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백수-66화 (66/232)

제 3장 독심.

“ 어떻게 하면 미친 듯이 싸우게 만들 수 있을까?”

느닷없는 질문에 남궁운화와 허일구는 의아한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범천조화신기를 노리고 대야벌을 나온 문파에 대한 것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다 나왔다. 그런데 그들을 싸우게 하는 방법을 말해 보라니.

“ 놈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그것만 알면 끝나는 거야?”

“ 더 필요한 게 있단 말인가?”

허일구는 여전히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 하오밀문이 하는 일이 뭐지?”

“ 몰라서 묻는 건가, 비꼬는 건가?”

허일구는 얼굴을 찌푸렸다.

“ 비꼬는 걸 거야.”

“ ......!”

자신이 못났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로부터 멍청하다는 소리를 면전에서 들으면 기분 나쁘기 마련이다. 허일구는 어금니를 악물었다.

연우강을 알게 된 지 일 년이 넘었고 그가 강하다는 사실도 알지만 비꼬는 말을 듣고도 허허 웃어넘길 수는 없었다.

허일구는 잔뜩 경직된 얼굴로 연우강을 쏘아보았다.

“ 내가 매일 먹는 약도 입에 써, 영감.”

“ 그러니까 지금 내게 충고하는 거란 말인가?”

“ 충고가 아니라 가르침이라고 해야겠지.”

“ 내 나이가 몇인지 아는가?”

“ 물론 나이 많은 분들이 아는 것도 많다는 건 인정해. 하지만 나이가 많다고 조직을 잘 다스릴 수 있는 건 아니잖아.”

“ 갑자기 더워지네.”

허일구는 열이 오르는 듯 맹렬히 손부채질을 했다.

그는 끓어오르는 노화를 참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하지만 한번 끓어오른 노화는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 화는 낼 줄 알아?”

그런 그를 향해 연우강은 결정타를 날렸다.

“ 하오밀문 문주라고 배알도 없는 줄 알았더냐?”

“ 배알이 있으면 뭐해, 내세울 수가 없는데?”

“ 너 정말?”

급기야 허일구의 몸에서 차가운 기운이 흘러나왔다.

무공이 약하다고 하여 모욕을 참을 정도로 비굴하게 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 계급장 뗄까?”

연우강은 악양루 아래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빗속으로 나가서 한판 하자는 의미였다.

“ 개자식!”

허일구는 부채질하던 손을 불끈 틀어쥐었다.

전에 막장의 관자놀이에 모난 돌을 꽂아 넣던 장면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형님 말에 의하면 제왕무량검 두작군도 그에게 당해 게거품을 물고 기절 했다고 한다.

“ 잘 들어, 영감탱이야. 정보로 성공하고 싶으면 모으는 걸로 끝나서는 안 돼. 모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정보를 정리하고 분석해 원래 정보보다 수십 또는 수백 배 비싼 고급 정보를 만들어내야 하는 거야. 그걸 하지 못하면 하오밀문은 평생 바닥을 기면서 살 수밖에 없어.”

“ 고, 고급 정부라고?”

쿠웅!

뜨거웠던 머릿속이 싸늘하게 식었다.

허일구는 멍한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사실 하오밀문은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도 대부분이 최하층에서 생활하는 자들이라 무공으로는 결코 다른 문파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없다.

그런 약점을 극복하고자 문도 중 무공에 재능 있는 녀석들을 잠룡으로 만들어 대야벌로 집어넣기는 했지만 역부족임을 절감하고 있다. 무공이 부족한 건 하오밀문의 태생적 한계라 바꿀 수도 없는 부분이다.

그런데 연우강이 발전 방향을 제시한 것이었다.

“ 고급 정보가 뭔지 몰라?”

“ 아, 알지. 하지만 어떻게 고급 정보를 모은단 말인가?”

“ 고급 정보는 모으는 게 아니고 기존의 정보를 분석하여 만들어내는 거야.”

“ 이번 일도 고급 정보가 포함돼 있다는 건가?”

“ 그걸 찾아내지 못해서 그렇지 고급 정보는 항상 있어 왔어.”

“ 말해 보게.”

“ 하오밀문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정보를 요구한 당사자가 무슨 이유로 그 정보를 원했는지 그걸 알아내야 해. 나를 예로 들면 무엇 때문에 대야벌 무인들의 출병 상황을 알고 싶어하는지 그 이유를 찾아내야 한다는 거야.”

“ 정보를 모으는 일의 시작은 청부자 파악부터 해야 한다는 말이군.”

“ 맞아, 영감. 그래야 청부자의 목적에 가장 근접한 정보를 얻어낼 수 있는 거야. 더불어 청부자의 목적에 접근하면 할수록 정보의 가치는 올라가기 마련이고. 자! 그럼 내가 대야벌 정보를 원한 이유를 먼저 말해봐!”

“ 자넨 대야벌을 물먹이기 위해 정보를 원했네.”

“ 그럼 거기부터 시작하는 거야.”

“ 어떻게 시작한단 말인가?”

“ 조금 전 영감이 말한 보고서에 언급된 세력을 크게 나누면 어떻게 되지?”

“ 범천조화신기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황궐 일행과 그들에게 범천조화신기가 들어가는 걸 막고자 하는 담대만승 일행 두 부류네.”

“ 아냐, 영감. 두 부류가 아니고 세 부류야.”

“ 무슨 소린가?”

“ 오제와 천광마자 낙천은 별개로 봐야 한다는 뜻이야.”

“ 담대만승과 담대천호는 형제네. 연 공자.”

“ 연은석과 연동석이 형님을 배신할 걸 보았으면서도 그런 소릴 하는 거야?”

“ 그럼 담대천호가 딴 생각을 품고 있다는 말인가?”

“ 막연하게 짐작하는 게 아니라 현실을 바탕으로 판단을 하는 거야. 영감. 만일 담대만승과 담대천호가 아주 사이가 좋은 형제라면 담대천호는 부하를 보내는 게 아니라 직접 나왔어야 해. 하지만 그는 나오지 않았잖아. 그건 곧 그도 딴 생각을 품고 있다고 봐야 하는 거야.”

“ 설마 그도 벌주가 되고 싶어 한다는 말인가?”

허일구는 깜짝 놀란 얼굴로 물었다.

“ 대야벌 무인들의 궁극적인 꿈은 벌주 아냐?”

“ 하지만 담대만승은 그의 친형이네. 벌주가 되기 위해서는 친형을 내쳐야 하네, 설사 그렇게 해서 벌주에 올랐다고 해도 다른 문파에서 인정해 주지 않을 거네.”

“ 내 말이 바로 그거야, 영감. 그런 사실은 담대천호도 알고 있을 거라고. 권력에는 피도 눈물도 없다고 하지만 형님을 없애고 벌주 자리에 오른 자를 상관으로 모시며 고개를 숙일 자들은 별로 없을 테니까.”

“ 그럼?”

“ 하지만 담대천호가 군마련 련주라는 신분 말고 다른 신분을 가지고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하잖아.”

“ 다른 신분이라면 뭘 말하는 건가?”

“ 형님을 밀어내고 벌주에 올라도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그런 신분을 말하는 거야.”

“ 그런 신분이 대야벌에 있는가?”

“ 당연히 있지.”

“ .....?”

“ 무성의 성주.”

“ 맙소사.”

허일구의 입이 쩍 벌어졌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었다. 찻잔을 들고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남궁운화의 눈도 휘둥그레졌다. 설마 그런 결론이 나올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탓이었다.

“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가?”

허일구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말을 이었다.

“ 이건 생각이나 추측이 아냐, 영감. 그놈은 무영의 무영들을 이끄는 지휘관이야.”

파삭!

연우강의 손에 들려 있던 찻잔이 조각조각 부서지더니 가루로 변해 흩어져 내렸다.

‘ 응?’

듣고 있던 남궁운화는 깜짝 놀랐다. 느닷없이 연우강의 몸에서 싸늘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는 분노했을 때 불같이 화를 내는 사람이 아니다. 다만 행동으로 자신의 마음 상태를 보여준다.

그가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건 처음이 아니었다.

전에 남궁세가에서 금릉 연씨 세가를 공격한다는 첩지를 받을 때도 그랬다. 그런데 지금은 무영이란 말을 하면서 들고 있던 잔을 가구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 그, 그를 아는가?”

이상함을 느낀 사람은 남궁운화뿐만이 아니었다. 허일구 또한 얼굴이 잔뜩 굳은 채였다.

“ 정보를 분석하는 게 그래서 중요하다는 거야. 영감. 난 지금까지 내 아버지의 팔과 다리를 자른 놈이 누군지 모르고 있었어. 그런데 이번 분석을 통해 그놈을 알아낸 거라고.”

“ 아, 아버지라고요?”

남궁운화는 깜짝 놀란 얼굴로 소리쳤다.

연우강의 의부인 연금석은 팔 다리가 멀쩡하다. 그렇다면 그가 방금 언급한 아버지는 친아버지일 터였다.

“ 부모 없이 태어나는 자식은 없습니다. 남궁소저.”

“ 하지만.....”

“ 업둥이도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대문 앞에서 주웠다고 전부 업둥이라고 부르는 건 아닙니다.”

“ 미안해요.”

남궁운화는 고개를 숙였다.

“ 그렇다고 미안해할 건 없고요. 고급 정보란 바로 이런 걸 말하는 거야, 영감.”

연우강의 시선이 허일구를 향했다.

“ 자네?”

허일구는 멍한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잔을 가루로 만들어 버린 걸 보면 부친을 해친 원수를 방금 알아낸 게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얼굴에서는 분노한 표정을 찾을 수가 없다.

“ 지금은 놈이 무성의 무영이란 사실보다는, 담대만승과 한 패가 아니라는 사실에 더 집중해야 해, 남궁 소저도 마찬가집니다. 무슨 일을 하든 일의 경중을 따져야 하고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일을 먼저 처리해야 합니다. 사적인 감정에 휘둘리게 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명심하세요.”

“ 아, 알았어요. 그럼 복수는 하지 않을 건가요?”

“ 복수도 격이 있다는 거 아십니까?”

“ 격이라고요?”

“ 그렇습니다. 불꽃처럼 몸을 태워 원수와 동귀어진 하는 복수가 있고, 원수를 죽이고 본인은 잘 사는 복수가 있는 가 하면, 본인이 잘사는 모습을 원수에게 보여주는 복수가 있습니다. 그 셋 중 가장 격이 높은 복수는 원수를 살려준 상태에서 보란 듯 잘사는 겁니다.”

“ 그럼 연 공자는 세 번째를 택할 건가요?”

“ 그건 제 취향이 아닙니다.”

“ 그럼 두 번째?”

“ 그렇습니다. 남궁 소저. 저는 놈들을 없애고 나서 떵떵거리며 살아볼 겁니다.”

“ 그렇군요. 그럼 이번 범천조화신기를 두고 벌어지는 싸움은 삼파전이 되는 건가요?”

남궁운화는 화제를 돌렸다.

복수 이야기를 하면 연우강이 불편해 할 것 같아서였다.

“ 삼파전이라고 생각하세요?”

연우강은 또다시 물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 그럼 아니란 말인가요?”

“ 절세 고수나 보물은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뚝 떨어질 수 없다는 게 내 신조거든요, 남궁 소저.”

“ 범천조화신기를 누군가 일부러 흘렸단 말인가요?”

“ 남궁 소저가 범천조화신기를 얻었다고 생각해 보면 간단하게 답이 나오잖습니까?”

“ 누군가 범천조화신기를 얻었는데 다른 사람에게 들켰을 수도 있잖아요.”

“ 만일 그랬다면 우린 이곳에서 동정호를 구경하는 게 아니라 피 튀기는 보물 쟁탈전 한 가운데 있어야 하겠지요.”

“ 아!”

남궁운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연우강의 말이 틀리지 않다. 범천조화신기를 누군가 얻어서 소문이 났다면, 그걸 차지하기 위해 피 튀기는 혈전이 벌어지고 있어야 하고 자신들 또한 시체를 따라 이동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소문만 무성할 뿐 범천조화신기를 얻었다는 사람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그 말은 곧 누군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범천조화신기에 대해 말을 흘렸다는 뜻이 된다.

“ 정보의 분석이 왜 돈이 되는지 이해가 가?”

연우강은 다시 허일구를 보며 물었다.

“ 아주 확실하게 이해했네. 그런데 누구라고 보는가?”

“ 지휘관은 짐작으로 말해선 안 돼, 영감. 사실만 말해야 하고 계획은 반드시 사실을 바탕으로 세워야 하는 거야.”

“ 자네가 분석한 사실은 뭔가?”

“ 방금 말한 그대로야. 누군가 범천조화신기로 무인들을 호남으로 끌어들였다는 것까지는 사실이야. 그 이상을 넘어가면 안 돼.”

“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할 계획인가?”

“ 범천조화신기를 이용해서 대야벌 무인들을 상잔시키려고 한 자들을 적극 도와야지.”

“ 어떻게 돕는단 말인가?”

“ 바로 이거야.”

연우강은 품속에서 양피지 한 장을 꺼내 허일구 앞으로 던졌다.

“ 이건?”

허일구는 양피지로 시선을 주었다. 선이 어지럽게 그어져 있고, 전서체로 글이 씌어져 있는 걸 보면 오래된 지도 같았다. 그는 의아한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 마총으로 들어가는 장보도 세 장 중 한 장이야.”

“ 억!”

“ 어?”

허일구와 남궁운화는 경악한 얼굴로 소리쳤다.

양피지로 만들어진 그것이 마총으로 들어가는 장보도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 정말인가?”

“ 정말이에요?”

두 사람은 동시에 물었다.

“ 욕심 나?”

연우강은 되물었다.

“ 욕심나는 게 아니라 이것 때문에 얼마나 많은 무인들이 죽었는지 알기나 하는가?”

“ 아직 부족해 영감. 지금보다 수십 배는 더 죽어야 해. 아무튼 아주 고풍스러운 상자를 구입해서 그걸 넣은 다음 적당한 놈을 골라. 너무 약해도 안 되고 너무 강해도 안 돼. 한 두 시진은 도망칠 수 있는 그런 놈을 골라서 전해줘.”

“ 전해주라고?”

허일구는 황당한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 녀석이 가는 길목에 던져 놓으면 되잖아. 그 다음엔 놈이 장보도가 들어 있는 상자를 가지고 가면 누구누구에게 마총 장보도가 있다는 소문을 내.”

“ 소문을 접한 무인들은 머리가 홱 돌아버리겠군.”

“ 싸움은 모든 걸 걸고 화끈하게 하는 거야. 애들 장난처럼 깨작대는 건 내 취향이 아냐, 영감.”

연우강은 환하게 미소 지었다.

“ 자네 정말 무서운 사람이군.”

연우강을 쳐다보는 허일구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보통 사람 같으면 자신에게 마총의 장보도가 있다면 친한 친구에게조차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는 그 장보도를 강호에 풀어버리겠단다.

그는 사고방식 자체가 보통 사람과 달랐다.

“ 조금 전에 남궁 소저에게 말했던 것과 같은 거야. 이백 냥을 저축했으면 그 상태에서 만족하든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더라도 돈의 일부만 써야 해. 무공도 마찬가지야. 지금도 충분히 강한데 굳이 마총의 무공까지 얻어야 할 이유가 없잖아. 마총에 있는 무공까지 차지하려는 건 성공 여부도 장담할 수 없는 사업에 이백 냥을 몽땅 털어 넣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무슨 말인지 알아?”

“ 알았네. 적당한 자를 골라 이게 들어갈 수 있도록 하겠네.”

“ 이건 노파심에서 하는 말인데 괜한 탐욕 부리지 않는 게 좋아. 영감. 비록 삼분의 일에 불과하지만 그거 하나면 하오밀문 정도는 지상에서 사라질 수도 있으니까.”

“ 내가 딴 마음을 먹을까 봐 그러는가?”

“ 견물생심이란 말이 있어. 공연히 생겨난 게 아니잖아. 사람이라면 보물을 보고 욕심을 내는 건 당연한 거야. 그건 나도 이해할 수 있어.”

“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건가?”

“ 별 것 아냐. 혹시라도 마총 장보도에 욕심이 생기거든....”

“ 하오밀문 문도들을 떠올리란 말인가?”

“ 그게 아니라.”

“ 그럼?”

“ 문도들의 자식을 떠올리도록 해. 그럼 그런 마음이 싹 가실 거야.”

“ 넌, 개새끼야!”

휙!

허일구는 앉은 자세 그대로 뒤편으로 몸을 날리며 소리쳤다. 곧 그의 신형이 빗속으로 사라졌다.

“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요. 열심히 도외주고 있는데.”

“ 제가 너무 심했다고 생각하세요?”

“ 그럼 심했죠. 아무리 그렇다고 문도들의 자식을 해치겠다는 건 너무했어요.”

“ 혹시 마총 장보도가 뭔지 모르는 거예요?”

“ 천고의 보물이라는 건 저도 알아요.”

“ 그런데요?”

“ 일구 할아버지를 믿지 못하면 맡기지를 말아야 하는 거잖아요.”

“ 염소수염 영감은 믿습니다. 남궁 소저.”

“ 그런데 왜 그런 소릴 한 거죠?”

“ 보물을 믿지 못해서 그런 겁니다.”

“ 보물을 믿지 못한다는 건 무슨 소리죠?”

“ 일단 일어나죠.”

연우강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일어나자 남궁운화 또한 봇짐을 추슬러 등에 걸머졌다.

두 사람은 계단을 타고 아래로 내려왔다.

“ 보물, 특히 천고에 보기 드문 보물은 영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세요?”

악양루를 나선 연우강은 우산을 펴며 입을 열었다.

“ 연 공자께 처음 들어요.”

“ 그러 오늘 아주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된 겁니다.”

“ 정말 영성이 있어요?”

“ 그럼요. 조금 전에 떠난 염소수염 영감처럼 자기 소유가 아닌 보물을 품속에 장시간 넣고 다니면 어느 순간 보물 녀석이 말을 걸어옵니다.”

“ 어떻게 말을 걸어오는데요?”

“ 아무도 없잖아. 설사 그걸 네가 가진다고 해도 누구도 널 욕할 사람이 없어. 그냥 꿀꺽 하는 거야. 마총을 찾아서 비급을 얻으면 하오밀문은 대야벌처럼 강한 문파가 될 수 있어. 이런 식으로 보물은 쉬지 않고 말을 걸어온다는 겁니다.”

“ 그건 보물이 하는 말이 아니라 보물을 지니 사람이 갈등하는 거잖아요.”

남궁운화는 피식 웃었다.

“ 보물이 말을 걸어온 게 맞습니다. 남궁 소저.”

“ 자꾸

“ 그건 간단하죠.”

“ 간단해요?”

“ 수중에 보물이 없으면 그런 말은 절대 들려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천고의 보물을 지니고 있으면 어김없이 그 말이 들려온다는 거 아닙니까.”

“ 에이!”

남궁운화는 실없는 말 그만 하라는 듯 연우강의 옆구리를 툭 쳤다.

보물이 말을 하는 건 아니지만, 보물을 지니고 있으면 분명 마음의 갈등을 하게 될 것이다. 더구나 하오밀문처럼 무공이 취약한 문파는 더더욱 욕심을 내게 될 게 분명하다. 보물이 말을 한다는 그의 말은 틀렸다고 할 수도 없었다.

“ 문제는 한순간 마음을 잘못 먹으면 보물이 하자는 대로 해버린다는 겁니다.”

“ 그래서 경고를 한 거예요?”

“ 그렇지요.”

“ 이건 만일인데요. 일구 할아버지가 장보도를 들고 도망치면 정말로 하오밀문 문도의 자식들을 찾아내서 전부 해칠 건가요?”

“ 그런 짓을 어떻게 합니까?”

“ 휴우! 난 연 공자가 정말로 그렇게 할 줄 알았잖아요.”

남궁운화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안도의 숨을 쉬었던 것도 잠시 그녀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바로 이어지는 연우강의 말 때문이었다.

“ 소문만 내면 간단하게 해결되는데요.”

남궁운화는 고개를 돌려 허일구가 사라진 곳을 보았다.

“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염소수염 영감은 딴 마음을 먹지 않을 테니까요.”

“ 보물이 말을 걸어온다고 했잖아요.”

“ 잠룡 중에 하오밀문 문도가 있잖습니까, 그들 때문에라도 딴 마음은 먹지 않을 겁니다. 빗방울이 굵어지는데 어서 가요.”

“ 아, 알았어요. 그런데 지금 어디로 가는 거죠?”

“ 파릉전어석을 먹기로 했잖아요.”

“ 그럼 악양으로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가는 방향이 많은 배들이 정박해 있는 항구 쪽이라서 묻는 말이었다.

“ 화선을 잡아뒀습니다.”

“ 화선이라면 아까 선착장에서 봤던 그 배를말하는 거예요?”

“ 그렇습니다. 당분간 그곳에서 지낼 생각입니다.”

“ 화선에서 잔다구요?”

“ 동정호의 맛을 제대로 만끽하려면 화선에서 잠을 자봐야 한다고 하더군요. 물을 싫어하세요?”

“ 아뇨, 아주 좋아요. 빨리 가봐요.”

남궁운화는 연우강의 손을 덥걱 쥐고는 선착장으로 이끌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수십 척의 배가 무질서하게 늘어서 있는 선착장의 입구에 도착했다.

선착장은 호수에 기둥을 세우고 그 위로 나무판을 댔는데 길이는 십여 장 정도였다. 즉 호숫가에서 호수 안쪽으로 놓은 다리라고 보면 될 듯했다.

한 사람도 없었던 악양루와는 달리 선착장에는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 사람이 꽤 많네요?”

“ 꽤 많은 게 아니라 한 부류에요.”

“ 한 부류라고요?”

“ 저기 가마 있잖습니까?”

연우강은 선착장 가운데 서 있는 가마를 가리켰다.

“ 저 가마 주인 일행이란 말이에요?”

“ 주변에 있는 자들이 서 있는 진형을 보세요. 가마를 보호하는 진형을 구축하고 있잖아요.”

“ 그렇네요. 그런데 누굴까요?”

“ 알아서 좋을 게 없는 사람들이니까 신경 끄세요.”

“ 아는 분이에요?”

“ 가마 안에 있는 사람은 모르지만 가마 주인에 대해서는 압니다.”

“ 가마 주인이 누구죠?”

“ 제독동창 유 공공.”

“ 그럼 저들은?”

“ 흑의를 걸친 자들은 동창의 천밀시위고, 가마를 메고 있는 여덟 명은 팔신장이라고 부르는 동창 최강 고수들입니다.”

“ 마차 안에 있는 사람은 유 공공인가요?”

남궁운화는 속삭이듯 물었다.

“ 유 공공이 타고 있을 때는 만상기가 가마 오른편 앞에 꽂히게 됩니다. 지금 저 마차에는 유 공공이 아니라 그의 아들이 타고 있는 겁니다.”

“ 아!”

남궁운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또한 소제독이라 불린다는 유설연에 관한 말을 들었다. 황실 일에 대한 관심보다는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유설연이라는 예쁜 이름 때문에 기억하고 있다고 해야 옳다.

“ 그런데 그가 이곳에 왜 온 거죠?”

“ 보물 때문이지 왜 왔겠습니까?”

연우강은 남궁운화를 이끌고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선착장 주변엔 삼엄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 멈춰라!”

두 사람이 다가가자 후미에 있던 몇몇이 허리춤의 검으로 손을 가져가며 소리쳤다.

“ 화선의 손님이외다.”

연우강은 걸음을 멈추며 말을 뱉었다.

“ 잠시 기다려라.”

연우강과 남궁운화를 잠시 훑어본 사내는 가마가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사내는 잠시 보고를 하는 듯하더니 다시 돌아왔다.

“ 네가 류사은이라는 자냐?”

“ 얼레?”

연우강은 의아한 얼굴로 사내를 보았다. 류사은은 화선을 예약할 때 썼던 이름이었다.

“ 류사은이냐고 물었다!”

사내는 연우강을 쏘아보며 소리쳤다.

“ 그렇소.”

연우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 우산을 접어라!”

사내는 연우강이 들고 있던 우산을 턱으로 가리켰다.

“ 빗방울이 점점 거세지고 있소이다. 소협.”

“ 그래서 못 접겠다는 말이냐?”

사내의 몸에서 차가운 기운이 흘러나왔다.

“ 당신이 이 비를 멈추면 접지 말라고 해도 접겠소.”

연우강은 피식 웃으며 사내 앞으로 걸어갔다.

[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남궁운화는 불안한 얼굴로 전음을 보냈다.

조금 전에 저들이 동창 무인이라고 한 사람이 그가 아니었던가.

“ 당신이라고 했느냐?”

“ 그럼 뭐라고 불러줬으면 좋겠소?”

연우강은 사내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 이런 죽일....”

“ 뭐 하고 있느냐?”

사내가 진득한 살기를 뿜어내는 순간 가마 근처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지, 지금 갑니다! 따라오너라.”

가마 쪽을 향해 소리친 사내는 연우강을 쏘아보다가 몸을 돌렸다. 그가 몸을 돌리자 가마 뒤편으로 늘어서 있던 동창 무인들이 길을 텄다.

연우강은 우산을 든 채 사내의 뒤를 따랐다.

조금 전 사내와 실랑이 때문인 듯 좌, 우측에서 따가운 시선이 날아와 꽂혔다. 하지만 연우강은 빙그레 웃으며 앞서가는 사내를 따라 걸었다.

잠시 후 연우강과 남궁운화는 가마 옆에 당도했다.

가마 옆에는 화복을 걸친 중년인 한 명이 약간 구부정한 자세로 서 있었다.

화복 중년인의 얼굴을 확인한 연우강은 피식 웃었다. 화복 중년인은 다름 아닌 자신이 예약한 화선의 주인이었다.

“ 네가 류사은이냐?”

팔신장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그는 팔신장의 수뇌인 밀사신장 유덕이라는 자였다.

“ 그렇소.”

연우강은 우산을 약간 높이 들어 유덕과 시선을 맞춘 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 난 동창의 밀사 유덕이다.”

유덕은 부릅뜬 눈으로 연우강의 눈을 보며 말했다.

“ 팔신장의 수좌인 밀사신장 유덕이란 말이오?”

“ 그렇다.”

‘ 이놈 봐라?’

유덕은 내심 깜짝 놀랐다. 눈에 내공을 가미하여 상대방을 쏘아보면 웬만한 자들은 시선을 돌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녀석은 태연하게 시선을 받아내고 있다.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 알고 있는 것 같지만 날 소개하겠소. 난 류사은이오. 그럼 무슨 일로 날 찾은 거요?”

“ 네가 호화루를 통째 빌렸다고 들었다.”

“ 나는 내 주변에서 누군가 알짱거리는 걸 천성적으로 싫어해서 통째 빌렸소이다.”

“ 소제독께서 그 배를 원하신다.”

“ 소제독이라면 누굴 말하는 거요?”

“ 놈!”

유덕은 연우강 앞으로 한 걸음 다가서며 소리쳤다.

그의 눈에서 새파란 광채가 흘러나왔다. 팔신장을 알고 팔신장의 수뇌가 밀사신장이라는 사실까지 아는 자라면 소제독을 모를 리가 없을 테다. 자신들을 우롱하기 위해 모른 척하는 거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 흥정을 하는데 무력을 동원하는 건 바람직한 행동이 아니오, 영감.”

연우강은 들어올렸던 우산을 다시 원래 위치로 내렸다.

“ 우산을 들어라, 놈!”

“ 법을 집행하는 자는 무기가 아니라 논리로 상대를 굴복시켜야 하는 거요. 영감. 무기는 일을 쉽고 빠르게 처리하게 해주지만, 그 맛에 빠지게 되면 법은 없고 무기만 남게 되오. 설립 목적을 상실한 조직은 오래 버티지 못하는 게 세상이치고.”

“ 주둥이가 매끄럽구나. 동창의 권력이면 너 같은 놈의 죄 정도는 만들어내기 나름이다. 놈.”

“ 그래서 기필코 무기를 들이대겠단 말인가?”

연우강의 목소리가 차갑게 변했다.

“ 그렇다면 어떻게 할 테냐?”

“ 동창에서 수십 년을 굴러먹었으면 사람 볼 줄도 알 때가 됐는데... 재미있는 영감이네.”

연우강은 우산을 남궁운화에게 건네고는 유덕 앞으로 다가갔다. 쏟아지는 빗방울이 순식간에 옷을 적셨다.

“ 반항을 해보겠단 말이냐?”

유덕의 얼굴에 비릿한 조소가 어렸다. 옆에 있는 종자로 보이는 녀석의 몸에서 제법 강한 기세가 느껴져 놈도 한가락 하는 걸로 생각했다. 그런데 녀석은 쏟아지는 빗방울조차도 튕겨내지 못하는, 그야말로 백면서생이었다.

“ 계급장을 뗀다면 한판 할 용의가 있는데.”

“ 계급장을 뗀다는 건 무슨 소리냐?”

“ 내공 같은 잡기 말고 순수하게 육체적인 힘만으로 한판 하자는 거야.”

“ 자, 잡기라고?”

유덕은 황당한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문득 녀석의 뱃속을 확인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덩이가 부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없는 놈이 아니라면 동창 무인 앞에서 저런 말을 할 수 없을 테다.

하지만 그의 황당함은 시작에 불과했다.

“ 진짜 사내는 이걸로 싸우는 거야, 영감.”

연우강은 오른 주먹을 불끈 틀어쥔 채 들어 올렸다.

“ 네가 진짜 사내란 말이냐?”

유덕의 눈초리가 꿈틀 치켜 올랐다.

진짜 사내란 말을 강조하는 건 곧 양물이 없는 내시를 비웃는 말이기 때문이다.

“ 당신이 내시라고 비웃는 말이 아니니까, 그렇게 열 낼 필요 없어. 난 내시들을 존경하는 사람들 중의 한 명이야.”

“ 존경한다고?”

“ 당신을 존경한다는 말이 아니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 신체의 일부를 훼손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그 독심을 존경한다는 거야.”

“ ......!”

유덕은 멍한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욕을 하는 건지 칭찬을 하는 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 진짜 사내끼리 한판 할 거야?”

연우강은 유덕을 빤히 쳐다보았다.

유덕은 고개를 돌려 가마를 보았다.

탁!

그 순간 가마 문에 달린 창문이 열렸다. 가마 창문이 열렸다는 건 곧 유설연이 싸움을 구경하겠다는 무언의 의사표시였다.

“ 좋다. 방법을 말해라.”

유덕은 고개를 끄덕였다.

“ 방법은 간단해. 당신과 내 왼손을 묶고 서로를 향해 주먹질을 해대는 거야.”

“ 주먹엔 자신이 있나보구나.”

유덕은 연우강의 손을 보았다.

보통 주먹을 많이 쓰는 자들은 손마디가 발달해 있기 마련인데 녀석의 주먹은 마치 여자 손처럼 고왔다.

“ 겉모스븡로 상대를 평가하는 건 좋지 않은 습관이야. 할거면 하고, 아니면오백 냥을 줘. 그럼 꺼져줄게.”

‘ 어쩜!’

긴장한 얼굴로 연우강과 유덕을 지켜보고 있던 남궁운화는 저도 모르게 입을 쩍 벌렸다. 상대는 동창에서 수십 년 굴러먹었고, 동창 최강자라는 팔신장의 수뇌다.

그런 자를 연우강은 순전히 말로 요리를 해버리고 있다. 뺨을 치고 어르고, 어르고 다시 뺨을 치고, 그는 몇 마디 말로 밀사신장 유덕을 자신과 같은 수준으로 끌어내려 버린 것이었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지만 지금까지는 연우강의 승리였다.

그리고 마지막에 했던 말, 오백 냥만 주면 꺼지겠다는 말에 유덕은 걸려들 수밖에 없을 테다.

그녀의 예상대로였다.

“ 걱정 마라, 놈. 양물이 없다고 해도 난 사내니까.”

유덕은 왼손을 앞으로 내밀며 옆에 팔신장 한 명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요대를 풀어 두 사람의 팔을 묶어달라는 신호였다.

유덕의 시선을 받은 자가 요대를 풀었다.

“ 아냐, 그걸로는 안 돼. 가마 안에서 구경하는 분의 요대가 있어야 해.”

연우강은 고개를 저었다.

“ 그분은 소제독님이다. 놈.”

휙!

가마 안에서 금색 요대가 날아와 두 사람 사이 허공에 멈췄다. 유덕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 유설연을 보았다.

“ 묶으쇼.”

연우강은 왼팔ㅇ르 펴 유덕의 왼팔에 대며 요대를 풀었던 노인을 향해 말했다.

노인이 다가오자 연우강과 유덕은 팔목을 마주 댔다.

유설연의 오대로 두 사람의 팔목을 빙빙 돌려 감은 노인은 다시 두 사람의 꺾인 손목 사이로 세 번을 더 돌려 묶었다. 팔목을 묶고 나자 두 사람은 상대방의 팔 하박을 잡았다.

“ 내공을 끌어올리는 순간 이 요대는 끊어지게 될 거야. 소제독이 아끼는 요대를 끊어내는 일이 없기를 바라겠어, 영감.”

연우강은 오른발을 뒤편으로 빼며 말했다.

“ 끄응!”

유덕은 인상을 찌푸렸다. 놈의 말이 틀리지 않다. 금색 요대는 유설연이 유 공공으로부터 선물 받아 가장 아끼는 물건이다. 혹여 실수라도 하여 요대를 끊게 되면 큰일 날 터였다.

“ 영감이 셋까지 세줘.”

연우강은 주먹을 불끈 틀어쥐었다.

“ 하나!”

노인의 입에서 하나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주변에 있던 동창 무인들이 앞 뒤쪽으로 물러나며 자리를 넓였다.

“ 둘!”

역시 예외가 없었다. 둘이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연우강의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 비겁한......”

하지만 유덕은 고수였다. 그는 잡고 있던 왼손을 끌어당겨 연우강의 중심을 무너뜨렸다.

퍽!

중심이 무너지자 주먹에 실린 힘이 줄어들어 유덕의 얼굴에 꽂히긴 했지만 큰 충격을 주지 못한 듯했다. 유덕은 고개를 흔들어 고통을 털어내면서 곧바로 오른손을 내질렀다. 하지만 주먹에 완전한 힘을 싣기엔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연우강이 고개를 옆으로 숙이자 그의 주먹은 허공을 갈랐다. 그리고 유덕은 재빨리 한 걸음 물러났다

휙!

바로 그 순간 연우강은 유덕의 왼손을 사정없이 잡아당겼다. 그런데 그의 왼손은 유덕의 팔목을 잡고 있지 않았다. 다름 아닌 묶여 있는 유설연의 요대 힘만으로 유덕을 끌어당긴 것이었다.

유덕은 깜짝 놀랐다. 만일 지금 상황에서 힘을 주고 버틴다면 요대가 끊어지고 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급하게 연우강을 향해 나아갔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연우강의 주먹이 날아왔다.

“ 가까운 거리에서는.....헉!”

비릿한 조소를 물었던 유덕의 입에서 신음이 비어져 나왔다. 주먹은 허초에 불과했고, 진짜 공격은 무릎이었다. 아래 쪽에서 놈의 무릎이 무서운 속도로 올라오고 있었다. 무릎이 노리는 곳은 명치였다.

그는 반사적으로 왼손으로 명치를 보호했다.

하지만 명치를 보호해야 한다는 건 생각에 불과했다. 명치로 향하던 왼손이 주춤하는 듯하더니 연우강에게로 끌려갔다.

“ 빌어먹을!”

퍼억!

커억!

유덕의 입에서 고통에 겨운 비명이 흘러나왔다. 엄청난 충격이 전신을 강타하면서 한순간에 숨이 턱 막히고 다리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유덕은 저도 모르게 허리를 숙였다.

“ 허리를 숙여 등을 보이는 건....”

연우강의 동체가 훌쩍 뛰어올랐다. 번쩍 들어 올려진 오른 손이 어깨 쪽으로 향하고, 그의 팔꿈치는 무기로 돌변했다. 그리고 아래로 내려섬과 동시에 그의 팔꿈치는 유덕의 등에 꽂혔다.

“ 크윽!”

급기야 유덕은 왼편 무릎을 꿇고 말았다.

연우강은 무릎을 꿇은 유덕의 뒷머리를 틀어쥐고는 아래 쪽으로 사정없이 밀어 부침과 동시에 왼 무릎을 쳐 올렸다.

퍼억!

“ 커억!”

또다시 유덕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힘없이 올라가는 그의 고개를 보건대 거의 기절 직전인 듯했다. 하지만 연우강은 멈출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그는 잡고 있던 뒷머리를 쥐어뜯듯 들어 올리며 선착장 난간을 향해 돌진했다.

콰앙!

풍덩!

나무로 만든 난간을 부수며 두 사람의 신형이 물 속으로 떨어졌다.

“ 쯧!”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던 동창 무인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들은 이미 유덕이 호수로 떨어지기 전에 끝났다는 걸 알고 있었다.

“ 독한 녀석이네요.”

창문을 통해 밖을 쳐다보고 있던 우성연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 앉으며 말했다.

“ 영악하고.”

유설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제자리에 앉았다.

“ 누굴까요?”

“ 글쎄, 지금부터 알아봐야지.”

가마 전면을 응시하는 유설연의 얼굴엔 호기심이 잔뜩 어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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