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장. 지옥청화독공
일단의 무리가 마시평 입구에서 안쪽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낙양을 떠나 신검세가로 향하고 있는 십 조 조원들이었다.
“ 결정해!”
마시평 안쪽 모닥불을 십 장 남겨둔 지점에서 연우강은 군장들을 보며 말했다.
“ 뭘 말입니까?”
후군 군장인 거철산이 물었다.
“ 안으로 들어가면 또 전투를 치러야 하기 때문에 그러는 거야.”
“ 저들이 우릴 공격할 거란 말입니까?”
안쪽의 모닥불로 시선을 주던 거철산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미 또 다른 적의 공격이 있을 걸로 예상하고 준비까지 마친 상태다. 하지만 마시평 안쪽에 있는 자들이 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무기를 지니고 있는 걸 보면 무인이란 사실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무인들 주변으로는 술통이 나뒹굴고 있다. 누군가를 공격할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자들이었다.
거철산이 미심쩍은 얼굴로 마시평을 쳐다보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 잡랑!”
거철산으로부터 만족할 만한 대답이 나오지 않는 듯 연우강은 장사덕을 불렀다.
“ 말씀하십시오. 광랑.”
“ 네 생각은?”
“ 무인들의 전투에서 술은 치명적입니다. 더구나 이곳엔 빈집이 널렸습니다. 굳이 밖으로 나와서 우리 기다릴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 창랑은?”
연우강의 시선이 남궁운화에게로 향했다.
“ 저도 잡랑의 생각과 같아요, 광랑.”
“ 백랑은?”
“ 제 생각도 잡랑과 동일해요. 광랑의 신경이 곤두서 있는 것 같아요.”
“ 그럼 환랑은 어때?”
“ 우릴 기다리고 있는 자들이 맞아요.”
몽요는 수여설 일행과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 정말?”
남궁운화는 깜짝 놀란 얼굴로 몽요를 보았다.
“ 응!”
몽요는 고개를 끄덕였다.
“ 어딜 봐서 그렇다는 거죠?”
질문을 던지는 남궁운화뿐만이 아니었다. 연우강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군장들과 잠룡들 또한 궁금한 얼굴이었다.
“ 그건 광랑에게 물어야지.”
“ 환랑이 말해도 되잖아.”
“ 일은 원래 시작한 사람이 끝내야 하는 겁니다. 광랑.”
“ 좋아, 정리는 내가 할게. 지금 날씨가 어때?”
연우강은 남궁운화를 보며 물었다.
“ 이슬비가 내리고 있어요.”
남궁운화는 손바닥을 하늘을 향해 펴며 대답했다.
“ 하늘 상태는?”
“ 곧 큰 비가 내릴 것 같은데요?”
남궁운화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을 가득 채운 먹구름이 곧 비를 뿌릴 것 같았다.
“ 비 오는데 술병 들고 밖으로 나가는 사람이 있을까?”
“ 그건......”
남궁운화는 말끝을 흐렸다.
“ 거랑 넌?”
“ 저도.....”
거철산은 머리를 긁적였다.
“ 비를 고스란히 맞아가며 술을 먹는 부류는 그다지 많지 않아. 실연을 당한 자거나, 부모님이나 또는 자식을 잃은 자들은 슬픔이 북받치면 날씨완 상관없이 술을 마실 수도 있어. 하지만 저것들은 절대 실연을 당하거나, 부모나 자식을 잃은 행색이 아니잖아. 더구나 주변엔 쉴 곳이 널렸고.”
“ 그럼?”
“ 그래서 결정을 하라는 거야.”
“ 어떤 결정을 하라는 겁니까?”
“ 여기서 몸을 돌리면, 약간을 돌아가야겠지만, 신검세가로 갈 수는 있어.”
“ 우리가 도망치면 쫓아오지 않을까요?”
“ 쫓아오지 않을 거면 저 녀석들이 여기서 기다릴 이유나, 내가 네게 결정하라고 할 이유가 없잖아.”
“ 그럼 끝까지 쫓아올 거란 말이군요.”
“ 우발적인 결정이 아니고, 어떤 목적을 가지고 우릴 기다렸다면 다리가 잘리긴 전까진 계속 쫓아올 거야.”
“ 전 잠만큼은 편하게 자고 싶습니다. 광랑.”
거철산의 몸에서 차가운 기운이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 다른 사람들은?”
“ 저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광랑. 저희들에겐 잠이 가장 중요합니다.”
잠룡들은 우렁창게 소리쳤다.
“ 그럼.. 죽여!”
연우강은 손괭이와 낫을 뽑아 들고 군웅보 무인들을 향해 내달렸다.
“ 정리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 정리하라!”
“ 끝내라.”
각 군장들은 각자의 무기를 뽑아들고 마시평 안으로 몸을 날렸다. 거칠게 내달리는 그들의 몸에서 진득한 살기가 쏟아져 나왔다.
툭! 툭툭! 툭!
쏴아....!
십 조 잠룡들이 몸을 날리는 그 순간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 헉!”
곽자후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원래 계획은 이게 아니었다.
놈들이 안으로 들어오면 인사를 하고 술을 권한 다음 적당히 시비를 붙여 식당이 있는 곳으로 후퇴할 참이었다. 철마당 대원들이 기습할 수 있는 여건만 만들어주면 자신의 임무는 끝난다. 그런데 놈들은 그럴 기회도 주지않고 공격을 감행해 온 것이다.
“ 준비하라!”
곽자후는 도를 뽑아 들며 고함을 내질렀다.
후퇴가 아니라 대응을 결심한 건 순전히 자존심 때문이다. 그래도 하남에서는 군웅보, 하면 상당히 강한 문파로 알려져 있다. 그런 자신들이 대야벌 정식 무인도 아니고 제자들을 피해 도망칠 수는 없었다. 더불어 적의 수가 아군보다 적다는 사실도 한몫 했다. 곽자후의 명령에 군웅보 무인들은 일제히 무기를 뽑아 들었다.
“ 간~다! 가~라!”
“ 새카만 이리가 벌판을 달린다!”
연우강의 선창에 이어 잠룡들은 함성을 내지르며 군웅보 무인들을 향해 짓쳐 들어갔다.
“ 차앗!”
“ 타앗!”
군웅보 무인들은 호기 있게 고함을 내지르며 무기를 번쩍 들어 올렸다.
차앙! 창창창! 창창!
그러나 잠룡들은 이제 무공을 익히기 시작한 초보들이 아니었다. 잠룡대전을 거치고, 살수들과 싸워온 그들은 백전노장이라고 부르기엔 무리가 있지만, 그렇다고 적을 앞에 두고 위축될 자들은 더덩구 아니었다.
“ 크악!”
“ 아악!”
“ 으아악!”
군웅보 무인들의 무기를 밀어 친 잠룡들의 무기가 허공을 가르자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비명에 이어 군웅보 무인들의 선두가 우수수 무너져 내렸다.
쏟아지는 빗속에 가장 위력을 발휘하는 무공은 수여설의 빙하빙백강이었다. 백발로 변한 그녀가 양손을 휘둘를 때마다 시릴 듯한 냉기가 주변을 강타했다.
“ 컥!”
“ 윽!”
“ 억!”
그녀의 빙하빙백강은 비명을 길게 지르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빙하빙백강에 격중된 자들은 비명을 끝내기도 전에 허옇게 굳었고, 곧 얼음조각으로 부서져 내렸다.
“ 잡랑!”
연우강은 군웅보 무인의 목에 낫을 꽂아 넣으며 장사덕을 불렀다.
“ 하명하십시오. 광랑!”
“ 술통 부수지 않게 조심해.”
“ 술통은 왜?”
“ 끝나고 한잔 해야 할 거 아냐?”
“ 알겠습니다. 광랑!”
장사덕은 피식 웃으며 오른손을 후려치듯 뿌렸다.
그의 오른손에서 쏟아져 나온 장풍은 군웅보 무인 얼굴에 작렬했다.
“ 크악!”
“ 술통을 부수는 놈은 신검세가까지 기어서 갈 줄 알아라!”
장사덕은 좌우로 움직이며 연신 염왕수를 쏟아내며 고함을 내질렀다.
“ 알겠습니다.”
바로 앞에서 적의 검이 쏘아져오고, 피 냄새가 진동하면서 잠룡들의 행동이 더욱 거칠어졌다.
안개 속에 숨어 공격해 왔던 사월림 살수들에 비하면 군웅보 무인들의 공격은 훨씬 수월했다. 적의 무기를 막고 공격을 가하는 잠룡들의 얼굴에 여유가 넘쳤다.
반면에 군웅보의 보주 곽자후의 얼굴은 검게 죽었다.
“ 이럴 수가.”
곽자후는 멍한 눈으로 전면을 보았다.
상대는 단 오십 명에 불과하다. 그런데 군웅보 무인들이 검 한 번 휘둘러보지 못하고 죽임을 당하고 있다.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꿈처럼 느껴졌다.
“ 원래 그런 거다. 곽자후. 남의 등에 기댄 놈의 말로는 대부분 같아.”
연우강은 곽자후 앞으로 걸어가며 이죽댔다.
“ 날 아느냐?”
“ 나는 적을 모르는 상태에서는 가급적 싸우지 않아. 넌 막사 안쪽에 숨어 있는 놈들은 숨기기 위해 동원된 쓰레기란 사실도 알아.”
“ 죽일 놈!”
곽자후는 도를 치켜들고 연우강을 향해 몸을 날렸다. 허공으로 불쑥 솟구친 그는 연우강의 머리를 향해 도를 사정없이 내리찍었다.
차앙!
연우강은 왼손에 쥐고 있던 손괭이를 들어 올려 곽자후의 도를 막았다.
“ 응?”
곽자후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원래 무기를 휘두를 때 상대방의 무기나 또는 어떤 물체가 무기를 막아서는 경우엔 순간적으로 힘을 더 주게 되고, 무의식적으로 반발에 대비를 한다.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반잘력이 느껴지지 않으면 중심이 흐트러질 수밖에 없다. 단단한 땅인 줄 알고 발을 디뎠는데, 구덩이를 밟았을 때와 같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곽자후가 그랬다. 마치 물속을 향해 도를 휘두른 것처럼 도에 서린 힘이 쑥 빠져나가자, 그는 한순간 당황했다. 찰나에 삶과 죽음이 결정되는 무인에게 한순간이라 할 지라도 멈칫거림은 치명적이다.
움찔하는 곽자후의 목을 향해 연우강의 낫이 날았다. 곽자후는 다급히 고개를 뒤로 젖혔다. 일행이 있으니까... 난 포위당한 셈이네.”
푸욱!
“ 커억!”
낫이 뚫고 들어간 옆 목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곽자후는 멍한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 그냥 있었으면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죽었을 텐데.”
연우강은 고개를 저으며 낫을 뽑아냈다.
털썩!
곽자후는 목을 감싸쥐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 쓸모없는 놈들!”
식당에서 전투를 지켜보고 있던 섬수 윤효직은 인상을 찌푸렸다. 군웅보 무인들에게 큰 기대를 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저렇듯 철저하게 당할 줄은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전투를 시작한 지 일 각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남은 무인의 수는 이삼십 명에 불과하다. 마치 어른과 어린아이의 싸움을 보고 있는 듯했다.
“ 더 늦기 전에 철마당을 투입해야겠소. 유 대협.”
윤효직은 유백천을 보며 말했다.
군웅보 무인들의 전멸 때문이 아니라 혼란한 와중에 연우강을 떨어뜨려 놓기 위해 하는 말이었다.
“ 그들이 보이지 않소. 윤대협.”
“ 그들이라면.....”
“ 호위무사들 말이오.”
“ 그렇소.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검탄강기까지 구사한다고 하였소.”
“ 그 말을 믿소?”
유백천은 웃으며 물었다.
“ 완전하게 믿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도...”
“ 그 말을 한 놈이 바로 연우강이오. 윤 대협. 그리고 호위 대금은 오십만 냥이라고 하였소. 세 사람이니까 일 인 당 십칠만 냥 꼴인데, 만일 윤 대협이 검탄강기를 구사하는 고수라면 그런 일을 하겠소?”
유백천 또한 그 소문을 듣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검탄강기는 이기어검술 바로 아래 단계고 그 정도 경지에오른 자라면 대야벌 이십대 고수 안에 들어갈 정도로 초극 고수라고 할 수 있다.
대야벌 소속이 아닌 자들 중 그런 강자가 있을 리도 없을뿐더러, 설사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런 엄청난 실력을 지닌 자들이 호위무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평생을 대야벌에서 살아왔고, 대야벌에 속하지 않는 무인의 수준은 군웅보 무인 정도라고 생각하는 유백천으로서는 당연한 생각이었다.
그가 두작군 일행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 신경 쓸 필요 없다는 거요?”
“ 그렇소. 윤대협.”
“ 알았소이다. 그럼 놈을 격리시키도록 합시다.”
“ 잠깐만 기다리시오.”
[ 부당주!]
유백천은 왼편 막사를 향해 전음을 보냈다.
그곳에는 부당주인 잔혹마도 옥천균이 이편을 쳐다보며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 하명하십시오. 당주님.]
[연우강과 잠룡들을 가를 수 있겠나? ]
옥천균의 전음이 들려오자 유백천은 물었다.
[ 연우강만 따로 떼어놓으란 말입니까?]
[ 그렇네.]
[ 그렇게 하려면 좀더 기다려야 합니다. 아직 놈들이 우리 앞에까지 오지 않았습니다.]
[ 그때까지 기다리게 되면 군웅보 무인들이 전멸하고 난 다음이 될 거네. 놈들이 전열을 가다듬을 시간을 줘서는 안되네.]
[ 지금 하는 게 낫다는 말입니까?]
[ 그렇다네. 부당주.]
[ 알겠습니다. 당주님. 당장 시작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옥천균은 문 틈 사이로 시선을 주었다. 조장인 연우강은 본대와 이 장 정도 떨어진 곳에서 군웅보 무인들을 향해 무기를 휘두르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부하들을 보았다.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잔뜩 긴장해 있는 부하들의 입에서는 거친 숨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 우리 목표는 연우강 놈을 잠룡들과 떨어뜨려 놓는 거다.”
“ 그 다음엔 어떻게 합니까?”
부하 중 한 명이 물었다.
“ 무슨 말이냐?”
“ 잠룡들을 어떻게 처리할 건지 지침을 내려주십시오.”
“ 우린 유람을 나온 게 아니라 전쟁을 치르기 위해 이곳까지 왔다. 잠룡들이 거치적거리면... 베어라.”
“ 존명.”
철마당 무인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 시작하라.” 옥천균은 버럭 고함을 지르며 문을 향해 쌍장을 뿌렸다.
콰앙!
그의 장력이 출입문을 강타하고, 커다란 문이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 와아!”
“ 우와!”
철마당 무인들은 고함을 지르며 전방으로 뛰쳐나갔다. 그들이 뛰쳐나감과 동시에 나머지 막사에서도 철마당 무인들이 고함을 지르며 뛰어나왔다. 무기를 뽑아든 철마당 대원들은 연우강과 본대 사이로 몸을 날렸다.
[광랑!]
우군을 맡고 있는 수여설은 연우강에게 전음을 보냈다.
[ 계획대로 해.]
연우강은 전음을 보내며 뒤편으로 몸을 날렸다.
[ 알았어요.]
수여설은 고개를 끄덕이며 전 내공을 끌어올렸다.
그러고는 몸을 날려 오는 철마당 무인들을 향해 힘차게 쌍장을 뿌렸다.
쩌엉!
그녀의 주변이 얼음구덩이로 변하고, 새하얀 광채가 전방을 향해 폭사돼 나갔다.
“ 빙공이다. 피하라!”
옥천균은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그의 손에 들린 도가 번쩍 들어 올려지고, 힘차게 허공을 갈랐다.
콰앙!
쿵쿵쿵!
옥천균은 비틀거리며 세 걸음이나 물러났다. 그리고 선명하게 찍힌 발자국을 보며 경악했다. 잠룡들이 강하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설마 자신을 물러나게 할 줄은 생각지 못한 탓이었다.
“ 죽일!”
“ 흥!”
옥천균이 자세를 잡으려는 순간, 전방에서 비웃는 듯한 코웃음과 함께 또다시 차가운 기운이 밀려왔다. 옥천균은 감히 태만하지 못하고 내렸던 도를 힘차게 위로 걷어올렸다.
“ 기다렸다, 놈!”
수여설은 오른 손에 이어 왼손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옥천균에게 쏘아냈던 빙강은 허초였던 것이다.
“ 마, 막아라!”
허초에 속은 사실을 알아차린 옥천균은 부하들을 향해 고함을 내질렀다. 그러나 부하들의 실력으로는 빙하빙백강의 강기를 막아낼 수 없었다.
퍽! 퍼억!
“ 크아악!”
“ 아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철마당 대원 세 명이 얼음조각으로 부서져 내렸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오른편에서도 처절한 비명과 함께 십여 명의 철마당 대원들이 피를 뿌리며 쓰러지고 있었다.
“ 죽인다!”
옥천균은 고함을 내지르며 몸을 날렸다.
하지만 그가 몸을 날린 만큼 수여설도 뒤로 물러났다. 그녀는 계속해서 빙하빙백광을 발출하며 물러났다.
“ 백랑! 튀어!”
“ 이제 시작인데, 튀긴 뭘 튀어요.”
“ 백랑 앞에 있는 그 새끼는 만마림의 림주인 혼세신마의 동생이야. 혼세신만 그놈이 없었더라면 그 새낀 철마당 부당주 자리에 앉지도 못했을 거라고.”
“ 혼세신마 그 자식이 저 새낄 지독히 사랑한단 말인가요?”
“ 그래, 그 새낄 죽이면 혼세신마도 나올 거라고, 그런 새끼는 죽이지 않는 게 나아!”
“ 하지만 조금만 더하면 저 새낄 없앨 수 있다고요.”
“ 죽여봐야 남는 게 없는 새끼라니까, 빨리 튀어.”
“ 알았어요. 광랑. 너 운 좋은 줄 알아 새꺄!”
수여설은 옥천균을 향해 빙하빙백강을 발출하고는 몸을 돌려 들어왔던 곳을 향해 달려갔다. 이미 대부분의 잠룡들은 몸을 날려가고 있었다.
으드득!
옥천균의 입에서 이 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가 제일 싫어하는 게 바로 형님의 후광으로 철마당 당주가 됐다는 말과 새끼라는 말이었다. 그런데 방금 두 연놈은 자신을 향해 형님의 후광으로 철마당 부당주가 됐다고 부하들 앞에서 떠벌린 것은 물론이고, 말끝마다 이 새끼 저 새끼라고 한 것이다.
“ 오냐, 개자식아. 너희 연놈을 죽이지 못하면 난 개 아들이다. 진짜 개새끼라고.”
옥천균은 부하들을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 놈들을 잡아 내 앞에 대령하라!”
“ 존명!”
철마당 무인들은 우렁차게 소리치며 십 조를 쫓아 몸을 날렸다.
[ 부당주! 부당주!]
귓전으로 유백천의 전음이 들려왔지만, 그는 무시했다. 방금 죽어간 부하들만 해도 수십 명이 넘는다. 지금은 당주의 명령이 아니라 그들의 복수가 먼저였다.
[ 내 말 안 들리나!]
유백천은 전음으로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그러나 마시평 밖으로 몸을 날려 가는 옥천균과 철마당 대원들은 멈추지 않았다.
“ 빌어먹을 놈!”
유백천은 욕설을 내뱉었다.
“ 허허허! 옥천균이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오. 유 대협.”
장양락의 얼굴에 슬쩍 미소가 맺혔다 사라졌다.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는 옛말처럼 부하에게마저 무시당하는 유백천을 보는 게 그다지 기분 나쁜 경험은 아니었다.
“ 그렇소. 장 대협. 저놈은 화가 나면 제 형도 몰라보는 놈이오. 아주 성질이 못돼먹었소이다.”
“ 그 동안 마음고생이 심했겠소이다. 그려.”
“ 말도 마시오.”
유백천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우리도 갑시다.”
장양락을 필두로 일행은 밖으로 나왔다. 이미 십 조 조원들과 철마당 대원들은 마시평을 빠져나간 후였다.
“ 서두릅시다.”
장양락을 비롯한 다섯 명은 바닥을 차며 마시평 입구로 몸을 날렸다.
그들이 떠난 반 각 후, 건물 옆에서 세 사람이 걸어 나왔다. 그들은 궁왕 종만리 일행이었다.
“ 일이 점점 재미있어지는 것 같네.”
종만리는 마시평 입구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 그러게 말이네. 잘 싸우던 녀석들은 패한 척 도망을 치고, 철마당 대원들은 미친 듯이 쫓아가고, 아주 가관이네 그려.”
유청인은 진자약을 보았다. 조금 전 철마당은 아주 강한 단체라고 하였던 말에 대한 비아냥거림이었다.
“ 내가 있을 때는 정말 강했다니까. 그러네. 헛소리 그만하고 가세.”
진자약은 걸음을 재촉했다.
“ 급하게 갈 필요가 무에 있는가. 우린 승부가 난 다음에 모습을 드러내면 되네. 그때까지 장양락 그놈들이 살아 있으면 없애면 되고, 죽었으면 연우강 그 녀석을 계속 따라다니면 되잖은가.”
종만리는 느긋하게 말하며 걸음을 옮겼다.
바닥은 질척한 늪지와 같은데 외형은 계곡처럼 생긴 이곳은 보통 산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특이한 지형이다.
사람들은 이곳을 습지와 계곡이 합쳐졌다고 하여 습곡이라고 부른다. 보통 습곡은 물 빠짐이 좋지 않거나, 통풍이 거의 되지 않는 곳에 생겨나는데 그런 장소는 습기를 좋아하는 곤충이나 동물들의 서식지가 되고, 식물 또한 그런 종류로만 자란다. 더불어 그러한 동식물 중에는 독을 함유하는 것들이 많아 사람이 거의 들어가지 못하고, 그런 상황이 수십 년에서 수백 년 지속되다가 대기마저도 독을 함유하게 되는데 그 독을 일컬어 장독이라 부른다.
욱일승 일행이 들어간 수곡도 습곡의 한 종류였다. 바닥은 물을 댄 논처럼 질척하고 동식물 또한 늪지에서 자라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한 가지 다행이라면 습지 상층부를 형성하고 있는 대기는 독을 내포하지 않아 활동에는 큰 지장이 없다는 것이었다.
“ 이걸로....”
두작군은 얼굴을 찌푸렸다.
지금 그의 발치로는 쇠로 만들어진 특이한 물체가 놓여 있었다. 마치 커다란 조개껍질을 좌우로 벌려놓은 형태로 생긴 그것은 짐승들을 잡을 때 사용하는 덫이었다.
이곳으로 오기 전 연우강의 지시로 만들기는 했지만 무인들에게 효과가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 이걸로 눌러보게.”
두작군을 쳐다보고 있던 갈인효가 나뭇가지 하나를 내밀었다. 나뭇가지를 받아 든 두작군은 덫 가운데 작은 판을 나뭇가지로 눌렀다.
철컥!
“ 허!”
발목 두께의 나뭇가지가 절반 정도 잘려나가자 두작군의 입이 쩍 벌어졌다. 설마 그 정도로 강할 줄은 생각지 못한 탓이었다.
“ 그걸로 끝이 아니네.”
“ 또 있습니까?”
“ 내 손을 거쳐 가야 완성된다네.”
갈인효는 나뭇가지를 물고 있는 덫을 다시 원래대로 편 다음 두 손에 쥐고 내공을 주입했다. 순간 그가 쥐고 있던 덫이 푸른색으로 변했다가 다시 본래의 색으로 되돌아갔다.
“ 뭐 하는 거요?”
“ 지옥청화독을 바르는 거네.”
“ 그게 바르는 겁니까?”
“ 그 녀석이 그러더군. 일 처리는 무인답게 하라고 말이네.”
갈인효가 싱긋 웃으며 덫을 건넸다.
“ 누구 죽일 일 있습니까?”
두작군은 펄쩍 뛰며 물러났다. 지옥청화독은 갈인효가 묘강독존으로 불릴 때 성명절기인 지옥청화독공으로 만들어낸 독이다. 사십 년 전에도 만독림 최고 독공이었던 그것에, 주화입마를 극복하면서 새롭게 얻은 심득의 기운까지 내포돼 얼마나 강해졌는지 짐작조차 못한다. 그런 독공이 스며든 덫을 건네주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허공섭물을 이용해서 저곳으로 던져놓게.”
갈인효는 습지 바닥을 턱으로 가리켰다.
“ 저긴 물속입니다. 형님.”
“ 약효가 조금 약해지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철마당 놈들 정도는 저승으로 데려갈 수 있을 거네.”
“ 습지 물도 독수로 변하는 거 아닙니까?”
“ 그거야 부수적으로 얻어지는 효과 아닌가.”
갈인효는 빙그레 웃었다.
“ 서둘러라. 인요.”
수곡 입구 쪽에서 욱일승이 몸을 날려오며 소리쳤다.
“ 넌 끝난 거냐?”
“ 입구 쪽은 이미 작업 끝났다.”
“ 알았다.”
고개를 끄덕인 갈인효는 한편에 수북이 쌓여 있던 덫을 쥐고 내공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준비한 덫은 전부 삼백 개였다. 삼백 개라고 하지만 작업 속도는 빨랐다. 갈인효가 빠르게 내공을 주입하고 다른 이들은 허공섭물로 주변에 던져 넣자, 한식경도 지나지 않아 작업은 마무리됐다. 그 작업이 끝나자 욱일승 일행은 계곡 입구에서부터 마른땅이 있는 곳까지 나뭇가지를 박아 넣어 징검다리를 만들었다.
그러고는 자신들의 흔적을 지우고 계곡 안쪽으로 들어갔다.
욱일승 일행이 계곡 안쪽으로 들어간 그 시각, 입구를 향해 빠르게 달려오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마시평에서 도망친 십 조 일행들이었다. 그들을 이끌고 있는 사람은 좌군 군장인 남궁운화였다.
“ 나무 기둥을 밟고 가라!”
그녀는 잠룡들에게 소리치며 안쪽으로 이어진 나뭇가지로 만들어진 징검다리를 밟고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 좌, 우측으로 장력을 뿌려라!”
좌군에 이어 두 번째로 도착한 거철산이 좌, 우측으로 양손을 뿌리며 안쪽으로 몸을 날려갔다.
그에 이어 다른 잠룡들도 손을 휘젓자, 마치 우르르 몰려 들어가는 것처럼 물줄기가 사방에서 튀었다. 중군과 염왕수 장사덕이 이끄는 중군과 몽요가 이끄는 전군도 좌우로 장력을 뻗어내며 들어가고 마지막에 수여설이 이끄는 우군과 연우강이 도착했다.
우군 대원들은 앞서간 대원들이 그랬던 것처럼 손을 좌우로 휘두르며 안으로 달려들어갔다.
“ 먼저 들어가요.”
“ 광랑은 안 들어가요?”
수여설은 방금 지나쳐 왔던 길로 시선을 주며 물었다. 빗소리가 적의 기척마저도 집어삼켜버린 듯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지금 상황에서는 적과 얼마나 떨어져 있는 지 판단할 수가 없었다.
“ 난 여기서 할 일이 있어요.”
“ 할 일이라고요?”
그녀는 의아한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 처리할 놈들이 있거든요.”
“ 처리할 자들이라면?”
“ 다섯 놈이 더 있습니다.”
“ 누가 더 있다는 거죠?”
“ 자칭 대야벌 신비라고 부르는 놈들입니다.”
“ 무영들도 와 있어요?”
“ 난 걱정 말고 얼른 들어가세요.”
연우강은 수여설의 등을 떠밀었다.
“ 괜찮겠어요?”
수여설은 계곡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면서도 눈은 연우강에게로 가 있었다.
작은 할아버지로부터 연우강의 무공에 대해 대충 듣기는 했지만 정확하게 어느 정도인지는 알지 못한다. 그런 그가 무영 다섯을 상대한다고 하니 공연히 걱정스러웠다.
“ 걱정돼요?”
연우강은 수여설을 빤히 쳐다보았다.
“ 내가?”
수여설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 잔뜩 걱정스런 얼굴인데요?”
“ 그렇게 보여요?”
수여설은 정색했다.
“ 혹시 날 좋아하는 거예요?”
“ ......?”
수여설은 멍한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설마 그에게 그런 말을 듣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 말이 없는 건 긍정을 의미한다고 했는데.”
“ 훗!”
수여설은 얼결에 픽 웃었다. 연우강이 귀엽다는 생각이 불현 듯 들었다.
“ 착각한 모양이네. 아무튼 난 자신 없는 일은 시작도 안합니다. 수 소저. 그리고 날 도와줄 사람도 있으니까 걱정 마세요. 놈들이 오고 있으니까 어서 들어가세요.”
연우강은 고개를 젓더니 다시 수여설의 등을 떠밀었다.
“ 상대는 다섯 명이라고... 아!”
수여설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오른편 숲에서 네 명의 기척이 감지된 것이었다.
“ 징검다리는 부수고 들어가세요.”
“ 노력해 볼게요.”
수여설은 안쪽으로 몸을 날렸다. 첫 번째 나뭇가지 앞에 선 그녀는 발을 디딤과 동시에 강하게 빙하빙백강을 일으켰다.
쩌엉!
나뭇가지가 새하얗게 변하더니 곧 얼음조각으로 부서져 내렸다. 그렇게 나뭇가지로 만든 징검다리를 얼음조각으로 만들며 계곡 안쪽으로 들어갔다.
“ 무슨 말이죠?”
연우강은 멀어지는 수여설을 보며 물었다.
[ 아직 좋은 남자를 만나지 못했다는 말이에요.]
수여설은 빠르게 안으로 들어가며 전음을 보냈다.
“ 그 성격에 좋은 남자를 만나면 그게 더 이상한 겁니다. 아무튼 긴장이 풀린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 제가 긴장했다는 걸 어떻게 알았죠?]
“ 핏속에 살기가 스며들기 전에는 누구나 긴장합니다.”
[ 호호호! 하여간 고마워요.]
수여설의 모습이 이내 빗속으로 사라졌다.
“ 공연한 소리를 한 건가....”
“ 저기다! 저곳으로 들어가고 있다!”
“ 이크!”
뒤쪽에서 내공이 가득 실린 외침이 들려오자 연우강은 오른편으로 몸을 날렸다. 그가 울창한 나무 사이로 모습을 감추는 순간 철마당 대원 일행이 수곡 입구에 도착했다. 철마당 대원 선두에 있는 자는 부당중 옥천균이었다.
옥천균은 빠르게 좌우를 훑었다.
곳곳에 뿌리가 드러난 풀들이 널려 있었다.
여러 명이 동시에 들어간 흔적이 분명했다. 여러 명이 동시에 급하게 바닥을 밟고 들어갔다면 습지 바닥에는 아무런 함정도 없다는 말이 된다.
“ 서둘러라!”
옥천규은 부하들에게 고함을 지르며 안쪽으로 몸을 날렸다.
“ 와아!”
“ 우와아!”
철마당 대원들은 거침없이 수곡으로 진입해 들어갔다.
“ 컥!”
“ 크윽!”
“ 으윽!”
안으로 뛰어 들어갔던 철마당 대원들이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풀썩풀썩 쓰러졌다.
“ 무슨 일이냐?”
옥천균이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 처, 철질려가 사방에 깔렸습니다.”
“ 철질려라고?”
옥천균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철질려는 뾰족한 날을 각 방향에 달아 어떤 방향으로 놓더라도 네 개의 날 중 하나는 위를 향하도록 만든 무기다. 적의 공격 속도를 늦출 때 간혹 상용되곤 하는데, 뾰족한 날 부분에 독을 바르는 게 일반적이었다.
“ 그렇습니다. 부당주님.”
“ 상황은 어떠냐?”
“ 습지에 깔려 있는 바람에 상처는 깊지 않습니다. 더불어 독도 없는 것 같습니다.”
“ 독이 없단 말이지.”
옥천균은 전면을 노려보았다.
십 조 조원들의 모습은 물론이고 빗소리 때문에 기척조차 감지되지 않고 있다.
“ 어떻게 할까요?”
“ 여기서 그만두고 벌로 돌아가고 싶은 게냐?”
옥천균은 되물었다.
여러 가지 의미가 내포된 질문이었다.
이번 일은 사적인 일이 아니라 철마당 전체 일이다. 소문을 내고 나오진 않았지만, 철마당 대원 이백 명이 십 조를 공격하기 위해 출병했다는 사실은 대야벌에도 알려졌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아무런 성과도 없이 철수한다면 자신들은 앞으로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다.
사소한 부상은 무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 아닙니다. 놈들을 반드시 없애고 말 겁니다.”
“ 가자!”
“ 놈들을 없애라!”
철마당 대원들은 고함을 내지르며 몸을 날렸다.
철질려에 당하는 대원들이 속출했지만 이번엔 비명조차 지르지 않았다. 대원들 또한 옥천균과 같은 생각이었다. 잠룡들과 전투에서 패하고 돌아가면 얼굴을 들지 못할 거라는 생각.
그런 생각이 그들을 더욱 악착같이 만들었다.
“ 크악!”
“ 아악!”
삼십여 장 정도 달렸을 때, 지금까지와는 다른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철질려가 아닌 다른 암기가 습지 바닥에 깔려 있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지만, 옥천균은 무시했다. 아니 이미 수십 명이 철질려에 당해 쓰러졌는데 부상자가 더 생겨난ㄴ다고 해서 놀랄 일도 아니었다.
“ 부상자는 한편으로 빠져 몸을 추슬러라.”
옥천균은 부하들을 독려하며 전방을 향해 달려갔다.
다른 대원들 또한 다르지 않았다. 옆에서 동료들이 풀썩풀썩 쓰러지고 어지러운 기분이 들었지만 무시하고 몸을 날렸다.
“ 크악!”
“ 아악!”
“ 으아악!”
“ 놈들을 갈갈이 찢어발기기 전에는 결코 대야벌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분노한 목소리가 옥천균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 우와!”
“ 와아!”
“ 으아아!”
철마당 대원들은 괴성을 내지르며 전방을 내달렸다.
철벅! 철벅! 철벅!
“ 으악!”
“ 아악!”
“ 크악!”
“ 내발!”
습지 물이 사방으로 튀고, 처절한 비명이 계속해서 들려왔지만, 철마당 대원들은 전방으로 질주해 갈 뿐 동료들을 돌보지 않았다. 어느새 습지는 끝을 보이고 있었다.
“ 놈들!”
질척한 물 대신 마른 땅의 감촉이 전해져오자 옥천균은 도를 불끈 틀어쥐었다.
“ 서둘러라!”
그는 고함을 지르며 빗속을 뚫고 내달렸다. 그렇게 백여 장 정도를 달려가자 비로소 계곡 끝이 나왔다. 그리고 높다란 절벽 아래쪽에 십 조 잠룡들이 비를 맞으며 서 있었다. 십여 장 앞까지 빠르게 내달린 옥천균은 비로소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적을 치기 전에 부하들의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그는 재빨리 부하들을 훑었다.
계곡을 지나오는 동안에 절반 정도가 낙오한 듯 구십여 명 정도만 남아 있었다. 하지만 옥천균은 걱정하지 않았따. 그 정도만 있어도 잠룡들을 충분히 없앨 수 있다고 확신한 탓이었다.
“ 더는 도망칠 곳이 없었던 모양이구나. 놈들!”
옥천균은 전방을 노려보며 차갑게 말했다.
“ 우릴 공격하려는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남궁운화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 옛말에 모진 놈 옆에 있다가 벼락 맞는다고 했다. 너희들은 연우강을 따르지 말았어야 했다.”
“ 그러니까 조장 때문에 우릴 공격했단 말인가요?”
“ 그렇다. 계집. 너희들이 죽는 이유는 순전히 그놈 때문이다. 원망하고 싶으면 그놈을 원망해라. 물론 저승에 가서 말이다. 공격하라!”
옥천균은 부하들을 향해 고함을 내질렀다.
하지만 철마당 대원들은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게냐?”
옥천균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철마당 대원들은 석상이 된 것처럼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 당신 부하들은 독을 몰아내느라 정신이 없어요. 부당주.”
“ 무슨?”
옥천균은 깜짝 놀라 부하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쳐다보는 부하의 얼굴에 검은 반점이 생겨나 있었다.
“ 저 계집 말이 맞습니다. 부당주님. 우린 전부 독에 중독됐습니다.”
옥천균과 시선이 무주친 철마당 대원은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 저, 정말 독이란 말이냐?”
옥천균은 급하게 진기를 끌어올려 온몸으로 돌려보았다.
“ 헉!”
옥천균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알 수 없는 기운이 급격하게 온몸을 잠식해 들어가며 마비 증상이 오고 있었다.
“ 댁들은 독수로 목욕을 한 상태에요. 옥 대협, 저승으로 갈 사람은 우리가 아니라 바로 당신들이에요.”
파악!
남궁운화의 신형이 가공할 속도로 쏘아져 나갔다.
“ 쳐라!”
“ 한 놈도 남기지 마라!”
곧이어 장사덕과 거철산의 외침이 터져 나오고, 절벽 근처에 서 있던 잠룡들이 철마당 대원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 마, 막아!”
옥천균은 도를 들어 올리려고 팔에 힘을 주었다.
그러나 마치 수천 근 나가는 물건을 들고 있는 것처럼 팔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 다른 사람은 몰라도 연 공자는 절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어요, 옥 대협.”
남궁운화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 크아악!”
곧 처절한 비명과 함께 옥천균의 머리가 허공으로 둥실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