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백수-72화 (72/232)

제 9장 밀천

“ 말도 안 돼.”

남궁운화는 경악한 얼굴로 소리쳤다.

믿어지지 않는 광경이었다. 한두 해 전도 아니고 무려 일천 년 전 사람이 우주만옹이다. 더불어 이곳은 영세오천의 한 곳인 밀천의 거점일 가능성이 높다.

최소한 삼백 년 이상 이곳에서 살아온 밀천이 우주만옹이 남긴 그림을 그대로 두었다는 사실도 의아할뿐더러 비밀의 공간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건 더더욱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 이 공간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겁니까?”

“ 네.”

아래로 내려온 연우강의 말에 남궁운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 넌 어때?”

연우강은 유설연을 보며 물었다.

“ 나도 남궁 소저와 비슷한 생각이긴 한데......”

유설연은 말끝을 흐렸다.

그 또한 지금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아서였다.

“ 그럼 이 소저는?”

유설연에게서도 만족스러운 대답을 듣지 못하자 연우강은 이지약을 보았다.

“ 저 석문이 천 년 만에 처음 열렸다는 것이 사실이 되기 위해서는 특정한 조건이 필요해요.”

잠시 생각하던 이지약은 낮게 운을 뗐다.

“ 어떤 조건이죠?”

“ 우주만옹이 밀천의 천주였다고 확신합니다.”

“ 혁세걸이 밀천의 천주였다는 것과 저 석문이 처음 열린 것과 무슨 상관이 있지?”

듣고 있던 유설연이 물었다.

“ 우주만옹이 처한 상황 때문이야.”

“ 어떤 상황인데?”

“ 그는 대야벌 벌주와 대결을 앞두고 있었어. 하지만 우주일만마결을 완성한 상태가 아니었어.”

“ 그런 상태에서 도전을 했다는 건 말이 안 돼. 우강.”

“ 말이 안 되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다, 설연.”

“ 왜?”

“ 우주일만검결을 완성하기 위해서야.”

“ 우주일만검결에서 부족한 점을 찾아내기 위해 비무를 했다는 거야?”

“ 목숨을 건 비무행이라고 할 수 있지.”

“ 그럼 그 빗물르 나가기 전에 이곳에 그림을 남겼다는 말이구나.”

유설연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럼 그림 아래쪽에 있던 파와 득의 의미는 그림 안에 있는 검결을 파훼하면 대야벌을 이길 수 있다는 뜻인가요?”

그림이 있던 자리를 쳐다보며 남궁운화가 물었다.

“ 첫 번째 의미는 남궁 소저가 말한 거고, 두 번째 의미는 바로 저 문입니다.”

연우강은 열려 있는 석문을 가리켰다.

“ 이해할 수가 없어요, 연 공자.”

“ 우주만옹은 폐인이 됐지만 살아남았다고 했잖아요.”

“ 그가 이곳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말인가요?”

“ 애당초 그가 비무를 한 이유가 우주일만검결을 완성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돌아오지 않을 수가 없죠. 아마 그는 파천군마도를 남기면서 비밀 공간을 함께 만들었을 겁니다.”

“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요?”

“ 파천군마도를 파훼하지 못하면 완성된 검결을 볼 자격도 없다는 뜻이었겠지요.”

“ 그러면 그동안 파천군마도를 파훼해 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말인가요?”

“ 보통 남에게 뭔가를 줄 때는 쓸모 없는 걸 먼저 주게 됩니다. 남궁 소저.”

“ 그럼 이미 파훼했다는 말인데.....”

“ 파훼한 정도가 아니라 이미 우주일만검결도 완성했을 겁니다.”

“ 그런데 왜 석문을 발견하지 못했죠?”

“ 밀천 역사상 가장 뛰어난 천주가 남긴 유전이니까요.”

“ 아!”

남궁운화는 탄성을 내뱉었다.

가장 위대했던 선조가 남긴 유전. 그 유전을 함부로 파괴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들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 하지만....”

그녀는 의아한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설사 완전한 우주일만검결이 들어 있지 않다고 해도 진짜 파천군마도라면 그렇듯 쉽게 공개할 수 없다는 데에 생각이 미친 탓이었다.

“ 보물을 공개한 이유가 궁금하다는 거죠?”

“ 네.”

남궁운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 자신들이 우주만옹 혁세걸의 후예라는 사실을 강호에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라고?”

“ 개파대전인 셈이죠.”

“ 개파대전이라고요?”

“ 밀천이 강호 활동을 시작하겠다는 의미입니다.”

“ 강호 활동이라고요?”

“ 소용돌이는 단순한 초대장이 아니라 개파대전을 하기 위해 무인들에게 보낸 초대장입니다. 남궁 소저.”

“ 이익! 여설 언니 같았으면 연 공자의 가슴에 빙하빙백강을 박아넣었을 거예요.”

남궁운화는 연우강을 노려보며 씨근덕댔다.

연우강이 하는 말을 하나도 알아먹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 하하하! 일단 앉으세요, 차분하게 설명해 줄 게요.”

연우강은 피식 웃으며 남궁운화를 끌어 앉혔다. 그러자 다른 일행도 자리를 잡고 앉았다.

“ 영세오천 중 한 곳인 밀천의 주축은 중원인이 아니라 동영과 지금의 조선 무인들이었습니다. 특히 백제라는 나라의 무인들이 수뇌였죠. 그랬던 그들의 연합이 깨지는 사건이 당나라 때 일어났는데 소정방이 이끄는 당나라군에 밀천의 중원 무인들이 들어가게 된 겁니다.”

“ 전쟁을 빙자한 내분인가요?”

“ 그런 셈입니다. 전쟁에 패한 밀천의 수뇌들은 배신자들을 피해 동영으로 도망치게 되는데 그들이 세운 가문이 바로 은밀막부입니다.”

“ 몽요 언니?”

남궁운화는 깜짝 놀란 얼굴로 소리쳤다.

“ 그렇습니다. 남궁 소저.”

“ 그럼 몽요 언니가 왜 이곳으로 온 거죠?”

“ 은밀막부 또한 남궁세가와 비슷한 상황이었습니다.”

“ 막부 내에 배신자가 생겼다는 말인가요?”

“ 그렇습니다.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다며 밀천과 연계한 가문이 생겨난 거죠.”

“ 그 일 때문에 대야벌로 들어온 건가요?”

“ 그렇습니다.”

“ 돌아갔다는 건 원래대로 복구할 자신이 있다는 말인데.....”

“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닌 모양입니다.”

“ 왜죠?”

“ 밀천의 행태 때문입니다.”

“ 어떤 행태를 말하는 거죠?”

“ 파천군마도를 비롯한 무공들을 공개한 행태 말입니다. 우주만옹이 밀천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린다는 건 곧 강호 활동을 시작하겠다는 말이 되고, 강호활동을 시작한다는 건 그동안 걸림돌이 됐던 은밀막부를 완전하게 장악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 그래서 개파대전이라고 한 건가요?”

“ 그렇습니다. 남궁 소저. 아마 이번 일이 끝나면 밀천은 정식으로 모습을 드러낼 겁니다.”

“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이번엔 이지약이 물었다.

“ 그건 저 뒤에 있는 친구가 대답해 줄 겁니다. 이 소저.”

“ 누구.....”

일행의 시선이 일제히 광장 건너편으로 향했다. 하지만 광장 끝에는 아무도 없었다.

“ 이들은 자네 대답을 듣고 싶어해, 무무대야!”

“ 무무대야라고요?”

이지약은 경악한 얼굴로 소리쳤다.

무무대야. 그는 다름 아닌 잠룡 팔 조의 조장인 나천후의 별호였던 것이다.

“ 하하하! 정말 놀랍수. 사초.”

호탕한 웃음과 함께 광정 건너편 허공에서 검은 옷을 걸친 인영이 뚝 떨어져 내렸다. 놀랍게도 그는 연우강의 말처럼 무무대야 나천후였다.

“ 뭐가 놀랍다는 거지?”

연우강은 나천후를 보며 물었다.

“ 연 소협이 말한 내용은 정확하게 맞소. 우주만옹 혁세걸 그분이 밀천의 천주였다는 것도 맞고, 우리 밀천이 지금 개파대전을 치르고 있다는 것도 맞소. 그걸 옆에서 본 것처럼 정확하게 예측해내는 연 소협의 머리가 놀랍다는 말이오.”

“ 하지만 자네에 대해선 짐작하지 못했어. 난 자네가 상천의 후예일 거라고 생각했든.”

“ 그럼 어떻게 해서 알아낸 건가?”

“ 다른 녀석들은 전부 파천군마도 앞에 있었는데 자네만 없었잖아. 그래서 생각을 바꾼 거라네.”

“ 그랬군.”

나천후는 문득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세 살 때부터 이곳에서 파천군마도를 보며 자랐고, 이십 년 만에 파천군마도에 들어 있는 불완전한 우주일만검결을 파훼했다. 그리고 그 후로 오 년 만에 선대에서 창안한 완전한 검결을 완성했다. 다시 그로부터 칠 년이 흘렀고 무공의 끝을 보았다고 여겼다.

더는 상대가 없다고 자신했는데, 연우강 앞에 서자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지고 있었다.

‘ 하지만.’

나천후는 마음을 다잡았다. 이곳은 밀천의 성지고 칼자루를 쥔 사람은 자신이다. 주눅들 이유는 없었다.

“ 진실은 사소한 것에 숨어 있으니까, 그런데 밀천에서의 신분을 알 수 있나.”

“ 천주네.”

“ 아!”

“ 앗!”

이지약을 비롯한 유설연 일행은 깜짝 놀랐다.

설마 나천후가 영세오천의 한 곳인 밀천의 천주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은 탓이었다.

“ 밀천의 천주라면 은밀막부에 대한 소식을 들을 수 있겠구먼.”

하지만 연우강은 별다른 표정 없이 태연한 얼굴로 물었다. 사실 연우강이 가장 궁금해하는 건 은밀막부의 상황이었다. 무림에서 몽요를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자가 없고, 염자생까지 있으니 큰일은 없겠지만, 그렇다고 걱정이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 놀라지도 않는군.”

“ 이녁 식구끼리는 천주가 아니라 황제 자리도 줄 수 있는 거니까.”

“ 프! 하하하!”

나천후의 입에서 광소가 터져 나왔다.

영세오천의 한곳인 밀천을 이녁 식구들의 모임 정도로 말하는 자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던 탓이었다.

“ 웃을 거 없어. 나도 흑랑기 대장으로 있을 때 마음에 드는 놈 있으면 감투를 씌워 주곤 했으니까.”

“ 그러니까 내가 천주 자리를 그렇게 얻었다고 생각한단 말인가?

“ 그건 자네 편할 대로 생각해. 그보다 묻는 말에 대답부터 해줬으면 좋겠는데.”

“ 몽요 때문인가 아니면 자네 부모님 때문인가?”

“ 이런! 은밀막부에 큰 일이 생긴 모양이군.”

“ 맞네. 연우강. 은밀막부에 큰 일이 생겼고, 몽요와 자네 부모님은 우리가 잘 모시고 있네.”

나천후의 얼굴에 슬쩍 미소가 스치고 지나갔다. 지금껏 전혀 흔들림 없던 연우강이 부모님 이야기가 나오자 처음으로 동요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었다.

‘ 넌 내 상대가 아니다. 연우강.’

“ 이건 진짜 궁금해서 묻는 건데, 그 잘 모시고 있다는 그 말 혹시 협박이야?”

연우강은 오른편 허공을 천천히 훑으며 물었다.

“ 자네 편할대로 받아들이게. 난 다만 궁금해 할 것 같아서 소식을 전해줬을 뿐이네.”

나천후는 조금 전 연우강이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 모양이지?”

연우강은 시선을 한 곳에 고정한 채 입을 뗐다.

그곳에서 미세한 기척이 감지되고 있었다. 몽요의 만사은신사영을 경험하지 못했더라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기척은 아주 은밀했다.

“ 아주 사소한 부탁을 하고 싶네.”

나천후의 얼굴엔 승자의 미소가 어렸다.

“ 말해 봐!”

기분이 나쁠 때면 늘 그렇듯 연우강의 말투가 반말로 바뀌었다.

“ 밀천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 하는 짓을 보면 금세 망할 것 같아.”

“ 그래서 부탁을 하는 거네. 망할 시간을 좀 연장시켜 줬으면 좋겠네.”

“ 나보고 네 밑으로 들어가 고개를 숙이라고?”

“ 그렇네.”

“ 난 군에 있을 때 정천호였는데?”

“ 지금은 군인이 아니지 않은가.”

“ 네가 뭘 모르는 모양인데, 군에서는 한번 정천호는 영원한 정천호란 말이 있어.”

“ 자네 부모님을 다시는 보지 못할 수도 있네.”

“ 진담은 아니겠지?”

“ 그건 자네 좋을 대로 생각하게.”

“ 그럼 그렇게 하게. 그나저나 모습을 드러낸 이유가 뭐지?”

연우강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 내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군.”

“ 나 좋을 대로 생각하라고 했잖아. 그래서 그렇게 하고 있는 거야.”

“ 낳지도 않은 자네를 길러주신 두 분이 죽어도 상관없다는 말인가?”

“ 아무래도 기름이 있어야 할 것 같네.”

“ 기름?”

“ 매끄러운 대화를 하고 싶을 때 간혹 치는 걸 말해. 기름은 내가 칠 때니까 넌 구경만 해.”

퍼억!

연우강은 오른손을 번쩍 들어 올리더니 바닥을 사정없이 쳤다. 둔탁한 소성이 흘러나오고 그의 신형이 앉은 자세 그대로 오른편을 향해 가공할 속도로 쏘아져 나갔다. 순식간에 공간을 단축한 그는 조금 전 시선을 고정했던 장소에 멈춰서는 듯하더니 허공을 향해 오른손을 쭉 내뻗었다.

“ 커억!”

나직한 비명과 함께 나천후와 마찬가지로 검은 옷을 걸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목을 잡혀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린 사내는 복면을 쓰고 있었다.

“ 어떻게......”

복면인은 경악한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자신이 익힌 은신술은 한때 밀천 최고 세력이었던 은밀막부의 만사은신사영에 필적하는 무공으로 심장 박동까지도 멈출 수 있다. 방금도 마찬가지였다. 광장 안으로 들어와서는 극한의 은신술을 펼치고 있었고, 숨소리는 물론이고 심장 박동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런데 녀석에게 들키고 만 것이다.

“ 운이 없구나. 복면. 주인을 잘못 만나 넌 기름이 되게 생겼으니 말야.”

연우강은 복면 사내의 목을 틀어쥔 채로 광장 벽면을 향해 몸을 날렸다.

“ 지금 뭐하는 건가?”

나천후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지금 이곳 광장에는 밀천 천주의 친위대인 밀천무영대 백여 명이 은신해 있다. 지금 연우강에게 잡힌 자는 밀천무영대 일조 조장인 암사영이었다.

암사영은 밀천의 절기 중의 하나인 무영만변술을 극성으로 익힌 은신술의 대가다. 심장 박동까지 멈출 능력을 구비한 그가 이렇듯 단숨에 잡힐 줄은 생각지 못했다.

“ 이놈은 기름이라고 했잖아.”

벽을 향해 달려가는 연우강의 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 내 부하의 목숨으로 협박을 해보겠단 말인가?”

나천후는 연우강이 암사영을 해치지 못할 거라고 확신했다. 이곳은 밀천의 중지고, 자신은 연우강의 부모님이라는 약점을 쥐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미친놈이 아니면 상대를 자극하는 짓을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이라 할 수 있었고, 보통 사람들은 나천후의 생각대로 행동한다.

하지만 상대는 개독새라고 불렸던 연우강.

그는 나천후의 말에 대한 대답을 나아가는 속도로 대신했다. 그의 신형이 가공할 속도로 벽을 향해 돌진했다.

“ 아, 안돼!”

“ 멍청한 네 상전 때문이니까 날 원망하지 마.”

연우강은 목을 틀어쥔 오른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가 손을 들어 올리자 암사영의 신형은 벽을 향해 머리부터 돌진하는 형태가 됐다.

“ 멈춰라, 연우강!”

나천후는 당황한 얼굴로 고함을 내질렀다.

하지만.

퍽!

“ 아아악!”

먼저 벽에 부딪친 암사영의 머리가 허연 뇌수를 뿌리며 산산이 부서지고 처절한 비명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머리가 박살난 암사영의 동체는 못처럼 바위벽 안쪽으로 깊숙이 박혀 들어갔다.

“ 난 개독새 연우강이다. 나천후. 앞으론 절대 그러지 마라.”

“ 개자식!”

“ 죽인다!”

“ 죽여버리겠다, 개자식!”

광장 안에 진득한 살기가 요동쳤다.

무영만변술로 허공에 은신하고 있던 밀천무영대의 몸에서 흘러나온 살기였다.

“ 밀천무영대는 본분을 지켜라!”

허공 어딘가에서 나직한 호통이 터져 나왔다. 흥분한 밀천무영대 대원의 정신을 일깨운 자는 밀천무영대 대주 환밀이었다.

“ 저자는 천주님과 대화 중이다. 우선은 참아라.”

“ 존명!”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광장을 가득 채웠던 살기가 씻은 듯 사라졌다.

“ 꽁꽁 숨는 게 좋을 거야. 기름이 또 필요할지도 모르니까.”

연우강은 나직이 말하고는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석문 앞에 앉아 있던 일행은 놀란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설마 그가 그런 극단적인 행동을 할줄은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 자신들이 있는 이곳은 동정호 지하다.

만일 이곳으로 물이 쏟아져 들어온다면 꼼짝없이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그런 입장에 처해 있다.

더구나 나천후는 연우강의 부모님을 잡고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연우강은 이곳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나천후의 부하를 벽에 박아 넣어버린 것이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 협박에 굴복하기 시작하면 끝까지 끌려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럴 땐 협박하는 놈들보다 더 강하게 나가야 합니다. 남궁소저.”

“ 그러다가 부모님을 해치면 어떻게 하려고요?”

“ 그건 그때 생각해야지요.”

연우강은 싱긋 웃으며 몸을 돌려 나천후를 보았다.

그러고는 말을 이었다.

“ 기름칠을 했으니까 다시 이야기를 해볼까?”

“ .......!”

나천후의 몸에서 차가운 기운이 스멀스멀 흘런나왔다.

차가운 기운은 곧 광포한 기세로 변하더니 나천후의 옷이 바람을 머금은 듯 펄럭거렸다.

전 내공을 끌어올렸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 대화할 마음이 없나 보군. 밀사 영감.”

“ 말하게, 연 공자.”

“ 무덤으로 내려가서 혁세걸 시체는 물론이고, 안쪽에 있는 것들을 가루로 만들어 버리시오.”

“ 파천군마도까지 가루로 만들어버리란 말인가?”

“ 그렇소. 영감.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 알았네.”

유덕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 건방진 놈들. 감히 나 나천후....”

나천후의 손이 검 손잡이로 향했다.

[천후야!]

바로 그때 나천후의 귓전으로 창노한 목소리가 스며들었다. 천리전음에 나천후의 동작이 우뚝 멈췄다.

[ 저놈에게 암사영이 죽었습니다. 조부님.]

나천후는 전음을 보냈다.

[ 참아라. 놈은 대야벌의 대항마다. 복수는 나중에 해도 늦지 않다.]

[ 조부님.]

[ 사소한 일로 대사를 그르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

‘ 빌어먹을!’

나천후는 손잡이를 잡는 대신 주먹을 불끈 틀어쥐며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자 부글부글 끓던 머릿속이 조금은 진정이 되는 듯했다.

“ 대화를 하겠다. 연우강.”

“ 영감! 잠시만 기다려.”

나천후의 말에 연우강은 계단 아래쪽을 향해 소리쳤다.

“ 알았네, 연 공자.”

“ 나이 먹은 영감이라 동작이 조금 느린 모양이다. 파천군마도는 무사하니까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

“ 우리 밀천은 칠백 년 전에 우주일만검결을 완성했다.”

“ 그건 나도 짐작하고 있었어. 그걸 완성했으니까 은밀막부를 배신할 생각을 했겠지.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지?”

“ 그렇다고 해도 혁세걸 그분의 유전을 다른 자들의 손에 들어가게 할 수는 없다.”

“ 그러니까 일천 년 만에 발견된 혁세걸의 유물을 공손하게 바치라는 거야?”

“ 우주만옹 그분의 무공은 원래 우리 밀천 거였다.”

“ 하지만 처음 발견한 건 나잖아.”

“ 설사 파천군마도를 얻는다고 해도 넌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

“ 내가 널 기다린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야. 나천후.”

“ 날 기다렸다고?”

“ 넌 내가 필요한 걸 가졌고, 난 네가 필요한 걸 가졌으니까.”

“ 으음!”

놀라움의 연속이다.  다는 표현을 쓴 이유 말이야.”

아니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놈은 교활하다는 말로도 설명이 불가능하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천 년의 비밀을 풀었다면 당장 뛰어들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놈은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석실로 들어가는 입구만 막고 있었다. 그 말은 곧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갈수록 놀라움을 안겨주는 놈이었다.

“ 쉬운 길을 놔두고 돌아가는 놈들을 일컬어 바보라고 하지.”

연우강은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어 뭔가 달라는 시늉을 했다.

“ 주지 않으면?”

“ 우주만옹 혁세걸이 남긴 파천군마도 진본은 가루로 변하겠지.”

“ 좋다, 주겠다.”

나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범천조화신기에 적혀 있던 범천조화신공은 밀천의 소유가 됐고, 여의신창은 강호에 풀 생각이었다.

“ 환밀!”

“ 여기 있습니다. 천주님.”

허공에서 불쑥 기다린 물체가 튀어나왔다.

창두와 창간 사이에 삼각형 깃발이 달려 있는 그것은 오백 년 전 황궐에서 배출한 대야벌의 벌주 조화신옹 이장천의 여의신창이었다.

여의신창을 받아든 나천후는 연우강을 향해 미련없이 던졌다.

푹!

허공을 날아온 여의신창은 연우강 앞 돌바닥에 박혀 들어갔다. 여의신창이 보통 무기가 아니라는 반증이었다.

“ 일어나자고, 영감. 그만 올라와!”

여의신창을 뽑아든 연우강은 석문 안쪽을 향해 소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알았네.”

유덕이 나오자 일행은 일제히 석문에서 비켜섰다.

“ 계속 이곳에 있을 건가?”

나천후는 석문으로 다가가며 물었다.

“ 혹시 남은 게 있으면 주워가려고.”

연우강은 여의신창 깃발에 씌어진 글귀를 쳐다보며 대답했다.

“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거네.”

나천후는 피식 웃으며 석문을 통해 아래로 내려갔다. 나천후를 비롯한 밀천무영대 대원들이 둘둘 말린 양피지와 석관을 들고 나온 건 한식경 후였다.

그때까지도 연우강은 자리를 뜨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 깨끗하게 청소해 두었네.”

연우강을 보는 나천후의 얼굴은 잔뜩 상기돼 있었다.

우주일만검결의 창안자인 혁세걸이 남긴 완벽한 검결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후대에 이르러 완성했다고 하지만 혁세걸 본인이 남긴 완벽한 우주일만검결과 같지는 않을 테다. 이번 발견으로 인해 우주일만검결은 전보다 더 강해질 것이다.

“ 우리 밀천의 일천 년 숙원을 풀어줬는데 좋은 선물을 주지 못해서 미안하네. 아니군, 선물은 자네가 거절했으니까 아무튼 고맙네.”

나천후는 싱긋 웃으며 연우강을 지나쳐갔다.

“ 내 부모님 이야긴데 말이야.”

연우강의 말이 나천후의 발을 붙들었다.

“ 말하게.”

“ 혹시 내 부모님을 만나거든. 저놈을 떠오리도록 해.”

연우강은 한쪽 벽면 바위에 박혀 있는 암사영의 시체를 가리켰다.

“ 무슨 뜻인가?”

“ 그분들의 입에서 불편했다는 말이 나오면 너희 밀천에 속한 자들은 전부 저렇게 된다는 뜻이야.”

“ 프! 하하하! 크! 하하하!”

연우강의 말을 듣고 있던 나천후는 고개를 쳐들고 웃음을 터트렸다. 한참동안 웃어젖히던 나천후는 연우강을 쏘아보았다.

“ 생각이 바뀌었다, 연우강.”

그는 차갑게 말하곤 광장 건너편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의 분노를 대변하듯 바위로 된 바닥에 깊숙한 발자국이 남았다.

“ 내기 해도 좋다, 나천후.”

“ 우선은 살아남아라. 연우강. 그게 먼저다.”

나천후는 차갑게 말하며 반대편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그를 따르던 밀천무영대 대원들이 전부 나가고 광장에는 또다시 일행만 남았다.

“ 너 정말 간이 있기나 해?”

유설연은 연우강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워낙 급하게 돌아가는 바람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아니 연우강의 손에 여의신창이 들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감이 나지 않았다.

“ 간은 왜?”

“ 지금 우리가 있는 이곳은 밀천의 심장부잖아.”

“ 그래서?”

“ 그런 곳에서 저런 짓을 태연하게 해치우고도 살아남길 바라는 거야?”

유설연은 암사영이 박혀 있는 벽면을 가리켰다.

자신들을 초대한 자들이 영세오천의 한 곳인 밀천이란 사실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태연하게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은 동창의 소제독이라는 지위 때문이 아니라 밀천 또한 대야벌과 싸울 수밖에 없는 자들이란 사실 때문이다. 밀천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나 연우강은 적보다 동료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자신과 연우강을 없애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다는 말이다. 그런데 연우강은 밀천의 천주라는 나천후를 모욕하여 분노를 심어주었다. 자신이 나천후 입장이라고 해도 연우강을 살려줄 수가 없을 것 같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섭게 돌아가는 머리.

그것만으로도 죽어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 이거나 받아라.”

연우강은 들고 있던 여의신창을 유설연에게 던졌다.

“ 내가 들고 튀면 어쩌려고?”

유설연은 배시시 웃으며 연우강을 보았다.

“ 제 물건을 들고 튀는 놈은 등신 중에 상등신이라고 부를 걸?”

“ 정말 날 주는 거라고?”

“ 응.”

“ 왜 날 주는 거지?”

유설연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 연장이 아무리 좋아도 사용하는 사람이 형편없으면 좋은 물건이 나올 수 없잖아.”

“ 내가 지니고 있으면 좋은 물건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이야?”

“ 자신 없어?”

“ 무슨 자신?”

“ 공야일우 그놈을 건사할 자신 없냐고?”

“ 그거야...”

“ 제독 동창이 되려면 지금과 같은 마음가짐으로는 안 된다. 유설연. 네가 양물을 잘라 던져버린 그때의 마음가짐으로 돌아가야 한다. 범천조화신기는 제독동창으로 가는 첫 번째 관문에 불과할 뿐이다. 그리고 그 깃발은 떼서 잘 숨겨두고.”

연우강은 유설연의 어깨를 툭 치고는 백독수의 시체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 자식, 별 것 아닌 걸로 사람을 감동시키는 재주가 있네.”

유설연은 저도 모르게 여의신창을 꽉 틀어쥐었다.

누군가로부터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말을 들은 기억이 없다. 특히 소제독이 된 후로는 그런 자를 만나지도 못했다. 심지어 유일한 친구인 우성연으로부터도 그런 말을 듣지 못했다. 그런데 만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연우강으로부터 진심 어린 말을 들은 것이다.

유설연은 창두 아래쪽에 달려 있는 범천조화신기를 풀어 꼼꼼히 살폈다.

“ 진짜일 테니까 살피지 않아도 된다.”

백독수 앞에 선 연우강은 그의 품을 뒤지며 말했다.

“ 그렇겠지?”

유설연은 확인하듯 물었다.

“ 가짜로는 황궐의 궐주를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나천후 그놈이 우리보다 더 잘 알고 있는데 가짜를 넘겨줄 리가 없잖아.”

“ 그렇지. 그런데 뭐 하는 거냐?”

유설연은 범천조화신기를 품속으로 집어넣으며 물었다. 연우강은 백독수의 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더니 다시 백독수 부하들의 품을 뒤지고 있었다.

“ 이걸 찾는 거야.”

사일후의 품에서도 뭔가를 꺼낸 연우강은 뒤편으로 들어 올려 보였다.

“ 그게 뭔데?”

“ 무성패라고 불리는 물건.”

“ 무성패라고요?”

무성패라는 말에 깜짝 놀란 사람은 유설연이 아니라 이지약이었다. 그녀는 연우강 곁으로 몸을 날려갔다.

“ 무성패를 알아요?”

연우강은 다른 자들의 몸을 뒤지며 물었다.

“ 내가 대야벌로 들어온 이유가 그것 때문이에요.”

“ 다섯 놈이 무영이었네.”

백독수와 그의 부하들 몸을 전부 뒤진 연우강의 손에는 다섯 개의 무성패가 들려 있었다.

“ 무영을 아세요?”

“ 야효, 무영 서열 백 위, 적사진인 용환 무영 서열 십 위, 건곤신패 민웅철 무영 서열 십일 위, 천검자 장양락 무영 서열 사십구 위, 벽력마군 유백천 무영 칠십일 위, 암흑마수 낭걸 무영 칠십오 위, 천랑마효 인후겸 무영 팔십 위, 섬수 윤효직 무영 팔십칠 위, 흑의사신 천세걸 무영 구십 위, 그리고 백독수 이놈은 무영 서열 십오 위였네요.”

“ ......!”

이지약은 멍한 얼굴로 연우강을 보았다.

방금 연우강이 말한 무인들은 이곳에서 죽은 백독수를 제외하면 대부분 대야벌에서 죽은 자들이다. 그들의 사인은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범인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모른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아니 그들이 무영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연우강은 그들이 무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서열까지 꿰고 있다.

그렇다면.....

“ 그들 저, 전부를 연공자가 없앤 건가요?”

이지약의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 아직 스무 명도 채우지 못했습니다. 이 소저.”

연우강은 들고 있던 무성패에 내공을 가하여 가루로 만들었다. 다섯 개를 전부 가루로 만들어버린 그는 손을 탈탈 털고 일행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 당신은 누구죠?”

이지약은 연우강을 따르며 물었다.

“ 금릉 연씨 세가의 업둥이고, 군에서 정천호를 지냈고, 황금백수를 꿈꾸는 연우강입니다.”

“ 그게 전분가요?”

“ 지금은 그렇습니다. 이 소저.”

“ 지금이라는 건 무슨 뜻이죠?”

“ 그냥 그렇다는 겁니다. 그보다 서둘러야 할 것 같습니다.”

“ 알았습니다. 가요, 환노.”

연우강 일행은 빠르게 광장을 빠져나갔다.

한편,

먼저 광장을 떠났던 나천후는 늙은 노인과 함께 야명주가 줄줄이 박혀 있는 통로를 따라 걷고 있었다.

나천후와 함께 걷고 있는 노인은 지난 일 갑자 동안 밀천을 다스려왔던 천붕대야 나적리로 현 밀천의 태상천주이자 나천후의 조부였다.

“ 어떻게 보았습니까?”

나천후는 조부를 보며 물었다.

“ 지금 생각 중이다.”

“ 어떤 생각을 말씀하십니까?”

“ 먼저 네 대답을 듣고 싶구나.”

나적리는 걸음을 멈췄다.

“ 말씀하십시오.”

“ 너와 연우강 그 녀석이 같은 조건이라면 이길 수 있겠느냐?”

“ 같은 조건이란 말입니까?”

“ 그렇다.”

“ 그건....”

나천후는 말끝을 흐렸다.

그 상황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니 연우강을 상대로 놓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막상 질문을 받자 승리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했다.

“ 자신 없는 모양이구나.”

“ 아닙니다. 조부님. 이길 수 있습니다.”

“ 그래, 그 대답을 원했다. 영환.”

고개를 끄덕인 나적리는 허공에 대고 나직이 외쳤다.

“ 하명하십시오. 태상천주님.”

정확하게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쉰 듯한 목소리가 허공에서 흘러나왔다.

“ 놈을 없애게.”

“ 놈만 죽이면 됩니까?”

“ 그렇네. 다른 녀석들은 손대지 말게.”

“ 알겠습니다. 태상천주님.”

“ 미환, 은환을 데려가게.”

“ 알겠습니다.”

“ 환영식도 바로 시작할 참이네.”

“ 알겠습니다.”

“ 조부님.”

나천후는 놀란 얼굴로 나적리를 보았다.

조금 전 검을 뽑으려고 할 때 말린 사람이 조부님이다. 그런데 지금은 밀천에서 최고의 환술을 보유하고 있는 밀천삼환에게 연우강을 없애라는 명령을 내렸다.

갑자기 마음을 바꾼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 놈을 없앨 수 있다는 말이 바로 나왔더라면 난 그놈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을 거다, 천후야.”

“ 그럼 그 대답 때문이란 말입니까?”

“ 아무리 없어서는 안 될 자라고 해도, 그릇이 나보다 크다면 기회가 왔을 때 없애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당하게 된다.”

“ 죄송합니다. 조부님.”

나천후는 고개를 푹 숙였다.

“ 아니다. 지금이라도 놈에 대해 알았으니 됐다. 환밀.”

“ 하명 하십시오. 태상가주님.”

뒤편 허공에 숨어 따르던 환밀이 모습을 드러내며 나적리 앞에 엎드렸다.

“ 안으로 들어온 무인의 수는 얼마나 되느냐?”

“ 이천삼백오십 명이 들어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

“ 대야벌 무인은?”

“ 천오백 서른 두 명입니다.”

“ 수마를 출병시켜라.”

“ 존명!”

둥실!

엎드려 있던 환밀의 신형이 허공에 떠오르고 이내 안개처럼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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