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백수-77화 (77/232)

제 4장 맞아 죽기 싫어서 실토한 겁니다.

“ 그래요?”

연우강은 석편을 챙겨들고 침상으로 자리를 잡고 앉은 다음 두 번째 석편부터 천천히 읽어나갔다.

“ 원래 수밀가의 수장 가문이 나씨가 아니고 혁씨였나 보죠?”

석편에 적힌 글을 전부 읽고 난 연우강이 이지약을 보며 물었다. 석편에는 혁미월의 일대기가 적혀 있었다.

“ 우주만옹의 성도 혁씨잖아요.”

“ 그렇군요. 그럼 중간에 나씨로 바뀌었다는 말이네요.”

“ 만일 혁씨가 계속 수밀가의 최고 가문이었다면 여긴 진작 발굴되지 않았을까요?”

“ 그것도 그렇네요.”

“ 뭐라고 적혀 있어요?”

“ 천마 제석강의 첫째 부인이었다고 나와 있네요. 마총을 설계한 장본인이기도 하고요.”

“ 천마의 부인이었다고요? 어, 어디 봐요.”

이지약은 깜짝 놀라 연우강 앞으로 바짝 다가앉았다. 그러고는 연우강의 손에 들린 석편을 덮치듯 빼앗아갔다.  급하게 움직이는 바람에 대충 여미고 있던 사망묵의의 앞섶이 벌어지며 가슴을 비롯한 아랫배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하지만 이지약은 그런 사실을 모르는 듯 석편에 집중했다.

“ 다른 것도 봐여겠어요.”

석편을 재빠르게 읽어 내린 그녀는 연우강 옆에 있는 석편을 집어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 놀랍네요.”

순식간에 석편을 전부 읽고 난 그녀는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설마 이 지하 깊은 곳에서 천오백 년 전 역사를 만나게 될 줄은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 어떻게 생각.....”

시선을 들어 올리려던 그녀는 재빨리 다시 석편을 보는 척했다. 연우강의 시선이 열린 앞섶 안으로 들어와 있었던 거였다. 갑자기 뜨거운 기운이 확 치밀어 올랐다.

둘밖에 없다는 사실이. 이곳이 동정호 아래쪽 지하라는 사실이 그녀를 더욱 대담하게 만들었는지도 몰랐다.

연우강의 시선을 느낀 이지약은 옷을 여미는 게 아니라 자세를 고쳐 앉은 것처럼 하면서 앞섶을 더욱 벌려 놓았다. 절반 정도 가려져 있던 가슴이 몽땅 드러났다.

연우강은 급하게 숨을 들이켰다.

조금 전 희미한 야명주 불빛 아래 보았던 몸과는 또 달랐다. 그녀의 몸매는 마력을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시선을 놓아주지 않았다.

“ 또 효도를 하고 싶은 모양이죠?”

“ 오늘따라 유달리 아버지가 보고 싶습니다. 이 소저.”

“ 얼굴도 보지 못했다고 하지 않았어요?”

이지약은 배시시 웃으며 사망묵의를 벗어 한편으로 놓았다.

“ 상상 속으로도 얼마든지 그려볼 수 있잖습니까?”

연우강은 삼켜버릴 듯 이지약을 끌어당겼다.

아마도 이곳을 나서면 다시 주무상의 상관이었던 연우강과 주무상의 정혼녀인 이지약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더 그랬는지도 몰랐다. 두 사람은 미친 듯이 서로를 탐닉했고, 침상의 열풍은 길고 오래갔다.

두 사람의 열풍을 잠재운 건 또다시 들려오는 물소리였다. 어느새 두 사람을 쫓아온 물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구름다리 아래쪽 협곡으로 떨어져 내렸다.

“ 앞으로 호수 쪽은 쳐다보지도 않을 겁니다.”

“ 저도 그럴 것 같아요.”

두 사람은 빙그레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 봇짐 안에 남궁 소저 옷이 있는데 그거라도 걸칠래요?”

“ 방법이 없잖아요. 그런데 이게 뭐죠?”

이지약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봇짐을 풀어 옷가지를 꺼냈다. 그녀의 손 끝에 봉지가 걸려 나왔다.

“ 제 약입니다.”

“ 어디 아파요?”

그녀는 물으면서도 고개를 갸웃했다.

수조 끝에서 처음 확인한 사실이지만 그는 수화가 불침하는 금강불괴의 신체를 가졌다. 더구나 조금 전 그와 관계까지 갖지 않았던가.

그가 약을 복용한다는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다.

“ 아픈 건 없는데, 복용하지 않으면 이상하게 힘들어요.”

“ 그런 병이 어딨어요?”

“ 저도 그게 이상합니다.”

“ 그런 병이 없다는 걸 연 공자도 인정한다고요?”

“ 그렇습니다.”

“ 그럼 약을 끊으면 되잖아요.”

“ 약을 끊으면 만사가 귀찮아져서 하루 종일 방안에 틀어박혀 있어야 합니다.”

“ 정말 그래요?”

“ 네.”

“ 그럼 정말로 병이네요.”

“ 그것도 그렇습니다. 아무튼 전 이 약을 하루에 한 번씩 반드시 복용해야 합니다.”

“ 하여간 연 공자는 여러모로 특이한 사람이에요.”

이지약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다고 연우강의 말을 장난으로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봇짐 안에서 나온 약봉지는 물이 새어 들어가지 않도록 방수처리가 돼 있었다. 반드시 복용해야 하는 약이 아니면 그렇게까2지 해서 가지고 다닐 리가 없을 터였다.

옷을 꺼낸 그녀는 삼매진화로 말린 다음 갈아입었다.

이지약이 옷을 갈아입는 동안 연우강은 건물 이곳저곳을 살폈다. 한참 동안을 돌아다니던 그는 서재 비슷한 곳에서 양피지로 엮은 책 한 권을 찾아 침실로 돌아왔다.

“ 뭐죠?”

이지약은 연우강의 손에 들린 책자를 뚫어지게 보았다.

“ 옷이 맞아요?”

“ 걔 몸이 실한가 봐요.”

“ 왜요?”

“ 길이만 좀 짧아요.”

이지약은 양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녀의 말처럼 소매는 팔 하박 중간쯤에 걸쳐 있었다.

“ 불편하면 벗고 가든지요. 전 그래도 상관없는데.”

“ 으이그! 콱 그냥! 그건 뭐예요?”

연우강을 흘긴 이지약은 다시 책으로 시선을 주며 물었다. 양피지로 만들어진 책자는 상당히 두꺼웠다.

“ 장인이 되는 법 이라는 책입니다.”

연우강은 양피지 책자를 내밀었다.

“ 저보고 장인이 되라는 거예요?”

연우강의 의도를 알아차린 이지약이 물었다. 책 겉 표지엔 천수장해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 장인 기술이 전부가 아닌 것 같은데요?”

“ 전부가 아니라는 건 무슨 소리죠?”

“ 저길 보세요.”

연우강은 침상 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부조를 가리켰다. 하나의 돌을 깎아 머리와 침상을 만들었는데 침상 머리 부분에는 말들이 달려가는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 파, 파천군마도?”

이지약은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 저게 파천군마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저 그림의 각선은 한 번에 새겨진 겁니다.”

“ 검술이란 말인가요?”

“ 아마도.”

연우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럼 우주일만검결을 창안한 사람은 우주만옹이 아니라 천수귀장인 혁미월이었단 말인가요?”

“ 창안했을 뿐 아니라 그녀는 완성했을 겁니다.”

“ 말도 안 돼요. 그럼 우주만옹 혁세걸이 비무행을 했을 리가 없잖아요.”

“ 그녀가 이곳을 만든 이유를 생각해 보세요.”

“ 왜 만들었는데요?”

“ 조금 전 석편엔 마총을 만들고 나서 이곳에 칩거했다고 돼 있었잖아요.”

“ 죽음을 피해 이곳으로 도망쳤다는 말인가요?”

“ 그녀는 마총의 비밀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었잖아요.”

“ 하지만 천마의 부인이기도 했죠.”

“ 그 당시 천마는 다른 여자에게 빠져 있었습니다.”

“ 다른 여자요?”

“ 여자였을 때는 잠마 희수연으로, 남자였을 때는 혈마 연수로 살았던 희수연에게 빠져 있었죠.”

“ 잠마와 혈마가 동일인이라는 거예요?”

더욱 놀라운 말이었다.

“ 천마삼경을 완벽하게 익히기 위해서는 선천지기를 연성하거나 음양인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희수연은 도인이 아니었으니까 선천지기를 익혔을 리가 없겠죠.”

“ 좋아요, 그렇다 치고요.”

“ 아마 천마는 혁미월을 없앨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희수연은 다르죠.”

“ 그녀가 혁미월을 없애려고 했단 말인가요?”

“ 희수연은 야망을 쫓아 사랑했던 남자를 버리고 천마를 택한 여잡니다. 그런 그녀에게 혁미월은 제거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 그럼 천수장해는 그녀가 희수연의 살수를 피해 이곳으로 들어와서 적은 거란 말인가요?”

“ 그렇습니다. 원래 우주일만검결을 창안하게 해준 자가 바로 천마였습니다. 하지만 천마가 희수연에게 집착하면서 미완으로 남게 됐고, 그녀는 미완의 무공을 가지고 수밀가로 돌아와 후예에게 넘겨주고 이곳으로 숨어들었습니다.”

“ 일리가 있는데요?”

이지약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 일리가 있는 게 아니고 사실입니다. 이소저.”

“ 사실이라고요?”

“ 그 책 앞부분에 적혀 있는 거니까 사실일 수밖에 없잖습니까.”

“ 그럼 이건 엄청난 보물이네요?”

이지약은 다시 양피지로 엮어진 책으로 시선을 내렸다.

“ 아마 동정호 지하에서 발견된 것들 중 최고의 보물일 겁니다.”

“ 그런데 왜 절 주는 거죠?”

이지약은 연우강의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우주일만검결.

창안자가 완성을 했다면 우주만옹이 완성한 것보다 더 강할지도 모른다. 연우강의 말처럼 이곳 지하에 있던 것들 중 최고의 보물일지도 모르는데, 그런 걸 자신에게 주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 가면서 이야기하도록 하죠.”

연우강은 봇짐을 둘러매며 말했다.

“ 나가는 길을 알아요?”

“ 뒷문을 타고 올라가다 보면 군산으로 통하는 길이 있다고 하네요.”

두 사람은 안쪽 깊숙이 들어가 후원으로 길처럼 나 있는 동굴 길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 이제 말해 주세요.”

“ 그걸 이 소저에게 주는 이유 말입니까?”

“ 네.”

“ 제게 이 사망묵의를 남겨준 분이 바로 희수연에게 버림 당한 정인이었습니다.”

“ 그가 누군데요?”

“ 일대 묵사 가립합니다.”

“ 세상에나.”

이지약은 놀라 기절할 지경이었다.

천마 제석강과 그의 첫 부인인 혁미월 그리고 잠마와 혈마의 별호를 지닌 희수연에 이어 이번엔 일대 묵사인 가립하까지, 그들 사이에 얽힌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 사실 그건 별로 중요한 건 아니고요, 그 책을 남긴 사람에 대한 예의 때문에 가질 수 없다는 겁니다.”

“ 예의라고요?”

“ 책으로 남겼다는 건 발견한 누군가가 봐주기를 바란다는 뜻이잖습니까?”

“ 그런데요?”

“ 봐준다는 건 곧 익히는 걸 말하는데 전 우주일만검결인가 하는 무공을 익히는 데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거든요. 그리고 그건 저보다는 이소저에게 더 필요할 것 같아서 드린 겁니다.”

“ 이걸로 뭘 하라는 거죠?”

“ 우선 천수장해를 완벽하게 익히십시오. 그 다음엔 아주 좋은 석재를 찾아 중원 전역을 헤매고 다니는 겁니다.”

“ 좋은 돌이 있는 곳으로 가면 멋진 남자가 기다리고 있을까요?”

“ 그건 장담 못하지만 바람처럼 살 수는 있을 겁니다.”

“ 알았어요. 이건 일단 남편도 없는 과부라 시간이 넘쳐나는 제가 챙기도록 할 게요.”

이지약은 생긋 웃으며 책자를 품속으로 집어넣었다.

두 사람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통로를 따라 걸었다. 천연 동굴이 끝나고 어느 순간부터 인공 동굴이 나타났지만 이야기에 몰두하고 있던 두 사람은 알지 못했다. 야명주 바로 옆에는 전서체로 파 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 여기만 나서면 현실 세계네요.”

이지약의 얼굴에 쓸쓸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 그럼 돌아가요.”

연우강은 그녀의 허리를 감고 몸을 돌렸다.

“ 호호호! 하여간 연 공자는 여자를 기쁘게 하는 기술은 타고났나 봐요.”

이지약은 피식 웃으며 파자가 새겨진 천장을 향해 쌍장을 뻗었다.

콰앙!

둔탁한 소성과 함께 천장이 터져 나가며 물이 쏟아져 들어왔다. 연우강은 재빨리 내기를 끌어올려 둘 주변으로 강기막을 쳤다. 그러고는 천천히 허공으로 몸을 띄워 올렸다. 둥근 강기막에 둘러싸인 채 두 사람은 물살을 가르며 솟구쳐 올랐다.

동정호는 짙은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두 사람은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동쪽으로 향했다.

얼마나 달렸을까.

멀리 선착장 불빛이 보이기 시작하자 두 사람은 속도를 늦췄다.

“ 여기서 헤어져야겠어요. 연 공자.”

연우강의 품에 안겨 있던 이지약이 말했다.

“ 남궁 소저는 보지 않고 그냥 가게요?”

“ 그게 나을 것 같아요. 그리고..”

그녀는 몸을 돌려 그의 목을 끌어안고 입맞춤을 했다.

“ 목숨을 구해줘서 고맙다는 감사의 인사니까 부담 갖지 마세요.”

입술을 뗀 그녀는 시선을 연우강에게 둔 채 뒤편으로 물러났다.

“ 그거 알아요?”

오 장여를 물러난 그녀가 나직이 물었다.

“ 뭘 말입니까?”

“ 연 공자가 제게 주었던 그 목걸이 말이에요.”

“ 무상이 남긴 목걸이 말입니까?”

“ 네.”

“ 그게 어쨌다는 거죠?”

“ 제 것이 아니에요.”

“ 그럼 누구거죠?”

“ 신월영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목걸이인데 사막 부족의 고위인사 딸이 목에 거는 장신구의 하나라고 하더군요.”

“ 그걸 알았더라면 전해주지 않았을 겁니다.”

“ 연 공자는 그런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연 공자는 무상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저와 잠을 잘 수 있었던 거고요. 만일 무상에게 다른 여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더라면 연 공자는 제가 아무리 유혹을 해도 잠을 자지 않았을 거예요. 제 말이 맞죠?”

“ 아닙니다. 이 소저는 덮치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 거짓말 마세요. 아무튼 무상이 신월영을 연 공자에게 줘서 제게 보낸 건....”

어느새 이지약의 신형은 어둠 속응로 묻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 아무튼 머리가 너무 좋아.”

연우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몸을 돌렸다.

천천히 걸어가던 그의 움직임이 점점 빨라지더니 곧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그가 떠나고 잠시 후.

먼저 떠난 줄 알았던 이지약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 신월영이 아니라 당신이었어요. 연 공자. 하지만....”

이지약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렸다.

**********

그것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범천조화신기가 등장한다는 소문이 돌았고, 대야벌을 비롯한 무림에서 이천여 명의 무인들이 동정호로 향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살아나온 자들은 채 스무 명이 되지 않았다. 무인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무림 역사를 기록하기 좋아하는 자들은 동정호에서 일어났던 사건의 진상을 캐기 위해 동분서주해야 했다. 그렇게 하기를 며칠 그들은 엄청난 사실을 접하고는 기절할 듯 놀랐다.

밀천.

동정호 지하에서 이천여 명의 무림을 수장시킨 자들은 다름 아닌 영세오천의 한 곳인 밀천이었던 것이다.

‘ 밀천이 개파대전을 한다!’

‘ 그들의 총단은 동정호 군산이다! ’

뒤이어 밀천의 개파대전 소식이 중원 전역을 강타하면서 밀천의 등장은 기정사실로 굳어졌다.

무인들은 흥미로운 얼굴로 상황을 주시했다.

대야벌로 들어가지 않고 강호무림에 똬리를 튼다는 것은 곧 대야벌에 대한 도전이나 다름없고 대야벌에서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전쟁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무인들은 모이기만 하면 밀천의 개파가 가져올 파장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전쟁이 벌어져 밀천이 멸망할 거라는 자들과, 전쟁은 일어날 수 없다는 자들로 나뉘는 건 당연한 귀결이었다.

밀천이 멸망할 거라고 하는 자들은 천오백 년 동안 이어져 온 대야벌의 저력을 높게 평가하였고, 전쟁은 없다고 주장한 자들은 대야벌은 전쟁을 치를 여건이 되지 않는다는 쪽에 무게를 두었다.

아무튼 전쟁 여부를 떠나 밀천이라는 단체의 등장은 무인들에게 새로운 흥밋거리를 제공해 준 건 분명했다.

세상의 일이라는 게 늘 그렇듯 같은 상황에 계속 직면하다 보면 금세 물리기 마련이다. 밀천의 개파대전에 대한 소문도 다르지 않았다.

천우 담대만승의 반응을 기대했던 무인들은 대야벌에서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자 시큰둥해졌다.

그럴 즈음 두 번째 소문이 강호를 강타했다.

‘ 마총 장보도가 나타났다!’

그것은 바로 마총 장보도에 대한 소문이었다.

사실 마총 장보도에 대한 소문은 처음도 아니었다.

대야벌 생사림의 림주인 마수귀의 유명계가 천마삼경을 지녔다는 소문으로 인해 한바탕 홍역을 앓았던 터라 그 소문이 돌았을 때만 해도 별다른 반향은 없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소문으로 인해 무인들은 무기를 챙겨들고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 처음 장보도를 얻었던 자는 망산귀초 유명이었다. 하지만 두 시진 후에는 신풍협개 엄폐가 마총 장보도의 주인이 됐고, 네 시진 후에는 천문거사가 장도보의 주인으로 등극했다.’

마총 장보도를 얻은 자들의 별호와 이름까지 구체적으로 언급된 것이었다.

그리고.

‘ 현재 장보도는 하남성에서 움직이고 있다.’

마총 장보도에 대한 세 번째 소문이 들려오자마자 무인들은 자리를 박차고 몸을 날렸다.

무인들뿐만이 아니었다.

밀천의 등장에도 침묵을 지키고 있던 대야벌 무인들 마저도 마총 장보도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들려오자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 말도 안 됩니다. 형님. 어떻게 그놈이 부처님이 되고 대야벌을 비롯한 강호 무림에 손오공이 된단 말입니까?”

창노는 믿을 수가 없었다.

방금까지 그는 무원과 함께 강호 정세를 논하고 있었다. 그런데 무원이 대뜸 지금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이 연우강의 머리에서 비롯됐다고 한 것이다.

“ 허허허!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네. 그런데 사건을 하나씩 짚어가다 보니 모든 일에 녀석이 연관돼 있더란 말이네.”

무원은 웃으며 말했다.

“ 다, 다시 한 번 짚어봅시다.”

창노는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 좋네. 그럼 생사림의 벌내쟁투부터 시작하세.”

“ 생사림의 벌내쟁투는 백옥수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형님. 설마 그 녀석이 백옥수를 익혔다고 보시는 겁니까?”

“ 녀석은 백옥수뿐만 아니라 천마삼경 상의 무공을 전부 익혔습니다. 어르신.”

대답은 밖에서 들려왔다.

“ 이런 제기랄!”

창노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감각을 전부 동원하여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그런데 막장의 기척을 감지해 내지 못한 것이었다.

손녀딸인 남궁운화에게 대부분의 내공을 전이해주고 난 후유증이었다. 연우강이 준 불량 여의선천신단을 복용하긴 했지만 과거의 무공을 완전하게 회복할 수는 없었다.

“ 손녀딸에게 줬으면서 뭘 그러는가. 나도 향노가 전음으로 전해주지 않았다면 감지하지 못할 뻔했네. 들어오너라.”

무원 또한 창노와 다르지 않았다.

외부에서 주변을 감시하고 있는 향노로부터 막장이 왔다는 전음을 받고 녀석의 기척을 살피고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막장이 초막 안으로 들어오고 나서야 기척을 감지해 낼 수 있었다. 일취월장이란 말을 많이 하곤 하지만 막장처럼 빠르게 성장한 무인은 본 적이 없었다. 갈수록 놀라움을 안겨주는 녀석이었다.

“ 오랜만에 뵙습니다.”

안으로 들어온 막장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는 두 사람 건너편으로 앉았다.

“ 방금 한 말이 사실이냐?”

무원은 찻잔에 차를 따라 건네며 물었다.

“ 그렇습니다. 어르신. 저도 녀석에게 혈잔수, 백옥수, 흑마수를 전수 받고 혈잔수는 완벽하게 익혔습니다.”

“ 처음부터 그 무공을 익히고 있었던 건 아닐 테고, 어떻게 해서 그 무공을 얻은 거냐?”

“ 화장실에서 주었다고 하였습니다.”

“ 화장실?”

“ 사실은......”

막장은 연우강에게 들은 이야길르 소상히 말해주었다.

“ .....!”

“ ......!”

이야기를 듣고 난 두 사람은 멍한 얼굴로 서로를 보았다. 동굴도 아니고, 대야벌 내 산도 아니고, 네 개나 있는 호수 바닥도 아니고, 화장실이 기연을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을 갖춘 장소라니.

기가 막히고 말문이 막혔다.

“ 제가 연화를 얻은 곳도 화장실입니다. 어르신.”

“ 엉? 프! 하하하!”

“ 허! 클클클!”

멍한 얼굴을 하고 있던 두 사람은 느닷없이 통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한참 동안 웃어젖히던 두 사람은 다시 자세를 고쳐 앉더니 조금 전 하던 이야기를 이어갔다.

“ 그러니까 녀석은 백옥수를 이용해서 벌내쟁투를 유발해 냈군요.”

먼저 창노가 입을 열었다.

“ 맞네. 대부분의 세력들이 벌내쟁투에 참가하긴 했지만 그들은 그 사건으로 인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네. 그동안에는 림주 정도 되면 천마삼경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무공을 얻었다고 해도 가질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벌내쟁투를 통해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은 거지.”

“ 천마삼경을 유명계 소유로 인정하지 않은 벌주에 대한 불신이 움텄단 말이군요?”

“ 그렇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생사림의 벌내쟁투는 벌주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가도록 한 사건이었네.”

“ 그것뿐만이 아니지요. 녀석은 유명계를 죽일 수 있는 기회를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놈의 손가락과 발가락만 자르고 살려 보냈지요.”

“ 그건 장차 대야벌의 적을 만들어주기 위함이었네.”

“ 천마삼경을 통한 마총 장보도 사건도 일으키고요.”

“ 생사림의 벌내쟁투로 인해 대야벌 각 세력은 강호로 나가서 싸우기 시작했고, 각 파벌의 색깔이 진해졌네. 같은 편이 아니면 결코 도움을 주지 않는 상황으로 치달았지.”

“ 결국 담대만승은 잠룡들을 외부로 내보내는 걸로 해서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죠.”

“ 그러면서 상궐을 창설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고 말았지.”

“ 금릉 연씨 세가 폭발 사건을 말하는 겁니까?”

“ 금릉 연씨 세가를 공격한 것은 담대만승이 저지른 최악의 실수였네. 그 일로 인해 자식을 버린 패륜 부모가 됐고, 사월림과 만마림은 조만간 대야벌을 탈퇴하고 떠나게 될 거네.”

“ 그것뿐만이 아니죠. 결과적으로 금의위와 동창을 끌어들이지 않았습니까?”

“ 결과적으로 끌어들인 게 아니고 처음부터 그들을 끌어들일 생각으로 작업을 했네.”

“ 무슨 소립니까?”

“ 화약 때문이네. 창제.”

“ 그러니까 그 녀석은 동창과 금의위를 끌어들이기 위해 일부러 화약을 사용했단 말입니까?”

“ 그렇습니다. 어르신. 폭발이 있기 전에 남경의 동창과 금의위 지부에 서찰까지 보냈습니다.”

듣고 있던 막장이 대답했다.

“ 허허!”

“ 그것뿐만이 아니네. 창제. 아마 소제독 유설연에게 범천조화신기를 넘긴 것도 녀석일 거네.”

“ 그 녀석이 동정호에도 나타났다고 생각하십니까?”

“ 이걸 보게.”

무원은 탁자 한편으로 두었던 첩지 중 하나를 꺼내 창노에게 내밀었다.

< 신진 고수 출현.

이름 : 류사은.

등천사노, 오제, 패천림 림주를 비롯한 패천십웅, 군마련의 부림주 천광마자 낙천이 죽임을 당함.

내력: 파악불가.

사용 무기: 마의혈노 잔석과 철전패왕 백독수를 없앨 때는 낭조를 사용하였고, 오제를 없앨 때는 물로 검을 만들어 상대를 살상하는 특이한 무공을 사용함.

담대무궁 또한 그에게 왼팔을 잘린 걸로 보임.

동정호 지하에서 사문으로 들어감.

생사는 확인 불가.?

“ 그건 구룡대군 윤허가 무궐로 보낸 내용이네.”

“ 류사은이 녀석이란 말입니까?”

“ 맞습니다. 어르신. 녀석은 저와 이야기를 할 때도 류사은이란 이름을 여러 번 언급했습니다.”

“ 더 확실한 건 이거네.”

이번에 무원은 품속에서 첩지를 꺼내 내밀었다.

< 밀천의 천주는 무무대공 나천후입니다.>

밀천 천주의 정체를 밝히는 짤막한 글이 적혀 있었다.

“ 야!”

창노는 막장을 쏘아보며 소리쳤다.

“ 왜 그러십니까?”

“ 도대체 그 녀석이 얼마나 강한 거냐?”

“ 그건 비밀입니다. 어르신.”

“ 너 지금 누구 복장 터져 죽는 꼴을 보고 싶냐?”

창노는 막장을 노려보며 으르렁댔다.

“ 어르신도 뾰족하게 모가 난 돌로 관자놀이를 맞아보십시오. 비밀을 발설하면 그 날로 전 죽음입니다.”

막장은 부르르 떨며 몸을 움츠렸다.

“ 난 내 손녀딸을 우강에게 시집보낼 참이다. 막장. 그럼 나와 우강이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아느냐?”

“ 그래도 말 못합니다. 어르신. 대야벌에 들어오기 전에도 저보다 강했다는 말을 어떻게 합니까. 전 그런 녀석을 향해 하룻강아지라고 비웃으며 협박했단 말입니다.”

“ 옳거니, 그럼 그 상태에서 우리가 준 풍천영수와 만년지극화령실을 복용했다는 말이구나.”

“ 천마삼경을 주울 때 밤톨만 한 약도 하나 주웠답니다.”

“ 약?”

“ 그걸 복용하면 선천지기를 이 갑자나 쌓을 수 있다고 하는데 전 믿지 않습니다. 최고의 의원이신 이 약사 어르신도 실패한 여의선천신단을 녀석이 얻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잖습니까. 세상천지에 이 갑자나 쌓을 수 있는 영약이 어디 있습니까. 제 말이 틀렸습니까?”

퍼억!

“ 에라, 이 멍청한 녀석아.”

듣고 있던 창노는 막장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갈겼다.

“ 왜 그러십니까?”

막장은 볼멘 소리를 했다.

“ 돌려서 말하는 것도 기술이 있어야 하는 거다. 자식아. 넌 그냥 말하는 게 더 나아.”

“ 아무튼 전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자식이 일천독행신과 일천파류혼을 얻었다는 말도 하지 않았고, 그 무공을 제게 전수해주었을 뿐 아니라, 잠료 십조 조원들에게도 전부 전수할 생각이라는 것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르신. 그리고 그 자식을 따라다니는 노인네들 중에 연화 할아버지인 신풍노개 두작군 어르신이 있다는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 에라, 개자식아.”

창노는 이번엔 손을 날리는 게 아니라 몸을 날려 막장을 쓰러뜨리고는 그위로 올라탔다.

“ 왜 그러십니까, 어르신.”

“ 알고 있는 거 전부 털어 놔, 자식아.”

“ 전 말 못합니다. 어르신. 신주제일검 욱일승, 묘강독존 갈인효, 북해어옹 수천월 어르신이 그 녀석에게 몸을 의탁했다는 건 정말 비밀 중의 비밀이란 말입니다.”

“ 죽고 잡냐?”

창노는 오른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 경천사마 네 분도 무덤 자리를 봐줄 사람으로 녀석을 택했다는 걸 어떻게 말합니까, 만겁신마 기운상 그분은 흑천의 천주 대행이란 말입니다.”

“ 오냐, 한 번 죽어봐라, 자식아.”

급기야 창노는 들어올렸던 오른손을 막장의 얼굴로 박아넣었다.

퍽!

창노의 오른 주먹이 막장의 얼굴에 정통으로 꽂혔다.

하지만 소리만 요란했을 뿐 힘이 실리지 않은 듯 막장은 아픔을 느끼지 못했다.

“ 아이고, 어르신. 살려주십시오. 아파 죽겠습니다. 기운상 그분이 녀석을 천주님으로 부르고 있는 걸 제 입으로 어떻게 말합니까. 나중에 녀석이 돌아오면 그때 들으면 되잖습니까.”

막장은 정말로 아픈 것처럼 비명을 내질렀다.

퍼억!

또다시 창노의 손이 막장의 얼굴에 작렬했다.

“ 아이고, 어르신. 전 절대 말하지 않을 겁니다. 죽어도 말할 수 없습니다.”

피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가만히 맞아 주는 이유는 창노의 눈에서 흘러내리고 있는 눈물 때문이었다.

한동안 그렇게 공연히 막장을 두들겨 패던 창노는 눈물이 멈추자 그제야 물러나 앉았다.

“ 그럼 담대만승이 밀천을 정벌하기 위한 정벌군을 모집한다고 해도 따를 세력은 별로 없겠군요.”

무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나서는 자가 먼저 당한다.

지금 대야벌 상황은 한 줄로 축약하면 그렇다. 과거엔 비록 경쟁관계에 있었지만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면 힘을 모았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도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상대가 영세오천의 한 곳인 밀천이라 함부로 나설 수 있는 상황도 아니지만 그보다는 생사림 벌내쟁투 이후 각 파벌 간에 생겨난 불신의 벽이 높기 때문이다.

물론 대야벌 전부가 나서면 어쩔 수 없이 참전을 해야겠지만 그럴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다른 세력은 몰라도 황궐, 금황련, 풍운련, 천추림의 수뇌는 범천조화신기 기주 명령을 들어야 한다며 거부할 게 분명하다. 그들이 거부하면 다른 세력도 출병을 거부할 테고 결국엔 담대만승을 따르는 자들만 남게 된다.

연우강이 유설연에게 범천조화신기를 맡긴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던 것이다.

“ 형님의 말이 맞습니다. 녀석의 부처님이고 대야벌을 비롯한 무림은 전부 손오공입니다.”

창노가 나직하게 말했다.

“ 그렇지. 우린 그냥 지켜보기만 하면 되네.”

서로를 쳐다보는 두 사람의 얼굴에 빙그레 미소가 어렸다.

“ 그런데....”

창노는 막장을 돌아보았다.

“ 전 절대 말하지 않았습니다. 어르신.”

“ 걱정 마라. 녀석아. 네가 말했다는 사실은 절대 말하지 않을 거니까. 그보다 어쩐 일이냐?”

“ 준비 끝났다는 말씀을 드리러 왔습니다.”

“ 준비?”

“ 패천십관에 도전하기로 한 거 말입니다.”

“ 자신 있느냐?”

“ 마지막 십 관을 담당하는 백독수가 죽었습니다. 어르신.”

“ 그래서 정보가 필요없단 말이렷다.”

“ 필요 없다는 의미가 아니고 제 힘으로 넘어보고 싶습니다.”

“ 두보관 그 친구로부터 패천십관에 대해 들었느냐?”

“ 아무 말도 듣지 못했습니다.”

“ 단 천 명으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보다 열 배나 많은 무인을 거느린 다른 세력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이유를 아느냐?”

“ 개개인의 무공이 강하기 때문이란 말입니까?”

“ 대야벌에서는 지금껏 많은 벌주가 있었지만 패천림 전 무인의 충성을 받아낸 벌주는 단 한 명도 없었다.”

“ 하지만 백독수는....”

막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충성을 받아내지 못했다는 말은 패천림이 벌주를 우습게 여길 정도로 자존심이 강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패천림의 림주 백독수는 그렇게 강한 자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약하다는 뜻은 아니지만 다른 세력의 수장인 궐주나 련주 또는 림주에 비해 부족한 자라는 뜻이다. 그런 자가 림주로 있는 패천림이 대야벌의 벌주를 우습게 여길 정도라는 말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 패천림은 강호에 지부가 없고, 암살대전에 참여하지 않는 유일한 조직이다. 그게 무슨 뜻이겠느냐?”

“ 백수란 말이군요.”

“ 백수?”

“ 우강 녀석의 말입니다. 돈벌이를 하지 않고 무기만 가지고 노닥거리는 자들을 일컬어 백수라고 하더군요.”

“ 클! 맞다. 패천림의 무인 중 구백구십구 명은 백수다.”

창노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럼 림주는 돈을 벌어 패천림 무인들을 먹여 살리는 자를 말하는군요?”

“ 잘 아는구나. 그들을 먹여 살릴 돈을 벌어오는 대신 패천림의 일부 세력을 거느릴 수 있었다.”

“ 전부가 아니고 일부란 말입니까?”

“ 두작군은 패천림 무인의 오 할의 지지를 받은 림주고, 백독수는 삼 할의 지지를 받았다.”

“ 그런 게 가능합니까?”

“ 우리도 그 부분에 대해 알아보려고 많은 노력을 했지만 아무도 아는 자가 없었다. 다만 패천십관과 관련이 있지 않나 하고 짐작할 뿐이다.”

“ 림주를 지지하는 자들과 패천십관이 관련이 있다는 건....”

“ 림주는 그 이유를 알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이다.”

“ 그럼 장인어른은 알고 있겠군요.”

“ 그 이유를 알게 되면 우리에게도 알려주려무나.”

“ 끄응!”

막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도전은 언제 시작할 거냐?”

“ 내일 아침에 패천신고를 치기로 했습니다.”

“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란다.”

“ 그럼 도전이 끝나고 뵙겠습니다. 어르신들.”

두 사람에게 고개를 숙인 막장은 밖으로 나갔다.

“ 어떻게 보십니까?”

막장이 나가자 창노는 무원을 보며 물었다.

“ 적어도 석년의 두보관보다는 막 림주를 불러야겠군요.”

“ 그럼 앞으로 저 녀석을 막 림주로 불러야겠군요.”

“ 그럴 가능성이 높네. 그런데 그 일은 진척이 좀 있는가?”

“ 무슨 일 말입니까?”

“ 우강이 녀석이 부탁했던 그 일 말이네.”

“ 혈잔마수 염자생에 대한 사건 말입니까?”

“ 그렇네.”

“ 다른 곳은 조사가 전부 끝났고, 야궐, 황궐, 무궐만 남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조사하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 불가능하단 말인가?”

“ 그들을 죄다 조사하려면 최소한 몇 년은 걸립니다.”

“ 몇 년이라.... 차라리 함정을 파보는 게 어떤가?”

“ 함정이라고요?”

“ 그렇네. 우리가 찾아갈 게 아니라 찾아오게 만드는 거네.”

“ 어떻게 하잔 말입니까?”

“ 그 사건에 대한 소문을 흘려보는 거네.”

“ 사십 년이 넘었습니다. 형님.”

“ 사십 년이 아니네. 창제. 염자생은 사 년 전에 다시 강호 공적이 됐네. 그런데 그 일을 조사하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네.”

“ 이상한 점이라면....?”

“ 처음엔 염자생이 먼저 시비를 걸어 시작한 싸움이 많았지만 나중엔 그가 먼저 시작한 싸움은 거의 없었네.”

“ 누군가 시비를 걸었단 말입니까?”

“ 염자생과 싸웠던 자들 중 살아남은 자가 거의 없어서 그건 정확하지가 않네. 하지만 이상하게도 염자생 사건엔 께름칙한 뭔가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단 말이네.”

“ 육감이란 말입니까?”

“ 그렇네.”

“ 소문을 흘리면 그 자가 찾아올 거라고 보십니까?”

“ 왜 도둑이 제발 저린다는 말이 있지 않은 가. 만일 그가 성공한 정파 무인이라면 분명 소문을 쫓아올 것이네.”

“ 그것도 나쁘지 않겠군요. 알겠습니다. 형님. 은밀하게 소문을 내보도록 하겠습니다.”

“ 우강이 녀석이 찾은 걸로 하게.”

“ 알겠습니다.”

창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무원과 창노의 거처를 나선 막장은 과거 연우강이 사용하던 집으로 들어가던 중이었다. 연우강이 돌아올 때까지는 두보관이 그곳에서 거처하기로 한 탓이다.

두보관은 혼자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 정보는 좀 얻었는가?”

두보관은 안으로 들어서는 막장을 보며 물었다.

“ 이상한 말만 듣고 왔습니다.”

“ 어떤 말을 들었는가?”

“ 장인 어른께서 림주로 있을 때 장인어른을 따르던 무인은 오백 명에 불과했다는 말이었습니다.”

“ 맞네. 날 따르는 자들은 오백 명이었고, 백독수를 따르는 무인은 삼백 명에 불과했다네.”

“ 정말이란 말입니까?”

조금 전 창노로부터 들은 말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다. 패천십관이란 관문을 만든 이유가 수장을 뽑기 위함이고, 수장을 뽑았으면 그를 따라야 마땅하다. 그런데 패천림 무인들 중 일부만 자신들이 뽑은 림주를 따른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 그걸 이해하기 위해서는 패천림이 탄생한 천오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네.”

“ 탄생과 관련이 있다면.....”

“ 그렇다네. 원래 패천림은 지천의 후예들이 만든 세력이네.”

“ 지, 지천이란 말입니까?”

막장은 경악한 얼굴로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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