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백수-71화 (71/232)

제 8장 동귀어진

녀석의 머리가 나쁘다면 장단을 맞춰, 백독수란 놈을 호되게 나무라야 한다. 그런데 이번엔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녀석은 의도적으로 백독수에게 시비를 걸었다.

정확하게 원하는 게 뭔지 모르는 상황에서 무작정 거들고 나설 수는 없는 일이었다.

“ 무슨 말이 그래!”

연우강은 버럭 소리쳤다.

“ 동창 소제독께서는 사리분별이 확실하신 분이시다. 난 고개를 돌렸을 뿐이다. 놈.”

유설연이 나설 기미를 보이지 않자, 백독수는 득의만면한 얼굴로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 놈을 없애주시오, 백 림주.]

그때 귓전으로 담대무궁의 전음이 들려왔다. 백독수는 고개를 슬쩍 끄덕여 알아들었다는 신호를 보냈다.

“ 유설연.”

연우강은 다시 유설연의 이름을 불렀다.

“ 그게 그러니.....”

연우강을 쳐다보던 유설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급한 얼굴로 자신을 불렀던 녀석의 입꼬리는 살짝 밀려 올라가 있었다. 그것은 미소라고 하기보다는 조소에 더 가까웠다.

‘ 맙소사, 저 자식?’

유설연은 내심 침음성을 흘렸다.

이곳에 있는 자들 중 연우강의 무공 실력을 제대로 아는 자는 단 한 명도 없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저들은 연우강을 동창 소제독 권력에 빌붙어 사는 충견 정도로 생각하고 있을 터였다.

더구나 그가 보여준 무공이라고는 담대무궁의 부하를 없앨 때 선보였던 발차기 한 가지밖에 없지 않은가.

패천림의 림주인 백독수가 저렇게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 설마’

유설연의 눈이 화들짝 커졌다.

녀석이 객잔에서 저질렀던 일이 지금을 염두에 두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퍼뜩 뇌리를 스쳤다.

아니 분명히 그럴 것이다.

“ 내가 널 보호해 줄 수 있는 상황이 있고, 그렇게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미안하지만 이번 일은 도와줄 수가 없다.”

“ 정말?”

“ 난 동창의 소제독이다. 물론 내가 명령을 내리면 신장들은 저자의 목을 당장 잘라올 것이다. 하지만 명분이 없다. 류사은.”

유설연은 남궁운화를 데리고 뒤편으로 물러났다.

“ 꼴 좋게 됐구나, 놈!”

백독수는 비릿한 조소를 물고 연우강 앞으로 다가가서는 삼 장 건너편에 멈췄다.

“ 끄응! 별 수 없이, 한 방 맞아 줘야겠네.”

연우강은 얼굴을 찡그리고는 백독수를 쳐다보았다.

“ 한 방 맞는 걸로 끝날 줄 알았더냐?”

“ 그럼 날 죽이겠다는 거야?”

“ 물론이다, 놈! 네놈을 죽여서 동정호 물고기 밥으로 던져버릴 참이다.”

“ 화가 많이 난 모양이구나?”

연우강은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사망낭조를 꺼내 손가락에 끼우며 이죽댔다.

“ 동정호 물고기 밥으로 던져주는 것보다는 네놈의 살을 발라서 해를 만들고, 자를 해먹고, 포로 만들어 두고두고 먹는 걸로 생각을 바꿨다.”

“ 날 잡아먹겠다고?”

“ 물론이다.”

“ 난 좀 질긴데.”

사망낭조를 전부 끼운 연우강은 슬쩍 내공을 주입했다.

철컥! 철컥!

그러자 사망낭조가 활짝 펴지며 모습을 드러냈다.

“ 흥!”

연우강의 모습을 지켜보던 백독수는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

“ 코웃음 칠 일이 아냐, 백독수. 이건 사망낭조라고 불리는 무긴데, 걸리면 금강불괴만 빼고 다 죽일 수 있다고 했단 말이야. 혹시 금강불괴는 아니겠지?”

“ 날 철전패왕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아느냐?”

백독수는 오른손을 왼손 소매 속으로 집어넣으며 내공을 끌어올렸다. 단전이 활짝 열리고 내공이 봇물처럼 터녀 나오자 그의 장포가 바람을 머금은 것처럼 팽팽하게 부풀어올랐다.

“ 돈 버리는 걸 좋아해서 그런 별호가 붙었다고 하던데, 돈ㅇ르 버리는 건 좋지 않은 습관이야, 백독수. 돈을 버리는 놈치고 잘 되는 놈은 아직 못 봤거든.”

파악!

연우강의 신형이 가공할 속도로 쏘아져 나갔다.

“ 어림없다, 놈!”

백독수는 재빠르게 뒤편으로 물러나며 왼손 소매 속으로 들어가 있던 오른손을 뽑아냄과 동시에 힘차게 뿌렸다. 하나의 철전을 날려 상대를 살해하는 일우살이었다. 그의 손을 떠난 철전은 빛살처럼 연우강의 미간을 향해 쏘아져갔다. 얼마나 빠른지 백독수가 던진 철전은 육안으로 확인조차 불가능했다. 백독수는 이번 일초로 연우강ㅇ르 없앨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일초에 전력을 다했고 이 초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더불어 그는 양손을 소매 속에 넣는 아니라 편안하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러나.

스윽!

나아가던 연우강의 오른손이 위로 향하고, 마치 두꺼비가 긴 혀를 이용하여 날아가는 파리를 잡아채는 것처럼 엄지와 집게 손가락으로 허공을 빠르게 움켜쥐었따.

철컥!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그의 미간을 향하던 철전이 절반으로 잘리며 뚝 떨어져 내렸다.

“ 응?”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던 무인들은 깜짝 놀랐다.

백독수의 암기술은 대야벌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하나의 철전으로 펼친다고 하여 일우살이란 이름으로 불리고 있지만 철전에 어린 힘은 한순간에 바위를 박살낼 정도로 가공하다. 그런데 이제 풋내기처럼 보이는 자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철전을 손가락 두 개로 잡아냈을 뿐 아니라 잡아챔과 동시에 잘라버린 것이다.

눈이 아니라 육감으로 살기를 잡아내는 초절정고수가 아니라면 보여줄 수 없는 절기였다.

하지만 그들의 놀라움은 백독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천상천 무인인 오제를 비롯하여 군마련의 천광마자 낙천 그리고 황궐과 세 문파의 수장들까지 많은 무인들이 있는 곳에서 이초인 폭우살과 삼초인 환우살까지 펼칠 수는 없었다.

이초와 삼초는 아껴둘 생각이었다.

그래서 일초인 일우살을 펼칠 때 전 내공을 동원했다. 그런데 놈은 아무렇지도 않게 철전을 잡아냈으니 간담이 서늘해질 수밖에 없었다.

“ 돈을 버리는 놈을 난 가장 경멸해, 자식아.”

파악!

연우강의 두 번째 도약이 이어지고,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연우강은 백독수를 향해 왼손을 내리그었다.

“ 헉!”

백독수는 헛바람을 들이키며 재빨리 철판교 수법으로 몸을 뉘었다. 철판교 수법은 두 발은 바닥에 붙이고 엉덩이와 상체는 땅에 닿지 않게 몸을 누이는 특이한 자세였다.

찌익!

그러나 대응이 조금 늦은 듯 가슴 어림이 길게 찢겨 나가며 피가 튀어 올랐다.

팍팍! 팍팍! 팍팍!

비명을 지를 새도 없었다. 백독수는 누운 상태 그대로 두 발을 놀려 정신없이 물러났다.

“ 너처럼 도망치는 놈을 일컬어 지느러미로 걷는 물고기를 닮았다고 하여 어부라고 한다더구나.”

연우강은 바닥을 사정없이 차며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뒷걸음질 치는 자가 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앞으로 달려가는 자를 당할 방법은 없었다. 한 호흡을 채 쉬기도 전에 연우강은 백독수를 따라잡았다.

“ 이젠 어디로 도망칠 테냐, 쥐새끼!”

연우강은 아래로 내리며 오른손을 힘껏 찔러 넣었다.

‘ 빌어먹을!’

백독수는 내심 욕설을 뱉어내며 멍석 말 듯 몸을 굴렸다. 게으른 당나귀가 몸을 뒹구는 모습에서 따왔고, 무인이면 지극히 꺼려하는 신법 중의 하나인 나려타곤이었다.

푹푹푹!

방금까지 백독수가 있던 자리로 사망낭조 다섯 개가 파고들었다. 바위로 된 바닥임에도 불구하고 사망낭조는 푹푹 파고들어갔다.

“ 물고기에 이어 당나귀구나.”

연우강은 오른손을 뽑아냄과 동시에 몸을 띄우고, 비스듬한 상태로 빙글 회전했다. 그러고는 백독수가 굴러간 자리를 향해 오른발을 도끼질하듯 내리찍었다.

백독수는 또다시 몸을 굴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손목에 차고 있는 철전을 꺼낼 생각도 못하고 정신없이 몸을 굴렸다.

퍼억!

연우강의 발 뒤축이 바위 속으로 파고들어가며 둔탁한 소성이 흘러나왔다. 발이 실패하자 연우강은 곧바로 몸을 날려 양손을 백독수의 가슴을 향해 찔러 넣었다.

백독수는 몸을 굴리는 것 말고는 피할 방법이 없었다. 그는 또다시 몸을 굴려 연우강의 손을 피했다.

‘ 개자식’

백독수는 내심 욕성를 뱉어내며 계속해서 굴렀다.

무엇보다 지금은 놈의 공격권에서 벗어나야 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몸을 굴림과 동시에 손바닥으로 바닥을 치고 그 반발력을 이용하면 거리를 벌릴 수가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게 되면 몸을 허공으로 띄워야 하는데, 비록 짧은 순간에 불과하지만 놈의 손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즉 한 번의 공격을 허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낭조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계속 굴렀는데, 지금처럼 해서는 벗어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 살을 주고 뼈를 받겠다. 놈!’

강한 바람을 동반한 발이 가슴을 향해 내려오는 모습을 쳐다보던 백독수는 사정없이 몸을 굴렀다. 그리고 한 바퀴 돌자마자 곧바로 오른손으로 강하게 바닥을 후려쳤다.

퍼억!

바위로 된 바닥에 푹 꺼지며 반발력이 손을 통해 들어왔다. 그는 그 힘을 이용하면서 양발을 사정없이 튕겼다.

스악!

두 자 가량 튀어오른 몸이 왼편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순간 오른편 옆구리가 씀벅했다.

‘ 커억!’

뼈가 잘려나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지만 백독수는 터져 나오는 비명을 꿀꺽 삼켰다 그러고는 양손을 급하게 반대편 소매 안으로 밀어 넣으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어느새 양 손가락 사이에는 여덟 개의 철전이 끼워져 있었다.

“ 죽인다!”

평소 가장 좋아하는 삼 장 거리 따윈 따질 겨를이 없었다. 그는 앞에서 달려나오는 연우강을 노려보며 양손을 거칠게 뿌렸다.

콰콰콰!

여덟 개의 철전을 동시에 날리는 폭우살은 소리를 이용하는 암기술이었다. 네 개의 철전에 뚫려 있는 수십 개의 작은 구멍에서는 거북살스러운 소성이 흘러나오고, 그 소성은 구멍이 뚫려 있지 않은 나머지 철전 네 개의 위치를 숨겨 준다. 여덟 개 중에서 살상용은 소리를 내지 않는 네 개의 철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일 초 일우살을 펼치 때 당한 것도 있고 하여 백독수는 폭우살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감히 태만하지 못하고 뒤로 물러났다. 물러나면서 그는 양손을 팔 소매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마지막 철전인 금전들을 손가락 사이에 끼웠다.

“ 커억!”

바닥으로 내려선 백독수의 입에서 비명이 비어져 나왔다. 그는 시선을 깔았다. 쩍 벌어진 옆구리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쳐 나오고 있었다. 더불어 뼈까지 잘려나간 듯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 차앗!”  바로 그때 앞에서 나직한 비명과 함께 검은 광채가 일렁이는 모습이 보였다.

창! 창창창! 창창! 창창!

“ 개자식!”

백독수의 입에서 욕설이 비어져 나왔다.

이 초인 폭우살도 무용지물이었다. 녀석은 양손을 휘둘러 여덟 개의 철전을 전부 막아내고 있었다. 그는 바닥을 강하게 차대며 연우강을 향해 몸을 날렸다.

쩍 갈라졌던 옆구리로부터 뭔가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우선은 상대를 없애는 게 먼저였다.

연우강과 거리가 이 장으로 좁혀지는 순간 소매 안으로 들어가 있던 그의 양손이 활짝 펴졌다.

파아아!

콰콰콰!

엄청난 광경이었다.

황금빛 광채가 주변을 가득 채우고, 이 초를 펼쳤을 때 흘러나왔던 소성이 뒤를 이었다.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던 무인들의 눈에 언뜻 놀람의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말로만 들었을 뿐 실제 본 적이 없었던 백독수의 성명절초 환우살은 가공했다.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금빛 광채와 고막을 터뜨릴 듯한 소성은 암기의 존재를 완전하게 숨겨버리고 있었다.

멀리 떨어진 상태에서도 암기를 찾아낼 수 없는데, 하물며 싸우고 있는 상황이라면 더 했으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터였다.

‘ 과연’

그들의 시선이 연우강에게로 향했다.

일우살과 폭우살은 쉽게 막아냈지만, 이번 환우살은 앞서 펼쳤던 두 초식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가 과연 이번에도 막아낼 수 있을는지.

결과가 어찌되든 흥미로운 비무가 아닐 수 없었다.

“ 타앗!”

연우강의 입에서 우렁찬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의 양손이 빠르게 움직이고, 황금빛 광채를 들어찬 그의 전면에 검은 점이 하나둘씩 나타났다.

하나, 둘, 셋, 넷.....

검은 점은 정확하게 여덟 개가 나탔다 사라졌다.

그리고 씻은 듯 황금빛 광채가 스러지고, 거북살스러운 소성이 멈췄다.

“ 아!”

무인들의 입에서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황금빛 광채를 흘리는 여덟 개의 철전은 연우강의 손가락 끝에서 튀어나온 사망낭조의 날에 끼워져 있었다.

“ 더 남은 게 없으면 이번엔 내 차례네.”

파앗!

연우강의 신형이 가공할 속도로 공간을 갈랐다.

“ 림주님!”

“ 멈춰라!”

연우강이 몸을 날림과 동시에 지금껏 지켜보고 있떤 패천림 무인들이 몸을 날렸다. 다른 때 같았으면 림주의 명예를 생각해서라도 움직이지 않았을 테지만 상황이 너무 급박했다. 마지막 환우살을 펼치면서 무리하게 끌어올린 내공 때문에 쩍 갈라져 있던 옆구리 상처는 더욱 커졌고, 내장까지 비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대로 두면 백이면 백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 바보 같은 소리를 하는구나.”

연우강은 피식 웃으며 더욱 속도를 내 물러나고 있는 백독수를 따라잡았다. 백독수는 바로 앞으로 다가온 연우강을 향해 양손을 쭉 내밀었다.

암기술은 그의 성명절기일 뿐, 패천림 림주인 그가 다른 무공을 모르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의 양손에서 투명한 강기가 연우강의 가슴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하지만 강기로 그를 물러나게 한다는 건 애초에 무리였다.

그러한 사실은 백독수도 알고 있었다.

그는 다만 수하들이 다가올 시간을 벌기 위해 공격을 한 것뿐이었다.

“ 타앗!”

“ 차앗!”

“ 이야합!”

백독수의 의도는 적중했다.

연우강이 약간 움찔하는 사이에 몸을 날려오던 패천림 무인들은 각자가 지닌 최고 무공을 연우강의 등판을 향해 쏟아부었다. 그들은 전부 아홉 명이었다.

“ 차앗!”

바로 그때 연우강의 입에서 통렬한 외침이 터져 나오고 싸움을 지켜보던 중인들은 자기 눈을 의심해야 할 광경과 맞닥뜨렸다. 연우강의 신형이 한순간에 푹 꺼지더니 미끄럼을 타듯 나아가며 백독수의 가랑이 사이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마치 물이 흘러가는 듯한 광경을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바닥에 누운 것처럼 하고 있던 그가 재빨리 몸을 뒤집어 엎드린 형태가 되더니 백독수 가랑이 밖으로 빠져나온 발이 물구나무를 설 때와 같이 위로 향했다.

그러고는 연체동물처럼 백독수의 몸을 타고 위로 올라갔다.

두 발이 백독수의 어깨 부근에 와 닿자 연우강은 짚고 있던 손을 가볍게 쳤다.

그 반발력으로 백독수 어깨 위로 올라탄 그는 천근추를 펼침과 동시에 두 발을 백독수의 겨드랑이에 끼웠다.

물러나는 와중에 당한 일이라 백독수는 대처할 새도 없이 당하고 말았다.

앞에서 방패 역할을 해주고 있던 연우강이 사라지자 패천림 무인들이 쏟아낸 장력은 고스란히 백독수에게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 억!”

“ 헉!”

“ 허억!”

나후신권 사일후를 비롯한 아홉 명은 경악한 신음을 뱉어내며 급하게 내공을 거둬들였다.

전력을 다해 펼쳤던 내공을 거둬들이는 행위는 적의 공격에 당했을 때보다 더한 내상을 입게 된다. 더불어 쏟아낸 내공 전부를 거둬들일 방법도 없다.

“ 크아악!”

첫 번째 비명은 백독수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부하들이 내공을 거둬들이는 바람에 위력이 절반 이상으로 떨어졌다고 해도 사일후를 비롯한 아홉 명은 패천림 정예들. 아홉 명이 동시에 날린 장력에 격중당한 백독수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뒤로 물러나면 충격을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겠지만 지금 그는 연우강에 의해 움직일 수 없는 상황.

수하들의 공격으로 인해 몸 내부가 걸레처럼 찢겨나가고 말았다.

뒤이어 내공을 거둬들였던 아홉 명의 입에서 나직한 비명이 비어져 나왔다. 사일후를 비롯한 아홉 명은 창백한 얼굴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 우엑!”

“ 커억!”

“ 그분께 떨어져라, 놈!”

피를 토해내면서도 아홉 명은 바닥을 박차고 연우강을 향해 몸을 날렸다.

“ 오면 반드시 가는 게 있는 게 세상이지.”

연우강은 차갑게 소리치며 아홉 명을 향해 양손을 사정없이 뿌렸다.

슉! 슉슉슉! 슉슉!

그가 손을 뿌림과 동시에 황금빛 광채가 허공을 금빛으로 물들였다. 그것은 사망낭조에 끼워져 있던 여덟 개의 철전과 하나의 사망낭조였다.

참으로 절묘한 순간에 쏘아진 암기였다.

사일후 일행은 이미 허공으로 몸을 뛰운 상태고 허공답보를 펼치지 않는 이상 날아오는 암기를 피할 방법은 없었다. 여덟 줄기의 금빛 광채와 하나의 검은 광채는 흡수되듯 사일후 일행의 미간 속으로 빨려들어 갔다.

“ 커억!”

“ 크윽!”

“ 아아악!”

허공을 날아가던 아홉 명이 비명과 함께 그 자리에 뚝뚝 떨어져 내렸다.

“ 맙소사!”

무인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백독수를 제압한 사내가 철전을 던져내는 솜씨 또한 절정의 암기술이었던 것이다. 더불어 저 정도 실력이면 조금 전 보았던 백독수의 암기술에 비해 부족하다고 할 수 없었다.

“ 장강의 뒷물이 앞 물을 밀어낸다고 하더니.”

누군가 탄성처럼 중얼거린 말에 무인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젊은 고수의 등장은 그들에게 격세지감이란 말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었다.

“ 하지만......”

또다시 누군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무인들이 비무를 통해 간접 경험을 얻는다는 것은 자신이 싸우는 자의 입장에서 비무를 보기 때문이다.

이곳에 있는 이들도 다르지 않았다.

무이들은 만일 자신이 백독수 입장이라면, 어떻게 해야 지금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보아도 빠져나올 방법은 없었다. 옆구리는 쩍 갈라져 내장이 비어져 나오고 있고, 몸은 속박당한 상태에서 유일한 희망이었던 부하들마저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 동귀어진 밖에 없어.”

오제의 대형인 북천검제 해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류사은이라고 하였던 자.

놀라운 녀석이 아닐 수 없었다.

녀석은 백독수를 없앨 기회가 몇 번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없애지 않았던 건 바로 백독수 부하들을 없애기 위해서다. 싸움을 시작할 때부터 계산을 한 상태가 아니라면 나올 수 없는 행동이었다.

치밀하고 무서운 놈이 나타났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 동귀어진도 쉽지 않네, 검제.”

둘째인 남천도제 곽유산이 말을 받았다.

“ 진원지기를 끌어올려야지.”

해상은 자신 같았으면 그렇게 할 거라고 생각했다.

생명을 유지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진원지기를 내공으로 만들면 잠시에 불과하지만 평소보다 두 배 이상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물론 진원지기를 발출하고 나면 죽을 수밖에 없겠지만,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명예를 지키켜 죽는 최고의 방법이다.

[ 백독수, 들었어?]

연우강은 백독수에게 전음을 보내며 오른손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 그렇지 않아도 그럴 참이었다. 놈!”

백독수는 단전을 활짝 열고 진원지기를 끌어올렸다.

뚝!

뭔가 끊어지는 듯한 소리가 머릿속으로 들려오며 진원진기가 엄청난 기세로 폭발했다. 곧 그의 전신에서 검은 기운이 뭉클뭉클 쏟아져 나왔다.

“ 크아아아!”

백독수는 괴성을 내지르며 연우강의 발에 끼워져 있는 양팔을 사정없이 저었다. 하지만 연우강의 발은 무쇠 가둥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 등에 올라타고 있는 귀찮은 놈은 떼어내는 유일한 방법은 벽으로 돌진하는 거야, 저기 파천군마도 보이지. 어차피 네가 가지지 못할 바엔 다른 놈도 가지지 못하게 하는 게 낫잖아.]

흐릿한 의식 속에서도 파천군마도란 소리는 천둥처럼 크게 들려왔다.

“ 크크크!”

백독수는 나직한 괴소를 토해내며 파천군마도를 노려보았다.

[ 설사 이곳에서 살아간다고 해도 넌 두보관에게 죽는다. 두보관은 야장에서 널 기다리고 있다, 백독수.]

“ 크아악!”

파천군마도를 노려보던 백독수는 광포한 외치을 토해내며 벽을 향해 돌진했다.

“ 엇!”

“ 어?”

“ 피해라!”

백독수와 연우강을 지켜보고 있던 무인들은 분분히 몸을 피했다. 백독수는 재차 고함을 내지르며 무인들이 터 놓은 곳을 따라 내달렸다.

“ 아뿔싸!”

한편으로 물러났던 북천검제 해상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백독수가 날아가는 방향이 파천군마도였던 탓이다.

“ 바, 방향을 틀게.”

파천군마도를 지킬 욕심에 해상은 백독수 어깨에 올라타고 있는 연우강을 향해 버럭 곳함을 내질렀다.

[ 영감이 막으면 되잖아.]

“ 빌어먹을!”

바닥을 박찬 해상은 백독수를 쫓아 몸을 날렸다.

해상이 이렇듯 다급하게 나선 이유는 바로 그의 무공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과는 달리 그는 평생을 검과 함께 하였고, 파천군마도를 보면서 상당한 깨달음을 얻었고, 조금만 더 시간이 주어진다면 우주일만검결도 얻어낼 자신도 있었다. 그런데 그 파천군마도를 향해 백독수가 날아가고 있ㅇ니 다급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차앙!

그는 몸을 날리면서 검을 뽑았다.

“ 난 이놈의 몸을 돌려볼게. 영감의 이놈의 단전을 찔러.”

연우강은 일 장 앞으로 다가온 파천군마도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 걱정 말게.”

해상은 검에 내공을 주입했다. 진원지기의 생성지인 단전을 한수간에 가루로 만들어 버릴 작정이었다.

“ 서둘러 영감!”

연우강은 파천군마도 위쪽에 튀어나온 부분을 잡고 몸을 틀었다. 슬쩍 몸을 돌리는 것만으르도 가능한 상황이었지만 연우강은 엄청나게 힘들게 하는 것처럼 연출을 했다. 더불어 겨드랑이에 끼우고 있던 다리에서 힘을 뺐다.

“ 차앗!”

해상의 입에서 다급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번쩍!

그의 검끝에서 휘황찬란한 검강이 솟구쳐 나왔다.

“ 크아악!”

백독수의 입에서 괴성이 터져 나왔다.

진원지기가 폭발하면서 이성을 잃은 그의 눈에는 전면에서 달려오는 해상이 검은 그림자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자는 죽여야 할 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속박에서 풀려난 양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전 내공을 쏟아부었다.

바로 그 때 검강을 동반한 해상의 검이 백독수의 단전으로 파고들어 갔다.

“ 헉!”

해상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검을 찔러 넣고 물러나려고 하는데 갑자기 온 몸이 마비되는 것처럼 굳어버린 것이었다.

다급한 마음에 전 내공을 끌어올린 상황이라 멈추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미지의 힘이 몸을 끌어당기고 있으니 속도는 더욱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 아......”

그는 가슴 앞으로 다가온 백독수의 손을 보았다.

이미 단전이 가루로 변했을 터인데도 녀석의 양손은 여전히 새카만 광채를 뿌리고 있었다.

‘ 격체전공?’

그는 고개를 들어 연우강을 보았다.

단전이 박살난 자의 손이 강기를 머금고 있다면 그 이유는 한 가지밖에 없다. 누군가 격체전공으로 내공을 전이하여 백독수의 두 팔을 무쇠보다 더 단단하게 만든 것이다. 그놈은 바로 백독수의 어깨를 타고 앉은 자였다.

해상의 얼굴이 절망으로 일그러졌다. 아래를 내려다보는 녀석의 입가엔 보일락말락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담대만승 그 개자식 때문이야, 영감.]

“ 넌?”

해상의 시선이 가슴으로 향했다.

동생들과 등을 지고 있어 누고도 지금 상황을 알 수가 없다. 결국 백독수와 동귀어진을 한 사람은 눈앞에 있는 자가 아니라 자신이 된 것이다.

[ 난 연우강이다, 해상.]

푸욱! 푸욱!

새카맣게 변해 있던 백독수의 양손이 해상의 가슴으로 파고들어 갔다.

“ 크아악!”

해상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 검제!”

해상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비어져 나오자 남천도제 일행은 몸을 날렸다.

“ 아이고, 죽겠네!”

연우강은 엄살을 부리며 다리로 붙들고 있던 백독수의 몸을 놓아주었다.

털썩!

이미 시체로 변한 백독수와 해상의 동체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 검제!”

남천도제 곽유산은 해상 앞에 주저앉았다.

해상의 검은 백독수의 단전으로 들어가 있고, 백독수의 양손은 해상의 가슴 속으로 파고든 상태다.

백독수는 그가 원하는 대로 동귀어진을 하긴 했는데 그 대상은 싸우던 녀석이 아나리 나중에 달려든 해상이 되고 만 것이다.

“ 손을 써볼 틈도 없었소이다. 저까짓 그림이 뭐라고.”

연우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패천림 무인들이 쓰러져 있는 곳으로 걸어가서는 사망낭조를 찾아 손가락에 끼웠다.

“ 어떻게 이런 일이.....”

곽유산은 망연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했다. 자신 또한 파천군마도가 훼손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했다. 그래서 나서려는 순간에 해상이 먼저 몸을 날라지 내심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런데 그 일로 해서 해상이 목숨을 잃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나고 만 것이다.

“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있는가?”

오제의 셋째인 동천창제 상온걸이 연우강을 돌아보며 물었다.

“ 보지 못한 거요?”

연우강은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

“ 검제의 몸이 가리고 있어서 정확하게 보지 못했네.”

“ 그랬구려. 아마 백독수는 북천검제 저 영감을 적으로 착각한 모양이오. 내가 저기 불쑥 튀어나온 걸 붙잡고 간신히 몸을 돌렸는데, 그때 다리에서 힘이 빠녀가가는 바람에 붙들고 있던 녀석의 팔을 놓치고 말았소.”

“ 그 때 백독숙 저자가 손을 뻗어냈단 말인가?”

“ 그런 것 같소. 북천검제 영감의 검이 백독수 그놈의 단전으로 파고들어 가는 순간 백독수의 손이 가슴을 후벼버린 거요. 쉽게 말하면 동귀어진이라고 할 수 있소.”

“ 그랬군.”

곽유산은 고개를 들어 파천군마도를 보았다.

해상과 백독수가 죽은 게 전부가 아니었다.

파천군마도가 새겨져 있던 벽은 절반 이상은 가루로 변해 사라졌고, 남은 부분에 검정 자국이 남아 있어 더는 그림이라고 부를 수도 없었다.

“ 나중에 뵙도록 하겠소.”

파천군마도가 훼손됐으니 더는 머물 이유가 없었다. 가장 먼저 자리를 뜬 자는 황궐의 궐주 공야일우였다.

그가 자리를 뜨자 다른 자들 또한 경쟁하듯 광장을 나섰고, 해상의 시체를 수습한 오제 일행도 자리를 떴다. 광장에는 연우강을 비롯한 유설연 일행과 맨 왼편에 앉아 있던 이지약 일행만 남았다.

이지약은 연우강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 제 얼굴에 뭐가 묻었습니까?”

따가운 시선에 고개를 돌렸던 연우강이 다시 이지약을 보았다.

“ 원래부터 그렇게 강했나요?”

이지약은 면사를 떼어내며 물었다.

“ 무슨 소리죠?”

연우강은 모른 척 시치미를 뗐다.

“ 나는 지금 너무 놀라 할 말을 잃었어요. 연 공자.”

이지약은 정말 놀랐다.

그녀는 지금껏 연우강이 그렇게 강자일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런데 그는 백독수를 어린애 다루듯 했을 뿐 아니라 백독수와 함께 패천십웅이라고 부르던 자들까지 전부 없애고 말았다. 아니 그것뿐이라면 말도 않는다. 북천검제 해상 또한 그의 손에 죽은 거나 마찬가지다.

그는 지금껏 무공을 숨긴 채 생활하고 있었던 거였다.

“ 어?”

대뜸 제 이름이 흘러나오자 연우강은 깜짝 놀랐다.

“ 풋! 연공자도 놀라긴 하네요?”

“ 그럼 대번에 날 알아보는데 어떻게 안 놀랍니까, 만일 이 소저가 알아봤다면 다른 사람도 전부 알아차렸을 거 아닙니까.”

“ 그들은 걱정할 필요 없어요. 내가 연공자를 알아본 건 류사은이라는 이름 때문이었으니까요.”

“ 제가 그 녀석에 대해 말한 적 있던가요?”

“ 십뢰를 준 사람이 류사은이라고 했잖아요.”

“ 그랬나? 어째 기억이....”

연우강은 고개를 갸웃했다.

류사은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 굳이 기억하려고 애쓸 필요 없어요. 막 대협에게 한 말을 옆에서 들은 것뿐이니까요.”

“ 그랬군요. 아무튼 오랜만입니다. 이 소저.”

연우강은 빙긋 미소를 지었다.

“ 그렇네요. 그보다 저들을 죽일 이유는 알겠는데, 북천검제는 왜 그랬죠?”

“ 무슨 소립니까?”

“ 클클클! 모른 척 해봐야 소용없네. 연 공자. 공주님은 자네가 한 일을 전부 알고 있다네. 그나저나 오랜만이네.”

이지약 옆에 있던 독고철웅이 웃으며 말했다.

“ 오랜만이오, 영감. 그런데 내가 한 일을 전부 알고 있다는 건 무슨 소립니까?”

연우강은 독고철웅에게 알은 체를 하고는 다시 이지약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 백독수와 그의 심복을 없앤 이유는 막장 대협에게 패천림을 맡기기 위해서 아닌가요?”

“ 세상에.”

듣고 있던 남궁운화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문득 배를 타고 이곳으로 오는 도중에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범천조화신기에 대한 말을 할 때였다. 그때 연우강은 처리할 놈이 있다고 하였다. 그 당시에는 그러려니 하고 대충 넘어가고 말았는데, 이지약의 말을 듣고 보니 그때 말한 처리해야 할 자들이 바로 패천림의 림주 백독수였던 것이다.

“ 운화?”

남궁운화를 쳐다보고 있던 이지약이 물었다.

“ 미안해요, 언니. 속이려고 한 게 아니고.....”

“ 이해해. 저 능구렁이와 함께 다니려면 어쩔 수 없잖아.”

모호한 눈빛으로 연우강과 남궁운화를 번갈아 쳐다보던 이지약은 빙그레 웃었다.

“ 호호호! 오랜만이에요. 공주님.”

연우강 옆에 있던 유설연이 이지약을 보며 알은체를 했다.

“ 오랜만입니다. 소제독.”

“ 아는 사이야?”

연우강은 유설연을 보며 물었다.

“ 구림제독 생신 때 인사는 했어.”

“ 그럼 따로 소개할 필요는 없겠네.”

“ 방금 공주님이 한 말에 대해 설명을 듣고 싶은데?”

유설연은 사방에 널브러져 있는 시체들로 시선을 주었다.

“ 혼인을 해야 할 친구가 있는데, 그 자식은 개백수거든.”

“ 개백수는 또 뭐냐?”

“ 돈도 없고 직업도 없고 얼굴도 받쳐주지 않는 백수.”

“ 막장이라면 철장마도 막장을 말하는 거 아냐?”

“ 응.”

“ 대야벌 백대고수의 일인을 보고 백수라고 하는 거야?”

유설연은 어이없는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 한 달에 꼴랑 스무 냥 받는다고 하던데?”

“ 그게 작은 돈이라고?”

“ 내 기준으로 보면 그래.”

“ 그러니까 막장을 패천림 림주로 만들겠다는 이유가 혼인을 시키기 위해서라는 거야?”

“ 응.”

“ 여자 집이 그렇게 대단해?”

“ 전대 패천림주 외동딸이면 대단한 거 아냐?”

“ 호호호! 그거 말이 된다. 그리고 북천검제 그놈은 기회가 생기는 족족 없애는 종자 중의 하나고?”

“ 그렇지.”

“ 아무튼 넌 ...... 이거다.”

유설연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궁금증도 대충 풀리고, 인사도 했으니까, 그만 가볼까?”

연우강은 파천군마도가 걸려 있던 벽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 출입문은 저쪽이에요, 연 공자.”

남궁운화는 조금 전 무인들이 나간 왼편 문을 가리켰다.

“ 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궁 소저.”

“ 어떤 생각이죠?”

“ 여긴 제가 생각하는 그놈들이 만든 곳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말입니다.”

“ 밀천이 만든 곳이 아니라는 말인가요?”

“ 그들 또한 우리와 마찬가지로 우연히 이곳을 발견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왜 그런 생각을 한 거죠?”

“ 파천군마도 때문입니다.”

“ 파천군마도가 왜요?”

“ 저기 적힌 글과 다른 광장의 기둥에 적혀 있는 글의 서체가 다르지 않습니까. 저 글이 훨씬 오래 전에 씌어진 겁니다.”

“ 정말요?”

“ 정말 그렇게 생각해?”

남궁운화와 유설연이 동시에 물었다.

“ 맞을 거야. 그리고 파천군마도도 가짜고.”

“ 파천군마도가 가짜라는 말에는 난 동의하지 못하겠는데?”

유설연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 왜?”

“ 파천군마도 앞에 앉아 있던 자들은 이 시대를 주름잡는 무인들이잖아. 그들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그림 앞에 그렇게 죽치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 뭔가를 얻었다는 말?”

“ 공주님께 물어보면 알겠지.”

유설연은 이지약과 독고철웅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 정확하게 꼬집어 말할 순 없지만 군마의 움직임 속에 검법이 들어 있는 건 맞아요.”

“ 그건 공주님 말이 맞네. 연 공자. 나도 파천군마도에서 약간의 깨달음을 얻었네.”

“ 파천군마도가 가자라고 했지 우주만옹 혁세걸이 그린 그림이 아니라고 하진 않은 것 같은데?”

“ 무슨 소리야?”

“ 그림 그릴 때를 생각해 보면 알잖아. 의도한 바를 정확히 표현해 내기 위해서는 수십 번을 그려야 하는 거 아냐?”

“ 그러니까 네 말은 파천군마도를 그린 사람은 혁세걸이 맞는데, 그림 안에 들어 있는 무공은 우주일만검결이 아니라는 말이야?”

“ 바로 그거야.”

“ 그리고 완전한 파천군마도였다면 이곳을 발견한 자들이 남겨뒀을 리가 없잖아.”

“ 그럼 저 파, 득은 무슨 뜻이지?”

유설연은 글씨를 가리켰다.

“ 지금부터 알아봐야지.”

연우강의 몸이 둥실 떠올랐다.

전에 그림이 있던 자리까지 뛰어오른 그는 파천군마도가 있던 자리를 향해 양손을 사정없이 밀어 쳤다.

쿠웅!

둔탁한 소성과 함께 광장이 부르르 떨리더니 그림이 새겨져 있던 벽이 산산이 부서져 아래로 떨어졌다. 하지만 광장 바닥이나 또는 벽에서는 아무런 변화도 나타나지 않았다.

“ 거봐요, 아무것도 없잖아요.”

잔뜩 기대 어린 얼굴로 연우강을 지켜보던 남궁운화의 입에서 실망 어린 소리가 흘러나왔다.

“ 공연히....”

드드드! 드드드!

그르릉!

남궁운화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지진이 난 것처럼 바닥이 흔들렸다. 그러고는 그림 아래쪽 벽면이 천천히 회전하며 아래쪽으로 향하는 계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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