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백수-63화 (63/232)

제 10장 살인자는 연우강이었습니다.

윤성빈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비어져 나왔다.

금의위 위사였던 부친 덕분에 남들이 군역에 가는 열여섯 살 때 금의위로 들어왔다. 선배들의 잔심부름부터 시작한 금의위 생활이었지만 부친의 가르침으로 어린 시절부터 권법을 익히고 있었던 터라, 금의위에 내려준 상승절기를 익히는데 남들보다 빨랐고, 무공이 강해지면서 승진도 빨랐다. 열여섯 살에 시작하여 서른에 천이백 명의 위사를 거느린 천호가 됐으니 가히 초고속 승진이라고 할 만했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금의위 남경 지부장으로 발령이 난 이후 십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남경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남들이 보기엔 북경 다음으로 강력한 권력을 쥔 곳이 남경이지 않느냐고 반문하겠지만 일이 년도 아니고 벌써 십 년 세월이었다.

그런데 오늘 상부에서 북진무사가 내려왔다.

일이 있어 북로정군에 들었ㄷ가 남경을 거쳐 북경으로 갈 거라고 하였던 그는 이제 서른 두 살이었다.

천리포영 남철진.

금의위 최고 기재라는 그를 보자 문득 자신의 신세가 처량해졌다.

“ 내 영역 밖인 걸.....”

윤성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접니다. 지부장님.”

바로 그때 백호 권일룡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무슨 일인가?”

“ 이상한 첩지가 왔습니다.”

“ 들어오게.”

문이 열리고 백의를 걸친 사내가 들어왔다. 그는 백포사라는 별호로 불리는 남경 지부의 이인자였다.

“ 무슨 첩지가 왔다는 건가?”

“ 이겁니다. 지부장님.”

권일룡은 접힌 첩지를 내밀었다.

“ 이 밤중에 온 걸 보면 심각한.....”

첩지를 펼쳤던 윤성빈의 얼굴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 친애하는 지부장께’라는 인사말로 시작한 첩지에는 금릉 연씨 세가가 폭발할 거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던 거였다.

“ 누가 가져온 건가?”

윤성빈은 고개를 들며 물었다.

“ 허공을 날아와 문설주에 꽂혔다고 합니다.”

“ 이게 문설주에 꽂혔단 말인가?”

윤성빈은 첩지를 들어 보였다.

남경 지부의 문설주는 바싹 말라 검도 잘 들어가지 않는다. 그런 곳에 종이를 꽂았다면 보통 무인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 그렇습니다. 지부장님. 그래서 보고하러 온 겁니다.”

“ 자네 생각은 어떤가?”

윤성빈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 사실 여부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 그렇네.”

“ 문설주에 종이를 꽂을 정도로 엄청난 무공을 가진 무인이 거짓 투서를 한다는 것도....”

“ 그럴 수도 있겠군. 위사들을 집합시키고 대기하게.”

“ 알겠습니다. 지부장님.”

권일룡이 나가자 윤성빈은 첩지를 들고 영빈관으로 향했다. 상부 손님이 올 때만 개방하는 영빈관은 윤성빈 숙소 뒤편에 있었다.

“ 어쩐 일이십니까?”

경계를 서던 자가 윤성빈 앞을 막아섰다. 그는 절패검 관정수로 한때 대야벌 황궐에서 활약했던 자였다.

“ 급히 진무사를 봐야 할 일이 생겼소.”

“ 지금 주무십시다. 지부장. 내일 아침에 오십시오.”

관정수는 매몰차게 잘랐다.

“ 무슨 일이 생기면 전적으로 댁이 책임져야 하는데 그래도 괜찮소?”

윤성빈은 차가운 눈초리로 물었다.

“ 물론이오. 지부장. 내가 책임.....”

“ 무슨 일이냐, 정수?”

바로 그때 안쪽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지부장이 뵙고 싶다고 합니다. 진무사님.”

“ 난 아직 취침 전이다.”

“ 알겠습니다. 들어가시오.”

관정수가 자리를 트자 윤성빈은 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에는 눈에 확 띨 정도의 미남자가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그가 바로 금의위 최고 기재이자 차기 금의위 영반 재목으로까지 거론되고 있는 천리포영 남철진이었다.

“ 야심한 밤에 웬일인가?”

남철진은 책을 덮고 윤성빈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 이게 문설주에 꽂혀 있었답니다.”

윤성빈은 가져온 첩지를 공손하게 내밀었다.

“ 문설주?”

남철진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윤성빈이 내미는 것은 딱딱한 금속이 아니라 종이다. 그런 종이를 문설주에 꽂으려면 최소한 이갑자의 내공은 있어야 한다.

내용의 유무를 떠나 엄청난 무공이 아닐 수 없었다.

“ 백호 권일룡이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 일단 보세.”

남철진은 건네 받은 첩지를 펼쳤다.

“ 쿡!”

첩지를 읽어내려 가던 남철진의 입가에 피식 미소가 맺혔다.

“ 왜 그러십니까?”

“ 금릉 연씨 세가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남철진은 첩지를 내려놓으며 물었다.

“ 중원 최고의 상단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 최고 정도가 아니네. 그들은 상계의 대야벌이라고 불리네.”

“ 그 정돕니까?”

사실 남경은 북으로 떠나는 물류의 중심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때문에 상당히 많은 상단이 똬리를 틀고 있고 금의위 또한 정보를 얻기 위해 상단들과 많은 접촉을 해왔다. 하지만 금릉 연씨 세가가 상계의 대야벌이란 말은 남철진으로부터 처음 들었다.

“ 금릉 연씨 세가의 무서운 점이 바로 그런 것들이네. 그들은 매년 천문학적인 금액을 황실로 뿌리면서도 전혀 소문이 나지 않네. 얼마나 많은 자들이 금릉 연씨 세가의 돈을 받았는지 파악할 수도 없을뿐더러, 설사 파악한다고 해도 돈을 건네고 받는 수법이 워낙 교묘해 처벌할 수가 없네.”

“ 그러면.......”

윤성빈은 첩지로 시선을 주었다.

정확한 내막까지는 알 수 없지만 방금 남철진의 말에서 금릉 연씨 세가를 부담스러워하는 금의위의 분위기를 읽어낼 수 있었다.

“ 무림이 됐든 상계가 됐든 최고 권력자는 황제 폐하시고, 권력은 그분으로부터 나와야 한다는 게 우리 금의위의 생각이네. 아울러 황제 폐하의 명령을 집행하는 기관은 우리 금의위고.”

“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진무사. 하지만 저 첩지가 전달된 과정이 심상치 않습니다.”

“ 동창 지부에 재독동창의 의자인 화화호 유설연이 있다고 했는가?”

“ 그렇습니다. 진무사. 보름 전에 발령을 받고 지금 업무파악을 하는 중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 그 계집 같은 놈이 자넬 시험하려고 보냈을 거네.”

“ 그를 아십니까?”

“ 알다마다. 이제 스물일곱 살인데 엉덩이 돌리는 기술이 특출나다고 북경에 소문이 자자하다네.”

“ 그랬군요.”

“ 아무튼 금릉 연씨 세가는 신경 쓰지 말고 돌아가서 쉬게.”

“ 알겠습니다. 진무사. 그럼....”

쿠쿠쿠! 쿠쿠쿠!

막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데 갑자기 바닥이 흔들렸다. 윤성빈은 깜짝 놀라며 탁자를 잡았다.

바로 그때.

쿠웅! 쾅쾅쾅! 쾅쾅! 쿵쿵쿵! 쾅쾅!

뭔가 폭발하는 듯한 소리가 귓전으로 들려왔다. 윤성빈은 고개를 들어 남철진을 보았다.

남철진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지진과 폭발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감각이 무디진 않는데, 방금 들려온 소리는 폭발음이 분명했다.

그의 시선이 탁자 위 첩지로 향했다.

“ 가세!”

벌떡 일어난 그는 밖으로 쏘아져 나갔다.

“ 지부장은 위사 전부를 대동하여 금릉 연씨 세가로 오게. 관정수는 나를 따라라!”

“ 존명!”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관정수가 몸을 날려 남철진을 따라 나섰다.

“ 엄청난 무공이네.”

급하게 밖으로 나왔던 윤성빈은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춘 남철진과 관정수의 흔적을 좇으며 중얼거렸다.

“ 동창보다 늦으면 안되네. 지부장. 서두르게.”

“ 알겠습니다. 진무사.”

멀리서 남철진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윤성빈은 급하게 영빈관을 나섰다. 출동 준비를 시켜두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그는 지부 연무장으로 갔다.

“ 지부장님.”

기다리고 있던 권일룡이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 금릉 연씨 세가로 출병한다! 전력을 다해 금릉 연씨 세가로 달려가라!”

“ 존명!”

금의위 위사들은 우렁차게 소리치며 밖으로 몸을 날렸다.

“ 권백호!”

“ 하명하십시오. 지부장님!”

“ 전 대원은 열외 없이 금릉 연씨 세가로 집결하라고 알려라!”

“ 전 대원입니까?”

“ 그렇다. 동창 무인보다 빨리 금릉 연씨 세가를 장악해야 한다.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 알겠습니다. 지부장님!”

권일룡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비상종을 울리는 곳으로 달려갔다. 권일룡의 모습이 사라지자 윤성빈은 금릉 연씨 세가를 향해 몸을 날렸다. 쉬지 않고 달린 그가 금릉 연씨 세가에 도착한 것은 반 시진 후였다.

“ 저럴 수가......”

윤성빈은 넋을 잃었다. 수백 장에 달하는 담이 쳐지고, 담 안쪽엔 수십 채의 건물이 대로를 따라 늘어서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것도 없었다.

곳곳에서 솟구치는 시뻘건 불길은 철포로 공격을 받은 전쟁터를 연상케 하였다. 그는 멍한 얼굴을 한 채 금릉 연씨 세가로 걸어갔다.

휙! 휙휙! 휙휙!

잠시 후 바람 소리와 함께 금의위 위사들이 날아 내렸다. 그들이 내려선 곳은 금릉 연씨 세가 남쪽이었다.

휙휙! 휙휙!

그리고 금릉 연씨 세가 북편으로는 남색 무복을 걸치고 머리에 관을 쓴 자들이 날아 내렸다. 그들은 동창 남경 지부를 출발한 동창 무인들이었다.

“ 지금 이 시간부터 이곳은 통행금지구역이다! 내 허락 없이는 누구도 들여보내지 마라.”

동창 무인들을 의식한 듯 윤성빈은 내공을 가득 실어 소리쳤다.

“ 호호호! 지금 이 시간 부로 이곳은 우리 동창이 통제한다. 나 화랑의 허락 없이 누군가를 안으로 들인 자는 항명죄로 다스릴 것이다.”

남자 목소리도 아니고 그렇다고 여자 목소리도 아닌 약간 중성적인 목소리가 동창 측에서 들려왔다. 그는 동창 남경지부 부지부장인 화랑 우성연이었다.

“ 알겠습니다. 지부장님!”

“ 알겠습니다. 부지부장님!”

휙! 휙휙! 휙! 휙!

금의위 위사들과 동창 무인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금의위 위사들과 동창 무인들은 섞이지 않았다. 남쪽에 치우쳐 있던 금의위 위사들은 남쪽으로 빙 둘러선 형태가 됐고, 북쪽에 치우쳐 있던 동창 무인들은 북쪽을 장악한 모양새가 됐다.

“ 호호호! 오랜만이에요, 지부장.”

우성연은 교소를 흘리며 윤성빈에게 인사를 건넸다.

“ 끄응! 오, 오랜만이오, 부지부장.”

코끝을 자극하는 지분 냄새에 윤성빈은 더덤거렸다.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거세를 했다고 하지만 화랑 우성연은 분명 남자다. 그런데 몸매는 여자처럼 하늘거리고 짙게 화장을 한 얼굴은 웬만한 여자보다 더 아름답다. 그런 그를 쳐다보는 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 호호호! 내 얼굴이 부담스러운 모양이네요?”

우성연은 웃으며 물었다.

“ 그렇다기보다는.....”

“ 그럼 우리 지부장님을 보면 기절하겠군요.”

“ 안 그래도 고민입니다. 화랑.”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었다. 눈앞에 있는 우성연과 화화호 유설연은 사내임에도 불구하고 남경 최고 미인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그런 자들을 만나는 것이 편할 리가 없었다.

“ 호호호! 의외로 솔직한 구석이 있군요. 너무 솔직한 남자는 이 바닥에서 성공하기 힘든데.....그런데 남 진무사가 왔다는 말을 들었는데, 맞아요?”

우성연은 윤성빈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 북경으로 가는 길에 잠시 들렀다고 했소이다.”

“ 나보다 정보가 더 늦군요. 남 진무사가 남경에 온 이유는 남경왕의 아들 주무상 때문이에요, 지부장.”

“ 정말입니까?”

“ 그래요, 아마 이곳 일이 끝나면 그는 왕야를 만나러 갈 거예요.”

“ 이 바닥에서 오래 살아남으려면 과도한 관심은 금물이라고 하였소. 화랑.”

“ 가늘고 길게 살겠다는 말인가요?”

“ 그렇소.”

고개를 끄덕인 윤성빈은 위사들이 있는 곳으로 시선을 주었다. 그러고는 낮게 소리쳤다.

“ 검시조는 나를 따라라!”

“ 검시관들은 나를 따라라!”

윤성빈에 이어 우성연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양측에서 각각 오십여 명씩 나와 두 사람을 따라 폐허로 변한 금릉 연씨 세가로 들어갔다.

“ 엄청나네요.”

주변을 둘러보던 우성연은 혀를 찼다.

산산이 부서졌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광경이었다.

크고 작은 구덩이가 수도 없이 나 있고 그 구덩이에는 건물 잔해와 시체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 이렇게 폐허로 만들려면 엄청난 화약이 들었을 텐데....”

“ 그건 조사하면 나오겠죠.”

“ 호호호! 우린 동시에 도착했어요. 남 진무사. 누가 빨리 도착했느냐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서둘러 조사를 하지 않으면 증거물들은 훼손되고 말 거예요. 일단 이곳 증거물들은 공유하는 게 어때요?”

금릉전 쪽에서 교소와 함께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윤성빈은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목소리를 듣는 순간 머릿속으로 섬뜩한 기운이 파고든 것이었다.

“ 저 왔어요.”

폐허로 변한 금릉전으로 들어선 우성연이 유설연 곁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 어서 오너라. 이쪽은 금의위 최고 실세인 남철진 진무사다.”

유설연은 싱긋 웃으며 남철진을 소개시켜 주었다.

“ 호호호! 처음 봬요. 진무사님. 난 우성연이에요. 화랑이라고 불러주세요.”

“ 반갑네. 화랑! 화화호 얼굴이 최고인 줄 알았는데 자네도 만만치 않구먼.”

남철진은 웃으며 인사를 받았다.

“ 처음 뵙소이다. 금의위 남경 지부장 윤성빈입니다.”

뒤이어 윤성빈이 유설연을 향해 포권을 취하며 인사를 했다.

“ 호호호! 반가워요. 부지부장. 일간 시간을 내서 찾아가려고 했는데 이곳에서 보게 돼네요. 난 남경이 처음이라서 여러모로 부족한 게 많아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부르르!

윤성빈은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목소리를 듣는 순간 머릿속이 아득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섭혼술이 가미된 무공이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 부탁은 제, 제가 드려야죠.”

윤성빈은 내기를 끌어올려 정신을 추스르며 대답했다.

“ 호호호! 심지가 굳은 분이네요. 일단 조사부터 하지요.”

유설연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검시관들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그의 시선을 받은 검시관들이 금릉전 안쪽부터 조사에 들어갔다. 동창의 검시관들이 조사를 시작하자 이에 질세라 금의위 검시조도 도구를 들고 조사를 시작했다.

조사를 한다는 건 지루한 작업이었다. 쓰러진 나무를 들어내고 무너진 땅을 파가면서 진행된 조사는 다음날 아침 무렵이 돼서야 일차 결과가 나왔다.

먼저 보고를 한 측은 동창 검시관들이었다.

“ 금릉전에서는 전부 여섯 구의 시체가 나왔습니다. 노인 두 명, 여자 세 명, 그리고 젊은 청년 한 명입니다.”

“ 여자의 구성은 어떻게 되지?”

듣고 있던 유설연이 물었다.

“ 중년 여인 한 명, 젊은 여인 한 명, 어린 아이 한 명입니다. 참고로 어린 아이는 젊은 청년이 안고 있었고, 늙은이 두 명은 대전 중앙에서 젊은 여자와 중년 여인은 주방 쪽에서 발견됐습니다. 입고 있는 옷은 최고급 비단입니다.”

“ 얼굴은?”

“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 결론을 말해 봐라.”

“ 연금석을 비롯한 그의 가족으로 추정됩니다.”

“ 둘이 빠졌구나.”

“ 연금석의 동생인 연은석과 연동석의 시체는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 확실해?”

“ 다른 곳도 조사를 해봐야 하겠지만 금릉전 안에는 없는 게 확실합니다. 지부장님.”

“그렇다는데요?”

유설연의 시선이 남철진에게로 향했다.

“ 더 할 말이 있느냐?”

남철진은 금의위 검시조 조장을 보며 물었다.

“ 저도 동창 검시관의 말에 동의합니다. 진무사님.”

“ 이곳에 있는 여섯 구의 시체가 연금석 가족이란 말이냐?”

“ 정황상 그렇습니다. 진무사님.”

“ 한결같이 얼굴이 없고 시체가 많이 훼손됐다는 것 때문에 정황이라고 한 거냐?”

“ 그렇습니다. 진무사님. 확실한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 이 자의 손에 뭔가가 있습니다. 조장님.”

그때 연금석으로 보이는 시체를 조사하던 금의위 검시관이 소리쳤다.

일행은 일제히 그곳으로 다가갔다.

“ 뭐냐?”

“ 종이입니다.”

“ 종이? 꺼내보아라.”

“ 알겠습니다. 진무사님.”

검시관은 꼭 틀어쥐고 있는 시체의 손가락을 잘라내고 구겨진 종이를 꺼내 남철진에게 내밀었다.

“ 조장님. 여기에....”

이번엔 주방 쪽에서 동창 검시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뭐지?”

“ 타다 만 상자를 발견했는데 이게 나왔습니다.”

동창 검시관은 양피지를 가져와 유설연에게 내밀었다. 유설연은 양피지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선들이 어지럽게 그어져 있고, 산과 강이 그려진 걸 보면 지도가 분명했다. 하지만 어떤 지도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문득 조금 전 연금석으로 보이는 시체의 손바닥에서 나왔다는 종이가 떠올랐다.

“ 호호호! 단서를 하나씩 가지게 됐네요?”

유설연은 남철진의 손으로 시선을 주었다.

“ 정보를 공유하잔 말이오?” “ 우리 정보를 공유하기로 하고 조사를 시작했어요. 남 진무사.”

“ 좋소. 먼저 공개하시오.”

“ 그럼 내가 섭섭해요, 남 진무사.”

“ 지부장!”

“ 하명하십시오. 진무사.”

“ 금릉전에 대한 조사는 이 정도로 마무리하고 밖을 돌아보도록 하게.”

“ 알겠습니다. 진무사. 검시 조는 밖을 조사해라.”

“ 검시관들은 밖을 조사하도록 해.”

윤성빈에 이어 우성연의 목소리가 이어지자 검시관들은 도구를 챙겨들고 금릉전의 폐허를 나섰다.

“ 우리도 나가 있을까요?”

우성연은 유설연을 보며 물었다.

“ 천리지청술을 펼치면 안 돼, 성연.”

“ 그 정도는 알아요, 가요, 지부장.”

우성연은 싱긋 웃으며 윤성빈을 데리고 금릉전에서 멀어졌다.

“ 이제 이야기를 해보죠.”

우성연과 윤성빈이 멀어지자 유설연은 양피지를 부채처럼 부치며 말했다.

“ 지도라는 건 나도 알고 있소. 지부장.”

“ 호호호! 그럼 남 진무사가 쥐고 있는 종이엔 이 지도가 어떤 지도인지가 나와 있겠군요.”

“ 그렇소. 하지만 지부장의 대답 여하에 따라서 이 종이는 가루로 변할 수도 있고, 건네줄 수도 있소.”

“ 이걸 모사하고 싶다는 건가요?”

“ 그렇소.”

“ 내가 가진 지도가 훨씬 크고, 양피지로 돼 있어서 가격도 비싼데.”

“ 그 지도는 세 장 중 한 장이오, 지부장.”

“ 어떤 지도인지도 모르고, 세 장 중 한 장에 불고하다는 말이네요?”

“ 그렇소. 그것만으로는 찾을 수 없다는 뜻이오.”

“ 갈수록 궁금하게 만드는군요. 좋아요. 이 지도를 모사할 수 있도록 해줄게요.”

“ 약속할 수 있소?”

“ 나 유설연의 목을 걸죠.”

“ 믿겠소. 지부장.”

남철진은 가지고 있던 종이를 살짝 튕겼다.

종이를 내려다보는 유설연의 얼굴엔 호기심이 가득했다.

< 마총 장보도는 전부 세 장이다, 강아.>

“ 뜻밖에 횡재를 했네요.”

유설연의 입가에 화려한 미소가 맺혔다.

‘ 엄청나네.’

남철진은 내심 신음을 흘렸다.

유설연이 삼백 년 전 고금 제일 요녀인 요화나찰의 요희나찰섭혼공을 익혔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저렇듯 강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의 미소를 대하는 순간 가슴이 진탕되며 뜨거운 기운이 치밀어 올랐다. 유 설연이 남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경악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남철진은 내기를 끌어올려 뛰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 이젠 금릉 염씨 세가를 공격한 자가 누구인지 그것만 알아내면 되겠구려.”

“ 그래요, 남 진무사.”

유설연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금릉전을 나섰다.

“ 전부 세 부류의 시체가 있다고 해요.”

그가 외부 건물 앞에 당도하자 우성연이 다가왔다.

“ 누구 누구지?”

“ 대야벌 천상천 소속의 무면천군단, 사월림 살수, 만마림 현의당 대원들이에요.”

“ 그럼 대야벌에서 이곳을 공격했다는 말이구나?”

“ 그래요.”

“ 공격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지?”

“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연은석과 연동석을 잡아야 확실한 이유가 나올 것 같아요.”

“ 그들의 신병은 대야벌에서 확보하고 있을 거야.”

“ 하지만 금릉 연씨 세가를 멸망시킨 이유로는 조금 약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 물론이야. 성연. 그게 전부가 아냐. 오늘은 일단 돌아가도록 하자.”

“ 전부 철수하자는 거예요?”

“ 아니지, 조사가 끝나고, 시체를 전부 치울 때까지는 이곳을 통제해야지.”

“ 알았어요. 그렇게 지시를 내려놓을게요.”

“ 남 진무사는 어떻게 하시겠어요?”

유설연은 남철진을 보았다.

“ 난 조금 더 여기 있다 가겠소. 그리고 약속 잊지 마시오.”

“ 호호호! 걱정 마세요. 남 진무사. 약속을 지키지 않는 자는 이 바닥에서 살아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그럼 다음에 봐요.”

유설연은 한쪽 눈을 찡긋하며 몸을 돌렸다.

“ 진짜요?”

남철진은 멀어지는 유설연을 향해 물었다.

“ 뭐가요?”

“ 이름 말이오.”

“ 글쎄요, 가자, 성연.”

천천히 걸어가던 유설연의 움직임이 빨라지더니 가공할 속도로 허공을 갈랐다.

“ 성연!”

유설연은 뒤따르는 우성연을 불렀다.

“ 말하세요.”

“ 넌 돌아가는 즉시 연우강에 대한 수배령을 내려라.”

“ 수배령이라면 정확하게 어느 정도죠?”

“ 죽은 연우강을 어디에 써, 이것아.”

“ 생포하란 말인가요?”

“ 생포가 불가능할 거야. 그러니까 그가 어디에 있는지 그것만 알아내면 돼. 그리고....”

“ 북경에 가시려고 그러는 거죠?”

“ 아무래도 이번 일은 우리 둘이 맡아야 할 것 같아.”

“ 그럼 여행을 하는 건가요?”

“ 연우강을 만나려면 강호로 나가야지.”

“ 아이 좋아라!”

우성연은 박수를 치며 활짝 웃었다.

“ 서둘러야 해.”

“ 왜요?”

“ 남철진 그자도 연우강을 노리고 있거든.”

“ 정말요?”

“ 그래, 그는 북로정군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야.”

“ 북로정군이라면 연우강이 근무했던 곳이잖아요.”

“ 주무상이 죽었던 곳이기도 하잖아.”

“ 그럼 그 사건을 다시 파헤치고 있는 건가요?”

“ 그런 것 같아. 아무튼 그자보다 더 빨리 연우강을 찾아야 해.”

“ 알았어요. 돌아가자마자 바로 전서구를 날리도록 할게요.”

“ 그래.”

두 사람의 신형이 빠르게 허공을 갈랐다.

그로부터 이틀에 걸쳐 금릉 연씨 세가를 조사한 금의위와 동창은 시체를 치우고 폭발 잔해를 정리하면서 여러 번에 걸쳐 회의를 하고 정보를 공유했다.

하지만 회의 중에 결론을 내리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정보를 통해 결론을 도출해 내는 건 각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닷새 동안 금의위 영빈관에 머문 남철진은 금릉 연씨 세가 일이 대충 마무리되자 남경왕 주진무를 찾아 나섰다.

“ 어떻게 꺼내야 하나......”

접견실 앞에 선 그는 고민했다.

이미 보국천위장군의 시호를 받은 주무상의 명예를 최대한 지켜주는 한도에서 말을 꺼내야 할 텐데 그게 쉽지가 않을 것 같았다.

‘ 정면으로 부딪치는 수밖에.’

이윽고 결심을 굳혔다. 황권을 바로잡고. 황제 폐하의 명령을 수행하는 기관이 금의위다. 법대로 해야 할 터였다.

“ 들라 하십니다.”

시종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남철진은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남경왕 주진무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안에는 머리가 벗겨진 단신의 노인이 서 있었다.

바로 이 사람이 키는 작지만 배포만큼은 산보다 더 크다고 하여 거악단구라 불리는 주진무였다.

“ 처음 뵙겠습니다. 전하. 신은 금의위 북진무사 남철진이라 하옵니다.”

남철진은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정중하게 고했다.

“ 자네가 금의위의 기린아 천리포영이군, 앉게.”

주진무는 벗겨진 머리를 가볍게 쓸어 넘기며 자리를 권했다.

“ 감사합니다. 전하.”

남철진은 주진무 앞에 자리했다. 그가 자리를 잡고 앉자 조금 전 안내했던 시종이 찻잔을 가져와 남철진 앞에 놓고 나갔다.

“ 금의위 영반 다음으로 최고 권력자인 북진무사가 내 집엔 어쩐 일인가?”

시종이 나가자마자 주진무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아무리 황족이고 남경왕이라고 하지만, 주 임무가 역모 사건을 다루는 금의위인지라 북진무사의 방문은 달갑게 받아들일 일은 아니었다.

“ 먼저 신의 말을 곡해하지 않고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전하.”

“ 심각한 이야긴가?”

“ 받아들이기 나름입니다. 전하.”

“ 자넨 말을 빙빙 돌리는 경향이 있군.”

주진무는 얼굴을 찌푸렸다.

“ 보국천위장군의 죽음에 관한 일입니다. 전하.”

남철진은 조심스럽게 주무상에 대한 말을 꺼냈다.

“ 보국천위장군이면 죽은 내 아들을 말하는 건가?”

“ 그렇습니다. 전하.”

“ 녀석의 죽음에 대한 건은 이미 정리가 된 걸로 알고 있네, 북진무사.”

“ 다시 조사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전하.”

“ 폐하의 명령인가?”

“ 신은 금의위 영반의 지시를 받습니다. 전하.”

“ 누구 명령인지 모른단 말이군.”

“ 황송하옵니다. 전하.”

“ 상관없네. 그래 어떤 부분을 다시 조사하기로 한 건가?”

“ 그분이 어떻게 죽임을 당했는지 그걸 조사해 보고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 적진에서 죽었다고 들었네.”

“ 북로정군으로 가기 전까지는 신도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 하면 아니란 말인가?”

“ 그렇습니다. 전하. 그분은 살아 돌아온 여섯 명에 포함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 도, 돌아왔다고?”

“ 그렇습니다. 전하, 그분은 분명히 살아 돌아왔습니다.”

“ 확실한가?”

“ 그분을 보았다는 자를 직접 만나고 오는 길입니다.”

“ 치명적인 부상을 당해 돌아왔단 말인가?”

“ 부상으로 돌아가신 것도 아닙니다.”

“ 허면?”

“ 살해당하셨습니다.”

“ 사, 살해당했다고?”

“ 그렇습니다. 전하.”

“ 그 말에 책임질 수 있는가?” “ 제 목을 걸겠습니다. 전하. 놈은 그분을 살해하고는 북로정군에서 도망쳤습니다. 그리곤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그분이 적진에서 죽었다고 소문을 낸 겁니다.”

“ 왜 내 아들이 살해당했다고 하던가?”

“ 불행히도 그 이유는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 그놈을 잡게 되면 밝혀지겠구먼.”

“ 그렇습니다. 전하.”

“ 자네가 여기에 온 목적은 뭔가?”

“ 사건을 조사하면서 복구천위장군에 대한 말이 나올지도 몰라 미리 양해를 구하러 온 겁니다.”

“ 내 아들의 명예는 이상 없는 건가?”

“ 그렇습니다. 전하. 그분의 명예에 누가 되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 좋네. 북진무사, 이제 말해 보게.”

찻잔을 들어올리는 주진무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 그분을 살해한 자는 흑랑기의 대주 연우강이었습니다. 전하.”

파악!

주진무 손에 들린 찻잔이 산산이 부서졌다. 부서진 찻잔에서 흘러나온 찻물과 파편이 파고든 손바닥에서 흘러나온 피가 뒤섞여 탁자 위로 떨어져 내렸다. < 6권 끝>

황금백수 7권     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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