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백수-85화 (85/232)

제 2장 완벽한 무기

성벽 위에서 잠룡 십조를 쳐다보고 있는 자들은 전부 여덟 명으로 팔황새의 수뇌들이었다. 그들이 이곳으로 나온 것은 순전히 흥미 때문이다.

지금껏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대야벌을 떠난 열 개 조 중 가장 많은 사건을 일으킨 조가 바로 잠룡 십 조다.

그러면서도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이곳까지 왔다는 것은 가장 강한 조라는 반증이기도 했다.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 저기 녹색 옷을 입고 있는 처자가 따님입니까?”

일행 중 가장 키가 큰 사내가 북빙후 수나인을 돌아보며 말을 건넸다. 대도를 어깨에 메고 있는 이 중년 사내는 막북혈마성의 성주 대혈마 북청강이었다.

“ 그렇습니다. 성주.”

수나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 허허! 대단한 따님을 두셨습니다. 궁주.”

이번엔 약간 왜소한 사내가 웃으며 말했다. 날카로운 눈매를 번뜩이고 있는 그는 남만 독존궁의 궁주 만독존자 당갈이었다.

“ 저 아이는 원래 무능한 아이였습니다. 궁주. 내가 둘째인 수정에게 모든 걸 넘겨준 이유가 그 때문입니다.”

“ 그랬군요.”

당갈은 찔끔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공연히 물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비꼬려는 생각은 전혀 없었고, 순수한 마음으로 한 말이다.

실제로 잠룡들에게 둘러싸인 채 이편을 향해 오고 있는 수여설과 남궁운화는 튀어 보인다. 그래서 인사 겸 말을 건넸는데, 수여설이 무능한 아이라는 엉뚱한 대답이 들려온 것이다.

북해빙궁의 궁주인 수나인과 장녀 수여설과의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하였던 소문의 실체를 비로소 알 듯했다.

“ 하하하! 저렇게 빛이 나는 따님이 무능하다고 하면 우리 자식들은 어쩌란 말입니까, 수 궁주.”

싸늘한 수나인의 어투로 분위기가 어색해진 듯하자 북청강은 분위기를 바꾸려고 일부러 크게 웃었다. 하지만 웃는 얼굴과는 달리 그의 눈빛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지금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수여설이 아니라 연우강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오고 있는 야율사은이었다.

‘ 우릴 불러들인 의도가 뭐냐, 야율사은.’

그는 내심 중얼거렸다.

야율사은으로부터 온 초대장을 받은 건 대야벌 잠룡들이 혈마성을 정벌하기 위해 출병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준비를 하던 중이다.

사실 느닷없이 날아든 초대장으로 고민을 많이 했다.

굳이 대야벌이 잠룡들의 공격 시기에 맞춰 초대장을 보낸 야율사은의 행태에 욕도 했다. 그러다 문득 단순한 초대장이 아니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초대장의 형식을 취했을 뿐, 야율사은의 진짜 목적은 혈마성의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 그걸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혈마성으로 쳐들어오는 자들은 대야벌의 정예가 아닌 잠룡들. 그들의 공격이 두려워 성을 비우지 못한다는 것은 나약함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되고 만다.

그런 자가 황천의 천주가 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마도 다른 자들 또한 그런 이유 때문에 이곳으로 왔을 것이다. 이제 서른도 안 되는 녀석에게 뒤통수를 호되게 맞은 셈이었다.

‘ 하지만 이번엔 누가 황천의 천주가 될 건지 결정을 내려야 한다, 야율사은. 이대로는 절대 돌아가지 않을 거다.’

북청강은 다가오는 야율사은을 보며 주먹을 지그시 말아쥐었따. 야율사은이 성안으로 들어오자 북청강을 비롯한 여덟 명은 아래로 내려왔다.

가장 먼저 내려간 자는 천외흑막의 막주 흑사귀랑 단극효였다.

“ 이쪽은 천외흑막 막주 단극효 대협으로 별호는 흑사귀랑이다.”

야율사은은 곱사 등을 한 노인을 소개했다.

“ 반갑소, 막주. 난 연우강이오.”

연우강은 단극효를 향해 포권을 취했다.

“ 반갑네. 연 공자. 오느라고 고생했네.”

단극효는 연우강을 빤히 쳐다보고는 포권을 취했다.

“ 그리고 그 뒤에 있는 분은 새외귀막의 막주인 혈사귀랑 단리효 대협이다. 조금 전 소개했던 단 막주의 친동생이다.”

“ 접대 잘 받았소, 막주.”

연우강은 단리효를 빤히 쳐다보며 인사만 했을 뿐 포권을 취하지 않았다.

“ 이 자를 내게 소개시켜 주는 이유가 뭐요, 부주.”

단리효의 몸에서 차가운 살기가 쏟아져 나왔다.

“ 무덤에 비석이라도 세워주려면 이름을 알아야 하잖아. 그래서 인사를 하는 거니까 너무 고깝게 생각지 말아.”

대답은 연우강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 죽일 놈!”

“ 참는 게 좋아, 단리효.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는데 피를 보는 걸로 시작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

“ 정녕 죽고 싶은 모양이구나 놈!”

단리효는 검 손잡이를 잡아가며 으르렁댔다.

“ 하하하! 단 막주, 지금은 참아주시오. 굳이 사풍무영대가 전멸당한 걸 자랑할 필요는 없잖소.”

야율사은은 교묘한 말장난으로 새외귀막의 사풍무영대가 멸망한 사실을 일행에게 밝혔다.

“ 억!”

“ 응?”

야율사은의 말에 소개를 기다리고 있던 자들은 일제히 신음을 흘렸다. 그들은 사풍무영대가 잠룡 십 조를 마중 나간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니 그 사실을 몰랐다는 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사풍무영대는 새외귀막의 마지막 보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새롭게 창설한 혈도부대가 있긴 하지만 그들과 사풍무영대를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다.

그런데 새외귀막의 마지막 보루였던 사풍무영대가 전멸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연우강이 이끄는 잠룡 십 조를 다시 볼 수밖에 없었따.

“ 난 아직 살아 있소, 부주.”

단리효는 차갑게 말하며 한편으로 물러났다. 지금 나서서 좋을 게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 하하하! 난 막북혈마성 성주 북청강이오, 연 공자.”

호탕한 웃음과 함께 북청강이 앞으로 나서며 자신을 소개했다.

“ 반갑소. 성주. 난 연우강이오.”

“ 반갑네. 애아기는 차차 하도록 하고 다른 분은 내가 소개시켜 주겠소. 여기 이분은 남만 독존궁의 만독존자 당갈이오.”

“ 난 당갈이오, 연 공자.”

“ 처음 뵙소이다. 그런데 성이 당씨라면 사천의 당문과 관련이 있는 거요?”

“ 클클! 그렇소. 연 공자. 사천당문 출신인데 독존궁으로 장가를 갔소.”

“ 아하하! 장가를 아주 잘가신 모양입니다. 궁주.”

“ 그랬소, 연 공자. 나는 장가를 가면서 팔자가 핀 경우요.”

“ 난 해남 남십자성의 십자무적혼 백마흔이오.”

곧이어 허리에 쌍검을 차고 있는 중년인이 연우강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 처음 뵙습니다. 연우강입니다.”

연우강은 포권 대신 상체를 깊숙이 숙여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연우강을 지켜보고 있던 일행의 얼굴이 의아하게 변했다. 심지어 야율사은마저도 놀란 눈으로 연우강을 보았다.

앞선 사람들에게는 단순하게 포권만 취했던 그가 유독 백마흔 앞에서는 지극한 예를 취한 것이다.

“ 혹시 연 공자를 만날지도 모른다고 했더니 잘 있다고 전해 달라고 하였소.”

“ 원하면 언제든지 머리를 내주겠다고 전해주십시오.”

“ 그렇게 하겠소, 연 공자.”

연우강을 가만히 쳐다보던 백마흔은 한편으로 물러났다.

“ 난 서장의 가람존자요. 연 공자의 활약을 많이 듣고 있소이다.”

백마흔에 이어 허옇게 샌 눈썹이 관자놀이까지 삐친 승려가 연우강을 향해 합장을 했다.

“ 처음 뵙소이다. 연우강이오.”

“ 난 청해천종림의 해룡왕 탁불군이오.”

“ 반갑소, 연우강이오.”

“ 난 북해빙궁의 수나인이에요. 내 딸이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는 말을 들었어요.”

마지막으로 자신을 소개한 사람은 북해빙궁의 궁주 수나인이었다.

“ 도움을 오히려 내가 받고 있소이다. 연우강입니다.”

연우강은 포권을 취했다.

소개가 끝나는 순간, 나중에 출발했던 탈라하 일행과 잠룡 십 조 일행이 들어왔다.

“ 나도 우리 식구들을 대충 소개를 해야겠네. 이쪽으로 와!”

연우강은 손짓으로 일행을 불렀다.

“ 먼저 노인네들부터 소개하겠소. 저기 있는 영감은 흑천노신군의 군장이자 총관이오.”

“ 허허! 처음뵙소이다. 욱일승이라고 하오. 한때 별호는 신주제일검으로 불렸는데, 그냥 욱 노라 불러도 됩니다.”

늙은 생강은 역시 매웠다.

흑천노신군이란 말을 처음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느느 태연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 신주제일검이면......”

팔황새 수뇌들 중 나이가 가장 많은 해룡왕 탁불둔은 고개를 갸웃했다. 보통 무인들은 얼굴보다는 별호로 기억하는데, 신주제일검이란 별호는 귀에 익었다. 하지만 정확하게 어디서 들었는지 그것까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그는 다시 고개를 갸웃하며 욱일승을 보았다.

‘ 들어본 별호...’

“ 다음은 흑천전왕군의 군장이오. 이철상 네가 소개해라.”

“ 흑천전왕군의 군장 교랑 이철상이오, 잘 부탁드리오.”

이철상은 일행을 향해 포권을 취하며 소리쳤다.

“ 다음은 흑천우사군.”

“ 흑천우사군의 군장인 수여설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수여설은 일행을 향해 포권을 취한 다음 어머니를 보았다. 마침 수나인도 수여설을 쳐다보고 있었다.

“ 화류계로 나서기로 한 게냐?”

싸늘한 목소리가 수나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 .....!”

수여설은 말없이 어머니를 보았다.

“ 대야벌에서 화류계로 나가는 법을 배웠냐고 물었다.”

“ 제 어머니 맞으세요?”

수여설은 차분한 얼굴로 응대했다.

“ 그럼 내가 네 어미가 아니면 뭐란 말이냐?”

“ 우린 사 년 만에 만났어요. 보통 어머니들은 사 년 만에 자식을 만나면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어디 아픈 데는 없는지, 그런 걸 먼저 물어봐요. 딸에게 어디서 기녀질 하다가 왔냐고 묻는 어머니는 없어요.”

수여설의 입에서도 좋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싸늘하기는 수나인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 이젠 내가 어미로 보이지도 않는 모양이구나.”

“ 단 한 번도 딸로 인정해주지 않았던 분이 그런 말을 하니까 제가 나쁜 년이 된 것 같네요. 아무튼 전 이걸 준비해 왔어요, 어머니, 소용없게 되고 말았지만.”

수여설은 오른손을 활짝 펴 들어올렸다.

“ 그건 무슨 뜻이냐?”

“ 그만 하죠.”

수여설은 손을 내리고 다시 연우강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괜찮아요?]

연우강은 걱정스런 얼굴로 전음을 보냈다.

[ 그동안 몸도 마음도 많이 강해졌나 봐요. 전 같았으면 벌써 빙하빙백강이 몇 번은 날아갔을 텐데요.]

[ 알았습니다. 아무튼 빨리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 다음은 내가 소개하겠소. 흑천우사군 군장 옆에 있는 소저는 흑천좌전군 군장인 창궁무후 남궁운화 소접니다.”

전음을 끊은 연우강은 남궁운화를 소개했다.

“ 처음 뵙습니다. 남궁운화라 합니다.”

“ 저 친구는 흑천후영군을 맡고 있소이다.”

“ 흑천우영군의 군장 유성비검 신도영이외다.”

“ 마지막으로 저 친구는 흑천중앙군의 군장인 염왕수 장사덕이오.”

“ 방금 소개받은 장사덕이외다. 잘 부탁드리오.”

번갯불에 콩 볶듯 이어진 소개에 팔황새 수뇌 일행은 멍한 얼굴로 잠룡 십 조 일행을 보았다.

한동안 그 상태를 유지하고 있던 일행 중 먼저 입을 연 사람은 혈마성의 성주 대혈마 북청강이었다.

“ 환영합니다. 여러분. 내 집은 아니지만 편하게 쉬시길 바라오.”

“ 반갑소.”

“ 반갑소이다.”

일일이 이름을 밝히기도 뭐하고 하여 팔황새 수뇌 일행은 반갑다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 자, 그럼 인사도 대충 끝났으니까 들어갑시다. 타라!”

야율사은은 길가에 대기하고 있던 마차를 향해 걸었다. 야율사은이 움직이자 다른 이들도 일제히 마차에 올랐다.

“ 특이한 마차네.”

연우강은 야율사은 옆으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마차였는데 머리 위에는 우산 형태의 햇빛 가리개가 달려 있고, 마차를 끄는 동물은 말이 아닌 낙타였다.

“ 탈라하, 손님들을 모셔라.”

“ 알겠습니다. 대제.”

야율사은이 소리치자 탈라하는 앞으로 나서며 마차를 이끌었다. 팔황새 수뇌들이 먼저 떠나고 연우강과 야율사은이 탄 마차는 맨 마지막에 출발했다.

“ 그런데 그건 무슨 소리냐?”

먼저 떠난 마차와 거리가 벌어지자 야율사은이 입을 뗐다.

“ 어떤 거?”

“ 흑천, 흑천, 흑천, 흑천, 흑천, 흑천. 흑천이란 말을 전부 여섯 번 했잖아.”

“ 좀 있어 보였냐?”

“ 있어 보여?”

“ 별것도 아닌 자식들이 목에 힘을 잔뜩 주잖아.”

“ 그래서 즉석에서 지은 거라고?”

“ 응.”

“ 그들은 저들이 잠룡 십 조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연우강.”

“ 낙타 위에 앉아서 인사를 받았으면 됐지. 뭐.”

“ 그게 다야?”

야율사은은 미심쩍은 눈으로 연우강을 보았다.

“ 응.”

“ 그럼 신주제일검 욱일승 대협은 어떻게 된 거냐?”

“ 알아?”

“ 내 기억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신주제일검 욱일승 대협은 사십 년 전에 대야벌 지옥에 갇힌 사람의 이름이다. 차기 벌주 후보의 한명이었고.”

“ 지금은 내 집 정원을 담당하고 있어.”

“ 사십 년 전 그 사람이 맞다고?”

“ 본인 입으로 신주제일검이라고 했으니까 맞지 않을까?”

“ 그럼 묘강 독존 갈인효 대협은?”

“ 청소부.”

“ 북해어옹 수천월 대협은?”

“ 주방장.”

“ 별것 아닌 것들이 목에 힘을 주는 게 보기 싫었으면 그분들도 소개시켰어야 하는 거 아니었냐?”

“ 과거라는 우물은 한 번 빠지면 여간해서는 빠져나오는 게 쉽지가 않아. 자칫 잘못하면 그 안에서 영원히 나오지 못하고 허우적거리게 되지. 내가 허우적거리는 삶을 살고 있는 것도 그놈의 과거 때문이고.”

“ 묘강독존 갈인효 대협의 과거가 독존궁에 있는 거냐?”

“ 그런 모양이야.”

“ 그럼 네 과거가 있는 곳은 어디냐?”

“ 대야벌.”

“ 과거를 묻는다고 해도 말해주지 않겠지?”

“ 아직은.”

“ 나중엔 가능하단 말이냐?”

“ 상황에 따라 달라, 영원히 말하지 않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이 밝힐수도 있어.”

“ 복잡하구나.”

“ 복잡하니까 그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거야.”

“ 그럼 수천월 대협을 소개시키지 않은 이유는 뭐냐, 그를 소개시켰더라면 모녀가 싸우지 않아도 됐을 것 같은데.”

“ 수 소저는 손뼉 칠 준비가 돼 있다고 했거든.”

“ 손뼉 칠 준비는 또 무슨 소리냐?”

“ 조금 전에 수 소저가 그랬잖아. 손뼉 칠 준비를 하고 왔다고.”

“ 그러니까 수 궁주가 반갑게 맞아주었더라면 두 사람은 화해를 했을 거란 말이냐?”

“ 복잡한 과거는 본인들이 풀어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까 수 영감을 소개시키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연우강은 고개를 돌려 수여설을 보았다.

수여설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라 곧이라도 폭발할 것 같았다.

“ 나갔다 와요.”

시선이 마주치자 연우강은 성벽 너머를 가리켰다.

“ 고마워요.”

휙!

연우강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수여설은 허공으로 몸을 뽑아 올리더니 성벽 너머로 날아갔다. 곧이어 성벽 너머에서 짐승의 포효 같은 광포한 외침이 들려왔다.

“ 왜 저러는 거냐?”

야율사은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 다혈공황증이라는 병이야.”

“ 한번 뒤틀리면 참지 못하는 병?”

“ 응!”

“ 증상이 너보다 심한 거냐?”

“ 나보단 조금 약하긴 한데, 여긴 전쟁터가 아니니까.”

“ 아주 독한 술이 있어야겠구나.”

“ 그럼 훨씬 빨리 풀릴 거야.”

“ 득달!”

야율사은은 마차 옆에서 호위하고 있는 나득달을 불렀다.

“ 다녀오겠습니다. 대제.”

나득달은 낙타 위에서 곧바로 몸을 날려 자리를 떴다.

“ 그런데 왜 성이 같은 거지?”

“ 몰랐어?”

“ 응.”

“ 원래 빙궁주는 무조건 여자가 맡게 돼 있어.”

“ 그럼 수 소저는 고모가 한 명도 없는 거야?”

“ 맞아. 수 소저 할아버지는 딸을 한 명도 두지 못했어. 결국 며느리에게 빙궁 궁주 자리를 줄 수밖에 없었지. 원래 이름은 나인인데 남편의 성을 앞에 붙인거야.”

“ 쯧!”

연우강은 고개를 돌려 수천월을 보았다.

“ 왜 날 보는가?”

“ 수 영감이 장가를 갔더라면 딸 하나 정도는 낳았을 거 아냐.”

“ 둘이 싸우는 게 나 때문이라고?”

“ 수 영감의 형님은 딸을 낳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겠지만 수 영감은 아무것도 한 게 없잖아.”

“ 팔자가 그런 걸 어쩌라고.”

“ 아무튼 수 영감 책임이 맞아.”

휙!

휙!

바로 그때 성벽 너머로 갔던 수여설과 술을 구하러 갔던 나득달이 동시에 날아왔다. 낙타 위로 내려앉은 수여설을 보며 연우강은 픽 웃었다. 곱게 단장했던 머리는 산발이 돼 있고, 기죽지 말라며 사준 옷에는 뿌옇게 먼지가 내려앉아 있었다.

“ 좀 풀렸어요?”

“ 이젠 괜찮아요.”

“ 술 이리 줘.”

“ 여기 있습니다. 연 공자.”

나득달은 술이 든 가죽 주머니를 연우강에게 내밀었다. 주머니를 받아든 연우강은 수여설에게 휙 던졌다.

“ 아주 독한 술입니다.”

“ 고마워요.”

수여설은 사양하지 않고 술을 벌컥벌컥 마셨다.

“ 술 남으면 나도 좀 주십시오.”

그렇게 말하고 연우강은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이곳이 팔황새의 한 곳인 북천지옥부라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평화로웠다.

“ 좋은 곳이네.”

빙그레 미소를 짓고 있던 연우강은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그를 빤히 쳐다보는 사람은 다름 아닌 야율사은이었다.

“ 왜?”

“ 아직 한 가지가 남았잖아.”

“ 뭐가 남았는데?”

“ 남십자성 백마흔 대협께 했던 말.”

“ 술 남았습니까?”

연우강은 뒤편을 향해 나직이 말했다.

“ 여기요.”

앞으로 다가온 수여설은 술주머니를 내밀었다. 주머니를 받아든 연우강은 조금 전 수여설이 그랬던 것처럼 꿀꺽꿀꺽 마셨다.

“ 그의 얼굴을 보면 떠오르는 사람 없냐?”

술 주머니에서 입을 뗀 연우강은 나직이 물었다.

“ 글쎄 워낙 평범하게 생겨서....”

“ 괴랑의 아버지다.”

“ 괴랑?”

“ 응.”

“ 그랬구나.”

야율사은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녀석은 특별하게 살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기억의 편린처럼 녀석의 과거는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다. 아마 이곳까지 오게 된 것도 그 과거 때문일 터였다.

“ 과거, 현재, 미래가 싸움을 하게 되면 최후의 생존자는 과거라고 하더라.”

“ 큭! 말 되네.”

야율사은은 피식 웃었다.

“ 저기가 네 집이냐?”

어느새 널따란 호수가 일행 앞에 나타나 있었다. 연우강은 호수 중앙에 서 있는 오층 건물을 가리켰다.

“ 괜찮아 보여?”

“ 저런 집에 살면서 중원에 욕심을 내는 건 무슨 경우냐?”

“ 내가 중원을 욕심내는 게 아니라 중원이 우릴 가만두지 않는 거다. 자식아.”

“ 그래서 중원을 한바탕 휘저어 놓으려고, 그 별것 아닌 놈들을 모은 거야?”

“ 너도 그 별것 아닌 놈들 중의 한 명인데?”

“ 나도 끼워주려고?”

“ 그러려고 여기까지 온 거 아냐?”

“ 내가 대장하겠다면 그땐 어쩔 건데?”

“ 밥상을 네가 차린다면 난 숟가락만 들고 기다려야지.”

호숫가에 당도하자 야율사은은 빙그레 웃으며 마차에서 내렸다. 호숫가에는 뗏목 형태로 된 배가 매어져 있고 그 앞에는 먼저 갔던 탈라하가 기다리고 있었다.

“ 다 잘 수 있어?”

연우강은 턱으로 건물을 가리키며 물었다.

“ 손님이 많아서 불가능해. 너희들 숙소는 저 아래쪽에 마련해 두었어.”

야율사은은 호수 서쪽을 가리켰다.

“ 부딪칠까봐 걱정하는 거야?”

“ 넌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있으면 시빗거리를 만들어 개패듯 하는 놈이잖아.”

“ 혈사귀랑 단리효, 그놈을 걱정하는 거구나.”

“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죽일 순 없잖아.”

“ 저들은 아래쪽에 가서 잔다고 해도 내 방은 있을 거 아냐.”

“ 부하들만 따로 버려두고 잘 놈이 아니잖아. 지금쯤 식사 준비 해놨을 테니까 가서 밥이나 먹어라.”

“ 여기서부터는 걸어가야겠네?”

“ 호수에서 부는 바람이 시원해, 산책로로는 최고야.”

야율사은이 먼저 길을 잡자 연우강은 일행에게 눈짓으로 지시를 내리고는 야율사은을 따라나섰다.

야율사은의 말처럼 호숫가로 나 있는 길은, 이곳이 사막이란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울창한 수림으로 뒤덮여 있었다. 압도당할 정도로 우뚝우뚝 서 있는 수목들. 그 중 단연 압권은 물속에 뿌리를 내린 나무들이었다. 물에서 자라는 나무들은 맨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나무들보다 더 컸는데 어른 허리 두께에, 키는 십여 장에 달했다.

그런 나무들이 물길을 따라 길게 이어져 있었다.

“ 최고네.”

연우강은 감탄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 숙소를 보면 더 놀랄걸?”

야율사은은 싱긋 웃으며 연우강을 안내했다.

“ 와아!”

잠시 후 나타난 광경에 연우강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그곳엔 이곳까지 오면서 보았던 물 속에 뿌리를 내리는 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나무들 사이에 작은 집들이 자리해 있고, 각 집과 집은 나무다리로 연결돼 있었다.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고 있는 듯했다.

야율사은이 연우강을 데려간 곳은 가장 끝에 있는 집이었다. 다른 집에 비해 약간 호수 안쪽으로 들어서 있고, 크기도 좀 커보였다.

“ 삼십 년 전엔 이곳이 바로 팔황북천각이었다.”

야율사은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다리를 건넌 두 사람은 집안으로 들어갔다.

양탄자가 깔려 있는 안쪽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게 돼 있었다. 안으로 들어간 연우강은 실내를 둘러보았다.

왼편에 침상이 있고, 오른편 구석엔 거무튀튀한 색의 화로가 돌받침 위에 놓여 있다. 그리고 작은 서가에 책 몇 권이 꽂혀 있을 뿐 내부는 단출하기 그지없었다.

“ 아무것도 안하고 하루 종일 빈둥거리는 곳이야.”

“ 휴식을 취하는 곳이라고?”

“ 응!”

“ 씻을 땐 그냥 물로 풍덩하면 되는 거냐?”

“ 그럼 안 되지, 저길 열어 봐.”

류사은은 안쪽의 문을 가리켰다.

안쪽으로 걸음을 옮긴 연우강은 문을 열었다. 그러자 한 사람 정도만 다닐 수 있는 폭이 좁은 나무다리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다리 끝에는 나무를 둥글게 세워 막은 특이한 공간이 있었다.

“ 화장시릉ㄹ 호수에 만들진 않았을 테고.”

연우강은 다리를 건너 둥근 형태의 공간으로 들어섰다. 그곳엔 물이 찰랑거리고 있었다.

“ 호수를 이용한 자연 욕조다.”

“ 늙어선 이곳에 와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연우강은 헤벌쭉 웃으며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 한 가운데 있는 건물이 식당이다. 식당 앞쪽에 마당을 만들어 뒀으니까 식사는 거기서 해라.”

“ 알았다.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너는 가서 손님 접대나 해라.”

연우강은 야율사은의 등을 떠밀었다.

“ 함께 식사라도 해야 하는데 미안하다.”

“ 나도 함께 식사할 부하들이 널렸어, 인마, 가봐.”

“ 그거.... 가져왔냐?”

“ 뭐?”

“ 십뢰.”

“ 꼭 그게 있어야 하는 거냐?”

연우강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 우강 네가 일 년 안에 대야벌의 벌주가 될 자신이 있다면 없어도 된다.”

“ 대야벌은 천오백 년 동안 흘러 내려온 거대한 역사의 강이다. 사은. 한 사람의 힘으로 그 흐름을 바꿀 순 없다.”

“ 담대만승이 오백 명이나 되는 잠룡들을 뽑고, 상궐 창설을 시도하고, 잠룡들을 외부로 내보낸 이유를 혹시 알고 있냐?”

“ 대충 짐작만 하고 있을 뿐이야.”

“ 말해 봐라.”

“ 황실과 싸우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

“ 내 생각도 그렇다. 우강. 문제는 그 싸움이 어떻게 끝나느냐 하는 거다.”

“ 무기를 들고 피 터지게 싸울 순 없으니까 적당한 선에서 협상에 들어가겠지.”

“ 협상의 결과는 어떻게 나올 거라고 보냐?”

“ 담대만승은 황제에게 머리를 숙이는 대신 마르고 닳도록 벌주를 해먹는 걸 인정해 달라고 할 테고, 황제는 그냥 주기엔 자존심이 상하니까 그에 합당하는 일을 해달라고 하겠지. 그 일은 팔황정벌이 될 테고.”

“ 바로 그거다. 우강. 만일 담대만승이 황실에 고개를 숙이게 되면 그 다음은 바로 우리가 된다. 황실과 대야벌 무인이 힘을 합쳐 쳐들어온다면 우리에게 남은 건 멸망밖에 없다. 나는 내 자식에게 멸망한 북천을 넘겨주고 싶지 않다. 우강.”

“ 자식?”

“ 전쟁터에서 돌아오자마자 바로 혼인을 했다.”

“ 아이는?”

“ 큰아이는 네 살이고, 둘째는 두 살이다. 지금도 배 안에 하나 더 있고.”

“ 그런 놈이 십뢰를 들고 장난을 치겠다는 거야?”

“ 어쩔 수 없다고 했잖아, 인마.”

“ 다른 사람들은?”

“ 그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거야. 그게 아니라면 이 시기에 이곳까지 올 이유가 없을 테니까.”

“ 그들도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는 말이구나.”

“ 그 정도도 간파하지 못하면 자리를 내놓고 떠나야지.”

“ 알았다. 상황이 무르익으면 그때 불러라.”

“ 가져온 거냐?”

“ 뒈지고 싶을 때 쓰라고 준 거잖아, 인마.”

“ 십뢰는 몇 개 남았냐?”

“ 세 개.”

“ 그걸로.....”

“ 오늘부터 부처님께 기도나 올려라. 제발 십뢰가 비껴가게 해달라고.”

연우강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 아무래도 그래야겠다.”

야율사은과 함께 처소를 나선 연우강은 그를 배웅하고 식당이 있다는 중앙 건물로 향했다.

중앙 건물의 뒤쪽, 즉 호수 쪽으로는 널따란 공간이 만들어져 있었다. 뗏목을 만들어 띄우고 그 위쪽에 나무판을 얹어 편편하게 만들어 놓았다. 그곳에는 이미 잠룡을 비롯한 노인들이 전부 모여 있었다.

노인들과 잠룡들은 뭔가에 취한 듯 서쪽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연우강은 그들 앞으로 다가갔다.

“ 뭐 하는 거야?”

“ 저걸 보고 있는 거예요.”

남궁운화가 서쪽 사구에 걸려 있는 해를 가리켰다. 연우강은 남궁운화의 손끝을 좇았다.

그녀가 가리킨 해를 보자 문득 처음 보았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 자신도 남궁운화나 잠룡들처럼 넋을 잃고 석양을 바라보았다.

보라색으로 물들어 있는 사구들.

사구에서 풀썩풀썩 흘러내리는 모래마저도 보랏빛을 뿌려대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숨이 막힌다.

“ 원래 활력이 넘치는 곳은 일출이 아름답고, 죽음이 가까운 곳에서는 일몰이 더 아름답습니다. 저놈의 일몰에 빠지면 못 나오는 수도 있으니까 조심해야 합니다.”

연우강은 빙그레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연우강이 자리에 앉자마자 식사 시중을 들고 있던 시녀가 다가와 차를 따라주었다.

“ 고맙습니다.”

연우강은 차로 입을 헹군 다음 탁자 가운데 차려져 있는 접시에서 음식을 덜어 제 앞으로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는 일행을 향해 입을 열었다.

“ 지금 이 순간부터 이곳을 떠날 때까지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푹 쉬어라.”

“ 알겠습니다.”

일몰을 구경하던 일행은 일제히 소리치며 자리에 앉아 수저를 들었다.

“ 꿀맛이네.”

“ 진짜!”

잠룡들은 희희낙락하며 젓가락을 놀리기에 바빴다.

순식간에 접시를 말끔히 비운 일행은 만족한 얼굴로 배를 두드리며 차를 마셨다.

“ 두 영감, 내 짐은 어딨지?”

연우강은 찻잔을 들고 공터 가장자리로 가며 물었다.

“ 수 소저 처소에 있다.”

수여설과 남궁운화의 짐은 연우강의 궤짝 안에 넣어 따로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 수 소저 처소는 어딘데?”

“ 네 처소 바로 옆이다.”

“ 짐은 풀었습니까?”

연우강은 수여설을 보며 물었다.

“ 지금 가게요?”

“네, 혹시 사내에게 보여주기 곤란한 것들을 넣어놓은 건 아니죠?”

“ 연 공자는 이미 봤으면서 새삼스럽게 왜 그래요?”

수여설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 이, 이미 봤다고요?”

연우강은 황당한 얼굴로 소리쳤다. 그녀의 말이 꼭 함께 자지 않았냐는 말처럼 들렸던 것이다.

연우강은 다른 이들을 보았다. 그들 역시 같은 뜻으로 받아들인 듯했다.

“ 호호호! 연 공자가 제게 판 옷이라는 뜻이네요. 팔기 전에 실컷 구경하지 않았나요?”

“ 벌써 육 개월이 지났습니다. 그걸 아직도 입고 있단 말입니까?”

연우강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투덜댔다.

“ 제가 마지막에 몽땅 샀던 건 기억하지 못하나 보죠?”

“ 몽땅 산 사람이 한둘이어야 기억을 하죠. 아무튼 짐 풀었으면 궤짝 가져가겠습니다.”

“ 저도 들어갈 생각이었느니까 같이 가요.”

수여설이 일어나자 남궁운화도 덩달아 일어났다.

“ 주무세요.”

“ 먼저 들어갈게요.”

“ 푹 쉬어라.”

“ 푹 쉬십시오, 백랑, 창랑.”

노인들과 잠룡들의 인사를 받으며 세 사람은 숙소로 향했다.

집과 집은 나무다리로 이어져 있었다. 몇 개의 다리를 건너 수여설과 남궁운화 숙소에 당도했다.

“ 괜찮습니까?”

궤짝을 받아든 연우강은 수여설을 가만히 쳐다보며 물었다.

“ 연 공자 말처럼 서른 살이잖아요. 공자께서는 서른 살을 일컬어 인생의 기초를 세우는 나이라며 삼십이립이라고 하였죠. 이제부터는 제 인생을 살 겁니다. 연 공자.”

“ 거기에다 급한 성격만 고치면 금상첨환데.”

연우강이 빙그레 웃었다.

“ 무공이 더 강해졌으니까 고칠 수 있을 거예요.”

“ 무공과 천성은 상관없습니다. 수 소저.”

“ 저완 상관없지만 다른 사람은 상관 있잖아요.”

“ 다른 사람?”

“ 전엔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무공을 펼치면 중상에 그쳤지만, 지금은 최하 사망이잖아요.”

“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수 소저를 답답하게 하지 않을 거라는 말입니까?”

연우강은 어이없는 얼굴로 물었다.

“ 삼십 년 동안 형성된 성격인데 하루아침에 고쳐진다면 그게 더 이상하겠죠.”

“ 이상한 게 아니라 아예 고칠 생각이 없는 것 같네요. 쉬세요.”

연우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제 숙소로 향했다.

숙소로 돌아온 그는 궤짝을 내려놓은 다음 내부 궤짝에 넣어 두었던 십뢰를 꺼냈다.

침상으로 자리를 옮겨 앉아 안쪽에 있는 암기를 빼내고 다시 조립한 다음 빠르게 돌렸다. 섬뜩한 소리와 함께 십뢰를 집어넣는 뭉치가 빠르게 돌았다.

거의 반 시진 동안 십뢰 뭉치를 돌려보다가 빈 뭉치가 돌아가는 소리에 익숙해지자 십뢰 하나를 집어넣고 다시 돌렸다.

“ 역시 사천당문인가?”

얼굴이 실망으로 일그러졌다.

십뢰 하나가 들어갔지만 뭉치가 돌아가는 속도는 물론이고 소리마저도 달라지지 않았다. 사천당문에서 만든 최고 암기라는 말이 틀리지 않은 듯했다.

“ 정확하게는 아니더라도 근처까지는 맞출 수 있어야 하는 데......”

다시 십뢰 뭉치를 돌렸다.

그러나.

“ 제기랄! 또 오줌 지리게 생겼네.”

한 시진 동안 쉴 새 없이 십뢰의 뭉치를 돌리던 연우강은 침상에 벌러덩 드러눕고 말았다.

0