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백수-48화 (48/232)

제 5장 난세에서 진실은?

중원 칠대 고도에 속하는 낙양이 가장 발달한 시기는 당나라 때였다. 당나라 수도 서안이 정치적 중심지였다면 낙양은 경제, 문화, 학문의 중심지였다.

두보, 이백, 백낙천 등의 시인과 예술가들이 낙양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문화를 꽃피웠던 낙양은 찬란한 역사만 가진 곳은 아니었다. 하남성 서쪽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점령해야 할 군사적 요충지였던 탓에 수많은 전쟁의 격전지가 됐던 곳이 또한 낙양이었다.

대운표국 표행이 목적지였던 낙양에 도착한 것은 낙양 전체를 붉게 물들였던 모란이 시들고 난 후였다. 낙하 선착장까지 곧바로 이동한 대운표국 일행은 짐을 내리기 시작했다.

“ 저기 객잔 세 개를 잡아놓았소. 연 공자.”

짐을 내리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 팽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식사 준비를 미리 해두라고 해야겠군요.”

“ 일 끝나고 가면 바로 식사를 할 수 있게 연락을 해두었소이다. 먼저 들어가서 씻고 계시오.”

“ 알았소. 욱 영감. 갑시다.”

고개를 끄덕인 연우강은 욱일승에게 소리치며 객잔으로 향했다.

“ 같이 가, 아저씨.”

연우강이 객잔으로 향하자 팽자윤이 쪼르르 달려왔다.

“ 우리 너무 붙어다니는 거 아냐?”

“ 싫어요?”

“ 유부남 소리를 듣는 건 달갑지 않아.”

“ 남들이 절 딸이라고 생각할까봐 그러세요?”

“ 그렇게 생각하고도 남을 것 같은데?”

“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본인만 정직하면 되는 거라고 했어요, 아저씨.”

팽자윤은 연우강의 손을 덥석 쥐고는 객잔으로 이끌었다.

“ 부하들은 일을 시키고 너 혼자 그렇게 가도 되는 거냐?”

연우강을 뒤따르던 이자승이 말을 걸었다.

“ 난 대장입니다. 영감님.”

“ 대장은 부하들에게 더욱 모범을 보여야 하는 거다.”

“ 혹시 황궐 궐주를 내준 게 아니고 이렇게 된 것 아닙니까?”

연우강은 왼손으로 목을 스윽 그었다.

“ 잘렸다는 말이냐?”

“ 영감님 같은 분은 궐주완 어울리지 않거든요.”

“ 그럼 내겐 어떤 직위가 어울리느냐?”

“ 장자방이 딱입니다.”

“ 장자방?”

“ 쿡!”

이자승 옆에 있던 욱일승이 웃음을 터뜨렸다.

“ 그렇습니다. 영감님.”

“ 그러니까 난 궐주의 자격이 없다는 말이냐?”

“ 부하들이 됐든, 직원이 됐든 시시콜콜 간섭하는 사람은 절대 지휘관이 돼서는 안 되는 겁니다.”

“ 왜?”

“ 모든 일을 부하들과 함께한다는 건 좋게 보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되는 거고, 나쁘게 보면 부하들을 믿지 못하니까 일을 맡기지 않게 되고, 설사 맡긴다고 해도 옆에서 지켜보며 간섭을 하게 되죠. 결국 부하들은 생각을 하지 않게 됩니다. 그런 조직이 성장할 리 없을뿐더러 설사 성장한다고 해도 금세 정체되고 맙니다. 그런 사람은 지휘관보다는 총관이 어울립니다.”

“ 그, 그게 방금 네 행동과 무슨 상관이냐?”

이자승은 잔뜩 붉어진 얼굴로 소리쳤다.

“ 내 일이 끝났는데 굳이 감시하는 것처럼 옆에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오히려 일도 없으면서 얼쩡거리면 불편하기만 하죠.”

“ 그건 아저씨 말이 맞아요. 할아버지. 일하는데 상관이 있으면 옷 갈아입을 때 뒤에서 지켜보는 거랑 같다고 했어요.”

“ 끄응!”

이자승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 아무튼 부하들이 편하게 일을 할 수 있도록 눈치껏 비켜주는 것도 지휘관의 덕목 중 하납니다.”

연우강은 싱긋 웃으며 객잔으로 향했다.

“ 아저씨 어디로 가고 싶으세요?”

객잔 근처에 도착하자 팽자윤이 물었다.

“ 당루로 가자.”

“ 당루가 마음에 들어요?”

“ 아니, 저 글자가 마음에 들어서 그래.”

연우강은 현판에 쓰여진 글자를 가리켰다.

“ 전서체로 써진 글자?”

“ 내가 쓸 수 있는 유일한 글씨체거든.”

연우강은 활짝 웃으며 문을 열고 들어갔다. 당루라는 이름처럼 오래 된 듯, 곳곳에서 세월의 냄새가 묻어났다.

“ 잘못 들어온 건가?”

일층으로 들어선 연우강은 슬쩍 얼굴을 찌푸렸다.

그가 음식을 잘하는 식당과 엉망인 식당을 판단하는 기준은 식사시간 때 손님 수다. 그런데 식당으로 사용하는 일층에는 십여 명의 손님만 있었다. 그것도 식사를 하는 게 아니라 대부분 술을 마시는 술 손님들이었다.

“ 왜요?”

팽자윤도 연우강을 따라 안쪽을 흘끔 쳐다보았다.

“ 식사시간엔 밥 먹는 사람이 많아야 하는데, 여긴 전부 술마시는 사람들뿐이잖아.”

“ 음식이 맛이 없어서 그렇다는 거예요?”

“ 내 생각은 그런데, 자윤 네 생각은 어때?”

“ 아닌 것 같은데요?”

“ 그럼.”

“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요.”

“ 그럴 수도 있겠구나. 우선 차부터 한잔할까?”

연우강 일행은 안쪽 창가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활짝 열린 창 밖으로 낙하 강물이 보였다.

“ 아저씬 무슨 차를 좋아하죠?”

“ 차는 대충 마셔.”

“ 그럼 술은?”

“ 술은 화주를 좋아하고.”

“ 부자라고 하더니 입은 별로 고급이 아니네. 주인 아저씨!”

팽자윤은 안쪽을 향해 소리쳤다.

“ 부르셨습니까, 아저씨.”

“ 동정벽라춘 있어요?”

“ 네, 있습니다. 아가씨.”

“ 그걸로 주세요.”

“ 동정벽라춘을 알아?”

“ 그럼요, 그 정도도 모를까?”

“ 동정벽라춘이 어디서 나는데?”

“ 동정호에서 나잖아요.”

“ 틀렸어, 녀석아. 동정벽라춘은 악양 동정호가 아니라 소주의 태호에서 나는 차야. 태호 근처에 있는 동정산 벽록봉에서 난다고 하여 동정벽라춘인 이름이 붙은 거라고. 나선형으로 생겼는데 벽록색을 띠고 우려낸 색 또한 잎 색과 같아. 잎 표면엔 녹용처럼 잔털이 돋아나 있어서 그 잔털로 등급을 분류해. 낮은 등급일수록 털이 작고 잎의 크기가 커.”

“ 피이! 누가 알고 싶다고 했나?”

팽자윤은 입을 쭉 내밀었다.

“ 자윤 네게 한 말이 아냐.”

“ 그럼 누구에게 한 말이죠? 혹시 할아버지?”

팽자윤의 눈이 이자승에게로 향했다.

“ 주인에게 한 말이야.”

“ 객잔 주인 아저씨한테 한 말이라고요?”

“ 동정벽라춘은 십대 명차 중의 하나라서 워낙 고가일 뿐 아니라 가짜가 횡행하고 있거든. 그래서 가짜를 가져오면 오늘 밥값을 지불하지 않을 거라고 협박을 하고 있는 거야.”

“ 방금 차에 대한 지식 자랑이 협박이었어요?”

“ 협박은 보통 그렇게 하는 거야. 가짜를 가져오면 죽인다는 등 하는 건 초보들이나 하는 거지. 머리에 든 지식을 은연중에 자랑하면서 압박을 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야.”

“ 주인 아저씨 들었어요?”

“ 드, 들었습니다. 아가씨. 그리고 우리 집에서는 가, 가짜는 파, 팔지 않습니다.”

“ 그런데 왜 말을 더듬죠?”

“ 아, 아닙니다. 아가씨. 지금 차를 준비하느라고......”

“ 없으면 아무거나 가져와요. 아저씨.”

“ 아, 알았습니다.”

“ 주인은 다기를 준비하여 일행이 앉아 있는 탁자로 왔다.

“ 무슨 차죠?”

“ 오룡차입니다. 최상급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쁘진 않을 겁니다.”

“ 고마워요. 주인 아저씨.”

팽자윤은 싱긋 웃으며 주인이 내려놓은 찻잔에 물을 따랐다. 그러고는 차잎을 집어넣어 일행에게 한잔씩 돌렸다.

“ 흠! 나쁘지 않네.”

차를 한 모금 들이켠 연우강은 빙그레 웃었다.

“ 나도 한 잔 얻어 마실 수 있느냐?”

건너편 끝에서 괄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우강은 목소리가 들려왔던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노인 네 명이 이편을 쳐다보고 있었다.

“ 구걸도 준비가 있어야 하는 거다. 옷을 번드르르하게 처입고, 술을 처마시면서 구걸하면 백이면 백 실패한다. 구걸을 하고 싶으면 거지새끼처럼 꾸미고 다시 와.”

연우강은 노인들을 빤히 쳐다보며 이죽댔다.

“ 놈!”

탁자 가장자리에 앉은 노인의 몸에서 진득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 바로 그거야. 자식아. 구걸의 가장 기본은 누더기 옷과 공손한 말투야. 반말을 찍찍해대는 놈에게 음식을 나눠줄 사람은 세상천지에 단 한 명도 없어. 인마. 거기 술값은 내줄 테니까 다 처먹었으면 나가 봐.”

연우강은 손을 휘 저었다.

콰앙!

“ 개자식!”

탁자를 박살낸 노인은 연우강을 향해 몸을 날리며 양손을 거칠게 내뻗었다. 노인의 손이 피를 머금은 것처럼 새빨갛게 변하며 붉은색 강기가 연우강의 가슴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 혈천장!”

붉은 강기를 쳐다보던 이자승의 입에서 외마디 고함이 터져 나왔다. 무려 팔십 년 전에 한시대를 풍미했던 장법이고 그 장법의 주인은 경천사마의 일인이 혈수참마 남도욱이었다.

파악!

순간 연우강의 신형이 자리를 박차고 노인을 향해 날았다. 연우강의 왼손이 쭉 내밀어지고 날아오던 붉은색 강기가 그의 왼 손바닥을 강하게 쳤다.

퍼억!

“ 헉!”

혈수참마 남도욱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마치 물속을 향해 장을 발출한 것처럼 장력에 실린 대부분의 힘이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스르릉!

바로 그 순간 섬뜩한 소성이 들려왔다.

“ 차앗!”

거의 선 자세로 몸을 날리던 남도욱은 상체를 앞으로 숙이고 하체를 번쩍 들어 올렸다.

스악!

바로 그때 검은 광채가 그의 다리 아래를 스치고 지나갔다.

척! 척!

남도욱과 연우강은 조금 전 상대방이 앉아 있던 자리로 내려섰다. 연우강은 내려섬과 동시에 묵사 끝을 한 한 노인의 목에 가져다댔다.

그는 경천사마의 대형 만겁신마 기운상이었다.

“ 대, 대형!”

두 사람은 깜짝 놀라며 벌떡 일어났다.

“ 앉아라.”

기운상은 손을 들어 두 사람을 제지했다. 천혈전마 방세남과 야수인마 지철이 자리에 앉자 기운상은 연우강을 보았다.

“ 방금 어떻게 한 건지 알 수 있느냐?”

그의 궁금증은 목 앞에 닿아 있는 검이 아니라 조금 전 연우강이 셋째의 혈천장ㅇ르 어떻게 피했느냐 하는 것이었다. 셋째가 격노한 상태에서 펼쳐 장에 완전한 힘을 싣지 못했다고 하지만 그 정도만 해도 바위를 두부처럼 으깰 수 있는 힘이 실려 있다.

그런데 녀석은 단순히 손을 내미는 동작으로 혈천장을 해소시켜 버린 것이었다. 공격의 방향을 바꾸어 상대방의 공격을 피하는 이화접목의 수법은 결코 아니었다.

“ 불괴수호신공!”

“ 만상지존이더냐?”

“ 얼레?”

기운상을 쳐다보던 연우강은 고개를 갸웃했다.

만상지존. 자신도 그런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게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데 대야벌 인물도 아닌 자가 만상지존을 알고 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만상문을 알아?”

연우강이 물었다.

“ 잘 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만상문이 상천의 후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 그럼 당신은?”

“ 난 만겁신마 기운상이다.”

“ 무림인이나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 말고 진짜 정체 말이야.”

“ 난 기운상일 뿐이다. 연우강.”

“ 그런가, 난 또 묵사를 보러 온 줄 알았어.”

연우강은 기운상을 빤히 쳐다보고는 묵사를 거둬들였다.

“ 보여줄 수 있느냐?”

“ 묵사완 상관없다며?”

“ 그래도 천오백 년 전에 나타난 흑천의 지존신물을 구경히고 싶구나.”

“ 재미있는 영감이구만.”

연우강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묵사를 풀어 기운상에게 건네고 자리로 돌아왔다. 욱일승 일행이 앉아 있는 탁자 앞에는 연우강을 공격했던 혈수참마 남도욱이 멍한 얼굴을 한 채로 서 있었다.

“ 왜 살려준 거냐?”

연우강이 가까이 오자 남도욱이 물었다.

“ 빗나갔을 뿐이야.”

“ 손을 한 치만 위로 올렸으면 내 발목을 자를 수 있었다.”

“ 다음엔 반드시 그렇게 하도록 할게.”

연우강은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 오늘 일 기억하마.”

남도욱은 연우강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자 팽자윤이 연우강 앞에 놓인 찻잔에 차를 따라주었다.

“ 줘도 되는 거예요?”

“ 뭘?”

“ 무인들은 보물이라면 죽고 못산다고 하던데요?”

“ 묵사가 보물이라고 누가 그래?”

“ 저 할아버지들 표정을 보세요. 죽었던 자식이 살아난 것처럼 감격해 하고 있잖아요.”

“ 자윤아!”

“ 말씀하세요, 아저씨.”

“ 넌 열 살이다.”

“ 하북팽가의 차기 가주이기도 해요.”

“ 그래도 어린아이는 어린아이다워야 하는 거야. 넌 너무 어른스러워.”

“ 천성이니까 이제 와서 고칠 수도 없어요. 그보다 궁금증은 아직 풀리지 않았어요. 아저씨.”

“ 어떤 궁금증이지?”

“ 묵사가 보물이 아니라고 했잖아요.”

“ 조금 전에 저 영감이 말했던 것처럼 묵사는 천오백 년 전 물건이고, 영세오천의 한 곳이었던 흑천의 지존신물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밖에 없잖아.”

“ 하지만 흑천의 후예들은 다르지 않을까요?”

“ 저 영감들처럼 감격해서 정신을 못차릴 거란 말이냐?”

“ 네.”

“ 그런 다음엔?”

연우강은 팽자윤을 빤히 보았다.

“ 제게는 너무 어려운 질문이에요, 아저씨.”

“ 좋아, 그럼 내가 쉬운 질문을 할게. 저 묵사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 중에 진시황제가 있어, 알아?”

“ 에이! 최초의 통일 제국을 세운 사람인데 그 정도도 모를까.”

“ 알면 대답하기 더욱 쉬워질 거야. 만일 그 진시황제가 다시 살아나서 현 시대에 나타났어. 그럼 지금 황제나 관료들은 진시황제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 그건.....”

팽자윤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 세월은 땅에 묻어야 하는 거야. 세월을 묻지 못하고 끌려다니게 되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자신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까지 힘들어지게 되거든.”

“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아저씨.”

“ 간단하게 생각하면 돼. 진시황제가 살아온다고 해도 그를 황제로 앉힐 수 없는 것처럼 묵사도 흑천의 지존신물이었다는 상징적인 의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거야. 그냥 만년오금철로 만들어진 조금 단단한 검일 뿐이야.”

“ 하지만 이 검을 필요로 하는 자가 있을 것 같은데, 아닌가?”

묵사를 쓰다듬고 있던 기운상이 연우강을 향해 던지며 말했다. 지금까지 연우강이 했던 말은 꼬마아이에게 한 말이 아니었다. 바로 자신들을 향헤 한 말이었던 것이다.

“ 해묵은 과거를 꺼내는 자들치고 좋은 의도를 가진 자들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는데, 영감 생각은?”

연우강은 묵사를 받아들며 되물었다.

“ 좋든 나쁘든 자넨 묵사를 가진 것만으로도 표적이 될 수 있다.”

“ 영감, 잘했다고 소문나게 복수를 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소?”

“ 무슨 말인가?”

“ 난 오 년 동안 군에 있었는데, 사실 군이라는 곳이 전쟁이 없으면 정말 심심한 곳이라오. 그래서 혼자 생각에 잠기는 일이 아주 많은데, 부모님이나 가족 생각을 하는 녀석들이 대부분이라오. 그런데 난 업둥이라 특별히 생각할 게 없었소. 물론 날 키워주신 그분들을 떠올리곤 했지만 속 썩인 기억밖에 별로 없었단 말이지. 그래서 그때부터 복수에 대해 생각을 하기 시작했소. 어떻게 하면 잘했다고 소문나게 복수를 할 수 있을까 , 어떻게 하면 날 업둥이로 만든 놈들을 응징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내린 결론이 뭔지 아시오?”

“ 뭔가?”

의아한 얼굴을 했던 것도 잠시 기운상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기운상은 연우강의 말을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바보가 아니었다. 그는 연우강이 묵사를 빗대어 과거를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비단 기운상뿐만이 아니었다.

연우강 주변에 있던 이자승이나 욱일승 또한 그 말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그들은 긴장한 얼굴로 연우강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 우선은 잘 먹고 잘사는 거요. 그런 다음 삶의 여유가 생겼을 때 표시 나지 않게 조금씩 시작하는 거요.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잘게 자르는 작업이오. 육포를 찢는 것처럼 잘게 찢어내서는 그 중 하나만 잡아 입안에 넣는 거요. 그 다음엔 육포가 함유하고 있는 육즙이 완전하게 빠져나올 때가지 천천히 씹는 거요. 언뜻 보면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 같지만, 그렇게 먹게 되면 절대로 체하거나 탈이 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소.”

“ 으음!”

듣고 있던 수천월의 입에서 나직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연우강을 처음 만났을 때 보았던 광경이 떠올랐다. 그는 육포를 잘게 찢어 하나씩 입안에 집어넣고 천천히 씹어 먹었다. 그 모습을 보며 두작군은 연우강이 군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아냈지만, 단순히 군 출신이란 사실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 최고의 복수는 내가 떵떵거리며 잘사는 상태에서 놈들을 지옥으로 처박아 주는 거요. 영감.”

“ 잘 되고 있는가?”

기운상은 연우강의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 이놈 때문에 걸려든 물고기들이 의외로 많소.”

연우강의 양 입꼬리가 쭉 말려 올랐다.

“ 다 끝났습니다. 조장님!”

그때 문이 열리며 잠룡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 수고들 했어. 아무 곳이나 편한 곳에 앉도록 해.”

“ 알겠습니다.”

잠룡들이 자리를 잡고 앉자, 곧바로 음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객잔에서 하룻밤을 보내 일행은 다음 날 아침 대운표국 표사들과 작별인사를 나눴다.

“ 돌아오면 한 번 찾아뵙겠소. 가주.”

“ 그동안 즐거웠소. 연 공자.”

팽운은 연우강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 자윤, 너도 잘 가.”

“ 꼭 놀러 올 거죠?”

“ 그래 녀석아. 난 백수가 꿈인 사람이잖아. 남는 건 시간 밖에 없으니까 반드시 놀러 갈게.”

“ 약속했어요.”

“ 그렇다니까.”

연우강은 팽자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다, 다음에 만날 때는 오빠라고 부를게요.”

그렇게 말하고 팽자윤은 아버지의 등 뒤로 숨었다.

“ 하하하! 그래. 아무튼 뭐가 됐든 열심히 해라.”

“ 그럼 다음에 뵙겠소. 연 공자.”

팽운은 다시 한 번 포권을 취하고는 몸을 돌렸다. 곧 하북 팽가 무인들은 마차를 둔 선착장으로 향했다.

“ 우리도 가자!”

하북팽가 무인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연우강은 잠룡들을 향해 소리치며 남으로 길을 잡았다.

***********

하남성 서쪽 중앙에 위치하여 동서로 가로누운 거대한 산맥은 소가 엎드려 있는 형국이라 하여 복우산맥이라고 부른다. 동서로 일천 리 가량 길게 누운 복우산맥은 그다지 높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기안괴석으로 이루어진 수려한 풍광은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매어놓는다.

하지만 복우산맥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수려한 풍광이 아니라 장대처럼 쏟아지는 폭우다. 복우산맥에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주변이 물바다로 변하기 전에는 끝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 때문에 여름날 복우산맥을 방문한 자들이 기억하는 건 수려한 절경이 아니라 지겹도록 내려대는 비였다.

복우산맥 동쪽 끝자락에 위치한 마시평.

중원 중부 최대 마시장인 마시평으로 일단의 무리가 찾아든 것은 이른 아침이었다. 검이나 도를 허리춤에 달고 있는 이들은 연우강을 잡기 위해 보를 떠나온 하남 군웅보 무인들이었다.

만승도 곽자후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커다란 광장을 연상케 하는 평원 주변으로는 군에서나 볼 수 있는 막사 형태의 건물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건물 앞에는 나무로 둥글게 친 울타리가 있다.

그리고 남쪽 끝에는 마시장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를 했던 식당이 몇 개 있었는데 식당 대부분은 비어 있었다.

장사가 안 된 탓도 있지만 폭우를 피해 마시평에서 철수한 탓이었다.

“ 텅 비었습니다. 보주님.”

약간 왜소한 듯한 인상의 사내가 곽자후 앞으로 와 보고했다. 그는 군웅보 총관 비호도 냉죽이었다.

“ 원래 여름이 되면 대부분 철수했다가 우기가 끝나면 다시 모여들 거네.”

곽자후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 어디로 자리를 잡을까요?”

“ 들어오는 입구 쪽으로 자리를 잡게, 모닥불을 피우고, 준비한 술통도 내려놓고.”

“ 어떻게 처리하실 참입니까?”

사실 자신들은 이곳에서 보게 될 잠룡들의 얼굴을 본 적도 없고 원한도 없다. 그런 그들을 공격해야 한다는 게 영 께름칙했다.

“ 조직을 아는가?”

“ 우리 군웅보도 조직입니다. 보주님.”

“ 물론 그렇지. 하지만 군웅보는 이백 명이 채 되지 않는 작은 조직이네. 작은 조직은 사적인 감정만으로 일을 추진할 수가 있네. 하지만 거대 조직은 감정이 철저하게 배제되야 하네.”

“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 조직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네.”

“ 하지만.......”

“ 우리만 나선 게 아니네. 만마림에서 철마당 대원들이 오기로 했네. 이번 작전은 그들과 함께 하네.”

“ 그렇군요. 알았습니다. 보주님.”

냉죽은 고개를 숙이곤 대원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잠시 후, 마시평 입구 주변으로 자리를 잡은 군웅보 무인들이 야영을 하는 것처럼 모닥불을 피우고 둘러앉았다. 한시진 가량 그렇게 앉아 있었을까, 이슬비가 내리기 시작할 즈음 또 다른 자들이 출구 쪽을 통해 마시평으로 들어왔다. 그들 또한 무인들이었다.

그들 중 한 명이 나와 만승도 곽자후에게로 다가가서는 몇마디 말을 나누는 듯하더니 여섯 조로 나뉘어 군웅보 무인들이 있는 곳에서 십여 장 후미에 있는 마구간으로 들어갔다.

무인들이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곽자후는 식당으로 몸을 날렸다. 중앙에  위치한 식당 안에는 다섯 명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대야벌을 떠나온 벽력마군 유백천 일행이었다.

“ 반갑소이다. 윤대협.”

곽자후는 섬수 윤효직을 향해 포권을 취하며 인사를 했다.

“ 오랜만이오. 보주. 이쪽은 만마림의 벽력마군 유백천 대협과 암흑마수 낭걸 대협이고 이쪽은 철무련의 천검자 장양락, 천랑마효 낭걸 대형이오.”

“ 위명이 쟁쟁한 분들을 뵙게 되어 영광이외다.”

곽자후는 네 명을 향해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였다.

“ 반갑소. 곽 대협. 오면서 윤 대협으로부터 말을 많이 들었소이다. 군마련을 위해 견마지로를 아끼지 않는 분이라며 칭찬이 자자하더이다.”

벽력마군 유백천이 웃으며 포권을 취했다.

“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빈말이라고 해도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좋았다. 곽자후도 웃는 얼굴로 응대했다.

“ 일을 끝내고 식사를 할 참이오. 그보다 보주가 할 일은 알고 있소?”

“ 놈들에게 시비를 걸어 유인해 오면 된다고 들었습니다.”

“ 그렇소. 보주. 놈들을 없애는 건 우리 철마당이 알아서 할 테니까 군웅보 무인들은 철마당 무인들이 숨어 있는 장소까지 유인만 해주시오.”

“ 알겠습니다.”

“ 우리끼리 할 말이 있소. 보주.”

“ 그럼!”

곽자후는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왔다.

빗방울이 제법 굵어져 있었다. 곽자후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먹구름이 잔뜩 몰려온 걸 보면 한바탕 퍼부을 모양이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느냐고 항변하던 냉죽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 조직이란 호랑이 등과 마찬가지네. 냉죽. 무림이라는 거친 세계에서 대야벌은 호랑이나 다름없네. 그 호랑이 등에 타고 있으면 누구도 우릴 건들지 못하네. 가장 안전한 장소리고 할 수 있지. 하지만 호랑이가 한번 내달리기 시작하면 위험하다고 해서 내리지도 못하네. 내리는 순간 기다리는 건 나락밖에 없기 때문이네.”

그는 나직이 중얼거리며 군웅보 인물들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 쯧!”

곽자후가 서 있는 측면 이십여 장 떨어진 곳의 건물 막사 옆에서 나직하게 혀 차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나이를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노인 세 명이 모닥불이 피워진 곳으로 향하는 곽자후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은 뇌천 만우량의 부탁으로 무영들을 제거하기 위해 나선 칠왕 중 세 명이었다.

“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오른편 철궁을 매고 있는 노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는 활만 있으면 십리 밖에서 기어가는 개미도 쏘아 맞춘다는 궁왕 종만리였다.

“ 이런 경험도 흔치 않는데 일단 구경이나 하세.”

검은 옷을 걸친 노인이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어둠 속에서만큼은 천하제일이란 칭호를 받고 있는 이자는 암왕 유청인이었다.

“ 누가 이길 것 같은가?”

맨 끝에 서 있던 마왕 진자약이 종만리를 보며 물었다. 마시평을 쳐다보는 그의 얼굴엔 흥미로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 자넨 철마당이 이길 걸로 보는 모양이군.”

종만리의 얼굴에 슬쩍 미소가 떠올랐다.

“ 내가 만마림 출신이서 그런 게 아니라 철마당은 강하네. 그리고 철마당 상대는 이제 풋내기들이 아닌가.”

만마림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진자약으로선 당연한 생각이었다. 그는 잠룡들의 만마림을 이길 수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 하지만 그 풋내기들이 생사림 살수 백 명을 비롯해 오살을 없앴네. 그러면서도 십 조는 단 한 명의 희생자도 나오지 않았네.”

사실 십 조와 사월림 살수들의 전투 결과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잠룡 개개인의 실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그 당시 와운곡에는 안개가 잔뜩 끼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단 한 명의 희생도 없었다는 것은 보통내기들이 아니라는 반증이었다.

“ 살수들은 조급한 상태에서 공격을 시도했다는 건 자네도 알잖은가. 살수가 이성을 잃었다는 건 이미 패한 거나 다름없네. 더구나 그곳에 잠룡들만 있었던 게 아니질 않는가.”

“ 하북팽가 무인들을 말하는 겐가?”

“ 그렇지. 아무튼 난 철마당에 열 냥을 걸겠네.”

“ 자네가 철마당에 걸었으니까 난 어쩔 수 없이 십 조에 걸어야겠구만.”

종만리는 품속에서 열 냥을 꺼내 유청인에게 내밀었따.

“ 왜 날 주는가?”

유청인은 의아한 얼굴로 종만리를 보았다.

“ 누군가 판단해 줄 사람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자약 자네도 내놓게.”

“ 어차피 내 돈이 될 텐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진자약은 돈을 꺼내 유청인에게 내밀었다.

“ 그런데 혼세신마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유청인은 돈을 받아들며 물었다.

“ 만마림의 림주인 옥처인을 말하는 건가?”

진자약은 되물었다.

“ 그렇네. 비록 벽력마군 유백천이 철마당 당주라고 하지만, 철마당 무인 이백 명을 이끌고 나오기 위해서는 림주의 재가가 반드시 있어야 하네.”

이게 의문이었다.

옥처인의 이번 조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금 식당 안에 있는 다섯 명은 무성의 무영이면서 대야벌 백대고수에 속해 있는 자들이다. 백대고수 다섯 명이 대야벌을 나선 것만 해도 주목받을 일인데, 유백천은 철마당 대원 이백 명마저 데려왔다.

물론 지금이 암살대전 기간이고, 군웅보를 바람막이로 앞세우긴 했지만 칭찬 받을 만한 일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오점으로 남을 가능성이 더 높다.

굳이 그런 일을 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 그러니까 청인 자네 말은 혼세신마 옥처인도 무영이란 말인가?”

이번에 질문을 던진 사람은 종만리였다.

“ 내 생각은 그렇다네. 만리. 혼세신마 옥처인인 철마당을 출병시킴으로 해서 자신이 무영의 일인이란 사실을 만우량에게 알린 꼴이 됐네. 문제는 왜 그렇게 했냐는 거네.”

“ 청인 자네 말대로 옥처인 그자가 무영의 일인이라면 일부러 철마당을 출병시켰다고 봐야 하네.”

종만리의 말에 유청인과 진자약은 의아한 얼굴로 그를 보았다. 종만리는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 무영이란 신분이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는가?”

“ 무슨 뜻인가?”

유청인은 여전히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며 물었다.

“ 내 질문은 그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고 있는지 그걸 묻는 거네.”

“ 난 무영이 아니네, 만리.”

“ 물론 청인 자네나 자약 자네는 무영이 아니지. 하지만 그들의 마음가짐 정도는 추측해 볼 수 있지 않겠나.”

“ 대야벌을 세웠던 자들의 후손이라는 자부심이나 대야벌에서 무영들보다 더 강한 자는 없다는 그런 마음으로 살고 있을 것 같은데?”

유청인은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했다.

“ 맞네. 엄청난 부자가 누더기를 입고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거리를 활보할 수 있는 것과 같을 거네. 즉 무영들은 대야벌 백대고수에 들어간다거나 각 세력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존재들이었네.”

“ 무영으로 족하단 말인가?”

“ 그렇네. 청인. 그들은 대야벌을 세웠던 무영의 후손이란 사실만으로도 목에 힘을 주고 살았지. 그런데 이번에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한 거네.”

“ 연우강에게 묵사를 줘버린 걸 말하는 건가?”

“ 묵사는 무영들의 지존신물이나 다름없네. 만일 청인 자네가 무영이었다면 그 광경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 것 같은가?”

“ 자존심이 무척 상했겠지. 바보가 된 기분이었을 테고.”

“ 바로 그거네. 그 사건을 계기로 무영들은 모습을 드러내기로 한 거네. 즉 무성을 세력화하기로 결심을 한 거란 말이네. 그 첫 번째 임무가 바로 묵사 회수네.”

종만리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옥처인이 철마당 대원들을 출병시킬 이유가 없었다.

“ 하지만 묵사를 연우강에게 준 사람은 벌주네. 무영들이 드러내놓고 연우강으로부터 묵사를 탈취하는 건 벌주를 거부하는 걸로 비춰질 수도 있네.”

듣고 있던 진자약이 끼어들었다.

“ 무영의 수장이 노리는 것도 바로 그거네. 자약.”

“ 이해할 수가 없군.”

진자약은 고개를 갸웃했다.

“ 보통 다른 세력의 수장들 같으면 감히 연우강의 손에서 묵사를 탈취할 생각을 하지 않을 거네. 어찌됐든 묵사는 대야벌 벌주가 연우강에게 주었고, 그 말은 곧 묵사의 주인이 연우강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는 뜻이 되니까. 그런 연우강의 손에서 묵사를 탈취한다는 건 벌주의 결정에 반하는 행위가 되는 거란 말이네.”

“ 일부런 그렇게 했다는 말인가?”

“ 그렇네. 자약. 이번 일은 무성의 등장을 대야벌 각 세력들에게 알리고, 무영에게는 벌주의 명령도 먹히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기획됐다고 봐야 하네.”

“ 그럼 만우량은 무영들의 그런 움직임을 감지하고 우리에게 도움을 청했다고 봐야 하는 건가?”

“ 맞네. 겉보기엔 허술해 보이지만 내면에는 상당히 많은 의미가 내포돼 있네.”

“ 진실은 항상 수면 아래쪽에 숨어 있단 말이군.”

“ 그렇지.”

“ 그런데 현재 무성의 일인자는 누군가?”

지금까지 상황을 종합하면 무영들이 벌주에게 도전장을 내민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문득 무영을 이끌고 있는 자가 누구인지 궁금했다.

“ 그건 뇌천 만우량만 알고 있을 거네.”

“ 난세의 시작인가?”

진자약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오 년 남은 벌주의 임기. 차기 벌주를 노리는 자라면 지금부터 준비를 해야 하고, 그 준비라는 건 벌주의 세력을 약화시키는 것 밖에 없다.

하지만 아미 강력하게 결속돼 있는 벌주의 세력을 약화시킨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테다. 결국 차기 벌주가 되고자 하는 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전쟁을 유도하여 벌주 친위 세력을 없애는 수밖에 없다.

“ 그렇네. 난세의 시작이네. 그리고 그 시작점은 다른 곳이 아닌 대야벌의 중심이고.”

고개를 끄덕이는 종만리의 얼굴이 잔뜩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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