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백수-83화 (83/232)

제 10장 파훼 방법을 알면 간단하다.

찰합리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그는 지금 모래 밖으로 얼굴만 내놓은 상태다.

하지만 밖으로 드러난 머리 부분 또한 모래 색과 흡사하여 육안으로 구분하기는 힘들었다.

사풍무영대 대주인 그가 이렇듯 얼굴을 찌푸리고 잇는 이유는 예상을 완전하게 빗나간 잠룡 십조의 행동 때문이다. 찰합리는 잠료 십 조 대원들이 녹아천을 발견하게 되면 눈썹이 휘날리도록 달려올 거라고 확신했다.

보통 타클라마칸을 횡단하는 자들은 횡단 준비를 돈황에서 하게 되는데, 돈황에서 이곳 녹아천까지는 녹주가 한 곳도 없고, 중간에 길을 잃지 않고 제대로 찾아온다고 해도 이십여 일이나 걸린다.

물을 많이 준비한다고 해도, 녹아천에 도착하기 전에 거의 바닥이 날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녹주를 발견하게 되면 눈동자는 홱 돌아버리는 건 당연한 반응이다. 아무 생각 없이 무작정 녹주를 향해 돌진할 수밖에 없다.

찰합리가 기다린 것도 그 순간이었다.

그런데 예상대로 되긴 했는데, 녹주를 향해 돌진한 자는 단 한 명에 불과했다. 더 황당한 노릇은 그마저도 잡지 못하고 낙타만 죽이고 말았다는 것이다.

‘ 굉장한 자군.’

찰합리는 허공에 뜬 채로 사방을 쓸어보고 있는 이자승을 보았다. 검이 날아오자마자 곧바로 허공으로 솟구친 다음 그곳에 멈춰 서 있는 상태다. 이어질 공격에 대비하여 일부러 내려오지 않는 게 분명했다.

대단한 임기응변이 아닐 수 없었다.

‘ 하지만!’

찰합리는 녹주 근처로 천천히 다가오는 연우강 일행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 너희들은 죽는다.’

[ 시작하라!]

찰합리는 조장 후탄에게 전음을 보내고는 서서히 모래 속으로 잠겨들어 갔다. 소리조차 흘리지 않고 사라지는 찰합리의 무공은 모래 속에서도 평지처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사토잠행술이었다.

찰합리가 모습을 감추자 주변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그 조용한 공간으로 연우강 일행이 들어섰다.

“ 보셨습니까?”

연우강은 아직 허공에 머물고 있는 이자승을 향해 물었다. 지금 있는 곳에서 녹주가 있는 곳까지는 삼십 장.

세 번의 도약이면 달려갈 수 있는 곳이지만 흔적조차 잡히지 않는 적이 마음에 걸렸다.

“ 사풍무영대의 사토잠행술이에요. 연 공자.”

대답은 뒤따라온 수여설의 입에서 나왔다.

팔황새는 한 세력이면서도 서로 경쟁관계에 있는 여덟 문파로 다른 세력의 무공에 대해서 비교적 상세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수여설이 새외귀막의 무공을 알고 있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 사토잠행술?” ”

“ 모래 속에서 평지처럼 움직이는 신법이에요.”

“ 지둔술의 일종인가요?”

“ 네.”

“ 그럼 사풍무영댄가 하는 놈들은 모래 속에 숨어 있겠군요.”

“ 일부는 곧 모습을 드러낼 거예요.”

“ 일부?”

“ 사풍무영대의 최고 무공은 사풍은잠비라는 신법을 바탕으로 펼치는 용권폭풍사진이에요. 용권폭풍사진은 외부에서 펼치는 공격진식이고요.”

“ 혈도부대와 비교하면 누가 강하죠?”

“ 어느 쪽이 강하다고 할 순 없어요. 다만 혈도부대는 중원 무인들을 상대하기 위한 조직이고 사풍무영대는 새외귀막을 방어하기 위한 조직이라는 차이점이 있어요.”

“ 모래 귀신이라는 말이군요.”

“ 팔황새에 속한 각 조직 중 사막에서는 그들을 따를 자가 없다고 알려져 있어요.”

“ 그럼 우린 위기에 처한 셈이네요?”

“ 그런 것 같아요.”

“ 그런데.....”

연우강은 수여설을 빤히 쳐다보았다.

“ 제 얼굴에 뭐 묻었어요?”

연우강의 시선이 부담스러운 듯 수여설은 얼굴을 붉혔다.

“ 위기라면서 걱정하는 기색이 전혀 없잖아요.”

“ 저도 지금 그 이유를 생각 중이에요.”

수여설은 배시시 웃었다. 그녀는 이곳에 있는 누구보다 사풍무영대를 잘 안다고 할 수 있다.

일천 명으로 구성돼 있고, 개개인의 능력은 혈도부대 무인들보다 떨어지지만, 모래를 만나면 그들은 천하무적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 자들이 눈앞에 나타났는데 전혀 두렵지가 않았다.

스스로 생각해도 놀라운 변화였다.

“ 생각나면 나중에 말해줘야 합니다.”

연우강은 싱긋 웃으며 낙타에서 내렸다.

그러고는 낙타의 엉덩이를 후려쳐 일행이 있는 곳에서 벗어나게 했다. 연우강이 낙타를 보내자 다른 잠룡들 또한 일제히 낙타에서 내려 녀석들의 엉덩이를 후려쳤다.

“ 녹주로 가네요?”

낙타들이 일제히 녹주로 향해 달려가자 남궁운화는 신기한 듯 말했다.

“ 낙타는 물이 있는 곳을 본능적으로 알아내는 동물입니다. 당연히 녹주로 갈 수밖에 없죠.”

“ 사풍무영댄가 하는 자들이 없애진 않을까요?”

목이 잘린 채 쓰러져 있는 낙타를 보며 물었다.

“ 사막 부족들이 낙타를 죽이는 경우는 두 가집니다. 하나는 늙어 더는 이동수단으로 이용할 수 없을 때 죽여 식량으로 쓰고, 다른 하나는 죽어 가는 낙타의 고통을 덜어주려고 죽이는 경우입니다. 그 외에는 낙타를 죽이는 경우가 극히 드뭅니다.”

“ 그럼 이동 수단을 잃어버릴 염려는 없겠네요.”

남궁운화는 안도한 얼굴로 말했다.

“ 그건 놈들의 공격을 막아냈을 때 이야기죠. 진형을 구축하라!”

연우강은 주변을 향해 나직이 소리쳤다.

스스스! 스스스!

연우강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사방에서 모래가 쓸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마치 사구의 모래가 바람에 쓸려 내려갈 때 들려오는 소리 같았다.

“ 응?”

“ 어?”

잠룡들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주변 모레가 마치 물처럼 서서히 움직이는 것이었다.

휘이익!

그리고 강한 바람 소리가 들려오며 모래들이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 삼십 명에서 오십 명이 한 조가 돼 펼치는 용권폭풍사진이에요.”

수여설이 긴장한 얼굴로 소리쳤다.

휘이익! 스아악! 스아악!

모래 스치는 소리가 들려오며 허공으로 솟구친 모래가 원을 그리며 회전하면서 커다란 용권풍 형태의 모래 기둥으로 변해갔다. 어느새 십 장 높이까지 커진 모래 폭풍은 차가운 사막 기온보다 더 차가운 살기를 사방으로 쏟아냈다.

“ 엄청나군.”

잠룡들은 저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었다.

열다섯 개의 기둥에서 뿜어져 나온 기운은 주변을 바람과 모래 천지로 만들어 놓았다. 용권폭풍사진이란 말의 의미가 비로소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잠룡들은 일제히 내기를 끌어올려 얼굴 앞으로 막을 쳐 날아오는 모래 바람을 막았다.

휘이익! 싸아아!

쓰쓰쓰! 쓰쓰쓰!

바로 그 순간 맹렬하게 회전하고 있던 모래 기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천히 움직이는 듯하던 모래 기둥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주변 삼십여 장이 전부 모래 폭풍의 영향권 안으로 들어갔다.

창! 창창창! 창창!

잠룡들은 일제히 무기를 뽑아들고 전열을 가다듬었다.

“ 모래 기둥 안에는 최소 삼십 명에서 오십 명의 모래 귀신들이 있다는 걸 명심해라!”

연우강은 모래 기둥 하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가며 소리쳤다.

슈아악!

이 장 정도 이동했을 즈음, 느닷없이 발 아래쪽 모래가 벌떡 일어나면서 차가운 기운이 하체를 향해 쏘아져 왔다. 차가운 미소를 머금은 연우강은 왼손을 쭉 내밀었다. 그의 왼손 약지에 있던 사망지환에서 검은 광채가 쭉 튀어나갔다. 사망지환으로 펼치는 일지소였다.

해골 문양의 암기에 당한 사내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절명했다. 연우강은 마라천력으로 사내를 들어올렸다.

사내는 물고기 비늘을 붙인 듯한 특수한 옷을 걸치고 머리에는 위쪽이 뾰족하게 솟은 투구를 쓰고 있었다.

모래 속에서 빠르게 움직이기 위해 고안된 특수한 옷인 모양이었다. 잠시 사내가 걸친 옷을 살피던 연우강은 모래 기둥을 향해 시체를 사정없이 내던졌다.

촤르르!

시체가 모래 기둥으로 절반 정도 파고들어 간 순간, 섬뜩한 소성과 함께 피와 살점이 사방으로 튀었다.

“ 맙소사!”

한순간에 시체를 어육으로 만들어버리는 진식의 가공함에 잠룡들은 신음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들의 놀라움은 시작에 불과했다. 십 장 높이에 달하던 모래기둥이 풀썩 쓰러져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다시 새로운 장소에서 모래기둥이 나타나고 있었다.

스아악!

모래기둥은 강한 바람을 뿜어내며 일행을 향해 다가왔다. 다가오는 속도 또한 무인이 경공을 펼치는 것처럼 상당히 빨랐다.

“ 타앗!”

“ 차앗!”

“ 이야압!”

잠룡들은 일제히 고함을 내지르며 모래기둥을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하지만 잠룡들의 무기는 모래기둥의 가장자리만 베어냈을 뿐, 효과를 전혀 보지 못했다.

“ 모래 폭풍에 휘말리지 않도록 거리를 유지해라! 모래 속에 숨어 있는 자들을 조심하라!”

연우강은 고함을 내지르며 모래 기둥을 세어 나갔다.

열다섯 개였던 모래 기둥의 수가 어느새 열일곱 개로 늘어나 있었다. 그 모래 기둥들 사이로 잠룡들과 노인네들이 빠르게 움직여 다녔다.

“ 타앗!”

바로 그 순간, 우렁찬 함성이 들려왔다.

연우강은 고개를 돌렸다. 황금빛 광채를 뿌려대는 봉황 한 마리가 허공으로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황금빛 봉황 모습을 한 채 날아오르고 있는 그는 용황신공을 극성으로 끌어올린 이자승이었다.

“ 차앗!”

이자승의 입에서 두 번째 외침이 터져나오고 봉황이 날갯짓을 하는 것처럼 그의 양손이 힘차게 뿌려졌다. 그의 손끝에서 쏟아져 나온 황금빛 광채는 곧 거대한 용 모습으로 변했다. 용황신공을 바탕으로 펼치는 황룡파천신권의 일 초인 파천룡이었다.

꾸어억!

마치 포효하는 것처럼 입을 쩍 벌린 금용은 가공할 기세를 머금고 모래 기둥을 향해 돌진해갔다.

쓰아악!

금용이 다가오는 것을 감지한 듯 갑자기 모래 기둥이 회전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거칠어졌다.

하지만 이자승은 한때 황궐의 궐주를 역임했던 사람이 아닌가. 모래 기둥의 방어막으로 파천룡을 막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콰콰쾅! 쾅쾅!

“ 크아악!”

“ 아악!”

“ 으아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어육으로 변한 시체 십여 구가 튀어나왔다.

풀썩!

십 장 높이로 솟구쳐 있던 모래 기둥이 한순간에 허물어졌다. 그리고 바닥으로 떨어졌던 시체들도 곧 모래 속으로 끌려들어 갔다.

“ 이러다 지쳐 죽겠다, 이놈아.”

아래로 내려선 이자승은 연우강을 보며 소리쳤다.

전력을 다한 상태가 아니라고 하지만 방금 공격으로 잡아낸 적의 수가 기껏 열 명에 불과하다면 잠룡들에게는 크게 기대할 수도 없을 것 같았다. 결국 자신을 비롯한 욱일승 일행이 처리해야 하는데 공격하다가 지쳐버리는 사태가 올 건 불 보듯 뻔했다.

[ 놈들은 앞을 보지 못합니다, 영감님.]

연우강은 전음으로 말했다.

[ 방금 내 공격을 방어해 냈다. ]

[ 그건 놈들이 앞을 볼 수 있어서가 아니라 모래 속에 숨어 있는 자들이 알려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 정말이냐?]

[ 조금 전에 시체를 던질 때 보지 않았습니까. 모래 ㄱ둥은 기둥 자체가 분쇄깁니다.]

[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

[ 놈들을 유인해서 서로 부딪치게 해야 합니다.]

[ 모래 속에 숨어 있는 놈들이 알려준다고 하지 않았느냐?]

[ 모래 속에 숨어 있는 놈들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면서 부딪치게 만들어야죠.]

[ 그것보다는 네가 한꺼번에 쓸어버리는 건 어떠냐?]

전에 커다란 나무 한 그루를 통째 없애버린 무공을 보았기 때문에 하는 말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겐 힘들지 몰라도 백여 개 이상의 암기를 온몸에 장착하고 있는 연우강에게는 진식 하나를 없애는 건 일도 아니었다.

[놈들이 모래 속으로 숨어버리면 그땐 더 힘들어집니다. 영감님.]

[ 그렇구나. 아무튼 준비하마!]

고개를 끄덕인 이자승은 욱일승에게 전음을 보냈다.

그가 전음을 보내는 사이에 연우강도 각 군장들에게 전음을 보내 작전을 알렸다.

“ 차앗!”

“ 타앗!”

“ 이야합!”

갑자기 잠룡들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그들은 좌우로 정신없이 움직여 다니며 모래 속에 있는 자들을 현혹했다. 잠룡들이 모래 속에 있는 자들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사이에 노인네들은 네 조로 나뉘어 모래 기둥을 향해 공격을 시작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모래 기둥이 노인들을 향해 빠르게 나아갔다.

[ 간다, 연우강.]

[ 그곳으로 가겠네. 연 공자.]

[ 지금 간다.]

[ 가네.]

이자승, 욱일승, 두작군, 수천월의 전음이 연이어 들려왔다. 연우강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의 옆에는 수여설과 남궁운화가 이끄는 우군과 좌군이 명령을 기다리며 서 있었다.

연우강은 그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연우강이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우군과 후군 잠룡들은 바닥을 향해 암경을 쏟아 넣기 시작했다.

“ 난 외부에서 지시하는 놈을 잡아야지.”

연우강은 허리춤에서 사마혈궁을 꺼내 시위를 당기고는 눈을 감았다. 연우강이 찾고 있는 찰합리는 오십 장 떨어져 있는 사구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그는 사구에 머리만 내놓고 있는 상태였다.

‘ 흐흐흐! 우릴 혈도부대로 알았다면 오산이다, 놈들! 혈도부대는 우리 발끝도 따라오지 못한다.’

전면을 쳐다보며 차갑게 웃었다.

툭!

바로 그때 그의 눈앞으로 손가락 길이의 뭔가가 툭 떨어져 내렸다. 밝은 광채를 뿌려대고 있는 그것은 꼬리에 날카로운 침을 가진 전갈이었다.

‘ 훅!’

찰합리는 전갈을 쫓으려고 입김을 불었다. 하지만 전갈은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 상관없겠지......’

[ 전갈은 먹이를 찾아 밤을 헤매는 곤충이나, 놈!]

쿠아앙!

차가운 전음과 함께 모래 바닥이 들썩일 정도로 엄청난 굉음이 찰합리의 귓전을 강타했다.

“ 헉!”

찰합리는 질겁하여 급하게 모래 속으로 파고들어갔다. 하지만 그의 움직임보다 사망혈궁에서 쏘아진 내기의 화살이 더 빨랐다. 순식간에 허공을 단축한 내기의 화살은 막 모래 속으로 모습을 감추고 있는 찰합리의 이마를 뚫었다.

“ 크아악!”

쓰쓰쓰! 촤르르!

죽어 가는 순간에 찰합리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모래 기둥 네 개가 하나로 합쳐지는 광경이었다. 그리고 연이은 비명이 장송곡처럼 그의 마지막 길을 전송했다.

“ 어떻게 찾아낸 거죠?”

모래 기둥 네 개를 없애고 난 수여설은 연우강 곁으로 다가가며 물었다. 그녀가 놀란 이유는 사구 쪽에서 돌려온 비명 때문이었다.

자신들이 있는 이곳은 모래 기둥에서 불어 나오는 바람 소리 때문에 아무것도 들을 수 없는 상태다. 그런데 연우강은 오십여 장이나 떨어진 곳에 있는 적의 수장을 정확하게 찾아내 없애버린 것이었다.

“ 전갈의 껍질은 달밤에 광채를 냅니다.”

“ 그럼 저기 반딧불처럼 보이는 저것이 전갈이란 말이에요?”

“ 그렇습니다. 전갈은 야행성인데 밤에는 먹이를 찾아 움직입니다. 녀석이 움직이지 않고 한 자리에 머물고 있다는 건 그 주변에 살아 숨쉬는 생명체가 있다는 뜻이 됩니다.”

“ 그곳을 향해 감각만 집중하면 된다는 말이군요?”

“ 그렇습니다.”

“ 당신은.....”

수여설은 감탄했다.

달밤에 전갈이 빛을 낸다는 사실도 처음 듣지만 움직이지 않는 상태만으로 전갈 앞에 뭔가가 있다는 사실을 유추해내는 연우강의 머린느 더욱 놀랍다.

“ 사막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수 소저. 전갈의 습성 정도는 굳이 익히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되는 곳이 사막입니다.”

“ 말은 참 쉽네요.”

“ 아무튼 이번에 끝장내야 합니다. 수 소저. 놈들을 속이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 저분들도 끝장낼 생각인 모양인데요, 뭘.”

수여설은 남아 있는 모래 기둥 전부를 향해 공격을 퍼붓고 있는 노인들을 가리켰다. 곧 열한 개 남은 모래 기둥 전부가 노인들을 쫓아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수여설은 잠룡들이 있는 곳을 향해 몸을 날려갔다.

곧이어 완벽해진 빙하빙백강이 모래 속으로 쏘아져 들어갔다. 그녀 주변이 새하얗게 변하고, 냉기가 사방으로 몰아쳤다. 그리고 열한 개에 달하는 모래 기둥이 서서로 하나로 합쳐지고 있었다. 처절한 비명과 함께 피와 살점이 비처럼 떨어져 내렸다.

본인들이 하고도 믿어지지 않는 듯 노인네들과 잠룡들은 멍한 얼굴로 스러지는 모래기둥을 쳐다보았다.

“ 뭐든지 맹신하면 저렇게 된다. 놈들이 우리에게 패한 것은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진식에 대한 맹신 때문이었다는 걸 명심하라.”

“ 알겠습니다. 광랑!”

퍼뜩 정신을 차린 잠룡들은 연우강을 보며 고함을 내질렀다.

“ 모래 속에 있는 자들은 어떻게 할까요?”

이철상은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 모래 속에 숨은 놈을 어떻게 잡아. 놈들은 그냥 놔두고 가서 씻고 식사 준비나 해.”

“ 알겠습니다. 광랑!”

씻으라는 말에 입이 헤벌쭉 벌어진 잠룡들은 녹주를 향해 몸을 날려갔다. 녹주에 발을 디딘 잠룡들은 앞뒤 가릴 것 없이 물로 뛰어들었다. 이십여 일 동안 마시는 물을 제외하면 물 구경을 전혀 하지 못했던 그들에게 녹주의 물은 최고의 선물이었다.

잠룡들은 물장구를 쳐대며 오랜만에 만난 물을 마음껏 즐겼다.

“ 두 분은 저 위쪽으로 올라가세요.”

뒤따라온 연우강은 수여설과 남궁운화를 보며 말했다. 호수는 눈썹 형태로 생겨 위쪽으로 올라면 사내들의 시선을 피하여 목욕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우리 둘만 가라고요?”

남궁운화가 눈을 치뜨며 연우강을 보았다.

“ 등이라도 밀어줘요?”

“ 등이 문제가  아닐 모래 속에 숨어 있는 사풍무영대가 문제잖아요.”

“ 그놈들은 이미 도망갔습니다. 남궁 소저.”

“ 그걸 연공자가 어떻게 알아요?”

“ 남아 있을 리가 없잖아요.”

“ 아무튼 지켜줘요.”

“ 묙욕하는 걸 지켜봐 달라고요?”

연우강은 황당한 얼굴을 했다.

“ 우릴 지켜보지 말고 사풍무영대가 나타나는지 그걸 지켜보라는 거잖아요.”

“ 저보단 영감님들이 더 낫지 않나요?”

“ 기루를 밥먹듯 들락거렸다는 분에게 지켜달라고 부탁하라고요?”

“ 그건 젊었을 때의 일입니다.”

“ 할머니 말씀이 남자는 나이와 상관없이 전부 짐승이라고 했어요.”

“ 그럼 전 뭡니까?”

“ 연 공자께서는 책짐지라고 할 수 있잖아요. 언니, 가요.”

혀를 쑥 내민 남궁운화는 수여설의 손을 잡고 호수 위쪽으로 몸을 날려갔다.

“ 이미 봤다고 말하면 진짜 책임지라고 덤비겠네.”

연우강은 움찔 떠는 시늉을 하고는 두작군 일행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두작군은 궤짝ㅇ르 내려놓고 다른 일행과 함께 호수로 뛰어든 후였다.

연우강은 궤짝을 걸머지고 남궁운화와 수여설이 간 곳으로 향했다. 십여 장 길이의 호수는 끝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무들이 우거져 있었다.

“ 호호호!”

“ 하하하!”

“ 너무 급한 거 아닙니까?”

연우강은 빙그레 웃으며 호수 가장자리로 다가갔다. 두 사람은 물속에 몸을 담근 채 머리만 내놓고 있었다.

“ 가까이 오지 말아요, 연 공자.”

남궁운화가 깜짝 놀란 듯한 얼굴로 소리쳤다.

“ 걱정 마세요. 보라고 해도 안 볼 테니까.”

“ 정말?”

“ 그렇다니까요.”

“ 좋아요, 어디 한 번 시험해 보고요, 언니.”

눈빛을 교환한 남궁운화와 수여설은 벌떡 몸을 일으켜 세웠다.

“ 억!”

연우강은 깜짝 놀라 눈을 질끈 감았다.

“ 하하하!”

“ 호호호! 연 공자도 놀라긴 하네요.”

둘은 배를 잡고 깔깔댔다.

“ 끄응! 당했네.”

연우강은 얼굴을 찌푸렸다. 남궁운화와 수여설은 옷을 입은 채였던 것이다.

“ 아쉬워요?”

남궁운화는 연우강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 아쉽지 않은데 어떡하죠?”

“ 남을 속이는 것보다 더 나쁜 게 자신을 속이는 거라고 할머니가 그랬어요, 연 공자.”

“ 그럼 계속 보고 있을까요?”

“ 그건 안 돼요. 옷이나 꺼내 주세요.”

“ 알았습니다.”

궤짝을 열고 보자기 두 개를 꺼내 놓은 연우강은 호수 끝으로 자리를 옮겨 두 사람에게 등을 보인 채 앉았다. 그는 발끝으로 바닥을 툭툭 찼다.

모래가 섞인 흙이 파헤쳐지자 연우강은 마라천력을 이용하여 흙더미를 들어 올렸다.

“ 흙은 더 쉬우려나?”

그는 모래흙을 검 모양으로 만들면서 서서히 내기를 주입해 보았다. 하지만 흙을 내기와 반죽하는 것은 물보다 더 어려웠다. 흙은 서로 간의 점성이 거의 없어, 물보다 더 쉽게 부스러져 버린다. 몇 번을 더 시도해보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사실 흙을 내기와 반죽하여 무기를 만들어낸다고 해도 문제였다. 대기 중에서 사용하려면 굳이 흙으로 검을 만들 이유가 없다. 내기와 대기를 반죽하여 만든 풍뢰면 충분하다.

“ 너무 단단해서 불가능하다는 건데... 결국 흙이 아니라 힘을 전달하는 수밖에 없는 건가.”

연우강은 손바닥으로 바닥을 슬쩍 쳤다.

쿠웅!

땅속 깊은 곳에서 나직한 소리가 들려온다.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바닥을 쳤다. 땅이 울리는 소리가 이번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들려왔다.

“ 이것도 나쁘지 않네!”

그는 빙그레 웃으며 계속해서 바닥을 쳤다.

바닥을 치면서 마라천력을 끌어올려 암경이 나아가는 방향을 조정했다. 땅속 깊은 곳에서 들려오던 소리는 점점 가까운 곳에서 들려오기 시작하였고, 어느 순간 지면이 약간씩 들썩였다.

연우강의 얼굴에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그는 내리치던 손에 약간의 내기를 가했다.

퍼억!

손바닥이 바닥으로 푹 박혀들어갔다. 연우강은 손바닥을 떼고 숫자를 셌다.

“ 하나, 둘, 셋!”

푸아악!

셋이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십 장 떨어진 모래밭에서 고래가 물을 뿜어 올릴 때처럼 모래가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

“ 뭐, 무예요?”

느닷없이 모래가 솟구쳐 오르자 목욕을 하고 있던 남궁운화와 수여설은 물 속에서 뛰쳐나왔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고 허공으로 솟구쳐 오르는 모래를 사풍무영대로 착각한 것이었다.

그녀들은 자신들이 목욕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잊을 정도로 놀랐다.

“ 실험을 좀 했습니다.”

연우강은 돌아앉으며 말했다.

남궁운화와 수여설이 아직 물속에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나신으로 서 있는 여체가 눈 안 가득 들어왔다.

‘ 아무래도 삼층에 정자를 만들어야겠네.’

날씨가 따뜻할 때는 달빛이 환하게 비쳐 드는 그런 곳에서 잠을 자야겠다고 연우강은 결심했다.

그만큼 두 여인의 몸매는 눈을 떼기 힘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 무슨 실험을 했다는 거죠?”

“ 실험을 했다고요?”

자신들의 알몸이 속속들이 관찰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직 깨닫지 못한 수여설과 남궁운화는 여전히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며 물었다.

“ 그러니까 그게 말입니다. 이걸 탁 치면.....”

연우강은 두 사람의 몸에 시선을 꽂은 채 느릿하게 조금 전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 격산타우 수법으로 십 장이나 떨어진 곳을 공격했단 말인가요?”

묻는 수여설뿐만 아니라 남궁운화도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격산타우 수법은 벽 뒤편에 숨어 있는 자들을 공껴하는 데 쓰이곤 한다. 하지만 상대가 벽에서 떨어져 있으면 무용지물로 변하는 단점 때문에 흔하게 쓰이는 공격 무공이 아니다. 그런데 연우강은 땅을 이용하여 격산타우의 무공을 펼치고 있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 그렇습니다. 수 소저, 보여 드려요?”

“ 네.”

수여설은 고개를 끄덕였다.

“ 보십시오.”

연우강은 싱긋 웃으며 오른손을 살짝 후려쳤다.

퍼억!

낮은 소리가 흘러나오고 수여설과 남궁운화 발치에서 풀썩 하는 소리와 함께 뿌연 먼지가 피어올랐다.

“ 놀랍군.....”

발치를 내려다보았던 수여설의 몸이 돌처럼 굳었다.

뿌연 흙먼지와 함께 미끈한 다리가 보였다. 그게 전부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녀의 시선은 다리를 더듬어 올라왔다. 새하얀 허벅지와 그리고 가슴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다.

꿈이 아니라면 나신으로 이렇게 서 있을 리가 없을 터였다. 그것도 사내 앞에.

그녀는 손을 들어 볼을 쥐어뜯으며 고개를 돌렸다.

마침 남궁운화도 이편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던 모양인 듯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따. 남궁운화 또한 꿈인지 생시인지 확인하려는 듯 볼을 쥐고 있었다.

둘은 서로를 쳐다보며 힘껏 볼을 꼬집었다.

“ 꺄아악!”

“ 꺄악!”

수여서로가 남궁운화는 째지는 듯한 비명을 내지르며 그대로 호수를 향해 몸을 날렸다.

“ 무슨 일인가?”

“ 무슨 일이냐?”

느닷없는 비명에 욱일승이 있는 곳에서 노인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별일 아니오, 뱀이 나타난 걸로 호들갑을 떤 모양이오.”

연우강은 얼른 변명을 했다.

“ 클! 뱀들도 미인을 알아보는 모양이네.”

[ 죽여버릴 거예요, 연 공자. ]

[ 엉큼해요, 연 공자.]

남궁운화와 수여설은 머리만 내놓은 채로 연우강을 쏘아보았다.

“ 전 무공을 창안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연우강은 피식 웃으며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다시 오르손을 번쩍 들어올려 바닥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퍼억!

조금 전보다 더 강한 소릭 흘러나왔다.

연우강은 내심 숫자를 세었다. 다섯까지 세었을 때 십오 장 건너편에서 커다란 모래 기둥이 솟아올랐다.

좀더 강하게 마라천력을 끌어올린 결과였다.

두 사람은 연우강을 흘끔흘끔 쳐다보며 서둘러 목욕을 마쳤다. 목욕을 마치고는 쫓기듯 옷을 걸쳤다.

[ 언니, 어디 가요? ]

옷을 갈아입은 수여설이 연우강에게로 가려고 하자 남궁운화가 질겁한 얼굴로 물었다.

[ 방금 그 무공이 궁금하지 않아요?]

[ 아무리 궁금해도 그렇죠. 우린 방금 연 공자 앞에서 발가벗고 서 있었다고요.]

[ 이 자리를 피하면 달라져요?]

[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그래두......]

[ 지금 자리를 피하면 더 어색해져요. 남궁 가주.]

수여설은 남궁운화의 손을 잡고는 연우강 뒤편으로 걸어갔다.

“ 이럴 땐 얼굴을 가리고 도망가야 하는 거 아닌가요?”

연우강은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 그런다고 상황이 달라지는 건 아니잖아요. 그보다 어떻게 하는 거죠?”

태연하게 말을 하고는 있지만 부끄럽지 않은 건 아니었다. 수여설이 조금 전 무공으로 화제를 돌렸다.

“ 마라천력을 이용한 무공입니다.”

“ 그럼 우리가 배우는 건 불가능하다는 말이네요?”

실망한 탓에 목소리에서 힘이 빠졌다.

“ 사람은 다 가질 수는 없는 겁니다. 수소저.”

“ 제가 뭘 가졌다는 거죠?”

“ 신이 내린 몸매를 가졌지 않았습니까.”

연우강은 활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궤짝을 걸머졌다.

“ 흥! 복수할 거예요, 연 공자.”

수여설은 잔뜩 붉어진 얼굴로 연우강을 쏘아보았다.

“ 복수를 어떻게 할 건데요?”

연우강은 놀리듯 말하며 두작군 일행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 두고 보면 알아요.”

수여설은 빙그렝 웃으며 연우강을 따랐다.

두고 보면 안다고 했던 수여설의 말은 연우강이 목욕을 하려고 호수로 들어갔을 때 알 수 있었다.

“ 호호호! 지금부터 복수의 시간이에요, 연 공자.”

수여설은 호수 안으로 손을 집어넣더니 전 내공을 끌어올려 빙하빙백강을 펼쳤다.

쩌엉!

빙하빙백강이 펼쳐지자마자 호수는 바닥까지 꽁꽁 얼어버렸다.

“ 하하하! 제게 비장의 한 수가 있다는 걸 잊은 모양입니다, 수 소저.”

연우강은 혈잔수를 끌어올렸다.

그러자 연우강 주변 얼음이 녹았을 뿐만 아니라 뿌연 수증기까지 솟구쳐 오르는 것이었다.

“ 둘 다 괴물이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일행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십여 장에 달하는 호수를 바닥까지 얼려버리는 수여설의 빙공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얼음을 녹여 유유히 목욕을 하는 연우강을 보고 있자니 인간이 아닌 것 같았다.

“ 칫!”

수여설은 연우강을 보며 씨근덕댔다.

그로부터 백옥수를 전수 받았다는 사실을 깜빡한 것이었다. 백옥수를 익혔다면 혈잔수는 당연히 익혔을 텐데 공연한 짓을 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계속 손을 물 속에 담근 채 빙하빙백강을 펼쳤다.

문득 자신의 경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연우강으로부터 백옥수를 전수 받아 익히긴 했지만 자신의 경지가 어느 정도인지는 아직 알지 못한다.

연우강이 혈잔수를 펼치는 지금이 무공 정도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 이제 어떻게 할 거죠?”

그녀는 전 내공을 끌어올려 빙하빙백강을 펼쳤다.

“ 기다리면 됩니다.”

연우강 또한 다르지 않았다. 그는 목욕을 하면서 혈잔수를 펼치며 급속하게 얼어 가는 물을 녹였다.

“ 기다려요!”

쩌엉!

그녀의 손이 백색으로 변하면서 얼었던 얼음이 더욱 단단해졌다.

“ 맙소사, 저건?”

흥미로운 얼굴로 연우강과 수여설의 대결을 지켜보던 수천월은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전력을 다해 빙하빙백강을 펼치면 펼치는 자의 머리카락이 새하얗게 변하는 것은 물론, 차가운 냉기가 몰아쳐 접근할 수가 없다.

그런데 지금 수여설은 전력을 다해 빙하빙백강을 펼치고 있는데, 몸에서는 아무런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것은 곧 빙하빙백강의 부작용을 완벽하게 극복했다는 의미고, 빙하빙백강의 부작용은 빙공의 끝이라는 빙허에 올라야만 극복할 수 있다.

“ 설마.......”

그는 멍한 얼굴로 수여설을 보았다.

“ 마중 나올 사람이 있다는 말입니다.”

“ 누가 마중을 나온다는 거죠?”

여전히 연우강은 얼음을 녹이고, 수여설은 빙하빙백강으로 물을 녹이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 저건 빙허야!”

수천월은 경악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북해빙궁 무인들의 꿈이었던 빙허의 경지.

영원히 그 경지를 보지 못할 거라고 여겼는데, 놀랍게도 수여설의 몸에서 빙허의 경지를 보게 된 것이다.

“ 빙허라면 빙공의 마지막 경지를 말하는 거냐?”

흥미로운 얼굴로 연우강과 수여설의 대결을 보고 있던 이자승이 물었다.

“ 맞다, 자승. 저 아이의 경지가 어느새 빙허에 도달한 모양이다.”

경악은 어느새 기쁨으로, 아니 감격으로 변했다.

빙하빙백강의 창안자인 빙하여제마저도 오르지 못했던 빙허의 경지. 그 경지를 눈으로 직접 보고 있으니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전에 봤을 땐 저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이자승은 고개를 갸웃했다.

수여설이 구림세가에서 빙하빙백강을 펼치는 광경을 보았다. 그런데 그때와 지금은 천양지차다.

“ 저렇게 변하려면 기연을 얻어야 하는 거 아냐?”

이자승은 욱일승을 돌아보며 물었다.

“ 백옥수가 있으면 빙허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더라.”

이자승의 물음에 대답한 사람은 욱일승이었다. 수천월과 오랜 세월 함께 했던 욱일승은 빙하빙백강의 약점은 물론이고 보완 방법까지도 알고 있었다.

“ 일승이 말이 맞는 거냐?”

“ 맞아. 빙하빙백강을 완벽하게 해주는 유일한 무공이 백옥수였어.”

“ 백옥수가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진 않았을 테고, 그럼 저 녀석이네?”

이자승은 연우강을 턱으로 가리켰다.

“ 류사은입니다.”

그때 연우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그럼 연 공자가 펼치는 무공은 혈잔수겠네?”

욱일승이 이자승의 말을 받았다.

“ 그럼 천마삼경의 주인이 저 녀석이었다는 말이냐?”

더 이상 놀랍지도 않았다.

알면 알수록 더 모르는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연우강인 탓이다. 그는 조용히 연우강과 수여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 류사은?”

수여설은 고개를 갸웃했다.

어쩐지 귀에 익은 이름이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귀에만 익을 뿐 정확하게 누구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 군에서 같이 근무했던 친구에요, 언니.”

수여설 옆에 있던 남궁운화가 속삭이듯 말했다.

“ 그 친구라는 분이 북천지옥부에 있다는 거예요?”

고개를 갸웃하던 수여설이 남궁운화를 보며 물었다.

“ 그건 저도 몰라요, 다만 연 공자가 군대 이야기를 할 때마다 류사은이란 사람은 빠지지 않고 등장해요.”

“ 그런 인물은 보통 가공의 인물이기가 쉬운데.”

“ 가공의 인물은 아닐 거예요. 연 공자에게 십뢰를 줬던 분이라고 했으니까요.”

“ 맞아요?”

수여설은 다시 연우강을 보았다.

“ 그렇습니다. 녀석은 가공의 인물이 아니라 실존인물입니다.”

“ 북천지옥부에서 직책이 어떻게 되죠?”

“ 본명이 야율사은입니다.”

“ 야, 야율사은이라고요?”

수여설은 비명처럼 소리를 질렀다.  < 황금백수 8권 끝>

황금백수 9권     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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