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백수-29화 (29/232)

제7장 이차 잠룡대전

잠룡들의 삼 년 연공.

그 기간은 단순히 잠룡들에게 무공을 전수하여 대야벌 제자로 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삼 년 연공 기간은 잠룡을 배출한 가문이나 문파의 역량까지 보는 일종의 시험 기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여 잠룡쟁팰르 얻어 대야벌로 들어오는 과정을 일차 잠룡대전이라고 하고, 대야벌 안에서 벌어지는 과정을 이차 잠룡대전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차 잠룡대전에서는 직접적인 전투는 없다.

다만 암살만 있을 뿐이다. 다른 잠룡들에 비해 월등히 앞서가는 잠룡들을 제거하여 경쟁자를 줄이는 과정을 말하기 때문에 이차 잠룡대전은 암살대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더불어 암살대전 중에 본인들의 정체가 드러나서는 안 되는 것은 불문율이다. 만일 동료 잠룡을 없앤 사실이 밝혀지게 되면 그 잠룡은 바로 퇴소 조치 당하고, 그가 속한 가문이나 문파는 굳이 대야벌에서 손을 쓰지 않아도, 잠룡이 죽임을 당한 문파나 가문에 의해 멸문지화를 당하게 된다.

공공연한 살인은 불가능하지만 암살은 허락되는 기간.

암살대전은 오히려 일차 잠룡대전 때보다 더 힘든 과정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잠룡들이 속한 각 가문이나 문파는 외부에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직접적인 지원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그들은 간접적으로 지원할 방법을 찾게 되는데 그때 필요한 곳이 바로 대야벌의 야장과 각 세력이다. 야장이 인원을 뽑을 때 인부로 들어오거나, 삼궐칠련십림에 잠룡을 보호해 달라고 의뢰를 하게 된다.

물론 의뢰에는 공짜가 없다.

수천 냥부터 시작하여 수백 만 냥까지 거래가 되고 대야벌의 각 세력은 비자금을 만드는 절호의 기회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잠룡 보호에 실패하면 받았던 돈을 토해내야 함은 물론이고, 돈보다 더 큰 명예를 잃게 된다.

잠룡 개개인의 실력은 물론이고, 잠룡이 속한 가문의 영향력, 그리고 대야벌 각 세력이 지닌 힘을 동시에 평가하는 자리.

암살대전의 무서움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잠룡들 또한 여러 방법으로 암살대전에 대한 대비를 하는 데 파벌을 만들어 스스로를 보호하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아예 처음부터 실력을 철저히 감추는 자들이 있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잠룡 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자는 대야벌이란 거대한 생명체 안에서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청부

금액: 금 오만 냥.

기간: 육 개월.

대상: 금릉 연씨 세가 장남 연우강

양도욱은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제 일 년이 지났고, 몇몇은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많은 잠룡들의 실력이 드러나지 않은 상황이다.

앞으로 육 개월 정도는 관망해야 할 시기인데 강호에 있는 지부를 통해 살인 청부가 들어온 것이다.

그 대상 또한 뜻밖의 인물이었다.

연우강.

금릉 연씨 세가의 장남이라는 막강한 배경을 지니고 있고, 소문이 날 정도로 큰 사건을 치기는 했지만 한바탕 웃고 끝날 일일 뿐 두고두고 생각할 일은 아니었다.

더불어 그는 금릉 연씨 세가의 정식 상속자도 아니고, 무공을 익히지 않겠다면서 야장으로 들어가 똥지게를 지고 있다. 설사 삼 년 연공을 마친다고 해도 경계할 이유가 없는 자가 바로 연우강이다.

그런데 첫 번째 청부로 그가 들어온 것이다.

“ 자네 생각은 어떤가?”

양도욱은 건너편에 앉아 있는 사내를 보았다.

단아한 문사 차림을 하고 있는 그는 사월림의 군사로 뇌백 운자준이란 자였다.

“ 저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운자준 역시 양도욱과 다르지 않았다.

금 오만 냥이면 은으로 계산하면 백만 냥이라는 거금이다. 그런 돈을 주고 없애려는 자가 연우강이라는 사실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 더불어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벌에서 연우강을 은연중에 보호하고 있다는 겁니다. 림주님.”

“ 난 그 면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네. 뇌백.”

“ 무슨......”

“ 암살대전은 잠룡들보다는 대야벌을 구성하고 있는 각 세력들을 평가하는 자리라는 의의가 더 크네. 쉽게 말하면 잠룡들을 암살하고 보호하는 과정을 통해 서열이 나뉘게 된다는 거지. 예산을 담ㄷ아하는 조양궁은 차치하고라도 잠룡궁이나 율령궁 또한 평가에서 벗어날 수 없네. 난 이번 기회에 그들의 능력을 볼 참이네.”

“ 자칫 잘못하면 그들과 척을 질 수가 있습니다.”

“ 뇌백. 자네 대야벌에 온 지 얼마나 됐는가?”

“ 오 년쨉니다.”

“ 앞으로 오 년만 더 있으면 내 말을 이해하게 될 거네.”

“ 대야벌이 곧 무림이란 말 말입니까?”

“ 그렇네. 뇌백. 대야벌을 일컬어 무림이라고 한 이유는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나타나지 않을 엄청난 세력이란 것 때문만은 아니네. 강호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이곳을 무림이라고 부르네.”

“ 하지만 연우강은....”

“ 연우강이 암살당해 죽는다면 그건 우리 사월림 책임이 아니라 연우강을 보호하지 못한 율령궁이나 잠룡궁 책임이네. 그리고 이번 일에 대해서는 사전에 운을 띄워 놓겠네.”

“ 회의석상에서 공식적으로 언급하시겠다는 말입니까?”

“ 일단 연우강은 접어두고 담대무궁에 대한 청부가 들어왔을 땐 어떻게 하느냐고 물을 참이네.”

“ 특혜를 줄 수는 없으니까 다른 잠룡들과 똑같이 취급하라고 할 수밖에 없겠군요.”

“ 그렇지. 벌주의 자식이라고 해서 특혜를 준다면 다른 세력의 지지를 받고 들어온 자들 또한 특혜를 줘야 하고, 그렇게 되면 암살대전 자체가 의미를 잃게 되지. 그것뿐만이 아니네.”

“ 다른 이유가 또 있습니까?”

“ 범천담대세가는 자타가 공인하는 천하제일세가네. 천하제일세가라는 명성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는 절대 특혜를 줄 수 없네. 벌주는 어떤 잠룡에게도 특혜를 주지 말라고 선언할 거네.”

“ 그렇군요. 그럼 누굴 보낼까요?”

운자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확실하게 이해가 된 건 아니지만 림주의 말이 그렇다니 따를 수밖에 없을 터였다.

“ 일잔풍이 놈에게 죽었다고 했던가?”

“ 그렇습니다.”

“ 우영을 보내도록 하게. 늘 하던 대로 증거를 절대 남겨선 안 된다는 걸 주지시키게.”

양도욱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물렸다.

칼로 그어놓은 듯한 작은 눈과 뱀처럼 차가운 눈동자를 가진 이자는 십림 중 ‘살수들의 성역’이라고 부르는 사월림의 림주 양도욱이었다.

******

“ 분명 뭔가 있는데.”

우담보는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가 이처럼 생각에 잠긴 이유는 금일 회의 때문이다. 사월림의 림주 양도욱이 느닷없이 암살대전이 시작되기 전에 미리 확답을 듣고 싶다면서 담대무궁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담대무궁에 대한 청부가 들어왔을 때 어떻게 할 거냐는 물음이었다.

벌주는 당연히 다른 잠룡들과 차별하지 말라고 하였다. 특혜가 아니라 차별이라는 말을 썼다는 것은 기분이 상당히 언짢았다는 의미다.

문제는 벌주의 기분이 아니라 양도욱이 하필이면 담대무궁을 들먹였냐는 것이다. 뭔가 노림수가 있는 게 분명한데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 끄응!”

우담보는 얼굴을 찡그렸다.

“ 나요, 우 궁주.”

그때 문이 열리고 범일승과 혁세군이 안으로 들어왔다.

“ 어서 오시오.”

우담보는 얼굴을 풀며 두 사람을 맞았다.

“ 무슨 고민이라도 있는 거요?”

우담보의 얼굴을 살피던 범일승이 물었다.

“ 고민은 무슨.. 양동구이 담대무궁을 들먹인 사실이 마음에 걸려서 그렇소이다.”

“ 궁주도 그 생각을 한 모양이구려.”

“ 혁 궁주도?”

“ 그렇소. 우 궁주. 지금까지 관례로 보았을 때 암살대전은 승천비고와 천무비고에 들어갔다 나온 다음부터 시작됐소. 앞으로도 유 개월이나 남았는데 양도욱이 벌써 그 일을 들고 나왔다는 건 이미 시작됐다는 말일 수도 있소.”

“ 벌써 청부가 들어왔다고 생각하는 거요?”

“ 그것도 아주 까다로운 자에 대한 청부가 들어온 것 같소.”

혁세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 정말로 담대무궁이라고 생각하시오?”

“ 그것도 배제할 수는 없소. 하지만 담대무궁에 대한 청부를 넣으려면 이차 잠룡대전이 어느 정도 무르익어야 하오. 지금은 아니오.”

“ 그럼?”

우담보는 답답한 얼굴로 혁세군과 범일승을 보았다.

“ 지금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자들 중 한 명이기 쉽소. 신분 또한 담대무궁과 비슷한 위치에 있어야 하고.”

“ 전에 천안원에서 파악했던 아홉 명은 전부 후보에 들어가오. 혁 궁주.”

“ 그래서 고민 아니오. 그런 자들이라면 굳이 양도욱이 담대무궁을 언급할 이유가 없을 것 같은데.”

“ 어쩌면 미리 선수를 쳤을 수도 있소. 혁 궁주.”

듣고 있던 범일승이 끼어들었다.

“ 선수라면 뭘 말하는 거요?”

“ 암살대전이 시작됐다는 일종의 경고 같은 것 말이오.”

“ 그럴 수도 있겠군요.”

혁세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여전히 뭔가 미진했다.

“ 일단은 사람들의 동태를 지켜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소.”

우담보는 이 정도로 정리를 했다.

안개가 낀 것처럼 모호한 상황에서 뭔가를 예측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일이 터지면 그때 판단을 하는 수밖에 없을 터였다.

세 사람으로서는 연우강에 대한 청부가 들어왔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연우강은 무공을 익히지 않겠다며 암정숙을 택했고, 대야벌의 체면을 세워주는 시간인 삼 년이 지나면 밖으로 나가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그런 그를 없애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건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우담보 일행 또한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 암살대전이라고?”

연우강은 의아한 얼굴로 막장을 보았다.

“ 내가 전에 그랬잖아. 이차 잠룡대전을 암살대전이라고 부르고 교육 기간 동안에 일어난다고.”

“ 쉽게 말하는 잘 나가는 놈을 없앨 기회를 준다는 거냐?”

“ 삼 년 연공이 끝났을 때 우수한 성적을 받아 십룡에 오르게 되면 출세가 보장되거든. 나중에 세월이 지나면 벌주 자리에도 도전해 볼 수도 있고.”

“ 그러니까 십룡에 오르기 위해서는 지금 잘나가고 있는 놈들을 전부 없애야 한다는 말?”

“ 그렇지.”

“ 없애는 일은 누가 하는데?”

“ 청부는 주로 사월림이 받고, 직접 처리하고 싶은 자들은 야장에서 인원을 뽑을 때 대야벌 안으로 들어오게 돼.”

“ 그럼 잠룡들이 당하고만 있진 않을 테고... 대야벌의 각 세력들과 손을 잡게 되는 건가?”

“ 그렇지. 잠룡들이 속한 가문이나 문파는 신변 보호를 요청하게 돼.”

“ 그 대가는 돈으로 치르고?”

“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

“ 제자라고 받아서는 그놈들을 통해 돈을 벌고, 다시 대야벌 무인으로 중용하고....”

“ 좀 야비한 짓이지?”

“ 아니.”

“ 아니라고?”

“ 응! 아주 기발해. 이건 일석이조 정도가 아니야. 일석사조, 오조도 되는 엄청난 방법이야.”

“ 무슨 소리야?”

“ 생각해 봐. 막장. 대야벌에서 한 거라고는 잠룡쟁패를 만들어 강호에 던진 것밖에 없잖아.”

“ 그래서?”

“ 그 잠룡쟁패를 얻기 위해 강호 세가들은 개떼들처럼 싸우고 결국엔 승리의 미소를 짓고 대야벌로 들어와. 그런 그들에게 대야벌은 무공 비급 몇 개 던져 줘. 그 비급도 지들이 만든 것도 아니고, 전에 있던 거잖아. 잠룡들은 감격한 얼굴로 그 비급을 익히기 시작하고,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면 그때부터는 암살대전을 시작하지. 이번엔 잠룡쟁패를 만드는 수고조차 하지 않아. 잠룡들이 속한 가문이나 문파에서 돈을 주고 청부를 넣고, 돈을 주고 신변 보호를 요청한단 말이야. 결국 돈이란 돈은 전부 대야벌로 쏟아져 들어오게 되지.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이는 데 대야벌에선 얼마를 썼을 것 같냐? 황금으로 된 것도 아니고 쇠로 만든 잠룡쟁패 오백한 개. 그게 전부야. 임마. 가만,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네. 먼저 일 나가라. 난 영감들 좀 만나고 갈게.”

연우강은 그의 집으로 뛰어갔다.

“ 욱 영감, 나 좀 봅시다.”

안으로 들어선 연우강은 욱일승을 불렀다.

“ 왜 그런가?”

정원수를 손질하고 있던 욱일승은 의아한 얼굴로 연우강을 따라 들어왔다.

“ 두작군 그 양반들 아직도 밖에 있소?”

“ 일거릴르 ㅊ자아보고 있다고 들었네.”

“ 전부 들어오라고 하시오.”

“ 그들을 써먹을 곳이 있던가?”

“ 암살대전이 시작됐다고 하오.”

“ 암살대전하고 그들이 무슨 상관인가?”

“ 호위 일을 할 건수가 생길 것 같소!”

“ 그들은......”

욱일승은 말끝을 흐렸다.

“ 이거면 될 거요.”

연우강은 궤짝을 열어 얇은 책자를 꺼냈다.

욱일승 일행에게 주기 위해 두연화로부터 얻어놓은 환영축골공의 구결이 적힌 비급이었다.

“ 이건 환영축골공 아닌가?”

“ 영감들 주려고 얻은 건데, 굳이 필요할 것 같지가 않아서 처박아 둔 거요. 이걸 익히면 그들은 얼굴을 감추고 들어올 수 있을 것 같은데, 영감 생각은 어떻소?”

“ 이것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네.”

“ 한 달 안에 전부 들어오라고 하시오. 내가 연락하면 움직일 수 있도록 대기하라고 하고.”

“ 알았네. 당장 연락을 보내도록 하겠네.”

욱일승은 활짝 웃었다.

아는 곳이라고는 대야벌밖에 없고, 설사 다른 곳으로 간다고 해도 죄수 전력 때문에 무공으로 밥을 먹고 살 수도 없다. 그런 그들이 몸을 의탁할 곳이 생겨 여간 기쁘지 않았다.

“ 그건 그렇고...‘

욱일승은 심각한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 꼬리가 달린 걸 말하는 겁니까?”

“ 그렇다네. 상당한 자들이 자넬 따르고 있는 것 같던데.”

“ 누군지 알아냈습니까?”

“ 그자들이 쫓아다니는 사람은 내가 아니고 자네네.”

“ 열 냥이나 받으면 그 정도는 덤으로 해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무공은 뒀다 국 끓여 먹을 참입니까? 에이! 도무지 쓸모가 없어요.”

연우강은 얼굴을 찌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허! 저 녀석.”

욱일승은 황당한 얼굴로 밖으로 나가는 연우강을 보았다. 가급적이면 무공을 익힌 티를 내지 말라고 했던 놈이 바로 제 녀석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는 뒤따르는 자들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했다고 인상을 쓰고 있다.

“ 적당히 하자는 겁니다. 남들에게 들키지 않고도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습니까?”

“ 클! 알았네. 다음부터는 그렇게 하도록 함세.”

욱일승은 피식 웃었다.

비급을 챙긴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연우강은 이미 분관을 챙겨들고 나간 후였다.

“ 저 녀석 뭐라고 하는 거냐?”

부엌 청소를 하고 있던 수천월이 다가오며 물었다.

“ 밥값 좀 제대로 하라고 하더라.”

“ 밥 값?”

“ 따르고 있는 자들이 있다는 걸 알았으면 정체를 밝히지 않고 뭐 했냐며 책망을 들었다.”

“ 책망이라고?”

갈인효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다가왔다.

“ 그것뿐만이 아니다. 이걸 내게 주더라.”

욱일승은 품속에 넣었던 환영축골공을 꺼내 두 사람에게 보여주었다.

“ 이건 얼굴과 체형을 바꾸는 무공 아니냐?”

“ 암살대전이 시작됐다면서 두작구 그 친구들에게 주라고 하더군.”

“ 두작군 그 친구들을 이용해 돈을 벌 참이구나. 하여간 돈 냄새 하나는 귀신처럼 맡는 녀석이다.”

수천월이 빙그레 웃었다.

“ 그게 다가 아닌 것 같다. 천월.”

“ 뭔가 다른 낌새라도 느낀 거냐?”

“ 글쎄 워낙 속을 보이지 않는 녀석이라 알 수는 없지만, 이번 건은 단순히 돈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 제발 좀 그랬으면 좋겠다. 녀석이 무림에 뜻을 두면 십 년 안에 벌주로 만들어줄 자신이 있는데...”

수천월은 아쉬운 얼굴로 입맛을 다셨다.

“ 뜻이야 두게 만들면 되지 뭐가 어렵다고 그러냐?”

욱일승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 무슨 수로?”

“ 세상을 산다는 게 어디 마음먹은 대로 된다더냐. 제 녀석이 아무리 황금백수가 꿈이니 어쩌니 해도 주변에서 가만 두지 않는데 어떻게 하겠냐. 따라가는 수밖에 없지. 그보단 그 아이는 네 후예가 맞느냐?”

욱일승은 화제를 돌렸다.

“ 사십 년 동안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인데 그 아이가 내 혈육인지 어떻게 알겠냐. 우선은 먼발치에서 지켜보는 수밖에 지금으로선 방법이 없다.”

“ 그럼 인효, 넌?”

이번엔 갈인효를 보았다.

“ 나도 마찬가지다. 지금 림주를 맡고 있는 녀석은 물론이고 수뇌부들도 아는 자가 아무도 없다.”

“ 다들 같구나.”

욱일승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자신이 련주로 있던 철무련, 갈인효가 있던 만독림은 이미 돌아갈 수 없는 곳으로 변하고 말았다. 어쩌면 작은 인연의 끝자락이라도 남아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또한 찾아갈 수 없다.

사십 년, 너무나 오랜 세월이 흘러버린 것이다.

“ 너무 걱정 마라. 일승. 진인사대천명이라고 하지 않았냐. 우선 바람만 잡아주면 된다. 무원이나 창노 그 친구들도 연우강 그 녀석에게 뭔가 바라는 게 있는 것 같으니까 우선은 지켜보도록 하자.”

수천월은 욱일승의 어깨를 툭 쳤다.

*********

연우강이 두작군 일행을 대야벌 안으로 끌어들이려고 한 이유는 비단 돈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가 그들을 안으로 들이 결심을 한 건 살해당했다고 하였던 이승걸 때문인지도 몰랐다. 더불어 얼마 전 알게 됐던 창노의 신분.

과거를 바로잡기 위해 온 몸을 불사르고 있는 두 노인네가 불쌍해 두작군 일행을 대야벌로 끌어들일 생각을 하게 됐다. 그들로 인해 무공을 익힌 사실이 드러날지도 모르지만 설사 그렇게 된다고 해도 감수할 참이었다.

연우강은 분뇨 집하장에 분관을 내려놓았다.

지금 그가 작업을 하는 장소는 생사람이었다.

생사림에서 이곳까지는 거의 백 리 길. 일부러 느리게 작업을 한 탓에, 하나를 채 마무리짓지도 못했는데 어느새 어둠이 밀려오고 있었다.

“ 사실 좀 더러워서 그렇지. 똥지게만큼 확실한 직업도 없어.”

누구에게 하는 것처럼 연우강은 혼자 주절대며 자리를 옮겼다.

“ 사람이란 족속들은 열에 아흡은 일 년 삼백유십오 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싸대니까 일감이 마를 일이 없잖아. 경쟁자도 없는 독점이니까 가격도 마음대로 올릴 수 있고.”

연우강은 중얼거리며 계속해서 걸었다.

“ 더불어 이렇게 산을 헤매다 보면 간혹 영약을 발견하곤 하지. 그 맛도 쏠쏠치 않아. 어쩌면 난 영원히 대야벌을 떠니지 못할지도 몰라. 그냥 가기에는 너무 좋은 곳이거든.”

어둠 속을 향해 걸어가던 연우강은 마치 뭔가를 찾는 것처럼 주변을 둘러보았다.

“ 흐흐흐! 이 근처에 만년석균이 군집을 이루며 자라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모를 거다.”

낄낄대는 연우강의 걸음이 빨라졌다.

군행철을 비롯한 네 명이 연우강을 따르기 시작한 건 보름 전부터다. 그들은 추혼사수라는 별호로 불리는 자들로 구중련 제팔영주 산하 춧라단의 최고 수뇌들이었다.

일수인 분광검 군행철은 추살단의 단장이고, 이수인 태웅장 규화군, 삼수인 적비도 나옹성, 사수인 귀혼편 운일황은 서열 일, 이, 삼, 사 위를 차지하고 있다.

네 명은 그동안 돌아가면서 연우강을 감시해 왔었다.

‘ 도대체.....’

군행철은 궁금함을 참을 수가 없었다.

다른 잠룡도 아니고 상대는 똥지게를 지는 자에 불과하다.  흑철마신을 익힌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내기를 다루는 무인들에게 위협적인 무공이 될 수가 없다.

그런 자를 극비리에 감시하는 것만 해도 이상할 노릇인데, 오늘은 생포하여 대기하라는 명령마저 떨어졌다.

녀석이 늦게까지 일을 하는 바람에 명령을 수행할 수 있게는 됐지만, 연우강을 감시하는 이유는 여전히 궁금했다.

[ 형님, 들었습니까?]

바로 그때 둘째 태웅장 규화군의 전음이 들려왔다.

[ 뭘 말이냐?]

군행철은 규화군을 보았다.

[ 조금 전 놈이 만년석균이라고 한 말 말입니다.]

[ 그랬느냐?]

군행철은 깜짝 놀랐다.

만년석균은 영물의 내단처럼 당장 효과를 주는 그런 영단은 아니지만 꾸준히 복용하면 머리를 맑게 해주고, 내공 또한 증가시켜 주는 보물로 알려져 있다.

[ 그렇습니다. 형님. 놈이 만년석균 군락지가 이곳에 있다고 했습니다.]

[ 우리가 뜻밖의 횡재를 하는 모양이구나. 복면을 써라.]

군행철은 활짝 웃으며 복면을 꺼내 썼다.

그때 연우강은 뭔가를 찾는 것처럼 하면서 계곡 깊숙이 들어가고 있었다.

[ 흔적은 남겼느냐?]

[ 그렇습니다. 형님. 아마 반 시진 후면 영주님께서 이곳으로 오실 겁니다.]

네 사람은 연우강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계곡은 상당히 길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절벽은 깎아지른 듯 가팔라지고 좌우 폭도 좁아졌다.

“ 응!”

느닷없이 막다른 곳이 나오자 네 사람은 깜짝 놀랐다. 분명 연우강을 따라 들어왔는데, 놈은 온데간데없고 수십 장 높이의 절벽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 날 찾는 모양이지?”

“ 헉!”

“ 음!”

네 사람은 일제히 몸을 돌렸다.

놀랍게도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앞에 있던 연우강이 이편을 쳐다보고 있었다.

“ 날 쫓은 이유를 알 수 있을까?”

“ 쿡!”

놀랐던 것도 잠시 네 사람은 비릿한 조소를 물었다.

쥐를 쫓던 고양이가 갑자기 쥐가 돌변하면 겁을 먹는다고 하더니 자신들이 그런 꼴이었다.

“ 복면까지 하고 비웃는 걸 보면 좋은 의도로 따라온 것 같지는 않고, 검, 장, 비도, 편이라.... 혹시 너희들에게 날 감시하라고 명령을 내린 자도 오기로 했나?”

“ 그건 알 것 없다. 놈. 좋게 말할 때 만년석균이 있는 곳이나 말해라.”

이수 태웅장 규화군이 차갑게 소리쳤다.

“ 만년석균. 그게 뭐지?”

“ 네놈이 계곡으로 들어오기 전에 지껄인 말인데도 벌써 잊었단 말이냐?”

“ 멍청하기는, 이런 곳에 만년석균이 있다면 대야벌에 고수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냐?”

“ 우릴 속였다는....”

규화군은 말끝을 흐렸다.

지금껏 은밀하게 녀석을 따라다녔고, 기척을 들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니 내공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녀석이 자신들을 속일 방법이 없다.

하지만 조금 전 말은?

“ 속이긴 뭘 속여. 인마. 여기에 만년석균이 있었다면 좋겠다는 바람이었지.”

“ 우릴 속였구나, 놈!”

규화군은 연우강을 향해 몸을 날렸다.

연우강에게 당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은 것이었다.

만년석균이 아니라면 녀석은 분뇨 집하장에서 십 리 이상 떨어진 이곳까지 올 이유가 없었다.

결국엔 유인당했다는 의미였다.

규화군은 오른손에 내공을 집중했다. 그의 별호이자 무공인 태웅장은 내공을 한순간에 증폭하여 펼치는 무공으로, 곰이 앞발을 후려쳤을 때와 비슷한 흔적을 남긴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연우강을 생포하라는 영주의 명려 때문에 규화군은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더불어 외공인 흑철마신을 연성했다고 알려진 연우강을 경계할 이유도 없었다.

연우강의 손이 앞으로 나왔지만 그는 무시했다.

“ 먼저 손목을 부러뜨려주겠다. 놈!”

규화군은 차갑게 웃으며 오른손을 후려쳤다.

짜악!

착각이었을까?

규화군은 연우강의 손이 한순간에 새하얗게 변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극히 찰나의 순간에 일어난 변화라 생각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아니 느닷없이 온몸으로 파고 들어오는 냉기 때문에 그 변화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고 해야 했다.

쿵쿵쿵! 쿵쿵!

규화군은 정신없이 뒤로 물러났다.

“ 둘째야!”

군행철은 깜짝 놀라 규화군을 부축했다.

“ 헉!”

규화군의 등에 손을 댔던 군행철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마치 얼음을 만난 것처럼 규화군의 몸이 차가웠던 것이다.

“ 형님! 저, 저놈은....”

쩌엉!

퍽!

연우강을 가리키려 들어올렸던 규화군의 오른손이 얼음조각으로 부서져 내렸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 크아.....!”

퍼억!

규화군이 고통에 겨운 비명을 지르는 순간, 그의 전신이 얼음조각으로 부셔져 흩어졌다.

“ 이럴 수가?”

군행철을 비롯한 세 사람은 넋을 잃었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꿈이 아니라면 어떻게 연우강이 무공을 익히고 있으며 둘째가 당한단 말인가? 아니 군행철의 생각엔 설사 꿈이라고 해도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 이건 꾸, 꿈이야.”

“ 나도 꿈이었으면 좋겠어. 네놈들이 따라붙지 않았으면 나도 무공을 펼칠 필요가 없잖아.”

휙!

넋을 잃고 있는 세 사람을 향해 연우강이 몸을 날렸다. 바닥을 박차고 나아가는 그의 양손은 눈처럼 햐얗게 변해 있었다.

천마삼경의 하나인 백옥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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