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백수-41화 (41/232)

제 8장 미안할 뿐이오.

연이어 벌어지는 일에 사월림의 림주 양도욱은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우영이 당했을 때만 해도 실수로 치부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이번엔 칠영의 나머지 여섯 명이 전부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더불어 그가 당면한 문제는 그들을 죽인 자가 누구인지 파악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 미치겠군.”

중얼거리는 양도욱의 말투엔 짜증이 잔뜩 묻어 나왔다. 연우강을 없애러 간 칠영의 죽음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환영과 마영이 묵야련의 이인자 건곤신패 민웅철과 동귀어진한 것처럼 보인다는 보고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 접니다. 림주님.”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뇌백 운자준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양도욱의 명령으로 현장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양도욱은 말없이 운자준의 말을 기다렸다.

“ 건곤신패 민웅철이 맞습니다.”

“ 어떻게 죽었던가?”

“ 민웅철의 뒷목에 환영의 환마비가 꽂혀 있고, 민웅철의 검은 마영의 복부를 관통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손은 환영의 목을 뚫고 있었고요.”

“ 이체일심의 공격 방법을 썼다면 그런 상황이 나오긴 하겠지만 도대체 그를 공격한 이유는 뭔가?”

“ 우영의 사인 때문에 제가 약간의 언질을 줬습니다.”

“ 자넨 우영의 죽음에 대한 직접적인 사인을 화살이 아닌 지풍으로 보았단 말인가?”

“ 제 판단은 그랬습니다. 화살을 쏜 사람은 연우강이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화살을 맞은 우영은 살아 있었습니다. 화살에 죽었다면 다시 지풍을 쏠 이유가 없었을 테니까요.”

“ 그렇겠지.”

“ 하지만 연우강은 지풍을 쏠 능력이 없습니다. 결국 누군가 우릴 따라다닌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그래서 월영에게 경고를 했단 말인가?”

“ 그렇습니다. 따라다니는 자가 있을지 모르니까 조심하라는 말을 했습니다.”

“ 건곤신패 민웅철이 칠영을 쫓아다닌 이유는 알아냈는가?”

“ 짐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운자준은 고개를 저었다.

건곤신패 민웅철은 대야벌 백대 고수 십일 위에 올라 있는 초강자다. 그런 자가 칠영을 따라다닌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 그가 쫓는 대상이 연우강이었다고는 생각지 않는가?”

“ 그럴 이유가 없잖습니가?”

“ 우리와 같은 상황이라면?”

“ 누군가 청부를 했단 말입니까?”

“ 굳이 청부가 아니더라도 녀석을 없앨 이유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네. 뇌백.”

“ 어떤 이유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 묵야련의 련주인 묵야도노 유자웅은 무공보다 처세술에 더 강한 자라고 알려져 있네. 그 또한 벌주의 아들인 담대무궁이 연우강에게 모욕당한 사실을 알고 있고, 담대무궁의 복수를 해주려고 했다면 민웅철이 연우강을 따라다니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네.”

“ 과잉충성이라는 말입니까?”

“ 그럴 수도 있다는 말이네.”

“ 하지만 연우강은 벌의 필요에 의해 끌어들인 잡니다.”

“ 조양궁의 궁주 범일승이 연은석과 연동석을 만난 걸로 알고 있네.”

“ 연금석의 동생들 말입니까?”

“ 그렇네.”

“ 무게중심이 연우강에서 연금석의 동생들로 옮겨 가는 거라고 봐야 합니까?”

“ 연우강이 죽는다고 해도 크게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네.”

“ 그럼 유자웅이 건곤신패 민웅철에게 연우강을 없애라고 명령을 내렸을 수도 있겠군요.”

“ 그렇지. 연우강을 감시하던 민웅철은 칠영을 발견했고, 은밀하게 그들을 따랐던 거네.”

“ 칠영이 연우강을 노리는 걸 알았다면 혼자 오진 않았겠군요.”

운자준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월영을 비롯해 귀영, 사영, 풍영의 시체는 민웅철과 상당히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다. 삼십여 장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그들을 보며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비로소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의문이 전부 풀린 것은 아니었다.

“ 월영을 제외한 세 명은 살수 수법에 당했습니다.”

여전히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의문이었다.

“ 살수 수법이라면?”

“ 전부 뒷목을 찔린 상태로 발견됐습니다. 입 주변엔 손자국이 남아 있었고요.”

“ 먼저 입을 막은 다음에 죽였다는 말인가?”

“ 그렇습니다. 단지 월영만 이곳을 찌려 사망했습니다.”

운자준은 자신의 오른편 목을 가리켰다.

“ 고개를 돌린 상태에서 당했다는 말이군.”

“ 월영은 암중의 상대를 알아차렸습니다. 그러다가 왼편에서 환영과 마영의 비명이 들려오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린 겁니다. 적은 그 순간을 노려 월영의 목에 비수를 박아 넣었습니다.”

“ 묵연노도가 무리했군.”

양도욱의 몸에서 차가운 기운이 넘실댔다.

“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그쪽도 민웅철이 죽었으니까 일단은 두고 보세. 하지만 절대 잊지는 말게.”

“ 아직 연우강에 대한 청부는 마무리하지 못했습니다.”

“ 이번엔 유자웅 그 쥐새끼가 보낸 자들을 우리가 따르도록 하세. 오살을 준비시키게.”

“ 알겠습니다. 림주님.”

운자준은 고개를 숙이곤 밖으로 나갔다.

“ 벌주의 엉덩이를 핥아 그 자리에 오른 작자가!”

운자준이 나가자 양도욱은 이를 부드득 갈았다.

여전히 그는 이번 일이 연우강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아니 바로 옆에 있는 무원이나 창노도 모르는데 멀리 떨어져 있는 양도욱이 안다는 건 무리였다.

더불어, 이번 일 또한 연우강이 만드는 틈의 하나라는 사실은 더더욱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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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철주야 노력하는 제군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바이다. 아마 이번 벌내쟁투를 보며 제군들도 느끼는 바가 많았을 것이다. 어떤 잠룡은 겁을 먹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림은 그런 곳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강하지 못하고, 독하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하는 적자생존의 세계가 바로 무림이다. 그 무림에서도 가장 위험한 곳이 바로 대야벌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두려워하지는 말기를 바란다.

모험이 없으면 성취도 없다는 말처럼 대야벌은 위험한 만큼 그 대가도 큰 곳이기도 하다. 대야벌 최고는 곧 무림 최고란 말이 그래서 나온 것이다.

난 이번에 제군들의 실력 향상을 위해 새로운 교육 과정을 창설했다.

일명 잠룡강호행이라는 과정이다.

잠룡강호행은 말 그대로 제군들이 임무를 받고 강호로 나가 활동하는 상황을 말한다. 그 임무를 빠르고 완벽하게 처리하는 조는, 평가 점수가 월등하게 높아짐은 물론이고 교육 과정을 수료한 후 중책에 임명될 것이다.

조는 십 조로 구분하였고, 각 조는 오십 명으로 구성한다.

각 조의 조장은 다음과 같다.

일 조 조장 등천대룡 담대무궁.

이 조 조장 구룡대군 윤허

삼 조 조장 무영사룡 율한천.

사 조 조장 전마 사유성.

오 조 조장 다라밀영 아라파

육 조 조장 섬전십삼검 남궁철상

칠 조 조장 소명공주 이지약

팔 조 조장 무무대야 나천후

구 조 조장 천라추혼객 하성일.

십 조 조장 사초 연우강.

명심할 것은 위에 언급된 열 명은 교육이 끝나고 선출될 십지십룡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이다. 더불어 조장의 자리도 각 조의 구성원들이 원하면 바꿀 수 있다.

조장을 바꾸는 일은 일단 조가 정해지면 그때 제군들이 알아서 하기 바란다. 아울러 각 조는 제군들 스스로 선택하게 될 테고, 방법은 선착순이다.

유월 초하룻날, 제군들이 처음 들어왔던 남천문 앞에서 조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제군들의 무한 장도를 비는 의미에서 본 벌주는 약소한 선물을 마련했다. 복용하여 내공으로 만들면 십 년의 공력을 얻을 수 있는 태극신단이다. 체질에 상관없이 복용할 수 있는 약이니 부담 없이 복용하기 바란다.

제군들의 앞날에 행운이 함께 하기를 바란다.

대야벌 벌주 천우 담대만승.>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과정이 벌주의 칙령으로 내려왔지만 사전에 교관들로부터 언질을 받았던 잠룡들은 비교적 차분하게 받아들였다.

심지어는 십 조 조장으로 이름을 올린 연우강의 이름을 보고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금릉 연 씨 세가의 금력이면 조장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지위라도 얻어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더불어 칙령에 암살대전을 취소한다는 말이 없었기에 설사 불만이 있다고 하더라도 내색하지 않았다. 암살대전이 시작되면 각 조 조장들이 가장 먼저 청부 대상이 될 것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었다. 잠룡들은 별다른 내색 없이 각자의 연공에 열중했다.

조장으로 이름을 올리지 못한 잠룡들은 비교적 차분하게 받아들이는 반면 조장에 이름을 올린 자들의 얼굴엔 두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조장이 됐다는 말은 곧 중간 평가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았다는 말이기 때문에 기뻐해야 한다. 반면 삼 년 교육 과정이 끝나기도 전에 감투를 쓰게 되면서 십지십룡에 오를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역으로 암살 대상으로 지목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그러한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기에 조장이 됐다고 기뻐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싫은 기색을 보이자니 겁쟁이라고 놀림을 받을 것 같아 어정쩡한 얼굴로 상황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남궁철상은 달랐다.

육 조 조장에 올라 있는 자신의 이름을 보자마자 기쁨을 참기 위해 표정관리를 해야 했다. 사실 이번에 조장으로 발탁된 것은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남궁세가 수뇌들은 자신을 가주로 생각하고 있지만 남궁세가 공식적인 가주는 남궁운화이고 자신은 방계 가솔에 불과하다.

대야벌의 벌주도 그러한 사실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 때문에 남궁세가 무인을 조장으로 선출하려고 했다면 가솔인 자신보다는 남궁운화로 해야 옳다.

설사 남궁운화가 나이가 어리고 무공이 부족하다고 해도 가주인 그녀를 제쳐두고 가솔을 조장으로 앉힌다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이번 조치는 모욕으로 받아들여도 하등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다. 무공을 거의 익히지 않은 연우강 같은 자도 조장으로 앉힌 자들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야벌의 수뇌부는, 남궁운화는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자신을 조장으로 뽑은 것이다.

물론 다른 한편으로 보면 남궁세가를 무시하는 걸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굳이 그것까지 신경 쓸 이유가 없다.

이번 일로 인해 자연스럽게 가줄 자리를 승계 받을 수 있는 명분을 얻었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

“ 이제....”

남궁철상은 상기된 얼굴로 목함을 보았다.

목함 안에는 벌주가 내려준 태극신단 한 알이 들어 있다. 태극신단을 복용하고 천뢰제왕신공을 운기하면 최소한 오성까지는 익혀낼 수 있을 것이다.

“ 천뢰제어신공을 오 성만 익혀내면 암살대전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적이라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는 여전히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목함의 뚜껑을 열었다. 목함 안에서 흘러나온 청아한 향이 코를 자극했다. 남궁철상은 깊게 심호흡을 해 들뜬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러고는 태극신단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절세 영약처럼 침이 묻으면 절로 녹거나 하진 않았다. 그는 태극신단을 꼭꼭 씹어 삼켰다.

목을 타고 넘어간 태극신단이 즉각 효과를 발휘하는 듯 몸 내부에서 훈훈한 기운이 일어나는 게 감지됐다.

남궁철상은 곧바로 천뢰제왕신공을 운기했다.

천뢰제왕신공을 운기하자마자 곧바로 내공이 강하게 솟구치며 태극신단의 기운을 흡수하며 커지기 시작했다.

“ 으음!”

남궁철상은 낮게 신음을 흘렸다.

진기가 생각보다 강하게 요동친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진기를 억누르지 않았다.

비급에는 천뢰제왕신공을 사 성 가량 익히면 진기의 꿈틀거림이 선명하게 감지되고, 불안정한 것어럼 요동친다고 돼 있다. 더불어 오 성으로 넘어가는 자연스런 현상이니까 걱정말라고 하였다.

‘ 오 성이다!’

진기의 요동이 심해지자 남궁철상은 운기행공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놀랍게도 진기가 임독양맥을 중심으로 흐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문득 엄청난 기연이 오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천뢰제왕신공을 얻고, 조장이 되고, 태극신단마저 얻은 건 운이 틔었다는 뜻이다.’

이번 기회를 잘만 이용하면 오 성이 아니라 육 성이나, 칠 성, 또는 완성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더욱 조급해졌다. 더구나 천뢰제왕신공을 얻는 과정부터 시작하여 기연이 연이어 찾아오는 상황이 아닌가.

‘ 좋아!’

그는 적극적으로 천뢰제왕신공을 운기했다.

몸 내부에서 움직이는 기운이 점점 광포하게 변해갔지만 무시했다. 오히려 기연을 얻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더욱 박차를 가했다.

우르릉!

마치 뇌성벽력이 치는 것처럼 몸속에서 우렛소리가 들려왔다.

남궁철상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오 성에 이르러야 발생한다는 천뢰가 비로소 생성되기 시작한 거였다.

우렛소리는 점점 커지고, 내기는 더욱 광포해졌다.

‘ 가는 거다. 이대로 쭉 가는 거다!’

우르릉! 쿵쿵! 우르릉! 쿵쿵!

전쟁이 난 것처럼 몸속에서 뇌성이 쉬지 않고 들려왔다. 그럴 때마다 남궁철상은 오만상을 찡그렸다. 몸속에서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단전으로부터 통증이 밀려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 설마!’

순간 얼굴이 해쓱하게 변했다.

운기 중 일어나는 단전의 통증은 주화입마 초기에 나타나는 증상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더불어 단전에서 통증이 밀려온다는 말은 비급에 기록대 있지 않았다.

‘ 아닐 거야. 그럴 리가......’

“ 커억!”

운기행공 중에 입을 열거나 딴 생각을 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단전을 후벼 파는 듯한 엄청난 통증에 남궁철상은 비명을 내지르고 말았다. 입이 열리고 호흡이 흐트러지자 내기는 미친 듯이 온몸을 헤집고 다녔다.

“ 머, 멈춰야 해, 지금 상태가 이어지면 난....”

두려움은 또 다른 공포를 불러왔다. 미친 듯이 날뛰는 내기를 진정시켜 보려고 기존에 익히고 있던 내기를 끌어올렸는데 그 내기와 천뢰제왕신공의 내기가 뒤엉켜 더욱 엉망으로 변하고 말았다.

“ 커억, 왝!”

입이 쩍 벌어지고 피가 튀어나왔다.

“ 아, 안 돼. 아... 웩!”

남궁철상의 얼굴이 검게 죽었다.

진기가 요동칠 때마다 계속해서 피를 토하고 있다. 완전한 주화입마에 들어다는 반증이었다.

“ 어떻게....”

그는 멍한 얼굴로 허공을 보았다. 엉킨 진기는 감당할 수가 없어 커져 온몸을 헤집고 다닌다. 녀석은 혈도를 뚫는 게 아니라 찢어발기고 있다.

“ 크아악! 아아악!”

급기야 그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는 그 자리에서 데굴데굴 굴렀다. 손가락이 석실 바닥으로 파고들어갔고, 기다란 줄이 생겨났다.

하지만 남궁철상은 그러한 사실을 모르는 듯 계속해서 바닥을 긁어댔다. 또다시 수십 개의 줄이 생겨나고 언제부터인가 그 줄이 핏빛으로 물들어갔다.

그렇게 바닥을 헤집던 그는 자해를 하기 시작했다. 옷이 찢겨나가고, 그 다음엔 살이 갈라졌다.

“ 크아악! 아아악!”

콰앙!

“ 무슨 일인가?”

석실 문이 벌컥 열리며 담대무궁이 뛰어들어 왔다.

이곳 연공실을 남궁철상에게 제공한 사람이 그였던 것이다. 안으로 뛰어들어 왔던 담대무궁이 그 자리에 우뚝 멈췄다. 남궁철상을 바라보는 그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옷은 갈기갈기 찢어져 있고, 찢겨진 옷 사이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 크아악! 아아악!”

“ 맙소사! 주, 주화입마?”

담대무궁은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일반 주화입마도 아니었다. 주화입마 중에서 최악이라는 혈도 파괴까지 진행되어 저대로 두면 남는 건 죽음밖에 없을 듯했다.

“ 욕심이 과하다 싶더니.”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남궁철상 앞으로 걸어갔다. 그의 손이 빠르게 움직이자 학질에 걸린 것처럼 온몸을 부들부들 떨던 남궁철상이 잠잠해졌다.

“ 아아악!”

하지만 내부의 진기까지는 통제가 불가능한 듯 남궁철상은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 무슨 일이오?”

남궁철상의 비명을 들은 잠룡들이 석실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안으로 들어온 잠룡들은 담대무궁이 그랬던 것처럼 그 자리에서 석상처럼 굳었다.

그들 또한 남궁철상이 주화입마에 들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었다.

“ 쯧!”

이내 잠룡들의 입에서 혀 차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혀를 차는 사람은 뛰어들어 왔던 잠룡들뿐만이 아니었다. 석실에서 오십여 장 떨어진 나무 아래쪽에서도 나직하니 혀차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남궁철상이 들어가 있는 연공실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그는 연우강이었다.

“ 남의 눈에 눈물 흘리게 만든 자는 언젠가는 제 눈에서 흐르는 피눈물을 보게 된다. 남궁철상.”

연우강은 몸을 돌려 야장으로 향했다.

그로부터 반 시진 후, 연우강은 야장의 무원 거처에 도착했다.

“ 조장 됐다고 축하 받으로 온 건 아닐 테고.”

정원수를 다듬던 무원은 연우강을 보았다.

“ 방금 갔소.”

연우강은 똥지게를 내려놓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창노가 창밖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 편한 죽음을 줄 셈이었던 거요?”

연우강은 창노 앞에 자리를 잡고 앉으며 물었다.

“ 어찌됐든 남궁세가의 가솔이니까.”

“ 담대무궁이 놈을 살려낸 모양이오.”

“ 비극이구나.”

“ 썩은 살을 도려내면 고름도 나오지만 피도 함께 나오는 거요, 영감. 아울러 새로운 세상을 세우는 건 대화나 타협이 아니라 피라고 하였소.”

“ 어쩌면 그럴지도. 그보다 조장은 맡을 거냐?”

창노는 화제를 돌렸다.

자신의 손으로 남궁세가 가솔을 없앤 이야기는 더는 하고 싶지 않았다.

“ 설사 내가 조장을 맡겠다고 해도 조원으로 들어올 놈이나 있겠소?”

“ 다른 조의 인원이 초과되면 강제로 할당된다.”

“ 영감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 먼저 그들이 잠룡을 외부로 내보내려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 잠룡들이 나가면 암살대전도 강호에서 벌어질 테고, 그럼 결과는 뻔한 것 아니오?”

“ 혼란이란 말이냐?”

“ 천마삼경에 잠룡들의 암살대전까지 합쳐지는 날이면 날마다 무인들이 죽어 나갈 거요.”

“ 아무런 이유도 없이 혼란을 야기할 리는 없고, 벌주가 뭘 얻기 위해 그런다고 보느냐?”

연우강을 따라들어 온 무원이 물었다.

“ 먼저 제 질문에 대답부터 해주셔야 저도 대답할 수가 있습니다.”

“ 말하거라.”

“ 만상문과는 어떤 사이입니까?”

“ 정확하게 알고 싶은 게 뭐냐?”

무원은 되물었다.

“ 목적이 같아서 협조를 하는 건지, 아니면 한 몸인지 그걸 묻고 있는 겁니다.”

“ 그러니까 같은 편인지 그걸 알고 싶다는 거냐?”

“ 그래야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까요.”

“ 너와 첨목장군 양성일 장군과 같은 사이라고 할 수 있다.”

“ 친한 척하는 사이란 말입니까?”

“ 그렇다.”

“ 앞으로도 계속 친한 척하는 사이로 남을 겁니까?”

“ 그들이 우릴 배척하지 않으면.”

“ 좋습니다.”

“ 만상문과 관련이 있는 거냐?”

“ 담대만승이 잠룡들을 내보낸 것은 만상 때문입니다.”

“ 만상?”

“ 만상은 곧 만상지존의 출현을 의미한다고 들었습니다.”

“ 그들로부터 만상을 받은 사람은 너다.”

“ 전에 묵사를 얻었을 때도 그랬지만 그건 껍데기일 뿐입니다. 그럴 리도 없겠지만 설사 내게 만상지존이란 감투가 씌워진다고 해도 꼭두각시 이상의 의미는 없습니다. 그러한 사실을 나는 물론이고 신유 그 요괴도 잘 알고 있고.”

“ 너를 통해 만상을 외부로 드러냈을 뿐이라는 거냐?”

“ 외부로 드러낸 게 아니라 담대만승에게 보여준 겁니다.”

“ 왜 하필 너지?”

듣고 잇던 창노가 물었다.

“ 무원 어르신과 영감이 날 야장의 후계자로 지뢩하지 않았소.”

“ 그러니까 야장의 후계자인 네게 만상을 줌으로 해서 만상문과 우리가 하나라는 사실을 은연중에 드러낸 거란 말이냐?”

“ 굳이 하나일 필요는 없소. 적만 아니면 되니까.”

“ 삼백 년 동안 침묵하다가 이제 와서 만상을 드러낸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느냐?”

“ 이제 와서 드러낸 게 아니라 천마삼경으로 인해 혼란한 틈을 이용해 드러낸 거요. 아니 정확하게는 암살대전을 노렸다고 봐야 하오.”

“ 암살대전?”

“ 강호무림이서 전쟁을 벌이고 있는 자들은 대부분 대야벌 소속 무인들이오. 전쟁을 수행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과 돈이오. 하지만 사람은 있지만 돈은 부족하오.”

“ 암살대전을 통해 돈을 조달한다는 건 알겠는데, 그것과 만상문과는 무슨 관련이 있는 거냐?”

“ 돈을 많이 벌어들이기 위해서는 강한 무인을 호위로 내세우면 되지 않소. 더구나 강호에서는 한창 전쟁 중이니까 각 세력에서는 강한 무인 말고는 여유가 없다는 핑계를 댈 수도 있고.”

“ 결국 잠룡을 둔 가문은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돈을 주고 호위를 쓸 수밖에 없다는 말이구나.”

“ 대야벌 백대고수는 아주 강하면서도 돈을 주고 사려면 많은 금액을 지불해야 하는 비싼 족속들이오, 영감.”

“ 그들을 호위로 나서게 하여 암살한단 말이냐?”

“ 표면적인 이유는 그렇소.”

“ 표면적 이유?”

창노는 고개를 갸웃했다.

“ 신유 그 요괴는 머리를 쓰는 자요, 단순하게 생각하면 당하오.”

“ 또 답답하게 할 거냐?”

“ 거봐, 영감은 머리가 나쁜 거 맞잖아.”

“ 너, 이 자식! 지금 네 말은 형님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단 말이야, 자식아.”

창노는 버럭 소리쳤다.

“ 암살을 하려는 게 아니라 암살할 준비가 끝났다는 사실을 보여주려는 거요.”

“ 보여줘?”

창노와 무원은 여전히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 암살대전이 벌어지면 백대고수에 속한 자들을 없애겠다고 허풍을 칠 거란 말이야. 영감.”

“ 허풍?”

“ 아무런 준비도 없으면서 백대고수를 죽이겠다고 호언장담하는 게 허풍이 아니면?”

“ 조금 전에는 준비가 끝났다고 했다, 연우강?”

창노는 으르렁댔다.

“ 보여주기 위한 거라고 했지 준비가 끝났다고 하진 않았어.”

“ 좋다. 계속 해라.”

창노는 의문에 대해서는 접어두기로 하고 조용히 듣기로 했다.

“ 암살 준비가 끝났다고 하니까 담대만승은 바로 반응했어.”

“ 그 반응이 잠룡강호행이란 말이냐?”

“ 그렇지. 암살대전의 무대를 강호 무림으로 옮겨버린 거야. 잠룡의 수는 오백 명이나 되니까 강호에 나가서 일부가 죽는다고 해도 대야벌에는 별다른 타격이 없잖아.”

“ 그럼 만상문은 헛물만 켠 게 되는 거냐?”

“ 아냐, 담대만승은 암살대전의 장소를 옮긴 것 말고도 한가지 조치를 더 취했을 거야. 그 요괴들이 노리는 건 바로 두 번째 조치야.”

“ 두 번째 조치가 뭔데?”

“ 백대고수 주변에 있을지도 모르는 암살자들의 제거.”

“ 누가 제거한다는 거지?”

“ 그거야 백대고수 본인들이 하겠지.”

“ 죽인단 말이냐?”

“ 무인 같으면 감시를 할 테고, 일꾼 같으면 내보내겠지.”

“ 그럼?”

“ 원래 시중을 받고 사는 족속들은 시종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법이잖아. 일꾼이 떠난 자리는 금세 다른 사람으로 채워져.”

“ 새로운 사람으로 채워진다는 건... 맙소사!”

창노와 무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새로운 사람이 바로 암살자들이었던 것이다. 설마 그런 방법으로 백대고수를 노리고 잇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 벌주를 뽑으려면 오 년 남았잖아. 그 기간이면 신뢰를 얻기엔 충분하지. 완전한 신뢰를 얻고 난 후에는 결정적인 순간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잖아.”

“ 정말 만기팔유가 그럴 거라고 보는 거냐?”

창노는 여전히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물었다.

그가 알고 잇는 만기팔유는 전혀 욕심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어떻게 보면 비열한 짓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일을 서슴없이 저지른다는 게 상상이 가지 않았다.

“ 사람 중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사람은 눈동자에서 아무런 감정도 읽어낼 수 없는 사람이야. 그런 자들은 보통 모든 것을 다 이뤄 삶에 더는 미련이 없는 자들이거나, 극고한 수련을 통해 감정 숨기는 법을 완성한 자들이야.”

“ 만기팔유는 후자라는 거냐?”

“ 내가 보기엔 그래, 영감.”

“ 근거가 있느냐?”

“ 백살이나 처먹었으면서 아직도 살아 있는 게 그 증거잖아.”

“ 오, 오래 사는 것도 죄냐?”

얼마 전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아남겠다고 하였던 말이 떠올라 공연히 뜨끔했다.

“ 그 요괴가 불로장생주를 홀짝거리는 모습을 영감이 봤어야 해. 그걸 마시는 데 눈동자에서 빛이 나더라고.”

“ 그러니까 순전히 그것 때문에?”

“ 그 요괴들보다 훨씬 나이가 적은 우리 할아버지 소원은 내 자식을 안아보는 것 한 가지밖에 없어, 영감. 그 나이 때면 그게 정상이야.”

“ 알았어, 이놈아.”

창노는 피식 웃었다.

만기팔유가 연우강에게 만상을 보여줘야 할 필연적인 이유가 있더라도 은밀히 보여줬어야 옳고 그럴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건 연우강의 말처럼 만상을 통해 뭔가 얻고자 함이다.

굳이 나이를 따지지 않더라도 그들의 저의를 의심해야 할 상황이었다.

“ 어떻게 할 참이냐?”

창노는 연우강을 향해 물었다.

“ 야장의 장주는 무원 어르신인데 왜 내게 묻는 거요?”

“ 이야기를 꺼낸 사람은 너잖아. 그러니까 끝까지 책임져야지.”

이번엔 무원이 연우강의 말을 받았다.

“ 제가 말하면 안 할 거잖아요.”

“ 이번엔 무조건 따르마.”

“ 비열한 짓인데 상관없습니까?”

“ 어, 얼마나 비열한데?”

무원은 불안한 얼굴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 우리 사람도 함께 집어넣는 겁니다.”

“ 우리 사람?”

“ 조만간 백대고수들은 새 일꾼을 뽑을 겁니다. 그때 우리 사람도 함께 집어넣으면 됩니다.”

“ 그런 다음엔?”

“ 차기 벌주를 선출하기 전에 만상문의 명령을 받고 침투한 자들은 담대만승을 따르는 자들을 암살할 겁니다. 그때 우리도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 백대고수를 암살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성공보다 실패할 확률이 더 높다. 실패해 정체가 드러나면 그날로 야정은 문을 닫아야 한다.”

“ 그래서 만상문이 할 때 같이하라는 겁니다. 어르신. 그럼 화살은 우리가 아니라 만상문으로 향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에겐 하나가 더 있습니다.”

“ 뭐가 있단 말이냐?”

“ 칠백 년 전 살수의 제왕으로 불렸던 자를 아십니까?”

“ 일살 천류흔을 말하는 거냐?”

“ 그의 무공은 아십니까?”

“ 그의 무공이라면 혹시 잠능폐혈대법을 말하는 거냐?”

무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동안 녀석의 무공을 알아보지 못한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삼류 무인을 천하최강의 살수로 만들었던 무공. 녀석이 바로 그 무공을 익히고 있었던 거였다.

“ 그렇습니다.”

“ 그걸 완성하는 데 얼마나 걸렸느냐?”

“ 삼 년 걸렸습니다.”

“ 일반 무인이 그걸 익히려면 얼마나 걸릴 거라고 보느냐?”

“ 잠을 자고 있거나 무방비 적을 없애는 덴 저처럼 혈도의 크기를 조절할 정도까지 익힐 필요는 없습니다. 평소에 무공을 익힌 흔적이 나타나지만 않으면 될 겁니다.”

“ 나와 창제가 약간 손을 보란 말이구나.”

“ 그렇습니다. 어르신. 그런데 전에 부탁했던 건 알아보고 있습니까?”

“ 네 부하를 공격하고 잠룡쟁패를 빼앗아갔던 자를 밝혀달라고 했던 것 말이냐?”

“ 네.”

“ 알아보고는 있다만 워낙 오래된 일이라 쉽지가 않다.”

“ 그래도 계속 알아봐 주십시오. 그리고.....”

“ 또 있느냐?”

“ 야장에 가진 돈은 얼마나 있습니까?”

“ 돈은 왜?”

돈에 대한 말이 나오자 무원은 긴장한 얼굴로 되물었다.

“ 생사림에 청부를 좀 넣었으면 해서요.”

“ 누굴 청부하려는 거냐?”

“ 접니다.”

연우강은 손 끝으로 제 가슴을 가리켰다.

“ 널?”

무원은 황당한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남궁세가에서 청부를 넣은 것만으로도 골머리를 앓고 있는 녓헉이 아닌가. 그런데 이번엔 제 자신에게 청부를 넣겠단다.

도무지 무슨 속셈인지 알 수가 없었다.

“ 돈 때문이지 뭐겠습니까?”

“ 돈?”

“ 잠룡강호행이 교과 과정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돈줄이 끊기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아예 큰 건으로 한 방 터뜨리려고 그럽니다.”

“ 어떤 식으로 청부를 하겠단 말이냐?”

“ 남궁철상이 주화입마로 폐인이 됐으니까 남궁세가 노인네들은 더욱 똥줄이 탈 겁니다. 그러니까.....”

연우강의 말을 듣던 무원과 창노의 눈이 점점 커졌다.

“ 너?”

“ 도둑놈!”

이야기를 듣고 난 두 사람은 어이없는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 해주시겠습니까?”

“ 절반을 주면 하겠다.”

“ 절반은 너무 많습니다. 어르신. 보통 돈을 빌릴 때 월 일할 이자를 지불합니다. 석 달이면 삼백만 냥밖에 안됩니다.”

“ 청부를 넣어야 할 사람도 나고, 돈을 받아야 할 사람도 나야, 녀석아. 절반 아니면 안 해.”

“ 치사하게 그러실 겁니까?”

“ 그럼 네가 알아서 하든지.”

“ 그럼 딱 잘라서 오백으로 하죠.”

“ 절반.”

“ 끄응! 알았습니다. 절반으로 하죠.”

연우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런데 너도 그 정도 돈은 벌어놓지 않았냐?”

문득 연우강이 그동안 엄청난 돈을 벌어두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 돈을 쓰면 제 녀석 몫이 더 많아질 텐데 굳이 야장 돈을 쓰라는 게 말이 되지 않았다.

“ 전체 금액은 그 정도 되는데 워낙 외상이 많아서 현찰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건 곧 써야 합니다.”

“ 빚쟁이라도 찾아오는 거냐?”

“ .......”

“ 얼레?”

연우강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자 두 사람은 멍한 얼굴을 했다. 다른 사람이 빚이 있다면 고개를 끄덕이겠지만 연우강은 채권자는 몰라도 채무자란 말과는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 그에게 빚이 있다는 말을 들으니 생경하기까지 했다.

“ 정말 빚이 있는 거냐?”

창노는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

“ 영감이 빚진 금액을 알게 되면 바로 기절할 거요.”

“ 네 아버지께 부탁해도 안 되는 거냐?”

“ 그건 부탁해서 될 일이 아니라서 그런 거요.”

“ 엄청난 금액인 모양이구나.”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여전히 의문을 감추지 못했다.

천하제일 갑부라는 금릉 연씨 세가도 손을 대지 못할 금액이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금액일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 아무튼 청부나 제대로 해 주십시오.”

연우강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 그건 걱정하지 말거라. 그런데 정말로 밖으로 나갈 생각이냐?”

창노는 밖으로 나가는 연우강의 등에 대고 물었다.

“ 영감 생각은 어떠냐고 물었는데 아직 대답해 주지 않았소.”

“ 난 나갔으면 좋겠다.”

“ 이유가 뭐요?”

“ 똥지게는 네게 어울리지 않는다.”

“ 천이백 명의 부하를 적진에 처넣어 죽게 만든 놈에겐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란 없소.”

“ 그 일을 후회하느냐?”

문득 전에 그 일로 무원 형님과 나눴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 아니오, 후회하진 않소.”

“ 그럼?”

“ 후회하지 않는다고 해서 미안하지 않는 건 아니오. 비록 삶은 개 막장이었고, 머럿속이 사막으로 변해 가는 상황을 견디지 못해 자살 놀이를 즐겼지만, 그들은 죽기 전에 어머니를 부르고 형과 동생들의 이름을 부르는 나약한 놈들이기도 했소. 난 그런 녀석들 천이백 명은 적진에 던져버렸던 거요.”

“ 다시 그런 상황이 온다면 그들을 보내지 않겠구나?”

“ 아니오. 난 그들을 다시 적진으로 보낼 거요.”

“ 그러면 같은 결과가 나온다.”

“ 아니오, 영감. 이번엔 다른 결과가 나올 거요. 왜냐면 난 혈도부대를 유인해서 사막으로 들어가진 않을 거고, 녀석들과 함께 활짝 웃으며 죽어갈 테니까.”

“ 혈도부대를 몰살시킨 사람이 너였더냐?”

창노는 신음처럼 말을 뱉었다.

혈도부대 몰살의 비밀.

장막에 가려져 있던 그 비밀이 이런 식으로 풀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다만.

“ 난 그냥, 미안할 뿐이오, 아주.....”

힘없는 목소리가 한숨이 되어 잘게 부서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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