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백수-25화 (25/232)

제 3장 죽음.

장이 유재룡.

그는 잠룡들의 동태를 사찰하는 임무를 맡은 천안원 밀정 중의 한 명이다.

원래 밀정 일인당 열 명의 잠룡의 맡아 사찰 활동을 하는 데 지금까지 유재풍은 아홉 명만 감시를 했다.

열 명 중 한 명이 연우강인 탓이다.

동료 밀정인 장상보의 죽음은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밀정으로 살다보면 감시하던 자에게 들켜 죽임을 당하는 일이 간혹 일어나곤 하지만 대야벌 안에서는 그런 일이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장상보가 죽임을 당하고 만 것이다.

문제는 그가 죽은 후라고 할 수 있었다.

보통은 밀정이 죽으면 지금까지의 대야벌의 위해 헌신했던 공로를 인정받아 율령궁의 ‘헌신의 방’이라고 불리는 곳에 위패를 안치하게 된다. 그런데 장상보의 위패는 ‘헌신의 방’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여자 속옷을 훔치다 죽임을 당한 변태 도둑으로 몰렸기 때문이다.

율령궁에서는 장상보 가족에게 은밀히 위로금을 전달했지만 그를 율령궁 산하 천안원 밀정이라고 공포조차 하지 못했다. 평생 동안 밀정으로 헌신했던 장상보는 변태 도둑으로 돼 그렇게 죽었다.

밀정들은 장상보의 죽음에 연우강이 관련돼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 호환 마마 똥 같은 놈.”

밀정들이 부르는 연우강의 별명은 ‘호환마마똥’이다.

‘ 호환마마 같은 놈.’이라는 말은 가급적 가까이 가지 말라는 뜻이고 ‘똥’이란 의미는 ‘무서워서가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고 할 때의 그 똥처럼 설사 마주치는 일이 있더라도 피해 가는 게 낫다는 뜻이었다.

지금까지 유재풍도 그렇게 해왔다.

상부에서도 놈에 대한 보고서를 요구한 적도 없고, 무공도 없는 자이기에 특별한 관심을 둘 이유도 없었다.

사실 오늘 그를 본 것도 우연이다.

연말 보고서 작정이 아니었다면 평소처럼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어떤 대상을 감시하는 게 밀정들의 일이다 보니 실력의 고하는 보고서에서 판가름나고, 승진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연말이 다가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땅히 보고거리가 없었다. 보고서 때문에 골머리를 싸고 있는데, 마침 연우강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녀석은 분관을 지고 천우산 방향으로 달려가는 중이었다.

“ 이번 보고서는 연우강에 대해 중점적으로 다루는 수밖에 없겠네.”

유재풍은 연우강을 따르기로 생각을 굳혔다.

우담보 궁주에게 연우강은 골칫거리인 동시에 관심의 대상이다. 어쩌면 좋은 보고서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재풍은 은밀하게 연우강을 따라나섰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곧 능숙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공도 마찬가지다. 능숙하게 펼치기 위해서는 우선 익숙해져야 하고, 익숙함을 넘어서면 비로소 경지에 올랐다고 말을 한다.

연우강이 얻은 신법도 그랬다.

반드시 익히고 말겠다는 조바심을 내지 않아서 더 빠르게 완성해 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연우강은 신법을 절벽 어딘가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무덤으로 들어가는 매개체 이상으로 생각지 않았기에 완성에 목을 멜 이유가 없었다. 어떤 일이든 즐기면서 하는 일은 능률이 오르고 그 성취도 또한 높을 수밖에 없듯 어느덧 연우강은 이름조차 없는 신법의 완성을 앞두고 있었다.

“ 거참!”

연우강은 고개를 갸웃했다.

신법을 완성하면 뭔가가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여전히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 결국엔 방법의 문제란 말인데.”

연우강은 고심했다.

그동안 짬짬이 진식에 대해 공부를 했다.

공부라고 해봐야 막장에게 듣는 게 전부고, 그 역시 별로 아는 게 없었지만 듣지 않는 것 보다는 나았다.

- 진식은 한 걸음 싸움이다.

막장이 내린 진식에 대한 정의였다.

한 걸음 차이로 생문과 사문이 나뉘고, 여러 명이 펼치는 검진 또한 진식의 중추가 되는 한 명을 공략해야만 파훼가 가능하다고 하였다.

더불어 진식이 감당할 수 없는 강력한 힘, 즉 엄청난 무공이 있으면 진식을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다고도 했다.

“ 진식을 없앨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진 놈이 돌았나? 진식이나 찾고 자빠졌게.”

연우강은 전면을 응시했다.

강력한 무공이 아니더라도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물건을 대주는 금보산에게 화약을 주문하면 될 테다.

물론 판매 금지 품목이라 구하기가 쉽진 않겠지만 돈이면 못할 것도 없다.

“ 화약은 그야말로 최후의 수단이니까 우선은 제쳐두고, 지금은 저놈에게 집중해야지.”

연우강은 좌우 석상을 번갈아 보았다.

며칠 전 석상과 석상 사이를 재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각 석상 사이는 정확하게 일장 거리였다.

조잡하게 만들어졌다고 하였던 삼뇌천자 나추옹의 말이 틀렸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어설펐던 건 석상의 발을 숨기기 위해 일부러 그런 것이었다.

“ 일천 걸음이고, 오백 장이니까...... 혹시?”

지금까지는 신법을 두 번 펼쳐서 석상 주이를 주파해 나갔다. 그렇게 할 게 아니라 단 한 번에 주파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퍼뜩 머리를 스쳤다.

석상 사이의 거리가 일 장이니 반 장씩 더 나아간다면 정확하게 일천 걸음에 통과할 수 있다.

문제는 한 걸음에 반 장 거리를 이동하면서 정확한 동작을 구사하기 위해서는 내공의 팔 할 이상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데에 있었다.

“ 낮에는 불가능하단 말인데...”

연우강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은 간신히 석상을 구분할 정도로 어둠에 잠겨 있었다. 삼백 년 전부터 폐허로 버려져 똥지게 말고는 아무도 오지 않는 장소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무공을 드러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잠능폐혈대법을 해제한 연우강은 천리지청술을 펼쳐,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주변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감지되지 않았다.

“ 이번엔 제발 좀 나와라.”

파앗!

연우강의 신형이 지면을 박차고 튀어나갔다.

우르릉!

단전에서 우렛소리가 흘러나오는 듯한 착각이 들 ㅈ어도로 흑풍이 맹렬하게 반응했다.

연우강은 빠르게 석상들을 스치고 지나갔다.

“ 이거, 참!”

나아가던 연우강의 얼굴이 곤혹스럽게 일그러졌다.

분관과 지게를 연결하는 줄을 잡은 양손이 영 거슬린 탓이다. 느릿하게 움직일 때는 어색하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는데 빠른 속도로 나아가자 자꾸만 손을 휘둘러야 한다는 생각이 강박관념처럼 뇌리 속으로 잠식해 들어왔다. 비단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흑풍 또한 오른손을 타고 들어가며 손을 뻗어낼 것을 강요하고 있다.

무공 지식이 짧다고 해도 그 의미를 모를 리가 없었다. 다리의 움직임에 따라 자연스럽게 요구되는 팔 동작 또한 신법의 한 가지였던 것이다.

“ 참아, 자식아!”

하지만 연우강은 똥지게 줄을 잡고 있는 손을 풀지 않았다. 줄을 놓으면 분관이 흔들릴 뿐 아니라 양손까지 흔들어대면 정말로 무공을 익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했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더불어 진식을 뚫는 데 굳이 손동작까지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연우강은 버럭 고함을 내지르며 신법을 펼쳤다.

어느새 석상 군 끝짜락이 눈에 들어왔다.

석상 끝자락에서 절벽까지 거리는 십 장, 그 절벽을 왼편으로 우회하여 똥지게 길이 나 있고, 지금까지는 마지막 석상을 지나치면서 속도를 줄이곤 했다.

“ 이번엔 그냥 간다!”

연우강은 강하게 지면을 밟았다.

우르릉!

또다시 단전에서 우렛소리가 터녀 나오고 그의 신형은 마지막 석상을 지나쳐 절벽으로 내달렸다.

절벽이 가까워지면서 더럭 겁이 났다.

만일 진식이 설치돼 있다면 그대로 통과할 수 있겠지만 다른 장소와 마찬가지로 절벽이라면 끔찍한 사고가 발생할 것이다.

“ 석상을 믿고, 날 믿고, 내 신념을 믿는......”

퍼억!

“ 커억!”

내공을 일으킨 상태라고 하지만 멀쩡히 서 있는 절벽을 향해 돌진했으니 충격을 받지 않을 리가 없었다. 분관과 함께 돌진한 연우강은 처절한 비명과 함께 매미처럼 절벽에 붙었다가 아래로 뚝 떨어졌다.

눈앞에서 별이 번쩍이며 하늘이 빙글빙글 돌았다.

“ 부, 분관을 챙겨야....”

연우강은 떨어지면서 분관의 줄을 잡았다.

자칫 잘못 떨어지면 분관에 가득 들어 있는 오물을 뒤집어 쓸 판이었다.

척!

간신히 바닥으로 내려선 그는 비틀대면서도 분관을 바로 놓았다. 그러고는 그 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 젠장!”

욕설이 비어져 나왔다. 문득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공연한 일에 말려들어서는.”

몸을 일으킨 연우강은 조금 전 부딪쳤던 절벽을 보았다. 지상에서 일 장 높이의 그곳엔 분관이 부딪친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갑자기 몸이 부르르 떨렸다.

분관 자국이 저렇게 날 정도면 몸이 어떻게 됐을지 굳이 확인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절벽을 노려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 하지만 넌 실수한 거야. 자식아!”

연우강은 절벽을 향해 삿대질을 했다.

“ 난! 다른 놈도 아니고 개독새라고. 개독새는 말이다, 한 번 물고 늘어지면 절대 놓지 않고, 둘 중 하나가 뒈질 때까지 끝장을 보는 놈을 말해. 오늘은 일단 후퇴하지만 다음엔 죽었어, 자식아.”

연우강은 똥지게를 지고 자리를 떴다.

“ 응?”

막 절벽을 돌아가던 차에 깜짝 놀라 멈춰섰다. 조금 전 자리를 떴던 절벽 근처에서 인기척이 감지된 것이었다.

‘ 군대 물이 거의 빠진 건가?’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주변을 살핀다고 살폈는데, 놓친 게 있었던 모양이었다. 군에 있었을 때 같으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 안 되면......?”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맺혔다.

자고로 가장 깨끗한 일 처리는 살인멸구다. 여차하면 놈을 묻어버리면 그만일 터였다. 한편 구석으로 몸을 연우강은 천리지청술을 펼쳐 절벽 아래쪽으로 나타난 자의 동태를 살폈다.

연우강에게 기척을 들킨 자는 다름 아닌 유재풍이었다. 그가 연우강이 천리지청술을 펼쳤을 때 들키지 않았던 이유는, 처음부터 석상 군 끝자락에 몸을 숨겼기 때문이었다.

연우강으로선 운이 없었지만 유재풍은 좋은 정보를 건진 셈이었다.

“ 칠보귀둔필사를 익히고 있다고 하더니...”

유재풍은 절벽으로 다가갔다. 아래쪽에는 절벽에서 떨어져 나간 돌 부스러기가 떨어져 있었다.

유재풍은 고개를 갸웃했다.

석상 군을 지나쳐 달려가던 놈이 미친놈처럼 절벽을 향해 돌진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신법을 익히는 자가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하는 경우는 완전하게 터득하지 못했을 때밖에 없다.

“ 아니면 외공이라도 시작한 건가?”

유재풍은 비릿하게 웃었다.

신법에 외공이 더해지면 그럴싸한 구색이 갖춰지겠지만 그렇다고 지금껏 주시해왔던 다른 잠룡과 비슷한 경지로 올라간다는 것은 꿈일 뿐이다.

“ 어쨌든 보고 거리는 건졌으니까.”

구색이 갖춰진 보고서가 나올 수 있을 것 같아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유재풍은 기쁜 마음으로 자리를 떴다.

“ 영감들이 이 분관을 통해 내게 가르친 무공이 칠보귀둔필사인 모양이네. 외공이란 말 때문에 넌 목숨을 건졌다.”

나직이 중얼거리던 연우강은 유재풍이 사라진 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만일 천안원 밀정이 무공을 익히고 있다는 쪽으로 생각을 정리했다면 곧바로 없애버릴 참이었다. 그런데 녀석이 입에서 외공이란 말이 흘러나왔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외공을 익히는 것으로 나가는 게 낫다고 판단을 내렸다.

더불어 전에 천옥에서 고문을 당할 때 외공을 익혔다는 말이 나왔고 우담보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굳이 녀석을 죽여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

“ 이젠 맘 놓고 박치기를 해도 되겠네.”

연우강은 싱긋 웃으며 자리를 떴다.

그 후로도 연우강의 도전은 쉬지 않고 이어졌다.

남들이 보면 일없는 놈이라고 비웃었을 테지만 실제로 그는 똥지게를 지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그나마도 가격을 서른 냥으로 올리고, 주문이 들어올 때만 작업을 한다는 공문이 내려가자 일감도 별로 들어오지 않았다. 어쩌다 들어오는 일감도 기연을 찾아 헤매는 막장의 차지가 되고 보니 연우강은 검지곡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검지곡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제는 일천독행신으로 확신하게 된 신법은 더욱 절정을 향해 치달았다. 문제는, 일천독행신을 완성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여전히 ㅈ러벽에 박치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오늘도 도합 열 번에 걸쳐 절벽에 몸을 박아 넣은 연우강은 실망한 얼굴로 집으로 향했다.

“ 연우강!”

막 막장의 집 앞을 지나쳐 가는데 안쪽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 왜?”

“ 이거 받아라.”

담 너머에서 책자 하나가 휙 날아왔다.

“ 뭐냐, 이건?”

“ 무림 삼대 외공 주으이 하나인 흑철마신이다.”

“ 이걸 왜 날 주는데?”

“ 인마, 외공 익힐 것 같으면 이 형님에게 먼저 상의를 해야지. 혼자 익히는 녀석이 어딨냐?”

“ 내가 외공을 익힌다고?”

“ 그럼 외공을 익히지 않으면 그 얼굴은 뭐냐?”

막장은 겸연쩍은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거의 매일 녀석이 검지곡으로 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처음엔 녀석의 말처럼 검지곡의 비밀을 얻기 위해 가는 걸로 믿었다. 그런데 녀석은 처참한 몰골로 돌아오곤 했다. 그런 녀석을 보는 순간 외공을 익히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 넌 다리 혈도가 다른 사람에 비해 비교적 발달해 있으니까, 외공을 익히면 고수까지는 힘들겠지만, 네 몸 하나는 지킬 수 있을 거다.”

“ 내가 다리 혈도가 뚫려 잇다는 사실은 어떻게 알았는데?”

“ 네가 칠보귀둔필사라는 희대의 신법을 익히고 있다는 사실은 물론이고, 단전에 반 갑자 정도의 내공이 축적돼 있다는 것도 안다. 인마.”

“ 칠보귀둔필사가 어떤 무공이지?”

검지곡에서 밀정이 했던 말을 막장이 또 들먹이자 문득 궁금해졌다.

“ 일곱보를 걸을 때 본인의 능력 이상의 힘을 뽑아낼 수 있는 신법이다. 넌 삼십 년의 공력을 가졌으니까 마지막 일곱 보를 디디는 순간 사십 년 정도의 공력을 활용할 수 있게 된다.”

“ 그러니까 무원 영감이 내게 그 무공을 전수해 주었다는 거냐?”

“ 그런 모양이다.”

“ 그 사실을 우담보가 알고 있다고?”

“ 그럼 모를 거라고 생각했냐?”

“ 모를 거라고 생각한 게 아니고 내가 몰랐어.”

“ 네가 몰랐다는 게 무슨 소리냐?”

“ 무원 영감이 내게 무공을 전수해 주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단 말이지, 인마.”

“ 정말 몰랐다고?”

“ 내 몸에 수작을 부린 건 알고 있었지만, 분관을 지고 갈 때 나오는 그 이상한 자세가 무공일 거라고는 생각 못 했지. 그런데 이런 걸 내게 줘도 되는 거냐?”  연우강은 흑철마신의 비급을 들어올렸다.

“ 넌 그것보다 더한 것도 줬잖아. 내가 외공을 익히는 걸 알았다러만 진작에 줬을 텐데, 미안하다.”

“ 알았다. 잘 쓰마.”

연우강은 고개를 끄덕이며 흑철마신을 갈무리했다.

몸을 돌린 연우강은 흡족하게 웃었다.

이제 흑철마신을 무원에게 던져주면 외공을 단련할 수 있는 약을 보약에 넣어줄 것이다.

“ 의심하는 놈이 미친 놈이지.”

연우강은 가벼운 마음으로 처소로 들어갔다.

*********

천안원 원주 음양뇌 유선은 고민을 거듭했다. 잠룡들의 동태를 사찰하는 밀정들로부터 올라온 보고서 중에 연우강에 대한 것들이 언급되어 있었던 것이다.

고민의 이유는 율령궁이 처한 상황 때문이다. 황공망 조일백과 황룡대협 고우불 살해 사건에 대한 조사가 두 달 이상 진행됐지만 전혀 진척이 없었다.

사인이 암기라는 사실 말고는 조사가 지지부진하자 금황련과 구중련은 직접 범인을 잡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율령궁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그 일로 인해 궁주의 심기가 극도로 예민해져 있는데 굳이 연우강의 일까지 보고를 하여 기분을 상하게 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고서를 들고 궁주를 찾은 건, 야장을 담당하는 부하로부터 올라온 새로운 정보 때문이었다.

“ 여의전의 이승걸이 묵령철골액을 제조했답니다. 궁주님.”

바로 묵령철골액 때문에 보고를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묵령철골액은 수백 년 이상 된 노 바닥에 맺히는 태현화정이라는 불의 정수와, 묵린철갑망의 내단을 합쳐 만든 검은 액체를 말한다.

내공무인에게는 그다지 효과가 없지만 외공무인에게는 최고의 영약으로 치는 것이 바로 묵령철골액이었던 것이다.

“ 막장이 흑철마신을 준 모양이군.”

“ 그렇습니다.”

“ 묵령철골액은 연우강을 위해 만들었고?”

우담보는 유선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 이미 복용했다고 들었습니다.”

“ 묵령철골액을 복용했을 때 효과는 어느 정돈가?”

“ 묵령철골액을 복용하고 흑철마신을 익히면 금강신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 도검 불침이란 말인가?”

“ 그렇습니다. 무당파의 면장 같은 격공장이 아니면 외부에서는 깨트릴 수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 일반적인 무인들은 그렇겠지. 하지만 잠룡들은 대부분 금강신을 깨트릴 수 있는 수준이네.”

격공장은 겉모습은 그대로 두고 내부를 파괴하는 상승 무공이다. 외공 무인이 오를 수 있는 최고 경지라는 금강신을 이루면 일반 무인의 도검은 얼마든지 막아낼 수 있다. 하지만 무당파의 면장 같은 상승 절기를 만나면 허무할 정도로 무참히 깨지고 만다.

외공 무인 중에서 초극 고수가 나오지 못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결국 흑철마신을 익힌다고 해도 연우강은 초극 고수 반열에 절대 오를 수가 없다.

“ 그대로 둬도 상관없습니까?”

“ 녀석이 무공을 익히는 건 오히려 바라는 바였네. 유 원주. 녀석이 금강신이 되든 금강불괴지신이 되든 우선 그대로 두게.”

“ 천옥에서 죄수 오십여 명을 살해한 놈입니다. 궁주님.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유선은 강경한 어조로 말했다.

죄수들의 말에 의하면 놈은 근접박투에 있어서는 신의 경지에 올랐다고 하였다. 그런 자가 흑철마신 같은 외공까지 수습한다면 그야말로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 될 터였다.

연우강 또한 잠룡이고 무공을 익히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지만, 정보를 다뤘던 오랜 육감이 놈에게 무공을 익히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보내오고 있다.

유선이 이렇듯 강력하게 나가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 좋네. 유 원주. 자네에게는 말해 주겠네.”

유선이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우담보는 엷게 미소를 지었다.

“ 경청하겠습니다.”

“ 자네도 대충 짐작은 하고 있겠지만 벌에서는 상단을 창설하기로 했네. 위치는 궐이네.”

“ 궐이란 말입니까?”

유선은 깜짝 놀랐다.

궐 수준이라면 천상천 아리에 있는, 야궐, 황궐, 무궐과 더불어 최고 위치이기 때문이었다.

“ 그렇다네. 그 궐을 창설하는 데 중추가 될 녀석이 바로 연우강이네.”

“ 중추라면 그를 궐주로 삼는단 말입니까?”

“ 금릉 연씨 상단을 완전하게 흡수 병합할 때까지만 허수아비 궐주로 세울 참이네.”

“ 그럼 계속 잡아둬야 하겠군요.”

“ 그는 이미 십지십룡의 한 사람으로 내정돼 있네.”

십지십룡은 잠룡들 중 가장 뛰어난 자 열 명을 말한다. 과거 잠룡들이 백 명이었을 때는 두 명만 뽑았는데 이번엔 다섯 배의 잠룡이 들어오는 바람에 열 명으로 늘어난 것이었다.

“ 십지십룡은 잠룡비무를 통해 뽑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다른 잠룡들이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

“ 지휘관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부하들을 얼마나 잘 통솔하느냐에 달린 거지. 실력의 고하가 아니네.”

“ 그렇다고 해도.....”

“ 우리 대야벌은 무공을 전혀 익히지 못한 분을 벌주로 모신 적이 있네. 놈이 십지십룡의 일인이 된다고 해서 흠이 될 건 없다네. 더구나 북로정군에서 정천호까지 지낸 놈이 아닌가. 오히려 다른 잠룡들보다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셈이네.”

“ 잠룡들은 평민 출신이 대부분인 군호완 다릅니다. 그들은 한 지역을 호령하는 가문의 자식들입니다. 무공도 변변치 않은 연우강의 말을 들을 리가 없습니다.”

“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만일 잠룡들이 놈을 진정으로 따른다면 난 내 손으로 땅을 파서 그 안으로 들어가고 말 거네.”

“ 쿡! 심려 놓으십시오. 궁주님. 설사 그놈이 흑철마신을 극성으로 익힌다고 해도 내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잠룡들은 상관으로 인정조차 하지 않을 겁니다.”

유선은 빙그레 웃었다.

군자무림행이라는 별호로 불리는 궁주가 직접 땅을 파서 그 안으로 들어간다고 할 정도면 연우강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짐작이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고 볼 수밖에 없는 건 일이 우선이기 때문이었다.

“ 난 그놈에 외공이 아니ㅏ라 내공을 익혔으면 좋겠네. 원주.”

결국 우담보는 이를 부드득 갈았다.

“ 접니다. 궁주님.”

바로 그때 밖에서 시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무슨 일이냐?”

“ 야장에서 부고가 왔습니다.”

“ 부고?”

우담보는 의아한 얼굴로 문을 열고 들어온 시비를 보았다.

“ 여기 있습니다.”

우담보 앞으로 다가온 시비는 공손하게 첩지를 내밀었다. 첩지에는 율령궁 궁주 우담보 전이라고 씌어 있었다.

우담보는 첩지를 펼쳤다.

“ 응?”

그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 누가 죽었는데 그러십니까?”

“ 여의전에 내 이름으로 조의금을 보내도록 하게. 조문은 총관을 시켜서 하고.”

“ 이승걸입니까?”

“ 그렇다네.”

***********

고령에다 고통 없이 숨을 거두면 장례식장은 왁자지껄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여의전의 분위기는 달랐다. 빈소로 들어오는 이들은 침통한 얼굴을 하거나 눈물을 흘리는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무원이 야장의 장주라면, 야장인들에게 약을 지어주곤 했던 이승걸은 정신적인 지주였던 탓이었다.

“ 고생이 많네, 연공자.”

조문을 온 문상객은 연우강의 손을 잡고 애도의 뜻을 표했다.

“ 아! 네,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연우강은 어색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문상객이 묵념을 올리기 위해 영전 앞으로 가자 연우강은 고개를 돌려 무원을 노려보았다. 그가 상복을 걸치고 상주 노릇을 하게 된 것은 무원의 강요에 의해서였다.

얼결에 상주를 맡게 된 연우강은 벌써 수백 번 이상 문상객의 손을 잡고 고개를 숙여야 했다.

어쩌면 손에 못이 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연우강이 상주를 맡게 되자 손님 접대는 당연히 막장 몫이었다. 장례를 치르는 게 아니라 두 사람에게는 장례 의식을 배우는 자리라고 할 수 있었다.

이석오면이니 삼석사면이니 하는 말도 처음 알았고 장례 절차도 대충 알게 됐다.

그런 면에서 보면 굳이 기분 나쁘게 여길 일만은 아니었다.

아무튼 얼결에 상주가 돼 장례를 치른 연우강은 삼 일째 되는 날 이승걸의 시신을 서천문 밖 야산에 위치한 야장인들의 공동묘지에 매장을 했다.

매장이 끝나고 발인식에 왔던 이들은 연우강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남기고 하나둘 떠났다.

대부분이 떠나고 이승걸의 무덤 옆에 남은 자들은 연우강과 막장, 무원, 창노, 향노, 그리고 연우강이 처음 보는 다섯 명을 합쳐 전부 열한 명이었다.

“ 굳이 나중에 날을 잡을 필요 없이 전부 모였으니까 소개를 시켜주마. 야장은 칠전으로 이루어져 있고, 총 인원수는 무인을 제외한 나머지 전부라고 보면 된다.”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무원이었다.

“ 정확한 인원 산출이 어렵단 말입니까?”

“ 그렇다. 워낙 힘든 일이다 보니 그만 두는 사람이 많아서 그렇다.”

“ 그럼 칠전이라면.....”

공연한 관심이라며 아차했지만 이미 말을 하고 난 후였다.

“ 안정전은 굳이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고, 대장간인 철장전, 그릇을 굽는 장인전, 옷을 만드는 복장전, 주루를 운영하는 취몽전, 농사를 짓는 천농전, 의원을 운영하는 여의전을 합쳐 칠전이라고 한다. 먼저 이쪽은 칠장전의 전주인 철노다.”

무원은 턱수염이 무성하게 자란 노인을 가리켰다.

“ 처음 뵙소. 연우강이오.”

연우강은 약간 거만한 투로 목례를 했다.

“ 하하하! 반갑다. 똥지게. 무원이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기에 어떤 녀석인지 궁금했다. 악수나 한번 하자.”

철노라고 하였던 노인은 손을 내밀었다.

“ 내 몸 속엔 반 갑자의 내공이 있고, 다리 혈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혈도는 일반 양민과 다르지 않소. 그리고 무원 영감이 준 칠보귀둔필사를 완성했고, 얼마 전부터는 흑철마신을 연성 중이오. 연인 사이도 아닌데 굳이 손을 잡을 필요는 없을 것 같소이다.”

“ 응? 프! 하하하! 좋다. 녀석아. 난 네 녀석이 마음이 쏙 든다.”

철노는 호탕하게 웃었다.

“ 난 장인전의 도노다.”

철노에 이어 왜소한 늙은이가 자신을 소개했다.

“ 연우강이오.”

연우강은 도노를 보았다.

장인이어서 고집스럽게 보이는 건지, 아니면 고집스러워서 장인의 길을 가고 있는지는 알 길 없지만 도노의 얼굴엔 도자기라도 씌워 있는 것 같았다.

“ 난 복장전의 의노다.”

이번엔 화려한 화복을 걸친 뚱뚱한 노인이 자신을 소개했다. 연우가을 보는 그의 얼굴엔 후덕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 옷이 멋지오. 영감.”

연우강은 도노와 의노를 향해 연달아 웃어주었다.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는 그런 미소를 가진 노인네였다.

“ 난 취몽전의 주노다.”

“ 난 천농전의 농노다.”

곧이어 대야벌 내의 주루를 총괄하는 주노와 농사일을 총괄하는 농노의 소개가 이어졌다.

“ 연우강이오.”

연우강은 두 사람을 향해 가볍게 목례를 했다.

“ 넌 성격이 상당히 오만하구나.”

마치 아랫사람을 대하듯 하는 연우강의 인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도노가 톡 쏘아붙였다.

“ 과거에 비하면 엄청 많이 유순해진 거요, 영감.”

연우강은 피식 웃으며 무원을 보았다.

이제 인사도 끝났으니까 그만 돌아가는 게 어떠냐는 그런 얼굴이었다.

“ 술 한잔 하겠느냐?”

무원은 이숭걸의 무덤가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미리 술을 준비해 놓은 듯 이승걸의 무덤 옆에는 십여 개의 술병이 놓여 있었다.

“ 좋습니다.”

연우강은 무원 곁으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연우강에 이어 창노와 향노가 자리를 잡고 나머지도 일제히 무덤가로 앉았다.

“ 받아라.”

무원은 술병 하나를 연우강에게 던졌다.

“ 싸구려네.”

술병을 받아든 연우강은 얼굴을 찌푸렸다. 무원이 준 술은 술 중에서도 가장 ㅆ나 화주였던 것이다.

“ 이놈아, 우리 주제엔 화주도 과해.”

철노가 연우강을 보며 버럭 소리쳤다.

“ 쯧! 사고 방식이 그러니까 평생 대장간을 못 벗어나지.”

“ 내 사고방식이 어때서, 이놈아!”

“ 똥지게는 똥을 퍼먹고, 대장장이는 쇠를 처먹고, 그릇 쟁이는 유약을 처먹고, 옷쟁이는 먼지를 처먹고, 주정뱅이는 손님이 먹다 남긴 술이나 처먹고, 농사꾼은 땅을 파먹어야 한다는 패배의식에 절어 있으니까 평생 망치질이나 하며 산다는 거요, 영감.”

“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거냐?”

“ 직업은 돈을 버는 수단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면 되는 거요.”

“ 하나 푸는 데 두 냥 가지고 멋진 생활을 꿈꿀 수 있겠느냐?”

“ 공문이 내려갔는데 못 봤소?”

“ 공문?”

“ 서른 냥으로 올랐소.”

“ 서, 서른 냥이라고? 하나에?”

철노는 경악한 얼굴로 무원을 보았다.

“ 저 녀석이 한 일이라 난 모르네. 아무튼 하나 작업하는 데 서른 냥을 받고, 정해진 시간 외에 추가로 일을 하게 되면 세 배, 휴일에 하면 네 배를 받기로 했다네.”

“ 푸! 하하하! 누가 장사꾼 집안 출신 아니랄까봐, 장하다. 녀석아.”

철노는 크게 웃었다.

첫 만남에 불과하지만 물건이 들어왔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다른 이들 또한 철노와 같은 생각인 듯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 자! 대충 소개도 끝났고 성격 파악도 한 것 같으니까 이제 한잔하세.”

무원이 술병을 들어올리자 일행의 얼굴이 숙연해졌다. 일행은 일제히 무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친우여! 하지만.....”

무원은 목이 맨 듯 잠시 말을 끊었다.

“ 난 영원히 자넬 잊지 않을 거네. 그리고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될 거네. 친구여.”

급기야 무원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연우강은 의아한 얼굴로 무원을 보았다.

지난 이틀 동안 그는 한 번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손님을 맞을 때는 슬쩍 미소를 짓기까지 했다. 그런 그가 느닷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친인을 매장하고 나면 슬픔이 북받쳐 참을 수 없다고 하지만 지금 무원의 눈물은 친인을 보낸 자의 눈물 이상이었다.

“ 마시겠네, 친우여.”

무원은 술을 조금 따른 다음 곧바로 입으로 가져갔다. 단숨에 한 병을 비우고는 술병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일행을 보며 말을 이었다.

“ 이따 밤에 만나세.”

“ 알았네. 장주. 이따가 보세. 너도 다음에 보자꾸나.”

술병을 비운 철노 일행은 몸을 일으켜 자리를 떴다.

“ 심각한 이야기면 하지 않는 게 낫소. 영감. 난 대야벌에서 요구했던 삼 년을 채우면 무조건 이곳을 떠날 거요.”

연우강은 술병을 입으로 가져가며 나직이 말했다.

“ 오래 전에 승걸은 일생일대의 역작이라는 신단을 만들어냈다. 여의선천신단이라고 하는데 그걸 복용하면 선천지기와 유사한 내공을 얻을 수 있다고 하더구나. 그런데 여의선천신단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더불어 생사림으로부터 여의선천신단 비법을 팔라는 제의가 들어왔다.”

“ 거절했겠군요.”

연우강은 찔끔했다.

전에 천마삼경과 함께 발견했던 영약.

선천지기와 쉽게 융화된다고 여겼는데 그게 바로 이 약사가 만들어낸 여의선천신단이었던 것이다.

“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다시 만들어내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여의전의 약제로는 그걸 만들어낼 방법이 없었다.”

“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 우연히 생사림에서 풍천영수와 만년지극화령실을 입수했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 그들이 정보를 흘렸군요.”

“ 그건 나도 모른다. 하지만 승걸은 내게 그 말을 했고, 난 비법을 넘겨주라고 했다.”

“ 여의선천신단의 제조 비법과 영약을 바꾼 겁니까?”

“ 그렇다. 우린 여의선천신단보다는 풍천영수와 만년지극화령실이 더 필요했다.”

“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습니까?”

어느새 술병을 비운 연우강은 다른 술병을 집어들었다. 갑자기 심하게 갈증이 났다.

“ 나나 승걸은 살만큼 살았고, 목숨에 연연할 나이는 지났다.”

“ 목숨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겁니다. 어르신. 이 세상에서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 꿈이 없는 자는 죽은 거나 마찬가지다.”

“ ......!”

연우강은 말없이 무원을 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한동안 그렇게 무원의 눈을 쳐다보던 연우강은 이내 이승걸의 무덤으로 고개를 돌렸다.

“ 그럼 저 분은?”

연우강은 혼잣말처럼 말을 뱉었다.

“ 승걸은..... 살해당했다!”

무원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비어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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