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백수-58화 (58/232)

제 5장 접대

스스스! 츠츠츠!

마치 막대기로 물살을 젓는 듯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콰악! 퍽!

앞으로 내밀었던 손이 주먹을 움켜쥐자, 공기가 팽팽하게 들어찬 물방울이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 저건?”

연우강을 지켜보던 기운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루 이틀 본 광경이 아니었다. 당루에서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아침 저 모습을 보여왔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가 손을 뻗어내고 움직이는 모습은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다. 지켜보는 게 지겨울 정도로 그의 움직임은 느렸고, 어떤 기세도 감지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아침은 달랐다.

동작은 전날과 같은데 기세가 풍겨 나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믿어지지 않는 광경이었다.

어떻게 내공조차 끌어올리지 않고 뻗어낸 팔이 기세를 풍긴단 말인가? 아니 설사 내공을 끌어올린 상태라고 해도 저렇듯 천천히 뻗어내며 기세를 풍긴다는 건 쉽지가 않았다.

비단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뻗어내는 팔에서, 앞으로 내민 다리에서, 그의 상쳉서, 아지랑이처럼 투명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 기운은 아직은 미약하여 집중해야만 알아차릴 수 있지만 분명 어제와는 달랐다.

“ 뭡니까?”

옆에 있던 방세남도 연우강의 몸에서 이는 변화를 감지한 듯 기운상을 보며 물었다.

“ 몰라.”

기운상은 고개를 저었다.

“ 대형은 만겁신마 기운상이고 흑천의 천주 대행입니다. 그런 분이 모르면 누가 압니까?”

“ 나도 저 친구를 만나기 전까지는 모르는 게 없다고 생각한 때가 있었어. 하지만 지금은 아냐.”

기운상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

“ 혹시 잠룡들이 말한 무극지도 아닐까요?”

“ 어쩌면 그럴지도.”

“ 무슨 대답이 그렇습니까?”

“ 모르는 걸 물으니까 그렇지.”

“ 끄응! 경천사마라는 이름이 부끄럽기는 또 처음입니다.”

“ 시체가 필요해.”

느닷없이 연우강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두 사람은 고개를 들었다.

“ 무슨 말인가?”

기운상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 우리 식구는 전부 봤잖소. 거기에다 스무 살 정도 되는 처자만 있으면 되오.”

“ 그러니까 여섯 구의 시체를 구해오란 말인가?”

“ 북쪽으로 가면 공동묘지가 있소.”

“ 공동묘지로 가면 시체가 나온다고 하던가?”

“ 남자 시체는 없어도 되지만 여자 시체 세 구는 반드시 구해 와야 해, 영감.”

“ 시간은 얼마나 있는가?”

“ 잠룡 십조는 나흘 후면 도착할 거요.”

“ 그 안에 구해와야 한단 말이군.”

“ 그래야 완벽해지오.”

“ 그런데 자넨 뭐 할 건가?”

“ 먼저 오는 손님을 접대해야지, 뭐 하겠소.”

“ 먼저 온 손님이라고?”

“ 무면천군단 삼백 명이 먼저 방문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소, 영감.”

“ 여, 염병할 놈! 가자, 동생.”

기운상은 연우강을 노려보다가 밖으로 몸을 날려갔다. 그와 방세남의 신형은 곧 금릉전에서 모습을 갑췄다.

“ 무슨 일인가?”

약을 달여 나오던 혈수참마 남도욱이 아연한 얼굴로 물었다.

“ 급하게 할 일이 있는 모양이오. 주시오.”

연우강은 남도욱이 가져온 약사발을 받아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 다시 돌아오는 것 같은데.”

입구 쪽에서 옷자락 펄럭이는 소리가 들려오자 남도욱은 고개를 돌렸다.

“ 그들이 아니오, 영감. 지금 오는 자는 한 사람이오. 아울러 두 영감보다 더 패도적인 기운을 간직하고 있소. 이런 기운을 뿌릴 수 있는 자는......”

약을 마시다 말고 연우강은 정원에 심어져 있는 떡갈나무로 향했다.

휘리릭!

그의 시선을 받은 떡갈나무는 마치 미지의 힘이 작용한 듯 부르르 떨리더니 잎이 떨어져 나왔다.

“ 야, 자식아!”

묵직한 소리와 함께 거대한 덩치가 금릉전 담을 넘어 들어왔다. 바로 그 순간, 떡갈나무에서 떨어져 나온 잎들이 일제히 덩치 사내를 향해 쏘아져 갔다.

“ 헉!”

느닷없이 낙엽들이 쏘아져 오자 사내는 신음을 삼켰다. 허공에 떠 있던 사내는 순식간에 철판교 수법으로 몸을 눕히며 허공을 향해 양손을 휘둘렀다.

콰앙!

그의 손에서 쏘아진 장력이 허공을 가득 채운 낙엽을 치자, 반발력을 받은 사내의 몸이 빠르게 지상으로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허공에 머물고 있던 낙엽들 또한 다시 방향을 틀어 사내를 따랐다.

퍼억!

등으로 바닥을 쳐서 다시 몸을 띄운 사내의 신형이 이번엔 오른편으로 가공할 속도로 이동했다. 사내가 움직이면서 사용한 경공은 이어타정이란 수법이었다.

휘리릭!

가공할 소성과 함께 낙엽들이 무서운 속도로 사내를 쫓았다.

“ 타앗!”

어느 틈에 자세를 바로 한 사내의 입에서 우렁찬 기합이 터져 나왔다. 그의 양손은 번개처럼 움직이고 강한 바람을 동반한 기운이 전면을 휩쓸었다.

“ 오! 강권!”

지켜보던 남도욱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손을 내뻗을 때마다 주먹 형태의 푸른 색 강기가 낙엽을 쳐내고 있었다.

휘리릭!

하지만 낙엽도 엄청났다.

권강에 의해 잘게 부서졌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흩어지지 않고 하나로 무쳐 사내를 향해 쏘아져 들어갔다.

“ 이야압!”

바닥을 박찬 사내의 신형이 어기충소의 수법으로 솟구쳐 올랐다.

휘리릭!

사내를 따라 낙엽들이 한 무더기로 뭉쳐 솟구쳐 올랐다. 마치 거대한 눈덩어리가 사내를 향해 나아가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 타앗!”

허공으로 솟구친 입에서 재차 고함이 터져 나오고 그의 양손이 낙엽을 향해 쭉 내밀어졌다. 순간 어른 키 크기의 거대한 주먹 형태의 강기가 낙엽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 오! 패왕수라권!”

남도욱의 입에서 또다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연우강의 공격을 받는 자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지금 펼치는 무공은 완벽한 패천림의 지존무공이라고 불리는 패왕수라천경을 바탕으로 펼치는 권법이었다.

“ 너무 커!”

연우강은 낮게 호통을 치며 양손을 휘둘렀다.

“ 무슨 소리냐?”

거대한 강기 주먹 위쪽에서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 고수들의 싸움에서는 공격 반경이 넓을 필요가 없어. 하나의 점이면 모든 것을 끝난다, 막장.”

그랬다.

빠른 속도로 몸을 날려 금릉전의 담을 넘어왔던 사내는 무면천군단이 금릉 연 씨 세가를 공격한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밤낮 없이 달려온 막장이었다.

“ 점을 만드는 방법은 압축이다!”

연우강의 신형이 둥실 떠올랐다. 허공으로 솟아올라 양손을 활짝 폈다. 그러자 그의 가슴 주변으로 쟁반처럼 커다란 강기 막이 생겨났다.

연우강은 양손을 천천히 안쪽으로 오므렸다. 손이 오므려지면서 가슴 앞에 만들어져 있던 강기막 또한 크기가 줄어들었다.

“ 이렇게 압축된 강기는 엄청난 탄성을 갖게 된다. 방향만 잡아주면 굳이 내공을 동원하지 않아도 가공할 속도로 쏘아진다.”

연우강은 박수를 치듯이 양손을 사정없이 합쳤다.

푸아악!

그 순간 조금 전 압축됐던 강기가 무서운 속도로 쏘아져 나갔다. 가히 어두운 동굴에 뚫린 작은 구멍 사이로 비춰드는 빛 같았다.

잔상을 남길 정도로 빠르게 나아간 강기의 빛줄기는 조금 전 연우강이 마라천력으로 잎을 뜯어낸 떡갈나무로 밖혀 들어갔다.

푸스스!

엄청난 광경이었다. 강기의 빛이 파고들었던 부분에 커다란 구멍이 생겨나며 떡갈나무가 우지끈 쓰러졌다.

가루로 변한 부분은 방금 연우강이 강기를 압축하기 전에 만들었던 쟁반 크기와 같았다.

“ 고도로 압축된 강기는 그 자체가 가공할 무공이 되고 그 압축 강기에 암기를 싣는 게 바로 암기술이다.”

연우강은 바닥으로 내려섰다.

“ 그, 그게 암기술이라고?”

막장은 반갑다는 말을 잊을 정도로 놀랐다.

단순히 암기에 특수한 장치를 해서 방향을 조절하는 걸로 생각했던 암기술에 저런 엄청난 무공 원리가 숨어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거였다.

놀란 사람은 비단 막장뿐만이 아니었다.

흥미로운 얼굴로 막장과 연우강의 대결을 지켜보던 남도욱과 나중에 나온 지철도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 원리가 그렇다는 말이야.”

“ 워, 원리가 그렇다면?”

“ 대부분은 사냥꾼 수준이니까 겁먹지 마, 인마.”

“ 사냥꾼은 또 무슨 소리냐?”

“ 우리 암기 세계에서는 던져서 적을 잡는 놈들을 사냥꾼이라고 하고 나처럼 쏘아서 잡는 자들을 비로소 무인이라고 부른다.”

“ 철전패왕 백독수도 너 정도냐?”

“ 미친놈!”

“ 아니라는 말이구나.”

막장은 헤벌쭉 웃었다.

“ 네가 아까 만들었던 그 멍청하게 생긴 주먹을 실제 네 주먹 크기로 만들 수 있다면 넌 그놈을 일 초 만에 죽일 수 있을 거야.”

“ 정말?”

“ 그래, 인마.”

“ 어떻게 하는 거냐?”

막장은 잔뜩 기대 어린 얼굴로 물었다.

“ 저길 봐.”

연우강은 바닥에 흩어진 낙엽 부스러기를 턱으로 가리켰다.

“ 뭘 보라는 거냐?”

휘리릭!

막장이 낙엽으로 시선을 주는 순간 그것들은 한점으로 모여들더니 둥글게 뭉쳤다.

“ 눈싸움 할 일.....”

막장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단순히 뭉치는 정도가 아니라 낙엽들은 정말로 눈을 뭉쳐 놓은 것처럼 단단해지고 있었다.

“ 네가 강기를 저렇게 만들면 돼.”

“ 어떻게 한 건데?”

“ 넌 천재다, 막장. 천재는 스스로 알아내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야.”

“ 야, 자식아! 아무리 천재라도 저건 불가능해.”

“ 저렇게 하라는 게 아니고 노력을 하라는 거야. 전에 내가 이야기했지. 다스리기 위해서는 먼저 친해져야 한다고. 지금도 그거 하고 있냐?”

“ 뭐?”

“ 아침 운동.”

“ 그건....”

“ 하여간 너는 길을 가르쳐줘도....”

연우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자식아 그동안 얼마나 바빴는지 알아? 하루에 한 시진씩 자면서 무공을 익혔단 말이야!”

“ 그래서 기껏 한다는 짓이 물건 키우는 거냐?”

“ 그, 그건 패왕수라천경의 십이 성 경지란 말이야, 자식아.”

“ 하여간 쥐뿔도 없는 것들이 물건만 크면 좋은 줄 알아, 자식아, 허우대만 멀쩡하면 뭐 해! 쓸모가 없는데.”

“ 하여간 비유를 해도 별 거지 같은 걸 들먹여. 내일부터 시작하면 되잖아.”

“ 정말?”

“ 저걸 보고도 안 하면 그게 사람이냐?”

막장은 여전히 둥근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낙엽 덩어리를 가리켰다. 연우강이 기운을 끊었음에도 불구하고 낙엽 덩어리는 여전히 눈송이처럼 뭉쳐 있었다.

“ 하여간 천재라고 좀 키워줬더니 지가 정말 천잰 줄 알아, 그런데 어쩐 일이야?”

“ 네 집이 공격당한다는 말을 듣고 쌍방울이 떨어져 나가도록 달려왔다. 그런데 다 어디 갔어?”

“ 도망갔지 어딜 갔겠냐, 들어가자.”

“ 그새?”

“ 원래 약한 종자들일수록 위험을 빨리 감지하는 법이야.”

연우강은 금릉전 안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 그럼 넌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건데?”

“ 접대 준비 하고 있지 뭐 하고 있겠냐?”

“ 접대?”

“ 응! 아버지가 떠나면서 극진하게 대접을 해서 보내라고 하더라.”

“ 보내다고?”

막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연우강의 성격상 적을 그냥 보내줄 녀석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막장은 다시 질문을 던졌다.

“ 혹시 무면천군단 단주가 벌주의 둘째 아들인 월마 담대민이란 사실을 알고 있는 거냐?”

“ 무슨 말이야?”

“ 그냥 보내준다며?”

“ 저 위로 보낼 건데?”

연우강은 허공을 가리켰다.

“ 저 위?”

“ 저승 말이다. 자식아.”

“ 난 또.”

막장은 그럼 그렇지 하는 얼굴로 피식 웃었다.

“ 형수씨는 잘 지내?”

“ 아버지까지 돌아왔으니까, 최고지 뭐.”

“ 그런데 천옥엔 왜 들어갔대?”

“ 지옥에 갇힌 분들 중에 아버지가 있었나 보더라.”

“ 그러니까 마음에 들지 않았던 놈들도 없애고, 아버지에 대한 것도 조사할 겸해서 천옥으로 들어갔다는 거야?”

“ 그건 아냐. 그의 아버지가 지옥에 갇힌 사건을 은밀하게 조사를 하고 있었는데, 그 조사 도중에 철전패왕 백독수가 세력을 거느리고 있는 걸 알아냈대.”

“ 백독수란 놈의 배후는 누구였지?”

“ 백독수에게 배후가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냐?”

“ 넌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신인이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해?”

“ 간혹 그런 사람도 있잖아.”

“ 그런 사람은 없어. 막장. 그런 사람의 과거를 파헤치면 다른 사람과 달리 엄청난 노력을 했음을 알게 돼. 하지만 그 노력만 가지곤 절대 성공할 수 없어. 성공을 하려면 노력에 운이 더해져야 하는데, 그 운이라는 게 보통은 막강한 권력을 쥔 자들과 인연이기 쉬워, 너만 봐도 알잖아.”

“ 내가 뭘?”

“ 넌 죽어라 노력하는 천재잖아. 하지만 네가 올라갈 수 있는 건 대야벌 백대고수 꼴지가 끝이야. 그런데 넌 날 만났고 머잖아 패천림의 림주가 되잖아.”

“ 날 칭찬하는 거냐, 아니면 자화자찬하는 거냐?”

막장은 피식 웃었다.

“ 우린 공범이니까 둘 다지. 그보다 누구야?”

“ 범천담대세가.”

“ 담대만승?”

“ 그의 동생인 담대천호래.”

“ 군마련의 련주?”

“ 응!”

“ 이녁 식구들끼리 다 해먹고 있구만.”

“ 그래야 오랫동안 그 자리에서 버티잖아.”

“ 그런 것도 알아?”

“ 자식아, 난 밥만 축내는 식충이가 아냐. 나도 생각이란 걸 하고 산다고.”

“ 형수씨하고는 잤어?”

“ 지금 그 이야기가 왜 나오는데?”

“ 밥만 축내고 사는 게 아니라며?”

“ 그러니까 밥하고 자는 거 하고 무슨 상관이냐고 묻잖아.”

막장은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 밥, 네가 해먹어?”

“ 연화가 있는 데 왜 내가 해?”

“ 넌 해주는 밥만 처먹고?”

“ 아, 아직 혼인도 안 했잖아. 자식아.”

“ 지랄하고 있네. 너 남편의 의무가 뭔지 알아?”

“ 그런 것도 있냐?”

“ 당연히 있지. 남편이 되면 세 가지 의무사항이 따르는데 그건 반드시 지켜야 해.”

“ 뭔데?”

“ 첫째는 막장 네가 가장 자신 있는 밥 처먹는 거야. 부인이 해준 음식은 음식의 질이나 상태에 상관없이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처럼 먹어야 해.”

“ 질이나 상태라는 건 무슨 말이냐?”

“ 맛이 있건 없건, 음식이 상했든 상하지 않았든 무조건 입 안으로 밀어 넣어야 한다는 소리야. 그때는 물론 아주 행복한 표정을 짓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해.”

“ 그럼 두 번째는?”

“ 그 두 번째가 음식의 질과 상태를 결정하게 되는데, 그게 바로 밤일이야.”

“ 바, 밤일이라고?”

“ 그래, 인마. 부부 사이에서 사랑은 입으로만 하는 게 아냐. 입과 몸으로 함께해야 완전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어. 그걸 잘했을 때 밥상이 풍성해지고 질 좋은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거야.”

“ 세 번짼 돈이냐?”

“ 그렇지. 풍성한 밥상과 질 좋은 음식을 올리고 싶어도 돈이 없으면 불가능하잖아.”

“ 일리가 있네.”

“ 일리가 있는 게 아니라 넌 심각한 거야. 자식아. 돈은 쥐꼬리만큼 벌어오고 밤일은 부실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없으면서, 먹는 것만 돼지새끼처럼 처먹어 봐라. 너 같으면 그런 잡놈이 사람으로 보이겠냐?”

“ 내가 그렇다고?”

“ 전에 내가 지어준 약은 먹어?”

“ 그, 그게 장인 어른이 무슨 약이냐고 묻기에...”

“ 그러니까 안 먹는단 말이지?”

“ 응!”

퍼억!

막장이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연우강의 주먹이 그의 뒤통수를 강타했다.

“ 야, 자식아!”

“ 나가 죽어, 병신아.”

“ 난 지금 패천십관에 도전하는 일로 머리가 터질 지경이라고, 다른 생각할 겨를도 없다는 건 너도 알잖아.”

“ 도전을 왜 하는데?”

“ .........?”

“ 도전을 왜 하냐고 묻잖아.”

“ 그, 그거야.....”

“ 권력을 쥐려고 하는 것, 돈을 많이 벌려고 하는 것. 명예를 탐하는 것, 남들에게 존경받고 싶어하는 모든 것들의 기본 바탕에는 ‘함께’라는 말이 반드시 들어가야 해. ‘가족과 함께’, ‘사람하는 사람과 함께.’ ‘친구와 함께’ 라는 기본 바탕이 깔려 있어야 독선과 아집으로 흐르지 않아. 그러한 것을 빼고 권력이나 돈 등을 취하려고 한다면 일은 네 이름처럼 막장으로 흐를 수밖에 없어. 그런 자의 말로는 대부분 비참해지고.”

“ 아무튼 그놈의 주둥인....”

말은 그렇게 하지만 구구절절 맞는 말이기 때문에 딱히 반론할 수도 없었다. 막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말았다.

“ 그런데 이렇게 한가하게 있어도 되는 거냐?”

술병이 놓여 있는 금릉전 안쪽을 보며 막장이 물었다. 연우강도 그렇고 그와 함께 있는 두 노인의 얼굴에서도 적을 기다리는 긴장감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 드러난 위험은 위험이라고 할 수 없는 거야. 그보다 배고플 텐데 일단 밥부터 먹어라.”

연우강은 막장을 이끌고 부엌으로 들어가 먹거리를 대충 챙겨주었다.

“ 그렇다고 해도 적은 삼백 명이나 된다. 연우강. 더구나 담대민은 벌주의 둘째 아들이고.”

“ 삼백 명 가지고 뭘 고민하고 그래, 일단 먹고 한숨 자. 저녁부터 바빠질 테니까.”

“ 오늘 저녁?”

“ 원래 기습은 밤에 해야 제 맛이거든, 먹고 있어.”

연우강은 싱긋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

“ 저 자식은 어째 웃는 게 더 무서워.”

막장은 몸아 부르르 떨며 탁자 위로 시선을 주었다. 탁자 위에는 식어 빠진 소고기 야채볶음이 한 접시 놓여 있었다.

***********

부엉! 부우!

간간이 들려오는 밤새 울음은 밤을 더욱 밤답게 해주는 장치라고 담대민은 생각한다. 아마도 밤새 울음이 없다면 밤은 더 어둡고 무서웠을 테다.

담대민은 저 멀리 금릉 연씨 세가로 시선을 던졌다. 각 건물의 처마 밑에 걸린 유등만 밝혀져 있을 뿐 사람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 너무 조용해.”

금릉 연씨 세가에 대한 정보에는 오백 명 이상이 거주하는 걸로 나와 있었다. 그런데 불만 밝혀져 있을 뿐 오가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더구나 지금은 여름이 아닌가.

후텁지근한 바람이 분다고 해도 방 안보다는 밖이 훨씬 시원하다. 오가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 대비를 하고 있는 걸로 받아들이면 되는 건가?”

담대민의 눈에 차가운 광채가 어렸다.

“ 쿡!”

담대민은 조소를 흘렸다.

지금 강호의 이목은 천마삼경으로 쏠린 상태고, 대야벌의 각 세력은 물론이고 강호 무림에서 목에 힘깨나 준다는 자들은 천마삼경을 얻기 위해서라는 미명 하에 묵은 은원을 해결하고 있다. 금릉 연씨 세가에서 돈을 내놓는다고 해도 도와줄 자는 그다지 많지 않다.

설사 금릉 연씨 세가를 돕기 위해 온 자들이라고 해도 삼류 무인이 전부일 테다.

휙!

“ 다녀왔습니다. 단주님.”

바로 그때 경공을 펼칠 때 나는 바람소리와 함께 복면 사내가 담대민 앞으로 부복했다. 그는 네 명의 부단주 중의 한 명인 야혈귀 마동으로, 연씨 세가보다는 주변 상황을 정찰하러 갔었다. 혹시 관부의 인물이라도 있으면 작전에 차질이 올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 어떻더냐?”

“ 아무도 없습니다.”

“ 주변은 깨끗하단 말이냐?”

“ 그렇습니다. 금릉 연씨 세가 주변에는 인가가 없습니다. 설사 비명이 흘러나온다고 해도 크게 문제될 게 없습니다.”

“ 차 부단주.”

담대민은 마동 옆에 있는 복면인에게 시선을 주었다. 무쇠로 된 철곤을 지니고 있는 이자는 무적곤 차관수로 그 역시 마동과 마찬가지로 부단주였다.

“ 하명하십시오, 단주님.”

“ 다섯 명을 데리고 연씨 세가 안쪽을 정찰하라.”

“ 적을 만나게 되면 어떻게 할까요?”

“ 오늘 공격하는 건 변하지 않는다. 없애라.”

“ 존명!”

고개를 꾸벅 숙인 차관수는 뒤편으로 이동했다. 잠시 후 무면천군단 진영에서 여섯 명이 금릉 연씨 세가를 향해 몸을 날렸다. 연씨 세가 주변은 야트막한 동산과 밀밭이 어우러져 있었다. 밀밭을 가로지른 차관수 일행은 야트막한 동산을 지나 담 아래쪽에 멈췄다.

담은 일 장 높이였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던 차관수는 부하들에게 넘어가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휙!

그의 신호가 떨어지자 무면천군단 다섯 명이 동시에 지면을 박차고 솟구쳐 담을 넘었다. 다섯 명이 넘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자 차관수는 곧바로 담을 넘었다.

“ 응?”

스치듯 담 상층부를 넘어가던 차관수의 입에서 놀란 듯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잠깐에 불과했지만 담 상층부에 도달한 순간 차가운 기운을 느꼈던 것이다.

마치 추운 겨울, 방문을 활짝 열었다 닫았을 때 새어드는 그런 차가움이었다. 바닥으로 내려선 그는 재빨리 주변을 훑었다.

“ 아무도 없습니다. 부단주님.”

먼저 내려섰던 자가 나직이 말했다.

“ 안까지 확인한다.”

“ 알겠습니다.”

차관수 일행은 주변을 살피며 천천히 진입해 들어갔다. 그러나 몇 개의 건물을 확인했지만 아무도 없었다.

‘ 이상한데.......’

차관수는 고개를 갸웃했다.

사람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건물마다 불은 전부 켜져 있는 것이 마치 적을 유인하려는 모양새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 아이고, 왜 이렇게 덥냐.”

막 건물 처마 밑을 지나치려는데 멀리서 불만이 잔뜩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 저긴?’

차관수는 눈을 가늘게 모아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보았다. 그의 시야에 금릉전이라고 쓰여진 글이 들어왔다.

한밤중임에도 불구하고 광채를 발하는 걸 보면 밤에도 빛나는 물감으로 쓴 듯했다. 차관수는 손짓으로 나아가라는 지시를 하며 조심스럽게 금릉전을 향해 접근했다.

끼이익!

오 장여 떨어진 곳에 도착했을 때 느닷없이 금릉전 문이 천천히 열렸다.

‘ 헉!’

차관수 일행은 일제히 그 자리에 납작 엎드렸다.

하지만 문만 열렸을 뿐, 밖으로 나온 자는 아무도 없었다.

[ 기다려라!]

차관수는 부하들에게 전음을 보낸 후 천리지청술을 펼쳐 금릉전 안쪽을 살폈다.

‘ 빌어먹을!’

그는 내심 욕설을 뱉어냈다.

조금 전 사람의 목소리를 들었고, 지금은 문까지 열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릉전 안에서는 인기척이 감지되지 않았다. 정찰을 나왔다면 최소한 적의 실력은 어느 정도인지, 몇 명이나 있는지는 확인하고 돌아가야 하는데 아직 알아낸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공연히 짜증스러웠다.

‘ 조금만 더 기다려보고.’

그는 천리지청술을 유지한 채로 금릉전을 주시했다. 그렇게 한식경 정도 시간이 흘렀다.

[ 전진하라!]

결국 차관수는 안으로 들어가야겠다고 마음을 잡았다. 자칫 잘못하면 부하들이 희생될 수도 있겠지만, 부하들의 희생보다는 임무가 더 중하다.

그들은 최대한 몸을 사리면서 금릉전 안으로 들어갔다.

끼이익!

“ 헉!”

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오자 차관수 일행은 반사적으로 담 아래로 몸을 날렸다.

‘ 이건.......’

주변을 살피던 차관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문이 닫혔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그를 비롯한 다섯 명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금릉전 대문을 열고 닫았다는 것은 분명 누군가가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일 각이 흐르고 이 각이 흘렀다.

[ 계속 이렇게 있을 겁니까?]

[ 조금만 더 기다려라.]

조바심 어린 부하의 전음이 들려왔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 담에 꿀을 발라둔 것도 아닌데 그 자식들 엄청나게 질기네.”

“ 억!”

“ 헉!”

“ 이런!”

느닷없이 머리 위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차관수 일행은 일제히 신음을 지르며 발을 튕겼다. 돌발상황에 대처하는 훈련을 많이 받은 듯 부지불식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섯 명이 몸을 날리는 방향은 전부 달랐다.

차관수는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고, 나머지는 전방으로 두 명, 좌측에 한 명, 그리고 우측으로는 두 명이 움직였다.

“ 쯧!”

슈아악!

쐐액!

혀를 차는 듯한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오고, 여섯 명을 향해 동시에 가공할 기운이 쏘아져 들어갔다.

퍼억!

“ 크악!”

파앙!

“ 아악!”

처절한 비명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그리고 허공으로 솟구쳤던 차관수의 뒷목으로는 검은 광채를 뿌리는 사망낭조가 파고들어 갔다.

“ 커억!”

차관수는 고개를 돌려 자신을 공격한 자를 보았다.

“ 넌?”

“ 연우강이야.”

연우강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 어떻게.....?”

“ 내가 걸음이 좀 빠르거든.”

연우강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차관수의 목에 박아 넣었던 오른 손을 뽑아냈다.

“ 꺼억! 하, 하지만 무면천군단은......”

차관수는 말을 끝내지 못하고 절명했다.

“ 여기서 전부 죽을 거야. 단 한 놈도 남김없이.”

차관수의 시체를 아래로 던져버린 연우강은 무면천군단이 숨어 있는 곳을 쏘아보았다.

“ 어떻게 된 거야.”

담대민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차관수가 부하를 데리고 떠난 지 반 시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돌아오지 않고 있다.

“ 마 부단주!”

담대민은 차관수가 떠나기 전 주변을 정찰하고 왔던 마동을 불렀다.

“ 하명하십시오, 단주님.”

“ 열 명을 데려가서 확인하고 오너라.”

“ 존명!”

뒤편으로 물러난 마동은 경공에 강점이 있는 부하들을 뽑아 연씨 세가의 담을 넘었다.

“ 조 부단주.”

멀어지는 마동 일행을 지켜보던 담대민은 야향 조일관을 불렀다.

“ 하명하십시오.”

“ 우리도 연씨 세가 근처로 이동한다.”

“ 연씨 세가 십 장 전면까지 이동한다!”

야향 조일관의 목소리가 나직이 울려 퍼지고 무면천군단 일행은 소리 없이 이동했다. 일 각 후 무면천군단은 연씨 세가 정문에서 십여 장 떨어진 곳에 당도하여 정문을 중심으로 좌우로 늘어서며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그렇게 일 각 정도가 흘렀지만 안으로 들어갔던 마동을 비롯한 열한 명은 밖으로 나오지 않았을 뿐 아니라 싸우는 소리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무면천군단 대원들의 시선이 하나둘 담대민에게로 향했다. 결정을 내려달라는 눈빛들이었다.

부하들의 눈빛이 의미하는 바를 담대민이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공격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차관수는 몰라도 마동은 그가 가장 신뢰하는 부단주였기에 설사 죽음이 임박해도 안쪽에 대한 정보를 가져올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연씨 세가 앞에 당도하여 한식경이 지났지만 안에서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 도대체.’

담대민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아직 새벽이 오려면 멀었지만 가급적이면 밤에 일을 끝내야 한다. 마당 안으로 들어간 자들이 나오길 기다릴 수는 없었다.

결국 견디다 못하고 벌떡 일어났다.

휙!

이어 그의 손이 허공을 가로 질렀다.

파앗! 파악! 파랏!

담대민을 주시하고 있던 무면천군단 무인들이 일제히 몸을 날렸다. 십여 장을 질주해 간 그들은 망설임 없이 금릉 연씨 세가의 담을 넘었다.

“ 각 조는 지시 받은 대로 행하라!”

“ 사람은 물론이고 개도 남기지 마라.”

“ 풀뿌리까지 완전하게 제거하라!”

“ 시간은 반 시진이다. 임무를 마친 자들은 중앙의 금릉전으로 집결하라!”

부단장 및 각 조의 조장들의 명령을 들은 무면천군단 무인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 아무래도 이상해!”

담대민은 사방으로 흩어지는 부하들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차관수가 다섯 명을 데리고 들어갔고, 이어 마동이 열 명의 부하들을 데리고 들어갔다. 모두 열일곱 명이 이곳으로 들어왔는데, 그들의 흔적은 물론이고 사람이 있다는 기척조차 감지되지 않고 있다.

마치 뒤를 닦지 않고 화장실을 나온 것처럼 공연히 찜찜했다.

담대민은 주변을 살피며 걸음을 옮겼다. 그가 있는 곳에서 금릉전까지 일직선 길이었다. 그리고 그 길 좌우 측에는 일이 층 건물이 십여 장 간격으로 늘어서 있었다.

“ 부단주, 건물을 확인해라.”

담대민은 뒤따르고 있는 조일관을 향해 낮게 말했다.

“ 알겠습니다.”

고개를 숙인 조일관이 다시 부하들에게 눈짓으로 지시를 내리자 십여 명씩 조를 짠 무면천군단 무인들이 건물 안으로 뛰어들었다.

잠시 후, 무면천군단 무인들은 고개를 갸웃하며 밖으로 나왔다.

“ 무슨 일이냐?”

건물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조일관이 물었다.

“ 아무도 없습니다.”

“ 정말이냐?”

“ 그렇습니다. 개미새끼 한 마리 없습니다.”

“ 다른 건물로 들어가 보아라!”

“ 알겠습니다.”

조일관의 명령에 무면천군단 무인들은 길을 따라가며 건물로 들어갔다. 그러나 잠시 후 그들은 처음과 마찬가지로 고개를 갸웃하며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오십여 장을 전진하였고, 이십여 채 이상의 건물을 훑었지만, 사람이 있는 건물은 없었다.

담대민은 몸을 돌려 방금 지나쳐 왔던 건물들을 보았다. 모든 건물에는 유등이 달려있고 하나같이 불이 밝혀져 있다. 누군가 일부러 밝히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가 건물을 확인하는 사이에 무면천군단 무인들은 앞으로 나가가며 각 건물을 확인했다.

“ 없습니다. 단주님.”

보고하는 조일관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지금껏 많은 임무를 수행했지만, 오늘처럼 기분이 언짢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돌아오지 않는 자들부터 시작하여 담을 넘었을 때 느꼈던 차가운 느낌까지,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수렁으로 빠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 금릉전에 숨어 있을 것이다.”

담대민은 애써 태연하게 말했다.

그 또한 심정은 조일관과 비슷했다. 불을 켜놓았다는 건 사람이 있다는 말이고, 그건 정찰을 나왔던 차관수와 마동 일행을 없앴다는 말이 된다.

무면천군단 열일곱 명이 이곳에서 당했는데 아무런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다면 상대들은 그만큼 강자라는 의미였다.

“ 우린 천상천 최정예인 무면천군단이고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었다. 금릉전까지 곧바로 진군한다.”

“ 존명!”

휙!

고개를 꾸벅 숙인 조일관은 진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의 명령을 받은 무면천군단 무인들은 지면을 스치듯 경공을 펼치며 금릉전으로 향해 나아갔다.

일행은 곧 금릉전이 올려다보이는 장소에 도착했다. 담 너머로 보이는 금릉전 삼 층에는 여러 개의 유등이 처마를 따라 빙 돌아가며 걸려 있었다.

금릉전을 보며 잔뜩 긴장된 마음을 추스르고 있는데 정문 앞에서 흩어졌던 무면천군단 무인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담대민은 무면천군단 무인들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시선이 마주친 부단장 및 각 조장들은 한결같이 고개를 저었다.

“ 말을 아낄 필요는 없다.”

담대민은 내공을 실어 말했다.

아무도 없다는 말은 적이 이미 자신들의 공격을 알아차렸다는 말이 된다. 기습이 실패한 이상 굳이 전음이나 수신호로 의사를 전달할 이유가 없었다.

“ 단 한 놈도 없습니다. 단주님.”

오른편에서 무면천군단 무인 한 명이 소리쳤다.

“ 다른 쪽은 어떠냐?”

“ 북쪽도 마찬가집니다. 단주님.”

“ 이쪽도 마찬가집니다. 단주님.”

각 방향을 맡았던 자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 그럼 오백 명이나 되는 놈들이 전주 저 안에 숨었단 말이냐?”

“ 아냐.”

그의 질문에 대한 답은 금릉전 담 위에서 들려왔다.

담대민은 천천히 시선을 들었다.

담 너머에서 네 명이 허공으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검은 철립을 쓰고 검은 옷을 걸친 자와 철장마도 막장, 그리고 처음보는 노인 두 명이었다. 담 위로 솟구친 네 명은 담에서 한 뼘 가량 떨어진 허공에 멈춰 섰다.

“ 연우강?”

담대민이 검은 철립 사내를 연우강이라 생각한 이유는 옆에 있는 막장 때문이었다.

“ 환영합니다.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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