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백수-40화 (40/232)

제 7장 몽요의 꿈.

이른 아침 천상천 소회의실로 무복을 걸친 자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야궐의 궐주 야제 혁련무극, 묵야련 련주 무연도노 유자웅, 군마련 련주 십절무적검 담대천호, 사자림의 림주 철사자왕 아붕, 사해림 림주 광해용왕 해천일 등 다섯 세려의 수장과 벌주 직속 기관인 조양궁, 율령궁, 잠룡궁의 세 궁주 그리고 천상천의 군사라고 할 수 있는 뇌천 만우량까지 전부 열 명이었다.

벌주 담대만승의 측근이자 강려한 힘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의 얼굴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공개적으로 여덟 세력의 수장이 동시에 모이기 위해서는 사전에 조율이 이루어져야 하고, 다른 세려기 불편해 하지 않도록 격시을 갖춰야 한다.

그런데 이른 아침 느닷없이 호출을 당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조식을 함께하고 싶다는 단서가 달려 있긴 했지만, 여덟 명이 수장이 함께 모이는 명분으로는 약한감이 없지 않았다.

“ 아십니까?”

맨 오른편에 있는 거구 중년인이 만우량을 보며 물었다. 호목에 강렬한 인상을 주는 그는 야궐의 궐주이자 대야벌 백대고수 서열 삼위에 올라 있는 야제 혁련무그이었다.

“ 벌주께서 직접 말씀이 있을 겁니다. 궐주.”

“ 그럼 식사시간까지 기다려야겠군요.”

“ 식사준비 끝났습니다.”

혁련무극이 머쓱한 얼굴로 찻잔을 잡아 든 순간 문이 열리며 시비가 들어왔다.

“ 가시지요.”

만우량은 일행을 안내하여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 안에는 이미 담대만승이 나와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간단한 인사가 오가고 일행은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젓가락을 든 자는 아무도 없었다.

“ 생각이 없는 거요?”

담대만승은 슬쩍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 클클클! 이른 새벽에 호출을 하시고선 밥을 먹이면 그게 소화가 되겠습니까?”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이 찻잔을 들며 말을 받았다. 그는 묵야련의 련주 묵연도노 유자웅이었다.

“ 하하하! 난 식사를 먼저 하고 차분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소, 도노.”

“ 이야기를 듣기도 전에 소화불량으로 죽습니다. 벌주님.”

유자웅이 너스레를 떨었다.

“ 좋소.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식사를 하도록 합시다. 뇌천.”

담대만승은 만우량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 알겠습니다. 벌주님.”

만우량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일행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로 향했다.

“ 혹시 만상에 대해 아시는 분 계십니까?”

만우량은 나직이 물었다.

“ 만상문에 대해서는 들어는 봤소이다.”

혁련무극의 일행을 대표해 대답했다.

“ 그들의 전신에 대해서는 아십니까?”

만우량은 다시 물었다.

“ 자생적으로 태어난 조직이라고 알고 있소이다.”

“ 이 세상에 자생적으로 태어난 조직은 없습니다. 혁련궐주.”

“ 그럼?”

“ 만상문은 물론이고 야장마저도 목적을 가진 자들에 의해 만들어졌소이다.”

“ 그거 흥미롭군요.”

혁련무극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수뇌들 또한 호기심 어린 얼굴로 만우량의 말을 기다렸다.

“ 우리 대야벌이 영세오천이 만든 무성의 힘을 바탕으로 세워졌다는 건 여러분도 아실 겁니다.”

“ 그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오.”

“ 그럴 겝니다. 혁련궁주. 하지만 영세오천 후예들이 대야벌 안에서 암투를 계속했다는 사실을 아는 분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겁니다.”

“ 구체적으로 어떻게 싸웠는지는 모르지만 짐작은 하고 있었소.”

혁련무극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때 적이었던 자들이 한곳에 모여 평화롭게 산다는 것 자체가 사실 이상한 일이다. 더구나 대야벌은 최강의 무력을 지닌 곳이 아니었던가. 대야벌을 장악하기 위해 암투를 벌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 영세오천이 암투를 벌였던 증거가 바로 잠룡쟁투, 벌내쟁투, 암살대전입니다. 잠룡쟁투는 각 천에서 제자를 모집할 때 외부에서 벌어지던 전투가 그 시작이었고, 벌내쟁투는 상대 세력을 없앨 때 벌어진 전투가, 암살대전은 상대방 요인을 없앴던 것에서 비롯됐습니다. 몇 가지가 더 있기는 하지만 그건 대야벌 운영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소소한 것들이라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 아!”

일행의 입에서 일제히 탄성이 흘러나왔다.

만우량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 아무튼 그렇게 암투가 지속되면서 대야벌을 떠나는 천이 생겨나게 됩니다. 가장 먼저 떠난 곳이 바로 지금의 팔황새로 불리는 황천이었습니다. 황천이 떠나자 남은 천은 각자 세력을 만들게 됩니다.

지천의 후예들은 무성으로 파고들어 그들을 장악하였고, 상천의 후예들은 만상문을 세우고, 흑천의 후예들은 야장으로 파고들어 간 겁니다.”

“ 그럼 밀천은 어떻게 된 겁니까?”

“ 그들은 평소대로 대야벌의 천상천만 노렸고, 많은 벌주를 배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칠백 년 전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밀천의 최강 가문이었던 동영의 은밀막부가 밀천을 탈퇴함으로 인해 급격하게 힘을 잃고 맙니다. 결국 그들은 대야벌에 쫓겨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 그럼 만상문은 상천의 후예들이란 말이 되는군요.”

사자림의 림주 찰사자왕 악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시작이 그렇다는 것일 뿐 지금도 상천의 후예라고 생각하시면 곤란합니다. 악 림주.”

“ 하하하! 그건 알고 있소이다. 천오백 년에 존재했던 단체가 현재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 아닙니까? 그보다 이젠 만상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만, 군사.”

“ 삼백 년 전 무치벌주로 이름을 날렸던 삼뇌천자 나추웅 그분을 끝으로 만상문은 문주를 배출하지 못했습니다.”

“ 그분이 만상문의 문주였단 말입니까?”

악붕은 놀란 얼굴로 물었다.

“ 그렇소. 악 림주. 그때 무치벌주를 추대했던 자들이 바로 만상문가 야장이었소.”

“ 두 세력이 힘을 합쳐 그를 벌주로 만들어단 말이군요.”

“ 그때 처음으로 만상문의 힘이 외부로 드러난 거외다. 하지만 실질적인 무인을 거느리지 못한 만상문은 오래가지 못했소. 다른 세력의 집중적인 견제를 견디지 못하고 몰락하게 되는데, 무치벌주는 한 권을 책을 집필하여 만상문에 남겼소. 그 책의 제목이 바로 만상이오. 더불어 만상의 주인이 곧 만상지존이고 만상문의 문주라는 유언을 남겼소이다. 그 만상이 모습을 드러냈소이다.”

“ 만상문에서 문주가 나왔다는 말입니까?”

“ 더불어 공개적으로 만상을 드러냈다는 것은 우리에게 선전포고를 한 셈입니다.”

“ 선전포고라면?”

“ 벌주님의 임기가 오 년 남았습니다.”

“ 차기 벌주에 도전한다는 말입니까?”

“ 그렇소이다. 악 림주.”

“ 하지만 벌준ㄴ 도전을 한다고 해서 될 수 있는 게 아니질 않습니까?”

악붕은 고개를 갸웃했다.

대야벌의 벌주는 백인위원회라는 또 다른 이름인 대야벌 백대고수가 선출하게 되는데 그들 중 칠 할 이상의 지지가 필요하다. 설사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고 해도 백대고수의 지지를 받는 것은 요원하다.

“ 신유로부터 만상을 받은 사람은 사초 연우강이고, 연우강은 다시 남궁운화에게 주었소이다.”

“ 어떤 의미가 있단 말입니까?”

“ 무원은 연우강을 차기 후계자로 키우는 중이고, 남궁운화는 삼십 년 전 무궐의 궐주였던 창궁무제 남궁우문의 손녀 딸이오.”

“ 야장과 무궐을 끌어들이기 위한 포석이란 말이오?”

“ 드러난 정황으로 내린 결론입니다.”

“ 그렇다고 해도 지금 상황에서 만상을 공개적으로 꺼냈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소이다.”

악붕뿐만 아니었다. 다른 이들 또한 만우량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 그래서 그들이 우리에게 선전포고를 해왔다고 한 겁니다. 여러분, 우린 천마삼경을 놓고 벌어지는 각 세력 간의 전투가 너무 치열해진다는 생각에 서둘러 두 비고를 개방했소이다. 즉 암살대전을 앞당겨 각 세력이 대야벌 내부로 시선을 돌리기를 바랐던 거요.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신유 일행은 만상을 공개해 버렸소. 그 말은 곧 외부에 나가 있는 무인들이 대야벌 안으로 들어오는 걸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이오.”

“ 그렇게 해서 그들이 얻는 건 뭐요?”

“ 무인 상당수가 강호로 나가 있는 상황이니까 각 세력은 다른 때보다 많은 자금이 필요하오. 그 돈을 벌어주는 곳이 바로 암살대전이 아니오. 강한 무인을 호위로 내보낼수록 금액이 높아지는 건 당연한 거고.”

“ 백대고수 급에 해당하는 무인들도 잠룡들의 호위를 해야 한다는 말이 되는 거군요.”

“ 그렇소. 악 림주. 더불어 암살대전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호위를 하다가 죽임을 당하게 되면 신분 여하를 떠나 조사 자체를 할 수 없는 게 우리 대야벌의 율법이오.”

“ 만상문에서 노리는 대상은 백대고수란 말이군요.”

“ 그들은 지금껏 삼백 년을 은신해 있었고, 우리 주변에 몇 명의 암살자를 침투시켜 두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소.”

이번 물음에 대한 대답은 담대만승이 했다.

사실 담대만승도 이번 만상의 공개에 적잖이 당황했다. 그래서 각 단체의 수장들을 부르기 전에 만우량과 의견을 나눠 결론을 내린 상황이었다.

두 사람이 내린 결론은, 만상문의 신유가 원하는 건 강호 무림에서 벌어지는 쟁투가 지금보다 훨씬 격렬해지기를 바란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황실의 압박을 받고 있던 담대만승도 외부에서 더욱 치열해지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벌내쟁투부터 시작하여 외부의 쟁투를 방치한다는 비난에 직면할 것 같아 잠시 속도조절을 위해 암살대전을 앞당겼다.

그런 시점에 등장한 만상은 울고 싶은데 뺨을 때려준 꼴이었다.

“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담대만승을 보는 악붕의 얼굴은 잔뜩 굳었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곳에 있는 자들은 전부 대야벌 백대고수에 들어 있는 자들이다. 주변에 암살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담대만승의 말은 충격을 넘어 공포였다.

“ 암살대전이 벌어질 장소를 바꾸면 된다는 결론을 내렸소.”

“ 잠룡들을 강호로 내보내자는 말입니까?”

“ 그렇소. 여러분. 잠룡들은 열 개 조로 나누어 각 조별로 임무를 줄 거요. 임무를 완수하는 순서래도 서열을 정해 교육이 끝났을 때 평가에 반영하도록 하겠소. 아울러 잠룡들에게는 십 년 공력을 얻을 수 있는 태극신단을 한 알씩 지급할 생각이오.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떻소?”

수뇌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에 암살자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는데 이견이 있을 리가 없었다. 잠룡들을 내보내고 외부에서 암살대전이 벌어지는 사이, 암살자로 의심되는 자들을 찾아내 정리해야 할 터였다.

“ 그럼 총회의 정식 안건으로 이번 일을 올리도록 하겠소. 여러분들의 적극 협조를 부탁하오.”

“ 알겠습니다. 벌주님.”

일행은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 이제 마음 편히 식사를 해도 되겠소?”

“ 그렇습니다.”

수뇌들의 얼굴에 비로소 환한 미소가 어렸다.

*********

월영은 여전히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벌써 보름 동안 녀석을 감시하고 있다. 하지만 무공을 익혔다는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막내 우영은 가슴에 화살 자국이 있고, 이마에는 지풍에 당한 흔적이 남아 있다. 문제는 그 지풍을 연우강이 쏘았는지, 아니면 제 삼자가 쏘았는지 하는 것이다. 연우강을 없애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우영의 복수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만일 제삼자가 우영을 없앴다면 그 또한 연우강을 따라다니고 있을 테고, 언젠가는 모습을 드러낼 거란 생각에 지금껏 임무를 미루고 기다렸다. 하지만 제 삼자라고 의심할 만한 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 오늘 정리한다.]

월영은 둘째인 환영에게 전음을 보냈다.

[ 지풍을 쏜 자는 기다리지 않을 겁니까?]

환영은 동생등레게 눈짓으로 지시를 내리며 물었다.

[ 놈을 없애고 난 후에 기다리도록 한다.]

[ 알겠습니다. 대형.]

고개를 끄덕인 환영은 동생들에게 손짓을 하며 은신술을 펼쳤다. 그가 은신술을 펼쳐 허공으로 녹아들어 가자 나머지 네 명도 은신술을 펼쳐 신형을 숨겼다.

“ 아이고, 낮에 공부를 했더니 생활 리듬이 바뀌었나. 한밤 중에 웬 똥이.....”

“ 쿡!”

연우강을 향해 다가가던 환영은 피식 웃었다.

녀석은 분뇨 집하장에 분뇨를 비우는 중이다. 그런데 녀석은 뒤가 급하다고 숲으로 뛰어가고 있다. 웃기는 녀석이 아닐 수 없었다.

‘ 나도 숲이 편하긴 하지.’

그는 천천히 연우강을 따라나섰다.

한편.

숲으로 들어온 연우강은 잠능폐혈대법을 풀어 내공을 끌어올렸다. 천리지청술을 펼치자 주변 상황이 하나씩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 동안 이곳 지형은 수십 차례도 더 오가면서 완벽하게 숙지한 뒤였다.

“ 거기 있었구나. 민웅철!”

주변을 더듬던 연우강은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멀리서 숨소리가 감지됐다.

[ 민웅철이면 건곤신패를 말하는 거예요?]

귓전으로 몽요의 전음이 들려왔다.

[ 그렇습니다.]

[ 그는 대야벌 서열 십일 위에 올라 있는 강자인데 괜찮겠어요?]

몽요는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 그건 형식적인 순위일 뿐입니다. 몽요.]

연우강은 가볍게 몸을 띄우며 말했다.

[ 형식적인 순위라는 게 무슨 소리죠?]

[ 대야벌의 벌주를 뽑는 자들이 백대고수잖습니까?]

[ 벌주가 자기 사람을 심어놨을 거라는 말이에요?]

[ 담대만승은 세 번이나 벌주를 하고 있습니다. 실력보다는 벌주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자들이 백대고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 그렇다고 해도 실력도 없는 자들이 그 자리로 갈 수는 없잖아요.]

[ 물론 그렇기는 하죠. 하지만 백대고수 순위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는 말입니다. 난 몽요가 더 걱정입니다.]

연우강은 몽요를 보았다.

[ 걱정마세요. 칠영 정도는 소화거리도 안되니까요.]

[ 한 놈은 내가 유인해 갈 테니까 혹시 빠져나간다고 해도 신경 쓰지 말아요.]

[ 어떻게 유인해 간다는 거죠?]

[ 아무튼 그렇게 알고 있으면 돼요.]

[ 알았어요.]

[ 이큰! 오는 모양입니다.]

빠르게 다가오는 자들의 기척이 감지되자 연우강은 어둠 속으로 몸을 날렸다. 그의 신형이 기척도 없이 사라지는 순간 환영을 비롯한 다섯 명이 그 자리에 내려섰다.

‘응?’

환영은 깜짝 놀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커다란 나무가 하나 있어 큰일 보기엔 적격인 장소다. 더불어 조금 전 여기서 기척이 났다. 그런데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환영은 급하게 내공을 끌어올려 천리지청술을 펼쳤다.

역시 멀지 않은 곳에서 숨소리가 들려왔다.

‘ 이건?’

빙그레 미소를 짓던 환영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귓전으로 들려오는 숨소리가 일반인의 그것이 아닌 무인의 호흡이었던 것이다.

무인과 일반인은 기본적으로 호흡에서 차이가 난다. 무인의 호흡은 느리고 규칙적인 반면 일반인의 호흡은 거칠고 빠르다. 그런데 지금 귓전으로 들려온 숨소리는 전자였다.

‘ 우영을 없앤 놈이네.’

환영의 얼굴이 싸늘히 식었다.

[ 대형, 전 우영의 복수를 하고 오겠습니다.]

환영은 뒤따라 온 월영에게 전음을 보냈다.

[ 상대를 확인하지도 않고 간단 말이냐?]

환영과 마찬가지로 무인의 숨소리를 들은 월영이 물었다.

[ 우리는 지금껏 우리보다 강한 자만 상대해 왔습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 마영을 데리고 가거라.]

그래도 걱정스러웠던 월영은 셋째 마영이 은신해 있는 곳으로 시선을 주며 따라가라는 신호를 했다.

[ 알겠습니다. 대형.]

마영은 환영 곁으로 몸을 날려갔다.

[ 다녀오겠습니다.]

환영과 마영은 몸을 날려 어둠 속으로 몸을 감췄다.

[ 보이지 않습니다. 대형.]

주변을 둘러보고 온 귀영은 전음으로 보고를 했다.

[ 흩어져라.]

월영은 귀영 뒤편으로 모습을 드러낸 사영과 풍영에게 전음을 보내며 천천히 몸을 날렸다. 월영을 비롯한 네 명이 자리를 뜨는 순간, 허공에서 몽요의 얼굴이 나타났다.

‘ 귀여운 녀석들.’

살수들을 지켜보는 몽요의 입매가 길게 늘어났다.

‘ 첫 번째는 너다, 녀석아.’

몽요의 시선이 전방으로 향했다. 그녀가 첫 번째 제물로 선택한 자는 귀영이었다. 고도의 은신술을 펼치고 이동하고 있지만 은신술의 본산이라고 불리는 은밀막부의 가주인 몽요의 눈에는 귀영의 움직임이 어린아이 숨바꼭질 놀이처럼 보였다.

‘ 난 어렸을 때 너희들처럼 놀았다. 놈.’

드러났던 얼굴이 사라지고, 바람이 부는 것처럼 대기가 파동 쳤다. 극성에 달하는 만화은신사형이었다.

귀영은 연신 고개를 갸웃했다.

벌내쟁투 때문에 잠시 멈추긴 했지만 지난 보름 간 녀석을 관찰했다. 하지만 무공을 익힌 흔적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그랬던 녀석이 무공을 익힌 자신들을 속이고 감쪽같이 사라졌으니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아무튼 어딘가에 숨어 있겠지. 어디 있느냐, 놈. 저 나무 뒤에 있는 거냐?’

귀영은 내심 중얼거리며 커다란 나무를 향해 다가갔다.

쭈뼛!

나무 바로 앞에서 우뚝 멈췄다. 느닷없이 소름이 돋으며 몸이 차가워지는 듯했다. 육감이 보내는 위험 신호라는 사실을 많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물러나지 않았다. 내공을 잔뜩 끌어올린 채 나무 뒤편으로 고개를 홱 내밀었다.

‘ 휴!’

귀영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무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었.

‘ 도대체 이놈은 어디에 숨어 있는 거야.’

긴장이 풀려서 그랬는지도 몰랐다.

살행 중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철칙을 깨고 나직이 중얼거리고 말았다. 자기 목소리 때문에 주변 상황을 놓칠 수도 있었기에 생긴 철칙이었다.

스윽!

귀영의 목소리가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순간, 나무 위에서 대기의 미세한 움직임이 일었다.

“ 똥지게 새끼 때문에 이게 뭐 하는.....”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작은 손이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뒷목으로 차가운 물체가 파고 들어갔다. 귀영의 눈이 찢어질 듯 커지고 작살 맞은 물고기처럼 바르르 떨었다.

그리고 잠시 후, 떨림이 멈춤과 동시에 치떴던 눈이 감겼다.

‘ 하나!’

몽요는 조심스럽게 귀영의 동체를 눕혀놓고는 자리를 떴다.

“ 뭔가 일어나고 있기는 한 것 같은데.”

건곤신패 민웅철은 눈에 내공을 집중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 살수들의 움직임을 육안으로 확인하겠다는 건 바보 같은 짓이지.”

민웅철은 피식 웃으며 눈에 집중했던 내공을 풀었다.

대신 소리를 듣기 위해 천리지청술을 끌어올렸다. 원래 무공이 상당한 경지에 오른 무인은 다른 사람이 전혀 눈치 채지 못하도록 본인이 원하는 장소에 암경을 쏘아 보낼 수 있고, 내공을 집중할 수도 있다.

지금 민웅철의 상태가 그랬다.

오직 전방에 모든 정신을 집중하고 있어 뒤쪽은 거의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었다. 당연히 뒤쪽에 나타난 환영과 마영을 감지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도 환영과 마영은 곧바로 공격을 할 수 없었다. 복면을 하고 있는 자가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춘 자인지 알 수도 없을 뿐 아니라 묘한 느낌에 자꾸만 신경을 거슬린 탓이었다. 자꾸만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자는 숨소리만으로 이곳에 무인이 있다는 사리을 알아냈던 환영이었다. 살수의 기본 자질 중의 하나가 한 번 본 것과, 들은 것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고, 이름을 날릴 정도가 되면 그런 능력은 누구보다 탁월하다고 할 수 있다.

환영이 선뜻 공격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바로 복면인으로부터 들려오는 숨소리 때문이다.

이곳으로 오기 전에 들었던 호흡도 길고 안정돼 있었다. 그런데 복면인의 숨소리는 조금 전에 들었던 것보다 더 안정돼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동일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가 망설이는 이유였다.

[ 형님!]

기다리다 못한 마영이 환영을 불렀다.

[ 지금은 아니다.]

환영은 고개를 천천히 좌우로 저었다.

‘ 응?’

다시 복면인에게로 시선을 주던 환영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갑자기 복면인으로부터 강한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기운은 의도적으로 발산하는 기운이 아니라 긴장했을 때 저절로 발산되는 기운이었다. 무인의 몸에서 저런 기운이 흘러나오는 경우는, 몸이 저절로 반응할 정도로 강한 적이 나타났을 때밖에 없다.

‘ 대형이 온 건가?’

환영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 자신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대형 일행밖에 없다. 연우강을 처리한 대형이 도움을 주기 위해 찾아온 거라고 결론을 내렸다.

환영은 시선을 돌려 마영을 보았다.

[ 대형이 모습을 드러낼 거다. 마영.]

[ 제가 먼저 시작하겠습니다. 형님.]

[ 알았다.]

두 사람은 전음으로 대화를 나누며 천천히 복면인 근처로 다가갔다.

‘ 대형이 맞네.’

복면 사내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점점 강해지자 환영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자신들의 살행을 돕기 위해 대형이 복면 사내의 이목을 잡아두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제는 모습을 드러내 복면 사내를 깜짝 놀라게 할 테고, 바로 그때가 공격 시점이다.

환영은 마영 뒤편으로 자리를 옮겨 바짝 붙었다. 거의 한 몸이 된 두 사람은 호흡도 일치시켰다. 호흡을 일치시키는 것은 만일에 대한 대비다. 암살자가 두 사람이라는 사실을 상대방이 알아차리게 되면 그에 대한 대비를 하게 되지만, 한 사람이라고 판단하면 한 번의 공격에 최선을 다하게 된다. 그 공격을 끝나고 난 후가 바로 최대 약점이 되는 것이다.

스윽!

복면 사내와 이 장 거리를 남겨둔 순간, 전방에서 검은 그림자가 일렁였다. 마영과 환영은 모습을 드러낸 자를 확인하지도 않고 곧바로 몸을 날렸다.

“ 건곤신패!”

“ 헉!”

전방을 응시하고 있던 민웅철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나왔다. 설마 상대방이 자신의 이름을 부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놀란 사람은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마영과 한 몸이 돼 몸을 날리고 있던 환영 또한 움찔했다. 누군가가 자신들을 따르고 있다는 사실은 간파하고 있었지만 그 사내의 정체는 몰랐다. 그런데 대형이 복면 사내의 별호를 불렀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미 살행은 시작됐고, 복면 사내와의 거리는 반 장밖에 남지 않았다. 물러서고 싶다고 해서 물러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환영은 비수를 불끈 틀어쥐었다.

“ 감히 내 앞에서 성동격서 같은 치졸한 수를....”

민웅철은 검을 역수로 틀어쥠과 동시에 뒤편으로 찔러 넣었다. 그는 조금 전 기척을 감지하면서, 상대방의 호흡을 통해 살수의 수마저 파악한 상황이었다. 한 놈만 없애면 뒤는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그의 검 끝에서 검강이 쭉 튀어나와 마영의 배심으로 파고들었다.

‘ 빌어먹을!’

마영의 등을 타고 오르는 환영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사전에 건곤신패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검강에 대한 대비도 하였을 테고, 공격 방법도 달라졌을 것이다. 상대를 제대로 알지 못한 상황에서 벌어진 뼈아픈 실수였다.

“ 크악!”

그렇다고 해도 최고의 살수라는 말이 어울리는 순간이었다. 마영은 죽어 가는 순간에도 환영의 살행을 돕기 위해 크게 소리를 질렀다.

‘ 복수를 해주마, 마영.’

“ 난 건곤신패 민웅철이다.”

민웅철은 손목을 비틀며 검을 사정없이 뽑아냈다 뽑아낸 여력으로 인해 그의 손은 앞으로 내민 상태였다.

바로 그 순간, 환영의 비수가 그의 뒷목으로 파고들어 갔다.

푸욱!

“ 커억!”

민웅철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죽음에 임박한 상황보다 살수에게 뒤를 허용했다는 놀라움이 더 컸다.

대야벌 백대고수 서열 십일 위이자 묵아련의 이인자인 자신이 이렇듯 허망하게 당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 어떻게?”

“ 난 환영이다. 민웅철. 사월림 칠영의 둘째란 말이다.”

환영은 찔러 넣었던 비수를 사정없이 뽑았다. 하지만 민웅철의 목으로 파고들어 갔던 비수는 두 치 정도 빠져나오더니 더는 나오지 않았다.

“ 응?”

환영은 깜짝 놀랐다. 마치 어떤 힘에 가로막힌 듯 비수는 물론이고 몸마저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다.

“ 감히 살수 따위가.”

민웅철은 검을 놓아버리고 오른손을 어깨 뒤쪽으로 돌려 환영의 목을 틀어쥐어 끌어당겼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스스로도 알지 못했고, 굳이 알 필요도 없었다. 환영을 끌어당기는 그의 손가락은 무기가 돼 환영의 목으로 파고들어가 있었다.

“ 커억!”

환영의 목에서 피가 벌컥벌컥 쏟아져 나왔다.

민웅철의 오른손에 이어 왼손까지 더하자 환영의 숨은 금세 끊어졌다.

“ 빌어먹을!”

하지만 민웅철 또한 무사지 못했다. 목에서 흘러나온 피가 가슴을 적시는 순간 나직한 욕설과 함께 그의 신형은 환영 위로 쓰러졌다.

“ 어디 보자....”

연우강은 민웅철 앞으로 걸어갔다.

그는 조심스럽게 민웅철의 가슴을 더듬었다. 잠시 후 연우강의 손에 둥근 패가 들려 나왔다. 패에는 십일 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 치어인 줄 알았는데, 다 큰 놈이었군.”

연우강은 싱긋 웃었다.

“ 그나저나 이놈을 어떻게 한다.... 몽요 생각은 어때요?”

얼굴을 찌푸리던 연우강은 몽요를 불렀다.

“ 가루로 만들어 버리면 안 돼요?”

바로 귓전에서 몽요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연우강은 저도 모르게 진저리를 쳤다.

“ 너무 붙었습니다. 몽요. 어떻게 됐습니까?”

“ 이곳에서 비명이 계속해서 들려오자 놈의 손발이 흐트러졌어요. 그래서 생각보다 간단하게 처리했어요. 그런데 너무 븥은 게 싫어요?”

“ 싫은 게 아니고 피 냄새가 나서 그렇습니다. 칠영 정도를 처리하는데 몸에 피를 묻힌다는 건 은밀막부의 가주로서 자존심에 먹칠을 하는 일입니다.”

“ 수, 숨이 와, 완전하게 멈출 때까지 붙잡고 있으려니까 어쩔 수 어, 없었다고요.”

몽요는 말을 더듬었다.

“ 내공으로 붙잡으면 더 편한데..... 목욕하고 싶어서 일부러 그런 것 아닙니까?”

“ 무, 무슨 소리에요. 우강과 함께 목욕하는 게 꿈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해서 목욕을 하고 싶지는 않다고요.”

“ 나와 목욕하는 게 꿈이었어요?” 연우강은 몽요를 빤히 쳐다보았다.

“ 들어줄 거예요?”

몽요의 눈이 반짝 빛났다.

“ 이미 우린 함께 잤잖아요.”

“ 그건 그거고, 꿈은 꿈이잖아요.”

“ 그것보다는 이걸 먼저 처리해야 합니다. 몽요.”

연우강은 무성패를 들어올렸다.

“ 그건 뭐죠?”

문득 아직 연우강이 가지고 있는 패가 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물었다.

“ 무성의 무영들이 지니고 다니는 무성팹니다.”

“ 그럼 이자가 무영이란 말이에요?”

“ 무영 서열 십일 위에 올라 있는 잡니다.”

“ 그냥 없애버리면 안 돼요?”

“ 지금까지는 그렇게 해 왔는데,,, 상황이 달라졌으니까, 처리도 다르게 해야 합니다.”

“ 상황이 어떻게 달라졌다는 거죠?”

“ 우리 잠룡들이 대야벌 밖으로 나가게 될 것 같습니다.”

“ 정말이에요?”

몽요는 깜짝 놀랐다. 그녀는 아직 그런 말을 듣지 못한 탓이었다.

“ 천상천에서 결정이 났으니까 조만간 명령서가 내려올 겁니다.”

“ 왜 내보내려는 거죠?”

“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실습을 통해 평가할 모양입니다.”

“ 우강도 나갈 거예요?”

“ 밀린 외상값도 받을 겸 나가볼 참입니다.”

그 말에 몽요는 슬쩍 눈을 흘겼다.

“ 훗! 하여간 뭐든지 돈하고 연결이 돼요. 그건 그렇고 밖으로 나가는 것과 무성패하고는 무슨 상관이죠?”

“ 밖으로 나가면 이 무성패를 지닌 놈들이 더는 날 찾아오지 않을 것 아닙니까? 그래서 문제라는 겁니다. 몽요.”

“ 무영이 찾아오지 않아서 문제라고요?”

몽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 일상의 따분함을 덜어주는 덴 무성의 무영만 한 놈들도 없거든요.”

“ 그게 다가 아닌 것 같은데요.”

몽요는 연우강의 눈에 시선을 맞췄다. 상대방의 눈을 통해 뭔가를 알아내는 그녀만의 습관이었다. 하지만 연우강의 눈빛에서 어떤 걸 알아내는 건 불가능했다.

“ 내 말이 맞습니다. 몽요. 맞다. 이거면 되겠네.”

문득 생각난 듯 연우강은 제 머리를 가볍게 쳤다. 그리고는 품속을 더듬어 뭔가를 꺼냈다.

“ 그건 뭐죠?”

호기심으로 몽요의 눈이 반짝였다.

“ 무성팹니다.”

“ 무성패라고요?”

몽요는 황당한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설마 그가 무성패를 지니고 있을 줄은 몰랐던 탓이었다.

“ 그렇습니다.”

“ 혹시 무성의 무영이에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녀는 물었다.

“ 내가 무영이라고 생각해요?”

“ 결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해요.”

“ 그럼 방금 질문은?”

“ 무영 아니면 무성패를 지니고 있을 리가 없잖아요.”

“ 세상엔 의뢰라는 게 있잖습니까.”

“ 우강은 비밀이 너무 많아요.”

“ 비밀은 무슨. 그보다 이걸 이 녀석의 품속에 넣어두면 앞으로도 심심하지 않을 것 같아요.”

연우강은 마라천력으로 민웅철의 시체를 약간 들어올린 다음 조금 전 무성패가 있던 자리에 제 품에서 꺼낸 무성패를 집어넣었다.

“ 그걸 보면 정말로 올 거라고 생각해요?”

“ 내 요망 사항입니다.”

연우강은 씨익 웃으며 몸을 돌렸다.

“ 사는 게 그렇게 심심해요?”

“ 심심하지 않도록 열심히 살고 있잖습니까. 그보다 한 건 더 해줬으면 좋겠는데.”

“ 청부?”

“ 네.”

“ 무슨 청부죠?”

“ 건곤신패 민웅철하고 함께 다녔던 놈이 있습니다.”

“ 누구죠?”

“ 적사진인 용환이라고 무궐 인물입니다.”

“ 적사진인 용환이라면 백대고수 중 십 위에 올라 있는 자잖아요.”

“ 그렇습니다. 몽요.”

“ 나보도 대야벌 서열 십 위에 올라 있는 자를 없애달라는 거예요?”

“ 자신 없어요?”

“ 자신이 문제가 아니잖아요. 자칫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고요. 우강은 내가 죽는 게 좋아요?”

“ 이 세상에서 제일 안전한 장소에서 살행을 하게 되니까 몽요가 죽을 일은 전혀 없습니다.”

“ 가장 안전한 장소?”

“ 몽요의 만화은시형을 최고조로 발휘할 수 있는 장솝니다.”

“ 물속?”

“ 물속은 맞는데, 약간 혼탁합니다.”

“ 구정물 속에서 살행을 해야 한다는 말?”

“ 내 작업장입니다. 몽요.”

“ .... 청부 안 받을래요.”

몽요는 진저리치듯 고개를 저었다.

연우강의 작업장이면 화장실을 말하기 때문이었다.

다른 곳이면 어떻게 해보겠지만, 화장실만은 사양하고 싶었다.

“ 보통 사람들은 아침에 화장실을 가는데 놈은 특이하게 자시에 화장실을 갑니다. 볼일을 보는 목적도 있지만 무공 때문에 그 시간을 이용합니다.”

“ 절대 못해요, 우강.”

몽요는 못 한다는 말에 힘을 실으며 소리쳤다.

“ 그 과정에 깨달음을 얻기도 하는데, 요즘 뭔가를 얻었는지, 화장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항문을 향해 괴꼬챙이를 밀어넣기만 하면 끝납니다.”

“ 차, 차라리 밖에서 할게요. 화장실 말고 밖에서 한다니까요.”

연우강이 포기할 기색이 보이지 않자 몽요는 마지못해 수락을 했다. 조금 위험하긴 하겠지만 하고자 한다면 못 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연우강은 다른 모양이었다.

“ 사월림에는 칠영보다 한 단계 높은 살수인 오살이라고 있는데 그 오살의 둘째인 지살이란 놈이 살행 장소로 가장 많이 택한 곳이 화장실입니다. 몽요. 무기는 물고기를 잡을 때 쓰는 작살처럼 생겼고요.”

“ 그래도 못해요. 우강, 난 아직 시집도 안갔다고요.”

“ 눈을 감아보세요.”

“ 왜 그러죠?”

“ 일단 감아보세요.”

“ 아, 알았어요.”

몽요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 저번에 내가 생사림 지하에서 얻은 야명주 기억해요?”

“ 물론.”

“ 그 야명주가 선반 위에서 희미한 광채를 뿌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궁이에서는 석탄이 활활 타오르고, 욕조에서는 뿌연 수증기가 피어오릅니다.”

“ 우강의 부엌이네요?”

“ 그 욕조 안에는 특특의 풍만한 가슴을 지닌 여인이 목욕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몸에서 악취가 좀 나긴 하겠지만, 야명주에서 나오는 빛과 석탄에서 타오르는 불길은 악취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게 만들어 버립니다.”

“ 최고의 그림 같아요.”

“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몽요. 풍만한 가슴을 지닌 여자의 등을 건장한 체격의 사내가 닦아주고 있습니다.”

“ 사내는 옷을 입고 있을까요?”

“ 버, 벗었을 겁니다.”

“ 전부?”

“ 무, 몰론 호, 홀라당이죠.”

“ 할게요.”

반짝 눈을 뜬 몽요는 배시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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