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백수-67화 (67/232)

제 4장 친구야.

사람이란 끝을 보기 전에는 포기를 못한다고 했던가.

물속을 내려다보는 동창 무인들의 심정이 그랬다.

유덕이 물로 떨어지기 직전에는 정신이 오락가락했지만 차가운 물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도 있고, 더불어 물 속이라 지켜보는 사람도 없으니 마음만 먹으면 내공도 끌어올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어쩌면 전세가 뒤집어질 수도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동창 무인들은 두 사람이 나오길 기다렸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물속으로 빠진 두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 아무래도......”

팔신장의 둘째 거력신장 장제남이 물속으로 들어갈 채비를 했다. 막 물 속으로 뛰어들어 가려고 하는데, 수면으로 검은 그림자가 어리는 듯하더니 빠졌던 자들이 올라왔다.

동창 무인들의 얼굴이 실망으로 일그러졌다.

기대했던 이변은 없었다.

등을 보인 채 축 늘어져 있는 사람은 팔신장의 수장인 밀사신장 유덕이었다.

“ 보고만 있을 거요?”

“ 아, 알았다.”

퍼뜩 정신을 차린 장제남은 허공섭물을 펼쳐 두 사람을 끌어올렸다. 위로 올라온 연우강은 팔목에 묶인 요대를 풀어 가마로 다가갔다.

“ 난 유설연이고, 이쪽은 우성연이에요.”

유설연은 다가오는 연우강을 보며 생긋 웃었다.

“ 날 류사은이고, 저기 우산을 들고 있는 아이는 와운이오.”

“ 두 배를 드릴 게요.”

“ 두 배를 주고 이층을 사용하시오. 단, 당신과 우 공자 그리고 팔신장만 머무는 조건이오.”

“ 삼층은 당신이 사용하겠다는 말인가요?‘

“ 그렇소.”

“ 좋아요, 그렇게 하도록 하죠.”

유설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럼 천천히 따라오도록 하시오.”

연우강은 요대를 창문 앞으로 내밀었다.

“ 류 공자께 주는 선물이에요.”

“ 난 이런 요대는 필요 없는데.... 아무튼 공짜니까 받겠소.”

연우강은 싱긋 웃으며 몸을 돌렸다.

“ 와운, 가자.”

연우강은 여전히 우산을 쓰고 서 있는 남궁운화를 불렀다.

“ 네.”

남궁운화는 빠르게 연우강 곁으로 다가갔다.

“ 주인장.”

남궁운화가 다가오자 연우강은 호화루 주인을 불렀다.

“ 저기.....”

호화루 주인 육대는 곤혹스러운 얼굴로 가마를 보았다. 가마의 주인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소제독이라고 불리는 유설연이다. 신분상으로 따지면 먼저 모셔야 할 사람이 그였던 것이다.

“ 먼저 모시거라.”

“ 아, 알겠습니다. 소제독님. 저를 따라오십시오.”

육대는 선착장 끝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대여섯 명이 탈 수 있는 작은 배가 기다리고 있었다. 연우강과 남궁운화가 올라타자 배는 빠르게 선착장을 벗어나 호화루로 향했다.

멀어지는 조각배를 유설연과 우성연은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유설연은 우성연을 돌아다보았다.

“ 네 생각은 어떠냐?”

“ 뭐가요?”

“ 그동안 무림에 대해 공부를 많이 했잖아.”

“ 그러니까 저자의 정체가 궁금하다는 말이죠?”

“ 응.”

“ 정체를 숨기고 있다고 보세요?”

“ 그것뿐만이 아냐. 이것아. 무공도 밀사보다 더 강한 자야.”

“ 설마요.”

우성연은 놀란 얼굴로 유설연을 바라보았다

류사은이라고 하였던 자를 살펴보지 않은 게 아니었다. 처음 등장할 때부터 내공을 동원하여 샅샅이 훑었다. 하지만 무공을 익힌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 지부장님은 찾아냈어요?”

우성연은 다시 물었다.

“ 무공을 익힌 흔적을 말하는 거야?”

“ 네.”

“ 아니.”

유설연은 고개를 저었다.

“ 그런데 어떻게 확신하죠?”

“ 우리가 누구야?”

“ 지부장님은 소제독으로 불리는 동창 최고 권력자시고, 밀사는 팔신장 수뇌, 그리고 주변에 있는 자들은 천밀위사잖아요.”

“ 위세는 어느 정도라고 생각해?”

“ 대야벌 벌주인 담대만승이 설설 기었으니까 위세는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잖아요.”

“ 그럼 그런 우리들 앞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하지?”

“ 잔뜩 주눅이 들어 묻는 말에 대답도 제대로 못 하죠.”

“ 그런데 그자는 어쨌지?”

“ 그자가 그렇게 배짱을 부렸던 이유가 무공 때문이라는 거예요?”

“ 다른 이유가 있으면 말해 봐.”

“ 다른 이유라....”

우성연은 창 밖으로 시선을 주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자가 그렇듯 대담하게 행동한 이유를 찾아낼 수가 없었다.

“ 없지?”

“ 네.”

우성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 자신감이란 여러 가지 이유로 나올 수 있어. 하지만 우리 동창 앞에서는 돈도, 관직도 아무런 의미가 없어. 전후 사정이 어찌됐든 먼저 숙이고 나와야 해. 하지만 그자는 그렇게 하지 않았어. 그건 많은 것을 시사해, 성연.”

“ 무슨....?”

“ 첫째 녀석은 팔신장 정도는 우습게 여길 정도로 강자라는 거야.”

“ 팔신장을 우습게 여길 무인은 강호에 없어요. 지부장님.”

“ 여기서 우습다는 건, 팔신장보다 무공이 훨씬 뛰어나다는 뜻이 아니야.”

“ 그럼요?”

“ 그자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도망칠 수 있다는 뜻이야.”

“ 그건 가능하겠네 그럼 두 번째는 뭐죠?”

“ 약점이 없는 사람이라는 거야.”

“ 약점이 없다고요?”

“ 우리 동창에서 말하는 약점 말이야.”

“ 가족이나 일가친척을 말하는 거군요?”

“ 그렇지. 그리고 세 번째는 저 화선을 통째 빌릴 정도로 돈이 많다는 거지.”

유설연은 호수에 떠 있는 배로 시선을 주었다.

그가 통째 빌렸다는 호화루란 이름의 화선은 이곳에 있는 화선들 중 가장 크고, 가장 먼 곳에 정박하고 있다. 더불어 조망은 물론이고 주변에 다른 화선이 거의 없어 독립성도 뛰어나다. 하지만 가격이 워낙 비싸 보통 사람은 머물 생각도 못하고 접대용이나 또는 부잣집 자제들이 재력을 자랑하기 위해 잠시 머물다 가는 용도로 더 많이 쓰인다. 그런 화선을 통째로 빌렸다면 엄청난 부자라고 봐야 할 터였다.

“ 그럼 결론은 약점이 될 수 있는 가족이 없고, 돈이 많으면서 젊은 사람이 되네요?”

“ 그러면서도 동창을 조금도 겁내지 않는 배짱을 가진 자지.”

“ 누구죠?”

우성연은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

“ 연우강밖에는 없는 것 같은데....”

유설연의 목소리엔 자신이 없었다. 가족이 없고, 돈이 많고 배짱이 두둑한 것까지는 맞는데 무공이 걸렸기 때문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연우강은 무공이 그렇게 강한 자가 아니었다.

“ 그자가 팔신장보다 강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우성연 또한 같은 생각인 듯 당장 무공을 들먹였다.

“ 그러니까 확신을 못하는 거잖아.”

“ 확신해도 돼요, 지부장님. 그자는 연우강 맞아요.”

“ 갑자기 왜?”

유설연은 황당한 얼굴로 우성연을 보았다.

그가 이렇듯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한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 그가 무공을 익힌 게 확실하다면 연우강이 맞다는 말이에요, 지부장님.”

“ 그러니까 그 이유가 뭐냐고?”

“ 조금 전에 저는 물론이고 지부장님도 그자가 무공을 익혔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잖아요.”

탁!

유설연은 무릎을 탁 쳤다.

바로 그거였다. 자신들이 알아차리지 못한 연우강의 실력을 다른 무인들이 알아차릴 리가 없을 터였다.

“ 그렇다고 해도 대단한 자예요, 지부장님.”

“ 맞아, 대단한 자니 아무튼 앞으로 재미있어지겠어.”

유설연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 그런데 말이에요.”

“ 또 궁금한게 있어?”

“ 류사은이란 이름 말이에요.”

“ 그게 왜?”

“ 본 기억이 있어서요.”

“ 들은 게 아니고 봤다고?”

“ 정확하게 언제인지, 누군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분명 봤어요. 그것도 동창 비밀 문서에서 봤던 것 같아요.”

“ 그래?”

유설연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우성연은 평소 덤벙거리긴 하지만 기억력 하나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런 그가 봤다면 조사해 볼 가치가 있었다. 더구나 동창 비밀문서라고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될 일이었다.

“ 배가 왔어요. 지부장님.”

조금 전 연우강을 태우고 갔던 배가 돌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 가요, 신장.”

“ 모시겠습니다. 소제독님.”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유덕을 제외한 일곱 명은 가마를 들어 올리고는 걸음을 옮겼다.

“ 배에 오를 필요 없이 바로 가요.”

“ 알겠습니다. 소제독.”

우렁찬 함성과 함께 팔신장 일곱 명의 몸에서 가공할 기운이 솟아 나왔다. 그들은 선착장 끝에 다다라서는 훌쩍 몸을 날렸다. 곧 그들의 신형이 빠르게 물을 박차고 나아갔다. 물 위를 평지처럼 걸어간다는 등평도수 신법이었다.

“ 와우! 저것 보세요. 연 공자.”

창문 너머로 선착장 쪽을 보고 있던 남궁운화는 감탄한 얼굴로 소리쳤다.

“ 왜 그러십니까?”

옷을 갈아입고 있던 연우강은 남궁운화 곁으로 걸어갔다.

“ 직접 보세요.”

남궁운화는 약간 비켜섰다.

“ 멋지네요.”

연우강은 솔직하게 말했다.

비를 뚫고 물 위를 달려오는 모습은 무인이 어떤 존재라는 걸 확실하게 보여주는 광경이었다. 만일 일반 양민이 저 모습을 보았다면 신선이 나타났다며 호들갑을 떨 정도로 멋졌다.

“ 그런데 갑자기 왜 저러는 거죠?”

남궁운화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 자존심이 상했나 보죠, 뭐.”

연우강은 피식 웃으며 몸을 돌렸다.

“ 호호호! 아무튼 연 공자의 무모함은 알아줘야 해요. 차 드실래요?”

창가에서 물러난 남궁운화는 벽에 붙은 간이 주방으로 가며 물었다.

이곳은 선실을 개조하여 만든 방임에도 불구하고 꽤 넓었다. 바깥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면 응접실이 나오고 바닥엔 서역에서 난다는 붉은 양탄자가 깔려 있다. 양탄자 중앙에 놓인 흑단과 자단을 섞어 만든, 무릎 높이의 둥근 탁자는 고풍스러우면서도 역동적인 느낌이 살아 있어 아주 고급스럽게 보인다.

응접실 오른편으로는 역시 자단과 흑단이 반반씩 섞인 침실 문이 있고 왼편에는 화장실과 욕실이 있다.

그녀가 향하는 곳은 출입문과 마주 보는 창문 아래쪽의 간이 주방이다. 그곳에는 늦은 밤, 차나 술을 마시고 싶을 때 점소이를 부를 필요 없이 바로 해결할 수 있도록 술, 마른 안주, 여러 종류의 차가 준비돼 있다.

외부로 나가지 않고도 안에서 전부 해결할 수 있는 구주로 돼 있는 방이었다.

탁자 옆에는 연우강이 받쳐입고 다니는 사망묵의가 펼쳐져 있었다.

그녀는 사망묵의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연우강이 가진 불가사의 중 하나가 바로 저 검은 옷 곳곳에 꽂힌 수많은 무기들이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무늬로 착각할 정도로 교묘하게 꽂힌 무기들은 대충 세어도 백여 개가 훨씬 넘는다.

무기라는 말보다는 암기가 더 어울리고, 실제 그는 무공을 펼칠 때 저것들을 날려 적을 없앤다. 백여 개가, 아니 거의 이백여 개에 달하는 무기를 날리고 다시 회수하는 방법.

그것이 그가 가진 불가사의였다.

“ 어떻게 하는 거죠?”

“ 암기를 날리는 방법이 궁금한 겁니까?”

연우강은 남궁운화 건녀편에 앉으며 되물었다.

“ 날리는 방법보다는 회수하는 방법이 더 궁금해요.”

“ 회수하는 방법은....”

연우강은 탁자 위에 놓인 찻잔으로 시선을 주었다.

둥실!

찻잔이 둥실 떠오르고, 곧 그 자리에서 팽이처럼 회전하기 시작했다. 찻잔을 향하고 있던 연우강의 시선이 침실 문 쪽으로 향하고, 찻잔은 가공할 속도로 쏘아져나갔다. 한순간에 침실 문 앞으로 다가간 찻잔은 다시 방향을 바꾸어 안쪽 창문을 향해 날아갔다. 그곳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창문 앞에 도달하자마자 방향을 바꾸더니 욕실 문과 출구를 차례로 지나쳐 다시 연우강 앞으로 돌아왔다.

“ 이렇게 하는 겁니다.”

연우강은 찻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 이기어검술?”

그렇게 말하면서도 남궁운화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의 무공으로 보건대 이기어검술을 펼친다고 하여 이상할 게 없다. 하지만 방금 연우강이 보여준 기술은 자신이 알고 있는 이기어검술과는 달랐다.

이기어검술은 시선이 머무는 곳으로 무기가 옮겨간다고 말할 정도로 그 속도가 빠르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나는 일이라 이기어검술을 막아내는 방법 또한 이기어검술밖에 없다. 더불어 무기가 그러한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최단 거리 즉 직선으로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연우강이 방금 보여준 기술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다. 이기어검술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기술이었다.

“ 그럼 이건 어때요?”

연우강의 시선이 이번엔 남궁운화에게로 향했다.

“ 어?”

자기 몸이 허공으로 떠오르자 남궁운화는 깜짝 놀랐다.

“ 이건?”

이번에도 역시 그녀는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을 들어 올리는 힘은 내공을 바탕으로 펼치는 허공섭물이 아니었다. 허공섭물은 어떤 물체를 끌어당기거나 들어 올리는 무공을 말하는 데 그때 이용하는 건 바로 내공이다. 내공으로 물건을 장악하여 들어 올리거나 끌어온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외부에서 들어온 어떤 기운도 느낄 수가 없었다.

손을 움직이는 건 물론이고, 내기를 사용하는 것까지도 자유롭다. 다만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건 불가능할 듯했다.

“ 염력입니다.”

“ 마라천력이란 말이에요?”

남궁운화는 조금 놀랐다.

“ 그렇습니다. 남궁 소저.”

연우강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내려놓았다.

“ 그럼 마라천력과 내공을 합친 건가요?”

“ 네.”

연우강은 자리에서 일어나 펼쳐두었던 사망묵의를 입었다. 그러고는 사망묵의 위로 진남색 비단 장포를 걸쳤다. 그가 진남색 장포를 입는 이유는 가급적 안쪽의 사망묵의가 드러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똑똑똑!

옷을 걸치고 자리에 앉는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식사 준비가 된 모양입니다. 소저.”

“ 알았어요.”

벌떡 일어난 남궁운화는 연우강의 뒤를 따랐다.

밖에는 점소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 연회실에 식사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손님.”

연우강과 남궁운화가 나오자 점소이가 고개를 숙였다.

“ 나중에 오신 분들께도 연락했느냐?”

“ 그렇습니다.”

“ 앞장서거라.”

“ 모시겠습니다. 손님.”

점소이는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고는 두 사람을 연회실로 안내했다.

“ 혹시 이 배 움직일 수도 있느냐?”

배가 멀쩡해 보이기에 묻는 말이었다.

“ 잘은 모르지만 주인어른의 말씀에 의하면 노잡이들만 있으면 움직인다고 하였습니다.”

“ 그럼 무슨 일이 생기면 배를 타고 도망쳐도 되겠구나.”

“ 주인어른께서 간혹 우스갯소리로 전쟁이 나면 이 배를 타고 동해까지 도망치면 된다고 말씀하시곤 합니다. 여깁니다. 손님.”

점소이가 두 사람을 안내한 곳은 이층 중앙에 있는 널따란 연회실이었다. 연회실 안에는 유설연 일행이 앉아 있었다.

“ 어서 와요, 연우강 공자.”

자리에서 일언ㄴ 유설연은 활짝 웃으며 맞았다.

하지만 웃는 얼굴과는 달리 유설연은 연우강의 얼굴을 샅샅이 살피고 있었다. 연우강이라고 대놓고 불렀으니 어떤 반응이 나타날 거라는 생각을 하며.

하지만 이내 얼굴에 실망의 빛이 가득 떠올랐다. 느닷없이 연우강이라고 불렀는데 그의 얼굴은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 연우강 맞아요. 지부장님.]

바로 그때 우성연의 전음이 들려왔다. 우성연은 연우강 옆에 있는 종자를 살피고 있었다.

유설연은 남궁운화를 보았다. 커다란 눈을 끔뻑거리는 걸 보니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우성연의 말처럼 앞에 있는 자는 연우강이 분명했다.

“ 언제 알아차린 거요?”

연우강은 자리로 가 앉으며 물었다.

“ 엉?”

오히려 놀란 사람은 유설연이었다.

숨겼던 정체가 드러나게 되면 보통 사람은 증거가 나올 때까지 부정한다. 심지어 어떤 자는 증거가 나와도 아니라고 잡아뗀다. 그런데 연우강은 처음엔 전혀 표정변화도 없다가 이젠 언제 알았느냐고 묻는다.

그 말은 곧, 자신의 정체가 언젠가는 들통날 거라는 것까지 예측하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 대야벌을 우습게 보면 큰일납니다. 소제독 지금 당장은 허둥대겠지만 금세 안정을 되찾게 될 겁니다.”

연우강은 준비돼 있던 찻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말했다.

“ 대야벌도 금세 알아차릴 거란 말인가요?”

“ 당연히 그렇죠.”

“ 속일 수도 없는데 굳이 정체를 감춘 이유가 뭐죠?”

“ 전쟁은 단순히 밀고 들어가서 칼부림을 하면 끝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공격이나 방어에는 수많은 방법이 있고, 적의 행동을 정확하게 예측하고 그에 대한 대응 방안을 세우고, 적의 허점을 찔러야먄 승리를 얻어낼 수 있습니다. 금릉 연씨 세가를 폭발시키고, 내 신분을 숨기는 건, 사건을 복잡하게 만들기 위해섭니다.”

“ 복잡하게 만들어요?”

“ 이 요리를 보십시오, 소제독.”

연우강은 탁자 위를 꽉 채우고 있는 접시를 가리켰다.

“ 요리가 어떻다는 거죠?”

“ 이 요리 중에 가장 맛있는 게 어떤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 아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 전부 먹어본 사람이거나, 요리를 직접 만든 요리사만이 알겠지요.”

“ 바로 그겁니다. 소제독. 많은 요리가 차려지면 어느 게 맛있는지 주 요리는 어떤 건지 먹어보기 전에는 알 수가 없습니다. 난 이 요리처럼 담대만승 앞에 많은 요리를 내놓을 참입니다.”

“ 요리란 적을 말하는 건가요?”

“ 직접적인 충격을 줄 수 있는 적이 될 수도 있고, 심리적 타격이 될 수 있습니다.”

“ 조금 전에 대야벌을 우습게 보면 큰일난다고 하지 않았나요?”

“ 그래서 조금씩 천천히 진행하는 겁니다. 내가 담대만승의 상에 올려놓은 첫 번째 요리가 바로 동창과 금의위입니다.”

“ 하!”

유설연은 멍한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그가 말한 상황은 이미 예측을 했고, 우성연에게도 자신과 남철진이 심부름꾼으로 선택됐다는 말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연우강에게 직접 듣자 충격이 밀려온다. 아니 동창의 이인자라는 자신을 앞에 두고 동창과 금의위를 이용하기 위해 금릉 연씨 세가를 폭파시켰노라고 태연하게 말하는 연우강의 배포가 더 놀랍다.

“ 실망이네요.”

연우강은 유설연을 빤히 쳐다보았다.

“ 뭐가 실망이라는 거죠?”

“ 장차 제독동창이 되실 분이 그 정도도 예상 못했다는 게 실망스럽단 말입니다. 소제독. 최소한 소제독은 담대만승이나 만우량보다는 더 빨리 알아차릴 줄 알았거든요.”

“ 나에 대해서 잘 아세요?”

“ 모릅니다.”

“ 그런데....”

“ 스물일곱 살의 나이, 제 물건을 떼서 던져버릴 정도의 독심. 그 두가지를 가지고 말하는 겁니다.”

“ 그거 칭찬인가요?”

“ 저 영감에게 말했지만 어떤 목적을 위해 온몸을 불사르는 독심은 존경받아 마땅합니다. 소제독.”

연우강은 턱으로 유덕을 가리켰다.

“ 칭찬으로 받아들여도 되겠군요.”

“ 난 부득이한 사정이 있을 경우를 제외하곤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짐작하지 못했습니까?”

“ 본인에게 직접 듣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럼 담대만승 밥상에 올릴 두 번째 요리는 화약인가요?”

“ 한 건 올린 모양이네요. 이러다 요리 식겠습니다. 들면서 이야기 하죠.”

연우강은 각각 하나씩 준비된 보조 접시에 음식을 담으며 말했다.

“ 동창을 우습게 보지 마세요. 연 공자. 최소한 대야벌보다는 정보력이 더 강한 곳이에요.”

유설연은 보조 접시를 들며 말했다.

사실 그 사건을 보고받은 건 며칠 전이다.

적과 교전 중인 사천과 감숙성 부근에는 군수물자가 거래되는 암시장이 형성돼 있다. 명나라가 건국되기 전부터 형성된 암시장에는 없는 물건이 없는데 심지어는 황실에서 직접 관리하는 화포까지 거래되고 있었다.

얼마 전 그 암시장에서 거래 내역이 보고돼 올라온 것이었다. 놀랍게도 거래된 물건은 화포 오십 문과 화탄 이천 발이었다. 비록 구형이고 설사 압수한다고 해도 폐기해야 할 것들이지만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화포를 압수하고, 구매자를 처벌하라는 명령을 내리려는 데 구매자에 대한 정보가 올라왔다.

경악하게도 화포 구매자는 구림세가의 전대 가주인 태황야 이자승이었다. 상대가 이자승이라면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문득 그가 연우강을 따라나섰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금릉 연씨 세가가 폭발한 상황에서 연우강이 화포를 원했다면 그 다음 상황을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연우강이 하려는 일은 자신에게 도움이 됐으면 됐지 해가 가는 일이 아니었다.

더불어 구림세가와 척을 져서 좋을 게 없었다. 결국 염탐하던 자들에게 철수 명령을 내렸다.

“ 사실 그 일 때문에 호화루 이층을 싸게 대여해 주고 파릉전어석을 대접하는 겁니다.”

“ 발각될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단 말인가요?”

“ 구림세가의 전대 가주를 보낸 이유가 그 때문입니다. 소제독.”

“ 으음!”

유설연은 저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었다. 놀라운 녀석이 아닐 수 없었다.

“ 그럼 이건 눈감아 달라는 뜻?”

유설연은 파릉전어석을 가리켰다.

“ 이건 그냥 친분을 쌓기 위해 접대하는 겁니다. 쉽게 말하면 뇌물이죠.”

“ 이건 천 냥짜리 요리라고 알고 있는데요?”

연우강이 이층을 대여하는 조건으로 천 냥을 달라고 해서 하는 말이었다.

“ 천 냥은 정당한 거래고, 이건 뇌물입니다.”

“ 호호호! 하하하!”

드르르! 드르르!

내공을 끌어올린 듯, 미친 듯한 웃음소리에 탁자 우 음식 접시들이 일제히 흔들렸다.

한동안 천장을 쳐다보며 웃어젖히던 유설연의 웃음이 거짓말처럼 뚝 그쳤다. 그리고 그의 몸에서 서릿발 같은 기운이 쏟아져 나왔다. 유설연이 웃음을 멈추자, 팔신장 여덟 명이 자리를 박차고 몸을 날려 연우강과 남궁운화 주변으로 늘어섰다. 흉흉한 안광을 뿌리고 있는 그들 모두는 자신의 무기에 손을 대고 있었다.

“ 연우강!”

유설연의 말투가 대번에 반말로 바뀌었다.

“ 말하시오, 소제독.”

“ 내가 뭘로 보이나?”

“ 명 제국 최고 실세인 동창의 이인자로 알고 있소이다.”

“ 그런데 날 우롱한단 말인가?”

“ 난 소제독을 우롱한 적 없소.”

“ 말을 가려서 해라, 연우강. 네 앞에 있는 분은 동창의 소제독님이시다.”

뒤편에 있던 유덕이 버럭 소리쳤다.

“ 영감이 나설 상황이 아니잖아. 지금은 조용히 찌그려져 있는 게 서로를 위해 좋아, 영감.”

연우강은 접시에 담았던 생선의 살을 발라내며 태연하게 말했다.

“ 감히....”

유덕의 눈에서 새파란 광채가 쏟아져 나왔다. 그는 슬쩍 유설연의 눈치를 살폈다. 유설연은 연우강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한 채 가만히 있었다.

유설연이 허락했다고 판단한 그는 연우강의 목을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 밀사!”

하지만 연우강의 목을 틀어쥐려는 순간 유설연의 외침이 그의 동작을 막았다.

“ 물러나 있겠습니다. 소제독님.”

손을 내린 유덕은 한 걸음 물러났다.

“ 말과 행동이 같아야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 연우강. 난 동창의 실세고 넌 평민이다. 내 한 마디면 너를 비롯하여 네 가족이 참수당할 수도 있다.”

“ 쯧!”

연우강은 낮게 혀를 차며 발라낸 생선살을 입으로 가져갔다.

“ 정녕 죽고 싶은 게냐?”

급기야 유설연의 몸에서 진득한 살기가 쏟아져 나왔다. 그는 유덕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바로 그때 연우강의 입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첫째, 감정을 함부로 드러내지 말 것. 둘째, 협박은 통하는 놈에게만 할 것. 셋째, 자신에게 이익이 없는 일에는 절대 나서지 말 것. 그걸 잊으면 넌 절대 제독동창이 될 수 없다. 유설연.”

“ 이런 죽일 놈이!”

연우강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유덕의 입에서 욕설이 비어져 나왔다. 선착장에서 있었던 일도 있고 해서 연우강에게 감정이 많았던 터라, 곧바로 연우강을 향해 손을 뻗어냈다. 그의 손이 먹물처럼 새카맣게 변하며 연우강의 목을 틀어쥐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연우강의 신형이 의자와 함께 오른편으로 이동했다.

먹물처럼 새카맣게 변해 있던 유덕의 오른손은 허공을 움켜쥘 수밖에 없었다. 깜짝 놀란 유덕은 오른손의 방향을 바꾸며 갈고리처럼 구부려 연우강의 목을 향해 휘둘렀다. 그의 손이 향하는 곳은 연우강의 얼굴이었다.

찌익!

연우강의 가슴 부근에서 천이 찢기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그곳으로부터 검은 광채가 번쩍 솟아 나왔다.

검은 광채가 유덕의 오른손으로 향하고, 그 광채와 동시에 움직인 연우강의 왼손은 유덕의 머리를 향해 나아갔다.

“ 커억!”

와락!

나직한 비명이 유덕의 입에서 비어져 나왔다.

그는 질겁하여 오른손을 거둬들였다. 바로 그 순간 나아가던 연우강의 왼손이 유덕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 내가 조녕하는 건 제 물건을 잘라낸 독심이지 당신이 아냐, 영감.”

연우강은 휘어잡은 머리채를 사정없이 탁자로 박아버렸다.

콰앙!

둔탁한 소성과 함께 탁자에 구멍이 뻥 뚫리며 유덕의 머리가 그 속으로 사라졌다.

‘ 아무튼!’

남궁운화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보통 무거운 걸로 위에서 찧게 되면 탁자가 박살나는 경우가 많은 데 지금은 유덕의 머리가 들어간 자리만 구멍이 뻥 뚫려 있다. 무기에 강기를 두른 것처럼 유덕의 머리에 내기를 덧씌워 찍어눌러서 생긴 현상이다.

아마도 유덕은 기절했을 것이다.

‘ 사람을 잘 못 보면 그렇게 됩니다. 영감님, 덤빌 사람에게 덤벼야죠.’

남궁운화는 태연한 얼굴로 음식을 입으로 가져갔다.

창! 창창창!

유덕이 당한 모습을 지켜보던 팔신장의 나머지 무인들은 일제히 무기를 뽑아들고 연우강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연우강의 등을 향해 무기를 찔러 넣지 못했다. 유덕의 뒷목에 세워져 있는 검은 색 비수를 발견한 탓이다. 손으로 잡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유덕의 살갗을 약간 파고 들어가 있었다.

“ 계속하게 되면 유설연 넌, 지금 이 순간부터 제독동창의 꿈을 접어야 한다. 그래도 좋다면.....”

연우강은 유덕의 뒷목에 있는 비수 손잡이를 오른손으로 잡으며 말했다.

“ 날 굴복시키고 싶은 거라면 잘못 생각했어요. 연 공자.”

유설연의 입가에 싱긋 미소가 맺혔다.

‘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네.’

그런 그를 보며 남궁운화는 내심 중얼거렸다.

조금 전까지 연우강을 죽일 것처럼 하던 유설연이 지금은 활짝 웃고 있다. 내시들의 성격이 다변하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저 정도일 줄은 생각지 못한 일이다.

연우강도 그렇지만 유설연 또한 대단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곁눈질로 연우강을 살폈다.

다행히 연우강은 화가 난 얼굴이 아니었다.

그녀는 내심 안도의 숨을 쉬며 젓가락을 접시로 가져갔다. 그러고는 뼈를 깔끔하게 발라낸 생선 한 덩어리를 입으로 가져갔다.

‘ 맛있.... 헉!’

입을 오물거리던 남궁운화는 화들짝 놀랐다.

지금은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그런데 태연하게 음식을 먹고 있었던 거였다.

‘ 내가 미친 게 분명해. 저번엔 사람이 죽어 가는 와중에도 볼일을 보더니 이젠....’

남궁운화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도 오물거리는 입을 멈추지 않았다.

‘ 이왕 미친 거 확실하게 미쳐야겠네.’

“ 주인장! 여기 음식 다시 만들어와야겠어요.”

그녀는 입을 오물거리며 주방을 향해 소리쳤다.

“ 아, 알겠습니다. 손님.”

주방에서 주인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남궁운화는 활짝 웃으며 연우강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 난 건전한 대화를 하고 싶을 뿐이오, 소제독.”

“ 그럼 그 정도로 됐으니까 밀사는 놓아주도록 하세요.”

“ 그렇게 하죠.”

연우강은 고개를 끄덕이며 비수를 거둬들였다. 그러고는 엎드려 있는 유덕의 머리를 끌어올렸다.

“ 또 기절했군요.”

유설연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연우강이 유덕의 오른손을 막아내고, 머리를 쥐어 탁자를 향해 밀어붙인 건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다.

그런데 그는 그 짧은 순간에 유덕을 불능 상태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무공 격차가 엄청나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의 놀라움은 시작에 불과했다.

“ 으음!”

유덕의 상태를 확인하던 유설연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흐느적거리고 있는 유덕의 오른 손바닥에는 검은색 비수가 깊숙이 박혀 있었는데, 그곳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단지 검은 광채가 일렁였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비수였던 모양이다.

“ 다시 이야기를 시작해 봅시다.” 연우강은 유덕의 손바닥에 박힌 사망마비를 뽑아내 피를 닦아내며 말했다. 그가 유덕을 놓아주자 뒤편에 있던 자들이 다가와 부축하여 물러났다.

“ 이 정도로는 뇌물이 너무 약해요, 연 공자.”

“ 사실 이건 내가 아니라 소제독이 계산해야 합니다.”

“ 왜 내가 계산해야 하는 거죠?”

“ 이번 일이 무사히 끝마치면 소제독은 차기 제독동창 자리를 확보하는 거나 마찬가지가 되니까요.”

“ 정말 그렇게 될 거라고 보세요?”

“ 아무리 뛰어난 자라고 해도 흥분하게 되면 판단력이 흐려집니다. 담대만승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일로 인해 놈은 반미치광이가 될 겁니다. 미친개를 상대하는 건 의외로 간단합니다. 소제독.”

“ 몽둥이만 있으면 된다는 말인가요?”

“ 그렇습니다.”

“ 좋아요. 이건 내가 사도록 하죠.”

“ 진작 그렇게 나왔어야 했습니다. 소제독.”

“ 하지만 말입니다.”

유설연은 얼굴을 찌푸렸다.

“ 말하십시오.”

“ 난 담대만승보다 연 공자가 더 무서운데 어떡하죠?”

우뚝!

남궁운화의 젓가락질이 처음으로 멈췄다.

담대만승보다 연우강이 더 무섭다는 말은 모든 일이 끝나고 권력을 잡았을 때 연우강을 몰락시킬 수도 있다는 우회적인 표현이기 때문이다.

“ 그래서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것 아닙니까?”

연우강은 옆에 있던 술병을 들어 올렸다.

“ 정계에는 진출할 의사가 없다는 말인가요?”

유설연은 술잔을 들며 연우강의 얼굴을 살폈다.

“ 멀지도 그렇다고 가깝지도 않는 친구가 황실에 있으면 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 친구에게 부탁을 하면 되는데 굳이 황실을 들락거리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지요. 그리고 내 꿈은 황금백숩니다.”

“ 나랑 친구 먹자는 말인가요?”

“ 절친한 친구가 되기 힘들겠지만, 적당히 이용해 먹는 그런 친구는 가능할 것 같은데, 아닙니까?”

“ 호호호! 좋아요. 연 공자. 그런 친구라면 얼마든지 가능해요. 그런데 황금백수가 뭐죠?”

“ 황금을 물 쓰듯 쓰면서 놀고 먹는 백수를 말합니다.”

“ 풋! 아주 좋은 꿈이네요. 친구가 되기 위해 내가 지켜야 할 건 뭐죠?”

유설연은 술잔을 연우강 앞으로 내밀었다.

“ 내 가족, 내 부하, 그리고 나와 관련된 사람들만 건들지 않으면 됩니다. 그런데 난 뭘 조심하면 됩니까?”

연우강은 술을 따르며 물었다.

잔을 채운 연우강은 술병을 유설연 앞에 놓고 제 잔을 내밀었다.

“ 정계로만 들어오지 않으면 됩니다. 연공자.”

유설연은 빙그레 웃으며 연우강의 술잔에 술을 채웠다.

“ 친구를 위해!”

“ 친구를!”

두 사람은 술잔을 높이 쳐들고 건배를 한 후 단숨에 잔을 비웠다.

“ 오랜만에 요대 풀어놓고 한번 먹어봐야겠어요. 신장들도 와서 먹어요.”

술잔을 내려놓은 유설연은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어대기 시작했다.

“ 그런데 어떻게 여기까지 올 생각을 한 거요?”

“ 말 놔도 돼.”

푸읍!

느닷없이 우성연이 입 안의 음식을 뿜었다.

“ 이것아! 저 자식과 내가 친구가 된 날인데 그렇게 하고 싶어?”

유설연은 우성연을 흘겨보며 소리쳤다.

“ 지, 지부장님 목소리 때문이잖아요!”

“ 내 목소리가 어때서?”

“ 나, 남자 목소리로.....”

“ 이게 원래 내 목소리야. 새삼스럽게 왜 그래?”

“ 새삼스러운 게 아니라, 워낙 오랜만에 들어본 진짜 목소리라서 놀랐어요.”

“ 친구 앞에서까지 위선적인 모습을 보일 정도로 썩진 않았어, 이것아, 말 놓을 거지?”

우성연을 향해 눈을 흘긴 유설연은 연우강을 돌아보며 눈썹을 씰룩했다.

“ 친군데 당연히 놔야지.”

연우강은 피식 웃으며 유설연의 잔에 술을 따라 주었다.

“ 조금 전에 뭘 물었지?”

“ 어떻게 왔냐고 물었다.”

“ 전설을 따라 왔어.”

“ 수영궁의 전설?”

“ 너도 그걸 쫓아온 거냐?”

“ 전설은 전해 내려오면서 부풀려지고 과장되곤 하지만, 그 시작은 언제나 사실에서 기인하거든.”

“ 영악한 놈!”

“ 너도 마찬가지잖아.”

연우강은 술잔을 들어 올렸다.

“ 그럼 조만간 무인들이 떼거리로 몰려오겠네.”

“ 노잡이만 있으면 이 배도 움직일 수 있다고 하더라.”

“ 천밀위사를 노잡이로 쓰라고?”

“ 내공이 있으니까 추진력이 다른 배에 비해 곱절로 빨라질 거야.”

“ 그건 그렇네.”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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