 사백 냥입니다.”

“ 속옷도 필요해요.”

세답까지 주문했는데 뭘 못하랴 싶었다. 저도 모르게 뻔뻔해지고 있었다. 그녀는 한편에 있는 속옷을 가리켰다.

“ 속옷은 백 냥부터 오백 냥까지 있습니다.”

“ 오백 냥 하는 건 어떤 거죠?”

오백 냥이라는 말에 그녀의 눈이 멍해졌다.

“ 사막을 건너온 거라서 그렇습니다.”

“ 사막을 건너와요?”

“ 이곳에서 생산된 비단이 파사국(페르시아)으로 가서 속옷으로 제작돼 다시 상단을 통해 들어온 겁니다. 그래서 고가로 거래되고 있습니다. 이겁니다.”

연우강은 손바닥 크기의 유리 상자를 가져와 이지약에게 내밀었다.

“ 만져봐도 되나요.”

“ 물론입니다. 다만 손 기름이 묻지 않게 조심스럽게 다뤄주십시오.”

“ 알았어요.”

이지약은 유리함의 뚜껑을 열고 속옷을 꺼냈다.

“ 최고급 비단이네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손가락이 비칠 정도로 얇은 비단은 중원에서도 구경하기 힘든 최고급이다. 더불어 이런 비단으로 속옷을 만드는 기술 또한 대단했다.

“ 휴대도 간편하고 무인처럼 격렬하게 움직이는 이들에게 최고의 선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이걸로 두 장 주세요.”

“ 그럼 총 천사백 냥입니다.”

“ 부적도 판다고 하던데, 그것도 있어요?”

“ 제가 파는 것 중에 가장 비쌉니다.”

“ 얼마죠?”

“ 남은 돈은 육백 냥인데 그 돈으로 살 수 있는 건 싸구려 밖에 없습니다.”

“ 싸구려라면......?”

“ 이겁니다.”

탁자로 다가간 연우강은 서랍을 열고 부적을 꺼내 내밀었다. 그가 내민 것은 얼마 전 율령궁에서 보내온 것이었다. 몇 사람의 손을 거친 바람에 꼬깃꼬깃 구겨져 부적 역할을 할 수 있을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 훗! 이거 부적 맞아요?”

“ 그래서 싸구려라고 한 겁니다.”

“ 전서체로 쓴 글씨 같은데요?”

“ 무슨 소립니까? 아주 유명한 도사가 백 냥이나 받고 써준건데요?”

“ 이건 상 자 같은데......”

이지약은 의심스러운 눈으로 연우강을 바라보았다.

“ 상 자 맞습니다. 제가 상승무공성취간결기원이라고 쓰고 주술을 걸어달라고 했거든요.”

“ 혹시 연 공자가 직접 쓴 건 아니겠죠?”

“ 절 너무 높게 평가하는 것 같습니다. 이 소저.”

“ 그런가요. 아무튼 이건 부적으론 가치가 없을 것 같아요.”

“ 그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건 어떻습니까?”

연우강은 얼른 구김이 전혀 없는 깨끗한 부적을 꺼내 내밀었다.

“ 육백 냥 남은 것까지 기어코 빼앗고 싶은 모양이네요.”

“ 보통 천 냥은 받아야 하는데, 물건을 많이 사셨으니까 싸게 드리는 겁니다. 덤으로 이것도 드리겠습니다.”

연우강은 부적 위에 군산은침을 얹었다.

“ 좋아요. 전부 싸주세요.”

이지약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 알겠습니다.”

연우강은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이지약이 고른 물건을 자루에 넣어 건네주었다.

“ 만족.... 하세요?”

자루를 받아든 이지약은 연우강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문득 그가 어떤 생각으로 사는지 궁금했다.

정말로 돈이 궁해서 이런 일을 하는지, 아니면 이렇게 살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삶의 무게가 버거운 것인지.

어쩌면 후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뭘 말입니까?”

“ 지금 생활요.”

“ 아주 만족하고 있습니다.”

“ 그렇군요. 아무튼 그 목걸인 어렸을 때부터 내가 가진 유일한 목걸이니 잘 관리해 주세요. 난 그 목걸ㄹ이 말고는 다른 목걸이를 사 본 적도 없고 찬 적도 없어요. 앞으로도 다른 목걸인 차고 싶지 않아요.”

연우강을 가만히 쳐다보던 이지약은 몸을 돌렸다.

곧 그녀의 신형이 허공으로 녹아들어 갔다.

이지약이 떠나자 연우강은 다시 화로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 칠 천 냥 정도가 아닌데....”

연우강은 이지약이 남긴 목걸이로 시선을 주었다.

목걸이는 화로 불빛을 받아 투명한 광채를 뿜어내고 있었다. 햇빛에 비춰봐야 더 확연해지겠지만 반사되는 색으로 봤을 땐 최상급임에 분명했다.

“ 그건 그렇고, 이게 유일한 목걸이라면 그놈은 뭐지?”

문득 무상이 준 목걸이가 떠올랐다.

초승달 모양의 푸른 보석이 박힌 그것은 금강석 목걸이보다는 못했지만 그래도 상당히 가격이 나가는 물건임에 틀림없었다.

“ 설마 다른 여자 거..... 에이, 아니겠지. 다른 여자 목걸일 제 정혼녀에게 보내는 놈이 어딨냐. 그럼 그놈은 인간도 아니지.”

연우강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 그거 내가 사면 안 될까요?”

바로 옆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연우강은 고개를 돌렸다. 몽요가 허공에서 얼굴만 내민 채 이편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 두 달 동안은 팔 수가 없고, 두 달 후엔 가격이 만칠천사백 냥이 됩니다.”

“ 아까는 이천 냥이라고 했잖아요.”

몽요는 모습을 드러내어 연우강의 건너편에 앉았다.

“ ....!”

연우강은 몽요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막 목욕을 하고 나온 듯 그녀의 몸에서는 장미향이 풍겨 나왔다. 더불어 옷매무새 또한 상당히 흐트러져 있었다.

상의를 제대로 여미지 않아 깊게 파인 가슴골은 물론이고 가슴 또한 절반 가량 드러나 보였다.

만일 그녀가 약가만 비스듬히 앉는다면 가슴이 몽땅 드러날 것만 같았다.

“ 그건 제가 사들이는 원가가 그렇다는 겁니다.”

연우강은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 팔 때는 가격이 달라진다는 말이에요?”

“ 당연히 달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 그래도 만칠천사백 냥은 비싸다고 생각지 않으세요? 이 소저는 칠천 냥 정도 나간다고 한 것 같은데.”

“ 칠천 냥은 아마 구입 가격이었을 겁니다. 어린 시절부터 걸고 있었다고 했으니까 이십 년은 됐을 테고, 그 당시 물가와 빅하면 최소한 만오천 냥은 받아야 합니다.”

“ 만 오천 냥이라면서 이천 사백 냥을 더 부른 건 뭐죠?”

딱히 궁금해서라기보다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게 즐거워서 던진 질문이었다.

“ 방금 그녀가 이천 냥을 빌려가지 않았습니까? 그 돈에 월 이자가 일 할이니까 두 달이면 사백 냥, 그럼 총 만칠천 사백냥이지 않습니까?”

“ 풋!”

몽요는 웃음을 터트렸다.

결국 연우강은 목걸이를 공짜로 얻은 셈이 되는 것이었다.

“ 당신은 아주 재미있는 분이에요.”

몽요는 불을 쬐는 척하며 자세를 약간 수그렸다. 그러자 옷 앞섶이 열리면서 가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 목욕하셨습니까?”

연우강은 몽요의 가슴에 눈을 맞추며 물었다.

그녀의 가슴은 풍만했다. 약간 처진 듯한 느낌이 없잖아 있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농염함을 더해주고 있었다.

퇴폐적인 아름다움. 그녀의 분위기를 표현하는 데 있어 이보다 더 어울릴 만한 말은 없을 것이다.

“ 몸이 좀 찜찜해서요.”

그녀는 슬쩍 연우강의 눈치를 살피며 상체를 더 깊게 숙였다.

“ 현찰로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전처럼 당라놓으시겠습니까?”

몽요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지금 그녀는 작정을 하고 나섰다. 그래서 일부러 가슴을 드러내는 모험을 감행했는데, 그는 숨결조차 거칠어지지 않는다.

문득 그가 불능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 달아놓을 거예요.”

몽요는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 그 극특의 가슴에 어울리는 가슴 가리개가 있는데 어떻습니까?”

연우강은 탁자로 가 장부를 꺼내며 은근한 어조로 말을 흘렸다.

“ 극특이라고요?”

찌푸렸던 것도 잠시 몽요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극특이라는 말은 그도 가슴을 보았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 혹시 제가 류사은이라는 녀석에 대해 말했습니까?”

“ 아뇨? 처음 듣는 이름인데요?”

그녀의 목소리가 어떤 기대로 희미하게 떨려나왔다.

“ 그 녀석이 말하길, 여성의 가슴은 극특, 특특, 상특, 중특, 하특의 오 등급으로 나눈다고 했거든요.”

“ 극특은 어떤 가슴을 말하는 거죠?”

“ 양쪽 가슴의 크기가 같고, 풍만하면서도 몸매와 어울리고, 더불어 탄력이 넘치면서도 약간 처진 듯한 느낌을 자아내야 한다고 하더군요.”

“ 그래요?”

입이 벌어지다 못해 침이 흐를 정도였다. 그녀는 가슴을 활짝 펴고는 보란 듯 내밀었다.

“ 가슴 가리개는 아래 속옷보다 좀 더 비싼데 괜찮겠습니까? 물론 조금 전 이지약 소저에게 팔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파사국에서 건너온 물건이고요.”

“ 그거 주세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몽요는 연우강 곁으로 다가서며 소리쳤다.

“ 여기 있습니다.”

연우강은 속옷을 두었던 자리에서 조금 전 이지약에게 주었던 상자보다 약간 큰 유리상자를 꺼냈다.

“ 사실 이건 아래 속옷과 함게 한 벌로 입는 게 좋기는 한데, 워낙 고가라서 그렇게 팔지는 못하겠습니다.”

연우강은 뚜껑을 열었다.

“ 한 벌에 얼마죠?”

“ 천오백 냥입니다.”

“ 속옷은 공짜로 주기로 했으면서......”

몽요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 백 냥 나가는 건 지금이라도 드릴 수 있습니다. 몽요. 조금 전에 이 소저도 같은 종률르 사갔습니다.”

“ 달아놓으세요.”

그녀는 덮치듯 유리 상자를 빼앗았다.

“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차 좋아하면..”

“ 혹시 동정벽라춘도 있어요?”

“ 당연히 있지요.”

연우강은 활짝 웃으며 연한 녹색 목곽을 꺼내 내밀었다.

“ 이건 덤?”

“ 네, 혹시 부적은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 부적은 제게도 있어요.”

그녀는 연우강에게서 건네받을 것을 가슴 안으로 밀어넣었다.

“ 아주 좋은 부적이 새로 나왔는데, 아쉽네요. 그럼 전부 천오백오십 냥입니다.”

연우강은 탁자로 가서 장부를 꺼내 펼쳤다.

“ 품목과 금액을 적고 수결만 해주시면 됩니다.”

몽요는 입을 삐죽 내밀며 연우강을 흘겨보았다. 그리고 펼쳐진 장부에 속옷과 목욕이라고 쓴 다음 금액을 적고 수결을 했다.

“ 혹시 무성이라고 들어본 적 있어요?”

붓을 내려놓은 몽요는 지나가는 듯한 투로 물었다.

“ 제가 전에 떨어진 풍곡이 지옥이면서 무성이라고 들었어요.”

“ 보셨어요?”

“ 중간에 나무에 걸려 구사일행으로 살아났기 때문에 무성을 봤다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 그렇군요.”

“ 무슨 일이라도?”

“ 아니에요. 그건 나중에 지금보다 더 친해지면 그때 말해줄게요.”

몽요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만화은신사영을 펼쳤다. 그녀의 동체가 조금씩 허공으로 녹아들었다.

곧 그녀의 기척이 지하실에서 사라졌다.

“ 남녀가 친해지는 곳은 저기밖에 없는데.....”

연우강의 시선이 침상으로 향했다.

“ 고개과 손님 이상의 관계로 발전하면 목욕비도 못 받고, 속옷은 파는 게 아니라 선물로 줘야 하는데 그건 절대 안 돼. 몽요, 우린 지금 거리가 딱 좋아. 가끔가다 눈이 한 번씩 호강하는 그런 사이.”

연우강은 씨익! 웃으며 장부를 펼쳤다.

오늘 벌어들인 돈의 결산을 시작했다.

“ 가만.....”

장부를 꼼꼼히 확인해 가며 셈을 해가던 연우강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문득 지금껏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데에 생각이 미친 탓이었다.

“ 제기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벌떡 일어난 연우강은 배를 슬슬 쓸며 계단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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