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백수-80화 (80/232)

제 7장 완벽한 녀석

콰앙! 콰콰쾅! 쾅쾅! 쾅쾅쾅!

벼락이 치는 듯한 소리가 쉬지 않고 들려오더니 어둠을 끌어안고 있던 범천담대세가에 시뻘건 불길이 솟아올랐다.

“ 크악!”

“ 아악!”

“ 으아악!”

건물이 부서지고, 곳곳에서 처절한 비명이 연이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슈우우! 슈우!

콰앙! 콰앙! 콰앙! 콰앙!

“ 허억!”

담대천명은 비명을 내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 크악!”

“ 아악!”

“ 으아악!”

콰앙!

처절한 비명에 이어 느닷없이 건물 천장으로부터 뭔가 터져 나가는 소리가 들려오자 담대천명은 검만 챙겨들고 밖으로 몸을 날렸다.

우지끈!

그가 밖으로 내려서자마자 삼 층 건물 상층부가 부서지며 그곳에서 불길이 확 솟구쳐 올랐다.

“ 이럴 수가!”

담대천명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사방에 불길이 치솟고, 살려달라는 외침과 죽어가면서 내지르는 비명이 세가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러한 와중에도 하늘에서는 계속 검은 포탄이 유성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슈우! 슈우! 슈우! 슉! 슈우!

콰앙! 쾅! 쾅쾅쾅! 쾅쾅!

“ 총관! 총관은 어디 있느냐?”

담대천명은 손을 머리 위로 올린 채 몸을 날려가며 고함을 내질렀다.

“ 내 팔!”

“ 아악!”

“ 살려줘!”

“ 지오철은 어디 있느냐?”

“ 죽었습니다. 대공자님.”

그때 오른편에서 건장한 체격의 사내가 몸을 날려오며 소리쳤다. 그는 범천담대세가의 수호신이라 불리는 혈야대 대주 광혈무극검 오시득이었다.

오시득 역시 차림새는 담대천명과 다르지 않았다. 자다가 뛰쳐나온 듯 속옷 차림에 검만 들고 있었다.

“ 피해 상황을 보고하라!”

“ 파악하기조차 힘듭니다. 사방에서 포탄이 비 오듯 떨어지고 있습니다.”

또다른 자가 담대천명과 오시득이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려 오며 소리쳤다. 역시 속옷 차림인 그는 혈야대 부대주 천혈사영검 임영이었다.

콰앙! 콰앙! 콰앙!

화르르!

포탄은 쉬지 않고 떨어져 내렸다.

“ 혈야대는 범천루 앞으로 집합하라!”

내공이 가득 실린 오시득의 목소리가 범천담대세가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 살려줘!”

“ 아악!”

“ 으아악!”

“ 빌어먹을! 혈야대는 여자와 아이를 먼저 대피시켜라! 범천루 앞으로 오라는 명령은 취소한다. 여자와 아이들을 먼저 피신시켜라!”

“ 혈야대는 여자와 아이들을 먼저 피신시켜라!”

세 사람은 동시에 고함을 내지르며 몸을 날렸다.

우선은 포탄이 떨어지는 이유를 아는 것보다 가솔들의 피신이 먼저였다. 하늘에서 유성처럼 떨어지는 포탄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가솔을 인솔해 가는 혈야대 대원 머리 위로 떨어지는가 하면 불타던 건물이 무너지며 피하고 있던 자들을 덮치곤 했다.

“ 피할 곳이 없습니다. 대공자님!”

“ 세가 전체가 화포의 사정권에 들어 있습니다.”

멀리사 오시득과 임영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담대천명은 절망했다.

“ 건물 안에 갇힌 자들도 있습니다.”

“ 오시득! 시득은 어디 있는가?”

담대천명은 몸을 날려가며 고함을 내질렀다.

“ 여기 있습니다. 대공자님.”

가솔을 구해 이동하고 있던 오시득인 그들을 놓아두고는 몸을 날려갔다.

“ 화포의 위칠르 찾게. 시득, 놈들의 화포를 없애야 하네.”

“ 설사 화포의 위치를 찾는다 해도 공격이 불가능합니다. 대공자님.”

오시득은 굳은 얼굴로 말했다.

“ 무슨 소린가?”

콰앙! 쾅쾅! 쾅쾅쾅!

“ 아아악!”

“ 으아악!”

“ 으악!”

“ 혈야대 대원들이 모이질 않습니다.”

“ 모이지 않는다고?”

담대천명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바로 혈야대 대원들의 가족 때문이다.

범천담대세가가 천하제일가가 되면서 세가에는 수많은 손님이 찾아왔다. 그들 중에는 무림 문파 수뇌들도 꽤 있었는데,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면서 혈야대 대원들을 자파로 끌어들이려고 했고 과거엔 상당수의 대원들이 떠났다.

아니 처음엔 일부러 보내는 경우도 있었다.

무림 문파 수뇌들 입장에서는 범천담대세가와 연줄을 만들어 좋고, 범천담대세가는 영향력을 더 확대할 수 있어 좋은, 서로간에 이익이었다.

문제는 그러한 일들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일어났다. 이제는 혈야대 대원들 사이에서는 타 문파로 뽑혀가는 게 마치 성공의 상징처럼 인식되면서 너도나도 타 문파로 가기 위해 혈안이 됐다. 심지어는 타 문파에 은밀하게 연락을 취해 자신을 데려가라고 하는 대원들마저 생겨날 정도였다. 대원들이 빠져나가면서 혈야대의 전력은 급속도로 약화됐고,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고 말았다.

혈야대 대원들을 떠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렇다고 가문에서 적극 후원했던 일을 이제 와서 금지시킬 수도 없는 일이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의외의 사실을 발견했다.

혈야대를 떠난 대원들의 구 할 이상이 혼자이거나 가족이 한 명인 자들이었다. 부인과 자식 또는 부모가 있는 대원들은 한 명도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부터 혈야대 대원들에게 가족을 만들어주기 시작했다. 혼인을 하지 않은 대원은 혼인을 시켜주고, 혈야대 대원 자식들은 따로 관리하여 특별 교육을 시켰다.

가족이 있다는 건 여러 가지로 많은 장점이 있었다.

대원들의 이탈이 줄어들었을 뿐 아니라, 결속력도 훨씬 강해졌다. 그들에게는 범천담대세가를 지키는 것이 곧 가족을 지키는 일이었다.

성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그렇게 하기 시작한 지 삼 년이 되지 않아 혈야대 대원들은 다시 예전의 전력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그 가족이 혈야대 대원의 발목을 잡고 만 것이다.

범천담대세가가 직접 공격을 받자, 혈야대 대원들은 세가가 아닌 가족을 택하고 만 것이다.

“ 대공자님!”

“ 대공자님!”

그때 왼편과 오른편에서 담대천명을 부르는 소리와 함께 혈야대 대원들이 우르르 달려왔다. 조장인 혈무신영권 자일록과 절혼참인검 강인곤이 이끄는 대원들이었다.

“ 얼마나 모였는가?”

담대천명이 자일록을 보며 물었다.

“ 오십 명 가량 모였습니다. 대공자님.”

“ 자넨?”

이번엔 강인곤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 저희 조는 삼십 명 가량 모였습니다.”

“ 당장 화포의 위치를 찾게.”

“ 알겠습니다.”

자일록과 강인곤은 몸을 날려 아직은 멀쩡한 건물 지붕으로 올라갔다. 그들이 올라가는 순간에도 포탄은 유성처럼 쉬지 않고 떨어져 내렸다. 자일록과 강인곤은 애써 주변을 외면하며 화포의 위치를 찾았다.

하지만 포탄이 날아오는 방향만 잡을 수 있을 뿐, 화포가 어디쯤에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 서쪽입니다. 대공자님.”

“ 화포의 사정거리가 얼마나 되는가?”

담대천명은 오시득을 보며 물었다.

“ 대형 탄환을 사용할 경우 천백 장까지 가능할 걸로 알고 있습니다.”

“ 그럼 내궁산이겠구먼.”

담대천명의 시선이 서편으로 향했다.

“ 그렇습니다.”

“ 가세.”

담대천명은 서쪽으로 몸을 날렸다.

“ 혈야대 대원들은 나를 따라라!”

“ 내궁산으로 간다!”

“ 혈야대 대원들은 내궁산으로 집합하라!”

오시득을 비롯한 부대주인 임영과 조장들은 고함을 내지르며 몸을 날렸다. 따르고 있는 혈야대 대원들이 아니라 가족을 피신시킨 대원들에게 하는 말이었다.

슈욱! 슈우우! 슈우욱!

“ 포탄이 떨어진다!”

허공에서 새카만 덩어리들이 아래로 쏟아져 내리자 혈야대 대원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팔십여 명의 혈야대 대원들이 전부 몸을 피하기에는 장소가 너무 협소했다. 전부가 몸을 피하도 전에 포탄은 지상으로 내려왔다.

“ 크악!”

“ 아악!”

“ 으아악!”

화염이 혈야대 대원들을 덮치고, 주변 건물을 태웠다. 처절한 비명과 함께 갈가리 찢긴 살점이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 서둘러라!”

“ 놈들을 죽여 복수하라!”

담대천명과 혈야대 수뇌들은 고함을 내지르며 몸을 날렸다. 어느새 일행은 범천담대세가 서편 담에 당도해 있었다. 담대천명은 훌쩍 몸을 날려 담 위로 올라섰다.

으드득!

몸을 돌려 세가를 보던 담대천명의 입에서 이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범천담대세가를 집어삼킨 시뻘건 불길 위쪽으로 검은 포탄들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 가자!”

한동안 불타는 세가를 지켜보던 담대천명은 몸을 날렸다. 전력을 다해 몸을 날린 담대천명 일행은 잠시 후 내궁산 기슭이 보이는 장소에 내려섰다.

“ 전망댑니다. 대공자님.”

내궁산을 올려다보고 있던 오시득이 주먹을 불끈 틀어쥐며 소리쳤다. 전망대. 그곳에 올라서면 범천담대세가가 가장 아름답게 보이다고 하여 붙여진 절벽 이름이다.

그런데 그곳에서 화포를 쏠 때 나타나는 불꽃이 쉬지 않고 작렬하고 있었던 거였다.

“ 한 놈도 남기지 말고 전부 죽여라!”

담대천명은 고함을 내지르며 숲을 향해 폭사돼 갔다.

“ 혈야대 대원은 오백 명이라고 알고 있는데......”

달려오는 자들을 지켜보던 이자승은 고개를 갸웃했다. 오백 명이나 된다는 혈야대 대원들이 뜻밖에 백여 명도 채 되지 않았던 것이다.

먼저 날아 내린 연우강과 남궁운화는 물 위를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 그래서 가족이 무섭다는 겁니다. 영감님.”

뒤편에서 연우강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이자승은 고개를 돌렸다. 연우강은 검은 철립에 검은 옷을 걸치고 있었다.

“ 가족?”

“ 범천담대세가에서 혈야대 대원들이 빠져나간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 강호 무림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세가 차원에서 이루어진 일로 알고 있다.”

“ 처음엔 그랬지만 나중엔 부작용이 생겨났습니다.”

“ 어떤 부작용 말이냐?”

“ 혈야대의 전력이 급속하게 약해진 겁니다. 깜짝 놀란 담대천명은 혈야대 대원들을 떠나지 못하게 하려고 가족을 만들어주게 됩니다. 혼인을 하지 않는 자는 혼인을 시키고, 혈야대 대원들의 자식들만 받아들이는 특별 교육기관도 만들었죠.”

“ 혈야대는 금세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겠구나.”

“ 오히려 과거보다 더 강해졌습니다. 하지만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는 걸 담대천명은 몰랐습니다.”

“ 치명적인 약점이 가족이란 말이냐?”

“ 그렇습니다. 지켜야 할 가족이 있는 사람은 최강의 전사가 되지만, 그 지켜야 할 가족이 공격을 받게 도면 그는 가장 나약한 사람이 됩니다. 지금과 가튼 경우엔 범천담대세가가 아니라 가족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는 거죠.”

“ 화포를 사용한 이유가 그 때문이었냐?”

“ 건물이 무너지고 불타올랐을 때, 가족이 있는 사람이 가장 먼저 하는 건 무너진 건물 속에서 가족을 구해내는 겁니다. 가족을 지키는 건 인간이건 동물이건 본능입니다. 본능은 충성심보다 더 강하지요.”

연우강은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갔다.

어느새 담대천명 일행은 오십여 장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 그래서 마음껏 싸우기를 원하는 자들은 가족을 피신시켜야 하는 겁니다.”

파앗!

천천히 걷는 듯하던 연우강의 신형이 전면을 향해 폭사돼갔다.

파악! 파앗! 파악!

연우강의 신형이 허공을 단축하자 뒤이어 풀숲에 몸을 숨기고 있던 이자승과 욱일승 일행이 전방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 적이다!”

“ 혈야대는 진형을 구축하라!”

천하제일이란 말은 허언이 아닌 듯, 느닷없이 연우강 일행이 튀어나갔지만 담대천명은 침착한 얼굴로 혈야대 대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의 명령을 받은 혈야대 대원들은 앞으로 튀어나가며 진형을 구축했다.

일 열에 한 명이 서고 이 열엔 두 명, 삼 열엔 세 명이 서는 식으로 뒤로 가면서 점점 인원수가 늘어나는 진식은 범천담대세가가 자랑하는 연환천패진이었다.

연환천패진은 대연환천패진과 소연환천패진으로 나뉘어지는데, 대연환천패진은 소연환천패진 열 개로 이루어져 백 오십 명이 한 조가 되는 거대한 진이다.

담대천명을 따라온 혈야대 대원들은 수가 칠십여 명에 불과한 탓에 혈야대는 열다섯 명으로 이루어진 소연환천패진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

쿠우웅!

소연환천패진이 완성되는 순간 대기가 출렁이며 가공할 기운이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 파괴적인 힘 앞에서는 진식도 무용지물이라고 막장 녀석이 그러더라고!”

전방으로 나아가던 연우강은 가슴을 안쪽으로 당기며 양편 어깨를 강하게 밀어 쳤다. 마치 새가 날갯짓을 할 때와 같은 모습이었다.

파아악! 스아악!

그의 목 주변에 목걸이처럼 걸려 있던 사망정주가 진득한 살기를 뿜어내며 전방을 새카맣게 물들였다.

“ 암기다!”

연우강의 앞을 가로막은 자는 절혼참인검 강인곤이었다. 그는 고함을 내지르며 들어 올리고 있던 검을 사정없이 내리그었다.

검이 허공을 가르는 순간, 강인곤 앞에 커다란 강기의 막이 생겨났다.

카앙! 캉캉!

쐐액!

“ 허억!”

강인곤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암기 두 개가 강기막을 두들겨 약하게 만들더니 급기야 세 번째 암기가 파고들어 왔다. 그는 급하게 검을 들어올려 검면으로 암기를 막았다.

카앙!

이번엔 검이 부러졌다.

그리고 부러진 검 위쪽으로 검을 구슬 하나가 날아들어 얼굴로 파고들었다.

“ 아아악!”

강인곤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러한 현상은 강인곤에게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소연환천패진을 구축하고 있던 열다섯 명 모두가 얼굴을 또는 가슴을 감싸쥐고 그 자리에 풀썩풀썩 쓰러졌다.

스스스!

소연환천패진을 단숨에 무너뜨린 사망정주들은 연우강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와 몸 주변으로 늘어섰다.

“ 죽인다!”

뒤편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담대천명이 검과 하나가 돼 연우강을 향해 폭사돼 갔다. 그의 검면에는 푸른 광채가 일렁였다. 그것은 범천담대세가의 최강 무공인 무적뇌화결이었다.

“ 쿡!”

연우강은 차갑게 웃었다.

담대천명이 이곳에서 가문을 지키고 있는 이유를 비로소 알 것 같았다. 담대천명이 펼치는 무적뇌화결은 담대무궁이 펼쳣던 무적뇌화결에 비해 절반의 위력밖에 되지 않았다.

담대만승이 셋째인 담대무궁을 후계자로 선택한 이유가 바로 무공을 익히는 자질 때문이었다.

“ 부모는 못난 자식이 더 짠하고, 안쓰러울 수밖에 없지. 그놈이 죽으면 더욱 슬프고 말이야. 네 녀석의 죽음은 담대만승을 미치기 직전까지 몰고 갈 거야. 물론 당장 미쳐 날뛰진 않을 거야. 아직은 대야벌의 벌주고 가진 게 많기 때문에. 하지만...”

연우강은 오른손을 쭉 내밀었다.

휘리릭!

그의 손이 담대천명에게로 향하자, 주변에 늘어서 있던 사망정주가 메뚜기처럼 날아올라 전방으로 쏘아져갔다.

“ 타앗!”

담대천명은 검을 휘둘러 전면에 강기막을 쳤다. 그는 그 상태를 유지하면서 계속 몸을 날렸다.

하지만 연우강이 펼치는 암기술은 단순한 암기술이 아니었다. 마라천력을 바탕으로 펼치기 때뭄ㄴ에 암기는 그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직선이 아닌 마음대로 방향을 바꾸는 이기어검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연우강이 손을 들어 올리자, 사망정주가 일제히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

“ 천천히 조금씩 망가질 거야. 아주 천천히 말이야.”

휙!

들어 올렸던 연우강의 손이 아래로 향하고,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던 사망정주가 유성처럼 쏟아져 내렸다.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라 담대천명은 대처할 수도 없었을뿐더러 설사 시간이 있었다고 해도 지옥탄은 그의 실력으로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유성처럼 쏟아진 사망정주들은 그대로 담대천명의 몸을 짓이겼다.

“ 크아악!”

처절한 비명을 끝으로 담대천명의 몸이 갈가리 찢겨 나갔다.

“ 대공자님!”

“ 대공자님!”

“ 저놈이 대공자님을 해쳤다!”

담대천명의 동체가 조각조각 흩어지는 순간 범천담대세가 쪽에서 분노에 찬 외침과 함께 무인들이 새카맣게 몰려왔다. 그들은 가족들을 피신시키느라 지체하였던 혈야대 대원들이었다.

“ 찾아갈 수고를 덜어줘서 고마워.”

연우강은 빙긋 웃으며 그들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선두에서 달려오는 자들과 십여 장으로 좁혀지자 연우강의 입에서 나직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 폭풍은 날아 오르고!”

머리를 가리고 있던 사망철립이 빙그르르 회전하며 날아가더니 여덟 개로 분리되면서 포탄처럼 퍼져 나간다.

“ 달빛은 잔인하기 그지 없다.”

폭풍비에 이은 월광진이 펼쳐지면서 허리춤에 있던 사망월반이 네 개로 분리되며 적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차앙! 챙! 챙챙!

“ 크악!”

“ 아악!”

“ 으아악!”

“ 미친 늑대는 바람처럼 내달리고!”

그의 양손이 허공을 가르는 듯하더니 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아홉 개의 사망낭조가 괴수의 울음을 토해내며 허공을 찢어 발겼다.

“ 검은 해골이 활짝 미소를 짓는다. 일지소.”

내민 왼손 끝에서 해골 문양의 반지가 공간을 가른다.

“ 난무하는 허상은 실체를 파악할 수 없는데, 지옥이 입구는 활짝 문을 열었다.”

“ 크악!”

“ 아악!”

“ 으아악!”

해골 문양이 사방에 나타나고 사망정주가 주변을 초토화시켰다. 일방적인 도살이었다. 연우강을 향해 달려들었던 혈야대 무인들은 십여 장 전면부터 무너지기 시작하혀 삼 장 근처에 도달해서는 서 있는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 빈자리를 향해 연우강의 신형이 화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 괴물 같은 놈.”

이자승 일행은 넋을 잃었다.

달려들던 소연환천패진 무인들을 전부 없애고 연우강을 돕기 위해 몸을 날렸는데, 할 일이 없었다.

수백 명을 상대하는 사람은 단 한 명에 불과하다. 그런데 수백 명이 단 한 명에게 밀리고 있었다.

일인군단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보여주는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 죽음의 꽃은 쉬지 않고 피어나고, 사우화. 열 여덟 유령은 미친 듯이 춤을 추네. 혼령무.”

검은 꽃잎이 나비처럼 살랑거리고 검은 광채가 빛살처럼 사방을 휘젓는다.

어떤 말로도 지금 광경을 표현할 수 없을 거라고 이자승은 생각했다. 혈야대 대원들을 보면 달려가다가 제풀에 쓰러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연우강의 주변으로는 쏘아졌다가 되돌아오는 암기들이 악마의 눈빛처럼 검은 광채를 토해내며 전면을 노려보고 있다.

“ 저건 무공이 아냐. 죽음을 노래하는 춤사위일 뿐이야.”

이자승은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 크아악!”

마지막 남은 일인의 죽음을 끝으로 노래하는 춤사위라고 하였던 일방적인 도살은 막을 내렸다.

척! 척척척! 척척! 척척!

쏘아졌던 암기들이 연우강의 사망묵으로 하나씩 장착됐다. 마지막으로 돌아온 철립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머리 위쪽으로 자리하자 연우강은 몸을 돌렸다.

휙! 휙휙!

연우강이 몸을 돌리는 순간 이십여 장 떨어진 곳에서 세 명이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범천담대세가 쪽으로 도망을 쳤다.

“ 계속 숨어 있었더라면......”

연우강은 몸을 돌려 오른편 허리춤을 슬쩍 쓸었다. 그러자 그의 손에 길이가 한 자 가량 되는 활이 들려 나왔다. 강호에 나와서는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사망혈궁이었다. 연우강은 멀어지는 자들을 보며 천천히 시위를 당겼다. 하지만 그가 당기는 시위에는 화살이 걸려 있지 않았다.

사망혈궁은 화살로 쏘는 활이 아닌 진기로 쏘는 활이었던 것이다. 사망혈궁의 시위가 당겨지는 순간 진기로 만들어진 검은 화살 세 대가 나타났다.

어느새 도망치는 자들은 칠십 장 가량 멀어져 있었다.

“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연우강은 오른손을 가볍게 놓았다.

순간.

쿠쿠쿵! 쿠쿠쿵! 쿠쿠쿵!

“ 음!”

“ 윽!”

연우강을 지켜보고 있던 이자승 일행은 신음을 흘리며 한 걸음씩 물러났다. 화살이 쏘아지면서 들려온 소리는 단순한 괴음이 아니라 음공의 기운을 내포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리에 영향을 받은 사람은 이자승 일행뿐만이 아니었다. 칠십 장 밖에서 도망치던 세 사람의 동체가 한순간 움찔했다. 세 명이 움찔한 순간, 진기로 만든 화살이 그들의 몸 속으로 파고들어갔다.

“ 크악!”

“ 아악!”

“ 으아악!”

퍼억! 퍽! 퍼억!

처절한 비명에 이어 세 명의 동체가 폭죽처럼 터져 나갔다.

“ 엄청나군.”

이자승 일행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보통 그 정도 속도로 날아갔다면 적의 몸을 뚫고 나와야 정상이다. 그런데 연우강이 쏜 화살은 몸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몸 속에 박혀 있다가 그대로 폭발해 버린 것이다.

“ 이건 풍뢰라고 해야겠네.”

연우강은 중얼거렸다.

물을 이용한 어뢰에 이어 바람과 진기를 이용한 풍뢰의 탄생이었다. 연우강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사망혈궁을 허리춤에 갈무리했다.

“ 넌 도대체 없는 게 뭐냐?”

이자승은 연우강이 다가오자 물었다.

“ 제가 말하지 않았나요? 부족한 게 전혀 없는 놈이라 누가 건드리지만 않으면 백수 짓에 만족하면서 조용히 살아갈 거라고요.”

“ 그러니까 대야벌에서 널 건드렸단 말이냐?”

“ 맞습니다. 영감님. 담대만승 그놈은 크게 실수한 겁니다. 절 건드는 게 아니었습니다.”

“ 아무튼......!”

이자승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녀석의 말이 틀리지 않게에 할 말이 없었다. 하늘은 한 사람에게 모든 걸 다 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녀석을 보면 그 말이 잘못됐다는 기분이 들곤 한다. 돈은 썩어 문드러질 정도로 많고, 무공은 제 녀석이 가진 돈보다 더 강한 듯하다.

돈이 많고 무공이 높으면, 어리석거나 거만하기 마련인데, 녀석은 어리석지도 거만하지도 않다. 오히려 너무 뛰어나서 탈이다.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녀석.

그런 녀석이 바로 연우강이었다.

“ 지금부터 바쁘게 움직여야 합니다. 영감님. 가시죠.”

연우강은 산 위를 향해 몸을 날렸다.

이미 사천 발의 화탄은 전부 소모했는지 화포 소리는 멈춰 있었다. 절벽 위쪽에 내려선 연우강은 범천담대세가로 시선을 주었다. 우뚝 서 잇는 건물은 단 한 채도 남아 있지 않았다.

“ 지금부터 각자 앞에 있는 화포를 가루로 만들어라.”

“ 가, 가루로 만들란 말입니까?”

이철상이 깜짝 놀라 물었다.

그의 실력은 아직 화포를 가루로 만들 정도는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 안 된다는 생각은 버려라. 교랑, 모든 일이 그렇다. 덩치만 보고 지레 겁먹게 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통째로 가루로 만들기 어렵다면 일단 잘게 부숴라. 그런 다음 하나씩 가루로 만들어 나가라.”

“ 알겠습니다. 광랑.”

잠룡들은 일제히 무기를 뽑아들고 화포를 잘랐다. 조각조각 잘라낸 다음 하나씩 가루로 만들어나갔다.

화포는 물론이고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가루로 만들어 절벽 아래로 날려버린 일행은 연우강 앞으로 모여들었다.

“ 잡랑!”

“ 하명하십시오. 광랑!”

“ 지도 접어라!”

“ 이미 접어두었습니다.”

“ 그럼 뭘 망설이나!”

“ 출발하라!”

장사덕은 일행을 향해 소리치며 몸을 날렸다.

“ 출발하라!”

“ 출발하라!”

곧 다른 군의 군장들도 조장들을 향해 출발 명령을 내리고 잠룡 십 조는 빠르게 내궁산을 빠져나가 서쪽으로 향했다. 이제부터는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

담대민의 죽음.

동창과 금의위 수뇌 방문. 만마림과 사월림의 축출. 범천조화신기, 밀천 등장, 마총 장보도.

쉴새없이 이어지는 사건으로인해 만우량은 머리가 터져 버릴 지경이었다. 그동안 하루에 한 시진도 제대로 잔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호 무림은 예측이 불가능했다.

그런데....

첩지를 내려다보던 만우량의 눈이 찢어질 듯 커져 잇었다. 첩지의 내용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만우량이 보고 있는 첩지는 붉은색 실이 감겨진 통에 담겨져 온 전서로 입구가 밀봉돼 있어, 그가 아니면 열어볼 수 없는 특급 정보였다.

< 수천 발의 화탄이 범천담대세가를 초토화시킴.

그 공격으로 인해 무적신화검 담대천명을 비롯한 혈야대 전멸, 가솔들은 뿔뿔이 흩어져 생존자 파악 불가>

만우량의 손에서 첩지가 뚝 떨어져 내렸다.

그만큼 충격을 받은 탓이다.

만우량은 범천담대세가가 공격받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담대만승이 대야벌 벌주로 있는데, 정신나간 자가 아니라면 그곳을 공격할 리가 없다.

그런데 그 정신 나간 자가 나타난 것이다.

“ 어떤 미친놈이!”

퍼뜩 정신을 차린 만우량은 떨어뜨렸던 첩지를 다시 주워 읽어보았다. 혹시 세가를 잘못 읽었나 싶어서였다. 하지만 조금 전 읽었던 내용 그대로였다.

그는 잔뜩 찌푸린 채 탁자 위로 시선을 주었다.

그곳에는 붉은 색 실로 표시를 한 통들이 따로 분류돼 있었다. 그는 그 중 하나를 집어들어 밀봉된 뚜껑을 열어 전서를 꺼냈다.

< 범천담대세가가 있는 사천 일대를 샅샅이 훑었지만 특별한 세력을 발견하지 못함.>

그는 붉은 색실로 묶여진 통을 차례로 개봉해 첩지를 읽어내려갔다.

, 사천의 암시장에서 화포 오십 문과 화탄 이천 발을 판매한 자들을 찾았지만 그도 구매자의 신분을 알지 못함.

고문 도중 판매자 사망>

< 이지약과 잠룡 팔 조는 일정대로 청해로 진입함>

< 팔황새 수뇌들이 신강의 북천지옥부로 모여들고 있음. 팔황새 소속 무인들이 움직인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음.>

“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돌아가는군.”

그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사실 지금까지 일어난 일만 해도 감당하기 벅차다.

그런데 범천담대세가 멸문 사건까지 더해진다면 그야말로 폭풍전야가 될 것이다.

“ 이걸 이대로 보고하면 난 죽는다.”

그의 머리가 맹렬하게 회전했다. 이번 사건은 담대민이 죽은 거나, 담대무궁의 왼팔이 잘린 사건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자칫 잘못하면 지옥으로 떨어질 수 있는 특급 변수인 것이다.

“ 결국 그밖에 없는 건가?”

그는 한 사람을 떠올렸다. 그라면 가문의 멸문 소식을 듣고 미친 듯이 분노할 담대만승을 제어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 하지만.......”

그는 자신의 왼팔로 시선을 주었다.

“ 죽는 것보다는 낫겠지.”

그는 첩지를 틀어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상천을 나선 그가 들른 곳은, 벌주인 담대만승의 처소가 아니라 군마련 련주 담대천호의 집무실이었다. 만우량이 이번 일의 해결사로 선택한 사람은 십절무적 담대천호였다.

“ 어쩐 일이오, 만 군사?”

술잔을 기울이고 있던 담대천호는 의아한 얼굴로 만우량을 보았다. 여간해서는 만우량이 자신을 보러 온 경우가 없기 때문이었다.

“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습니까?”

만우량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 나가 있거라.”

만우량의 어투에서 심각한 사안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담대천호는 주변을 물렸다.

“ 말하시오.”

시비를 비롯한 주변에 있던 자들이 전부 나가자 담대천호는 만루량을 보았다.

“ 조금 전 이게 올라왔습니다.”

만우량은 첩지를 내밀었다.

“ 별일이구려. 형님이 아닌 내게....”

피식 웃으며 첩지를 읽던 담대천호의 얼굴이 급격하게 굳었다. 굳은 얼굴로 첩지를 내려다보던 담대천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 한다리 건너 두 다리라 하더니.’

만우량은 내심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만일 저 내용을 벌주가 보았다면 천상천 건물이 무너졌을 것이다. 그런데 가족을 전부 이곳으로 이주시킨 담대천호는 굳어 있기는 하지만 생각보다 침착하다.

역시 담대천호를 찾기로 한 건 정확한 판단이었다.

“ 범인은 알아냈소?”

공연한 물음이라고 담대천호는 생각했다.

천하제일가인 범천담대세가를 공격한 자들이 흔적을 남겼다면 그게 더 이상할 노릇이다. 아마도 조그마한 흔적도 전부 없애고 떠났을 것이다.

“ 전혀.”

만우량은 고개를 저었다.

“ 짐작 가는 곳도 없소?”

“ 세 곳입니다.”

“ 밀천, 팔황새, 황실이겠구려.”

“ 그렇습니다. 하지만.....”

만우량은 말끝을 흐렸다. 다른 곳은 몰라도 그 세 곳에 대해서는 모든 이목을 동원하여 감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움직였다는 보고는 단 한 건도 올라오지 않았다.

“ 움직임이 없었단 말이구려.”

“ 그렇습니다. 련주님. 하지만 팔황새일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 이차 팔황정벌 때문이오?”

“ 그렇습니다. 그들 또한 이차 팔황정벌에 대비하여 전력을 정비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각 세력의 수장들이 북천지옥부로 향했다는 정보가 입수됐습니다.”

“ 그들은 감시하지 않은 거요?”

“ 감시했지만, 특별한 징후는 없었습니다.”

“ 련주님, 접니다.”

그때 밖에서 총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무슨 일이냐?”

“ 율령궁의 우담보 궁주가 오셨습니다.”

“ 그도 소식을 접한 모양이오, 만 군사.”

담대천호는 안으로 들여도 상관없냐는 얼굴로 만우량을 보았다.

“ 정보가 필요합니다. 련주님.”

만우량은 고개를 끄덕였다.

“ 모셔라.”

담대천호의 허락이 떨어지자 문이 열리고 우담보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 역시 만우량처럼 창백한 얼굴을 한 채였다.

“ 만 대협이 여기 있다는 말을 듣고 부랴부랴 달려왔습니다.”

담대천호에게 인사를 하는 것도 잊은 듯 우담보는 만우량 앞으로 자리를 잡고 앉으며 말했다.

“ 궁주도 그 소식을 접한 거요?”

우담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 그 소식 외에 특이한 정보는 없었소?”

“ 그렇소이다. 천안원 밀정에게 잡힌 특이한 세력은 없었소이다. 다만 사천의 암시장에서 오십 문의 화포가 거래됐다는 흔적을 발견했는데, 판매자는 시체로 발견되었소이다.”

“ 밀천이나 팔황새는 어떻소?”

“ 그들의 움직임 또한 감지하지 못했소이다. 다만 수뇌들의 움직임만 감지했을 뿐이오.”

“ 나도 같은 보고를 받았소. 우 궁주.”

“ 미궁이군.”

담대천호는 혼잣말처럼 말했다.

“ 문제는 지금 상황을 벌주께 어떻게 보고를 하느냐 하는 겁니다. 련주님.”

“ 그걸 부탁하려고 온 거 아니오?”

담대천호는 느긋한 얼굴로 물었다.

“ 전 벌주님을 말릴 능력이 없습니다. 련주님.”

“ 형님이 미칠 거란 말이오?”

“ 그렇습니다. 이 공자의 죽음으로 인해 이미 한계에 도달해 있습니다. 만일 아무런 대책 없이 대공자의 죽음과 범천담대세가의 멸문을 보고했다가는, 벌주님은 당장 병력을 이끌고 팔황새를 치러 갈 겁니다. 하지만 벌주님을 따르는 문파 말고는 정벌에 참여하지 않을 겁니다.”

“ 삼십 년 전과는 상황이 다르단 말이오?”

“ 무궐이나 황궐을 전쟁에 참여시킬 명분이 없습니다.”

“ 벌주의 가문은 대야벌과 무관한 세력이란 말이오?”

만우량의 말이 틀리지 않다.

전원 동원령을 선포하여 전 병력을 동원하기 위해서는 대야벌이 생사존망의 위기상황에 놓여야 한다. 하지만 범천담대세가는 벌주의 가문일 뿐 대야벌과는 상관없다. 즉 다른 세력들이 강호 무림에 두고 있는 지부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지부가 멸문을 당했다고 대야벌 전 병력을 동원할 수 없는 것처럼, 벌주의 가문이 멸문했다고 해서 대야벌에 전쟁동원령을 내릴 수 없다. 굳이 처리하고 싶다면 벌주를 따르는 자들로 정벌군을 구성해야 할 터였다.

“ 지금은 전쟁을 수행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련주님.”

“ 무궐이나 황궐에게 어부지리를 줄 수 있다는 말이군.”

“ 어부지리 정도가 아니라 만일 친벌주파만으로 정벌군을 구성하여 사막으로 들어간다면 우린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 그럼 어떻게 하겠다는 말이오?”

“ 먼저 무궐을 끌어들여야 합니다.”

“ 공손정우는 벌주를 지지하는 자로 알고 있소. 만 군사.”

“ 겉보기에만 그렇습니다. 아마 차기 벌주 자리가 걸려 있지 않다면 그자는 당자에라도 등에 검을 꽂을 겁니다.”

“ 그런 자를 무슨 수로 끌어들인단 말이오?”

“ 지금 제가 하는 말을 곡해하지 않고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 심각한 말인가 보구려.”

“ 대야벌의 미래와 관련이 있습니다.”

“ 대야벌의 미래라... 들어봅시다.”

“ 전 쓸데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백인위원회를 없애고 싶습니다.”

“ 그럼 벌주는 누가 뽑는단 말이오?”

“ 전대 벌주가 후계자를 지목하는 방식입니다.”

“ 장기 집권체제를 만들겠단 말이오?”

“ 능력만 있다면 백 년이라 해도 상관없다고 봅니다.”

“ 그건 나쁘지 않군. 그럼 내가 무궐 궐주를 만나서 무슨 말을 하면 되오?”

“ 차기를 밀어주겠다고 하십시오.”

“ 그가 내 말을 믿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요?”

“ 대신 차차기에는 련주님을 밀어달라고 하시는 겁니다.”

“ 둘이 나눠서 한 번씩 해먹자는 제안을 하란 말이군. 만일 그가 거절하면?”

“ 무궐 궐주는 올해 예순다섯입니다. 그는 차기가 아니면 벌주의 꿈을 접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는 치명적인 약점이 잇습니다.”

“ 치명적인 약점?”

[ 그는 과거 잠룡쟁패를 얻어 대야벌로 들어온 잡니다. 하지만 그때 그는 정파 무인으로서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질렀습니다. 그 일은......]

만우량은 그 다음 말은 전음으로 했다.

“ 벌 내에 돌고 있는 이상한 소문이 있던데 그 소문의 주인공이 바로 공손정우였군.”

“ 방금 제가 드린 말은 협상이 결렬되려고 할 때 슬쩍 꺼내는 게 나을 겁니다.”

“ 그 정도는 내가 알아서 할 거요. 만 군사. 그러니까 만 군사 말은 벌주로 옹립하겠다고 약조를 했다고 해도, 백인위원회가 없어지게 되면 검천제 공손정우와 한 약조는 자동적으로 파기된다 그 말이오?”

“ 그렇습니다. 련주님.”

“ 하면!”

차가운 눈으로 만우량을 쏘아보던 담대천호는 검을 뽑아 탁자 위로 올려놓았다.

“ 말씀하십시오. 련주님.”

만우량은 검을 가만히 쳐다보며 말했다.

지금부터가 중요핟. 담대천호가 검을 뽑았다는 것은 다음 질문에 대한 대답 여부에 따라 목을 칠 수도 있다는 뜻이다.

“ 나는 뭘 얻게 되는가?”

만우량의 예상대로 담대천호의 말투가 반공대로 바뀌었다.

“ 그 다음부터는 범천담대세가의 사적인 일입니다. 련주님. 제 영역 밖입니다.”

“ 자넨 상관하지 않겠다는 말인가?”

“ 전 대야벌 천상천의 군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범천담대세가 내부 일에 관여할 입장이 아닙니다.”

“ 형님이 무궁에게 벌주 자리를 넘겨주겠다면 그땐 어떻게 할 텐가?”

담대천호는 검을 들어 만우량을 겨냥하며 물었다.

“ 방금도 말씀드렸지만 전, 범천담대세가 가문 일에는 나서지 않을 참입니다. 무성 성주이신 련주님이 이곳 주인이 되든, 범천담대세가 삼공자께서 주인이 되든 전 상관하지 않습니다. 제가 충성을 바칠 분은 범천담대세가의 가주가 아니라 대야벌 벌줍니다.”

“ 정말인가?”

“ 그렇습니다. 련주님.”

“ 형님의 분노를 누그러뜨리기 위해선 자네 왼팔이 필요하네, 만우량.”

담대천호는 검을 빙글 돌리더니 손잡이를 만우량 앞으로 내밀었다.

“ 기꺼이.”

만우량은 담대천호의 검을 잡음과 동시에 왼팔을 쭉 펴더니 그대로 내리쳤다. 상박에서 잘려나간 팔이 탁자 위로 뚝 떨어져 내렸다. 갓 잡아 올린 물고기처럼 펄떡이던 팔은 잠시 후 잠잠해졌다. 만우량은 검을 담대천호에게 내밀었다.

“ 좋네. 만 군사. 자넬 믿겠네.”

“ 감사합니다. 련주님.”

만우량은 분수처럼 피가 뿜어져 나오는 왼팔을 그대로 둔 채 고개를 숙였다.

“ 지혈부터 해야겠소이다. 련주.”

우담보는 만우량 곁으로 다가가서는 혈도를 눌러 지혈을 했다. 그 모습을 보며 담대천호는 검을 검집 안으로 밀어넣었다.

“ 자! 이제 범천담대세가를 멸문시킨 세력은 어디로 했으면 좋겠는가?”

“ 벌주님께서 황실과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동창의 소제독 유설연이 범천조화신기 주인이 됐습니다.”

“ 쉽게 이야기하세, 만 군사.”

“ 대야벌에서 황실 세력을 몰아낼 시기가 도래했습니다. 련주님.”

“ 벌내쟁투를 치르자는 말인가?”

“ 황실의 눈을 속이고 우리 대야벌 내부 일처럼 꾸미기 위해선 벌내쟁투가 최곱니다.”

“ 밀천이 등장하고 팔황새가 다시 활동을 시작했네. 만 군사.”

“ 물론 황궐을 비롯한 네 문파를 없애고 나면 대야벌 전력이 급감할 겁니다. 하지만 그들이 있다고 해서 대야벌에 도움이 될지 그건 생각해 봐야 합니다.”

“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인가?”

“ 유설연에게 범천조화신기가 들어가지 않은 상태라면 몰라도 지금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사건건 발목만 잡을 겁니다. 그런 세력이라면 차라리 없는 게 더 낫습니다.”

“ 나머지 문파로도 충분하단 말이군.”

“ 그렇습니다. 련주님. 대야벌은 덩치를 줄일 필요가 있습니다.”

“ 알았네. 일단 검천제 공손정우를 만나보도록 하겠네. 그리고 비단을 줄 테니까 자네 팔을 곱게 싸놓도록 하게. 뇌백.”

담대천호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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