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장. 틈
찻잔을 앞에 둔 우담보의 얼굴엔 초조한 기색이 역력하다. 이렇듯 입술이 바싹바싹 타는 이유는 이번에 벌어진 벌내쟁투 때문이다.
무릇 큰일이 있고 나면 그 일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고 책임소재를 가리게 된다. 그런데 이번에 벌어진 벌내쟁투는 사망자만 해도 천여 명이 넘는, 역대 어느 벌내쟁투보다 치열했고, 각 단체의 무인들은 생사림 잔당들을 추격하고 있으니 아직도 진행 중이라고 해야 한다.
삼궐칠련십림 수뇌들의 암묵적인 동의에 의해 벌어진 벌내쟁투이긴 하지만,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마음이 다르다고 하는 것처럼, 벌내쟁투를 시작했을 때와 끝났을 때의 마음가짐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각 단체의 수뇌들은, 부하들의 죽음과 벌내쟁투로 인해 멸문한 생사림을 보면서 언젠가는 자신도 생사림처럼 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떨게 된다. 자칫 잘못하면 그 두려움으로 인해 대야벌이 분열될 수도 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바로 벌내쟁투가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 즉, 명분이다. 삼궐칠련십림의 수뇌는 물론이고 소속 무인들까지도 수긍할 수 있는 명분이 있어야 벌내쟁투의 후유증을 빠르게 치유할 수 있다.
우담보가 해야 할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궁주로 있는 율령궁 또한 이번 벌내쟁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아니 자유롭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이번 벌내쟁투의 단초를 제공한 곳이 바로 율령궁이다. 우담보의 고민은 거기에 있었다.
“ 제기랄!”
우담보의 입에서 욕설이 흘러나왔다.
벌써 삼 일 째 생사림을 수색하고 있지만 유명계가 천마삼경을 가지고 있었다는 물증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만일 지금 상태로 수색작업이 끝난다면 이번 벌내쟁투의 책임을 율령궁이 져야 하는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벌컥!
거칠게 문 여는 소리가 들려오자 우담보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그는 급하게 밖으로 뛰쳐나갔다.
안으로 뛰어 들어온 자는 천안원 원주 음양뇌 유선이었다.
“ 찾았습니다. 궁주님.”
우담보를 발견한 유서는 활짝 웃으며 소리쳤다.
“ 정말인가?”
“ 그렇습니다.”
유선은 고개를 끄덕이며 우담보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들고 있던 누리끼리한 것을 내밀었다.
“ 이건......”
우담보는 유선에게서 건네받은 종이를 확인했다. 뜯겨나간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그5것은 양피지였는데, 깨알같은 글이 빼곡이 적혀 있었다.
“ 비급에서 떨어져 나온 겁니다. 궁주님.”
유선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 또한 이번에 벌어진 벌내쟁투의 사후처리에 대한 부담으로 인해 그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 천마삼경의 일부분으로 보이는 양피지를 발견한 것이었다.
“ 어디서 찾았는가?”
“ 지하 비밀통로에서 주었다고 합니다.”
유선은 양피지가 발견된 장소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 이놈만 따로 떨어져 있었단 말인가?”
“ 그렇습니다. 궁주님.”
“ 하늘이 우릴 도왔구먼.”
비로소 우담보의 얼굴이 활짜 펴졌다.
완전한 비급이 아니라 아쉽기는 하지만 이 양피지는 유명계가 천마삼경을 지니고 있었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될 것이다. 더불어 그동안 미궁에 빠져 있던 황공망 조일백과 황룡대협 고우불 그리고 철검광자 추소백의 죽음에 대한 것도 깔끔하게 정리될 터였다.
“ 그렇습니다. 궁주님. 이제야 발 뻗고 잠을 이룰 수 있게 됐습니다.”
유선은 활짝 웃는 얼굴로 맞장구를 쳤다.
“ 보고서를 작성하게.”
“ 살인 사건도 한꺼번에 처리할까요?”
“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 알겠습니다.”
유선은 꾸벅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갔다.
“ 목욕부터 하고.....”
힘찬 걸음으로 걸어가는 유선을 지켜보던 우담보는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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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식대법.
물속에서 오랜 시간을 견디는 거북이의 습성에서 따온 무공 이름이다. 귀식대법의 시작은 호흡을 느리게 하는 것에서 비롯한다. 호흡을 느리게 하면서도 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신체활동은 물론이고 몸 내부 장기의 활동마저도 제한하게 되는데, 그러한 상황이 극에 이르면 심장만 미약하게 뛰는 가사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 상태를 이르러 귀식대법을 펼친다고 한다.
가사 상태에 빠진 자들이 대부분 그렇듯 무인들 또한 귀식대법을 펼치게 되면 무방비 상태가 된다.
무공이 고강한 무인은 귀식대법으로 가사 상태에 빠진 상황에서도 의식은 남아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적에게 발견되면 무사하다고 장담할 수가 없다. 귀식대법이 풀리는 와중에 당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귀식대법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을 때 적에게 발견되지 않는 장소에서만 펼치게 된다.
유명계 또한 귀식대법을 펼치기 전 많은 고민을 했다.
아니 처음엔 귀식대법을 펼치지 않고, 버텨볼 생각이었다. 아울러 그렇게 하고 있는 게 주변을 감시하기도 더 편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문제가 생겼음을 알았다.
분관 속에서 얼마나 있었는지 모르지만 갑자기 호흡이 가빠지며 머리가 몽롱해지는 것이었다. 생사림의 림주답게 유명계는 분뇨에서 올라오는 분독 때문이란 사실을 바로 알아차렸다. 아울러 그 상태가 지속되면 정신을 잃게 되고, 남는 건 분뇨에 빠져 죽는 것밖에 없었다.
아차 했지만 이미 밖으로는 나갈 수 없는 상황.
그는 견딜 수 있는 데까지 견디다가 마지막에 귀식대법을 펼쳤다.
“ 으음!”
유명계의 입에서 나직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막 깨어난 상태라 그는 아직은 정신이 없었다. 방금 흘러나온 신음 또한 정신이 들면서 본인의 의사완 상관없이 흘러나온 것이었다.
맑은 공기를 마시는 것과 더불어 귀식대법도 풀리면서 유명계는 조금씩 정신을 차려갔다. 그러나 안개가 낀 것처럼 몽롱했던 머릿속이 맑아지는 것을 반길 새도 없이 코를 마비시킬 듯한 악취에 다시 얼굴이 찌푸려졌다.
‘ 헉!’
정신을 온전히 찾은 그는 내심 비명을 질렀다.
그동안 귀식대법을 펼치고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라서였다. 그는 급하게 몸 내부를 점검했다.
다행히 단전의 내기는 원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내기의 흐름을 살핀 뒤 이번엔 주변을 살폈다. 여전히 눈을 감은 채였다.
혹시 적에게 잡혔다면 아직 정신을 잃고 있는 것처럼 해야 빠져나갈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새소리만 들려올 뿐 인기척은 나지 않았다. 유명계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분관을 이용하여 탈출하려고 하였던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다시 한 번 내기를 점검한 뒤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러자 주변 상황이 비로소 드러나다.
지금 있는 곳은 다름 아닌 분뇨를 버리는 집하장 안이었다.
집하장에도 화장실처럼 뚜껑이 덮여 있는 듯 내부는 어두컴컴했다.
“ 천운이라고 해야 하나?”
유명계의 입가에 빙그레 미소가 맺혔다.
등에 딱딱한 느낌이 오는 걸 보면 집하장 벽에 꽂힌 나뭇가지에 옷이 걸려 가라앉지 않은 모양이었다.
“ 그놈이 날 보지 못했을 리가 없는데.....”
미소를 지었던 것도 잠시,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집하장에 있는 걸 보며 똥지게 연우강이 분뇨를 이곳에 버릴 때 보지 못했을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 시체라고 생각하고 귀찮아서 그냥 가버린 건가? 그랬을 수도 있겠네.”
나름대로 결론을 내리자 비로소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문득 가슴속에 넣어두었던 천마삼경에 생가이 미쳤다. 묵직한 느낌이 그대로 남아 있었지만 확인을 하고 싶었다.
그는 오른손을 가슴으로 가져갔다.
“ 커억!”
가슴을 더듬던 유명계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말로 형언하기 힘든 고통이 손에서 느껴진 것이었다.
그는 재빨리 오른손을 얼굴 앞으로 가져갔다.
“......!”
유명계는 눈을 깜빡여 보았다. 잘못 보았나 싶어서.
분명 손가락을 전부 펴고 있다. 그런데 기다랗게 보기 좋았던 손가락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손바닥을 뒤집어 손등으로 시선을 주었다.
“ 이, 이건....”
유명계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손등 역시 마찬가지였다. 손등에서 길게 뻗은 손가락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황망히 왼손을 들어올렸다.
“ 크아악!”
자신이 도망자 신세라는 사실도 잊고 유명계는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왼손도 다르지 않았다. 다섯 개의 손가락은 싹둑 잘려나가고 손등 끝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 어, 어떻게?”
유명계는 넋을 잃었다.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꿈이 아니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 이건 꿈이야. 이건 꿈이라고.”
그는 미친 듯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아무리 고개를 흔들고 아니라고 소리를 질러보아도 잘려나간 손가락은 돋아나지 않았다.
“ 누구냐?”
진득한 살기가 내포된 외침과 함께 유명계의 신형이 자리를 박차고 솟구쳐 올랐다.
와지끈!
집하장 뚜껑이 부서져나가고 분뇨를 사방으로 뿌리며 유명계의 신형이 집하장 밖으로 튀어나왔다.
하지만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섰다.
휘청!
바닥에 발을 딛던 그의 신형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댔다.
“ 크아악!”
중심을 잡기 위해 발을 옮겼던 유명계는 입에서 또다시 고통에 겨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손과 마찬가지로 양쪽 발가락이 전부 사라지고 없었다.
“ 누구냐? 누가 날 이렇게 해놓았느냐?”
그는 미친 듯이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서늘한 바람만 불어올 뿐 그의 외침에 대한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
스스슥! 샤샤샥!
풀잎을 스치는 요란한 소리가 귓전으로 파고들었다.
“ 죽일 놈.”
유명계의 몸에서 질식할 듯한 살기가 쏟아져 나왔다. 이제야 비로소 상황이 이해가 갔다. 왜 손가락 발가락만 잘랐는지 알 순 없지만 자신을 이렇게 만든 놈이 똥지게 연우강이 분명했다. 놈은 손가락과 발가락을 자른 다음에 대야벌로 돌아가 율령궁에 신고를 한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무인들이 이곳으로 달려올 이유가 없다.
“ 언젠가는 죽이고 말겠다. 똥지게, 반드시.....”
그는 이를 부드득 갈고 바닥을 찼다.
“ 크아악!”
바닥을 찼던 그의 입에서 또다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평소 습관대로 별 생각 없이 바닥을 찼는데, 잘려나간 부분으로 땅을 차버리고 만 것이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다시 몸을 날렸다.
하지만 바닥에 착지를 할 때마다 머리가 쭈뼛 솟는 고통에 비명이 절로 터졌다. 곧 유명계의 신형은 집하장을 떠나 남쪽으로 향했다.
유명계가 복수를 맹세하며 떠나가는 그시간, 연우강으 무덤 앞에 서 있었다. 듬성듬성 풀이 나 있는 무덤의 주인은 이승걸이었다.
“ 술이나 한잔하라고 가져왔소.”
연우강은 가지고 온 술병을 무덤 앞에 내려놓았다.
“ 분뇨에 푹 담근 손가락과 발가락이 들어 있어서 처음엔 냄새가 좀 날 거요. 그러니까 한꺼번에 다 마시진 말고 푹 익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조금씩만 드시오.”
술병을 땅속 깊이 박아 넣은 연우강은 주변의 흙을 다독여 쌓았다.
“ 쓸데없는 짓 했다고 비웃는 거 알고 있소. 영감. 하지만 그건 영감을 위해 한 일이 아니라 날 위해 한 거요.”
연우강은 다른 술병 하나를 꺼내 마개를 열어 입으로 가져갔다.
“ 복수를 해준다고 해서 죽은 사람이 무에 알겠소. 다 살아 남은 제 편하고자 하는 거지. 이기적이라고 하였습니까? 난 원래 그런 놈입니다. 영감님. 난 내가 편하기 위해 돈을 모으고, 내 마음속 짐을 벗기 위해 놈들을 그렇게 만든 겁니다. 영감님을 위해 한 일이 절대 아닙니다.”
연우강은 무덤 상석에 등을 기댔다. 새파란 하늘 길 따라 뭉게구름이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문득 구름이 사람 형상으로 변했다.
그 얼굴은 목을 잘라주었던 무상이었다.
“ 난 네가 싫었어. 인마. 내가 보기에 넌 만족공황증을 견디다 못해 흑랑기로 온 놈으로밖에 보이지 않았거든.”
“ 대장도 금릉 연씨 세가 장남이었소.”
“ 난 업둥이잖아. 업둥이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빚을 지고 살아가는 놈이야.”
“ 그건 자학이오. 대장.”
“ 자학이 아냐. 그분들은 목숨의 이험을 무릅쓰고 날 받아줬어. 그 빚은 평생을 다해도 갚지 못해.”
“ 그분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거요. 대장.”
“ 맞아, 그런데 그걸 깨닫는데 사 년이 걸렸지.”
“ 아직도 날 구하러 온 일, 후회하지 않소?”
“ 후회할 일은 하지 말자는 게 내 신조라는 거 몰라?”
“ 그럼 미친놈처럼 돈을 모으는 이유가 뭐요?”
“ 돈은 많을수록 좋은 거잖아.”
“ 난 두 번째 이유를 듣고 싶소, 대장.”
“ 두 번째 뭐?”
“ 대장은 명령을 내린 사람은 부하가 지옥에 있다고 해도 살아만 있으면 반드시 구하러 가야 한다고 했소. 그러면서 첫 번째 이유라고 했소. 그 말은 곧 두 번째 이유도 있다는 말 아니오.”
“ 대갈통 굴리는 거 하고는...... 성 때문이다.”
“ 성?”
“ 네 성 말이다. 인마.”
“ 내 성이 어쨌단 말이오?”
“ 업둥이는 말이다. 남들은 하찮게 생각하는 그러한 것들에 집착하는 집착공황증이라는 게 있어.”
“ 예를 들면?”
“ 자신과 성이 같으면, 무조건 친척으로 생각해. 집착공황증의 증상이 심한 놈은 형제로 여기기도 하고.”
“ 날 형제로 여겼단 말이오?”
“ 글쎄... 어쩌면.....”
연우강은 한숨처럼 중얼거리며 남은 술을 입안으로 쏟아부었다. 그때 아래쪽에서 인기척이 감지됐다.
유명계의 상태를 보러 갔던 몽요가 돌아오는 모양이었다.
“ 어떻게 됐어요?”
연우강은 허공을 향해 물었다.
“ 손가락만 자른다고 하지 않았어요?”
얼굴만 드러낸 몽요가 되물었다.
“ 손가락을 자르고 나니까 발가락이 외롭다고 소리를 지르지 뭡니까? 그래서 균형도 맞출 겸 잘라버렸습니다.”
“ 난 지시를 알고 싶어요. 우강.”
몽요는 연우강을 빤히 쳐다보았다.
“ 손가락과 발가락이 없으면 엄청 불편하잖아요.”
“ 불편하게 하려면 손목과 발목을 잘랐어야지요.”
“ 그럼 무공을 펼치는 데 불편해지거든요.”
“ 그가 무공을 펼쳐야 하는 이유가 있어요?”
“ 무공을 펼칠 수 있어야 열심히 싸울 것 아닙니까?”
“ 대야벌고 열심히 싸우라고 손가락만 잘라냈다는 거예요?”
“ 손가락과 발가락이 없는 단점을 무공으로 극복하려 할테고, 다시 모습을 드러낼 때는 지금보다 두 배 이상은 강해져 있을 겁니다. 그럼 쉽게 당하진 않겠지요.”
“ 그를 지금보다 훨씬 강한 무인으로 만들기 위해 손가락과 발가락을 잘랐단 말이네요.”
“ 놈은 강해져서 좋고, 나는 약사 영감에게 덜 미안해서 좋고, 서로에게 좋은 일이잖아요.”
“ 훗! 꿈보다 해몽이 좋네요.”
몽요는 어이없는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손가라과 발가락을 전부 잘라놓고, 유명계에게도 좋은 일이라니, 이 정도면 거의 철면피에 가깝ㄷ고 할수 있었다.
“ 죽으면 강해질 기회를 얻지도 못합니다. 죽는 것보다는 병신이 되더라도 살아남게 훨씬 좋은 겁니다.”
연우강은 술병을 던져버리고 사망궤와 똥지게를 졌다.
“ 돌아가는 거예요?”
“ 일 끝났으니ㅏ 집에 가서 푹 쉬어야지요.”
“ 좋은 시절 다 갔네.”
몽요는 입맛을 다셨다.
앞으로 그런 기회가 올지 모르짐ㄴ 지난 삼 일은 영원히 잊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아쉬운 얼굴이네요.”
“ 사내랑 마주 앉아 밥을 먹어본 게 처음이었으니까요.”
“ 원래 약간의 아쉬움이 남을 때가 가장 좋은 거라고 했습니다. 그 순간을 넘어서면 만족공황증이라는 병에 걸리게 되거든요.”
“ 만족공황증은 뭐죠?”
“ 걱정거리가 없어서 생기는 정신병의 일종입니다.”
“ 풋! 그래도 난 많이 아쉬운데, 어떡하죠?”
“ 그럼 또 방법이 있죠.”
연우강은 빙그레 웃었다.
“ 어떤 방법이 있다는 거죠?”
몽요는 잔뜩 기대 어린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 누군가 이놈을 분리시켜 달라고 한 모양입니다.”
연우강은 제 머리를 툭 쳤다.
“ 설마.”
몽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목을 잘라달라고 했다는 건 곧 암살대전이 시작됐다는 말이다. 하지만 연우강의 머리에 청부가 들어왔다는 사실은 의외였다. 연우강은 잠룡들이 가장 사귀고 싶어 하는 사람 중의 한명이 아닌가.
“ 벌써 한 놈을 없앴습니다.”
“ 혹시......”
문득 춘절에 보았던 남궁철상이 떠올랐다. 연우강을 보는 그의 눈빛에는 질시의 감정이 가득했다.
“ 짐작 가는 곳이 있어요?”
“ 제 생강는 남궁세가 같은데요.”
“ .......?”
연우강은 고개를 갸웃했다.
남궁세가어 청부를 한 건 전에 우영이란 자에게 들었던 거라 새로울 건 없다. 다만 남궁세가에서 왜 청부를 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었는데, 뜻밖에 몽요도 대번에 남궁세가라고 지목한 거였다.
“ 바로 알아맞혀서 놀랐어요?”
“ 솔직히 그렇습니다. 난 그들과 원한을 맺은 적이 없거든요.”
“ 그전에 먼저 궁금한 게 있어요.”
“ 말해 봐요.”
“ 남궁철상하고 남궁운화는 정확하게 어떤 관계죠?”
“ 먼 친척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 혼인도 가능한 그런 친척?”
“ 방계니까 가능할 겁니다.”
“ 그것 때문이네요.”
“ 내가 제 녀석 마누라랑 바람이라도 났답니까, 왜 죽이려고 하는데요?”
“ 장차 부인이 될 사람을 빼앗길 것 같으니까 미리 선수 치는 것 같은데요?”
“ 혹시 남궁철상하고 친해요?”
“ 왜 친하다고 생각하죠?”
“ 내가 대야벌에 들어와서 잠을 잔 여자는 몽요가 처음이거든요.”
“ 방향을 잘못 잡았어요. 우강. 남궁철상이 장차 부인으로 삼고 싶어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남궁운화라고요.”
“ 남궁운화를 부인으로 맞아들이면 가주 직위를 자연스럽게 인계 받을 수 있다는 말이네?”
“ 그렇죠. 혼인을 통해 가주를 이어받으면 가솔들의 반발도 없을 테니까 최고죠.”
“ 하지만 왜?”
연우강은 여전히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남궁운화와 혼인을 하면 되지 왜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 우강이 남궁운화를 끔찍하게 챙겨주고 있으니까 그런 거지 왜겠어요?”
“ 내가 끔찍하게 챙겼다고요?”
“ 아닌가요?”
“ 어린애가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그 고생을 하는데 어른으로서 도와주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 남궁운화를 어린애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열여덟 살이면 어른이에요, 그리고 몸매도 나 못지않고.”
“ 성숙한 육체를 가졌다고 다 어른이 되는 건 아닙니다. 몽요. 어른의 판단 여부는 머릿속으로 하는 겁니다.”
“ 피이! 말은 다 그렇게 하더라.”
몽요는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 난 몸과 마음, 둘 다 성숙한 여자를 좋아합니다. 몽요.”
“ 그건 나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죠?”
“ 물론.”
“ 콱, 그냥! 아무튼 그동안 우강의 행동은 오해를 사기에 충분했어요.”
때리려는 듯 손을 들어 올리면서도 몽요의 얼굴엔 함빡 미소가 어려 있었다. 입에 발린 소리인 줄 알면서도 공연히 기분이 좋았다.
“ 속 좁은 자식 그래가지고....”
연우강은 남궁철상의 얼굴을 떠올리며 혀를 찼다.
“ 그러니까 우강 말은 살수로부터 지켜달라는 말인가요?”
“ 나 공식적으로 무공을 펼칠 수 없잖습니까?”
“ 그럼 청부네요.”
“ 그런 셈이죠.”
“ 청부엔 대가가 따른다는 거 알죠?”
“ 대가는 이미 지불하지 않았습니까?”
연우강의 시선이 몽요의 가슴으로 향해다.
“ 지난 삼 일을 대가라고 하면 난 섭섭해요.”
“ 넘겨짚지 마십시오. 몽요. 내가 말한 대가는 몽요의 가슴 속에 들어있는 불량 여의선천신단을 말하는 겁니다.”
“ 이건 선물로 준 거 아니었어요?”
“ 공짜 점심이 없는 것처럼 공짜 선물도 없다는 걸 빨리 깨달아야 삶이 편해집니다,”
“ 대가를 바라고 주는 건 선물이 아니라 뇌물로 알고 있는데, 아닌가요?”
“ 몽요는 선물과 뇌물의 차이를 모르는군요.”
“ 어떤 차이가 있죠?”
“ 대가를 요구하는 순서와 친밀도에서 차이가 납니다.”
“ 구체적으로요?”
“ 먼저 요구사항을 말하고 주는 건 뇌물이 되고, 요구 사항을 나중에 말하면 선물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뇌물은 요구를 들어주면 관계가 단절되는 경우가 많지만, 선물은 요구를 들어주고 나서도 계속 좋은 인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거지요.”
“그러니까 내게 준 건 뇌물이 아니라, 계속 좋은 인연으로 이어질 수 있는 선물이라는 말이죠?”
몽요는 헤벌쭉 웃으며 물었다.
“ 내 목숨을 책임져 줄 겁니까?”
“ 그걸 말이라고 하세요. 당연히 지켜줘야지요.”
“ 고마워요, 몽요.”
연우강은 활짝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
“ 근데 이 자식은 도대체....”
막장은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동안 몽요로부터 녀석에 대한 소식을 듣기는 했지만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이번에 벌어진 벌내쟁투는 역대 어느 벌내쟁투보다 치열했고, 아직도 진행 중이라고 하였다. 돌아올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돌아오지 않자 공연히 걱정이 앞섰다.
막장은 담 너머로 고개를 내밀어 생사림 방향을 더듬어보았다.
“ 저 자식!”
멀리서 터덜터덜 걸어오는 연우강이 보였다. 등에는 나갈 때 지고 갔던 궤짝과 똥지게를 지고 있었다.
막장은 담을 훌쩍 넘어 연우강을 향해 달려갔다.
“ 호위는 언제부터 하죠?”
달려오는 막장의 모습을 보며 몽요가 물었다.
“ 밖으로 나갔을 때 공격받을 위험이 크니까.”
“ 주로 낮 시간대란 말이죠?”
“ 앞으로는 밤에 일을 할 참입니다.”
“ 낮에는 뭘 할 거죠?”
“ 낮엔 천무비고와 승천비고에서 공부해야지요.”
“ 아! 알았어요. 우강. 이따가 목욕하러 올게요.”
몽요는 몸을 날려 연우강에게서 멀어졌다.
“ 자식아!”
막장은 연우강의 손을 덥석 잡으며 반가운 얼굴로 소리쳤다.
“ 웬 호들갑?”
“ 호들갑은 자식아, 걱정돼서 죽는 줄 알았다.”
“ 너 의외로 섬세한 구석이 있다?”
“ 미친놈!”
막장은 연우강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 왜?”
“ 믿어지지가 않아서 그런다, 자식아!”
“ 뭐가, 인마.”
“ 생사림이 멸문했잖아.”
“ 그래서?”
“ 그게 너 때문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녀석에게 말을 들었고, 생사림이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번 생사림의 멸문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 왜 거기에 내가 나와. 생사림을 없앤 놈은 내가 아니라 삼궐칠련십림 무인들이잖아, 자식아.”
“ 그들이 싸울 수밖에 없돌고 만든 사람이 너잖아. 그런데 너 백옥수를 익히고 있는 거냐?”
“ 참! 이거 받아라.”
연우강은 품속에서 금박이 입혀진 환약을 꺼내 내밀었다.
“ 뭐냐?”
막장은 떨떠름한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 불량밖에 없더라.”
“ 불량?”
“ 여의선천신단을 만들다가 실패한 약이라는 말이야.”
“ 이, 이게 연선천신단이라고?”
막장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전에 연우강이 생사림에 대한 것을 알아오라고 하면서 여의선천신단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그때는 그냥 웃어넘겼는데 정말로 약을 가져온 것이었다.
“ 불량이라서 효과는 장담할 수 없으니까 감동하지 않아도 돼.” “ 그래도 이건....”
막장은 감격해 할 말을 잃었다.
“ 불량으로 그렇게 감격하면 내가 오히려 미안해지잖아. 그보다 상황은 어때?”
“ 어떤 상황?”
막장은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
“ 막장!”
연우강은 막장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 또 무슨 훈시를 하시려고.”
연우강이 어깨에 팔을 두를 때마다 늘 어른 같은 말을 쏟아낸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막장은 픽 웃었다.
“ 지금은 아주 중요한 시기라는 느낌이 오지 않냐?”
“ 벌내쟁투를 두고 하는 소리냐?”
“ 당연하지.”
“ 벌내쟁투는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대야벌에서는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했잖아.”
“ 물론 그래, 하지만 이번에 일어난 벌내쟁투는 달라.”
“ 어떻게 다르다는 거지?”
“ 유명계가 무슨 잘못을 한 거지?”
“ 연성이 금지된 천마삼경을 익히고, 추소백을 죽였잖아.”
“ 유명계는 대야벌 백대고수 서열 십오 위에 올라 있는 고수고, 만오천 명의 부하를 거느린 생사림의 림주야. 막장. 그런 그를 단지 비급을 얻었다는 이유만으로 공격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 생사림을 공격하라고 명령을 내린 사람은 없다.”
“ 담대만승이 미리 중재를 했다면 벌내쟁투가 벌어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고는 생각해 보지 않았나?”
“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 묵인은 뭔가 얻을 게 있어야 하는 거잖아. 하지만 그가 이번 일로 인해 얻는 게 있을까?”
“ 그건 나도 몰라. 하지만 그는 이번 일로 인해 대야벌 수뇌들의 신임을 잃었어.”
“ 삼궐칠련십림의 수뇌들은 자신들도 생사림처럼 공격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거야.”
“ 그들이 생사림을 공격했다. 연우가!”
“ 그게 바로 사고의 모순이라는 거야. 생사림을 공격할 때는 오직 천마삼경 생각밖에 없었어. 그러다가 다 끝나고 자기 처소로 돌아가면 생사림을 공격했던 것에 대해 곱씹어보게 돼.”
“ 천마삼경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되고, 그 아무것도 아닌 비급 때문에 생사림이라는 단체가 사라지는 모습에 두려움을 느낀다는 말이야?”
“ 그렇지. 그들 또한 무공 비급을 얻지 말라는 법도 없잖아. 그럴 경우엔 자신도 생사림의 유명계 신세가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돼. 그 생각은 벌주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 담대만승 벌주는 세 번이나 선출된 최초의 벌주다. 연우강. 대야벌에서 그의 상대는 아무도 없다.”
“ 너 저수지가 어떻게 무너지는 지 알아?”
“ 어떻게 무너지는데?”
“ 처음엔 눈에 보이지도 않는 간극이라는 게 생겨, 그 다음엔 틈이 생기고, 그 틈은 구멍으로 변해, 구멍으로 변하면서 본격적으로 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하고, 물은 그 구멍을 더 키우게 되지. 그러다 결국에 가서는 거대한 저수지가 무너지게 되는 거야.”
“ 연우강!”
막장은 연우강을 빤히 쳐다보았다.
“ 왜?”
“ 생사림 멸문에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 사람은 벌주가 아니야. 넌데 거기에 대해선 할 말 없어?”
“ 내가 그랬잖아. 난 멍석만 깔아줄 뿐이라고, 멍석 위에서 싸우는 건 전적으로 그들의 선택이었고.”
“ 싸울 수밖에 없게 만든 사람이 넌데?”
“ 막장, 과거에 얽매이는 놈치고 성공하는 놈 없다. 그러니까 과거는 싹 잊어라.”
“ 좋다. 그 일에 대해선 잊으마. 그보다 그렇게 장황하게 과거를 늘어놓은 이유가 뭐냐?”
“ 너 때문이라고 했잖아.”
“ 그 일과 내가 무슨 상관이 있냐고 묻는 거잖아, 자식아.”
“ 머잖아 강호 무림을 놓고 한판 전쟁이 벌어질 거야.”
“ 누가 대아벌에 도전장이라도 던진단 말이냐?”
“ 그래.”
“ 누구?”
“ 밀천.”
“ 그 영세오천 중의 한 곳인 밀천?”
“ 응!”
“ 정말?”
“ 그렇다니까.”
“ 네 말이니까, 믿어야 하겠지?”
“ 당연히 믿어야지 인마. 난 절대 거짓말을 안한다고 했잖아.”
“ 좋다. 밀천이 나타났다고 하자고, 밀천이 나타난 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지?”
“ 밀천이 나타나면 전쟁이 일어나고, 전쟁을 치르기 위해서는 무인들이 출병해야 하잖아.”
“ 대야벌에는 삼궐칠련십림이있고 그 단체에 속한 무인의 수는 오만 명이다 연우강.”
“ 벌주에 대한 불신이 간극이 생겼다는 말을 조금 전에 했던 것 같은데.”
“ 불신의 간극이 중요한 거냐?”
“ 아주 중요해. 각 단체의 수장들은 설사 밀천과 전쟁을 한다고 해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어. 그럼 누가 가장 고생을 할 것 같냐?”
“ 대야벌 직속기관이 된다는 말이야?”
“ 그렇지. 율령궁, 조양궁, 잠룡궁 무인들만 죽어나게 되지.”
“ 그래서 어쩌라고?”
“ 이참에 소속을 바꿔보라는 말이다.”
“ 야장으로 바꾸라는 거냐?”
“ 아니.”
“ 그럼?”
“ 패천림으로 바꿔.”
“ 패천림에서 다시 시작하라고?”
“ 아니, 패천림을 꿀꺽 삼키라는 말이다.”
“ 그, 그러니까 나보고 패천림의 림주가 되란 말이냐?”
“ 자신 없어?”
“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냐?”
막장은 황당한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패천림. 일천 명으로 가장 적은 무인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지만, 개개인의 무력은 십림 중에서도 가장 강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 곳의 림주가 되라니.
미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말이었다.
“ 불량 여의선천신단, 패왕수라천경, 계모의 부정을 목격한 두연화가 있으니까 도전 조건을 된다. 문제는 네게 그럴 배짱이 있는 거냐 하는 거다. 막장.”
“ 칠천패왕 백독수는 백대고수 서열 오십 위에 올라 있는 강자다.”
“ 더불어 철전을 무기로 사용하는 암기의 달인이기도 하지.”
“ 바로 그게 문제다. 연우강. 그는 원거리 공격이 가능하지만 난 접근하지 않으면 공격의 기회를 잡을 수도 없다. 난 그의 상대가 아니다.”
“ 암기는 내 전문이야. 막장. 그 부분은 내가 잡아줄 거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 참! 말이 나왔으니까 묻는 건데, 네 무공은 어느 정도냐?”
사실 가장 궁금한 사항이 있다면 바로 연우강의 무공이었다.
“ 대야벌에 들어오기 전에도 너보다 강했어. 이곳에 와서는 영감들이 보약에 넣어준 풍천영수와 만년지극화령실을 완전하게 내공으로 만들었고, 천마삼경을 훔쳐냈던 도둑의 품에는 약사 영감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제조한 여의선천신단이 있었다.”
“ 완전하게 내공으로 만들면 이 갑자를 얻을 수 있는 그 여의선천신단을 말하는 거냐?”
“ 응!”
“ 그럼 지금 내공이 어느 정도냐?”
막장은 넋을 잃은 얼굴로 물었다.
“ 네가 암기에 당하지 않도록 교육을 시켜줄 정도는 될 거야.”
“ 계속 비밀로 할 거냐?”
“ 내 입으로 밝히는 일은 없을 거야.”
“ 그럼 계속 비밀로 해야겠구나.”
“ 도전해 볼래?”
“ 그것도 못하면 날 병신 취급할 거잖아.”
“ 넌 내 친구다. 막장. 다만....”
“ 다만?”
“ 두작군, 두보관, 두연화에게 오늘 이 자리에서 나와 네가 나눴던 대화에 대해서는 말을 해야겠지.”
“ 두작군은 누구냐?”
“ 두연화의 할아버지야.”
“ 최선을 다하도록 하마.”
“ 최선 가지곤 안 돼, 막장.”
“ 목숨을 걸게 됐냐?”
“ 사내라면 그래야 하는 거야. 큰 건이다 싶으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 거라고.”
“ 그런데.....”
막장은 걸음을 멈추고 연우강을 보았다.
“ 궁금한 게 있는 얼굴이네?”
“ 이유를 알고 싶다.”
“ 무슨 이유?”
“ 내가 패천림의 림주가 되야 하는 이유.”
“ 넌 용사야.”
연우강의 입가에 빙그레 미소가 맺혔다.
막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녀석은 웃는 게 분명하다.
그런데 그의 입가에 어린 미소가 왠지 날이 바짝 서 있는 비수처럼 싸늘하다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